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강-YouTube강의(죄와 욕망)150521-이 근호 목사
114강-YouTube강의(죄와 욕망)150521-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80.231.90.76)
114강-YouTube강의(죄와 욕망)150521-이 근호 목사
오늘은 114강, 제목은 ‘죄와 욕망’이라는 강의를 해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러 오신 구원자라는 것은, 이거는 교회가지 않더라도 들은풍월로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구원의 방식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못하고, 거기에 초점을 잘 맞추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구원되었음,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 덕분으로 구원되었음, 그 결과에 눈독들이게 되는 겁니다.
어쨌거나 저 쨌거나 내가 구원받으면 됐지 않느냐, 그렇게 성급하게 절차와 과정을 무너트리려고 하는데, 막상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건지는 방식에 대해서 아마 듣게 되게 되면 의외로 구원받고자 하는 우리가 도리어 외면할 수밖에 없는 내용을 예수 입에서 쏟아내고 계시는 겁니다.
그 한 예를 들게 되면, 예수님 오실 때에 유대인들이 있었는데, 그 유대인들이 알고 있는 구원의 방식은 모든 율법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 구원이라고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유대인 말고 다른 이방 민족들의 구원 방식이 여러 가지가 있었거든요. 예를 들어서 감정적으로 열심히 춤을 춘다든지 아니면 자기네들이 성의껏 드리는 어떤 예배를 통해서 구원받는다든지 또는 의지적으로 하나님 앞에 선을 행하면서 구원받는다는 여러 가지의 아이디어들이 있었는데 유대인들은 거기에 대해서 자기들이 구원받는 방식에 대해서 차별화를 둔 겁니다.
그 차별화가 뭐냐 하면,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철칙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일에 대해서 소홀히 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 율법을 지키려면 율법에 담겨있는 내용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되고, 아는 내용만큼 행동에 일치성을 보일 때, 그것을 순종이라고 하는데, 말씀 안에 있는 내용과 자신의 행동이 일치성을 보일 때 자기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서 구원받는 참 백성이라고 그렇게 자부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도 마태복음 5장에 보면 18절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여기에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룬다는 이 말씀에 대해서 사람들은 유대인들과 예수님과 같은 생각이라고 생각하죠.
19절에 보면 더욱더 유대인들에게 동의할 만한 내용을 이야기하죠.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무슨 말씀이냐 하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이것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이 작은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까지도 마저 완벽하게 지킬 때에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구원이 된다.” 라고 그걸 가르칠 뿐만 아니고 가르치는 본인도 그걸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이라고 예수님께서 이야기하셨습니다.
들어보니 어떻습니까? 목표도 생긴 동시에 그 목표에 미흡했을 때 구원도 되지 않는다는 절망감도 같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작은 것 하나라도, 큰 것 98퍼센트 지켰다 할지라도, 작은 것 하나 빼먹었으면 이것은 구원에서 탈락되는 겁니다. 완벽하게 다 해야죠. 20절에 보면 이미 그러한, 예수님이 언급한 식으로 시도를 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들이 누구냐 하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래서 20절에 이렇게 이야기하죠.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말씀에 의할 것 같으면 만약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마저도 천국에 못 간다면 어느 누구도 천국에 못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일점일획이라도 말씀을 다 지키려고 시도하는 선두그룹에 해당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들보다 더 완벽한 의를 행해야한다는 거예요.
지금 선두그룹이 뭐냐, 서기관과 바리새인인데, 그러면 다른 사람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추월해야 돼요. 그들보다 더 완벽해야 돼요. 문제는 뭐냐 하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많은 의를 행하려면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지금까지 해왔던 그 방식을 거쳐서 추월해야 하는데, 이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했던 그 방식을 인간의 힘으로 과연 추월이 가능할까요? 거북이가 아무리 부지런해도 토끼보다 앞설 수 있겠습니까? 물론 토끼가 도중에 잠을 잔다면 모르지만.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잠도 안 잡니다. 그렇다면 이거는 달리기 대회에서 아무리 거북이가 애를 써도 토끼보다 앞서지 못하죠.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지금 선두그룹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챙겼던 의입니다. 근데 그 의가지고는 천국에 모자란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일점일획이라도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계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걸 요구하시기 때문에. 그럼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하려면 그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월등해야 되는데, 어느 누구도 월등할 수는 없고.
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옛사람과 그리고 예수님 본인을 비교하는데서 생겨납니다. 옛사람들은 이렇게, 이렇게 율법을 실천했다. 그리고 그 율법을 해석한 그것에 맞추어서, 그 기준에 맞춰서 행동을 실천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천국 못가는 의를 생산해낼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천국을 못간 이유는 그들이 율법을 해석하는 해석의 범위가 옛사람이 해석하는 범위 안에 그대로 가두어져 있기 때문에, 그래서 빠져나오지를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오신 것은 율법 몰라도 됩니다가 아니라 예수님이 알고 있는 제대로 된 율법 해석을 제시해주는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율법의 입법자이기 때문에. 법이라는 것은 반드시 법을 만든 분이 계시잖아요. 예수님이 법을 만드셨습니다. 법을 만드신 분이 율법의 내용을 다 이야기해주십니다. 율법의 내용을 다 이야기해주신다는 말은 이야기를 들었던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들었던 내용대로 그대로 일치해서 순종할 경우에만 일점일획이라도 율법을 다 이룬 셈이 돼버리죠.
근데 지금 문제가 뭐냐 하면 인간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인간들은 옛사람이라고 규정한, 그들이 아는 율법의 해석 범위 안에만, 그게 한계 안에 가두어져있어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그 말씀을 하신 것은, 예수님은 너희들이 알고 있는 그 율법 해석 말고 그 바깥에 있는 진짜 율법의 내용을 따로 가지고 계신 분이 예수님, 본인뿐이라는 겁니다. 인간들이 알고 있는 율법 해석 외에 것을 예수님께서는 지금 제자들에게 선포를 하고 알려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아는 해석과 그 외에 해석. 외에 해석이 뭐냐 하면 옛사람이 알고 있는 율법 해석이라고 보는 겁니다. 사람들은 보통 사적인 견해를 이야기하는데 예수님에게는 사적인 견해라는 것은 없습니다. 전부 다 옛사람이 알고 있는 견해의 일부일 뿐이에요. 그래서 인간의 해석이냐, 예수님의 해석이냐 단 둘 밖에 없습니다.
그 예수님이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 하면, 누구든지 살인하지 말라 했는데 내가 이 계명을 만들 때는, 너희들이 아는, 그냥 옛사람이 아는 식으로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그것이 살인의 전부가 아니라, 그건 옛사람의 해석이고, 이 예수님의 해석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도 살인죄다. 이것이 바로 입법자, 율법을 만든 내가 제대로 된 살인하지 말라에 대한 해석이다. 자, 지켜라. 이렇게 되는 겁니다.
자, 그렇게 될 때 예수님에 해석에 입각해보게 되면 인간은 본의 아니게 옛사람의 그룹에 속하기 때문에 이거는 율법의 계명을 몰랐다는 그 이유 자체만으로 이미 우리는 죄인이 되는 겁니다. 죄인인 주제에 죄 된 방식으로 율법의 해석을 알아놓고 그 방식대로 실천에 옮기면 구원받겠다고 내놓은 그것도 욕심이고 욕망이 되는 겁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고(약1:15). 그 사슬에 그냥 매여 있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계명을 새롭게 해석을 내주시고, 인간들의 모든 계명을 옛사람에 해당되는 갇혀있는 해석이라고 하시는 이유는, 바로 죄가 일어나는 그곳이 본래의 너의 주체의 자리라는 겁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이미 예수님한테 들었고 그것이 성령에 의해서 수긍이 된다는 말은 구원 문제가 이제는 내 문제에서 떠나서 주님의 고유권한의 문제로 구원 문제가 넘겨졌다는 사실을 덩달아 아는 겁니다.
죄인인 자를 의롭다 하는 그 수순은, 방식은 이제는 예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이것을 고백하는 사람은 이미 옛사람의 율법 해석에서 이미 벗어난 주체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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