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소나무입니다.
예전에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해 고민자라는익명을 써서 글을 남긴 것이 저입니다.내 불의함을 감추어보겠다는 취지로 못된 심보(익명사용)를 부렸습니다. 이해해주세요.오늘 어떤 분께서 이러한 질의를 남겼습니다.'세상에는 두가지 종류의 음악이 있다.생명이 있는 음악과 생명이 없는 음악...'ccm을 하라는 것 입니다...목사님 나름대로 답변을 했는데요.그런데, 나 자신을 변호하는 것과, 복음을 증거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가요?항상 무엇을 '말'하고나면 남는 씁쓸함입니다.----------------------------------------------------------------------------형님의 말씀 잘 새기겠습니다. 허나 제가 이해하고 있는 성경은,생명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저의 경험을 예로 들면, 예수의 주되심은 '음악'을 통해 주를 전하겠다는 나자신의 어떤 충정을 무시하시며 등장하셨던 '하나님 자신의 열심' 입니다.즉 생명은 예수그리스도 자체입니다. 제가 경험한 생명은 그렇습니다.그렇다면 제가 경험한 생명은 어떤식으로 역사합니까?생명 자신의 열심으로 생명의 생명되심이 드러납니다.그곳이 어떠한 환경이든지 말입니다.그렇다면 생명의 생명되심이 저에겐 어떻게 일어났냐구요?'나의 죄됨'과 '나의 어리석음'을 공박하며, 생명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요.그렇다면,'자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음악이 '예수의 주되심'과 어떤 관련이 있느냐'묻는다면요? 제가 믿는 생명은, 성도가 어떠한 환경과 상황해 쳐해있든지간에 우발적으로 등장하는 '그분자신'입니다.즉, 내가 어떠한 상황에 쳐해있던지, 그분은 '복음'을 들고 찾아오십니다.그 '복음'은 '아! 내가 생명 없는 음악을 하고 있구나'라는 탄식을 공박하며 수정하십니다.그리고는 오직 '아 나는 죄인이구나'라는 고백을 하게 합니다.형님.성도가 음악을 하던, 밥을 먹던, 컴퓨터수리를 하던,어느 곳에 있던 생명의 생명되심이 발휘되지 않겠어요?넌 왜 생명 없는 음악을 하고 있느냐 하시면, 저는 할말이 없지만요.그분은 누구,어떠한 사건에도 매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생명은 인간의 이해와 인간이 만들어놓은 범주에 묶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느곳에 있던지, 예수의 주되심은 발휘 됩니다. 어떻게요? 예수님 자신의 일하심으로요.형 어떻게 생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