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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서울 의존교회150508a, b (찬양의 요건)―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디모데전서

서울 의존교회150508a, b (찬양의 요건)―이 근호 목사

이름 : 김창길(IP:180.150.194.146)

서울 의존교회150508a (찬양의 요건)―이 근호 목사

디모데전서 6장 15절부터 할 차례입니다.

딤전 6: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

딤전 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

성경에 나와 있는 내용은 단서가 있어요. 무슨 단서이냐 하면 성도일 경우에만 믿어지고 성도가 아닌 사람한테는 절대로 믿어지지 않는 글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한글 성경은 한글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한글을 아는 사람은 한글 안다는 그 공통점 때문에 전부 다 이 의미를 공통적으로 획득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 맞는 상식이죠.

“불조심", 한글로 불조심이라고 되어 있다면 한글을 아는 사람은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어야 돼요. 아, 불내지 말라는 그런 뜻이구나! 너는? 너도 불내지 마! 나도 불내지 마! 아, 우리는 생각이 같네!

한글로 되어 있는 불조심에 대해서 한국 사람은 동일한 의미를 획득해요.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디모데전서 6장 방금 읽었던 15절 16절도 한글로 되어 있죠. 그러면 한글로 되어 있으면 한글 아는 사람은 동일한 의미를 획득을 하는 것이 우리의 상식에 맞잖아요.

그런데 제가 전제를 뭐로 깔았느냐 하면 성경은 성령 받은 사람에게 이것이 의미가 획득되고 성령 받지 않은 사람, 신앙이 없는 사람한테는 이것이 거부해야 될 내용이라고 분명히 이야기했습니다.

그 점이 이상한 거죠. 그 점이 왜 이상하냐 하면 성경에서 글자가 쓰여 있는데 이 글자가 희한한 글자가 되어서 어떤 것을 낳느냐 하면 사람을 둘로 분류 시키는 그러한 기능을 작용하는 한글이 돼요. 글자가 되는 겁니다. 불조심하고 성경하고 다르죠.

예를 들겠습니다. 성경 디모데전서 7장을 봅시다. 7장 없는 거 아시죠? 7장 1절에 불조심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예를 들면 7장 1절에 불조심이 나타났습니다. 성경 보시면 큰일 나죠. 예를 들면 7장 1절에 불조심이라고 되어 있다면 그러면 불조심은 누구나 어떤 내용인지 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성경은 말합니다. 이 불조심이라는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성령 받은 사람이요, 못 알아듣는 사람은 성령 받지 않은 불신자라고 이야기했을 때 여러분! 이게 수긍이 되겠습니까? 똑같은 글자인데 방금 제가 이렇게 운을 떼는 것은 성경에 특정 대목만 신앙인으로 확인해 주는 것이 아니고 모든 성경 내용이 전부 다 신앙인 것을 확인해 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는 겁니다.

특정 구절만 그런 것이 아니에요. 왜냐 하면 장판 밑에 보일러 깔잖아요. 보일러를 깔게 되면 보일러에 배선이 다 깔려 있어요. 특정 지역만 방이 따뜻하면 그 보일러 시공은 잘못한 겁니다.

파이프 지나가는 곳, 온수 지나가는 모든 곳이 뜨끈뜨끈해야겠죠. 성경 밑에 보일러가 깔려있다고 봅시다. 그것도 성령으로 보일러 깔렸다고 생각합시다. 왜냐 하면 성경은 누가 썼습니까? 성령의 감동으로 썼기 때문에 보일러가 다 깔려있어요.

그런데 거기에 불조심이 나왔다고 해서 아하, 그 불조심이 이 불조심이라고 이해하시면 그것은 오산입니다. 어떤 기준은 수용되고 어떤 기준은 거부하면 그것은 보일러 시공을 잘못한 거죠.

동일하게 나타나야 돼요. 그러면 동일하게 나타났을 때 그 동일함의 구체적인 내용이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거에요.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계시면 만왕의 왕시며 하는 이러한 이야기가 하나의 동일한 성령의 보일러가 깔린 사람들, 성경에만 보일러가 깔려있겠어요? 성도 마음 내부에도 보일러가 깔려 있겠어요?

성도 내부에도 보일러가 깔려있죠. 깔려있으니까 성경 말씀이 의미 있게 오는 겁니다. 그런데 불신자는 그게 없는 거예요.

불신자에게 묻습니다. 불신자여! 디모데전서 6장 15절과 16절의 내용이 뭐지? 당신 한글 아니까 불신자지만 성령은 안 받았지만 하여튼 설명해 보라고 하면 불신자는 이렇게 설명을 잘합니다.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이렇게 설명합니다. 맞는 이야기입니까? 처음부터 제가 너무 어렵게 질문해서 미안합니다. 이거 맞는 이야기에요? 방금 똑같이 읽었는데?

창세기 1장에 뭐라 되어 있어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되어 있죠. 불신자가 한 말이 그게 맞는 말일까요? 밑에 성령의 보일러가 깔려있는데 글자 그대로 읽었는데? 그게 맞는 이야기입니까? 맞는 이야기 아닙니다.

진리가 아니에요. 똑같은 말을 해도 진리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같은 말을 했기 때문에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인간 편을 들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벌어져요.

인간 편을 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은 뭐냐, 아까 성령이라는 것은 보일러가 깔렸다고 했잖아요. 성령 보일러 깔기 전에 뭔가 하나 빠진 게 있어요. 뭐냐, 중보자의 보일러가 깔렸다가 먼저 해야 돼요.

성령은 중보자에 대해서 언급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논리가 중보자에 대해서 모르면서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했다고 해서 그것이 정답이 되지를 못하는 겁니다. 따라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 이것이 정답이 아니고 정답은 이렇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더불어서 천지를 창조했다.” 이렇게 해야 됩니다. 그러면 불신자는 창세기 1장 1절을 통해서 예수님을 집어넣는 그 작업을 불신자는 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못합니다. 왜냐 하면 성경대로 읽었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성경대로 읽으면 그게 성경이라고 그들은 그렇게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성령이 오기 전에 우리 예수님 중보자 보일러가 깔려있죠. 그러면 성경이 우리 눈앞에 있다, 문자를 기계식으로 읽는 것이 아니고 먼저 어디에 도달하느냐 하면 우리 속에 깔려있는 중보자를 경유해서 외치게 되어 있는 겁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한 그 사람이 예수님을 죽여서 여호와 믿는다는 그 사람이 왜 죽였는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는 것을 그렇게 굳게 믿으면서 왜 창조하신 주님을 왜 믿었는가? 그들은 예수그리스도가 없어요.

따라서 우리가 그 점을 아니까 그 점을 이미 알고 있는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해야 돼요. 태초에 예수님과 더불어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골로새서 1장 6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방금 뭐가 가미되었습니까? 예수님이 가미 되었죠. 그러면 불신자가 이렇게 시비를 겁니다. “창세기 1장에 예수라고 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지금 유대인들도 그렇게 해요. 예수, 예수 하는데 창세기 1장 1절에 예수가 어디 나와? 아무리 눈뜨고 봐도 예수가 안 나오는데요? 안 나오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고 했지 거기에 예수가 안 나오잖아요. 그러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고 되어 있지 거기에 예수가 안 나오잖아요.

왜 안 나오는 소리를 더 첨부해서 그것을 진리라고 말도 안 되게 우기느냐! 라고 했을 때 여러분들은 뭐라고 이야기했습니까? 이렇게 해야 옳습니다.

성경의 능력이 성경책은 성경책안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너를 덮치는 활동력으로 지금 활동하고 있다. 성경책은 글자 그대로 낭독하라고 준책이 아니고 성경책 안에 있는 말씀이 성경책을 벗어나서 지금 우주를 관리하고 있는 능력과 힘으로 실행에 옮기는데 그 실행에 옮기는 대상 중에 하나가 지금 너와 나다.

그렇다면 말씀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한 말씀이 우리를 덮쳤을 때 우리는 구약을 해석할 때 신약을 경유해서 해석할 수밖에 없죠.

구약에는 예수님이 빠져 있지만 정답이 되는 최종적으로 마감이 되는 마지막 최종 정답, 항상 수학 정석 책 뒤에 보면 정답이 나와 있잖아요.

마지막 정답을 경유해서 다시 구약을 보니까 이제는 구약이 새롭게 보이는 거예요. 태조에 예수님과 더불어서 창조했구나 하는 것이 이게 요한복음 1장 1절에 나온 말씀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시니 그게 그렇게 되어 버리면 창세기 1장에 뭐라 겹치겠어요? 요한복음 1장도 겹치고 골로새서 1장도 겹치겠죠.

그렇다면 성경은 성경책 안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날아다는 거예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상황, 날씨가 흐리다. 구름이 끼었다. 황사가 온다.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나온 능력입니까?

바로 성경 속에 있는 능력이 지금 우리 눈앞에 황사로서의 모습으로 지금 나타난 거예요. 지금 신비주의를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성경이 이런 이야기이에요. 그렇게 어렵게 복잡한 게 아니에요. 간단한 겁니다. 지금 앞에 전봇대에서 새가 짹짹 운다. 친구가 묻죠. 그러면 저 새가 누가 기르시나? 그렇게 물으면 모르죠. 새는 지 엄마가 키우겠지 뭐!

자기 엄마가 키우는 게 아니죠. 새는 누가 키웁니까? 마태복음 6장에 보면 누가 키우죠. 주께서 친히 기르시죠. 너는 어떻게 아는데? 성경책에 있는 내용이 성경책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고 그게 성경 밖으로 나오죠.

나와서 지금 짹짹 거리도록 했죠. 누구를? 참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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