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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식일과 월삭 150520우리교회에스겔

안식일과 월삭 150520

이름 : 이근호(IP:119.18.83.69)

안식일과 월삭(에스겔 46:1-5)

이근호

15-05-20 21:23

안식일과 월삭

2015년 5월 20일 본문 말씀: 에스겔 46:1-5

(46:1)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안 뜰 동향한 문을 일하는 육 일 동안에는 닫되 안식일에는 열며 월삭에도 열고

(46:2) 왕은 바깥 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와서 문 벽 곁에 서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요 왕은 문통에서 경배한 후에 밖으로 나가고 그 문은 저녁까지 닫지 말 것이며

(46:3) 이 땅 백성도 안식일과 월삭에 이 문통에서 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46:4) 안식일에 왕이 여호와께 드릴 번제는 흠 없는 어린 양 여섯과 흠없는 수양 하나라

(46:5) 그 소제는 수양 하나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니라

새성전을 소개하면서 제사제도도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거기서 종사하는 제사장과 그리고 백성들과 관계도 같이 알려져야 합니다. 백성을 대표해서 오늘 본문에 보면 왕이 등장합니다. 왕은 일반 백성과는 달리 동쪽 문을 통해서 성전에 들어올 수는 있으나 문통까지만 들어오고 더 이상은 들어설 수 없습니다.

그 다음의 절차는 성전 뜰에서 활동하는 제사장의 손에 넘겨져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할 때 존재와 존재로서 만남을 성사시키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즉 “하나님 저기 계시지요? 나 여기 있어요. 존재와 존재로 만납시다”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무엇을 매개로 만나지는 겁니까?

그것은 바로 성전 안에서 진행되는 제사, 곧 제물의 죽음 속에서만 성사됩니다. 이 우주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실은 알 수 없는 죽음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살아있는 것이 죽음으로 마감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죽음이 보여주기 위해 일시적으로 살아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마땅히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죽음으로 환원되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물체는 다 하나님 앞에 서면 불태워져야 한다고 하십니다. 인간의 신체 뿐만 아니라 거룩한 건물이라는 성전건물도 마찬가지로 불태워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불태움으로서 거룩과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제단 위에서는 흠없는 제물도 하나님에 진노의 불에 의해 태워집니다.

따라서 성전은 작은 우주입니다. 우주가 본질을 압축해서 좁은 공간을 통해 보여지게 됩니다. 피조 세계의 운명은 성전을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과 만납니다. 이것은 단순히 피조세계의 소멸한다는 사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피조세계는 누구를 위해서 만들어졌으며 그 분이 누구신가를 알려주는 증거물 역할을 지니고 등장했다는 말입니다.

피조세계는 이미 ‘있음’으로 인하여 그냥 그대로 줄곧 ‘있음’으로 영원토록 이어지도록 존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있음’이 어떤 이유로 인하여 ‘없음’이 되고 그 ‘없음’을 본질로 해서 다시 ‘있음’이 되므로서 그 와중에서 예수님의 ‘주되심’의 의의가 드러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는 피조 세계에서 어떤 식으로 존재함을 드러내시는 겁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거주지’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어디에도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직 ‘성전’에만 계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예루살렘에만 계시고 다른 곳은 아니 계시다는 말입니까?

예루살렘의 성전이 임시적 처소라고 생각한다면 위와 같은 질문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계실만한 곳을 스스로 만드시는데 그곳을 성전이라고 지칭하시는 겁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이 만든 건축구조물로서 성전은 마땅히 불태워져야 합니다. 솔로몬 성전은 불태워지기 위해 한시적으로 이 지상에 등장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이전에 이미 솔로몬을 통해서 성전이 약속의 땅에 일시적이나 생겨났습니다. 그 성전은 이 지상에서 유일하게 하나님과 인간이 만남이 성사되는 곳입니다. 성사되는 방식은 인간이 제시한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제시한 방식을 따르게 됩니다. 그 방식이 바로 제사입니다.

제사에 동원되는 제물이나 소산물은 모두 약속의 땅에서 나온 소출들입니다. 이는 곧 약속의 땅이 계절마다 약속된 축복의 생산물을 내놓게 된다는 말입니다. 곧 하나님의 제물로 투입되는 소출물들은 ‘약속의 땅’이라는 기존의 공간에 작용하는 정기적인 계절의 변화로 인하여 생산된 것입니다.

그 절기에 대해서 최종적으로 오늘 본문에 보니 안식일과 월삭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매 달은 저녁 하늘에 초생달이 다시 나타나는 월삭과 더불어 시작됩니다. 따라서 한 달이라는 것은 자연의 영역 안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의 한 반영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안식일은 달력이나 천체의 달과 전혀 무관합니다.

안식일의 날짜는 월삭과 같이 자연 안에서 발생하는 어떤 사건에 의해하여 결정되는 그런 날짜가 아니라 창조의 행위에 의해서 결정 난 날짜입니다. 창세기 1장 끝에서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창조의 성과를 최종적으로 안식일이라는 날짜로 담은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작을 영원히 지키고 싶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시간은 이 안식일 취지의 확산과 확대로 번지게 된 것입니다. 마치 ‘약방의 감초’라는 말씀처럼 모든 한방약제에 감초가 들어가 있는 그 감초의 효능을 사수하기 위해 약을 짓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모든 절기는 실은 모두 안식일입니다. 인간이 노동하지 말아야 하는 날입니다.

안식일의 확대가 절기로 이어지는데 이로서 오늘 본문에 보면 안식일날 드리는 어린양의 숫자와 월삭 때 드리는 어린양의 숫자가 6마리로 일치합니다. 민수기 28장에 나오는 절기마다 제시된 제물의 종류와 숫자는 안식일과 기타의 절기와 구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식일을 빼놓고서는 다른 절기들은 모두 어린양의 숫자가 7과 관련 있다는 점에서 일치됩니다. (초막절은 7×2로 되어 있어 7의 취지를 빼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에스겔 본문에서 안식일의 드리는 어린양의 숫자와 월삭의 숫자가 6마리로 일치합니다. 이는 안식일이 시간의 최종적 요소요 발아씨앗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습니다. 66:23-24에 보면,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 월삭과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천지가 마감되었다는 신호는 곧 안식일과 월삭이 완료될 때입니다. 그 때가 되면 불결한 것들은 영원한 지옥이라는 공간이 됩니다. 한시적인 지상의 성전으로 지상에 있는 소산물이 투입되어 제사가 드려지지만 성전의 불태워짐과 더불어 이 지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거주지로 합당치 않음이 폭로됩니다. 곧 모든 공간은 베드로후서 3:10의 말씀처럼 불에 태워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하나님의 성전, 거주지는 어디입니까? 마태복음 1:23에 보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라는 인물이 하나님의 영원히 거주지가 됩니다.

그분은 이 지상에서 창조의 근본이 되는 죽음을 십자가상에서 보여주셨습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참된 죽음, 곧 십자가 죽음이 창조의 씨앗임을 증거하기 위하여 태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공이십니다. 시간이 공간을 선도했고 그 안식일완성에 의해서 예수님의 주되심을 기념하는 성전이 마련되면 그곳이 천국이요 그 천국의 취지를 빛내기 위해 영원한 지옥도 함께 생겨납니다.

예수님의 행하신 모든 일에 비해서 전에 성전에서 행해졌던 모든 절기와 제사나 예물은 전부 모형이요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성령받은 성도는 안에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래서 성전입니다. 성도가 살아가는 모든 것은 이미 천국백성이라는 이름 하에, 절기와 제사의 완성됨을 보여주는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에게 작용하는 은혜의 성질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작용하는 존재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근호

15-05-22 01:16

139강-에스겔 46장 1-5절(안식일과 월삭)150520-이 근호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겔 46장 1절-5절입니다. 구약성경 1225페이지입니다.

에스겔 46:1-5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안 뜰 동향한 문을 일하는 육일 동안에는 닫되 안식일에는 열며 월삭에도 열고 왕은 바깥 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와서 문 벽 곁에 서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요 왕은 문통에서 경배한 후에 밖으로 나가고 그 문은 저녁까지 닫지 말 것이며 이 땅 백성도 안식일과 월삭에 이 문통에서 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안식일에 왕이 여호와께 드릴 번제는 흠 없는 어린 양 여섯과 흠 없는 수양 하나라 그 소제는 수양 하나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니라.”

방금 읽은 이 본문에는 현대생활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등장인물과 생활방식이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모든 지시와 명령은 사람과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서 하나님 쪽에서 친히 제시한 요건들이에요. 이것은 무슨 뜻이냐? 인간이 신을 만나기 위해서 인간이 스스로 제시한 요건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보고 싶습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요? 우리는 하나님이 제시한 것을 통해서 하나님과 접선이 성립됩니다. 우리 쪽에서 멋져 보이고 뭔가 가져다 바친다고 하나님이 달려오시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제시한 말씀의 장터, 이것을 언약이라고 하는데 그 언약에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 만나는 겁니다. 오늘 본문 등장인물에 왕이 등장하는데 왕은 새로운 백성의 대표자가 되어서 왕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이 왕이 등장할 때는 백성들 전부를 대표해서 등장했다고 보시면 되는 겁니다. 그 왕이 동쪽 문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동쪽문은 왕만 들어올 수가 있어요. 다른 백성은 북쪽과 남쪽으로 오지 동쪽으로는 못 옵니다.

왕이 동쪽 문으로 들어오되 왕이 들어오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어디까지 들어오느냐 하면, “바깥 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와서” 그 다음에 “왕은 문통에서 경배한 후에 밖으로 나가”야 돼요. 현관에서 문 통 거기까지가 일반백성들, 왕이 백성들의 대표니까 백성들이 거기까지는 들어올 수 있습니다. 왕은 대표자니까 동쪽으로 들어오고요. 거기서부터 인수인계가 되는데 사실은 왕의 자리에서 하나님까지 만남의 자리는 누가 투입되는가? 제사장이 투입되는 겁니다. 이 제사장은 전문적으로 해야 될 일이 있어요.

4절부터 보면, “안식일에 왕이 여호와께 드릴 번제는 흠 없는 어린 양 여섯과 흠 없는 수양 하나라 그 소제는 수양 하나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니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제사장이 해야 될 일은 제사를 드리는 겁니다. 제사를 드리는데 왕은 제사 드리는데 참여를 못해요. 왕은 제사장의 권한을 추월할 수가 없습니다. 제사하는 것을 목격할 수는 있지만 제사 드리는 그 현장에는 왕과 백성들은 빠집니다. 제사는 제사장의 전문분야고 그들에게만 제사 드리는 것을 허락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사를 드리는데 제사 드리는 방식에 있어서 소제라고 있습니다. 소제란 약속의 땅에서 나오는 소산물을 두고 이야기합니다. 밀가루 같은 거죠. 약속의 땅에서 포도는 가을에 추수하게 되어 있어요. 약속의 땅에서는 세 번 추수합니다. 하나는 보리, 두 번째는 밀, 세 번째는 포도와 기타, 무화과열매 같은 거겠지요. 땅에서 나오는 자연생산물을 하나님께 소제로 드리는데 소제는 일종의 콩고물 같아서 곁에 붙어 있는 거예요. 소제가 곁들이는 하나의 보조제물이라면 중심제물은 뭐냐? “흠 없는 어린 양 여섯과 흠 없는 수양 하나라.” 이렇게 식물성이 아니고 동물성, 살아 있는 생명체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말미암아 그 제사 안에서 하나님과 만남이 성사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성사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나 살아 있고 하나님 살아 있으니까 살아 있는 나와 살아 있는 하나님이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지요. 이 만남은 모든 물체에 대한 죽음 안에서 만나는 겁니다. 이 대목이 우리가 생각하는 우상숭배, 이방인들의 우상숭배의 신과 너무 달라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를 긍정해주시는 분이 아니고 우리의 존재를 불태우시는 분입니다. 모든 물체는 불태워져요. 다 태워버립니다. 그 하나님의 태우는 것이 영광이고 거룩이에요.

하나님께서 물체를 불태우는데 그 불태워지는 그것이 물체 속에 본성으로 자리 잡고 있어요. 그런데 그 물체의 본성은 하나님의 제단 앞에서 동물성, 생명 있는 제물이 제단에서 불태워질 때 ‘아하, 우리라는 이 신체, 물체는 마땅히 불태워지고 마땅히 죽어야 되는구나.’ 쉽게 말해서 죽음을 가지고 현재 우리의 목숨을 만들어낸 거예요. 우리의 목숨이 끊어지는 게 죽음이 아니고 애초부터 죽음 속에서 우리 생명이 나온 겁니다. 예수님 십자가에서 영생이 나오듯이 이 온 천하가 전부 다 예수님, 그리스도의 속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만들어졌거든요.

그러면 인간의 바닥은 죽음으로 되어 있어요. 죽음이라 하는 것은 소멸이고 없애버리는 겁니다. 태우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없애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말인가? 하나님께서 죽음을 의미하기 위해서 생명세계, 피조세계인 이 천지를 만들었습니다. 만들고 난 뒤에 그 만들어진 생명, 여섯째 날에는 코끼리, 넷째 날엔 물고기, 셋째 날에는 코스모스나 해바라기나 들국화를 만드실 때에 우리가 보기에는 ‘저게 살아 있다. 생명이 있다.’고 간주하잖아요. 그 살아 있는 것이 그냥 살아 있다면 그 살아 있는 것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창조주가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살아 있는 것을 죽음으로 돌이켜서 그 죽음을 통해서 새롭게 창조될 때 그 절차를 통해서 창조주,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의 진짜 생명이 거기서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이렇게 하시면서 창세기 2장에서 천지창조를 완료하시고 주신 것이 뭐냐? 안식일이라는 것을 줬습니다. 안식일은 시간요소에요. 공간요소가 아니고 시간요소입니다. 공간에 대해서 시간이 우위를 점유한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시간의 최소단위가 뭐냐, 안식일입니다.

왜 안식일인가? 안식일속에 비로소 거룩이 담겨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절기마다 다 공통적으로 안식일이 들어 있어요. 어떤 절기라도 그날은 무엇도 하지 말고 쉬어야 되는 겁니다. 안식일이 확장된 것이고 확대된 겁니다. 안식일을 확장시켜놓고 다시 안식일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어요. 모든 것이 안식일에 들어 있다는 이 말은 안식일이라는 그 시간, 그 시간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천지 창조할 때 해와 달과 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시간을 만드신 거예요. 시간을 측정하는 우주의 변화측정기계, 그런 시계를 하늘에 만든 거예요.

특히 중요한 것은 안식일의 시간개념은 기존의 해, 달, 별의 시간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고 본래적인 시간요소, 하나님만 다룰 수 있는 시간에 저촉되고 그 다음 안식일부터 나오는 월삭, 유월절, 무교절, 같은 말로 칠칠절이지요, 맥추절, 다른 말로 오순절, 그 다음에 나오는 나팔절, 7월 1일, 그 다음에 7월 10일에 속죄일, 7월 15일부터 22일까지 있는 초막절, 또는 수장절, 그 모든 절기, 안식일을 빼놓고 모든 절기는 그 시간측정이 해와 달과 별에 의해서 되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보게 되면 두 가지 절기를 이야기하는데 “육일 동안에는 닫되 안식일에는 열며 월삭에도 열고”라고 하지요. 월삭이란 초승달에서 그 다음 초승달까지 한 달을 월삭이라 합니다. 영어로 ‘new moon’(새로운 달)이라는 뜻인데 초승달에서 다음 초승달로 옮겨가는 겁니다. 인간은 생명을 누리고 햇빛을 받아서 식물의 엽록소가 활동하는 이 낮을 중심으로 생각하잖아요. 성경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성경은 낮이 중심이 아니고 저녁이 중심이에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된다고 해요.

“낮이냐? 해가 있어” 그거 다 날라 가버려요. 요한계시록 22장에 보면 해도 없어요. 달도 없고 별도 없습니다. 그런데 밝아요. 조명 시설을 뭘 했는지 모르겠어요. 그 조명시설은 예수님의 보좌에서 나오는 영광으로 밝기가 충분하다는 겁니다. “살아 있는 생명아! 죽음을 겨냥해라. 환한 대낮아. 너는 저녁을 겨냥해라.” 밝고 환하고 숨을 쉬는 것, 이 세계는 전부 다 죽음과 어두움, 그 절차를 경유해서 주님의 세계로 회수되는 한시적이고 임시적인 창조세계입니다. 안식일, 그 다음부터 나오는 월삭, 유월절, 그 모든 절기는 기존의 창조질서에 준해서 이루어집니다.

창조질서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시간에 의한 것, 해와 달과 별의 시간에 의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공간, 땅에 의해서 되는 겁니다. 그러면 땅에는 뭐가 있는가? 땅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생산물을 내게 되어 있어요. 아까 세 가지 추수를 한다고 했지요. 보리추수, 밀 추수, 포도추수, 이 추수를 할 때마다 감사하는 것을 가지고 절기라고 합니다. 그 절기는 처음이 뭐냐, 월삭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하지만 뭐는 빠지는가? 안식일은 빠져요. 안식일은 기존의 공간과 기존의 시간에 저촉을 받지 않습니다.

이것은 원초적인 거예요. 이것은 땅 이전의 것입니다. 땅 이전의 것. 민수기 28장에 보면 제물들이 나오는데 안식일에는 어린양 두 마리 잡아요. 월삭에는 수송아지 두 마리, 수양 한 마리, 어린양 일곱 마리, 수 염소 한 마리. 무교절에도 수송아지 두 마리, 수양 한 마리, 어린양 일곱 마리, 수 염소 한 마리. 칠칠절에도 수송아지 두 마리, 수양 한 마리, 어린양 일곱 마리, 수 염소 한 마리. 안식일에는 그냥 어린양 두 마리에요. 안식일 빼놓고 월삭, 무교절, 칠칠절, 나팔절, 뒤에 나오는 초막절까지 속죄일도 마찬가지고 전부 어린 양 일곱, 일곱, 일곱이에요.

그리고 초막절은 열네 마리인데 7로 접근하고 7에 맞추기 위해서 14, 14, 죽 되어 있습니다. 월삭부터 무교절, 칠칠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은 뭐냐 하면, 그게 한 그룹이 돼요. “기존에 하나님께서 이 약속의 땅을 주셨고 우리에게 시간을, 곧 해와 달과 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에 맞추어서 소산물을 땅이 내었습니다. 이 약속의 땅에 적절하게 비를 내리고 옥토가 되게 하셔서 생산물이 나왔고 그래서 우리가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감사하기 위해서 제사를 드리는데 제사를 드리는 장소가 뭐냐? 성전이에요.

기존의 건축구조물로 된 성전은 어디에 속하는가하면, 기존의 창조물에 포함된 성전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에스겔 46장에서 말하는 성전은 이미 그 성전이 불태워져 버렸어요. 누구에 의해서? 하나님에 의해서. “목사님, 하나님이 성전에 함께 계신다면서 왜 성전을 불태웁니까? 물체는 불태워져야 되거든요. 물체는 불태워져야 돼요. 거룩하다고? 그 거룩한 것도 불태워질 때 존재의 품안에 담겨 있는 진짜 거룩이 튀어나오는 겁니다. ‘아하, 나는 불태워져도 마땅하구나.’ 잔다르크라는 프랑스의 소녀영웅을 불태워 죽였어요.

역대하 6장 18절에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난 뒤에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분명히 이야기했어요. 이 세상의 어떤 건물도, 어떤 성전도 하나님을 모실 수가 없습니다. 중요한 거예요. 하나님은 어디에도 계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성전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니까 우리 교회에도 계십니까? 미국의 큰 교회에 계십니까? 순복음교회에 계셔요? 특정 구조물에 있습니까?

우리가 아는 상식은, 하나님은 미국에도 계시고, 필리핀에도 계시고, 아프리카에도 계시고, 하늘 끝에도 계시고, 땅 밑에도 계시고, 그렇게 계시지요. 그런데 그것이 전부 다 불태워진다면 이 세상 어느 곳도, 하늘과 땅, 그 어디도 하나님을 모실만한 거주지가 되지를 못하지요. 한시적이고 임시적이에요. 성전이 불태워졌다는 말은 기존의 제사, 제물, 더 이상 드릴 수도 없고 바칠 장소도 없어요. 하나님이 어디 계셔야 바치지 하나님이 계신 장소가 하나님에 의해서 불태워졌으니까 모든 공간은 날라 가버렸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주는 것은 뭐냐 하면, ‘인간이 지은 집은 하나님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성전을 허락한 것은 솔로몬이 거룩하게 지었던 그 성전, 처음 지었을 때 하나님이 내주하시고 영광중에 나타났던 그 성전, 그 성전의 본질은 그 성전이 불태워지면서 비로소 드러내는 겁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뭡니까? 이 세상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우리가 바닥으로 떨어지기 싫어서 살아가잖아요. 쉽게 말해서 죽는 것이 무서워서 살아가요. “왜 삽니까?” 답변은 뻔하지요. “이유는 모르지만 일단 살아 있으니까 어쨌든 간에 살아야지요.” 이게 이유에요. “그러면 누굴 위해 삽니까?” “당연히 날 위해서 살지요.” 그것 외에는 내놓을 답변이 전혀 없습니다. 성경 좀 알았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이야기는 하지만 “그것은 성경 내용이고 본인 마음이 어떻습니까?”라고 물으면 “어쨌든 살아야지요.” 하나님은 우리를 죽이기 위해서 살려뒀습니다. 계속 죽이기 위해서. 신자나 불신자나 다 죽습니다. 하지만 신자는 죽어가면서 창조주를 보여주는 그런 사명으로 이 땅에서 우리로 하여금 살게 하시는 겁니다.

설교 처음부터 다시 해 봅시다.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은 제사를 통해서 만난다고 했습니다. 제사는 진짜 본래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 되게 되면 이 세상은 모든 것이 다 불태워지고 마는 겁니다. 이사야 제일 마지막이 어떻게 끝나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이사야 맨 마지막이 이렇게 끝나요.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 월삭과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 그 다음에 25절에,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지옥 이야기입니다.

주께서 당당하게 지옥을 가동시키는 이유는 그 앞서 나오는 23절, 매 월삭과 안식일을 성취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는 본인의 볼일이 끝난 거예요. 안식일 있고 월삭이 되면 나머지는 다 깔끔하게 불태워버리고 영원한 저주의 불을 붙여도 주님에게는 조금도 양심의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것이 원래 목적이기 때문에. 성경이 왜 있어요? 숨어 있는 주의 뜻, 계시를 드러내기 위해서 있는 거잖아요. 이사야 마지막이 바로 우리가 모르는 하나님의 본뜻을 드러낸 거예요. 다른 이상한 상상 하지 마세요. “저는요?” 이러지 마세요. ‘나’라는 것이 나올 수가 없어요. 하지 마세요.

주님께서 안식일과 월삭을 성취하게 되면 이제는 일이 마감된 거예요. 파장입니다. 마무리 다 했어요. 공작시간에 주님이 만든 것이 뭐냐? 안식일과 월삭을 완성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나머지를 다 불태워버려요. 마태복음 3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필히 불세례가 오게 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성령의 세례를 받아서 천국의 알곡을 건지게 되면……, 이게 세례요한의 이야기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회개의 세례, 물세례를 주지만 성령세례와 불세례는 내 뒤에 오시는 분 담당이다.” 성령세례는 천국에 알곡을 넣기 위해서 성령세례가 오고 알곡 건졌으면 그 다음에 뭐가 남습니까? 나머지는 다 불로 싸질러버리지요. 그걸 왜 그냥 두겠어요? 마지막 파장마당인데요. 파장이잖아요, 파장. 쭉정이는 불로 태우잖아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겠다는데 왜 우리가 손들고 이의를 걸고……그러지 마세요.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우리는 그럴 입장에 못돼요. 우리가 인생, 세상을 깔끔하게 봅시다. 상큼하게 봅시다. 세상에 내 뜻은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주의 뜻만 계속 밀어붙이고 작용해 버려요. 주의 뜻이 뭐냐? 안식일, 월삭 끝내면 그 다음은 다 지옥 불에 가는 거예요. 사람이요? 그건 물체인데? 불태워져야 되는데? 영원토록.

그렇다면, 모든 공간이 불태워진다면, 전부 다가 불태워지느냐, 그 문제가 생기잖아요. 오늘 설교 여기까지만 들으면 기절초풍하겠지만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요. 기대하세요. 모든 것이 사라지면 끝나잖아요. 그런데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안식일을 만들었지요. 안식일은 창조 이전의 계획이기 때문에 창조 이후의 일에 안식일은 영향 받지 않습니다. 안식일이 구원하는 거예요, 안식일이. 창조세계 속에는 시간요소가 흐르고 있어요. 안식일이라는 하나의 시간소, 시간의 제일 작은 조각이라는 뜻의 시간소, 시간요소, 그게 다 들어 있어요, 모든 시간에.

쉽게 말해서 ‘약방의 감초’라는 말이 있지요. 한방에서 약 지을 때 감초가 다 들어가요. 그 말은, 모든 약재는 감초가 가진 효능을 유지해야 되고 그걸 잘 감싸줘야 된다는 말이지요. 천안의 호두과자에 보면 얇은 종이 있잖아요. 종이 뜯어먹는 사람은 없어요. 종이 벗겨서 호두과자 먹잖아요. 안식일이라는 것을 가지고 안식이라는 창조이전의 묵시세계지요, 창조이전의 계획을 창조세계, 월삭이라든지 유월절, 초막절, 이걸 가지고 포장지로 감싼다는 말이지요. 그것은 벗겨지지만 안식일만 등장하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시간이 공간을 장악하고 있다는 그 말입니다. 공간에 있는 모든 것, 심지어 성전이라도 다 불태워져요.

그러면 그 시간이 어떻게 공간을 만들어내는가, 그 문제가 생기지요. 시간을 공간으로 만드는 그 계획은 반드시 어떤 원리가 있어요. 그 원리가 뭐냐 하면, 하나님이 과연 거주할만한 성전은 어떻게 만드느냐는 그 문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거주할만한 세상이냐, 오직 그것 딱 하나만 있어요. 그걸 가지고 성전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성전은 기존의 건축물성전이 먼저 나와야 되고, 그것이 불태워져야 되고, 불태워지고 난 뒤에 새로 세워진 성전이 하나님이 거주할 만한 성전이 되는 겁니다.

기존에 인간이 건축구조물로 만든 성전에는 뭐가 포함되어 있느냐 하면, 약속의 땅이라는 눈에 보이는 공간에서 나오는 생산물, 농산물이 투입이 돼요. 그리고 염소, 어린양, 수송아지, 이런 것들이 제물로 들어가는 겁니다. 전부 다 그것은 모형들이에요. 전부 다 그림자고. 모형이고 그림자라니까요? 거기서 얼쩡거리고 일하는 제사장도 모형이에요. 이제 성경이 눈에 들어오십니까? 신구약이. ‘내가 제사 잘 드려서 복 받아야지.’ 이런 것은 없어요. 지금 내가 복 받는 것은 성경의 주제가 아닙니다. 성경의 주제는 하나님의 거주지가 어디 있느냐? 거주지 만들기입니다.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거주지 만들기에요. 복 받으려고 교회 오는데 그건 갓바위 그쪽이 좋아요.

안식일은 왜 있느냐 하면, 창세기 2장에서 천지를 만드시고 보기 좋았고 안식하셨잖아요. 보기 좋았던 그 시작을 그 다음부터는 모든 피조세계가 지켜야 되는 거예요. 지켜내야 되는데 실패해요. 실패하니까 실패한 것을 불태운 그것, 시작이 곧 끝, 끝에 보면 그 시작의 알갱이가 고스란히 드러날 때, 보기에 심히 좋았다는 그 시작이 포함된 안식일이 완성이 될 때, 이 눈에 보이는 모든 세계는 중간과정에 불과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처음과 끝이 있는데 처음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예수님의 주되심이, 주님이 거주지가 이제는 모든 것이 나타났다, 불태워졌다, 없어졌다, 새로 생겼다, 그 과정을 통해서 ‘아하, 진짜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예수님을 주로 옹위하는 그 거주지가 하나님이 영원히 계시는 거주지’라는 이것이 요한계시록 21장, 22장에 나오는 천국입니다. 어린양의 보좌,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 보좌 두개가 설치되어 있는 천국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거주지가 어디 있느냐? 거주지는 안식일, 시간으로 만들지요. 공간 없애고 시간으로 만들지요. 여러분들이 잘 아는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 나와요. 교회 좀 다녔다는 사람은 이것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하나님의 거주지가 어디냐 하면, 인물이에요, 인물. 건축구조물이 아니고 인물이에요. 나사렛예수라는 특정인물입니다.

예수님 바깥에 하나님 계시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 안에 계셔요. 예수님의 갈빗대 근처? 예수님의 귀 있는 곳? 무르팍? 여기에 하나님이 계신가? 주님께서는 인간의 육신, 신체를 입었지요. 이 신체, 죽을 수밖에 없는 신체에 들어오셔요. 죽을 수밖에 없는 신체에 들어오셔서 이 죽음을 원래의 죽음으로 바꿔주는 작업이 예수님이 하실 일입니다. 우리는 백날 죽어도 소용 없어요. 우리는 백날 죽어도 생명까지 이어지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죄 있는 육신의 몸으로 오셔서 그 죄 있는 육신의 몸을 진짜 하나님의 거룩을 드러내는 죽음으로 바치는데 바칠 때 뭐로 바치는가? 말씀에 입각한 월삭제물, 안식일제물, 무교절제물, 속죄제제물, 모든 구약의 제물을 일괄해서, 총괄해서 제물로 드려버려요.

제물로 드려버리면 그 제물로 바쳐지는 그 현장이 곧 하나님의 거주지가 되는 겁니다. 예수 안이 거주지가 돼요. “주님, 그곳이 어디입니까?” 묻지 마세요. ‘어디입니까’라는 공간적인 질문을 하는 것은 파멸되어야 할 공간관을 가지고 그대로 천국까지 이어보려는 무리수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은 예수 안에 계시지요. “그곳이 어디인데요? 예루살렘? 터키? 어디입니까?” 이렇게 물어서는 안돼요. 지구의 모든 것은 베드로후서에 의하면 다 불타야 되기 때문에. 없애야 될 것인데 아직도 우리가 “어디일까? 아라랏 산일까? 터키쯤일까? 예루살렘의 몇 번지? 거기일까?”라고 묻는 것은 본인이 죽어야 마땅하다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에 그런 질문이 나오는 겁니다. “지금 살아 있는 내가 어디 가서 삽니까?”라는 거지요.

주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그냥 불신자들이 죽는 죽음 말고 예수님과 함께 죽는 죽음으로 바꿔줌으로 말미암아 안식일의 완성되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하나의 안식일요소, 시간요소로서 이미 들어 있다는 거예요. 신앙생활이 뭐냐 하면, 처음부터 우리 안에 주님이 계셨던 겁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뭘 해도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나온,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 덕분으로 우리가 먹고, 마시고, 교회 오고, 이렇게 사는 거예요. 뒤에 TV도 사놓고, 모든 것을 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성도가 해야 될 것은 뭐냐 하면, 기존의 시간과 예수님의 시간의 차이점, 기존의 공간과 예수님의 공간의 차이점, 그 차이점을 우리를 통해서 양면성을 보여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케 하시는 겁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우리가 나그네라고 했거든요. 나그네인데 본향은 어디냐? 본향은 하늘에 있다 했습니다. 그게 아브라함이 보여주던 주님에 대한 증거예요. “아브라함님! 어디로 가십니까?” “본향이다.” “어디 있는데요?”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다.” “거기가 몇 번지인데요?” “너는 몰라. 나도 몰랐었지. 그런데 주께서 나에게 찾아오니 그 본향이 어디 있는가?” 몇 번지냐고 묻지 말고 거기에 누가 계시느냐고 물어야지요. “거기 누가 계십니까?” 예수님 계신 곳에 우리가 합류됩니다.

또 하나 예를 들겠습니다. 스데반집사가 돌에 맞아 죽습니다. 옆에 있는 어떤 사람이 물었다 칩시다. “스데반 집사님은 어디로 가십니까?” “가기는 어딜 가?” 죽으면 화장터에 가잖아요. 화장터를 가든 어디를 가든 간에 그 공간에 가는 게 아니에요. 예수 안에 살면서 그냥 예수 안에 계시는 겁니다. 돌에 맞아 죽었을 때 눈을 들어보니 예수님이 거기 계신 거예요. 사도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몸을 벗어버리고 주를 어서 만나고 싶습니다.” 보세요. 사도바울이나 스데반집사나 또 베드로도 “여기가 좋사오니.” 변화산에서 베드로가 거기서 맨션 짓는 거예요? 변화산에 베드로맨션 아파트 있겠네요? 거기 아파트 있어요?

또 예를 들면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빠 나사로 같은 경우. “돌문 치워라. 나사로야! 나오너라!” 나사로는 예수님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나사로와 함께 처음부터 있었기 때문에. 죽었던 나사로는 예수님의 거주지가 되고 하나님의 거주지가 되는 겁니다.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거주지가 되는 것, 이걸 고린도전서나 후서에서는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고전 3:16, 고후 6:16)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일은 뭐냐? “제가 왜 성전입니까?” 이걸 날마다 나타내 보여주게 되면 그것이 성령 받은 예수의 증인되는 거예요. 안식일은 태초에 보기에 심히 좋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천지를 창조한 그 비밀이 안식일속에 담겨져 있다는 거예요. 그 담겨 있는 안식일을 확대시킨 것이 월삭이고 무교절이고 초막절이고 수장절이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안식일이 확대되다 보니까 무엇도 확대되는가? 제사의 제도, 제물인 수양의 숫자가 확대되면서 늘어났습니다. 늘어났지만 그것이 다시……, 본문 6절에 보면, “월삭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 하나와 어린 양 여섯과 수양 하나를 드리되.”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여기서 “수송아지 하나와 어린양 여섯”에서 어린양만 주목하게 되면 어린양의 숫자와 4절에 나오는 안식일제물의 숫자가 같아요. 이것은 합치되는 겁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니까, 어린양이 대표니까 합치되는 거예요. 월삭이라는 것, 기존의 세계에 있던 모든 시공간은 시공간 이전부터 있었던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를 대표해서 보여주는 어떤 시간, 안식일, 안식일요소, 그 안식일이 확산되고 확대된 것이 우리의 일상생활이지요.

거기서 우리는 그 안식일에 나오는 그 보이지 않는 메시아의 희생덕분에 밥을 먹고 생산을 했고 옛날 이스라엘은 그 생산물을 때마다 절기마다 “하나님 덕분입니다. 하나님 덕분에 이렇게 죄용서 받고 하나님 덕분에 이렇게 풍성한 결실을 맺었습니다.”해서 초막절, 수장절, 모든 절기를 지킨 거예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전부 다 죽음과 불태움으로 사라지게 되면 마지막 남는 것은 뭐냐?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등장하는 시간과 공간입니다. 그 시간은 영원한 것이고 공간은 뭐냐? 천국과 지옥, 지옥과 천국, 두 종류밖에 없습니다.

주와 함께 있는 공간이냐, 아니면 주님이 떠나버린 공간이냐? 성도는 주님이 마지막 때 완성하신 지옥과 천국을 앞당겨서 증거 해야 되지요. 자신의 능력으로? 아니요.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지옥과 천국을 증거 하는 겁니다. “누구든지 주를 믿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손바닥을 탁탁 털면서 살아가시지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 나오는 모든 일들이 근원을 찾아가 보니 예수님의 주되심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해와 달과 별이 사실은 예수님을 증거 하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소리로 전달하고 있고 보이지 않는 은혜로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유독 인간만은 그 창조의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이제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 모형과 그림자로 둘러싸인 세계에 우리가 놓여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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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6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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