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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50605a 울산강의-출애굽기 34장 : 언약 확인하기자유게시판출애굽기

20150605a 울산강의-출애굽기 34장 : 언약 확인하기

이름 : 한윤범(IP:14.39.134.87)

20150605a 울산강의-출애굽기 34장 : 언약 확인하기

(강의:이근호 목사)

오늘은 출애굽기 34장 18절부터 보겠습니다. “너는 무교절을 지키되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 그 기한에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으라 이는 네가 아빕월에 애굽에서 나왔음이니라”

이미 애굽에서 떠나오면 과거지사인데 하나님께서는 그 과거지사를 과거의 지나간 일로 보지 아니하시고, 애굽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능력이 있어야 되거든요. 사람의 힘으로는 못 나오니까 그 능력을 애굽에서 떠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 환경에서 계속해서 그것을 재현시켜주십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잖아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피를 한 바가지나 흘렸다. 그러면 우르르 달려들어서 피를 바르면 죄 용서 됩니까? 피를 바르면 파리만 들끓지 죄 용서 안 되겠지요. 그런데 갈라디아서 3장 1절에 보면,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거든 누가 너를 꾀느냐고 했어요. 분명히 십자가가 죄를 용서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을 인위적으로 그걸 흉내 내거나 모방하거나 유사한 사건을 만든다고 해서 죄 용서가 성립되는 건 아닙니다.

이걸 생각하면 돼요. 우리가 천국 가려면 의인이 돼야 되잖아요. 의인이 돼야 된다는 말은 우리가 의인 되지 않으면 천국 못 가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인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죄인으로 간주한 겁니다. 내가 있는데 내가 죄인 되는 거예요. 어떤 방법으로 죄인 되었습니까? 질문 자체가 성립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했더니만 죄인이 된 거예요? 질문 자체가 사실 성립이 안 되지요. 왜냐하면 우리는 죄를 짓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살다보니까 죄 지었지 죄 짓는 걸 목표로 살진 않았잖아요. 그래서 죄 짓는 방법이란 우리는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생각해본 적도 없고. 어쨌든 밥 먹고 살려고 애쓸 뿐이지 죄 짓는 건 나중 문제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정작 하나님께서는 의인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간다고 완전히 결정 내렸습니다. 이 땅에 실컷 살다가, 죄인인지 의인인지 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 관심도 없이 살다가 하나님께서 네가 의인이냐고 물으면, 무슨 뜻입니까? 너는 얘 셋 낳고 잘 키웠느냐는 질문이 들어올 줄 알았는데 “네가 의인이야? 네가 죄인이야?” 그런 질문이 들어오면 우리가 평생 엉뚱한데 관심 두고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물론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니까요.

부자와 거지가 있었는데 부자의 관심사가 뭐였습니까? 부자는 날마다 파티 여는데 관심 두었잖아요. “나, 이러다 의인될까, 죄인 될까?” 하고 거기에 관심 없지요. 부자가 돈 관리하기에 바쁘지 언제 거기에 관심 두겠습니까? 그런데 막상 지옥 가서는 아직 죽지 않은 동생 다섯 명에 대한 관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 동생들 부자 되게 해주세요. 동생들 다 장가, 시집 잘 가게 해주시고.” 여기에 있었겠습니까? 지옥에 오지 않게 해달라는 겁니다. 진작 관심 갖지 왜 지옥 가서 이미 끝난 마당에 관심 가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 부자를 다시 시간을 되돌려서 이미 지옥을 갔다가 지옥에서 못 빠져나옵니다만 그렇다 치고 다시 지상의 삶을 살 때 아마 세상 보는 눈이 확 다를 걸요. 아마 거지 나사로를 굉장히 부러워할 겁니다. 이러한 안목, 모든 관점의 바뀜을 성령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성령 받았다는 것은 이미 모든 판정은 십자가로 내려진다고 결정 나고 난 뒤에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의 영이거든요. 따라서 성령 받은 사람은 진정한 자유가 뭔지 압니다. 진정한 자유는 우리가 관심 두지 않았던 그리고 율법에 대해서, 사탄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주께서 옮겨서 벗어나는 그게 바로 자유지요. 성령 받고 난 뒤에는 이미 성령 받았기 때문에 관심사가 완전히 다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같은 경우에 여기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령은 오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나름대로 하나님의 사건을 체험한 게 있지요. 그 체험이 출애굽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너희들이 애굽에서 나왔다고 돼있지요. 강의 처음부터 다시 해보겠습니다.

분명히 십자가 사건은 과거지사입니다. 과거지사란 버스 지나간 겁니다. 어떻게 젊은 날로 돌아갑니까? 안 되잖아요. 그런데 갈라디아서 3장 1절에서 이미 십자가는 지나간 사건인데 뭐라고 하느냐 하면, 십자가가 눈앞에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보고 싶어서 보는 게 아니에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는 시스템을 가동시킨 겁니다. 가동시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던 사건의 취지와 내용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실시되는 그 현장에 구원이 이뤄집니다.

전에 처음에 강의할 때 그런 이야기했지요. 십자가 사건 현장에 가면 구원받습니까? 흐르는 피를 찍어 바르면 구원받습니까? 상당히 중요한 질문이거든요. 십자가 피로 구원받는다고 할 때 우리가 아는 피라는 물질, 피와 나의 관계는, ①찍어 바른다. ②피를 뿌린다. ③피 냄새를 맡는다. 전부 이런 식으로 피와 내가 하나로 엮는 것밖에 생각 못해요. 인간은 오감이니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느끼는 것 외에 인간이 외부의 것을 결합하는 방법은 없지요.

예수님이 십자가 지셨다. 십자가에 보니까 피가 묻혀있다. 어떤 사람이 피로 말미암아 용서 받는다고 하니까 그걸 잘 안다 치고 피 때문에 죄 용서 받는다고 치더라도 그 피를 어떻게 내 피로 만들 거냐 이 말입니다. 냄새 맡을까요? 바깥에 있는 피가 어떻게 내 죄를 용서하는 방식을 내가 채택할 수 있겠어요? 어떻게 바깥의 피가 내 안의 죄를 말끔하게 씻을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안 되지요.

십자가 져도 우리는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하니까 기껏 하는 게 뭐냐 하면, 교회 와서 청소하기, 봉사하기, 헌금내기, 전도하기, 성경 배우고 가르치기, 설교 듣기, 예배 참석하기, 피아노반주하기, 그런 것밖에 더 합니까? 그것 하면 용서받아요? 성경은 그런 식으로 용서받는 게 아니고 예수님의 피로 용서받는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듣는 여러분들이 글쎄 그걸 우리가 모르는 게 아니고 아는데 피가 산소와 결합해서 바짝 말라버렸는데 그 피를 무슨 수로 내 안에 집어넣느냐? 뒷주머니에? 어디에? 어떻게 집어넣으면 우리 죄를 용서받지요? 피를?

피가 물질이죠. 물질이 어떻게 내 죄라는 관념에 불과한 실체가 없는 죄를 씻어낼 수 있습니까? 옷감에 묻은 얼룩이나 때는 하이타이로, 비누로 빨면 빠져요. 지용성 세제를 쓰면 기름때가 빠진다고요. 그런데 내 죄는 어떻게 빠집니까? 빠질 수가 없는데. 그런데 주님께서는 씻어준다고 하거든요. 참 신기하지요. 우리가 지금 신기한 것만 고마워하면 좋겠는데 신기한 건 나중 문제고 그 방법을 모른다면 문제가 크지요. 신기하다, 이것과 피가 어떻게 내 죄를 씻어주지? 방법이 없네. 이것과 완전히 차원이 달라요.

예수님의 피가 내 죄를 씻는다는 것이 너무 어려우면 약간 쉬운 문제로 하겠습니다.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더니만 하나님이 장자 죽이려 왔다고 도로 갔다. 그냥 가버렸다. 왜 갔습니까? 뭘 보고 가셨습니까? 피 보고 그냥 넘어갔다고 했잖아요. 피 보고도 들어와서 죽일 수도 있는 문제잖아요. 피가 뭐 길래 왜 그냥 돌아가십니까? 죽음의 사자가. 그건 우리가 알바 아니죠. 왜 알바가 아닙니까? 죽음의 천사가 피를 보거든 절대로 그 집의 장자를 죽이지 말라고 사전에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지요. 그 지시 받은 게 언약입니다. 언약이란 인간은 모르게 되고 관심도 안 둔 상황이 하나님과 하나님 사이에만 이미 성립된 원리원칙이 언약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들이닥친 거예요.

그러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언약에 대해서 알까요, 모를까요? 모르지요. 언약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데. 언약을 만약에 제대로 알면 자기가 언약을 적용시키는 방식을 강구할 거예요. 그런 식으로 적용 안 됩니다. 우리가 안 되기 때문에 언약의 실시는 어디까지나 언약을 만드신 하나님 소관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겠어요. 언약은 있기만 한 것이 아니고 언약을 적용시키는 것까지 하나님 몫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에어컨을 구입하면 주인이 에어컨 들고 와서 답니까? 아니지요. 에어컨을 구입하게 되면 기사가 따라와서 드릴로 구멍 뚫고 에어컨 달아주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아마추어가 해봐야 시원한 바람 안 나옵니다. 전기에 대해서 알고 공사를 해야 에어컨이 작동이 되고 바람이 나오잖아요.

언약을 우리가 덜렁 받았다. 뭐? 이게 어디 쓰는 물건이고? 이러고 있는데. 언약을 어디에 쓸 건데? 언약으로 어떻게 내 죄를 용서받는데? 몰라요. 언약을 주신 분이 언약을 우리한테 적용시키는 기사분도 따라 오지요. 그래서 언약과 더불어 누가 오느냐 하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 같이 병행해서 우리와 동행되는 겁니다.

그러면 언약이 구체화될 때 사람의 협조와 동의나 사람의 손이 필요할까요? 안 필요한 거예요. 만약에 필요하다면 말이 안 되는 이런 일이 생겨요. 예수님이 십자가 지셔서 “다 이루었다. 자, 너희 죄는 내 피로 말미암아 용서받는다. 나는 피만 흘렸다. 그 다음에 피로 네가 알아서 해라.” 이렇게 합니까? 그러면 피 값이 비싸서 부자만 천국 가요. 예수님 몸에서 나오는 피는 몇 리터밖에 안 되고 한 방울 찍어야 몇 사람 구원하겠어요? 안 되지요.

예수님과 함께 구원받은 강도가 피로 구원받는 걸 알고 가시면류관으로 흘리는 피를 자기 심장이나 머리에 찍어 발라서 구원받았어요? 강도가 무슨 손을 내밀어요. 묶여있는데. 묶여있는 게 아니고 박혀 있는데. 지금 목이나 돌릴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날 밤에 강도가 어디 갔습니까? 낙원에 갔잖아요. 주께서 밧줄로 소몰이 하듯이 모가지 끌고 갔습니까? 그냥 달려 죽었어요.

며칠 전에 동산병원에 가서 누굴 심방했는데 그 본문이 뭐냐 하면, 마르다 마리아 오빠 나사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 살릴 때 뭘 했습니까? 아무것도 안 했지요. 돌문을 치우라는 것은 살려내는 게 아니고 이미 살아났음을 주위 사람들에게 확인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했지요. 오늘 강의 제목을 언약의 확인이라고 합시다. 확인이란 말은 일은 주님이 벌이고 그 일을 주님 혼자 담당하시고(구약은 주의 이름입니다) 백성들에게는 이미 혼자 하셨음을 확인해주는 동시에 확인 가운데 이미 너희는 구원받았다는 것이 들어있어요. 신기하죠.

또 하나 예를 들겠습니다. 예수님이 산이 들려서 바다에 빠지라고 했다면, 어떻게 하면 멀쩡한 산이 들려서 바다에 빠질 수가 있겠어요? 좋은 아이디어 있거든 이야기해보세요. 덤프트럭으로 포크레인으로 산을 들어낼까요? 그러면 바다에 산이 안 생기는데 어떻게 할까요? 정답은 없지요. 방법 없습니다. 나중에 커튼을 젖힐 때 보니까 우리는 이미 구원받은 자로서 확인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일을 예수님이 혼자서 하신 거예요.

아까 지옥 간 부자 이야기했지요. 그 부자가 살아생전에는 파티하기 바빠서 내가 의인일까, 죄인일까에 관심 없지요. 그런데 막상 지옥에 가니까 지옥에 만약에 스물네 시간 있다면 온 종일 관심사가 뭡니까? 동생들 여기 오지 않게 해달라는 거지요. 그래서 아까 제가 이야기했잖아요. 살아있을 때 진작 그런 관심 두지. 살아있을 때 그런 관심 없어요. 살아있을 때 관심은 내 역량이 어느 정도까지 대단한 실적을 남길 수 있느냐. 내가 얼마나 열심히 뛰고 한 달 수입을 얼마큼 높일 수 있는지에 관심이 있다니까요. 내가 하는 내 식대로 밥 먹고 살 수 있는 것을 우리는 내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이 땅에 살지요. 그래서 밥 먹고 살았다 칩시다. 그리고 아파트 샀다고 칩시다. 주께서 아파트 사면 천국 넣어줍니까?

아까 식사하면서 이야기한 건데 태화강 변에 좋았던 꽃을 다 베었다고 했지요. 경치가 좋답니다. 꽃필 때. 저는 울산사람 아니라 모르지만 꽃피면 경치가 좋아요? 하여튼 울산사람도 안 가봐. 꽃폈습니다. 경치 좋습니다. 그러면 그것 구경하면 천국 갑니까? 정말 지옥을 갔다가 다시 울산 태화강 변에 나타났다고 칩시다. 그런데 옆에 사람이 꽃 좋다고 하면, 지옥 갔다고 온 사람이 뭐라고 합니까? “꽃 좋지, 예쁘지. 그래서 뭐? 뭐 없어. 꽃 좋으면 천국 가나?” 분명히 그렇게 이야기할 거잖아요. 어디 꽃에 네 영혼을 다 빼앗기느냐고 할 거란 말이죠.

그래서 제가 이야기합니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 34장에서 하나님의 이름과 사람의 이름이 동행해요. 사람의 이름은 인간들, 이스라엘 백성들이죠. 그 이름 각자의 관심사, 추구하는 바가 다 달라요. 언약을 하나지만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과 함께 주의 이름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들은 언약을 위반한 사례만 자꾸 생산해내는 겁니다.

주의 이름은 죄인과 동행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환경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입니다. 주의 이름이 함께 있음을 아는 사람은, 자기가 지옥 가도 마땅한 죄인인 줄 알지만 주님의 동행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에는 내가 열심히 한 일로 해서 내가 거뜬히 살아남았다는 희망으로 삼고 거기에 매진하고 거기에 시간에 몰입하는 그런 세월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 자체를 뭐라고 하느냐 하면, 34장 13절에 보면, “너희는 도리어 그들의 단들을 헐고 그들의 주상을 깨뜨리고 그들의 아세라 상을 찍을지어다” 12절에 보면, “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들어가는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약속의 땅에 있는 원주민들과 언약을 맺지 말고 종교를 믿지 말라. 왜?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에 관심 두고 싶어도 그들은 언약이 없는 민족이다. 언약이 없는 민족과 생각과 마음을 같이 한다는 것은 그들도 언약에 관심이 없는 게 돼버려요.

그러면 그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렇게 닦달하시기 전에 먼저 언약이 실체화되고 구체화되는 시스템이라든지 언약이 실제로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들을 미리 제시해주면 좋지 않겠습니까? 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이방민족과 다른 원칙을 제시해주면 고맙겠습니다. 언약의 이름으로 나오는 게 있어야하지 않겠느냐고 한다면, 그게 오늘 18절부터 나옵니다. “너는 무교절을 지키되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 그 기한에 칠 일 동안에 무교병을 먹으라”

이게 뭐냐 하면, 십자가 사건이 지나가도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거늘, 이 원칙처럼 이미 지나간 출애굽 사건이 언약에 담겨서 출애굽 사건의 취지가 오고 오는 이스라엘 세대에 반복이 되고 되풀이 되고 또 되풀이 되는 형식을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겁니다. 그게 아뷥월인데

아뷥월 이게 가나안 명칭이에요. 나중에 포로 잡히고 난 뒤에 니산월로 바뀝니다. 니산월은 히브리 달력으로 1월이에요. 요즘 식으로 3,4월, 봄이에요. 니산월 절기가 무교절입니다. 무교절 시작 직전에는 유월절. 보통 무교절, 유월절 하면 골치 아파해요. 이게 언약이 있기 때문에 언약의 죄 용서 능력이 쏟아지기 때문에 나온 용어들이거든요. 그래서 언약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유월절 나왔데, 무교절이 있어? 이제 우리가 이런 식으로 구원받는다고 좋아들 하겠지만 언약에 도통 관심 없는 사람은, “아아 그만해라. 내 앞에서 이상한 단어 쓰지 마세요.” 내가 관심 있는 단어만 하란 말이죠.

그래서 저는 그걸 알기 때문에 설교 시간에 제가 이런 소리 나올 뻔 했어요. 오늘 안재욱이 결혼합니다. 그 말하면 대번 알아들어. 중국에서 인기 있는 가수며 배우. 지난 월요일에 결혼했다고. 우리 성경공부하는 날에. 오늘은 무교절 하면, 안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안재욱이 월요일에 결혼했다고 하면, 누구와 했는데? 시간 금방 지나가는 거예요.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지옥 가 있다면 기쁜 소식이 뭡니까? 안재욱이 결혼한 겁니까? 안재욱이 결혼하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아니잖아요. 지금 동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심판주입니다. 심판주 앞에서 죄인은 지옥 가야 돼요. 따라서 주께서는 의도적으로 지옥 상황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네가 잘났어? 너, 지금 지옥에 와 있어.” 이런 뜻이란 말이죠.

지옥에 와있는데 고맙게도 구원자가 지옥까지 와 있잖아요. 구원자가 심판주고, 심판주가 구원자에요. 지옥을 만드신 분이 지옥에서 빼낼 능력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받을 이름을 준 적이 없어요. 예수님은 지옥의 저주를 받으신 분이에요. 십자가에서 아버지에게. 저주받은 능력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말은, 지옥에서마저도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뜻입니다. 조건은 바로 주님께서 우리 손모가지를 잡아당길 때 그때 가능한 거예요. 그러면 지옥 가도 괜찮겠네.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 울산이 지옥인데? 태화강 꽃 다 베어버린 게 지옥이에요.

쇠퇴하고 후패한 자리에 우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환경뿐만 아니고 그 안에 있는 우리 몸도 주저앉고 있습니다. 망가지고 있습니다. 다리부터 해서 온 천지가 주저앉아 지진이 일어난 것 같아. 내려앉고 있어요. 완전히 네팔이에요. 딴 데 없어. 관심사가 세상에 있으면 그저 세상의 힘든 일 때문에 주저앉으면 그나마 손톱을 벽에 그리든지 해서 악착같이 살아남으려고 애를 쓸 거예요.

그러나 정말 주저앉는 것이 저주의 힘이라면 우리가 그 저주의 힘을 주신 분에 의해서 우리가 동행한다는 말은, “주여, 우리가 어디서 구원받았습니까?”를 확인시키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힘든 인생을 의도적으로 하나님이 유발시켰다고 믿어질 것입니다. 내가 사는 이 곳이 영원히 살 곳이 못 되고 그냥 나그네로 살아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반복해서 인식시키기 위해서 오늘도 힘든 하루를 보내시는 하나님, 감사하지요. 그게 동행입니다.

18절에 나오는 무교절, 그 앞서 있는 유월절, 유월절은 하루고 무교절은 칠 일 동안 하거든요. 신약에 오게 되면 합해서 유월절기라 하는데 유월절기는 유대교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은 칠 일 동안, 바깥에 있는 사람은 팔 일 동안 지키는 것으로 돼있어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할 때 인물로 키가 180이라든지 덩치가 있는 인물로 나타나지 아니하시고 어떤 기능으로 나타나요. 그 기능이 뭐냐? 유월절이고 맥추절이고 수장절이고 그런 거예요. 절기로써 나타나요. 월삭, 나팔절, 초실절, 맥추절, 칠칠절, 오순절, 전부 같은 이야기고요. 수장절, 초막절도 같은 이야기에요. 그런 절기로써 자기 자신을 드러내더란 말이죠. 절기를 지키는 기능을 통해서. 도대체 절기 지키면 뭐가 생산되기에? 절기를 지킴으로써 이 땅에 없던 새로운 게 나와야 되잖아요.

절기를 지키면 제사를 하게 돼있어요. 제사 지키면 거기서 피가 나오게 돼있습니다. 그 피입니다. 어린양의 피. 그러니까 옛날에 출애굽 당시에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서 애굽과 분리되면서 홍해를 건너 왔잖아요. 그래서 구원받았잖아요. 그 어린양의 제사를 이제는 이스라엘 내부에서 절기를 율법을 통해서 절기 때마다 이걸 되풀이하고 반복하는 겁니다.

안식일에 양 잡잖아요. 안식일의 의미가 확산이 되면 절기가 되고, 이 말은 안식일의 제물이 절기를 통해서 더욱더 많아지고 번잡스럽게 돼버려요. 그 말은 하나님의 희생의 다양성, 하나님의 대신 죽으심이 어떤 경우에도 적용이 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이렇게 절기를 지키게 한 겁니다. 절기는 한 번 지나면 끝나는 게 아니요. 순회가 돼요. 봄, 가을로 순회 돼요. 매년 되풀이 돼요. 나중에 신년 절기가 추가되고.

매년 순회된다는 말은 일년, 이년, 삼년, 사년이 언제 끝을 보느냐 하면 마지막 때가 되느냐 하면, 7과 관련된 해가 오게 되면 마지막이 돼요. 7년을 안식년이라고 하고 7년을 일곱 번 하게 되면 49년 되지요. 49+1년이면 그게 바로 기쁨의 해, 희년. 그런데 안식일은 한 날이고 희년은 오십 년 째에요. 그 중간과정을 메커니즘이라고 합시다. 그 메커니즘에 7이란 숫자가 작용해요. 7이란 숫자에 하나님께서 의미를 담는데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7일만에 창조하시고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해서 만든 날이 안식일입니다.

창세기 2장 1절에,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천지창조는 다 만들었어요.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일은 있어요. 뭐냐? 천지창조를 다 만드신 본인을 드러내는 일은 남아있어요. 그래서 유대교에서 이렇게 이야기해요.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마감한 게 아니고 마감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천지창조를 마감시켰다. 새로운 일이 따로 남아있기에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마감시켰다고 이야기합니다. 천지창조를 마감해야 비로소 될 일이 따로 있다는 거예요. 그게 유대교에서는 토라의 완성, 모세오경을 토라라 하는데 신약에 와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누굽니까? 예수님이죠.

그렇다면 여기서 정리해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하시고 그 뒤에 율법을 줬지요. 율법을 준 취지가 인간들은 자기가 지키는 걸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천지는 이미 창조했어요. 끝났어요. 끝났는데 율법이 왔다는 말은, 끝난 창조와 율법이 결합해서 진짜 하나님께서 영원한 안식, 보여주셔야 될 어떤 새로운 일이 있었던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 천지창조를 하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모습을 나타내서 주가 되는 순간 천지창조는 진짜 끝이 된다 이 말이죠. 창조하신 분이 본인이 창조하신 것에 의해서 표현될 때 세상은 끝이 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을 이유가 없잖아요.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어서 예수님이 된 겁니다. 맞지요? 예수는 마리아의 아들로 육신을 입어야지요. 그냥 계시면 성자 하나님, 아들 하나님이에요. 아들 하나님이 육신이 될 이유가 뭔데요? 육신이란 피조체인데, 흙으로 만든 건데. 예수님께서 흙으로 만든 육신을 왜 입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창조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 됨의 완성을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 뜻이 되는 겁니다. 신기하죠. 우리 같으면 우리가 만든 것과 안 놀잖아요. 어디 네가 나와 맞먹어? 주님께선 자기가 만든 인간을 자기 것으로 수용해서 인간을 통해 나타난 주님이 되셨잖아요.

사실은 그걸 미리 내다보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었다. 인간은 흙이지만 하나님 형상을 입혀서 사람이 된 겁니다. 사람 속에 이미 하나님의 형상이 들어있었던 거예요. 그걸 하나님의 속성이 들어있다고 봅니다. 속성이 들어있으니까 모든 인간은 죽지 않고 한쪽은 지옥 가고 한쪽은 천국 가고, 예수님의 속성대로 공의와 사랑으로 분리 되면서 통합적으로 전체는 예수님의 속성을 아우르는 새 하늘과 새 땅, 새로운 우주, 새로운 세상이 영원토록 진행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들어있습니까? 우리 안에 신성이 들어있습니까? 논리적으로 그렇게 물을 수 있는데 문제는 ‘우리 안’이라는 게 어디를 말하는 게 중요해요. 우리 죄 안에 주님이 들어있어요. 그걸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저주받을 요소 속에, 우리의 죽음 속에 예수님이 들어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기 이전부터 주님이 먼저 죽음과 하나가 되셨어요. 맞지요. 예수님 십자가 지기 전에 십자가 진 사람 있습니까? 아무도 없잖아요. 최초요, 마지막으로 십자가 지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서 사도 바울은, 나는 십자가 안 졌다고 했거든요. 주께서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 지고 따라 오라고 했잖아요. 그 말 듣고 십자가 지고 따라 간 사람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지요. 인간은 십자가 질 수 없어요. 나중에 성령이 와서 예수님의 성도가 되면 우리가 십자가 지는 것이 아니고 예수 안에서 십자가 지도록 주께서 조치를 취하지요.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나옵니다.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거늘. 성경은 하나님 본인 이야기만 자꾸 해대시는 거예요. 누가 보이라 했든가요? 주님이여, 십자가 보여주소서. 누가 요청한 적 있습니까? 없지요. 요청한 적도 없는데 문제 해결에 대해서 해답을 하나님을 알고 계시잖아요. 해답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 쪽에서 우리에게 제시하는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이 십자가란 말이죠. 그러면 그 십자가에 대해서 우리는 관심조차 두지도 않았는데 도리어 주님 입장에서 유일한 해결책으로 십자가뿐이라고 제시했다면 그 다음부터 성령께서 하실 일은 십자가에 관심 없는 우리로 하여금 평생 십자가에 관심 두도록 조치를 해주시는 겁니다.

제가 어제 가락모임에서 이런 이야기했어요. 지난 수요일에 이야기했구나. 기도할 때 뭔가 기도할 게 있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 아닙니까. 과거에 기억된 거죠. 기도 시작할 때 결국 자기 아는 것, 자기 이름으로 기도를 해요. 기도 마지막에는 예수님으로 끝나지요. 내 이름으로 시작한 기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바뀌어야 되지요. 바뀌려면 나는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있다는 것을 언약적으로 확인하면 되지요. 그러면 기도하면서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주께서 알아서 해주시고 나는 알아서 해주신 것에 대해서 인정한다고 믿어버리면 그 기도는 응답된 거예요.

“주여, 우리 얘가 공무원시험에 합격해야 되겠습니다.” 하잖아요. 온종일 스물네 시간 관심이. 아직 그 사람 지옥 안 갔으니까. 지옥 가면 거기에 관심 없겠지만. 생각하다가 기도하다가 성령에 의해서 바뀌는 겁니다. “딸이 누구 거고?” “주님 것입니다.” “그럼 네가 신경 안 써도 되겠네. 왜 쓸데없이 신경 쓰나. 공무원시험 치는 것도 내가 한 거고 네가 한 게 뭐 있다고?” “그래도 딸내미한테 밥은 해줬잖아요.” 기도하면서 주고받는 거예요. “밥하기 위해서 건강한 게 한 것은 누가 했는데? 설거지 하면서 그릇 안 깬 것도 나, 하나님인데. 네가 걸어서 안방에서 부엌까지 발걸음을 누가 셌는데? 설거지하다 머리 아파 봐 못하지. 안 아프게 한 것도 하나님인데. 네가 한 게 뭐가 있다고? 딸내미 되던 안 되던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나한테 맡겨.” “알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게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거예요.

중간에 자기 소원 이야기하다가 이것을 누구한테 양보해야 돼요? 내 이름에서 주의 이름으로 양보하는 게 기도 응답이에요. 기도 끝나자마자 15분 안 되서 “아빠, 나 합격 먹었어. 나, 잘했지.” “그래 수고는 했다만 주님이 하셨어.” 빙그레 웃지요, 속으로. 그럼 딸이, “아빠는 날 위로 안 해주고 또 주님이가.”

딸내미 공무원시험 치는 사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목회하시잖아요. 아빠를 구원하시잖아요. 엄마를 구원하시고. 이게 하나님의 절묘한 작전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게 내 뜻대로 안 되서 내가 속에서 불이 났을 때 이게 주님의 목회 방식입니다. “불나냐?” “불납니다.” “세상 잘 돌아가고 있는데 네가 왜 불나는데?” “태화강의 꽃은 왜 꺾으십니까?” “내가 꺾으라고 했다, 왜? 세상 잘 돌아가는데 네 원대로 돌아가야 될 근거 있나?” “없습니다.” “없으면 입 다물고 있어.”

절기를 지킨다는 것은 제사를 반복하는 것이고 제사는 우리 죄를 대신해서 희생물이 동원되는 겁니다. 따라서 희생물을 제사장이 질질 끌고 불붙는 제단에서 불을 토할 때는 우리는 할 말을 잊어야지요. 이 동네가 내 주장할 동네가 아니라는 사실, 이것이 내 입장을 하나님께 강요할 동네가 아니라는 사실. 주님께서 언약대로 실시하는 동네지 내 뜻을 관철하는 고집 부린다고 성취되는 그런 동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때 그 사람이 바로 신약 같으면 십자가를 아는 사람이고, 구약 같으면 절기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고 무교절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에요.

갈라디아서에서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거늘, 이 말하기 전에 이미 구약에는 무교절이 눈앞에 보이거늘, 어제는 유월절 했잖아요. 앞으론 오순절 해야 될 거야. 오순절이 눈에 보이거늘 누가 너를 꾀더냐? 엉뚱한 지옥 가라고 꾀더냐?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은 이야기에요.

그렇다면 무교절에 뭐가 담겨있기에 이것이 우리 죄를 용서하는 내용으로 꽉 차 있느냐? 무교절은 봄과 가을(유대에는 계절이 이 둘밖에 없어요)로 순환되면서 뭐가 자꾸 생산되지요? 맷돌 갈게 되면 콩가루 나오듯이 계절을 갈게 되면 여기서 언약이 나와요. 하나님 언약 내용이 나와요. 봄 절기와 가을 절기 둘로 나눠집니다. 봄 절기는 유월절, 무교절, 수장절, 맥추절도 포함되고. 가을 절기는 히브리 달로 칠월이고 지금으로는 10,11월로 보면 돼요. 그때는 추수잖아요. 그러면 약속의 땅에서 주님이 추수하게 하셨지요.

그러면 주님이 언약이라고 내놓은 공식이 다 입니까? 아니지요. 이런 공식이 나오게 된 중간과정이 언약이죠. 누가 희생했기에 우리가 이 땅에서 밥 먹고 사느냐? 밥 먹고 사는 것을 좋아하지 말고 그걸 따라가 보자. 이 공식이 나오게 된 열매 맺게 된 과정, 그 과정에 동원된 것이 무교절이고 절기입니다. 그것은 10분 쉬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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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6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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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