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강-YouTube강의(허무)150702-이 근호 목사
120강-YouTube강의(허무)150702-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80.231.90.76)
120강-YouTube강의(허무)150702-이 근호 목사
오늘은 제 120강, 제목은 ‘허무’입니다. 보통 허무라고 할 때는, 자기 인생 자체가 자기 원대로, 자기 기대대로 안 될 때, 허무하다고 이야기하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세상이 허무하다, 내 인생이 허무하다고 하면서, 그 허무가 어디서 출발했는가, 어디서 나왔는가는 사람들이 잊고 있어요. 우리 자신이 허무하다는 생각을 사람들은 잘 안하고 있습니다. 내 자신 자체가 허무하다는 사실을.
내 자신이 허무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내 인생도 당연히 거기서 허무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는 내 인생은 허무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고, 세상은 내 뜻대로 되어야 마땅하지만, 세상은 내 뜻대로 안 되니까, 나는 괜찮지만 세상은 허무하다는, 이런 식으로 허무의 범주에 자기 자신을 넣지 않으려는 반칙들을 많이 범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전도서에 “헛되고 헛되고 헛되며” 나오는 것은 그 헛됨 속에서 우리 자신을 따로 빼놓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자신을 포함시켜서 헛되다고 봐야 된다는 겁니다. 왜? 우리 자신이 헛된지, 하나님이 우리 자신을 만들었을 때는 분명히 헛되지 않게 만들었을 텐데. 왜 우리가 헛되냐? 라고 우리가 생각하기 일쑤인데, 우리가 발상을 한 번 바꿔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을 헛되게 생각하라고 만들었다고 한 번 생각해봅시다. 그렇게 되면 모든 해답이 다 풀려요. 내 자신을 헛되다고 생각해버리면, 그러면 그 다음에 나오는 질문은 하나밖에 없어요. “너도 헛되고, 나도 헛되고, 우리 가족도 헛되고, 그러면 헛되지 않은 게 뭡니까?” 라는 질문이 필히 나오게 마련인데, 그 분이 바로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노아 때 생각해봅시다. 노아 때 사람들이 각기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고. 각기 자기 자신이 헛되지 않다고 자기들 자신이 그렇게 생각했죠. 판정 누가 내립니까? 큰 소리 친다고 그 사람이 판정 내릴 사람은 아니고요. 하나님께서 홍수 사건을 일으켜버리니까 노아 빼놓고 다 헛된 것이 들통 났죠.
그러면 노아 본인이 잘나서 헛되지 않은 겁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하나님의 언약이 노아에게 임하니까 노아는 방주 안에서 은혜를 받은 겁니다. 그렇다면 방주가 없는 노아, 언약이 없는 노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역시 헛되죠. 그렇다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노아마저 헛되다.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이 임하고 방주가 임하니까 노아마저도, 헛된 노아는 구원을 받았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원리가.
그걸 신약으로 넘겨봅시다. 신약에 와서, 신약 자체가 새로운 언약인데요. 새로운 언약 시대에 헛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의 새 언약 밖에 없습니다. 십자가 언약이라고 하는데. 내 살과 내 피로 말미암아 언약을 새로 세우겠다는 그것만이 헛되지 않죠. 그렇다면 이 땅에 너 나 할 것 없이 다 헛된데, 헛되지 않는 사람은 누구냐 하면, 바로 새 언약 안에 있는 사람, 십자가 능력 안에 있는 사람만이 헛되지 않습니다.
지금 신약에서 주께서는 그것을 증거 하려고 해요. 방금 제가 한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너 자체는 헛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으로 주께서는 우리를 몰아세우십니다. 너 자체로는. 이래 사나 헛되고 저래 사나 헛되고. 그런데 왜 그렇게 몰아세우느냐 하면은 예수그리스도만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헛될 수밖에 없는 우리를 주께서 사용하신 겁니다. 강제로 그리스도 안으로 잡아당긴 거죠.
성령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새 언약 속에 집어넣게 되면 우리 입에서 나오게 되는 것은 뭐냐 하면, 나마저도 헛된데 헛되지 않는 것은 주님밖에 없다는 고백이 나오죠. 바로 그것을 성경에서는 이것이 그리스도로 인한 믿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야고보서 2장에 보면, 교회 좀 다닌 사람들은 다 아는 유명한 구절이 나옵니다. 그것이 뭐냐,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된 것이라는 구절 나오죠.
야고보서 2장 20절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줄 알고자 아느냐”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되다는 거죠. 사람들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되니까 ‘그래, 믿음에다 행함을 보태자.’ 이런 식으로 너무 성급하게 정리를 하는데, 이 대목을 조금만 생각해봅시다.
왜, 우리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될 수밖에 없는가? 그 점을, 다시 말해서 왜 우리 믿음은 헛된 믿음이라고 지적받을 수밖에 없는, 그러한 입장에 놓여있는가? 그 이유가 우리 속에 있는데, 왜 우리는 그것까지 생각을 잘 안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지.
말을 쉽게 하겠습니다. 우리 자신이 헛되다는 것을, 왜, 우리 자신은 곰곰이 생각할 줄을 모르느냐고 제가 지금 닦달하는 거예요. 왜, 우리 자신은 헛되다고 생각을 못하느냐 말이죠. 분명히 예수님만이 헛되지 않는다면 반드시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은 “주여, 그럼 우리 자신으로서는 헛되네요.” 라는 고백이 같이 따라 나와 줘야 하는데, 왜, 우리는 주님만 헛되지 않다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왜 놓칩니까?
야고보서 2장에서 하신 말씀이 야고보서 4장에서 아주 간편하게 정리가 됩니다. 우리 자신이 헛되다는 거예요. 어떤 식으로 헛되는가 하면은, 야고보서 4장 14절에 보면,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소위 우리가, 내가 여기 있음으로부터 출발을 해서 스스로 자립적인 존재로 시도하는 모든 것은 헛된 겁니다. 왜?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데 인간은 자기 자신이 헛되다는 것을 인정 안 하기 때문에 어떤 객기를 부리느냐 하면 내가 어느 도시에 가서 일 년을 유하면서 장사하여 이익을 남기겠다는 그러한 장담을 해요. 이게 야고보서 4장 13절에 나옵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자,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이렇습니다. “니가 그런 소리하는 것 보니까 니가 아직도 주제 파악이 안 되는구나? 니가 누군 줄도 모르면서 감히 예수를 믿어? 니가 누군 줄도 모르면서 하나님 믿는 행함이 있다고 자랑질을 해? 우선 니 자신부터 헛되다는 것을 니가 인정을 하지 않는구나? 라고 우리 보고 닦달내시는 겁니다.
이렇게 됩니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너희여!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 같은 주제에 불과하다. 그걸 니가 평소에 내 모습이라고 니가 언제 받아들였느냐?” 라고 우리를 추궁하고 있어요. 평소에 생각하라. 어떻게? “저요? 내일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안개로서 마감해도 저희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한 조치입니다.” 라고 자기 자신을 그렇게 받아들였느냐고 그렇게 묻고 있는 거예요.
야고보서 2장에서 귀신들이 하는 말이 하나님은 한 분 계시다고 하는데, 그런 쪽의 믿음은 누구나 떠들 수가 있어요. 그런 식으로 떠든 다는 말은 자기 자신이 헛되다는 생각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큰 소리 치면서 “나는 하나님 믿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어떤 미사여구를 다 동원해서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런 소리 하면서 뭐가 날아가느냐 하면 ‘나는 괜찮은 존재지?’ 하고 자기 자신을 제대로 분간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큰 소리들이 나오는 거예요. 야고보서 4장에 넘어가면 이렇습니다. “너희는 잠간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 같은 헛된 존재다.” 야고보서 4장 그 다음의 주의 말씀을 모른다고 칩시다. 모른다고 치면 14절에서 우리는 안개니라. 여기에서 끝난다면, 안개니라, 그 다음에 또 안개니라. 안개니라, 헛되고 헛되니 안개니라. 뭐? 뭐? 그 다음에 뭐? 없어요.
그럼 그걸로 고만 ‘그래. 안개 같은 인생, 이래 살다가 없어지지.’ 이게 마치 우리를 헛되다고 한 주의 뜻의 사명인 것처럼 그렇게 자포자기하는 경향들이 또 있습니다. ‘그래.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끝.’ 그게 성도의 본분일까요? 15절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라는 거예요.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삽니다.” 아! 우리가 얼마나 자존심이 센지요? “내가 열심히 살면 삽니다.”로 자꾸 바꾸려고 해요. 얼마나 자존심이라는 것이 센지....., 자존심 때문에 우리가 헛된 줄도 모르고.
“주의 뜻이기 때문에 오늘도 살았습니다.” 왜, 은혜에 감사할 줄 모릅니까? 내가 어느 도시에 갈 수 있어요. 장사해서 이익을 남길 수가 있습니다. 그것마저 우리 공로로 돌리면 안 됩니다. 주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바로 헛된 과정을 거쳐서, 결국 주님만 영광 돌리는 삶, 이게 성도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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