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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언약 확인하기 150605강의출애굽기

언약 확인하기 150605

이름 : 이근호(IP:119.18.83.69)

한윤범(IP:14.♡.134.87)

15-06-09 10:47

20150605a 울산강의-출애굽기 34장 : 언약 확인하기
(강의:이근호 목사)

오늘은 출애굽기 34장 18절부터 보겠습니다. “너는 무교절을 지키되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 그 기한에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으라 이는 네가 아빕월에 애굽에서 나왔음이니라”

이미 애굽에서 떠나오면 과거지사인데 하나님께서는 그 과거지사를 과거의 지나간 일로 보지 아니하시고, 애굽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능력이 있어야 되거든요. 사람의 힘으로는 못 나오니까 그 능력을 애굽에서 떠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 환경에서 계속해서 그것을 재현시켜주십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잖아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피를 한 바가지나 흘렸다. 그러면 우르르 달려들어서 피를 바르면 죄 용서 됩니까? 피를 바르면 파리만 들끓지 죄 용서 안 되겠지요. 그런데 갈라디아서 3장 1절에 보면,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거든 누가 너를 꾀느냐고 했어요. 분명히 십자가가 죄를 용서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을 인위적으로 그걸 흉내 내거나 모방하거나 유사한 사건을 만든다고 해서 죄 용서가 성립되는 건 아닙니다.

이걸 생각하면 돼요. 우리가 천국 가려면 의인이 돼야 되잖아요. 의인이 돼야 된다는 말은 우리가 의인 되지 않으면 천국 못 가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인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죄인으로 간주한 겁니다. 내가 있는데 내가 죄인 되는 거예요. 어떤 방법으로 죄인 되었습니까? 질문 자체가 성립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했더니만 죄인이 된 거예요? 질문 자체가 사실 성립이 안 되지요. 왜냐하면 우리는 죄를 짓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살다보니까 죄 지었지 죄 짓는 걸 목표로 살진 않았잖아요. 그래서 죄 짓는 방법이란 우리는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생각해본 적도 없고. 어쨌든 밥 먹고 살려고 애쓸 뿐이지 죄 짓는 건 나중 문제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정작 하나님께서는 의인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간다고 완전히 결정 내렸습니다. 이 땅에 실컷 살다가, 죄인인지 의인인지 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 관심도 없이 살다가 하나님께서 네가 의인이냐고 물으면, 무슨 뜻입니까? 너는 얘 셋 낳고 잘 키웠느냐는 질문이 들어올 줄 알았는데 “네가 의인이야? 네가 죄인이야?” 그런 질문이 들어오면 우리가 평생 엉뚱한데 관심 두고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물론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니까요.

부자와 거지가 있었는데 부자의 관심사가 뭐였습니까? 부자는 날마다 파티 여는데 관심 두었잖아요. “나, 이러다 의인될까, 죄인 될까?” 하고 거기에 관심 없지요. 부자가 돈 관리하기에 바쁘지 언제 거기에 관심 두겠습니까? 그런데 막상 지옥 가서는 아직 죽지 않은 동생 다섯 명에 대한 관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 동생들 부자 되게 해주세요. 동생들 다 장가, 시집 잘 가게 해주시고.” 여기에 있었겠습니까? 지옥에 오지 않게 해달라는 겁니다. 진작 관심 갖지 왜 지옥 가서 이미 끝난 마당에 관심 가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 부자를 다시 시간을 되돌려서 이미 지옥을 갔다가 지옥에서 못 빠져나옵니다만 그렇다 치고 다시 지상의 삶을 살 때 아마 세상 보는 눈이 확 다를 걸요. 아마 거지 나사로를 굉장히 부러워할 겁니다. 이러한 안목, 모든 관점의 바뀜을 성령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성령 받았다는 것은 이미 모든 판정은 십자가로 내려진다고 결정 나고 난 뒤에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의 영이거든요. 따라서 성령 받은 사람은 진정한 자유가 뭔지 압니다. 진정한 자유는 우리가 관심 두지 않았던 그리고 율법에 대해서, 사탄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주께서 옮겨서 벗어나는 그게 바로 자유지요. 성령 받고 난 뒤에는 이미 성령 받았기 때문에 관심사가 완전히 다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같은 경우에 여기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령은 오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나름대로 하나님의 사건을 체험한 게 있지요. 그 체험이 출애굽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너희들이 애굽에서 나왔다고 돼있지요. 강의 처음부터 다시 해보겠습니다.

분명히 십자가 사건은 과거지사입니다. 과거지사란 버스 지나간 겁니다. 어떻게 젊은 날로 돌아갑니까? 안 되잖아요. 그런데 갈라디아서 3장 1절에서 이미 십자가는 지나간 사건인데 뭐라고 하느냐 하면, 십자가가 눈앞에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보고 싶어서 보는 게 아니에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는 시스템을 가동시킨 겁니다. 가동시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던 사건의 취지와 내용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실시되는 그 현장에 구원이 이뤄집니다.

전에 처음에 강의할 때 그런 이야기했지요. 십자가 사건 현장에 가면 구원받습니까? 흐르는 피를 찍어 바르면 구원받습니까? 상당히 중요한 질문이거든요. 십자가 피로 구원받는다고 할 때 우리가 아는 피라는 물질, 피와 나의 관계는, ①찍어 바른다. ②피를 뿌린다. ③피 냄새를 맡는다. 전부 이런 식으로 피와 내가 하나로 엮는 것밖에 생각 못해요. 인간은 오감이니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느끼는 것 외에 인간이 외부의 것을 결합하는 방법은 없지요.

예수님이 십자가 지셨다. 십자가에 보니까 피가 묻혀있다. 어떤 사람이 피로 말미암아 용서 받는다고 하니까 그걸 잘 안다 치고 피 때문에 죄 용서 받는다고 치더라도 그 피를 어떻게 내 피로 만들 거냐 이 말입니다. 냄새 맡을까요? 바깥에 있는 피가 어떻게 내 죄를 용서하는 방식을 내가 채택할 수 있겠어요? 어떻게 바깥의 피가 내 안의 죄를 말끔하게 씻을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안 되지요.

십자가 져도 우리는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하니까 기껏 하는 게 뭐냐 하면, 교회 와서 청소하기, 봉사하기, 헌금내기, 전도하기, 성경 배우고 가르치기, 설교 듣기, 예배 참석하기, 피아노반주하기, 그런 것밖에 더 합니까? 그것 하면 용서받아요? 성경은 그런 식으로 용서받는 게 아니고 예수님의 피로 용서받는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듣는 여러분들이 글쎄 그걸 우리가 모르는 게 아니고 아는데 피가 산소와 결합해서 바짝 말라버렸는데 그 피를 무슨 수로 내 안에 집어넣느냐? 뒷주머니에? 어디에? 어떻게 집어넣으면 우리 죄를 용서받지요? 피를?

피가 물질이죠. 물질이 어떻게 내 죄라는 관념에 불과한 실체가 없는 죄를 씻어낼 수 있습니까? 옷감에 묻은 얼룩이나 때는 하이타이로, 비누로 빨면 빠져요. 지용성 세제를 쓰면 기름때가 빠진다고요. 그런데 내 죄는 어떻게 빠집니까? 빠질 수가 없는데. 그런데 주님께서는 씻어준다고 하거든요. 참 신기하지요. 우리가 지금 신기한 것만 고마워하면 좋겠는데 신기한 건 나중 문제고 그 방법을 모른다면 문제가 크지요. 신기하다, 이것과 피가 어떻게 내 죄를 씻어주지? 방법이 없네. 이것과 완전히 차원이 달라요.

예수님의 피가 내 죄를 씻는다는 것이 너무 어려우면 약간 쉬운 문제로 하겠습니다.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더니만 하나님이 장자 죽이려 왔다고 도로 갔다. 그냥 가버렸다. 왜 갔습니까? 뭘 보고 가셨습니까? 피 보고 그냥 넘어갔다고 했잖아요. 피 보고도 들어와서 죽일 수도 있는 문제잖아요. 피가 뭐 길래 왜 그냥 돌아가십니까? 죽음의 사자가. 그건 우리가 알바 아니죠. 왜 알바가 아닙니까? 죽음의 천사가 피를 보거든 절대로 그 집의 장자를 죽이지 말라고 사전에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지요. 그 지시 받은 게 언약입니다. 언약이란 인간은 모르게 되고 관심도 안 둔 상황이 하나님과 하나님 사이에만 이미 성립된 원리원칙이 언약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들이닥친 거예요.

그러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언약에 대해서 알까요, 모를까요? 모르지요. 언약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데. 언약을 만약에 제대로 알면 자기가 언약을 적용시키는 방식을 강구할 거예요. 그런 식으로 적용 안 됩니다. 우리가 안 되기 때문에 언약의 실시는 어디까지나 언약을 만드신 하나님 소관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겠어요. 언약은 있기만 한 것이 아니고 언약을 적용시키는 것까지 하나님 몫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에어컨을 구입하면 주인이 에어컨 들고 와서 답니까? 아니지요. 에어컨을 구입하게 되면 기사가 따라와서 드릴로 구멍 뚫고 에어컨 달아주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아마추어가 해봐야 시원한 바람 안 나옵니다. 전기에 대해서 알고 공사를 해야 에어컨이 작동이 되고 바람이 나오잖아요.

언약을 우리가 덜렁 받았다. 뭐? 이게 어디 쓰는 물건이고? 이러고 있는데. 언약을 어디에 쓸 건데? 언약으로 어떻게 내 죄를 용서받는데? 몰라요. 언약을 주신 분이 언약을 우리한테 적용시키는 기사분도 따라 오지요. 그래서 언약과 더불어 누가 오느냐 하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 같이 병행해서 우리와 동행되는 겁니다.

그러면 언약이 구체화될 때 사람의 협조와 동의나 사람의 손이 필요할까요? 안 필요한 거예요. 만약에 필요하다면 말이 안 되는 이런 일이 생겨요. 예수님이 십자가 지셔서 “다 이루었다. 자, 너희 죄는 내 피로 말미암아 용서받는다. 나는 피만 흘렸다. 그 다음에 피로 네가 알아서 해라.” 이렇게 합니까? 그러면 피 값이 비싸서 부자만 천국 가요. 예수님 몸에서 나오는 피는 몇 리터밖에 안 되고 한 방울 찍어야 몇 사람 구원하겠어요? 안 되지요.

예수님과 함께 구원받은 강도가 피로 구원받는 걸 알고 가시면류관으로 흘리는 피를 자기 심장이나 머리에 찍어 발라서 구원받았어요? 강도가 무슨 손을 내밀어요. 묶여있는데. 묶여있는 게 아니고 박혀 있는데. 지금 목이나 돌릴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날 밤에 강도가 어디 갔습니까? 낙원에 갔잖아요. 주께서 밧줄로 소몰이 하듯이 모가지 끌고 갔습니까? 그냥 달려 죽었어요.

며칠 전에 동산병원에 가서 누굴 심방했는데 그 본문이 뭐냐 하면, 마르다 마리아 오빠 나사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 살릴 때 뭘 했습니까? 아무것도 안 했지요. 돌문을 치우라는 것은 살려내는 게 아니고 이미 살아났음을 주위 사람들에게 확인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했지요. 오늘 강의 제목을 언약의 확인이라고 합시다. 확인이란 말은 일은 주님이 벌이고 그 일을 주님 혼자 담당하시고(구약은 주의 이름입니다) 백성들에게는 이미 혼자 하셨음을 확인해주는 동시에 확인 가운데 이미 너희는 구원받았다는 것이 들어있어요. 신기하죠.

또 하나 예를 들겠습니다. 예수님이 산이 들려서 바다에 빠지라고 했다면, 어떻게 하면 멀쩡한 산이 들려서 바다에 빠질 수가 있겠어요? 좋은 아이디어 있거든 이야기해보세요. 덤프트럭으로 포크레인으로 산을 들어낼까요? 그러면 바다에 산이 안 생기는데 어떻게 할까요? 정답은 없지요. 방법 없습니다. 나중에 커튼을 젖힐 때 보니까 우리는 이미 구원받은 자로서 확인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일을 예수님이 혼자서 하신 거예요.

아까 지옥 간 부자 이야기했지요. 그 부자가 살아생전에는 파티하기 바빠서 내가 의인일까, 죄인일까에 관심 없지요. 그런데 막상 지옥에 가니까 지옥에 만약에 스물네 시간 있다면 온 종일 관심사가 뭡니까? 동생들 여기 오지 않게 해달라는 거지요. 그래서 아까 제가 이야기했잖아요. 살아있을 때 진작 그런 관심 두지. 살아있을 때 그런 관심 없어요. 살아있을 때 관심은 내 역량이 어느 정도까지 대단한 실적을 남길 수 있느냐. 내가 얼마나 열심히 뛰고 한 달 수입을 얼마큼 높일 수 있는지에 관심이 있다니까요. 내가 하는 내 식대로 밥 먹고 살 수 있는 것을 우리는 내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이 땅에 살지요. 그래서 밥 먹고 살았다 칩시다. 그리고 아파트 샀다고 칩시다. 주께서 아파트 사면 천국 넣어줍니까?

아까 식사하면서 이야기한 건데 태화강 변에 좋았던 꽃을 다 베었다고 했지요. 경치가 좋답니다. 꽃필 때. 저는 울산사람 아니라 모르지만 꽃피면 경치가 좋아요? 하여튼 울산사람도 안 가봐. 꽃폈습니다. 경치 좋습니다. 그러면 그것 구경하면 천국 갑니까? 정말 지옥을 갔다가 다시 울산 태화강 변에 나타났다고 칩시다. 그런데 옆에 사람이 꽃 좋다고 하면, 지옥 갔다고 온 사람이 뭐라고 합니까? “꽃 좋지, 예쁘지. 그래서 뭐? 뭐 없어. 꽃 좋으면 천국 가나?” 분명히 그렇게 이야기할 거잖아요. 어디 꽃에 네 영혼을 다 빼앗기느냐고 할 거란 말이죠.

그래서 제가 이야기합니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 34장에서 하나님의 이름과 사람의 이름이 동행해요. 사람의 이름은 인간들, 이스라엘 백성들이죠. 그 이름 각자의 관심사, 추구하는 바가 다 달라요. 언약을 하나지만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과 함께 주의 이름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들은 언약을 위반한 사례만 자꾸 생산해내는 겁니다.

주의 이름은 죄인과 동행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환경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입니다. 주의 이름이 함께 있음을 아는 사람은, 자기가 지옥 가도 마땅한 죄인인 줄 알지만 주님의 동행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에는 내가 열심히 한 일로 해서 내가 거뜬히 살아남았다는 희망으로 삼고 거기에 매진하고 거기에 시간에 몰입하는 그런 세월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 자체를 뭐라고 하느냐 하면, 34장 13절에 보면, “너희는 도리어 그들의 단들을 헐고 그들의 주상을 깨뜨리고 그들의 아세라 상을 찍을지어다” 12절에 보면, “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들어가는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약속의 땅에 있는 원주민들과 언약을 맺지 말고 종교를 믿지 말라. 왜?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에 관심 두고 싶어도 그들은 언약이 없는 민족이다. 언약이 없는 민족과 생각과 마음을 같이 한다는 것은 그들도 언약에 관심이 없는 게 돼버려요.

그러면 그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렇게 닦달하시기 전에 먼저 언약이 실체화되고 구체화되는 시스템이라든지 언약이 실제로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들을 미리 제시해주면 좋지 않겠습니까? 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이방민족과 다른 원칙을 제시해주면 고맙겠습니다. 언약의 이름으로 나오는 게 있어야하지 않겠느냐고 한다면, 그게 오늘 18절부터 나옵니다. “너는 무교절을 지키되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 그 기한에 칠 일 동안에 무교병을 먹으라”

이게 뭐냐 하면, 십자가 사건이 지나가도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거늘, 이 원칙처럼 이미 지나간 출애굽 사건이 언약에 담겨서 출애굽 사건의 취지가 오고 오는 이스라엘 세대에 반복이 되고 되풀이 되고 또 되풀이 되는 형식을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겁니다. 그게 아뷥월인데

아뷥월 이게 가나안 명칭이에요. 나중에 포로 잡히고 난 뒤에 니산월로 바뀝니다. 니산월은 히브리 달력으로 1월이에요. 요즘 식으로 3,4월, 봄이에요. 니산월 절기가 무교절입니다. 무교절 시작 직전에는 유월절. 보통 무교절, 유월절 하면 골치 아파해요. 이게 언약이 있기 때문에 언약의 죄 용서 능력이 쏟아지기 때문에 나온 용어들이거든요. 그래서 언약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유월절 나왔데, 무교절이 있어? 이제 우리가 이런 식으로 구원받는다고 좋아들 하겠지만 언약에 도통 관심 없는 사람은, “아아 그만해라. 내 앞에서 이상한 단어 쓰지 마세요.” 내가 관심 있는 단어만 하란 말이죠.

그래서 저는 그걸 알기 때문에 설교 시간에 제가 이런 소리 나올 뻔 했어요. 오늘 안재욱이 결혼합니다. 그 말하면 대번 알아들어. 중국에서 인기 있는 가수며 배우. 지난 월요일에 결혼했다고. 우리 성경공부하는 날에. 오늘은 무교절 하면, 안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안재욱이 월요일에 결혼했다고 하면, 누구와 했는데? 시간 금방 지나가는 거예요.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지옥 가 있다면 기쁜 소식이 뭡니까? 안재욱이 결혼한 겁니까? 안재욱이 결혼하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아니잖아요. 지금 동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심판주입니다. 심판주 앞에서 죄인은 지옥 가야 돼요. 따라서 주께서는 의도적으로 지옥 상황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네가 잘났어? 너, 지금 지옥에 와 있어.” 이런 뜻이란 말이죠.

지옥에 와있는데 고맙게도 구원자가 지옥까지 와 있잖아요. 구원자가 심판주고, 심판주가 구원자에요. 지옥을 만드신 분이 지옥에서 빼낼 능력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받을 이름을 준 적이 없어요. 예수님은 지옥의 저주를 받으신 분이에요. 십자가에서 아버지에게. 저주받은 능력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말은, 지옥에서마저도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뜻입니다. 조건은 바로 주님께서 우리 손모가지를 잡아당길 때 그때 가능한 거예요. 그러면 지옥 가도 괜찮겠네.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 울산이 지옥인데? 태화강 꽃 다 베어버린 게 지옥이에요.

쇠퇴하고 후패한 자리에 우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환경뿐만 아니고 그 안에 있는 우리 몸도 주저앉고 있습니다. 망가지고 있습니다. 다리부터 해서 온 천지가 주저앉아 지진이 일어난 것 같아. 내려앉고 있어요. 완전히 네팔이에요. 딴 데 없어. 관심사가 세상에 있으면 그저 세상의 힘든 일 때문에 주저앉으면 그나마 손톱을 벽에 그리든지 해서 악착같이 살아남으려고 애를 쓸 거예요.

그러나 정말 주저앉는 것이 저주의 힘이라면 우리가 그 저주의 힘을 주신 분에 의해서 우리가 동행한다는 말은, “주여, 우리가 어디서 구원받았습니까?”를 확인시키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힘든 인생을 의도적으로 하나님이 유발시켰다고 믿어질 것입니다. 내가 사는 이 곳이 영원히 살 곳이 못 되고 그냥 나그네로 살아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반복해서 인식시키기 위해서 오늘도 힘든 하루를 보내시는 하나님, 감사하지요. 그게 동행입니다.

18절에 나오는 무교절, 그 앞서 있는 유월절, 유월절은 하루고 무교절은 칠 일 동안 하거든요. 신약에 오게 되면 합해서 유월절기라 하는데 유월절기는 유대교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은 칠 일 동안, 바깥에 있는 사람은 팔 일 동안 지키는 것으로 돼있어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할 때 인물로 키가 180이라든지 덩치가 있는 인물로 나타나지 아니하시고 어떤 기능으로 나타나요. 그 기능이 뭐냐? 유월절이고 맥추절이고 수장절이고 그런 거예요. 절기로써 나타나요. 월삭, 나팔절, 초실절, 맥추절, 칠칠절, 오순절, 전부 같은 이야기고요. 수장절, 초막절도 같은 이야기에요. 그런 절기로써 자기 자신을 드러내더란 말이죠. 절기를 지키는 기능을 통해서. 도대체 절기 지키면 뭐가 생산되기에? 절기를 지킴으로써 이 땅에 없던 새로운 게 나와야 되잖아요.

절기를 지키면 제사를 하게 돼있어요. 제사 지키면 거기서 피가 나오게 돼있습니다. 그 피입니다. 어린양의 피. 그러니까 옛날에 출애굽 당시에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서 애굽과 분리되면서 홍해를 건너 왔잖아요. 그래서 구원받았잖아요. 그 어린양의 제사를 이제는 이스라엘 내부에서 절기를 율법을 통해서 절기 때마다 이걸 되풀이하고 반복하는 겁니다.

안식일에 양 잡잖아요. 안식일의 의미가 확산이 되면 절기가 되고, 이 말은 안식일의 제물이 절기를 통해서 더욱더 많아지고 번잡스럽게 돼버려요. 그 말은 하나님의 희생의 다양성, 하나님의 대신 죽으심이 어떤 경우에도 적용이 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이렇게 절기를 지키게 한 겁니다. 절기는 한 번 지나면 끝나는 게 아니요. 순회가 돼요. 봄, 가을로 순회 돼요. 매년 되풀이 돼요. 나중에 신년 절기가 추가되고.

매년 순회된다는 말은 일년, 이년, 삼년, 사년이 언제 끝을 보느냐 하면 마지막 때가 되느냐 하면, 7과 관련된 해가 오게 되면 마지막이 돼요. 7년을 안식년이라고 하고 7년을 일곱 번 하게 되면 49년 되지요. 49+1년이면 그게 바로 기쁨의 해, 희년. 그런데 안식일은 한 날이고 희년은 오십 년 째에요. 그 중간과정을 메커니즘이라고 합시다. 그 메커니즘에 7이란 숫자가 작용해요. 7이란 숫자에 하나님께서 의미를 담는데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7일만에 창조하시고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해서 만든 날이 안식일입니다.

창세기 2장 1절에,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천지창조는 다 만들었어요.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일은 있어요. 뭐냐? 천지창조를 다 만드신 본인을 드러내는 일은 남아있어요. 그래서 유대교에서 이렇게 이야기해요.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마감한 게 아니고 마감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천지창조를 마감시켰다. 새로운 일이 따로 남아있기에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마감시켰다고 이야기합니다. 천지창조를 마감해야 비로소 될 일이 따로 있다는 거예요. 그게 유대교에서는 토라의 완성, 모세오경을 토라라 하는데 신약에 와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누굽니까? 예수님이죠.

그렇다면 여기서 정리해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하시고 그 뒤에 율법을 줬지요. 율법을 준 취지가 인간들은 자기가 지키는 걸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천지는 이미 창조했어요. 끝났어요. 끝났는데 율법이 왔다는 말은, 끝난 창조와 율법이 결합해서 진짜 하나님께서 영원한 안식, 보여주셔야 될 어떤 새로운 일이 있었던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 천지창조를 하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모습을 나타내서 주가 되는 순간 천지창조는 진짜 끝이 된다 이 말이죠. 창조하신 분이 본인이 창조하신 것에 의해서 표현될 때 세상은 끝이 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을 이유가 없잖아요.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어서 예수님이 된 겁니다. 맞지요? 예수는 마리아의 아들로 육신을 입어야지요. 그냥 계시면 성자 하나님, 아들 하나님이에요. 아들 하나님이 육신이 될 이유가 뭔데요? 육신이란 피조체인데, 흙으로 만든 건데. 예수님께서 흙으로 만든 육신을 왜 입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창조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 됨의 완성을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 뜻이 되는 겁니다. 신기하죠. 우리 같으면 우리가 만든 것과 안 놀잖아요. 어디 네가 나와 맞먹어? 주님께선 자기가 만든 인간을 자기 것으로 수용해서 인간을 통해 나타난 주님이 되셨잖아요.

사실은 그걸 미리 내다보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었다. 인간은 흙이지만 하나님 형상을 입혀서 사람이 된 겁니다. 사람 속에 이미 하나님의 형상이 들어있었던 거예요. 그걸 하나님의 속성이 들어있다고 봅니다. 속성이 들어있으니까 모든 인간은 죽지 않고 한쪽은 지옥 가고 한쪽은 천국 가고, 예수님의 속성대로 공의와 사랑으로 분리 되면서 통합적으로 전체는 예수님의 속성을 아우르는 새 하늘과 새 땅, 새로운 우주, 새로운 세상이 영원토록 진행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들어있습니까? 우리 안에 신성이 들어있습니까? 논리적으로 그렇게 물을 수 있는데 문제는 ‘우리 안’이라는 게 어디를 말하는 게 중요해요. 우리 죄 안에 주님이 들어있어요. 그걸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저주받을 요소 속에, 우리의 죽음 속에 예수님이 들어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기 이전부터 주님이 먼저 죽음과 하나가 되셨어요. 맞지요. 예수님 십자가 지기 전에 십자가 진 사람 있습니까? 아무도 없잖아요. 최초요, 마지막으로 십자가 지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서 사도 바울은, 나는 십자가 안 졌다고 했거든요. 주께서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 지고 따라 오라고 했잖아요. 그 말 듣고 십자가 지고 따라 간 사람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지요. 인간은 십자가 질 수 없어요. 나중에 성령이 와서 예수님의 성도가 되면 우리가 십자가 지는 것이 아니고 예수 안에서 십자가 지도록 주께서 조치를 취하지요.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나옵니다.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거늘. 성경은 하나님 본인 이야기만 자꾸 해대시는 거예요. 누가 보이라 했든가요? 주님이여, 십자가 보여주소서. 누가 요청한 적 있습니까? 없지요. 요청한 적도 없는데 문제 해결에 대해서 해답을 하나님을 알고 계시잖아요. 해답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 쪽에서 우리에게 제시하는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이 십자가란 말이죠. 그러면 그 십자가에 대해서 우리는 관심조차 두지도 않았는데 도리어 주님 입장에서 유일한 해결책으로 십자가뿐이라고 제시했다면 그 다음부터 성령께서 하실 일은 십자가에 관심 없는 우리로 하여금 평생 십자가에 관심 두도록 조치를 해주시는 겁니다.

제가 어제 가락모임에서 이런 이야기했어요. 지난 수요일에 이야기했구나. 기도할 때 뭔가 기도할 게 있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 아닙니까. 과거에 기억된 거죠. 기도 시작할 때 결국 자기 아는 것, 자기 이름으로 기도를 해요. 기도 마지막에는 예수님으로 끝나지요. 내 이름으로 시작한 기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바뀌어야 되지요. 바뀌려면 나는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있다는 것을 언약적으로 확인하면 되지요. 그러면 기도하면서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주께서 알아서 해주시고 나는 알아서 해주신 것에 대해서 인정한다고 믿어버리면 그 기도는 응답된 거예요.

“주여, 우리 얘가 공무원시험에 합격해야 되겠습니다.” 하잖아요. 온종일 스물네 시간 관심이. 아직 그 사람 지옥 안 갔으니까. 지옥 가면 거기에 관심 없겠지만. 생각하다가 기도하다가 성령에 의해서 바뀌는 겁니다. “딸이 누구 거고?” “주님 것입니다.” “그럼 네가 신경 안 써도 되겠네. 왜 쓸데없이 신경 쓰나. 공무원시험 치는 것도 내가 한 거고 네가 한 게 뭐 있다고?” “그래도 딸내미한테 밥은 해줬잖아요.” 기도하면서 주고받는 거예요. “밥하기 위해서 건강한 게 한 것은 누가 했는데? 설거지 하면서 그릇 안 깬 것도 나, 하나님인데. 네가 걸어서 안방에서 부엌까지 발걸음을 누가 셌는데? 설거지하다 머리 아파 봐 못하지. 안 아프게 한 것도 하나님인데. 네가 한 게 뭐가 있다고? 딸내미 되던 안 되던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나한테 맡겨.” “알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게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거예요.

중간에 자기 소원 이야기하다가 이것을 누구한테 양보해야 돼요? 내 이름에서 주의 이름으로 양보하는 게 기도 응답이에요. 기도 끝나자마자 15분 안 되서 “아빠, 나 합격 먹었어. 나, 잘했지.” “그래 수고는 했다만 주님이 하셨어.” 빙그레 웃지요, 속으로. 그럼 딸이, “아빠는 날 위로 안 해주고 또 주님이가.”

딸내미 공무원시험 치는 사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목회하시잖아요. 아빠를 구원하시잖아요. 엄마를 구원하시고. 이게 하나님의 절묘한 작전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게 내 뜻대로 안 되서 내가 속에서 불이 났을 때 이게 주님의 목회 방식입니다. “불나냐?” “불납니다.” “세상 잘 돌아가고 있는데 네가 왜 불나는데?” “태화강의 꽃은 왜 꺾으십니까?” “내가 꺾으라고 했다, 왜? 세상 잘 돌아가는데 네 원대로 돌아가야 될 근거 있나?” “없습니다.” “없으면 입 다물고 있어.”

절기를 지킨다는 것은 제사를 반복하는 것이고 제사는 우리 죄를 대신해서 희생물이 동원되는 겁니다. 따라서 희생물을 제사장이 질질 끌고 불붙는 제단에서 불을 토할 때는 우리는 할 말을 잊어야지요. 이 동네가 내 주장할 동네가 아니라는 사실, 이것이 내 입장을 하나님께 강요할 동네가 아니라는 사실. 주님께서 언약대로 실시하는 동네지 내 뜻을 관철하는 고집 부린다고 성취되는 그런 동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때 그 사람이 바로 신약 같으면 십자가를 아는 사람이고, 구약 같으면 절기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고 무교절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에요.

갈라디아서에서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거늘, 이 말하기 전에 이미 구약에는 무교절이 눈앞에 보이거늘, 어제는 유월절 했잖아요. 앞으론 오순절 해야 될 거야. 오순절이 눈에 보이거늘 누가 너를 꾀더냐? 엉뚱한 지옥 가라고 꾀더냐?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은 이야기에요.

그렇다면 무교절에 뭐가 담겨있기에 이것이 우리 죄를 용서하는 내용으로 꽉 차 있느냐? 무교절은 봄과 가을(유대에는 계절이 이 둘밖에 없어요)로 순환되면서 뭐가 자꾸 생산되지요? 맷돌 갈게 되면 콩가루 나오듯이 계절을 갈게 되면 여기서 언약이 나와요. 하나님 언약 내용이 나와요. 봄 절기와 가을 절기 둘로 나눠집니다. 봄 절기는 유월절, 무교절, 수장절, 맥추절도 포함되고. 가을 절기는 히브리 달로 칠월이고 지금으로는 10,11월로 보면 돼요. 그때는 추수잖아요. 그러면 약속의 땅에서 주님이 추수하게 하셨지요.

그러면 주님이 언약이라고 내놓은 공식이 다 입니까? 아니지요. 이런 공식이 나오게 된 중간과정이 언약이죠. 누가 희생했기에 우리가 이 땅에서 밥 먹고 사느냐? 밥 먹고 사는 것을 좋아하지 말고 그걸 따라가 보자. 이 공식이 나오게 된 열매 맺게 된 과정, 그 과정에 동원된 것이 무교절이고 절기입니다. 그것은 10분 쉬고 하겠습니다.

한윤범(IP:14.♡.134.87)

15-06-09 10:50

20150605b 울산강의-출애굽기 34장 : 언약 확인하기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합시다.

무교병이라 하는데 이름도 희한하죠. 여기 병이란 떡을 이야기하고 무는 없을 무, 교는 이스트에요. 효소, 누룩. 누룩이 없는 떡을 먹는 일주일, 이게 바로 무교절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지금 약속의 땅에서 농사가 잘 됐다. 잘 된 덕이 뭐냐? 누룩 안 들은 떡을 먹었기 때문이다. 이걸 앞뒤로 연결시켜라. 연결이 잘 안 되지요.

보통 농사가 잘 됐다는 것은 열심히 밭을 갈았다. 씨를 제대로 뿌렸다. 이렇게 저렇게 했다고 하는데 약속의 땅은 천국의 모형, 모델이라고 보면 돼요. 천국에서 인간이 열심히 한다고 더욱더 예쁘장한 천국 됩니까? 안 되지요. 씨 뿌리는 비유에서 옥토가 열매 맺었잖아요. 그 많은 열매, 누가 그렇게 한 겁니까? 씨 뿌리는 농부가 주님이잖아요. 말씀을 뿌리는 분이 누굽니까? 주님이죠. 그러면 우리는 자라남을 당했잖아요. 알곡으로. 알곡의 특징이 뭐냐 하면, 내가 한 게 없네. 이게 알곡이잖아요. 그런데 가라지의 특징은, 왜 내가 수고한 대로 보상 안 해주십니까? 이게 가라지에요.

제가 일방적으로 우기는 게 아니고 포도원 비유에 나와요. 아침에 열 시 에 온 사람과 오후 다섯 시에 온 사람의 차이가 뭐냐 하면, 열 시에 왔기 때문에 저 사람보다 노동이 많기 때문에 저 사람이 한 데나리온 받는다면, 나는 여섯 데나리온 받는 게 합당하다는 게 바로 먼저 온 사람의 특징이거든요. 그래서 천국은 뭐냐 하면, 바로 먼저 온 자를 나중 되게 만들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게 만듦으로써 천국이란 일체 인간의 애씀과 노력이나 보탬이 필요 없이 유지되는 나라,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 주께서 포도원 비유를 이야기하신 거예요. 그 포도원 비유에 앞선 모델이 여기 약속의 땅이고.

약속의 땅에서 가을 추수의 대표적인 것이 포도, 무화과. 하여튼 포도 농사가 잘 됐습니다. 그런데 잘 된 이유가 일월 달에 그러니까 봄에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먹었기 때문에 농사가 잘 됐다고 할 때에 주변에 있는 이방민족들의 그걸 납득을 하겠습니까? 미쳤나. 무슨 엉뚱한 소릴 하고 있어.

그럼 말을 다시 해봅시다. 내가 한 평생 이기주의로 살았고 죄만 짓고 돈 버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런 내 죄가 예수님의 피 흘림으로 용서가 되었다. 이게 연결이 돼요, 안 돼요? 그럼 네가 착한 건데. 착한 것 없어. 네가 전에 남한테 희생하고. 희생하는 도중에 내 자랑질 하기 바빴어. 전에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남 시기하고 미워하고 막 튀어나왔어. 남들 보기에 봉사로 보이지만 봉사하는 순간순간 내 죄가 발산되는 거죠. 전에 성가대 소프라노? 소프라노 하면서 내 목소리 좋다고 자랑질 했어. 너는 모르지, 주님은 알아.

내가 어떤 짓을 해도 죄가 쏟아지는 순간순간들이에요. 행동한다는 것은 죄의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어떤 짓을 해도 그게 죄가 쏟아지게 돼있어요. 시기와 질투와 미움과. 그리고 기쁨이라도 누구 기쁨? 자기 잘된 기쁨. 그 기쁨 속에 자기 원수가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이 거꾸러질 때, 메르사가 걸려라. 지가 아주 미워하는 연예인이 나오면, 저건 빨리 이혼도 안 하나. 이런 것 있잖아요.

매순간에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안 쏟아지는 때가 없고 매 순간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순간이 없어요. 야고보서에 보세요.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과 원수 되지요. 원수 안 되는 순간이 없다니까. 원수 안 되려고 노력이고 뭐고 원수 아닌 순간이 없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천국을 가게 됐다고 하니까 그걸 누가 이해하겠어요, 납득이 되겠어요.

지금도 저한테 메일 오고 전화하는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 많이 하는데 뭐든지 죄가 되면, 목사님 설교 참 어렵습니다. 뭘 해도 죄가 된다니 너무 어렵습니다. 속으로 이야기하죠. 그럼 죄 아니에요? 본인이 죄 아니라고 하는 것은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그래요. 성경을 보면 안 걸리는 구석이 없는데. 범사에 감사하라. 그러면 불평하면 뭐가 돼요? 범사에 감사하라, 위반 되죠. 그것도 죄가 되는데.

야고보서 4장에 뭐라고 돼있던가요? 네가 어느 도시에 가서 일한다고 하지 말라. 네가 주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 하리라. 그런데 우리가 내일 일 계획할 때 주께서 내일 살려줄까? 이렇게 생각합니까? 당연히 살아야지. 왜? 오늘 살아있으니까. 주의 뜻이면 살고 주의 뜻이 아니면 죽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죄 짓는 거예요.

가수가 녹음해서 판 내면서 기획사 사장이, 이번에 아무리 못해도 십만 장 나갑니다. 가수가, 주의 뜻이면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죽을 것 같으면 녹음은 왜 했어요, 차라리 지금 죽지. 대번에 이렇게 나올 거란 말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 언약이 지배하는 환경입니다. 그러면 언약을 모르게 되면 누가 지배해요? 아무도 지배 안 하지요. 하루하루 사는 것은, 내 운명은, 내 팔자는 내가 결단 내리고 내가 결심해서 내 역사, 내 인생, 내 팔자는 누가 개척하고 누가 이끈다? 내가 이끈다. 이걸 언약에서는 그게 바로 불순종이 역사하는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평가되는 거예요. 주님 보시기에.

가락교회에서도 그런 이야기했습니다만 예수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거든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않지만 나를 미워한다. 이유가 뭐냐? 예수님이 먼저 시비 걸었잖아요. 세상이 악하다고 했기 때문에 세상이 그 소리 듣고 예수를 미워하게 돼있어요.

주님과 동행한다는데 그러면 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천국은 어디 있느냐와 같은 질문이거든요. 예수님 계신 곳이 천국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천국은 어디 있습니까? 바로 죽음 안에 있지요. 죽음 안에 천국이 있기 때문에 천국은 가고 싶어도 실제로 가고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왜? 죽음 안에 있기 때문에 사람은 계속 이대로 살려고 하지 죽으려고 안 하거든요. 그런데 죽지 아니하면 천국에 갈 수 없어요. 죽음 안에 천국이 있기 때문에.

인생을 살면서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게 있어요. 실패입니다. 인생 실패하는 거예요. 그런데 천국은 어디 있느냐? 바로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실패의 자리가 천국의 자리입니다. 그 말은 아무도 자진해서 천국 못 온다는 거죠. 다른 말로 하면 아무도 자진해서 언약을 못 지킨다. 이걸 또 다른 말로 하면, 정말 구원받은 사람은 그 사람의 모든 인생을 성공적인 인생으로 바꾸는 게 아니고 실패의 인생으로 바꿔주시는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전에는 감히 그 길을 들어서지 못한 자들이 성령을 받고 난 뒤에는 실패가 곧 성공인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내 인생 실패했네.

그렇다면 무교병이란 누룩 없는 떡을 먹는 그 사실이 어떻게 우리 축복이 되고 죄 용서가 되고 의인과 관련돼있는가? 무교병을 처음에 실시된 것이 출애굽기 12장에 보면, 바로 유월절에 무교병을 먹었어요. 그 당시에 모세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해결을 달아줬습니다. 그 떡이 무슨 떡이냐 하면, 고난의 떡이라고 했거든요. 그렇다면 고난의 떡을 먹는다는 말은 떡을 먹는 동시에 우리 밖에 있는 고난이 우리 안에 들어온다는 것과 같은 뜻이 되는 겁니다. 고난 없는 자리가 살 길이 아니고 고난이 있는 딱딱한 떡. 그러니까 시늉이 아니에요. 누룩이 없어서 폭신폭신하지 않고 딱딱하다고요. 그걸 고난 떡이라 하는데 그 고난이 있는 그 장소가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고 해서 그 떡을 먹는 거예요. 제 말이 맞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 고난의 떡을 먹으면 사나? 이렇게 오해하는 거예요. 고난의 떡을 먹는 행위로 사는 게 아니고 고난의 떡을 먹는 행위를 통해서 내가 일구어나가는 내가 뭔가 행위 해서 기대할 수 있는 것 말고, 그 고난이라는 내가 기피하고 싶은 그 안에 있는 어떤 분의 행위로 말미암아 내가 사는 그것을 무교절 언약을 통해서 확인하는 거예요. 그걸 고백해내는 거예요.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다 고난을 기피하지요. 그러나 기피하는 고난이 우리를 오히려 드디어 살린다는 뜻이에요.

그걸 신약에 적용하면 예수님에 대해서 우리는 예수님을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봤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기피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님과 가까이 한다는 것은 곧 권세자에게 옥에 갇히고 목 베임을 당하는 상황이 돼버려요. 오죽했으면 베드로가 사람들 있는데서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겠어요. 하고 싶어서 했겠어요? 죽는 게 무서워서 했겠지요. 베드로도 자기 행위로써는 주님 앞에 갈 수 없어요.

제가 오늘 강의하면서 제일 먼저 언급한 것을 다시 언급할게요. 어떻게 십자가 피가 내 죄를 씻어주느냐? 지금까지 그 문제를 이야기한 겁니다. 그 문제를 하면서 오늘 구약 본문을 봤어요. 피로 용서받는다는 자체가 인간은 알 수 없고 하나님과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언약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하나님 사이만 아는 약속이에요.

따라서 그 약속의 내막이 그냥 하나님만 알면 되는데 그 약속이 캡슐에 담겨 있다가 캡슐이 터져버려요. 감기약 중에 365가지가 알맹이가 들어있다고 선전하는데 그 알맹이가 터지니까 언약이 터지니까 언약이 어디로 쏟아집니까? 언약이 우리한테 쏟아지겠지요. 쏟아지면 구원된 사람이에요. 쏟아진 사람들이 누구냐?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쏟아지는 내용들이 그게 바로 무교절이고 유월절이고 수장절이고 맥추절이고 이런 감기약 알맹이들이 쏟아지는 거예요. 월삭이고 절기고 초막절이고 나팔절이고 율법이 막 쏟아져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사태를 파악 못했기 때문에 저것 지키면 구원받겠구나. 이렇게 나온 거예요. 지금 주님께서는 이미 홍해를 건너게 하셔서 율법을 줬는데 그들은 뭐냐? 새삼스럽게 저것 지키면 자기 원하는 것, 자기 육신이 잘 되는 것, 평소에 애굽에서 하던 생각, 내 힘으로 내 인생을 뜯어고쳐보자는 그 버릇을 달성하는데 율법을 동원시킨 겁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잘못이 뭐냐 하면, 율법을 통해서 자유를 얻으려고 한 그것이 잘못이에요. 율법이 자유케 하는 율법은 맞아요. 야고보서에 나오잖아요. 그런데 율법을 통해서 자유를 얻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의 방식은 율법을 지키게 되면 지킨 만큼 마일리지가 쌓이겠지요. 그 마일리지만큼 어떤 고난이 있느냐 하면, 죄를 여유 있게 지을 수 있는 여지도 함께 늘어나는 겁니다.

착한 일 많이 하고 공부 되게 잘하고 시험 너무 잘 치게 되면, 엄마 오늘 컴퓨터게임해도 되지? 착한 일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쿠폰이 남아돌아. 나쁜 짓에 좀 써먹어도 남아있으니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돌아서는 그걸 유대인들은 자유라고 한 거예요.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 돌아가는 것이 맞아줄 때 그걸 자유라고 본 겁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난 뒤에 잠깐의 꿀맛 같은 휴식 시간 같은 것.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그런 생각해보세요. 그런 사고방식으로 천국 가겠어요? 천국 가게 되면 질색합니다. 밤낮없이 주 앞에 찬송하는데 나중에 목이 쉬어서 쉬었다 합시다. 찬송도 처음에 일주일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 동네 나한테 전혀 취향에 안 맞네. 억지로 해서 안 되네. 그런 사람은 사전에 복음을 통해서 다 떨어져 나가게 돼있어요. 서울에 어떤 개척 교회하는 분이 오셨는데 그런 이야기했어요. 복음 전한다는데 24명 있다는데 일년 뒤에 몇 명 남는지 봅시다. 복음 전해보세요. 다 떨어져나가지.

무교절은 고난을 알려주는 네가 기피하는 것, 내가 수용해서 구원했다는 걸 알려주는 십자가 같은 효과, 그게 바로 무교절입니다. 그 날은 말랑말랑한 떡을 먹는 날이 아니에요. 말랑말랑한 떡은 자기 입맛에 맞아. 먹기 좋아요. 더 먹고 싶어. 뱃살 나와. 살쪄, 얼굴 좋아. 빵 먹고 살 쪘네. 자기가 기대한 거예요. 그러나 고난 받기 위해서 빵 먹으세. 이건 무교절의 본 취지입니다. 이런 인간 없습니다. 무교절 억지로 지키면서도 사실은 구원은 무교절 지켜서 받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죄를 미리 용서하신 분에 의해서 그들이 구원받지요. 다 구원받는다는 뜻은 아니에요. 택한 백성만 구원받지요.

18절에, “너는 무교절을 지키되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 그 기한에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으로 이는 네가 아빕월에 애굽에서 나왔음이니라”라고 했는데 “무릇 초태생은 다 내 것이며 무릇 네 가축의 수컷 처음 난 우양도 그러하며 나귀의 첫 새끼는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장자는 다 대속할지며 빈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 말지니라”

이건 전부 주께서 강탈해 가시는 거죠. 그리고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하나면 모르지만 자식이 둘 있을 때 맏이가 좋던가요, 둘째가 좋던가요? 느낌 상, 느낌 아니까. 책임을 누구한테 지웁니까? 누가 잘못했을 때 더 나무라지요? 자식마다 다르겠지요. 맏이는 다르답니다. 맏이가 부모 생각하는 게 아무래도 다르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먼저 태어난 만큼 동생보다 선배잖아요. 아버지, 어머니와의 관계가 그만큼 기간이 기니까 기억을 더 소유하고 있지요. 동생 없을 때 자기와 부모만 있을 때 이걸 한 가족으로 본 거예요. 동생이 태어나게 되면 기존의 가족, 나와 부모와 있는 가족에 덤으로 하나 동생이 태어난 것뿐이지 동생까지 당연히 있어야 된다는 생각은 안 갖고 있습니다. 인간의 시간적 한계가 그래요. 원래 있는 것에 밥 하나 추가한 거예요. 아줌마, 반찬 더 주세요. 이것과 똑같은 거예요.

그런데 그 장자를 빼낸다는 말은 뭔 뜻이냐 하면,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는 거죠. 장자를 빼내면 마치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너는 죽고 나는 살자는 식으로 바친 게 아니에요. 이삭을 잡을 때 그 심경이 어떻겠습니까? 차라리 이삭 대신에 아버지가 죽고 싶어요. 장자는 내 것이라는 말은, 장자만 내 것이 아니고 온 가족이 주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네 가족의 미래는 네가 책임지고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걱정할 사람은 따로 있고 계획할 사람도 따로 있다. 그분이 누구냐? 하나님이다.

다시 말해서 너희들은 언약 만들기에 동원된 일꾼들이지 너희끼리 아무리 아이디어 내봐야 언약은 안 만들어져요. 유월절, 무교절 지켜봐야 언약 안 됩니다. 무교절을 제시하고 유월절을 제시하고 초막절을 제시한 그분에 의해서 언약이 이뤄지잖아요. 하나님은 우리의 협조가 필요한 게 아니에요. 우리 아이디어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이미 일 다 해놓고 확인 차원이라니까. 언약을 확인한다니까요.

주님께서 확인하는 차원에서 그들의 것을 바치라는 말은 빼앗는 게 아니고 사실은 뜯어내는 거예요. 뜯어낸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복권을 동전으로 긁는 것 있지요. 처음 보면 축 당첨 해놨어요. 그건 폼이고 동전으로 긁어보란 말이죠. 축 당첨인지 말만 그런지. 동전으로 긁어보면 한 병 더 나올 수 있는 문제거든요.

그런데 주님께서 내 인생을 뜯어내는 거예요. 껍데기를 뜯어내니까 뜯어내면 낼수록 주님이 나오네. 결국 주님이 몸체고 우리는 나라는 이름의 아담의 껍데기로 살포시 껍질 부분으로 덮여져 있던 거죠. 결국은 하나님이 내 아들 있는지 동전으로 긁어본 거죠. 이걸 구약에서는 네 속에 내 언약 잘 있는지 긁어보는 거예요. 긁어보는데 이스라엘은 난리 났어. “주여, 내 아들 데려가면 안 됩니다. 농사짓는데 얼마나 땀 흘렸는데 10% 내라고 하시면 저는 못 삽니다. 강제로 원천징수가 어디 있습니까.” 이게 뭐냐 하면, 내 인생 내가 살겠다는데 왜 도움은 안 주고 뜯어 가십니까? 조폭도 아니고 양아치도 아니고 뜯어 가느냐고 나오는 거예요. 우린 안 그런 줄 압니까? 마찬가지인데.

욥이란 가정이 있었는데 어떤 도적들이 와서 종들을 죽이고 그 다음에 태풍 불어서 천막이 무너져서 아들이 다 죽었어요. 그리고 양들 다 빼앗아가고. 그때 욥이 뭐라고 했습니까? 동전으로 긁는 분도 주님이요. 주신 자도 하나님이요, 복권 주신 분도 하나님이고 복권 위에 동전으로 긁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천상 회의할 때 사탄이 옆에 있었거든요. 하나님이 실명을 거론했습니다. 욥을 보았느뇨? 욥의 믿음이 대단하지? 빼앗아 가도 믿음이 변치 않았잖아. 도리어 찬양했잖아. 사탄의 임무가 있어요. 고소하는 거예요. 몸이 안 아프니까 메르스 안 퍼졌으니까 기뻐하지 메르스 걸려보세요. 원망하지.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메르스 걸리도록 해라. 다만 목숨은 손 못 댄다. 이 모든 것이 욥의 남은 인생이 아니고 전부 다 언약을 위함이에요.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거늘 이란 말은 뭐냐? 십자가가 현재 그냥 책에만 박혀있는 십자가가 아니고 지금 현재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옛날 사람들, 요새 고등학생보다 바보 같아. 공기 안 보인다고 공기 없는 줄 알아요. 지금도 공기 안 보입니다. 그런데 공기 있는 줄 어떻게 압니까? 질소 74%, 산소 몇 %, 이것 어떻게 압니까? 다른 걸로 측정하니까 나오잖아요. 높은 산에 올라가면 공기가 희박하니까 코피 터지고 하잖아요. 이게 과학의 힘입니다. 과학이 너무 나갔어. 과학이 과학 자체를 파다보니까 실체는 없고 에너지의 장, 에너지의 영역이었습니다. 이게 파동인지 입자인지 분간이 안 되고 전부 에너지의 바다, 에너지의 물결이에요. 이 세상의 모든 것도 에너지입니다.

기쁨, 사랑, 존경, 애정, 배려, 뇌 속에 있는 뇌 구조의 에너지의 움찔거림이고 파닥거림이에요. 현대양자물리학이 그래요. 끝까지 가 보세요. 사람 자체도 없는데. 웃는 것, 우는 것은 신경 세포에서 회로 하나 바뀌었을 뿐이에요. 이 말은 뭐냐 하면, 웃고 싶어요? 주사 한 대 맞으면 돼요. 울고 싶어요? 약 하나 먹으면 돼요. 약물효과, 약리효과, 새로운 화학구조에 의한 약물만 들어가면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평화, 내게 강 같은 주사~ 내게 강 같은 평화가 주사를 통해서 온다니까요. 믿음이요? 믿습니다, 믿습니다, 입만 아파요. 약물주사 놓으면 주여, 할렐루야.

인간은 기계입니다. 이게 과학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과학이 언약을 밝혀냈습니까? 못 밝혀냈지요. 창조과학이 언약을 밝혀냈습니까? 못 밝혀냈어요. 창조과학은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언약입니다. 언약은 율법을 통해서 자기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뭡니까? 고난의 떡을 먹어라. 그리고 모든 네 가정과 자식을 몽땅 주님한테 맡겨라. 너는 처음부터 네 것이라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게 언약이에요.

첫 것을 가져간다는 말은, 나머지 것은 덩달아 따라 나오는 거예요. 줄줄이 사탕처럼 얽혀서 당겨서 가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가 당겨줍니까? 본인이 왜 맏이에요. 성도는 맏이가 따로 있습니다. 로마서 8장에 나오거든요.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그 맏아들이 누굽니까? 우리는 내가 최고에요. 근데 우리 위에 맏아들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맏아들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거예요. 왜 맏아들의 모습으로 오셨느냐 하면, 예수님께서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구약을 완성하거든요. 예수님 피 안에 모든 구약의 말씀이 들어있거든요. 장자와 아버지가 이야기 되어서 언약이 성취되니까 우리를 대신하는 장자로 예수님이 아버지 앞에 나서신 거예요. 맏아들입니다. 우리는 양자고.

정리해봅시다. 하나님의 언약은 언약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율법으로 외부로 파견근무 나갑니다. 그러니까 언약이 있고 그 언약이 율법으로 뿜어져 나오면서 이스라엘 전부를 지배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어떻게 마중 나오느냐 하면 그것이 언약에서 나왔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한테 온 율법을 내가 행함으로 지켜가면서 야금야금 성취할 수 있다고 착오를 일으키죠. 왜? 실제적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나님이 했다고 보기 때문에. 누룩이 없는 떡을 먹어라.

쉽게 말해서 이런 겁니다. 여기 비타500을 먹어라. 이것이 내 뜻이니라. 얼마나 쉽습니까? 마시면 되잖아요. 이게 인간의 오해라니까요. 십자가를 믿어라. 구원받는다. 얼마나 쉬워요. 십자가 믿으면 되잖아요. 그게 십자가 믿는 게 아니라니까요. 십자가 믿는 게 믿는 게 아니고 십자가를 믿게 하신 분은 오직 주님이라는 내용을 가질 때 고백이 나올 때 그게 십자가 믿어지게 된 거예요. 수동적이에요. 내가 십자가 못 믿어요. 무슨 재주로 믿습니까? 못 믿는데.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말은 잘해. 알고 있지요. 십자가를 믿게 되면 십자가뿐만 아니고 나머지 모든 것까지 주께서 알아서 하신다는 것도 동시에 같이 믿게 돼있어요. 세상만사가. 십자가만 달랑 떼어 믿고 나머진 자기가 일하고, 그런 것 없습니다. 그런 것 안 됩니다.

그 다음에 21절 봅시다.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제 칠 일에는 쉴지니”

모든 절기는 안식일의 확대, 확산이라고 했지요. 아까 제가 언급했잖아요. 그건 수요일 설교 들어보면 자세히 나옵니다. 지난 설교부터 연쇄적으로 했어요. 안식일에 드리는 제사가 드디어 절기 제사로 넘어갑니다. 제물들 종류가 다양해지고 복잡해져요. 하지만 공통점은 안식일을 지키는 겁니다. 안식일이 중심이 돼있어요.

그러면 안식일은 무슨 날이냐? 안식일이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고 지어낸 건 아니고 안식일이 왜 제정됐습니까? 객관식으로 할게요. ①6일 동안 일하니까 너무 피곤하니까 하루 쉬라고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만들어준 날이 안식이이다. 맞아요? 틀리지요. 그러면 수요일에 하든지 목요일에 하든지. 그리고 실제로 안식일에 쉽니까? 안식일에 더 바쁜데? 안식일에 놀러 가 보세요. 차 막히고 더 힘든데요.

이 땅에서 인간은 이마에 땀 흘리게 돼있어요. 저주받은 동네에서 무슨 쉼이 있어요. 쉼 없어요. 저주받은 동네는 저주받으라고 있는 동네지 무슨 쉼을 얻어요. 안식일은 주님만 지키지 우리는 못 지킵니다. 흉내 내지 마세요. 모방하지 마세요. 안식일은 있어요. 못 지키니까 없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유대인들도 그렇고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고 안식일 못 지키면서 믿는 척을 하기 위해서 새로운 조항들을 만드는 것은 무슨 수작입니까? 안식일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를 죽이는 날이에요. 왜 죽이느냐? 사람은 일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사람이 살아있어요? 산다는 자체가 가만있어도 일이에요. 눈 뜨고 살피니까. 그럼 안 살피면? 안 살피면 눈동자가 활동하잖아요. 기계가 일하잖아요. 안식일은 아무것도 안 하는 날이 아니고 주께서 하시는 일을 보라는 거예요. 주께서 하시는 일이 뭐냐? 뭐가 주의 일입니까? 요한복음 6장에 보니까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 일이라고 했어요. 우리가 일 안 하고 누가 대신 일 하셔서 오늘날 우리가 있네. 이걸 확인하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인간을 몇 째 날에 만들었어요? 6일째 만들었지요. 만약에 두 번째 만들어놨으면 얼마나 간섭하겠습니까? 인간을 두 번째 날에 만들고 꽃들을 세 번째 날에 만들면 얼마나 간섭들 하겠어요. 제일 마지막에 만들어졌으니까 인간이 제일 후배에요. 인간이 쫄병이라니까요. 해는 왜 저렇게 생겼어? 하면, 어디 쫄다구가. 달은 왜 저렇게 삐딱해? 네가 뭔데 나중에 생긴 게 말이 많아. 별은? 별이고 달이고 다 선배들이에요. 코끼리야 네 코는 왜 그렇게 기니? 네 코도 만만치 않거든. 인간이 태어나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거예요.

전라도 나주인가 가면 한식정식이 나오는데 놀라지 마세요. 반찬이 60가지랍니다. 구경하란 말인지 먹으란 말인지. 하나님께서는 60가지가 아니라 그보다 더 많은 반찬을 인간에게 제시했습니다. 은하계 하나에 별이 3000억 개인가 그래요. 그런데 그 은하계가 3000억 개에요. 그래서 어떤 과학자가 계산해보니까 현재 눈에 보이는 별의 숫자를 이 세상 인구로 나누니까 한 사람 당 별이 7조 개. 별 하나 나 하나가 아니라 별 7조 개가 나 하나, 별 7조 개가 네 꺼. 그런데 지금까지 나타난 것만 그렇고, 허블 망원경으로 검은 지점에 오랫동안 비춰보니까 20일 후에 까만 점이 있던 그곳에 별이 새로 등장한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게 아니고 창조는 다 했는데 인간이 다 못 본 거예요. 반찬을 20가지밖에 못 먹었어요. 40가지가 남았어. 다 못 먹어요.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우리 때문에? 아니에요. 하나님의 형상 때문에 만들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이 주를 위하여 만든 거예요. 그 중에 하나가 누구다? 저와 여러분입니다. 얼마나 고귀하신 분이에요. 그런데 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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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6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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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