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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행 12" 1- 5 (악의 기세)우리교회사도행전

Re..행 12: 1- 5 (악의 기세)

이름 : 이근호(IP:)

악의 기세
2004년 8월 25일
본문 말씀: 사도행전 12:1-5

12:1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하여
12: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12: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쌔 때는 무교절일이라
12: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예수님 제자 중에서 첫 번째로 죽는 자가 생겼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야고보라는 사람이 두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죽은 분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입니다. 사도 요한과 형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다가 사도가 칼에 베어죽었다고 나오니까 가슴이 덜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참으로 안됐다는 동정심도 들고요. 하지만 우리가 이런 야고보에 대해서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은 평소에 우리들의 생활 자세가, "내 목숨은 내가 간직할꺼야"라는 고집이 강렬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내 목숨이 나에게 절대적으로 소중한 것처럼 야고보 본인에게도 자기 목숨이 얼마나 소중했겠는가 하고 동정심을 표하는 겁니다. 그런데 누가 죽도록 허락했는지를 우리는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야고보는 운 좋게도 다른 사도들 보다 먼저 이 험악한 세상을 뜬 사람입니다.

본인은 신나는 겁니다. 마치 군을 제대하는 기분일 것입니다. 마치 스데반 집사님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목숨에 대해서 크나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목숨을 우리에게 아예 인수 인계한 것처럼 여기면서 간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어제의 내 목숨을 그대로 이어서 오늘의 목숨으로 연결되도록 자신이 관리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인수 인계된 오늘 목숨을 잘 관리해서는 오늘 밤 자고 난 뒤 내일까지 이어지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를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 날의 염려는 그 날에 족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일 염려는 내일 가서 하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즉 인간들은 잠을 자게 되어있고,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관리하는데 있는 관여하지 못하는 시간대를 가지고 하루 이틀을 넘기게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목숨은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야고보는 죽기 전 날까지는 생생하게 살아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의 그의 목숨은 결코 본인이 어찌 할 수 없는 겁니다. 그렇다면 평소에 생생하고 팔팔하게 살아있을 때에는 역시 인간이 그의 목숨을 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길어봤자 하루치의 목숨을 은혜로 받으면서 인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자꾸만 자기 목숨은 자기 것이라고 생각들을 하고 삽니까? 그것은 죽음이 큰 상실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뭔가 잃어버렸다는 것은 실패했다는 치욕을 안겨다 줍니다. 지갑을 잃어도 치욕을 느끼는데 하물며 자기 것이라고 믿었던 그 목숨을 잃는데 어찌 상실감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상실감이란 그동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과 너무 분에 넘치게 친밀하게 지내온 그 속물적 관행에 푹 젖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게 진리를 배워온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주위 풍토로부터 참으로 많은 것을 익히고 배우고 습득해 오고 있어 왔습니다. 제가 소위 신자라고 여기는 자들이 내뱉는 대표적인 위선과 가증스러운 허위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기도문과 관련 있는 겁니다. 거기에 보면, "하늘에게 뜻이 이룬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기도문이 나옵니다. 과연 여러분이 기계처럼 좔좔 외우는 그 내용처럼 과연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직장에 정말로 하나님의 뜻이 꼭 이루어지고 싶어서 기도하십니까?

예를 들면, 디모데전서 6:10의 말씀처럼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오니 제발 저로 하여금 돈 같은 것 사랑하지 않게 해주세요, 네?"라고 철야까지 하면서 이 기도 내용대로 하실 의향이 있는 겁니까?

사람들은 자기 목숨을 자기가 관리해야 안심을 하지만 만약에 이런 하늘의 뜻이 떨어지면 곧장 죽어버린다는 공포심을 떨쳐 버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늘 함께 동행했던 제자들에게도 이런 현상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6:5-6에 보면,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필히 '이별'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세상 자체와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같이 이 세상과 결별해야 하는 제자들이 예수님과는 도리어 다른 관점을 갖고 살아가기에 같이 떠날 생각을 안하고 걱정이나 하고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과 동업관계에 놓여 있는데 예수님께서 자기네들을 놔두어 버리고 훌쩍 곁을 떠나버리면 졸지에 자신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발언은 제자들 듣기에 참으로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묻는 자가 없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이나 유대인들이나 결코 현 세상을 떠날 마음이 없다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마음 속으로 "그냥 우리하고 같이 삽시다."라는 뜻을 피력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사람들을 데리려 왔지만 사람들은 그냥 이 세상에 버티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 앉아 우는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에게 죽음이 찾아올 때, 사실 우리는 주님에게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주님, 지금이 주님과 함께 영원히 합류 할 수 있는 길이 맞지요. 그지요?"라고 즐거워하고 반겨야 합니다. 애초부터 우리 목숨은 우리 것이 아니기에 쓸데없는 상실감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왜 야고보는 죽게 되는 겁니까? 그것이 이 세상 속에는 우리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노리는 세력이 있음을 야고보의 죽음을 통해서 들추어지게 하려고 하나님은 생각하신 겁니다.

요한복음 7:19-21에 보면 다음과 같은 대화가 나옵니다.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를 인하여 괴이히 여기는도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모세 율법을 자신의 생명줄로 간주했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모세 율법에 대해서 자기들과 다른 견해를 내놓으면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이것은 참으로 폭탄선언입니다. 왜냐하면 모세 율법을 못 지키는 자라는 말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지켜야지만 복을 받는데 못 지켜버리면 모세 율법에 의하면 저주받게 받을 길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 소리를 들은 유대인 입장에서는, 예수님을 그냥 놔둔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들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야 하는 자라는 것을 동의한 셈이 됩니다. 따라서 만약 예수님을 죽여버리면 여전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죽이고 싶었던 것은 그들이 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기존의 세계에 대한 정죄는 예수님이 사람들의 눈에 안 보이는 세계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난 뒤에는 제자들의 몫으로 남습니다.

제자란 딴 게 아니라 스승이 되시는 분과 똑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세상에 출현되어야 될 사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 사명이란 딴 게 아니라 율법을 통해서 의를 생산하는 시절은 이제 지나가 버렸다는 겁니다.

마치 북한에서 김일성을 축복하느냐 저주하느냐에 따라 사느냐 죽느냐가 결정되는 것처럼 오늘날의 시대는 새로운 구원의 법칙이 삽입된 시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피는 하나님도 인정한 의로움입니다. 이 의로움만이 인간을 구원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원리를 공격하려는 세력도 만만치 않은 겁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속성을 잘 모릅니다. 마냥 그들과 친하기만 하면 모든 일이 잘 되어갈 것이라고 여기지만 결국은 예수님의 복음을 아는 자를 이 세상을 예수님을 공격하는 차원에서 공격하기 마련입니다.

야고보나 베드로는 바로 이러한 원리를 위하여 주님에 의해서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스스로 자기 목숨을 관리라는 것으로 착각하지 마시고 십자가의 은혜를 증거하기 위하여 매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숨을 새로 만들어낸다고 여기시기 바랍니다. 일회용처럼 말입니다.

사람과 가까이하면 그만큼 하나님과는 멀어지기 일쑤입니다. 그 어떠한 위험한 환경이나 오해받는 환경 속에서도 오늘도 우리를 살려내시는 주님의 은혜에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진정으로 하늘 아버지의 뜻이 저희들 교회와 가정과 일터에 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91길 10-11 신동아빌라 1동 201호
전화 : 053)986-0172, 010-3511-0172 이메일 : knowcro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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