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우리들의 일그러진 목자 (초본)묻고답하기묻고답하기

우리들의 일그러진 목자 선택받은 영웅인가? 버림받는 어린양인가?지난 주에 예수님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제자들의 믿음 서열 다툼 속에 미약하기 짝이 없는 젖먹이를 앞장 세우셨음을 배웠습니다.오늘날도 마찬가지 돌이킬수 없기에 돌이키는 흉내인 개혁하자 라는 유행 속에 여전히 어린아이는 무시의 대상입니다. 참 재미있게도 어린아이 영웅은 인간의 역사 속에 없습니다. 아이가 영웅 될 수 조차도 없구요. 영웅이 될 만한 소질을 어릴적부터 내재한 장래적인 신화(위인 전기문)로써 다룰 뿐이지 어린아이 그 자체의 영웅은 잘 없습니다. 당연히 어린아이와 영웅은 전혀 성립이 불가능 하기 때문이지요. 미약하다는 그 자체가 아이를 두고 말합니다. (신 7: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결국 개혁은 영웅들이 펼치는 것이지, 예수님의 자녀가 펼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믿음은 개혁된 공동체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어린아이 같이 자기 것을 모두 손 놓고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두는 자. 낮아진 자. 낮추어진 자. 소 자. 작은 자. 섬기는 대상만으로 기뻐하는 자를 두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를 섬기기 위해 기꺼이 지옥 속으로 뛰어들어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이 돌이키는 본을 먼저 보여 주신 겁니다. 그 돌이킨 자들이 아벨의 족보요, 그 아벨의 족보를 방해하고 거부하고 핍박하고 힘과 정의를 행사하던 자들이 영웅의 세계를 이룬 족보가 가인의 족보입니다. 이 남자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싸움이 지금도 펼쳐지는 겁니다.교회를 통해서 큰 자를 꿈꾸는 영웅들이 교회 속에 빠글빠글 합니다. 그들의 뒤를 따르고자 한 수 배우겠다고 쫓는 자들이 많습니다. 목사 영웅, 장로 영웅, 교사 영웅, 그런 영웅들 속에 정작 교회를 섬기는 예수님은 교회개혁을 부르짖는 영웅들에 의해 짖밞히고 있습니다. 그 멸시받는 예수님이 큰 자(영웅)가 아닌, 소자 바로 우리의 죄악을 감당하실 화목제로 섬기신 어린양입니다. 하나님은 이 섬기는 어린양을 주(主)로 삼으셨습니다. (빌 2장 11절)이 주를 기다린 자들의 한결같고 일관성 있는 고백이 바로 이스라엘(믿는 자들에게)에게 핍박 받던 자들입니다. (아벨의 죽음, 한나의 기도, 다윗의 기도, 마리아의 기도, 우리야의 죽음, 입다의 딸 등등 일관성 있죠) (눅 1: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눅 1: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삼상 2:6-10)『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그가 그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으로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뢰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존경 받는 대접을 받는 종교영웅인 큰 자를 꿈꾸는 것이 아닌, 모든 피조물은 자기 집에서 안식을 누리며 자기 집(천국, 국가, 사회, 교회, 가정, 개인)을 이루며 살지만, 철저히 머리 둘 곳 없이 쉼을 잃고, 안식을 잃고, 심히 보시기에 좋았더라를 잃은 슬픔을 뒤로 하고 도리어 자기유익(믿음 서열 싸움)에 빠진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죽음)을 짊어지고자 머리 둘 곳 없는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 하십니다. 이런 소자, 낮아진 자, 섬기는 자 만이 높은 자를 낮추고, 낮은 자를 높이시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는 분(人子-인자의 살과 피를 먹지 않으면 영생은 없습니다) 입니다. 그 외침이 십자가 위에서 펼쳐집니다. 다 이루었다.(마 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 8: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오늘은 이 섬기는 분이 인간의 믿음 속에서 피어나는 종교영웅과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제가 지난 달에 우리 진희랑 트로이 라는 영화를 봤는데, 그 주인공 영웅의 대사 중에 이런 내용이 기억 납니다. 밤마다 자기가 죽인 영혼들이 자기를 찾아와서 같이 가자고 합니다. 한마디로 함께해요 죠. 그러나 그 함께해요 가 그 주인공에게는 영웅다운 모습으로 위풍당당하게 맞서서 웃으며 상대하지 못하고 오히려 공포로 다가옵니다. 그 부드럽게 속삭이는 그 아름다운 미소가, 꿈을 꾸며 잠자는 그 영웅에게는 공포의 손짓이며, 식은 땀을 줄줄 흐르게 하는 목을 조여오는 숨막힘입니다. 눈을 뜨면 다시 그 꿈을 뒤로하며 사람들의 영웅으로 다시 등극하며 꿈은 잊고 전쟁영웅의 위상을 펼칩니다.그 화면을 보니 작년에 우연히 들은 mbc 초대석 장원재입니다 라는 라디오 프로그램 내용이 그 순간 스쳐 지나갔습니다. 잠깐 진희에게도 말한 적 있는데요.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나오네요, 10.14일 출연자 방학기 작가와 나눈 대화들입니다. 다모폐인 이라는 신조어를 휴행시킨 만화가 인데. 그 작가가 나와서 하는 말이 어떤 무술영웅에 대해 잠깐 언급을 했는데. 지금보니 요즘 상영한다는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 씨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작품을 위해 최배달 씨와 작가가 직접 대화를 나눈 것을 말하던데요 그 때 말로는 이 사람이 무술 영웅이 되고자 최고의 무술 고수를 찾아다니면서 꺽고 꺽고 또 꺽고 승리를 위해 달려가는데, 밤마다 알 수 없는 고통이 자기를 늘 억누른다고 했습니다. 잠에서 일어나면 머리가 엄청나게 빠졌고. 실제로 머리가 많이 벗겨진 상태더군요. 또 무수히 몰려오는 도전자에 대한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꺽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없는 영웅되기를 위해 정상을 바라보며 오르는 시치프스의 신화처럼 영웅되기란 고독과 외로움과 친구 되어 정상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오른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청취하면서 저는 피식 하고 웃었습니다. 감히 말이지요. 사람들 앞에서는 위풍당당한 영웅, 그러나 뒤돌아 서서 홀로 섰을 때는 벌벌 떠는 초라한 겁쟁이. 죽기를 무서워 평생 죽음에 종노릇하는 노예. 그저 노예일 뿐인데 라고 말이죠, 피 차 일반인데. 폼에 죽고 폼에 사는 폼생폼사 허깨비 같은 허상에 사로 잡혔을 뿐인데 (히 2:15)즉 사람이란 누구든지 진정한 영웅이 없음을 늘 입모아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영웅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척박한 환경에 놓여졌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영웅되기 경쟁을 펼치는 겁니다. 또 대리만족인 영웅찾기입니다. 누가 누가 선택받았나? 이지, 누가 누가 잃어버린자인가? 절대아닙니다. 논쟁하는 제자들처럼 말이죠. 그런 생각으로 천국 까지 오염 시킬려고 쓰레기 잔뜩 모아서 살려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교회라는 인간의 믿음으로 쌓여진 탑인, 영웅의 기념비를 차지하기 위해 오늘도 밤 낮으로 믿음의 고수 되기에 피 눈물 땀 안가리고 흘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이 원하는 메시야 라는 영웅을 제시하지 않습니다(오히려 반대로 마귀가 3가지 메시아 조건을 제시했죠, 오늘날 우리처럼 말이죠). 초라한 어린아이를 내세우십니다. 그리고 대접받는 아이가 아니라, 늘 죽음으로 몰리는 부정적인 말만 골라서 하십니다. 연자맷돌이라는 참수 이야기, 등등 . 우리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받은 달란트 이 때 나오죠. 병아리 유치원이랑 같겠죠.제자 여러부~운. 여러부~운 지금 논쟁하시면 나빠요. 자 지금 선생님이 여기 여러분 앞에 어린아이를 중앙에 데리고 왔어요. 왜 일까요? 왜예요 선생니~임?. 여러분이 이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마음을 가지면 절대 싸우질 않을거예요. 알겠죠?. 네 선생니~임실제로 교회선교원 여선생들과 이 부분을 놓고 말씀을 나누니까 그들은 한결 같이 위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습니다.바로 이런 인간의 선생들과 다릅니다. 왜 다 알아먹는 순수해야 해요,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해요,라고 말하지 않고, 삐딱하게 꼭 엽기적인 말만 골라서 하는 것일까요? 이상하지 않습니까?(마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마 18:7)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 18: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마 18: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마 18: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 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이 분이 천국 몰고 온 분 맞습니까? 스승 맞나요? 천국 그렇게 증거하면 누가 좋아라 하고 저요 하고 믿겠습니다 라고 주 앞에 나아옵니까? 어린아이 내세웠다면 적어도 어린아이 같이 맑고 순하고 그런 좋은 단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데 하필이면 어떤 좋은 단어 다 냅뚜고, 도저히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엽기적인 단어를 그 상황에 천국을 소개한다고 말씀하시니, 제자들 죄를 책망하다 예수님 인간성 다 배려 놓겠지 않겠습니까? 교회에서 펼치는 전도가 오히려 기가막힌 꼬시는 마케팅 전도 전략 방법이지 예수님의 천국 전도는 빵점입니다 빵점.그 빵점짜리 천국 주인이 어떤 빵점의 행진을 펼치시는가 하면 99마리의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으시러 헤메고 있습니다. 그 찾으심이 갈급하실수록 만남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나간 탕자 돌아오길 저 먼 문밖에서 기다리는 아비의 마음입니다.빵점짜리 천국 주인은 99보다 1이 크게 보이는가 봅니다. 제가 지금 손가락 셈을 해봅니다 아무리 세워보아도 99가 나아 보입니다. 1은 왠지 싫습니다. 누구든 선택을 99에 할 겁니다. 1은 선택하고파도 손이 닿질 않습니다. 왠지 말이죠.왜 이렇게 일부러 작고 낮고 천한 쪽으로만 천국을 증거하시는 걸까요? 구약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드온 용사를 통해 특공대 선발 할 때 그 기준이 작은 쪽으로 일부러 뽑듯이. 왜 이럴까요? 우리는 의아해 하지만 예수님은 늘 한결같습니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말이지요. 바로 구약의 천국도 신약의 천국도 자기 백성은 낮은자 목이 꺽어진자. 허리가 뿌셔뿌셔 뿌셔진자. 꺽여진 뼈. 가장 낮은 수 적은 수 가 바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이 일관성을 아무리 인간의 믿음으로 뻥튀기를 해서 부풀려도 하나님은 뻥튀긴 이스라엘 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만 찾아 헤매이십니다. 그 잃어버림은 예수님이 보여줄 모습이기에 한 마리 양이야 말로 주님의 셰계와 일치하는 겁니다. 뻥튀기가 된 오늘날 99 마리의 복음주의 개혁교회보다, 한 마리의 부모 잃고 헤메는 어린 양, 죽음의 사막에 내던져 진 광야교회를 찾으시는 겁니다.이 예수님이 아직도 영웅으로 보이십니까? 제가 수많은 교회 다녀봐도, 이런 예수님의 생각과 일치된 교회, 예수님과 한 몸 된 교회 못봤습니다. 다 개혁이라는 뻥튀기로 99마리 되고파 눈에 불을 키고 개혁을 부르짖으니, 예수님이야 말로 이런 대열 속에 끼이질 않는 것을 보면 참으로 빵점짜리 천국주인입니다.또 이 빵점 천국주인은 이런 헤메고 헤매서 찾고 찾고 찾아서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지키기 위해 늑대들에게 찢김을 당하십니다. 뭐 대단한 한 마리 양 찾았다고, 이러는게 아니야 진짜 아닙니다. 그렇게 자기 목숨 파리 목숨처럼 아끼질 않습니까? 아 저는 이 부분이 너무 화납니다. 제가 예수님을 너무 사랑해서 이런 생각을 하는게 아닙니다. 왜 우리 생각과 이처럼 다르냐 라는 것에서 답답합니다. 제가 몇몇 목사들이랑 사귐을 가져보니 이런 결론입니다. 역쉬 인간은 인간이고 예수님은 늘 이용꺼리입니다. 개혁교회 목사든 복음주의 목사든 돈 권력 밖에 모르는 목사든 독같아요 똑같아 그 속에서 나도 똑같은 것을 보았는데 문제는 예수님만 다르다는 겁니다. 왜 인간의 흐름에 왜 전혀 맞지 않을까요? 인간의 믿음이 보통 믿음입니까? 대의를 위해서 소를 희생 시키는 영웅적인 호걸들 아닙니까?현대인의 선함이란 뒷감당 안하면 선함이 될 수 없습니다. 양을 지키기 위해 목숨 버리는 것 까지는 좋은데 다시 나타날 늑대들에게는 자기 양을 어떻게 지키느냐 그러니 그는 비합리적인 목자다 선한 목자는커녕 자기 밖에 모르는 독선적인 목자다. 라는 주장입니다. 혼자 십자가 지고 2000년 전에 죽었는 것 까지는 좋은데 왜 지금 나타나서 십자가를 들이내미느냐 그래서 십자가 보다 천국을 앞장세우며 천국 마케팅 전략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는 것입니다. 현대 교회의 운명이 달린 사활건 천국 마케팅은 A/S가 확실해야 합니다. 그 사랑이 끊기고 끊기고 끊기면 짜증납니다. 그래서 연결되어서 쭈욱 내려온 정통을 찾는 겁니다. 그래야 마케팅 전략이 성공하니까 역사성을 반드시 가미시키는 겁니다. 우리가 정통이다는 것이죠. 그래서 선함도 없고 목자도 없습니다. 정통만이 역사 의식만이 자신들을 지켜주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선한 목자인 빵점 천국 주인은 무모하게 자기 양 지킬려고 늑대들에게 무참히 찢겨버립니다. 자기 목숨을 버렸습니다. 이제 선한 목자는 눈에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인형을 만들고 동상을 만들고 기념비를 만들어 버립니다. 자기 양 때문에 죽은 선한 목자는 거짓 양들에 의해 우상이 되고 기념비가 되었고, 멋진 대박 광고 모델, 흥행 배우인 캐릭터 일뿐입니다.자 여기서 우리 기억합시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그 선한 목자의 지혜가 오히려 늑대 뿐만 아니라 거짓 양 까지 밝혀 버립니다.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을 있는 그대로, 그 모습 그대로 찾으셧습니다. 그 모습은 잃어버린 모습을 간직한 모습이었습니다. 생명이 없어 출생시킬수 없는 죽은 태(불임여성-사라), 죽은자와 방불된(히 11:12). 죽은 자로 여김 받은(요셉) 모습인데, 그 죽음을(시 88편) 그모습 그대로 받아주셨습니다. 거짓 양들은 예수님도 미화하며 그모습 그대로 증거치 않고 포장했고, 자신들도 교회를 통해 꾸미기 바쁩니다. 그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와 오는 자 없습니다. 믿음을 포장하며 교회 다가가야 교회사람 눈치 안보는 그런 악한 세대가 된 겁니다. 교회 사람이 너무나 두렵기에 그런 천국을 증거하는 겁니다.그 모습 그대로 받아주던 목자는 자신 또한 죽음에 잃어버림을 받습니다. 버림을 철저하게 받습니다. 그리고 골라냅니다. 이 자기 죽음을 자기 부인을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시면서 99마리 양과 한 마리 잃어버린 양 비유와, 자기 양을 위해 목숨 버리는 선한 목자의 비유를 통해 천국을 엽기적으로 소개하십니다. 천국을 있는 그대로 증거합니다. 그러나 삯꾼은 있는 그대로 천국을 증거치 않고 사람들의 천국 증거는 예수님과 완전히 다르다는 겁니다. 완전 반대입니다. 구약의 참선지자들과 예수님의 증거와 일치합니다. 그야말로 엽기적인 증거입니다. 그런데 유독 현대교회만은 천국이 있는 그대로 증거되질 않고 온갖 달콤한 것만 재포장되어 퍼지고 있습니다.인간의 일 곧 사람의 일의 목표는 99마리가 목표요. 커다란 천국으로 세상 정복을 꿈꿉니다.(마귀의 3가지 선물이랑 딱 맞죠. 오늘날 목사들이 이 3가지 선물 제시랑 너무너무 일치 합니다) 믿음의 영웅들이 차지하는 나라요. 그 속에서 한 번 서열은 영원한 서열로 자리잡아 이 땅의 경쟁 마당에서 마음껏 믿음을 과시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목사들이 교인들을 다루는 모습과 일치 하지 않나요? 열심히 교인들을 정신없이 뺑뺑이 돌려야 교회가 돌아가니깐요. 이제는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뺑뺑이 돌려야 유행에 뒤쳐지지 않는 교회가 되는 겁니다. 결국 신이 되기 위해 신 바로 밑으로 들어가 신 흉내를 내는 겁니다. 하만처럼 말이죠.바로 그 속에서 이상하게만큼 역길대로 역겨서 원치않는 잃어버림을 격게 하십니다. 철저한 잃어버림 속에서 소자를 찾습니다. 자기 양을 영웅 천국에서 찾지 않고, 축복의 산에서 찾지 않고, 저주의 산 해골의 언덕 지옥 속에서, 죽음의 공포 그 자체인 십자가에서 찾으십니다. 물 위의 기적 전문가로써 자기 양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같이 물 속에 잠겨서, 같이 죽음 속으로 들어가시고, 같이 버림받는 자처럼 됩니다. 이것이 아가서 내용인데 그런 같이함이 죽음보다 강하더라 라는 겁니다. 이 보잘 것 없는 소자를 위해 기꺼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신이다는 겁니다. 전혀 신 답지 않는 신. 우리가 늘 원하는 신 개념을 다 깨뜨리며 그 신은 종교영웅들 속애서 소자를 찾습니다. 그 소자를 영접하고 곧 한 몸을 이루십니다. 그 소자를 영접하기 위해 다 이루기 까지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인자는 철저히 버림을 받는 겁니다.(막 10:44-4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예수님은 천국을 증거하시면서 동시에 인자를 언급 하십니다. 인자가 몰고다니는 천국이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이 인자가 낫설은 존재입니다. 천국만 챙기면 되었지 인자는 생각 할 필요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 천국의 주인이 바로 인자인데 그 인자의 이 땅에서 격는 일로 인해 모든 천국에 대한 망상들을 이 인자가 직접 깨뜨리겠다는 겁니다. 이 인자가 아니면 절대 그 망상의 천국을 깨뜨릴자 없기에 제자들은 인자의 천국과 자기의 천국이 늘 충돌을 일으키는 겁니다. 오로지 예수님 만이 인자와 천국을 일치화 시킵니다. 그 인자의 손에 의해 천국의 기준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어쩌지요 인자는 이 땅에서 딱 한가지 일만 했습니다. 다른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들림을 받은 것 뿐입니다. 이게 천국인데 아무리 봐도 천국 같아 보이질 않으니 말이죠.(요 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 3: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인자란 역사가 풀 수 없습니다. 역사 속에 있는 인간이 도저히 다룰 수 없는 인물입니다. 역사는 모든 인간을 다스려왔고, 길들여 왔고, 그 속에서 벗어나질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인자는 역사가 아무리 요리 할려고 찌지고 뽁고 삶아도 풀리지가 않는 패스워드 그 자체입니다. 수 많은 믿음의 영웅들이 이 패쓰워드(문, 열쇠)를 통과 하고자 머리로 마음으로 힘과 권력으로 심지어 믿음으로 주물럭 주물럭 만지작 거려도 그 패쓰워드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자기 유익에 실용적이지 못하기에 짜증나서 버립니다. 그래서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됩니다. 아무 쓸모양이 없고, 쓰잘대기 없으며, 무용지물이며, 귀히 여길 수 조차 없을 정도로 흠모할 모양새가 없습니다. 너무 너무 천하기 짝이 없어서 같이 어울리면 똑같이 취급받는 기피대상 1호입니다. 소자, 잃어버림, 작은자, 낮은자 섬기는자도 결국 인자되신 예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겁니다.(시 118:22)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벧전 2:6)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벧전 2: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이상하지요? 우리는 너무너무 믿음이 귀똥차게 좋아서, 예수 라고 하면 끔뻑 넘어가는데. 구원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예수께 걸었는데 왜 건축자의 버린 돌이 될까요? 이상하잖아요? 나만 그런가?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일이 절대 없을 거라고 합니다(눅20:16) 그러나 예수님은 반드시 돌출 시키십니다. 이 돌 위에 사람이 떨어져 깨어지든지, 아니면 사람 위에 돌이 떨어져 가루가 되던지 모조리 다 박살내어 버리더라는 겁니다. 그 심판 속에서 구원을 행하시는 분이 인자입니다.인자 만이 이 기쁜 소식을 증거합니다.(롬 7:24- 8: 2, 사 6장) 사람들이 증거하는 천국은 다 가짜였고, 마귀가 제시한 천국이었습니다.이것이 복음입니다. 기쁜 소식입니다. 묵시로써 역사를 심판 하는 자의 출현입니다. 그렇기에 인자는 이 역사 속에서 철저히 잃어버림바 되고, 싫어버린 바 됩니다. 인자야 말로 그런 잃어버린 바 되는 경험을 가진, 십자가의 버림 받는 어린양입니다. 그 어린양이 심판 주로 오는 겁니다. 고난 받는 인자 (사 53장)선함이란 인간의 윤리로 알아내고 눈치챈 선함이 아닌 바로 그런 눈치 챈 자를 심판하러 왔다는 것이 기쁜 소식이요 선함이다는 겁니다.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립니다. 죽으면 무슨 소용이냐 라고 도저히 현대인 아니 어떤 시대의 인간도 믿겨지지 않는 것만 몰고온 인자는 자신의 선함을 심판 속에 저주 속에 죽음 속에 바로 십자가 속에 담아 두었습니다.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을 누리기 위해서 그 사랑을 주기 위해서 직접 죽음 속에 뛰어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 저주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하십니다. 그 속에만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봐도 사랑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그래서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 그 심판 속으로 뛰어듭니다.(고전 15:31) 사랑은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예수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 하기 위해 교리를 동원하고 신학을 동원하고 믿음과 교회를 동원하고 선함을 동원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독생자이신 인자는 선택은커녕 이중 선택 삼중 선택은커녕 반대로 이중 삼중 버림받는 돌맹이, 건축자의 버린 돌이 되셧습니다. 인간의 기술은 딱 하나요 그 집 짖는 건축 기술자에게 버림 받는 돌은 선택의 망상 속에서 사로 잡힌 우리의 허물을 모두 심판하고자 이 땅에서 머리 둘 곳 없이 철저히 버림받음과 동시에 철저히 섬기십니다. 자기 선택(구원,천국)밖에 모르는 우리의 연약함을 짊어지고, 그 저주의 산으로 올라가셔서 다 이루셨습니다. 머릿돌이 되신 이 넉넉한 인자의 승리를 같이 누리도록 긍휼을 베푸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3,735건 중 127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585 묻고답하기 사도와 무당을 듣고.. 고린도후서 최고관리자 04-09-23
584 묻고답하기 Re..김세윤교수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9-22
583 묻고답하기 Re.. 교회 되세요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9-21
582 묻고답하기 Re.. 언어란,허구인가요?(허상.)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9-21
581 묻고답하기 Re..간절히 기도합니다.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9-14
580 묻고답하기 간절히 기도합니다. - 최고관리자 04-09-14
579 묻고답하기 뽕 나무 습격 사건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04-09-13
578 묻고답하기 지옥 속을 뚫고 시편 최고관리자 04-09-11
577 묻고답하기 Re.. "극락이" 글과 "강도야" 글 사이에 이 내용이 있습니다.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9-10
576 묻고답하기 매정한 복음 이사야 최고관리자 04-09-10
575 묻고답하기 Re..예배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9-09
574 묻고답하기 부활신앙의 두 모습 2 - 최고관리자 04-09-04
573 묻고답하기 Re..기도의 응답 설교를 듣고..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9-02
572 묻고답하기 기도의 응답 설교를 듣고.. 골로새서 최고관리자 04-09-02
571 묻고답하기 Re..불의한 청지기 비유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8-31
570 묻고답하기 도대체..그간 믿어온 것에 대한 나의 헛됨이... - 최고관리자 04-08-30
569 묻고답하기 그 이유가 있다면 - 최고관리자 04-08-29
열람 ➜ 묻고답하기 Re..우리들의 일그러진 목자 (초본)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8-29
567 묻고답하기 부활신앙의 두 모습 1 - 최고관리자 04-08-28
566 묻고답하기 고린도전서 3장10~15절에 관한 질문입니다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04-08-26
565 묻고답하기 Re..민규네 잘 있습니다....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8-26
564 묻고답하기 Re..목사님. 소나무입니다.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8-24
563 묻고답하기 목사님. 소나무입니다. - 최고관리자 04-08-24
562 묻고답하기 Re..조규현 장로님? 2주전에 들려준 이야기 다시 한번 더 해주세요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8-24
561 묻고답하기 Re..몇가지 질문 가지고 왔습니다.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8-23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