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유튜브(116강, 117강) 성전, 가족 150604강의마태복음

유튜브(116강, 117강) 성전, 가족 150604

이름 : 이근호(IP:119.18.83.69)

116강

117강

이미아(IP:180.♡.90.76)

15-06-06 13:19

116강-YouTube강의(성전)150604-이 근호 목사

자, 오늘은 116강, ‘성전’이라는 제목으로 생각해봅시다. 마태복음 거기에 동방박사가 등장하죠. 유명한 사람입니다. 동방박사가 별 따라 왔는데, 우리 생각 같으면, 우리가 하나님이라면, 아기예수가 있는 베들레헴으로 직행하도록 할 수도 있는 문제이지요. 동방박사가 아기예수 보려고 왔지 다른 사람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직통으로 아기예수 태어난 거기에 가면 될 텐데, 마태복음 2장에 보면 이 동방박사가 베들레헴으로 바로 오는 것이 아니고 예루살렘을 거쳐서 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별이 거기서 사라집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태어난 베들레헴에 가기 전에 예루살렘을 필히 거쳐야 된다는 것을 동방박사로 하여금 실시케 하죠. 예루살렘을 왜 가야 하는가?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이 대대로 하나님을 찾아오는 동네가 예루살렘입니다. 감람산, 스가랴에 보면 예루살렘 맞은편에 있는 산이 감람산인데, 그 감람산에 메시아가 도래한다고 그렇게 스가랴서에 되어 있으니까, 그들은 그 예언을 사수하고 예루살렘을 지키는 자만이 메시아를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자부한 겁니다.

자, 그렇다면 메시아가 베들레헴에 이미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왜 동방박사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거치게 하느냐 하면은 그것은 동방박사만이 ‘아, 예루살렘은 아니야. 베들레헴에 태어난 그분이 메시아야.’ 라고 알아둘 것이 아니고, 이 메시아가 구원받을 사람만 찾아서 따로, 같이 사는 게 아니고 기존에 있는 모든 잘못된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에 대한 심판 권한이, 이 베들레헴에 태어난 예수님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게 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한 것입니다.

“너희들이 구원받았으니까 너희들끼리 따로 베들레헴에 가서 예수님 만나고 기뻐하고 집에 돌아가” 가 아니라 예루살렘을 방문케 함으로 말미암아 당연히 예수님이 구원자의 메시아가 아니고 예수님을 모르는 모든 자의 심판의 기능도 함께 수행할 분으로서 이 땅에 오셨다 이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예수님을 생각할 때에 다른 모든 일상의 일을 하는 것 가운데 추가해서 나는 다른 일도 하지만, 다른 일도 건전하지만 거기다가 추가해서 예수님을 믿는 일도, 건전한 일에다가 건전한 일을 더 보탰으니까 나는 안심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예수님이 등장함으로, 그전까지 나는 건전하다, 나는 괜찮다, 나는 훌륭하다, 하는 이 모든 것이 예수님에 의해서 다시금 해석이 되고 이게 심판받아야 돼요. 예수님만 빠지고 나머지기는 괜찮다가 아니라 예수님 입장에서 모든 것을 생각 못한 이것이 보기에 악한 일이 되고, 그것이 주님 앞에 전혀 보탬이 되지 못한, 도움 주지 못한 일들이 되는 겁니다. 성전이 어디 있느냐? 예루살렘에 있죠. 그렇다면 동방박사가 그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왔다가 그걸 부정해야 된다는 말은 성전 개념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거죠.

어떤 식으로 생각해야 하느냐 하면 새로 등장한 성전이 기존의 모든 세상을 다시 심판해야 한다는 중심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의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내가 어느 장소에 간다고 합시다. 어느 장소에, 어느 어느 공원에 간다고 합시다. 내가 공원에 간다면 나는 나만 생각하면 돼요. 내가 여기서 버스 타고 어느 공원에 가는 것이다. 그거는 우리가 미리 생각하는데, 만약에 공원을 가면서 하나님께서 청와대를 거쳐서 공원에 가라고 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 이유가 뭐냐, 나는 청와대는 아무 문제없고 공원만 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공원에 갔더니만 청와대는 불바다 돼야 된다는, 이러한 내용이 내가 찾던 그 공원에 우리를 준비하고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겁니다. 따라서 참으로 성전을, 예수님을 발견한 사람은 예수님 오시기 전에 건전하고 괜찮다 하는 이 모든 것을 예수님 만난 순간 전혀 그거는 건전하지 않고 예수님을 찾는 걸 훼방하고 방해하는 환상에 불과하고, 환영에 불과하고, 세상의 유혹에 불과하다는 것을 뿌듯하게 온 가슴에 그걸 담게 되는 겁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이 없다.” 찬송가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주 예수님 믿고 난 뒤에 집에 쌀이 떨어졌다, 양식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할래요?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이 없다.” 라는 말을 할 때에 그 말을 할 때는 우리가 귀하다고 여기는 것을 이미 거쳐 왔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헤롯 왕이에요.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는 헤롯 왕입니다. 그런데 헤롯 왕이 예루살렘에 거주하면서 자기가 잘난 존재라고 자부했을 거예요. 그런데 난데없이 동방박사가 와가지고 자기 찾으러 온 줄 생각했는데 자가 찾으러 온 것이 아니고 메시아가 태어났는데 이스라엘 왕이 누구냐고 물으러 왔다 이 말이죠.

그 말은 동방박사가 자기 찾아오면서 자기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그걸 외면하고 무시하고 본체만체하고 다른 곳으로 빠질 때, 그동안 나만 챙겨오고 나만 쳐다보고 한평생 살아왔던 우리 자신은 어떻게 될까요? 착각하면서 살아왔던 겁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려서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이 없다.” 할 때에 세상의 모든 것과 비교해서 예수님이 최고다, 라는 말이 아니고 나하고 예수님하고 비교를 최종적인 비교로 생각해야 한다 이 말씀이죠. 예수님은 귀하다. 누구보다도? 나보다도 귀하다. 그렇게 돼야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내 허락 없이, 우리가 헤롯이니까. 우리가 있는 곳이 중요한 예루살렘 같은 곳이니까. 나는 여기서, 내가 한평생 살아온 이 자리에서 메시아를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난데없이 동방박사가 찾아와서 비켜갔다 이 말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을 동방박사를 따라 찾으려면 내가 그동안, 평생 동안 사수한 이 자리를 스스로 포기해야 되는 겁니다. 문제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베들레헴에 태어난 예수님에 의해서 내가 꽉 쥐고 있는 예루살렘 같은 이 자리가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줘야 됩니다. 그러면 성전은 어디에 있는가? 성전은,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었죠? 그러면 그 성전은 무엇인가? 진짜 보이지 않는 성전에 의해서 공격받을 대상으로서의 성전입니다.

근데 사람 눈에는 진짜 성전은 안 보이고 바로 눈앞에 있는 건축물로써의 성전만 보이니까 저 자리에, 성전 저곳에 하나님이 계신 곳이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는 곳이고, 우리의 모든 복이 출발하는 곳이고, 거기서 쏟아져 나오는 곳이라고 우리가 붙들 때, 그런 우리 자신을 세상 어느 것보다 귀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성전을 생각할 수밖에 없죠. 그게 바로 예루살렘 중심으로 살았던 헤롯과 그 모든 유대나라의 백성들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장에서 동방박사가 바로 직통으로 베들레헴에 간 것이 아니고 마치 약 올리는 식으로 예루살렘에 왔다가 맛만 보여주고 베들레헴에 빠졌다는 말은,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은 사수하고, 자신의 가치를 영원토록 사수하는 이것이 바로 베들레헴에 태어난 아기예수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겁니다. 이렇게 제가 이야기하는 근거는 바로 예루살렘이 베들레헴을 공격해요. 예루살렘을 쥐고 있는 헤롯 왕이 예수님이 빠지고 난 뒤에 예루살렘에 있는 두 살 밑에 아기는 다 죽였습니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2장에서의 예루살렘의 배치와 베들레헴의 배치는 무엇을 의미하느냐. 예루살렘 쪽이 베들레헴 쪽을 공격하는데, 베들레헴이 공격당할 이유는 딱 하나 밖에 없어요.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태어났다는 그 사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바로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예루살렘을 비켜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그 사실. 하나님이 나한테 안 물어보고, 메시아를 안 보내줬다는 그 분통으로 인하여 예수님은 공격을 당하는 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안목이 동방박사처럼 예루살렘이 아니고, 진짜 성전은 장소가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성전인 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우리는 동방박사 같은 그러한 서러움과 동방박사가 그러한 위험에 처했다는 그러한 운명과 똑같은 팔자로 이 땅에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동방박사가 예수님 만나고 난 뒤에 곱게 가지를 않았습니다. 밤에 천사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그들은 다 몰살당했습니다. 그만큼 예수와 함께 있다는 것은 이 세상으로부터 공격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동방박사는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왜?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분이 없다는 것을 별을 통해서 그들이 알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미아(IP:180.♡.90.76)

15-06-06 13:21

117강-YouTube강의(가족)150604-이 근호 목사

제 117강, 두 번째 제목은 ‘가족’입니다. 마태복음 10장에서 가족에 대해서 이렇게 나와 있어요. 가족을 언급하면서 먼저 언급된 것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4절에 보면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사람이 살면서 평화로운 것만큼 행복한 것이 없어요. 모든 행복은 일단 환경이 평화로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평화의 제일 중심처가 어디냐, 가족이에요. 가족입니다. 가족은 헤어지지 않습니다.

가족을 뭐라고 하죠? 식구라고 하죠. 식구의 뜻이 뭐냐, 식사를 같이 하는 입을 가진, 식구입니다. 식사를 같이 하고, 잠은요? 같이 잡니다. 한 방에서. 눈만 뜨면 늘 만나는 사람. 아무리 세상에서 힘든 일 하고, 육체적으로 고되고, 정신으로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더라도 일단 집에 오게 되면, 가족을 만나게 되면 그 모든 것이 다 풀어지면서 무조건 내 편에 서 있고, 무조건 나를 위로해주고, 무조건 나를 다독거려주고, 내가 아픈 것 도와주고, 내가 힘든 것 보충해줄 수 있는 곳은 오직 가정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특히 여자 같은 경우에는 처녀 때는 그냥 본국에서 살지만, 남편을 만나서 남편이 만약에 러시아나 필리핀이나 온 세상을 다 돌아다닌다 할지라도, 당신같이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은 나는 못하겠다고 헤어지는 경우가 별로 없고, 당신이 가는 곳이라면, 물론 사랑한다는 조건입니다. 당신이 가는 곳이라면 북극이라도 사하라 사막이라도 나는 당신 곁에 붙어 있겠다는 것이 바로 결혼한 여자의 심정입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자기를 전적으로 사랑해준 사람이 있다면 그게 지옥이라도 그 사랑 때문에 천국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가정, 가족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정말 천국의 원천입니다. 그런데 이게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인데, 마태복음 10장 34절에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하시면서 제일 먼저 거론한 것이 35절,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결혼이란 것은 물론 하고 싶어서 했겠죠. 하고 싶어서 했겠지만 결혼의 난점이 뭐냐 하면 일단 결혼식을 하고 나서 붙었으면 이게 쉽게 헤어질 수 없다는 게, 정말 이거는 곤란한 문제가 들이닥친 겁니다.

원래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밖에 몰라요. 자기밖에 모르면, 계속 자기밖에 모르기 때문에 결혼을 해도 나의 행복을 위해서 결혼을 하지 결혼한 상대방을 위해서 살지는 않습니다. 자기밖에 모르는데, 그 자기밖에 모르는 그 사람이 결혼을 하면서 자기밖에 모르기 때문에 자기 주변에 배치되어 있는 모든 식구들은 전부 다 내 뜻대로 움직여줘야 되거든요. 왜냐하면 결혼 목적이 그거니까. “어이, 아내야! 이렇게 해. 옳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결혼하지 않았어. “어이, 딸아! 이렇게 해. 옳지.” 내가 딸 하나는 잘 키웠어. “어이, 아들아! 내 식대로 해 옳지.” 잘한다. 그러니까 이 가정은 행복해. 이거 누구입장입니까? 남자 지 혼자 입장이에요. 지만 생각하는 거예요.

반대로 아내가 결혼했으면 남편이 자기 원대로 따라줄 때 ‘나는 역시 저 남자하고 결혼 잘했어.’ 그리고 자식들이 자기 뜻대로 되고 대학가는 문제, 연애문제, 전부 다 “엄마! 누구하고 사귀면 안 돼? 엄마!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돼?” 이렇게 할 때 엄마는 ‘역시 나는 결혼하기 잘했어.’ 라고 생각하죠. 그거 누구입장입니까? 그거 여자 본인의 입장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가정이 있어야 행복하다는 조건이 뭐냐 하면 그 가정마저 내 맘대로 주무를 수 있는 조건 하에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되죠. 얼마나 이기주의입니까? 근데 주님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그 가정을 다 쥐포 찢듯이 다 찢어놓습니다. 다 찢어놔요. 그러면 네 식구라면 네 파트가 되겠죠. 사람 하나마다 다 찢어놓습니다. 찢어놓고 하시는 말씀이 38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일단 35절의 말씀은 찢는 작업니다. 34절의 말씀은 세상의 모든 중심은 그 가정이 중심이니까 가정부터 찢어놓고, 가정 찢는 작업은 35절, 36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 식구니라” 차라리 이럴 것 같으면 결혼 안 하는 것이 좋죠.

아예 저 남자 안 만났으면 이런 골치 아픈 자식도 안 생겼을 것이고. 그러면 옛날에 결혼하기 전에 나 혼자 살던, 나 혼자 젊음을 계속 만끽했던 그 시절로 계속 갔으면 참 좋을 뻔 했는데 이거 무를 수도 없는 문제에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결혼 같은 것이 그냥 만나고 헤어지는 그런 소개팅이 아니고 결혼 했으면 더 골치 아파요. 헤어지는 것이 더 골치 아프다니까요. 어떻게 보면 헤어지는 것이 골치 아파서 그냥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가정을 쥐포 찢듯이, 오징어 찢듯이 찢어놓느냐 하면 정답은 그게 바로 38절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 이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정이든, 자식이든, 남편이든, 전부 다 누구 중심이냐 하면 내 중심이거든요. 나를 찢으려면, 우리가 스스로 나를 찢을 수 없습니다. 나를 찢으려면 내가 그동안 용 썼고, 힘썼고, 평생을 애달아하면서 모든 정신과 모든 육체와 돈과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그 가정 행복, 가정 행복을 위해서 쏟아 부었던 것이 아니고, 내가 그 가정에 속해있기 때문에 내 행복을 가정에다 투자를 그만큼 한 겁니다.

자식 잘 키워놓고, 남편에게 밥해주고, 아내에게 옷사주고, 이 모든 것이 아내를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남편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고 나 잘되기 위해서 그렇게 했거든요. 그걸 주님께서 다 찢어놓는 거예요. 찢어놓으니까 결국은 나는 평생 손해 보는 장사만 했죠. 그걸 물어봅니다. “니가 진정 행복 하고 싶으냐? 니가 진정 인간답게 살고 싶으냐? 그러면 처음부터 가정이 없는 시절이 아니라 아예 너 자신이 없던 시절로 가라. 처음 자리로. 그것이 뭐냐, 바로 십자가라고 예수님이 제시합니다.

단순히 자살이 아니에요. 죽음의 자리가 아니고 십자가 자리에요. 죽음의 자리와 십자가 자리가 다릅니다. 십자가 자리는 예수님이 이미 영생을 확보한 자리가 십자가고. 죽음이고. 우리 죽는 것은 백날 죽어봐야, 자살해봐야 지옥갈 수밖에 없는 지옥의 자리가 우리 자리고. 따라서 지옥에서 자살할 인간을 주와 함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천국의 입구에서 주와 함께 죽음으로써 천국에 골인할 수 있도록 주께서는 조치를 하셨는데 그 조치가 가정을 낱낱이 찢어주는 겁니다.

그러면 이혼할까요? 그러면 헤어질까요? 자식을, 그러면 자식 아니라고 할까요? 아닙니다. 십자가 진 상태에서 십자가 진 능력으로 주께서 주신 남편과 아내와 자식을 규합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것은 하나의 가정이 아니고 천국의 모형이 되는 겁니다. 자, 여기 이 이야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을 놓치면 안 돼요. 나는 그러고 싶은데 가족의 다른 식구들이 거기에 호응을 해주지 않을 때 그거는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그거는 아직도 십자가를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십자가라는 것은 잠시 죽은 척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척 하는 것이 아니고 소유권 자체가 바뀌는 겁니다. 내 인생의 소유권. 소유권이 바뀌게 되면 다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느냐 하며 나를 위해서 재규합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주께서 모아준 것만 남습니다. “내가 원해서 저 남자와 살아야지.” “내가 원해서 저 자식 버리지 말아야지”가 아니라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나로 하여금 “너가 구원받는데 딱 맞게, 딱 합당하게 저 남편, 저 자식을 내가 모아 놓았어.”를 확인시켜주는 그 장, 그 영역이 새로운 가정으로 믿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나를 십자가 지게 하기 위해서 저 남편, 저 여자, 저 자식을 나한테 한 아름 선물처럼 안겨주신 겁니다. 우리는 오해했죠. 내 행복을 위해서인 줄 알았죠. 사실은 내 행복을 위한 내가 그 자체가 죄라는 것을 십자가에서 발각당해야 합니다. 따라서 십자가 앞에서 먼저 “주여, 내 행복 추구가 곧 죄입니다.” 라고 인정하시고 이제는 내 소유권을 주께 넘겨주시고 주님에 의해서 모아준 식구들을 다시 보면서 날마다 그 가정을 통해서 주의 십자가 능력을 뽑아낼 수 있는 그러한 성령의 능력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어야 합니다.

다 나를 낮추라고, 다 나를 힘들게 하라고 주께서 붙여준 사람이구나. 근데 그 식구 중에서 남편이 “여보! 이제 못살겠다. 헤어지자.” 이렇게 나온다면 가뿐하게 해주세요. 기다렸던 바입니다. 아내가 헤어지자고 하면 얼씨구나! 하고 헤어지시기 바랍니다. 자식이 있다가 “엄마! 나 가출할 거야.” “가출하든지 말든지 니 맘대로 해.” 왜? 내가 내 행복을 위해서 모아주지 않고 주께서 그 사람 입에서 나오게 했기 때문에 남편 없어도, 아내 없어도, 자식 없어도 나는 예수님만 있으면 산다는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기회를 앞으로 늘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 이전글

다음글 ▷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62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4,617 자유게시판 20150605a 울산강의-출애굽기 34장 : 언약 확인하기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15-06-09
14,616 자유게시판 43강-고전 7장 29-31절(지나감)150607-이 근호 목사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15-06-08
14,615 자유게시판 안양모임 안내(2015. 6.12 금)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15-06-08
14,614 강의 [15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32 - 관리 잠언 최고관리자 15-06-07
14,613 자유게시판 34강-신 6장 4-9절(하나님의 사랑)150607-이 근호 목사 신명기 최고관리자 15-06-07
14,612 우리교회 하나님 사랑 150607 신명기 최고관리자 15-06-07
14,611 묻고답하기 세상 일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15-06-07
14,610 우리교회 고넬료와 베드로 150607 - 최고관리자 15-06-07
14,609 우리교회 지나감 150607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15-06-07
14,608 설교 지나감 (고린도전서 7:29-31)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15-06-07
14,607 자유게시판 가락-요한복음7장1절(길)150604a-이 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5-06-06
14,606 자유게시판 117강-YouTube강의(가족)150604-이 근호 목사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5-06-06
14,605 자유게시판 116강-YouTube강의(성전)150604-이 근호 목사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5-06-06
14,604 강의 언약 확인하기 150605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15-06-05
14,603 자유게시판 광주 강의(2015. 5. 22) 1강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5-06-05
14,602 묻고답하기 (5탄) 어느 목사님의 질의 - 최고관리자 15-06-05
14,601 강의 길 150604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5-06-05
열람 ➜ 강의 유튜브(116강, 117강) 성전, 가족 150604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5-06-05
14,599 자유게시판 141강-에스겔 46장 16-18절(기업과 희년)150603-이 근호목사 에스겔 최고관리자 15-06-04
14,598 자유게시판 대구 강의 2004-2007 - 최고관리자 15-06-04
14,597 우리교회 기업과 희년 150603 에스겔 최고관리자 15-06-03
14,596 자유게시판 광주 강의 정리 2005-2007 (음성, 녹취)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15-06-03
14,595 우리교회 [일반] [ 영화 샌 안드레아스 평] [일반] 최고관리자 15-06-03
14,594 묻고답하기 [영화 샌 안드레아스 평] - 최고관리자 15-06-03
14,593 자유게시판 42강-고전 7장 25-28절(육신의 고난)150531-이 근호 목사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15-06-01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