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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19강-YouTube강의(거짓)150618-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고린도후서

119강-YouTube강의(거짓)150618-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80.231.90.76)

119강-YouTube강의(거짓)150618-이 근호 목사

이번에는 119강, 제목은 ‘거짓’입니다. 제가 제목을 거짓이라고 이렇게 했는데요. 좀 더 자세하게 다른 표현을 한다면 ‘위선적이다’는 것을 두고 이야기합니다. 거짓이라 하는 것은, 성경에서 거짓이라 하는 것이 상당히 재미있어요. 보통 거짓말 하지 말라는 십계명 말씀대로 거짓은, 거짓의 앞잡이는 마귀라는 성경 구절이 나오듯이 거짓말 하는 것은 나쁜 짓이다,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주님이 오셔서 거짓말 했다고 하신다면 믿겠습니까? 우리는, 유대인들은 이 메시아가 오게 되면, 이 메시아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메시아 입에서 추호도 거짓을 말함이 없고 참 진리만 이야기한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다린 그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거짓말로 들렸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이 거짓말이에요.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귀신의 대장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예수님을 거짓말쟁이로 봤고, 사울이라는 사람은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고 그야말로 율법에 대해서 정통한 사울이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다멕섹으로 내려가면서, 또 어떤 권한을 받아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을 또 족치고 체포해서 죽이기 위해서 내려가다가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습니까?

그 사울이라는 사람이 전에 예수님을 육으로 알 때, 고린도후서 5장에 나오는데, 전에 내가 예수님을 육체로 알았다는 거예요. 예수님을 육으로 알 때,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전부 다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에 예수님의 말을 거짓말로 여기게 했던 바로 자기 자신이 거짓되게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럼 여기서 한 번 정리해봅시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은, 우리가 알던 메시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참말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거는 아직도 예수님을 모른다는 말 밖에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정작 예수님을 제대로 알았던 사람, 사도 바울이죠. 사도 바울, 베드로 이런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 만나고 난 뒤에, 내가 내 자신을 제대로 몰랐을 때, 예수님의 말씀을 다 거짓말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고 보니까,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까 “예수님이 진짜인 동시에 내가 위선적으로, 거짓말로, 일생을 일관되게 거짓된 존재로 살아왔습니다.”를 고백한 거예요. 맞지요. 이제부터 더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뭐냐 하면, 내가 예수 믿는 것이 거짓이냐, 아니면 참된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나와요. 내가 예수님을 몰랐을 때는 내가 진실이었고 예수님이 거짓이었는데, 예수님이 진실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내가 하는 모든 것이 거짓이라면, 내가 하는 모든 것 속에 예수님 믿는 나의 믿음과 사랑, 소망도 거기 포함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면 그것도 거짓입니까? 그것도 거짓이겠네요?

참, 이게 따지고 보면 상당히 어려운 문제가 봉착한 거예요. 거짓이 한 부류만 있으면 거짓이나 참이라 하는 것은 첫 번째 현실과 대비해서 현실과 안 맞으면 거짓이고 현실과 맞으면 참이 되고 아주 간단해요. 근데 다른 부류에 속한 분, 예수님이죠. 인간과 다른, 인간이 속한 이 세계 말고 다른 세계에 속한 분이 와버리니까 인간은 스스로 자기를 ‘나는 거짓이야.’ 라는 능력을 자생적으로 끄집어낼 수 없게 됐어요.

따라서 제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제가 예수 믿습니다.”는 말도 이게 거짓말에서 나온 거짓말의 일부다 이 말입니다. 제 말은. 그 대표적인 예가, 두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하나는 욥인데요. 욥이 난데없이 몸이 아프고 난 뒤에, 고난 받고 난 뒤에, 아무리 봐도 자기는 거짓이 아니에요. 고난 받을 나쁜 짓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고난이 왔어요. 그래서 욥은 차라리 이럴 것 같으면 “저를 죽이시지 왜 저를 태어나게 해서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다시 말하면 “내가 의인인 것이 분명한데, 왜 의인이게 왜 고난이 왔습니까?” 이래 돼요.

의인이 고난 받는 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아요. 왜냐 하면 고난이라는 것은 죄인이기 때문에 죄 값을 벌 받는 식으로 고난이 와야지 의인이라는 것은 이미 벌이 없어진, 벌 없는 상태가 의인이거든요. 벌 안 받는 상태가 의인이라면, 의인된 상태에서 벌이 왔다면 도대체 앞뒤가 안 맞아요. 그럴 수가 없다 이 말이죠. 그럴 리가 없다 이 말이죠.

그렇게 했던 욥이 나중에 하나님 만나고 난 뒤에 뭐냐 하면 “내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제가 유구무언입니다.” 하고 재를 뒤집어썼다 이 말이죠. 재를 뒤집어썼다는 말은 잘못은 저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욥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잘못은 저한테 있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 “내가 잘못했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잘못 없는 나를 잘못되게 만들어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그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이 말은 반성조차도 우리가 거짓이라 이 말입니다. 반성, 회개조차도 우리가 거짓말이라 이 말입니다. 회개해서 그걸 대가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에요.

또 한 가지 예가 나봇의 포도원 비유인데요. 나봇 이라는 사람은 자기의 포도원은 자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했어요. 이건 바른 소리에요. 그 바른 소리를 끝까지 고집했어요. 고집하다 보니까 아합 왕한테 죽었잖아요. 그럼 이 세상에는 참 말을 하는 사람은 죽이는 세계에요.

근데 그 죽이는 세계에서 누가 태어나느냐, 우리 본인들이 태어났거든요. 본인들이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의 것을 가지고 내가 지금 복 받았는지, 아니면 벌 받았는지를, 내가 그리워하는, 내가 얻고자 하는 이 세상의 복 가지고 그걸 측정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측정을.

근데 제가 분명히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이거에요. 그렇게 내가 잘못이냐, 잘못 아니냐를 측정한다는 자체가 아직도 자기 분수를 몰라요. ‘내가 잘만하면 착해질 수 있어. 잘만하면 구원받을 수 있어.’ 라는, 아직도 자기가 구원과 영생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는 자체가 그것이 바로 죄의 일부가 되는 거예요. 그게 잘못된 짓이에요. 그게 아주 거짓된 짓입니다.

참으로, 정말 성령을 받은 사람은 “주님께서 나를 죄인 만들게 해서, 주께서 나를 의인 만들게 했습니다.” 모든 시작과 과정과 결말을 다 예수님 몫으로 돌리는데, 그 사람이 진짜 성령 받은 사람이고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여 제가 거짓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거짓된 것을 회개하니 구원해주세요.” 이런 구원 없습니다. 그거는 지가 주님하고 장난치고 있는 거예요. 주님을 속이고 위선입니다.

마지막으로 야곱의 예를 들겠습니다. 야곱이 태어날 때부터 속임수죠. 속이는 자죠. 야곱 이름 자체가. 그렇다면 야곱의 한평생은 누구를 속여야 돼요. 왜? 타고난 운명이기 때문에. 근데 그 야곱은 형을 속여서 무엇과 관련짓느냐 하면, 형을 속여서 하나님이 주시고 주시겠다는 그 약속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야곱과 그 엄마가 한패가 되어가지고 아버지를 속여서 그 축복권을 따내었습니다.

그리고 축복권을 따낸 것으로, 하나님과 관련된 것으로 이미 자기는 수단과 방법과 관계없이 성공한 걸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맞아요. 하나님이 그 축복권을 따내는데 성공하게 했습니다. 근데 성공한 야곱을 하나님께서는 죽이십니다. 죽이고 이스라엘로 다시 태어나게 했습니다. 따라서 야곱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야곱이라고 어겼던, “나는 야곱이야. 야곱이 바로 나고 언약의 백성이 바로 나야. 나를 위해서 하나님이 언약 주셨어.” 라는, 그 나를 죽이는 거예요.

무엇으로 바뀌느냐, “이스라엘을 위해서 나라는 야곱이 만들어진 거야.” 라는 식으로 바꾸어 주시는 거예요. 그것을 신약으로 보면 “나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고 먹든지 마시든지 주의 일을 하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식으로 바꾸어지는 것과 똑같은 법칙입니다. 성령 받으셨습니까? 이러면 우리가 이제는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자격조차도 없어요.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말만 있으면 돼요. 강도가 되었습니까? 창기가 되었습니까? 주의 은혜입니다. 기생이 되었습니까? 다 주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할 것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 밖에 할 게 없어요.

괜히 지금 와서 요건 잘했다, 못했다 따진다는 것은 아직도 자기한테 미련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옛날에, 구원받기 전에 내가 있었던, 내가 포 뜨듯이 뜨고 난 뒤 석고에 묻어 있던 석고상 그대로 굳어진 것처럼.

그 모습이 나는 잘했을까? 이 정도로 훌륭했을까? 아, 저건 나쁜 짓이야? 아, 이건 옳은 짓이야? 아직도 선악적인 체계에서 따진다는 것이 자기한테 미련이 있다는 거예요. 이거는 아직도 자기한테 미련이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육신적인 생각입니다.

첨부파일 : 119강-YouTube강의(거짓)150618-이 근호 목사.hwp (18.0K), Down: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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