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강-YouTube강의(성전)150604-이 근호 목사
116강-YouTube강의(성전)150604-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80.231.90.76)
116강-YouTube강의(성전)150604-이 근호 목사
자, 오늘은 116강, ‘성전’이라는 제목으로 생각해봅시다. 마태복음 거기에 동방박사가 등장하죠. 유명한 사람입니다. 동방박사가 별 따라 왔는데, 우리 생각 같으면, 우리가 하나님이라면, 아기예수가 있는 베들레헴으로 직행하도록 할 수도 있는 문제이지요. 동방박사가 아기예수 보려고 왔지 다른 사람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직통으로 아기예수 태어난 거기에 가면 될 텐데, 마태복음 2장에 보면 이 동방박사가 베들레헴으로 바로 오는 것이 아니고 예루살렘을 거쳐서 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별이 거기서 사라집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태어난 베들레헴에 가기 전에 예루살렘을 필히 거쳐야 된다는 것을 동방박사로 하여금 실시케 하죠. 예루살렘을 왜 가야 하는가?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이 대대로 하나님을 찾아오는 동네가 예루살렘입니다. 감람산, 스가랴에 보면 예루살렘 맞은편에 있는 산이 감람산인데, 그 감람산에 메시아가 도래한다고 그렇게 스가랴서에 되어 있으니까, 그들은 그 예언을 사수하고 예루살렘을 지키는 자만이 메시아를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자부한 겁니다.
자, 그렇다면 메시아가 베들레헴에 이미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왜 동방박사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거치게 하느냐 하면은 그것은 동방박사만이 ‘아, 예루살렘은 아니야. 베들레헴에 태어난 그분이 메시아야.’ 라고 알아둘 것이 아니고, 이 메시아가 구원받을 사람만 찾아서 따로, 같이 사는 게 아니고 기존에 있는 모든 잘못된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에 대한 심판 권한이, 이 베들레헴에 태어난 예수님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게 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한 것입니다.
“너희들이 구원받았으니까 너희들끼리 따로 베들레헴에 가서 예수님 만나고 기뻐하고 집에 돌아가” 가 아니라 예루살렘을 방문케 함으로 말미암아 당연히 예수님이 구원자의 메시아가 아니고 예수님을 모르는 모든 자의 심판의 기능도 함께 수행할 분으로서 이 땅에 오셨다 이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예수님을 생각할 때에 다른 모든 일상의 일을 하는 것 가운데 추가해서 나는 다른 일도 하지만, 다른 일도 건전하지만 거기다가 추가해서 예수님을 믿는 일도, 건전한 일에다가 건전한 일을 더 보탰으니까 나는 안심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예수님이 등장함으로, 그전까지 나는 건전하다, 나는 괜찮다, 나는 훌륭하다, 하는 이 모든 것이 예수님에 의해서 다시금 해석이 되고 이게 심판받아야 돼요. 예수님만 빠지고 나머지기는 괜찮다가 아니라 예수님 입장에서 모든 것을 생각 못한 이것이 보기에 악한 일이 되고, 그것이 주님 앞에 전혀 보탬이 되지 못한, 도움 주지 못한 일들이 되는 겁니다. 성전이 어디 있느냐? 예루살렘에 있죠. 그렇다면 동방박사가 그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왔다가 그걸 부정해야 된다는 말은 성전 개념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거죠.
어떤 식으로 생각해야 하느냐 하면 새로 등장한 성전이 기존의 모든 세상을 다시 심판해야 한다는 중심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의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내가 어느 장소에 간다고 합시다. 어느 장소에, 어느 어느 공원에 간다고 합시다. 내가 공원에 간다면 나는 나만 생각하면 돼요. 내가 여기서 버스 타고 어느 공원에 가는 것이다. 그거는 우리가 미리 생각하는데, 만약에 공원을 가면서 하나님께서 청와대를 거쳐서 공원에 가라고 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 이유가 뭐냐, 나는 청와대는 아무 문제없고 공원만 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공원에 갔더니만 청와대는 불바다 돼야 된다는, 이러한 내용이 내가 찾던 그 공원에 우리를 준비하고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겁니다. 따라서 참으로 성전을, 예수님을 발견한 사람은 예수님 오시기 전에 건전하고 괜찮다 하는 이 모든 것을 예수님 만난 순간 전혀 그거는 건전하지 않고 예수님을 찾는 걸 훼방하고 방해하는 환상에 불과하고, 환영에 불과하고, 세상의 유혹에 불과하다는 것을 뿌듯하게 온 가슴에 그걸 담게 되는 겁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이 없다.” 찬송가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주 예수님 믿고 난 뒤에 집에 쌀이 떨어졌다, 양식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할래요?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이 없다.” 라는 말을 할 때에 그 말을 할 때는 우리가 귀하다고 여기는 것을 이미 거쳐 왔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헤롯 왕이에요.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는 헤롯 왕입니다. 그런데 헤롯 왕이 예루살렘에 거주하면서 자기가 잘난 존재라고 자부했을 거예요. 그런데 난데없이 동방박사가 와가지고 자기 찾으러 온 줄 생각했는데 자가 찾으러 온 것이 아니고 메시아가 태어났는데 이스라엘 왕이 누구냐고 물으러 왔다 이 말이죠.
그 말은 동방박사가 자기 찾아오면서 자기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그걸 외면하고 무시하고 본체만체하고 다른 곳으로 빠질 때, 그동안 나만 챙겨오고 나만 쳐다보고 한평생 살아왔던 우리 자신은 어떻게 될까요? 착각하면서 살아왔던 겁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려서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이 없다.” 할 때에 세상의 모든 것과 비교해서 예수님이 최고다, 라는 말이 아니고 나하고 예수님하고 비교를 최종적인 비교로 생각해야 한다 이 말씀이죠. 예수님은 귀하다. 누구보다도? 나보다도 귀하다. 그렇게 돼야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내 허락 없이, 우리가 헤롯이니까. 우리가 있는 곳이 중요한 예루살렘 같은 곳이니까. 나는 여기서, 내가 한평생 살아온 이 자리에서 메시아를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난데없이 동방박사가 찾아와서 비켜갔다 이 말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을 동방박사를 따라 찾으려면 내가 그동안, 평생 동안 사수한 이 자리를 스스로 포기해야 되는 겁니다. 문제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베들레헴에 태어난 예수님에 의해서 내가 꽉 쥐고 있는 예루살렘 같은 이 자리가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줘야 됩니다. 그러면 성전은 어디에 있는가? 성전은,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었죠? 그러면 그 성전은 무엇인가? 진짜 보이지 않는 성전에 의해서 공격받을 대상으로서의 성전입니다.
근데 사람 눈에는 진짜 성전은 안 보이고 바로 눈앞에 있는 건축물로써의 성전만 보이니까 저 자리에, 성전 저곳에 하나님이 계신 곳이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는 곳이고, 우리의 모든 복이 출발하는 곳이고, 거기서 쏟아져 나오는 곳이라고 우리가 붙들 때, 그런 우리 자신을 세상 어느 것보다 귀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성전을 생각할 수밖에 없죠. 그게 바로 예루살렘 중심으로 살았던 헤롯과 그 모든 유대나라의 백성들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장에서 동방박사가 바로 직통으로 베들레헴에 간 것이 아니고 마치 약 올리는 식으로 예루살렘에 왔다가 맛만 보여주고 베들레헴에 빠졌다는 말은,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은 사수하고, 자신의 가치를 영원토록 사수하는 이것이 바로 베들레헴에 태어난 아기예수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겁니다. 이렇게 제가 이야기하는 근거는 바로 예루살렘이 베들레헴을 공격해요. 예루살렘을 쥐고 있는 헤롯 왕이 예수님이 빠지고 난 뒤에 예루살렘에 있는 두 살 밑에 아기는 다 죽였습니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2장에서의 예루살렘의 배치와 베들레헴의 배치는 무엇을 의미하느냐. 예루살렘 쪽이 베들레헴 쪽을 공격하는데, 베들레헴이 공격당할 이유는 딱 하나 밖에 없어요.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태어났다는 그 사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바로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예루살렘을 비켜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그 사실. 하나님이 나한테 안 물어보고, 메시아를 안 보내줬다는 그 분통으로 인하여 예수님은 공격을 당하는 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안목이 동방박사처럼 예루살렘이 아니고, 진짜 성전은 장소가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성전인 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우리는 동방박사 같은 그러한 서러움과 동방박사가 그러한 위험에 처했다는 그러한 운명과 똑같은 팔자로 이 땅에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동방박사가 예수님 만나고 난 뒤에 곱게 가지를 않았습니다. 밤에 천사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그들은 다 몰살당했습니다. 그만큼 예수와 함께 있다는 것은 이 세상으로부터 공격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동방박사는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왜?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분이 없다는 것을 별을 통해서 그들이 알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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