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50605b 울산강의-출애굽기 34장 : 언약 확인하기자유게시판출애굽기

20150605b 울산강의-출애굽기 34장 : 언약 확인하기

이름 : 한윤범(IP:14.39.134.87)

20150605b 울산강의-출애굽기 34장 : 언약 확인하기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합시다.

무교병이라 하는데 이름도 희한하죠. 여기 병이란 떡을 이야기하고 무는 없을 무, 교는 이스트에요. 효소, 누룩. 누룩이 없는 떡을 먹는 일주일, 이게 바로 무교절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지금 약속의 땅에서 농사가 잘 됐다. 잘 된 덕이 뭐냐? 누룩 안 들은 떡을 먹었기 때문이다. 이걸 앞뒤로 연결시켜라. 연결이 잘 안 되지요.

보통 농사가 잘 됐다는 것은 열심히 밭을 갈았다. 씨를 제대로 뿌렸다. 이렇게 저렇게 했다고 하는데 약속의 땅은 천국의 모형, 모델이라고 보면 돼요. 천국에서 인간이 열심히 한다고 더욱더 예쁘장한 천국 됩니까? 안 되지요. 씨 뿌리는 비유에서 옥토가 열매 맺었잖아요. 그 많은 열매, 누가 그렇게 한 겁니까? 씨 뿌리는 농부가 주님이잖아요. 말씀을 뿌리는 분이 누굽니까? 주님이죠. 그러면 우리는 자라남을 당했잖아요. 알곡으로. 알곡의 특징이 뭐냐 하면, 내가 한 게 없네. 이게 알곡이잖아요. 그런데 가라지의 특징은, 왜 내가 수고한 대로 보상 안 해주십니까? 이게 가라지에요.

제가 일방적으로 우기는 게 아니고 포도원 비유에 나와요. 아침에 열 시 에 온 사람과 오후 다섯 시에 온 사람의 차이가 뭐냐 하면, 열 시에 왔기 때문에 저 사람보다 노동이 많기 때문에 저 사람이 한 데나리온 받는다면, 나는 여섯 데나리온 받는 게 합당하다는 게 바로 먼저 온 사람의 특징이거든요. 그래서 천국은 뭐냐 하면, 바로 먼저 온 자를 나중 되게 만들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게 만듦으로써 천국이란 일체 인간의 애씀과 노력이나 보탬이 필요 없이 유지되는 나라,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 주께서 포도원 비유를 이야기하신 거예요. 그 포도원 비유에 앞선 모델이 여기 약속의 땅이고.

약속의 땅에서 가을 추수의 대표적인 것이 포도, 무화과. 하여튼 포도 농사가 잘 됐습니다. 그런데 잘 된 이유가 일월 달에 그러니까 봄에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먹었기 때문에 농사가 잘 됐다고 할 때에 주변에 있는 이방민족들의 그걸 납득을 하겠습니까? 미쳤나. 무슨 엉뚱한 소릴 하고 있어.

그럼 말을 다시 해봅시다. 내가 한 평생 이기주의로 살았고 죄만 짓고 돈 버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런 내 죄가 예수님의 피 흘림으로 용서가 되었다. 이게 연결이 돼요, 안 돼요? 그럼 네가 착한 건데. 착한 것 없어. 네가 전에 남한테 희생하고. 희생하는 도중에 내 자랑질 하기 바빴어. 전에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남 시기하고 미워하고 막 튀어나왔어. 남들 보기에 봉사로 보이지만 봉사하는 순간순간 내 죄가 발산되는 거죠. 전에 성가대 소프라노? 소프라노 하면서 내 목소리 좋다고 자랑질 했어. 너는 모르지, 주님은 알아.

내가 어떤 짓을 해도 죄가 쏟아지는 순간순간들이에요. 행동한다는 것은 죄의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어떤 짓을 해도 그게 죄가 쏟아지게 돼있어요. 시기와 질투와 미움과. 그리고 기쁨이라도 누구 기쁨? 자기 잘된 기쁨. 그 기쁨 속에 자기 원수가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이 거꾸러질 때, 메르사가 걸려라. 지가 아주 미워하는 연예인이 나오면, 저건 빨리 이혼도 안 하나. 이런 것 있잖아요.

매순간에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안 쏟아지는 때가 없고 매 순간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순간이 없어요. 야고보서에 보세요.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과 원수 되지요. 원수 안 되는 순간이 없다니까. 원수 안 되려고 노력이고 뭐고 원수 아닌 순간이 없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천국을 가게 됐다고 하니까 그걸 누가 이해하겠어요, 납득이 되겠어요.

지금도 저한테 메일 오고 전화하는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 많이 하는데 뭐든지 죄가 되면, 목사님 설교 참 어렵습니다. 뭘 해도 죄가 된다니 너무 어렵습니다. 속으로 이야기하죠. 그럼 죄 아니에요? 본인이 죄 아니라고 하는 것은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그래요. 성경을 보면 안 걸리는 구석이 없는데. 범사에 감사하라. 그러면 불평하면 뭐가 돼요? 범사에 감사하라, 위반 되죠. 그것도 죄가 되는데.

야고보서 4장에 뭐라고 돼있던가요? 네가 어느 도시에 가서 일한다고 하지 말라. 네가 주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 하리라. 그런데 우리가 내일 일 계획할 때 주께서 내일 살려줄까? 이렇게 생각합니까? 당연히 살아야지. 왜? 오늘 살아있으니까. 주의 뜻이면 살고 주의 뜻이 아니면 죽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죄 짓는 거예요.

가수가 녹음해서 판 내면서 기획사 사장이, 이번에 아무리 못해도 십만 장 나갑니다. 가수가, 주의 뜻이면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죽을 것 같으면 녹음은 왜 했어요, 차라리 지금 죽지. 대번에 이렇게 나올 거란 말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 언약이 지배하는 환경입니다. 그러면 언약을 모르게 되면 누가 지배해요? 아무도 지배 안 하지요. 하루하루 사는 것은, 내 운명은, 내 팔자는 내가 결단 내리고 내가 결심해서 내 역사, 내 인생, 내 팔자는 누가 개척하고 누가 이끈다? 내가 이끈다. 이걸 언약에서는 그게 바로 불순종이 역사하는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평가되는 거예요. 주님 보시기에.

가락교회에서도 그런 이야기했습니다만 예수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거든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않지만 나를 미워한다. 이유가 뭐냐? 예수님이 먼저 시비 걸었잖아요. 세상이 악하다고 했기 때문에 세상이 그 소리 듣고 예수를 미워하게 돼있어요.

주님과 동행한다는데 그러면 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천국은 어디 있느냐와 같은 질문이거든요. 예수님 계신 곳이 천국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천국은 어디 있습니까? 바로 죽음 안에 있지요. 죽음 안에 천국이 있기 때문에 천국은 가고 싶어도 실제로 가고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왜? 죽음 안에 있기 때문에 사람은 계속 이대로 살려고 하지 죽으려고 안 하거든요. 그런데 죽지 아니하면 천국에 갈 수 없어요. 죽음 안에 천국이 있기 때문에.

인생을 살면서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게 있어요. 실패입니다. 인생 실패하는 거예요. 그런데 천국은 어디 있느냐? 바로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실패의 자리가 천국의 자리입니다. 그 말은 아무도 자진해서 천국 못 온다는 거죠. 다른 말로 하면 아무도 자진해서 언약을 못 지킨다. 이걸 또 다른 말로 하면, 정말 구원받은 사람은 그 사람의 모든 인생을 성공적인 인생으로 바꾸는 게 아니고 실패의 인생으로 바꿔주시는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전에는 감히 그 길을 들어서지 못한 자들이 성령을 받고 난 뒤에는 실패가 곧 성공인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내 인생 실패했네.

그렇다면 무교병이란 누룩 없는 떡을 먹는 그 사실이 어떻게 우리 축복이 되고 죄 용서가 되고 의인과 관련돼있는가? 무교병을 처음에 실시된 것이 출애굽기 12장에 보면, 바로 유월절에 무교병을 먹었어요. 그 당시에 모세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해결을 달아줬습니다. 그 떡이 무슨 떡이냐 하면, 고난의 떡이라고 했거든요. 그렇다면 고난의 떡을 먹는다는 말은 떡을 먹는 동시에 우리 밖에 있는 고난이 우리 안에 들어온다는 것과 같은 뜻이 되는 겁니다. 고난 없는 자리가 살 길이 아니고 고난이 있는 딱딱한 떡. 그러니까 시늉이 아니에요. 누룩이 없어서 폭신폭신하지 않고 딱딱하다고요. 그걸 고난 떡이라 하는데 그 고난이 있는 그 장소가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고 해서 그 떡을 먹는 거예요. 제 말이 맞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 고난의 떡을 먹으면 사나? 이렇게 오해하는 거예요. 고난의 떡을 먹는 행위로 사는 게 아니고 고난의 떡을 먹는 행위를 통해서 내가 일구어나가는 내가 뭔가 행위 해서 기대할 수 있는 것 말고, 그 고난이라는 내가 기피하고 싶은 그 안에 있는 어떤 분의 행위로 말미암아 내가 사는 그것을 무교절 언약을 통해서 확인하는 거예요. 그걸 고백해내는 거예요.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다 고난을 기피하지요. 그러나 기피하는 고난이 우리를 오히려 드디어 살린다는 뜻이에요.

그걸 신약에 적용하면 예수님에 대해서 우리는 예수님을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봤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기피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님과 가까이 한다는 것은 곧 권세자에게 옥에 갇히고 목 베임을 당하는 상황이 돼버려요. 오죽했으면 베드로가 사람들 있는데서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겠어요. 하고 싶어서 했겠어요? 죽는 게 무서워서 했겠지요. 베드로도 자기 행위로써는 주님 앞에 갈 수 없어요.

제가 오늘 강의하면서 제일 먼저 언급한 것을 다시 언급할게요. 어떻게 십자가 피가 내 죄를 씻어주느냐? 지금까지 그 문제를 이야기한 겁니다. 그 문제를 하면서 오늘 구약 본문을 봤어요. 피로 용서받는다는 자체가 인간은 알 수 없고 하나님과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언약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하나님 사이만 아는 약속이에요.

따라서 그 약속의 내막이 그냥 하나님만 알면 되는데 그 약속이 캡슐에 담겨 있다가 캡슐이 터져버려요. 감기약 중에 365가지가 알맹이가 들어있다고 선전하는데 그 알맹이가 터지니까 언약이 터지니까 언약이 어디로 쏟아집니까? 언약이 우리한테 쏟아지겠지요. 쏟아지면 구원된 사람이에요. 쏟아진 사람들이 누구냐?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쏟아지는 내용들이 그게 바로 무교절이고 유월절이고 수장절이고 맥추절이고 이런 감기약 알맹이들이 쏟아지는 거예요. 월삭이고 절기고 초막절이고 나팔절이고 율법이 막 쏟아져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사태를 파악 못했기 때문에 저것 지키면 구원받겠구나. 이렇게 나온 거예요. 지금 주님께서는 이미 홍해를 건너게 하셔서 율법을 줬는데 그들은 뭐냐? 새삼스럽게 저것 지키면 자기 원하는 것, 자기 육신이 잘 되는 것, 평소에 애굽에서 하던 생각, 내 힘으로 내 인생을 뜯어고쳐보자는 그 버릇을 달성하는데 율법을 동원시킨 겁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잘못이 뭐냐 하면, 율법을 통해서 자유를 얻으려고 한 그것이 잘못이에요. 율법이 자유케 하는 율법은 맞아요. 야고보서에 나오잖아요. 그런데 율법을 통해서 자유를 얻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의 방식은 율법을 지키게 되면 지킨 만큼 마일리지가 쌓이겠지요. 그 마일리지만큼 어떤 고난이 있느냐 하면, 죄를 여유 있게 지을 수 있는 여지도 함께 늘어나는 겁니다.

착한 일 많이 하고 공부 되게 잘하고 시험 너무 잘 치게 되면, 엄마 오늘 컴퓨터게임해도 되지? 착한 일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쿠폰이 남아돌아. 나쁜 짓에 좀 써먹어도 남아있으니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돌아서는 그걸 유대인들은 자유라고 한 거예요.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 돌아가는 것이 맞아줄 때 그걸 자유라고 본 겁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난 뒤에 잠깐의 꿀맛 같은 휴식 시간 같은 것.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그런 생각해보세요. 그런 사고방식으로 천국 가겠어요? 천국 가게 되면 질색합니다. 밤낮없이 주 앞에 찬송하는데 나중에 목이 쉬어서 쉬었다 합시다. 찬송도 처음에 일주일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 동네 나한테 전혀 취향에 안 맞네. 억지로 해서 안 되네. 그런 사람은 사전에 복음을 통해서 다 떨어져 나가게 돼있어요. 서울에 어떤 개척 교회하는 분이 오셨는데 그런 이야기했어요. 복음 전한다는데 24명 있다는데 일년 뒤에 몇 명 남는지 봅시다. 복음 전해보세요. 다 떨어져나가지.

무교절은 고난을 알려주는 네가 기피하는 것, 내가 수용해서 구원했다는 걸 알려주는 십자가 같은 효과, 그게 바로 무교절입니다. 그 날은 말랑말랑한 떡을 먹는 날이 아니에요. 말랑말랑한 떡은 자기 입맛에 맞아. 먹기 좋아요. 더 먹고 싶어. 뱃살 나와. 살쪄, 얼굴 좋아. 빵 먹고 살 쪘네. 자기가 기대한 거예요. 그러나 고난 받기 위해서 빵 먹으세. 이건 무교절의 본 취지입니다. 이런 인간 없습니다. 무교절 억지로 지키면서도 사실은 구원은 무교절 지켜서 받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죄를 미리 용서하신 분에 의해서 그들이 구원받지요. 다 구원받는다는 뜻은 아니에요. 택한 백성만 구원받지요.

18절에, “너는 무교절을 지키되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 그 기한에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으로 이는 네가 아빕월에 애굽에서 나왔음이니라”라고 했는데 “무릇 초태생은 다 내 것이며 무릇 네 가축의 수컷 처음 난 우양도 그러하며 나귀의 첫 새끼는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장자는 다 대속할지며 빈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 말지니라”

이건 전부 주께서 강탈해 가시는 거죠. 그리고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하나면 모르지만 자식이 둘 있을 때 맏이가 좋던가요, 둘째가 좋던가요? 느낌 상, 느낌 아니까. 책임을 누구한테 지웁니까? 누가 잘못했을 때 더 나무라지요? 자식마다 다르겠지요. 맏이는 다르답니다. 맏이가 부모 생각하는 게 아무래도 다르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먼저 태어난 만큼 동생보다 선배잖아요. 아버지, 어머니와의 관계가 그만큼 기간이 기니까 기억을 더 소유하고 있지요. 동생 없을 때 자기와 부모만 있을 때 이걸 한 가족으로 본 거예요. 동생이 태어나게 되면 기존의 가족, 나와 부모와 있는 가족에 덤으로 하나 동생이 태어난 것뿐이지 동생까지 당연히 있어야 된다는 생각은 안 갖고 있습니다. 인간의 시간적 한계가 그래요. 원래 있는 것에 밥 하나 추가한 거예요. 아줌마, 반찬 더 주세요. 이것과 똑같은 거예요.

그런데 그 장자를 빼낸다는 말은 뭔 뜻이냐 하면,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는 거죠. 장자를 빼내면 마치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너는 죽고 나는 살자는 식으로 바친 게 아니에요. 이삭을 잡을 때 그 심경이 어떻겠습니까? 차라리 이삭 대신에 아버지가 죽고 싶어요. 장자는 내 것이라는 말은, 장자만 내 것이 아니고 온 가족이 주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네 가족의 미래는 네가 책임지고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걱정할 사람은 따로 있고 계획할 사람도 따로 있다. 그분이 누구냐? 하나님이다.

다시 말해서 너희들은 언약 만들기에 동원된 일꾼들이지 너희끼리 아무리 아이디어 내봐야 언약은 안 만들어져요. 유월절, 무교절 지켜봐야 언약 안 됩니다. 무교절을 제시하고 유월절을 제시하고 초막절을 제시한 그분에 의해서 언약이 이뤄지잖아요. 하나님은 우리의 협조가 필요한 게 아니에요. 우리 아이디어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이미 일 다 해놓고 확인 차원이라니까. 언약을 확인한다니까요.

주님께서 확인하는 차원에서 그들의 것을 바치라는 말은 빼앗는 게 아니고 사실은 뜯어내는 거예요. 뜯어낸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복권을 동전으로 긁는 것 있지요. 처음 보면 축 당첨 해놨어요. 그건 폼이고 동전으로 긁어보란 말이죠. 축 당첨인지 말만 그런지. 동전으로 긁어보면 한 병 더 나올 수 있는 문제거든요.

그런데 주님께서 내 인생을 뜯어내는 거예요. 껍데기를 뜯어내니까 뜯어내면 낼수록 주님이 나오네. 결국 주님이 몸체고 우리는 나라는 이름의 아담의 껍데기로 살포시 껍질 부분으로 덮여져 있던 거죠. 결국은 하나님이 내 아들 있는지 동전으로 긁어본 거죠. 이걸 구약에서는 네 속에 내 언약 잘 있는지 긁어보는 거예요. 긁어보는데 이스라엘은 난리 났어. “주여, 내 아들 데려가면 안 됩니다. 농사짓는데 얼마나 땀 흘렸는데 10% 내라고 하시면 저는 못 삽니다. 강제로 원천징수가 어디 있습니까.” 이게 뭐냐 하면, 내 인생 내가 살겠다는데 왜 도움은 안 주고 뜯어 가십니까? 조폭도 아니고 양아치도 아니고 뜯어 가느냐고 나오는 거예요. 우린 안 그런 줄 압니까? 마찬가지인데.

욥이란 가정이 있었는데 어떤 도적들이 와서 종들을 죽이고 그 다음에 태풍 불어서 천막이 무너져서 아들이 다 죽었어요. 그리고 양들 다 빼앗아가고. 그때 욥이 뭐라고 했습니까? 동전으로 긁는 분도 주님이요. 주신 자도 하나님이요, 복권 주신 분도 하나님이고 복권 위에 동전으로 긁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천상 회의할 때 사탄이 옆에 있었거든요. 하나님이 실명을 거론했습니다. 욥을 보았느뇨? 욥의 믿음이 대단하지? 빼앗아 가도 믿음이 변치 않았잖아. 도리어 찬양했잖아. 사탄의 임무가 있어요. 고소하는 거예요. 몸이 안 아프니까 메르스 안 퍼졌으니까 기뻐하지 메르스 걸려보세요. 원망하지.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메르스 걸리도록 해라. 다만 목숨은 손 못 댄다. 이 모든 것이 욥의 남은 인생이 아니고 전부 다 언약을 위함이에요.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거늘 이란 말은 뭐냐? 십자가가 현재 그냥 책에만 박혀있는 십자가가 아니고 지금 현재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옛날 사람들, 요새 고등학생보다 바보 같아. 공기 안 보인다고 공기 없는 줄 알아요. 지금도 공기 안 보입니다. 그런데 공기 있는 줄 어떻게 압니까? 질소 74%, 산소 몇 %, 이것 어떻게 압니까? 다른 걸로 측정하니까 나오잖아요. 높은 산에 올라가면 공기가 희박하니까 코피 터지고 하잖아요. 이게 과학의 힘입니다. 과학이 너무 나갔어. 과학이 과학 자체를 파다보니까 실체는 없고 에너지의 장, 에너지의 영역이었습니다. 이게 파동인지 입자인지 분간이 안 되고 전부 에너지의 바다, 에너지의 물결이에요. 이 세상의 모든 것도 에너지입니다.

기쁨, 사랑, 존경, 애정, 배려, 뇌 속에 있는 뇌 구조의 에너지의 움찔거림이고 파닥거림이에요. 현대양자물리학이 그래요. 끝까지 가 보세요. 사람 자체도 없는데. 웃는 것, 우는 것은 신경 세포에서 회로 하나 바뀌었을 뿐이에요. 이 말은 뭐냐 하면, 웃고 싶어요? 주사 한 대 맞으면 돼요. 울고 싶어요? 약 하나 먹으면 돼요. 약물효과, 약리효과, 새로운 화학구조에 의한 약물만 들어가면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평화, 내게 강 같은 주사~ 내게 강 같은 평화가 주사를 통해서 온다니까요. 믿음이요? 믿습니다, 믿습니다, 입만 아파요. 약물주사 놓으면 주여, 할렐루야.

인간은 기계입니다. 이게 과학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과학이 언약을 밝혀냈습니까? 못 밝혀냈지요. 창조과학이 언약을 밝혀냈습니까? 못 밝혀냈어요. 창조과학은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언약입니다. 언약은 율법을 통해서 자기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뭡니까? 고난의 떡을 먹어라. 그리고 모든 네 가정과 자식을 몽땅 주님한테 맡겨라. 너는 처음부터 네 것이라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게 언약이에요.

첫 것을 가져간다는 말은, 나머지 것은 덩달아 따라 나오는 거예요. 줄줄이 사탕처럼 얽혀서 당겨서 가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가 당겨줍니까? 본인이 왜 맏이에요. 성도는 맏이가 따로 있습니다. 로마서 8장에 나오거든요.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그 맏아들이 누굽니까? 우리는 내가 최고에요. 근데 우리 위에 맏아들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맏아들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거예요. 왜 맏아들의 모습으로 오셨느냐 하면, 예수님께서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구약을 완성하거든요. 예수님 피 안에 모든 구약의 말씀이 들어있거든요. 장자와 아버지가 이야기 되어서 언약이 성취되니까 우리를 대신하는 장자로 예수님이 아버지 앞에 나서신 거예요. 맏아들입니다. 우리는 양자고.

정리해봅시다. 하나님의 언약은 언약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율법으로 외부로 파견근무 나갑니다. 그러니까 언약이 있고 그 언약이 율법으로 뿜어져 나오면서 이스라엘 전부를 지배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어떻게 마중 나오느냐 하면 그것이 언약에서 나왔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한테 온 율법을 내가 행함으로 지켜가면서 야금야금 성취할 수 있다고 착오를 일으키죠. 왜? 실제적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나님이 했다고 보기 때문에. 누룩이 없는 떡을 먹어라.

쉽게 말해서 이런 겁니다. 여기 비타500을 먹어라. 이것이 내 뜻이니라. 얼마나 쉽습니까? 마시면 되잖아요. 이게 인간의 오해라니까요. 십자가를 믿어라. 구원받는다. 얼마나 쉬워요. 십자가 믿으면 되잖아요. 그게 십자가 믿는 게 아니라니까요. 십자가 믿는 게 믿는 게 아니고 십자가를 믿게 하신 분은 오직 주님이라는 내용을 가질 때 고백이 나올 때 그게 십자가 믿어지게 된 거예요. 수동적이에요. 내가 십자가 못 믿어요. 무슨 재주로 믿습니까? 못 믿는데.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말은 잘해. 알고 있지요. 십자가를 믿게 되면 십자가뿐만 아니고 나머지 모든 것까지 주께서 알아서 하신다는 것도 동시에 같이 믿게 돼있어요. 세상만사가. 십자가만 달랑 떼어 믿고 나머진 자기가 일하고, 그런 것 없습니다. 그런 것 안 됩니다.

그 다음에 21절 봅시다.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제 칠 일에는 쉴지니”

모든 절기는 안식일의 확대, 확산이라고 했지요. 아까 제가 언급했잖아요. 그건 수요일 설교 들어보면 자세히 나옵니다. 지난 설교부터 연쇄적으로 했어요. 안식일에 드리는 제사가 드디어 절기 제사로 넘어갑니다. 제물들 종류가 다양해지고 복잡해져요. 하지만 공통점은 안식일을 지키는 겁니다. 안식일이 중심이 돼있어요.

그러면 안식일은 무슨 날이냐? 안식일이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고 지어낸 건 아니고 안식일이 왜 제정됐습니까? 객관식으로 할게요. ①6일 동안 일하니까 너무 피곤하니까 하루 쉬라고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만들어준 날이 안식이이다. 맞아요? 틀리지요. 그러면 수요일에 하든지 목요일에 하든지. 그리고 실제로 안식일에 쉽니까? 안식일에 더 바쁜데? 안식일에 놀러 가 보세요. 차 막히고 더 힘든데요.

이 땅에서 인간은 이마에 땀 흘리게 돼있어요. 저주받은 동네에서 무슨 쉼이 있어요. 쉼 없어요. 저주받은 동네는 저주받으라고 있는 동네지 무슨 쉼을 얻어요. 안식일은 주님만 지키지 우리는 못 지킵니다. 흉내 내지 마세요. 모방하지 마세요. 안식일은 있어요. 못 지키니까 없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유대인들도 그렇고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고 안식일 못 지키면서 믿는 척을 하기 위해서 새로운 조항들을 만드는 것은 무슨 수작입니까? 안식일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를 죽이는 날이에요. 왜 죽이느냐? 사람은 일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사람이 살아있어요? 산다는 자체가 가만있어도 일이에요. 눈 뜨고 살피니까. 그럼 안 살피면? 안 살피면 눈동자가 활동하잖아요. 기계가 일하잖아요. 안식일은 아무것도 안 하는 날이 아니고 주께서 하시는 일을 보라는 거예요. 주께서 하시는 일이 뭐냐? 뭐가 주의 일입니까? 요한복음 6장에 보니까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 일이라고 했어요. 우리가 일 안 하고 누가 대신 일 하셔서 오늘날 우리가 있네. 이걸 확인하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인간을 몇 째 날에 만들었어요? 6일째 만들었지요. 만약에 두 번째 만들어놨으면 얼마나 간섭하겠습니까? 인간을 두 번째 날에 만들고 꽃들을 세 번째 날에 만들면 얼마나 간섭들 하겠어요. 제일 마지막에 만들어졌으니까 인간이 제일 후배에요. 인간이 쫄병이라니까요. 해는 왜 저렇게 생겼어? 하면, 어디 쫄다구가. 달은 왜 저렇게 삐딱해? 네가 뭔데 나중에 생긴 게 말이 많아. 별은? 별이고 달이고 다 선배들이에요. 코끼리야 네 코는 왜 그렇게 기니? 네 코도 만만치 않거든. 인간이 태어나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거예요.

전라도 나주인가 가면 한식정식이 나오는데 놀라지 마세요. 반찬이 60가지랍니다. 구경하란 말인지 먹으란 말인지. 하나님께서는 60가지가 아니라 그보다 더 많은 반찬을 인간에게 제시했습니다. 은하계 하나에 별이 3000억 개인가 그래요. 그런데 그 은하계가 3000억 개에요. 그래서 어떤 과학자가 계산해보니까 현재 눈에 보이는 별의 숫자를 이 세상 인구로 나누니까 한 사람 당 별이 7조 개. 별 하나 나 하나가 아니라 별 7조 개가 나 하나, 별 7조 개가 네 꺼. 그런데 지금까지 나타난 것만 그렇고, 허블 망원경으로 검은 지점에 오랫동안 비춰보니까 20일 후에 까만 점이 있던 그곳에 별이 새로 등장한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게 아니고 창조는 다 했는데 인간이 다 못 본 거예요. 반찬을 20가지밖에 못 먹었어요. 40가지가 남았어. 다 못 먹어요.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우리 때문에? 아니에요. 하나님의 형상 때문에 만들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이 주를 위하여 만든 거예요. 그 중에 하나가 누구다? 저와 여러분입니다. 얼마나 고귀하신 분이에요. 그런데 마귀가 와서 주님 것을 누구로 바꾸었습니까? 마귀가 자기를 안 드러내면서 너는 네 것이다. 천상천하유아독존, 네 인생 네가 사는 것이다. 이렇게 바꿔놓은 거예요. 네 선택에 따라서 네 팔자가 결정된다. 말만 그렇게 바꿨어요? 사고방식도 그렇게 바꾸어놓은 거예요. 그래서 인간은 자기가 아는 사고방식 한계 내에서만 그것밖에 몰라요. 그 사고방식 밖에서 오는 모든 말씀과 언약, 주님의 뜻을 인간은 알 턱이 있나.

유월절 지키라, 무교병 먹으라 하니까 이것 먹으면 구원받아요? 십자가면? 십자가 믿으면 구원받아요? 기껏 자기가 행동해서 자기가 구원받는 것, 기껏 그것밖에 모르는 데 그걸 기독교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걸 교회라고 이야기하고 그걸 종교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성령 받지 아니하면 기독교, 교회라는 것, 이런 종교에서 못 벗어납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의 한계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강도는 강도였지요. 강도의 한계가 뭡니까? 나는 강도여서 죄가 많아서 십자가에 달렸다. 끝났지요. 그때 십자가는 사형수지요. 나는 죄가 많아 사형당해도 마땅하다. 끝났지요. 그 사형수에게 낙원은 없습니다. 없는데 무슨 희한한 일이 나와요. 주여, 주님 나라에 저를 생각해달라. 이런 자기 한계에 없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것은 새로운 별이 떴어. 원래부터 택한 백성인데 그동안 자기가 택한 백성인 줄 몰랐지요. 강도질만 했고.

강도질 왜 했어요? 취미로 했어요? 밥 먹고 살려고 한 거예요. 밥 먹고 살려고 강도질한 것이나 밥 먹고 살기 위해서 창녀질 한 것이나 밥 먹고 살기 위해서 국무총리 후보된 것이나 전부 마찬가지에요. 밥 먹고 살기 창피하다고 북한산에서 자살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니까. 모든 인간의 행동은 똑같아요. 자기의 가치와 의미와 밥 먹고 살기 위해서 내 인생은 내가 챙긴다는 그 한계 안에 갇혀있어요. 천당 가는 것도 누구 힘으로? 내가 알아서 천당 간다. 이게 종교, 기독교잖아요.

우리는 확인 차원, 성령이 오게 되면 그것과 상관없다고 커튼을 젖히면서 십자가에 모든 걸 다 이뤘음을 알려줄 때 그 순간 내 운명, 내 팔자라는 게 없고 내 이름으로 시작한 것도 처음부터 주의 이름으로 바꿔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럼 왜 이 땅에서 힘들 게 사느냐? 주께서 내 죄를 구원하기 위해서 내가 사는 이 땅에서 먼지 나는 세상에서 얼마나 고생했겠느냐 이 말이죠. 메르스 때문에 호들갑 떠는 주님은 얼만 통분하고 가슴 아파 했겠어요. 마르다, 마리아가 오빠 죽었다고 막 울고불고 난리 났잖아요. 평소에 예수님한테 잡채 해주고 짜장면 해주고 탕수육 사줬던 그 둘이 막상 자기 오빠 죽으니까 난리도 아니라. 아플 때 진작 오라고 통보했잖아. 죽고 난 뒤에 무슨 소용 있느냐?

주님은, “네 한계가 그게 다야?” 한계 지적하기 위해서 무릇 죽어서 나를 믿는 자는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 이게 네가 알아야 될 범위라고 알려줘도 누이동생이 둘이 알아듣질 못해. 울고불고 난리 났어요. 오빠 안 죽었다고 해도, 그런 소리 마세요. 누굴 바보라 아나. 원래 네가 바보거든. 바보라고 하는데 바보 아니라고 하는 게 더 나빠. 네 오빠는 주 안에 살아있거든. 안 믿습니다. 돌문을 열어 놓으니까 전부 코 막고 난리 났어. 죽은 지 나흘 됐으니까 썩은 냄새가 나는 거예요. 썩으면 끝났다는 게 인간의 한계에요.

한계 같은 소리하고 있네. 이제는 인간을 제쳐 놔버려요. 누구와 이야기합니까? 주님과 같이 살고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거예요. 나사로야 나오너라. 지옥 갔던 오빠라 잘난 누이동생 둘 때문에 다시 군대생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나사로는 두 번 살았어요. 기분 좋았겠어요, 나빴겠어요? 잠자는 사람을 깨우는 법은 아니에요.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정말 철이 없어도 보통 없는 게 아닙니다. 정말 주님 믿는다 하면서도 건성으로 때우고 실은 세상의 부귀영화에 눈독 들이는 우리의 실상을 주께서 살펴 주사 다시 한 번 반복적으로 십자가가 눈앞에 보인다는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전부 장악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20150605b 울산강의.hwp (48.0K), Down:20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61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