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된 모임 (마 18:19-20) 대전- 64강
허락된 모임 (마 18:19-20) 대전- 64강
이름 : 주향(IP:222.116.177.93)
허락된 모임 (마 18:19-20) 대전- 64강
이근호
2015년5월26 일 본문말씀: 마태복음18장19-20
(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 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8: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이게 뭐냐하면 한마디로‘허락’이에요. 교회 만들기에요. 주님의 교회 만들기는요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하자! 한다고 해서 교회가 되는 게 아니고 주님의 재가가 나야 합니다. 주님의 허락이 있어야 되요. 교회란 뭐냐‘허락’된 결과가 교회가 되야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허락은 맡을 수 없어요.
인간이 아무리 요청해도 허락이 안되지만 허락된 상태에서는 반드시 교회가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뭐냐하면 이거에요. 이 말씀, 예수님 말씀을 할 때 지금 예수님 여기 계시고 제자들이 함께 있을 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겐 보이거든요! “아! 저 말씀을 저 분이 저런 말을 하는구나!”보이는데,
만약에 예수님이 안 보이는 형태로 사라진다면 그때 이 말씀은 어떻게 성사되는가! 하는 그 문제가 남아요. 예수님이 어떤 자리를 점령하고 있다면 멀리 가시더라도 그 자리로 가면 되잖아요 그 대표적인 것이 뭐냐하면 구약의‘성전’입니다. 구약의 솔로몬 성전이라는 특정자리가 있어요. 모리아산에 성전이 있거든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받쳤던 터가 성전 터 입니다. 특정 지점이 있기 때문에 백성들이 뭔가 병이 났다, 죄 지었다, 또는 전쟁에 패배했다 그러면 쪼르르 가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면 되요. 그리고 출애굽기에 보면 모든 남자들은 1년에 3번씩 그곳 성전으로 나오라 했다 말이죠!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 세 차례 모든 남자들은 오게 되있어요
얼마나 편리 합니까? 이쪽에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듯 가면 되잖아요 누구 만나러? 하나님 만나러 와! 편리하네요 참! 편리 하지요! 그래서 예레미야 같은 경우에는 성전이 없어질 때에 얼마나 가슴 아픈지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아프다 표현 했어요. 예레미야 애가 2장19절에 보면 나와요. 창자고 간이고 다 떨어져 나갈 정도로 아프다했어요.
하나님이 모처럼 배려를 해 주셔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 특정 장소를 주셨는데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면서 자꾸 곁눈질 한거죠. 우상을 섬긴 거예요. 다른 신을 섬긴 거에요. 왜 백성들이 다른 신을 섬겼을까요? 왜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 말고 다른 신을 섬겼냐 그건 뭐냐하면 다른 신에겐 언약이 없습니다.
언약이 없다라는 것은 율법이 없다라는 말이에요. 십계명도 율법이 없으면 다른 신에겐 무엇이 있냐하면 본인의 욕망만 있으면 되요. 욕심만 있으면 되요. 그러면 욕심에 비례해서 아부를 하면 됩니다. 돈을 받치면 되요. 돈 놓고 돈 먹기에요. 많이 받치면 복 받고 적게 받치면 퇴짜 받고 ‘지성이면 감천이다’만 있으면 되요.
그런데 언약은 누구에게 매어 있어야 되야 하면 레위 지파에게 제사장에게 교육을 받아야 되는 겁니다. 이건 무슨 뜻입니까? 저건 무슨 뜻입니까? 이렇게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이건‘종속’을 의미 하거든요! 지배당하는 것, 권력에 지배당하는 것, 사람들은 남에게 관섭 받는 걸 싫어해요.
왜 관섭 받는 걸 싫어하냐 하면 사람들이 성격이 더러워서가 아니라 그 속에서 분풀이되는 욕망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엄마가 아이보고 “얘 너 잘못했지? 너 매맞아야 되겠어!”라고 할 때 애들은 굉장히 스트레스 받고 기분 나빠 하는 게 뭐냐하면 이거에요. 매를 맞는 게 싫은 게 아니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잘못한 것을 찾아내라고 하니까 그게 본인에겐 어처구니없는 짓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 무조건 잘못했다고 해버려요. 잘못해서가 아니라 우선 안 맞고 보자는 식으로 그렇게 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잘못 오해하고 있는 게 뭐냐하면 회개하는 겁니다. 회개, 반성을 내 쪽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반성의 내용을 내 쪽에서 만들기 때문에 회개, 반성이 전부다 엉터리입니다.
“잘못했습니다! 뭐? 잘못했습니다! 무조건 더 맞아야 되겠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뭐! 뭐!” 여자 친구가 친구남자에게 “오빠 잘못했지? 그래 잘못했다! 그럼 뭐 잘못했는데? 모른다! 모르니까 내말 건성으로 듣고 있잖아!”잘못했다고 해도 문제고 잘못 안 했다 해도 문제고 어떻게 할 줄 모르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왜 내 마음을 니가 몰라주느냐 하는 건데 그건 너무 무리한 요구에요. 인간은 텅텅 비어 있는 게 아닙니다. 상대방의 마음만 들어 있는 게 아니에요. 상대방이 어떤 소리를 해도 이걸 내식으로 전부 다 변절시켜 버리고 바꾸어 놓기 때문에 사람은 자기 잘못을 자기가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진정 내가 내 잘못을 아는 경우는 자기 생각 내부에서 본인이 그러리라고 생각한 일방적인 추상적인 거에요. 하나님께서 원하는 회개는 인간이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회개 했다 잘못했다라고 해서 용서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는 그 안에 화해함이 포함된 회개이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시는 회개 안에는 화해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회개를 줘요. 그런데 우리가 하는 회개는 매 안 맞으려는 이기주의적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선) 인간의 회개는 안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네가 잘못했지? 예! 잘못했습니다 그러면 화해할께!”이게 아니고
잘못했다고 하는 이야기 안엔 이미 뭐가 들어있냐 하면 이미 용서했기에 추후적으로 죄가 발생되는 거에요. 용서를 용서답게 하기 위해서 “내가 너한테 죄라는 것을 알려 줄께!”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따라서 주님이 죄를 지적할 때 우리는 신나해야 됩니다. 왜? 이미 용서받았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까 (이 집사님)이 음악회 초청장을 주셨죠! 당신은 여기에 참석할 자격이 된다라고 준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초청장을 들고 갔는데 욕하는 곳은 노무현 6주기 추도식 외에는 없습니다. 노건호, 노무현 아들이 욕하는 것 외에는 없어요. 주께서 결국 교회란 뭐라고 했습니까?
허락된 자리 그것을 구약의 성전을 의미하게 되면 이미 내쪽에서 성전이 있다고 여긴다면 하나님은 그런 걸 허락하지 않지요! 구약 때 성전이라 하는 것은 죄지었다! 그러면 찾아가면 되는 거예요. 예루살렘이 거기 있으니까 그래서 병들었다 하면 가서 기도하면 되고 죄 지었다 하면 양 가지고 1년에 세 번씩 들어가면 되니까
그런데 그 성전이 불타버렸습니다. 그러면 불탔다는 건 무엇을 의미 하겠어요? 이제는 내 쪽에서 양을 가지고 특정 장소에서 제사하는 것을 이제 하나님께서 허락한다는 거예요? 안 한다는 거에요?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 안한다는 거에요. 그런데 양을 잡아서 드리는 것이 인간의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인데 어떻게 할꺼에요?
아까 우상이야기 다시 합시다. 우상과 참된 신앙의 차이점은 우상은 뭐가 없다? 언약이 없다! 참된 신앙에는 언약이 있다라는 거에요. 그러면 성전이 있을 때 그 당시 사람들은 그걸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십일조 하라는 말은 십분의 일 내면 십일조 된다? 이건 전부 오해 입니다.
자기 주제 파악이 안되서 그래요. 내가 뭔지를 모르고 하나님한테 드릴만한 자격이 있다고 뭔가 착각 한거에요. 마치 할례를 행하면 거룩한 백성이 되는 줄 알고 오해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지상에 있는 성전을 가지고 화해를 했더라면 성전은 영원해야 되요. 성전은 불타면 안됩니다.
그런데 성전이 있다 해놓고 성전이 없어졌을 때 이것은 하나님의 책임일까요? 아니면 누구의 책임일까요?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장소가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것인데 그 만나는 장소마저 불타 사라졌다면 하나님께서 인간과 만나는 것에 있어서 누구 때문에 만남이 성사 안된다는 말입니까? 이거는 하나님 쪽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 인간 네 쪽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 하는 거에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상을 섬겼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어려운 게 뭐냐하면 우상이 뭐냐 하는 것은 그들은 우상을 섬기면서도 우상이 뭔지를 몰라요. 나중에 성전이 사라질 때 모든 것이 우상 섬긴 게 되요. 심지어 성전에 와서 한 것이 전부 우상 섬기게 된 것이 되요.
정답이 뭐냐 없어져야 해답이 나와요! 모든 게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붙잡을 수 있는 하나님을 섬긴 수 있는 모든 요소가 하나님 쪽에서 허락이 없어야 되요. 저리가! 손 떼 이렇게 해 줘야 비로소 우리 자신을 아는 기회를 부여 받게 되는 겁니다. 지금 교회가 무엇이냐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무엇이냐를 설명하면서 제가 지금 성전부터 출발하는 거에요.
성전이 있을 때는 그들은 오해했다. 성전이 없어졌다. 성전이 없어지고 난 뒤에 (스룹바벨 은 B.C 538년에 제1차로 유대인을 이끌고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 중단되었다가 그 후 (B.C 457년에 에스라와 함께 유대인등이 2차로 귀환) 에스라, 느헤미야 성전인데 이건 성전 재건하는 겁니다.(B.C 445년경 느헤미야가 3차 귀환자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성전재건)
재건하는데 에스라, 느헤미야가 성전을 재건하고 이게 다시 무너져요. 에스라 때는 뭘 하느냐 하면 율법을 낭독하고 율법을 지킵니다. 에스라, 느헤미야가 하는 일은 뭐냐 에스라, 느헤미야를 누가 도와주냐 하면 바사(페르시아)에서 도와줘요. 바사는 여호와를 모르는 이방나라인데 이방나라에는 언약이 없습니다.
율법도 없고 귀신을 섬기는 나라에요. 소위말해 마귀 섬기는 나라로 보면 되지요! 마귀 섬기는 나라에서 후원을 받아 성전을 짓습니다. 그러면 성전은 누가 져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느헤미야가 바사 나라의 임금을 통해서 모든 재정을 보장 받으면서 성전을 지어요. 일반 백성들이 율법을 받는 백성들이 새로 등장했습니다.
제사장도 생기고 이렇게 이방나라에서 얻은 여인들과 강제로 이혼시키고 십일조도 하게 하고 성전에서 제사 드리게 하고 특히 율법을 공부하게 하고 이렇게 했다는 말이죠! 그러면 이 중간에 보면 이방나라가 들어가는 거예요. 이스라엘이 망하면서 다 흩어졌습니다. 그러면서 바벨론, 바사 나라 이후 이방나라의 압제를 받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이방나라의 압제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언약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방나라의 압제를 받는 식으로 되면서 하나님의 언약이 진행에 차질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전혀 차질이 없습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은 좀 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그들이 실패하는 가운데 신앙생활이 되고 있습니까? 안되고 있습니까? 되고 있지요!
누가 도와줘서? 이방 나라가 도와줘서! 그러면 그들이 성전 안에서 제사를 드리고 율법을 지키고 하지만 이게 전부다 인간이 있으면 인간 주변에 누가 있습니까? 사단이 있고 사단의 도움을 받고 사단을 역사하게 하신 분이 누굽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죠! 그렇다면 사단이 있다는 말은 인간 쪽에서 하나님께 나아가서 신앙이 되고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마귀민족 마저도 하나님이 자체적으로 영광이 될 수 있도록 실패한 이들을 사용하고 있는 거지요! 이게 바로 언약 안에서의 신앙의 참 모습이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니고 안되는 신앙생활을 하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 신앙에 대해서는 포기를 해야 되지요?
이것을 더 줄이게 되면 신앙생활 하지 맙시다가 되버려요! 신앙생활 하십니까? 실패하세요! 전혀 신앙생활을 안하고 있는데 주변 환경이 나에게 신앙생활 하는 인간으로 생산해 내시는 겁니다. 참! 기가 찰 이야기지요? 누구 좋으라고! 나 좋으라고? NO! NO! 누구 좋으라고? 하나님 좋으라고~. 신앙생활이 되지도 않는 인간을 신앙생활 되는 쪽으로 주께서 인도해 주십니다.
이것이 믿어질 때 신앙이에요. 이게 바로 신앙이에요. 왜! 막 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이게 신앙이라고, 자! 그렇다면 이 사람들이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알았더라면 개축한 성전마저 타락되고 또 로마군, 짐승이 와서 사탄의, 짐승의 나라가 무산시켜 버려도 그 때는 신앙생활이 될까요? 안될까요? 되지요!
어차피 내 쪽에서 신앙생활 하는 게 아니니까! 방금 이것을 설명하면서 제가 아까 한 것이 허락 안에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회개 안에는 이미 화해의 손길이 담겨 있다는 그 원칙을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거에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려울테니까 말라기를 한번 봅시다.
(말4: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 리니
(말4:6)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 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데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