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01a 울산강의-출애굽기 34장 : 언약 세우기
20150501a 울산강의-출애굽기 34장 : 언약 세우기
이름 : 한윤범(IP:14.39.134.68)
20150501a 울산강의-출애굽기 34장 : 언약 세우기
(강의:이근호 목사)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출애굽기 34장 10절부터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언약을 세웠나니” 이렇게 돼있지요. 하나님께선 그냥 하늘에 계신 것이 아니고 지상에 무슨 일을 벌이십니다. 그 일이 뭐냐? 언약을 세운다. 언약을 세운다는 것이 여기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창세기 6장 18절에 보면, 언약을 세우는 게 나옵니다. 노아와 언약을 세울 때 방주라는 게 나타났어요.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운다는 것은 장난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언약을 세운다는 생각에 인간에서 나온 생각도 아니에요. 이 말은 뭐냐 하면 인간은 자기들끼리 바쁘더라도 주님은 주님 나름대로 바빠요. 언약 세우는 일에 주님께선 하자가 없고, 쉼도 없고, 휴식도 없고 그냥 밀어붙입니다.
우리가 천국을 그리워하는데 사실은 그게 너무 잘못된 거예요. 내가 원하는 천국을 그리워할 것이 아니고 이 지상에서 천국을 만드는 언약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돼요. 그게 천국이에요. 우리가 상상하는 천국은 나 살기 좋고 나만 행복하면 그만이다는 그런 천국, 내가 지어낸 천국이지만, 상상하니까.
생각해봅시다. 노아 때 노아만 천국을 생각했겠어요, 다른 사람들도 생각했겠습니까? 다른 사람들도 생각하지요.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힘들고 힘든 인생 끝나고 편히 살고 싶은 생각이 있겠지요. 나름대로 내가 죽으면 저 하늘나라에 어느 자리에 앉을까? 다들 생각해요. 이건 종교와 상관없이 종교가 없다할지라도 그런 생각을 누구나 다 갖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끝이라는 게 너무 허무하잖아요. 죽고 난 뒤에 착한 일 많이 했으면 뭔가 좋은 나라에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노아 당시에 진짜 좋은 나라 간 사람은 노아 식구들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그들의 상상한 게 문제거든요. 좋은 나라, 천국을 상상한 게 문제에요. 그걸 상상하다보니까 하나님께서 지상에 언약 세움에 대해서 그들은 관심을 둘 수가 없었지요. 왜? 자기가 생각했던 천국과는 너무 판이하게 다르니까. 천국을 가고 싶은데 이 땅에서 주께서 일하신 것은 관심 없고 자기가 생각하는 멋진 나라는 고대하면서 천국은 지금 하나님이 여기서 만들고 있는데 만드는 천국은 관심 없이 자기가 올라가는 천국은 따로 좋은 것 다 묶어서 그리워하고.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죠. 장례식에 가면 목사들이 좋은 소리 다하면서 하늘나라 맨션아파트 있다고 하는데 왜 하늘나라 맨션아파는 생각하고 여기 지상에 만드시는 언약은 왜 생각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언약을 세운다는 것이 주께서 하신 말씀이잖아요. 무슨 말입니까? 네가 상상한 천국은 생각하지 말라는 그 말입니다. 지상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 그것으로 인하여 네가 상상한 천국은 찢어버려라. 그것 걷어치워라. 그것 포기하라. 그건 네가 꾸며낸 하늘나라기 때문에 어림도 없다. 가짜다.
다시 강의한 걸 정리하면,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34장 10절에서 언약을 세운다고 이야기함으로 말미암아 천국이란 것은 지상에 하나님에 의해서 따로 만들어지는 겁니다. 우리가 상상한 그런 천국은 다 헛꿈이에요. 다 소용없는 겁니다. 그런 생각들을 버리세요. 구체적이고 역사 속에 만들어진 하나님 나라를 생각해야지 내가 살기 좋다는 천국을 따로 만들면 그것은 안 됩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언약을 말만 세우면 되나? 실제로 세워야지 하신다면, 창세기 6장 18절에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해서 언약을 만들었습니다. 만들었는데 그게 방주였지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방주에, 하나님이 세운 언약에 관심 둔 사람이 노아 가족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겁니다. 아무도 없을 때 노아가 굉장히 섭섭했겠어요, 좋아했습니까, 아니면 별 말이 없겠어요? 크게 지었는데 아무도 안 오고 재미없네. 이렇게 생각했겠어요? 하나님께 채우라고 요청했겠습니까?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언약이라 하는 것은 방주만 언약일수도 있지만 방주를 그런 식으로, 사람들이 납득이 안 되고 사람들이 거부할만한 그러한 방주를 만들기 위해서 그들에게 방주에 대해서 관심 없는 마음까지 언약에 포함돼있습니다.
지금 연휴라고 외국으로 엔화 약화됐다고 일본으로 놀러가지요. 그들이 온천 가지만 그게 언약이에요. 어디에 가도 언약 없이 인간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방주만 언약이고 나머진 언약이 아닌 것이 아니고 방주 만들면서 방주에 사람들이 관심이 없도록 하기 위한 모든 주변의 상황도 언약이 장악하고 있었던 거예요. 따라서 노아 입장에서는 전혀 짜증내거나 답답해하거나 불평하거나 시큰둥할 하등에 이유가 없는 겁니다. 언약이 현 상황을 덮었으니까. 주님은 보험회사가 아닙니다. 그저 고객 하나라도 확보하려는 것, 하나님은 관심 없어요.
그러면 노아 가족만 구원받고 방주 안에 들어오고 다른 사람들은 못 들어왔으니까 언약 실패한 것 아닙니까? 하는데 그 사람은 뭘 모르느냐 하면, 언약이 두 개의 기능이 있어요. 하나가 소멸시키는 거예요. 소멸시키는 걸 반(反)창조라고 합니다. 창조에 반대되는 요소가 언약에 들어있어요. 그 다음에 남은 자만 건져요. 이걸 창조의 연속성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할 때는 그냥 창조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창조 아닌 것과 더불어서 창조세계를 계속해서 유지해가는 거예요. 창조 아닌 것까지 포함해서. 창조란 하나님의 목적 방향이 있거든요. 창조의 목적이 뭐냐? 예수님을 주로 만들어서 온 세상이 예수님의 주 되심을 받쳐주는 찬양하는 의미로서 새로운 하늘과 새 땅, 천국과 지옥을 만드는 목표가 있어요.
그 방향이 아닌 것은 제거, 소멸시키는 겁니다. 없애버리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소멸시켜 죽이고 심판하고 저주하고, 그 작업도 언약 안에 포함돼있어요. 하나님은 지금 바빠요. 지옥 갈 사람들을 지옥 보내기 위해서 되게 바쁘다니까요. 지옥 갈 사람을 지옥 보내기 위해서 일본이고 미국이고 사우디아라비아고 지금도 언약대로 일하고 계셔요. 그럼 여기 울산에 있다가 사우디아라비아에 갔다? 거기도 언약 덩어리에요. 비 오면 언약 비가 내리고. 사우디 비 잘 안 오겠지만. 모래 폭풍 불면 폭풍 자체가 언약의 폭풍이에요. 언약은 내가 지키면 현실화 되고 안 지키면 그런 게 아니에요. 나와 아무 상관없습니다. 나와 상관없이 언약이 그냥 덮친다니까.
전에 이야기했지만 먹구름이 올 때 먹구름 스톱, 멈춰야지. 이런다고 멈추지 않아요. 언약도 우리말 듣지 않아요. 일방적으로 언약을 실시하고 남는 것은 한쪽 지옥 가고, 한쪽은 천국 가고, 그렇게 남아요. 천국 가는 게 애쓰니까 천국 가고 지옥 가려고 애쓰니까 지옥 간다. 그런 것 없어요. 그냥 언약이 언약대로 시행하니까 딱딱 구분된 겁니다. 언약에 속한 사람은 이 세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 마세요.
저한테 이런 질문도 한 청년이 있어요. “목사님, 제가 예수도 믿고 복음도 아는데 매일같이 자위행위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자위행위를 멈출 수 있습니까?” 비밀 글로 이야기하는데 따지고 보면 어른들 보면 비밀 글도 아닌데 이삼 대 되니까 비밀 글 같은 느낌이 들지요. 문제는 자위행위에 의미를 둔 게 문제에요. 자위행위를 그만두면 자기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의미를 둔 게 문제라니까요.
하나님을 자기가 되고 싶은데 왜 끌어당깁니까? 하나님을 자기가 되고 싶은데 끌어당기는 것은 진짜 하나님이 만드시는 언약 말고, 오늘 제목을 ‘만들어가는 천국’이라고 할까? 하나님이 만드시는 천국은 관심은 없고 자기가 가고 싶은 자기가 되고 천국을 자꾸 그리워하기 때문에 거기에 의미를 둬서 그런 실수가 일어나는 겁니다.
내가 도둑질했다. 주여, 제가 잘못했나이다. 상당히 겸손해 보이잖아요. 그런데 언약적으로 좀 더 생각해봅시다. 내가 도둑질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내가 살인을 했습니다. 어쩌라고, 그게 어때서? 그 말은 뭐냐? 나는 살인해서는 안 되는 인간인데, 주께서 뭐라고 합니까? “얼씨구. 너는 널 몰라. 네가 뭔데 살인을 안 해야 되는데?” “난 성도기 때문에 주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는 살인하면 주의 영광을 가리기 때문에 살인하면 안 됩니다.” “네가 다 해. 인생 네가 다 살아.”
살인을 해도 그것도 언약에 의해서 살인해야 된다고 믿는 자가 언약에 속한, 방주 안에 들어온 사람의 특징이에요. 방주 안에 들어간다는 의미를 생각해보세요. 방주는 노아가 만들었지만 일단 들어가면 노아조차도 방주 안에 있는 거예요. 영어로 in, 반대말은 out. 방주 안에 들어갔다는 말은 이미 영향력 아래 포함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큰 창고에서 폴짝 뛰면 손이 천정에 닿습니까? 그건 학꼬방이지 창고가 아니잖아요. 창고는 너무 커서 폴짝 뛰어봐야 천정에 안 닿지요. 그 말은 그 안에 갇혀있다는 말이거든요. 그 안에 놓여있단 말입니다. 구원은 뭐냐? 예수 믿어서 구원받는 게 아니고 예수 안에서 구원받아요. 예수란 창고 안에서 구원받는단 말이죠. 내가 거기서 살인을 하던, 간음을 하던, 도둑질을 하던, 강도질을 하던 그건 언약의 의미를 훼손시키지 않습니다.
전도하는 사람이 전도하면서 한 명이라도 건져야지. 이건 무슨 짓이에요? 선교사가 고국에서 선교비 보내주는데 내가 과테말라에서 십 년 동안 두 명 전도하고. 선교비 달라니까 부끄러워서 못 하겠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지금까지 선교한 게 아니에요. “주여, 참 편하게도 살게 하십니다. 달랑 두 명 전도하게 하시고. 이천 명 됐으면 바빠서 죽을 뻔했는데 감사합니다. 달랑 두 명 주시는 언약을 베풀어주시니 세상에 두 명 전도하고 천국은 천국대로 들어가고.” 나중에 그 두 명도 가버리면, “주여, 이제는 한 명도 안 남았으니 이래도 구원받았다니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야 돼요.
전에 그런 설교했거든요. 사렙다 과부가 엘리야를 섬기는데 가뭄이 들어서 먹을 게 없는데 마지막 남은 밀가루와 기름으로 떡 해 먹고 죽으려고 했는데 그때 엘리야가 뛰어든 거예요. 그때 사렙다 과부는 엘리야가 뛰어든 것으로 본 거예요. 사렙다 과부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마지막 남은 기름과 마지막 밀가루가 엘리야, 언약 세계 안에 있다. 그 창고 안에 들었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그냥 그 앞에 엘리야가 뛰어드니까 마지막 남은 걸 빼앗아가나? 그래서 마지막 남은 것으로 빵을 만들어서 줬거든요. 그런데 그릇마다 병마다 기름이 차고 넘쳤단 말이죠. 로또가 이런 로또가 없구나. 횡재했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선지자를 대접하니까 이런 혜택을 받는구나. 여러분, 선지자 대접했다고 그런 혜택 받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여전히 내 세계 따로 있고 선지자 세계 따로 있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큰일 나는 거예요. 사렙다 과부가 참 고맙네. 대접 한 번 잘 했더니만 천 배까지 보상을 받는구먼. 그런데 아이가 죽었어요. 엄마가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기름 좀 주고 밀가루 좀 줬다고 좋아했더니만 세상에 밀가루가 기름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는 마당에. 그래서 엘리야한테 달려들었지요. 내 아들 살려내라고.
보세요. 그 사렙다 과부가 자기 본색을 드러냈잖아요. 가뭄 들어서 굶어 죽는 것이 의미가 없는 거예요. 자기는 죽으면 안 된다고 하지만 죽으면 안 된다는 자체가 자기만 생각해서 그렇지요. 사실은 언약 안에는 죽어도 괜찮아요. 하나님이 나를 살리려고 찾아온 게 아니고 언약을 살리기 위해서 찾아온 거예요. 사렙다 과부는 들러리였어요. 쥐었다 놨다. 죽였다가 살렸다가. 살렸다가 죽였다가. 이건 엘리야를 앞장세운 하나님 언약 마음대로란 말이죠.
노아가 방주 만드는 언약을 세웠다고 했지요. 엘리야 시대에는 사렙다 과부를 만드는 그 작업이 언약을 세우는 거예요. 그리고 오늘 본문 출애굽기 34장에서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는 방법은 여기 11절에 보면,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내어 쫓는 것이 언약 세우기에요.
저 민족을 쫓아내면 우리 살 땅이 생기는구나. 그게 아니라니까요. 우리 살기 좋으라고 언약 세우는 게 아니고 창고를 세우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창고 세우는 현장을 구경하게 하신 거예요. 여부스 좀 봐. 아모리 족속, 헷 족속 날아가지. 헷 족속은 유명한 민족입니다. 히타이트 민족이에요. 인류에서 빅 쓰리 제국이 있어요. 히타이트, 앗수르, 이집트가 지구의 모든 제국을 장악했습니다. 특히 히타이트는 철기문화를 최초로 개발한 나라에요. 역사책에 다 나와요.
앗수르 민족이야 인류 최초의 문명이고 이집트야 말할 것도 없고. 나일강 4대 문명지의 발생지고. 역사책에는 대단한데 출애굽기 34장 11절에는 간단하게 돼있어요. 헷 사람. 히타이트는 현재 지중해 연안에 있어요. 이스라엘이 있으면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터키 이렇게 되거든요. 히타이트는 유크라테스, 티그리스 강 지역, 아브라함의 고향 하란 지역이죠. 이쪽을 포함해서 히타이트에요. 이게 3대 최초의 문명국가입니다. 아직 중국은 국가가 되지도 않았어요. 그들 전설에 의하면 B.C. 사천 년까지. 구체적으로 중국의 문명은 기껏해야 B.C. 1500년 경. 그것도 많이 봐줘서. 제대로 국가가 된 것은, 요와 순은 전설이고, B.C. 600년 경.
그러니까 이쪽이 고대국가가 발달 됐습니까. 성경에 보면 에덴동산이 이쪽에서 만들어져요. 에덴동산 가까운데서 문명이 최초로 발현되는 겁니다. 그 중에 나라가 헷 족속이에요. 그런데 헷 족속이 쫓겨난다는 거예요. 무엇 때문에? 언약을 세우기 위해서. 이스라엘 사람 좋아하지 마세요. 살라고 쫓아낸 게 아니에요. 언약을 세우기 위해서 한 거예요. 마치 노아가 방주 만들 때 방주는 자기가 만들었지만 방주 안에 자기가 들어가야 되는 것처럼.
사람들이 예수를 죽였지만 예수님의 죽였다고 해서 공로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공로자가 되면 가룟 유다가 천국 가요. 예수님을 팔아먹었다고 공로자 되는 게 아니에요. 죽었던 예수님이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그 창고 안에서 예수 안에서 구원받는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려고 찾아온 게 아니고 언약을 세우는 일환으로 주님의 자기 작업 때문에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네 인생에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의미 두지 마라. 의미 없다. 아무 의미 없는 거야. 자식들 좋은 대학 가도 의미 없고, 떨어져도 의미 없고, 취직 되도 의미 없고, 취직 안 되도 의미 없고, 아무 의미 없는 거예요. 의미 없는 걸 의미 만들어서 혼자 끙끙 앓지 말란 말이죠.
언약은 이런 겁니다. 그래야만 하기에 생겨버린 상황. 뭘 그래야만? 심판할 것은 심판하고 구원할 것은 구원하기 위해서 언약은 만들어져야 되는 겁니다. 구원하고 버리는 그 능력이 언약에서 나옵니다. 주님의 일방적인 주권이죠.
여기에 제가 구원을 남은 자라 했죠. 왜 남은 자라 했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건질 때에 누굴 건지느냐 하면, 깔때기 구멍을 크게 하면 물이 꽐꽐 흐르겠지요. 그 구멍 조이면 졸졸 흐르겠지요. 그걸 좀 더 조이면 똑똑 떨어지겠지요. 그걸 아주 조이면 열두 시간 있다가 한 방울 떨어지겠지요. 보게 되면 구멍이 거의 없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고 하늘나라 가신 것은 어떤 인간도 그 구멍을 뚫을 수 없습니다. 오죽하면 낙타와 바늘구멍을 비교하겠습니까? 아무도 통과 못해요. 베드로도 안 됩니다.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천국 오지 말라는 주님 말씀이 요한복음 13장에 나오거든요. 그 말씀을 왜 우리는 안 받아들이는지 몰라요. 삼년 간 전 재산 다 바치고 청춘을 바치고 따라다녔으면 오라고 해야 할 텐데 베드로가, 주여, 목숨 걸고 가겠다니까 오지 말라는 거예요. 뭔 뜻입니까? 못 간다는 겁니다. 너, 못 가.
제가 강의 중에나 설교 시간에 사투리 쓰니까 사투리 듣기 싫다는 메일을 보내왔어요. 사투리는 듣기 싫어서 음성은 안 듣고 녹취만 본다는 거예요. 그러나 강의나 설교는 현장감이 있어야 되거든요. 여기서 아나운서처럼 발음 똑똑히 해야 소용없는 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