121강-YouTube강의(종말의 의미)150702-이 근호 목사
121강-YouTube강의(종말의 의미)150702-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80.231.90.76)
121강-YouTube강의(종말의 의미)150702-이 근호 목사
자, 이제는 121강, 제목은 ‘종말의 의미’입니다. 종말이라는 것은 ‘끝’이라는 뜻이죠. 근데 끝을 우리가 이야기하게 되면 듣는 사람들 다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끝이라는 것은 우리 어감에 낭떠러지, 또는 절벽 같은 것, 또는 폭포 그런 이미지가 굉장히 강렬하거든요. 가봤자 떨어질 걸, 차라리 먹고 마시고 실컷 즐기자. 그렇게 되는 겁니다. 세상에 끝 날이 있습니다. 그러면 끝 날이 오면 술 먹 못 먹으니까 끝 날 오기 전에 진탕 술 먹고 난 뒤에 원 없이 끝을 맞이하자. 이렇게 생각합니다.
방금 한 이야기에서 사람들이 잘못 생각한 것이 뭐냐 하면 “종말을 맞이하자.” 라고 하고 있는데, 종말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알아채고 대비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만약에 가정이 있는데, 식구끼리, 네 식구가 있다고 합시다. 근데 만약에 손님이 온다, 이렇게 한다면 우리는 그 상황을 우리가 대비를 해요. 네 식구 있는데 저녁에 어떤 귀한 손님이 오게 되면, 그 사람 오게 되면 다섯 명이 되죠. 그럼 커피를 대접한다면 잔을 다섯 잔 준비하면 되는 겁니다.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전혀 어렵지 않죠?
그런데, 제가 말을 좀 어렵게 하겠습니다. 어떤 손님이 온다고 해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손님이 저녁이 되도록 오지를 않아요. 근데 네 식구인데, 네 식구가 그동안 함께 살았는데, 그 중에 막내아들이 “엄마! 내가 손님이야.” 하고 나온다면 우리는 기절초풍을 할 겁니다. 분명히 네 식구는 일단 우리 편이고 그 다음에 손님 오게 되면 플러스해서 다섯 명을 생각하게 되는데, 네 명 가운데 이질적인 손님이 있을 줄이야 상상도 못하죠. 아! 이거는 정말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그럴 것입니다.
나는 내게 속한 막내아들로 생각했는데, 그 막내아들이 낯선 외계인이라고 누가 그렇게 생각을 하겠습니까? 익숙한 얼굴인데. 그래서 성경에서 마지막이라는 이 단어가 그렇게 어려워요. 예수님이 왔을 때, 세례요한은 그걸 구분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왔다고 하니까 목수의 아들이 그냥 우리 속에 같이 섞여 있는 줄 알았죠. 근데 세례요한은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하늘나라가 왔다고 본 겁니다. 종말이 왔다고 한 겁니다. 사람들은 천지개벽을 생각한 거예요.
하늘에서 유황불 떨어지고, 구름타고 메시아가 나타나고, 다니엘 7장에 나온 이야기니까. 하늘에 징조를 보고 “야, 오신단다. 오신단다.” 근데 너무 조용해요. 근데 누가 오버하느냐 하면 세례요한이 호들갑을 떠는 것처럼 느껴져요. “하늘나라가 왔다.” 바리새인이 조사에 나섰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당신이 메시아가 왔다는데, 메시아가 온 증거를 대라. 니 누구야? 왔다는 증거가 어딨어?” 그러니까 세례요한이 하는 말이 “나는 하나의 광야의 소리에 불과하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 바로 메시아다.”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뭔가 획기적인 일이 있는가 싶어서 와놓고 실망을 했죠. “에이, 구라다. 거짓말 쳤구나. 가자 가!” 그런데 세례요한은 그들을 향하여 이상한 이 시대에 속하지 않은, 난데없이 다른 시대에 오는, 마지막 때에 활용되는 문장들을 막 구사합니다. “회개하라.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이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들 구원받으려고 나한테 왔느냐? 너희들을 구원하는 천국이 아니야. 너희들은 저주받아야 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다른 사람들은 회개하는데 너희들은 왜 회개하지 않아?”
그들이 세례요한을 보고 이런 말을 했거든요. “아이구, 저건 기껏 물세례 주네.” 조롱을 했거든요. “너희들이 지금 물세례 주는 것으로 조롱을 해? 이 물세례는 아무것도 아니야. 진짜 내 뒤에 오시는 분이 불세례를 주실 거야. 성령으로 오실 거야. 그것이 마지막 타작마당이 될 거야. 알곡은 따로 모으고 죽정이도 따로 모으고. 끝났어. 세상 끝난 거야. 이게 종말이야. 그 주인공이 오신 거야. 그 담당자가 오시는 거야.”
그러나 그 이야기에 대해서 바리새인과 조사관들은, 이거는 아무리 봐도 객기로만 생각합니다. “아, 오버한다. 미쳤다. 자기가 뭐 예언하는 것처럼 뭔가 착각하고 있다. 그 종교적인 열정으로 도가 넘쳐서 미쳤구나.” 근데 사실은 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그러한 심사평은요, 이것은 세례요한을 포함해서 그 당시 많은 사람들도 그럴 수 있다는 의구심으로 퍼졌어요.
그래서 이 세례요한마저도 도대체 자기 뒤에 오실 분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를 못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세례요한이 뭘 기다렸느냐 하면 성령세례와 불세례를 기다린 겁니다. 하늘에서 유황불 떨어지기를 기다렸어요. 하늘나라 멀쩡합니다. 아무 일도 없어요. 성령세례 일어날 낌새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세례요한 본인이 흔들릴 판이에요. 자기는 자기가 지어낸 말이 아니고 성령을 통해서 말은 내뱉어놨는데, 그 말과 그 당시 현실과 일치가 되어야 되는데, 일치되지 않으니까 누가 흔들립니까? 세례요한마저 흔들립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옥에 갇히고 난 뒤에 자기 종을 보내서 예수님에게 이야기합니다. “혹시 당신이 딴 분 아니에요? 내가 이야기한 다른 분이 따로 계신 게 아닙니까? 오실 분이 당신 맞아요?” 라고 이야기한 겁니다. 여기서 세례요한이 종말에 대해서 깊이 있는 내용을 다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면 종말은 어떻게 오느냐. 이야기하다보니까 너무 어렵게 되었는데, 그 어려울 줄을 제가 알고 먼저 식구이야기, 네 식구 이야기를 끄집어낸 겁니다. 네 식구 가운데서, 외부에서 메시아가 온다고 생각했는데, 네 식구 가운데서 그 중의 하나가 낯선 사람으로, 마치 편하게 생각했던 그 중의 하나가 독특하게 외계인으로 등장했을 때, 우리는 기겁을 하죠. 바로 이 방법을 예수님이 세례요한 종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종말, 이미 메시아가 왔다. 귀머거리가 들으며 앉은뱅이가 걷게 되며 소경이 눈을 뜨며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거든 이미 하나님 나라가, 메시아가 왔다는 것을 알아라.” 라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세례요한에게 전갈을 보냅니다. 이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내가 눈이 있어도 사실은 소경이며, 내가 귀가 있어도 사실은 귀머거리며, 내가 멀쩡하게 몸무게 얼마, 키 얼마, 밥 세끼 먹고 탱탱하게 살아도 사실은 내가 죽은 자입니다.” 라는 고백의 자리에 서지 아니하면 내가 메시아라는 것을 못 알아본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못 알아보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 지금 이 시대가 이미 종말이 개시가 되었다는 사실을 못 알아보는 거죠. 내 자신이 사실은 지금 살아있지만 죽은 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메시아가 하시는 일에 대해서 우리는 평범한, 그렇고 그런, 늘 있었던 일상적인 일로 왜곡되게 생각해버리죠.
우리는 그 대신에 획기적인 일, 하늘에서 유황불이 떨어지고, 메시야가 구름타고 오고, 그런 것만 기다리는데, 그런 것들은 그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세례요한이 기대했던 획기적인 거죠. 사실은 그 기적보다 더 놀라운 기적은 사람 손에 누가 돌아가셨다는 요나의 기적입니다.
요나가 물에 던져질 때, 물속에 빠졌을 때, 그 뱃사람들은 그걸 기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아이고, 선지자 하나 까불다가 자기가 믿는 하나님한테 당했구나! 그 사람 안 됐다. 야! 우리는 그냥 배타고 빨리 가자.” 이것만 생각했지, 그 요나 선지자가 물에 빠지는 것이 바로 진짜로 살아계신 하나님이 폭풍을 일으켰다는 것과 그걸 연결시키는 안목적인 눈들이 없었어요.
지금 분명히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는데, 그게 종말인데, 그 십자가 죽은 그 분이 우리를 살리는 힘이라는 것을, 우리를 구원하는 힘이라는 것을, 십자가 안에서 현재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과, 이 살아가는 것이 죽은 자의 모습이라고 그걸 연결을 시켜야 되는데, 연결은 성령이 와야 연결되지 성령이 오지 않으면 인간의 힘으로서 그게 연결되는 고리가 마련되지 않습니다.
내가 살았다 하는 것은 실은 죽은 것이고 진짜 살아계신 분은 부활하신 주님이다. 그 주님께서,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진짜 살아계신 분이신 주님께서, 멀쩡하게 살아있다고 우기지만 실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우리를 살려내기 위해 죽으시고, 새로운 세계를 펼치면서 부활의 세계를 마련하셨구나! 이것을 우리가 살아있으면서 감 잡아야 됩니다. 우리가 눈 떠야 됩니다.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어떻게 압니까? 내가 살았다 하지만 사실은 내가 죽은 자이고, 살았다 하는 것은 날마다 성령 안에서만 우리가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종말은 이미 시작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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