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강-YouTube강의(이웃사랑)150423-이 근호 목사
111강-YouTube강의(이웃사랑)150423-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80.231.90.76)
111강-YouTube강의(이웃사랑)150423-이 근호 목사
제 111강, 제목은 ‘이웃사랑’입니다. 기독교 내에서 이웃사랑이라는 것은 굉장히 많이 언급되고 있어요. 왜냐 하면은 이웃사랑을 통해서 자기 교회의 교인수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대외적으로, 사회적으로 교회는 착한 일을 도모하는 단체다. 따라서 교회가 이 세상 한 가운데 존재하는 이유는 주변에 선한 일, 착한 일을 많이 해서, 그 착한 일의 혜택을 입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교회에 집합해가지고 그 교회가 커지는 정도에 따라서 하늘나라의 면적이 같이 커지는 것으로, 그렇게 눈에 증거를 확보하는 것으로, “역시 우리 교회는 주님이 살아있어.” 그걸 믿고 싶어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웃사랑을 해야 될 이유가 과연 이 교회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느냐, 그리고 그 교회에 다니는 우리가 과연 하나님이 보시기에 믿음 있는 사람인가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확보용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자고 그렇게 외치게 됩니다. 또 그런 행사를 많이 벌리죠. 바자회 같은 그런 행사를.
그러면 그 이야기를 듣는 교인들은 이참에 자기가 믿음 있는 사람인 것을 확인하고 싶고, 그리고 자기 스스로 그것을 증빙하고 싶어서 선한 일을 도모하게 돼요. 이웃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할 때, 대외적으로 보는 시선과, 자기를 쳐다보는 타인들의 평가들이 있으니까 열심히 이웃사랑을 하게 되고, 그 이웃사랑의 최종평가를, 교회 당국에서 평가를 내리게 되면, 나는 이웃사랑 한 사람이 되고, 내가 이웃사랑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내가 성령 받은 사람이라고 다시 한 번 다짐에 다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선한 일을 많이 해놓게 되면 어떤 또 보상이 주어지게 되느냐 하면 살아가면서 내가 살기 위해서 본의 아니게 또는 의도적으로 남에게 약간의 나쁜 짓을 많이 해도, 워낙 착한 일을 많이 해놨기 때문에, 이웃사랑을 많이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쉽게 나에게서 축복을 뺏어가거나 나에게 벌 내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 그렇게 다짐을 하죠. 이것이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의 근본적인 죄입니다.
성경에서 이웃사랑을 언급함으로 말미암아 인간들은 어떤 죄를 지었느냐 하면 이웃사랑이란 죄를 더욱더, 의인 줄 알고, 그게 착한 건 줄 알고, 아는 그 죄.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웃사랑을 했다는 이유 때문에 마치 죄가 아닌 것처럼, 착한 일 많이 한 것처럼, 그렇게 위장하는 죄를 추가적으로 거기다가 또 죄를 짓게 되어 있죠.
이웃사랑을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웃사랑은 누구 몫이냐 하면 예수님의 몫이에요. 예수님만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성경을 자기 쪽으로 땡기는데 사실은 성경은 주님 쪽으로 땡겨져야 해요. 주님이 실천할 책이지, 우리가 땡겨서 실천할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스스로 자기 실천을 위해서 주신 책입니다.
근데, 인간은 이것을 자기 쪽으로 땡겨서 내가 실천함으로써 내가 하나님 잘 믿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다짐에 다짐을 하고 싶은, 확연한 증거를 남기고 싶은 책으로 이것이 왜곡되게 쓰여 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웃사랑은 어떤 말씀이냐? 왜 줬느냐? 실패하라고 주신 말씀이에요. 이웃사랑을 철저하게 실천하고자 집단으로 애쓴 단체가 바로 이스라엘이었고 그리고 유대 나라였습니다.
그들의 이웃사랑의 기준에 의하면 예수님은 필히 처단해야 할 죄인이 맞습니다. 그들의 이웃사랑의 기준에 의한다면. 그들의 이웃사랑에 의할 것 같으면, 그러니까 남에게 사랑을 해야 될 목적 때문에 그 방법과 모든 수단이 남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도 정당화 되고, 남을 미워하는 것도 정당화되는 모순이, 인간들이 지어낸 이웃사랑 안에 이게 포함이 되어 있어요.
만약에 어떤 사람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교회에서 심방 가서 하나님께 그 사람이 오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합시다. 이 말은 뭐냐 하면 자기들이 더 오래 살고 싶은 그 욕망을 자기들이 원했던 거니까, 분명히 저 침대에 누워 있는 말기 암 환자도 살고 싶을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그렇게 왜곡되게 자기 기준을 적용시킨 거예요. 그 말은 평소에 멀쩡한 자기 자신이 ‘더 살아야 돼! 더 살아야 돼!! 하나님이여! 저 살려주세요.’
그들이 말한 이웃사랑은 뭐냐 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때, 이것이 이웃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근데, 남들이 원하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모르죠. 모르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저 사람도 원할 것이라고 아마 일방적으로 그렇게 매도시켜 놓고, 내가 이 땅에 더 살고 싶으니까 왜? 애들도 크지 않았고 아직도 결혼도 안 했으니까 무조건 자식을 위해서 자기는 안 죽어야 된다는 거예요.
‘내가 살고 싶다.’ ‘내가 살고 싶다’가 평소에 깔려 있는데, ‘그러니까 저 환자도 아마 살고 싶을걸.’ 일방적으로 생각해가지고 “참, 이 권사님 더 살게 해주시고.....,”이렇게 나오는데, 지금 권사님은 진짜 복음이 들어 있기 때문에, 권사님은 빌립보서의 말씀처럼, 고린도후서의 말씀처럼 소원이 뭐냐 하면 사도바울처럼 빨리 죽고 싶은 게 소원이에요. 죽고 싶은 게 소원인데, 차라리 심방 와 가지고 “주여, 저 권사님 빨리 주님 만나게 해달라.” 이런 기도만 했더라면 그 권사님은 너무 기분이 좋아가지고 그 목사님께 아마 감사헌금 했을 거예요.
그런데 아주 짜증이 나는 거예요. 본인은 주님 만나는 것이 소원인데, 목사가 와서 기도한다는 것이 오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니까 이거는 웬수가 다녀간 거예요. 웬수가. 이웃사랑이 안 되는 이유는 사람은 남을 볼 때에 자기 생각을 확대시켜서 일방적으로 남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한다고 생각하고 자기 딴에는 사랑을 베푸는데 저쪽에서는 부담이 되고 짐이 돼요.
만약에 김장을 담그는데 누가 와서, 교인이 와서 김장을 도와줬다고 칩시다. 고맙다고 이야기하지만 부담돼요. 혹시 그 교회에다 헌금이나 하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하고 부담 돼요. 이웃사랑을 할 때는 본인한테 물어보고, “사랑을 베풀어도 좋습니까?” 하고 물어보고 해야 돼요. 에를 들어서 “제가 교회 다니는 사람인데 전도하기 위해서, 천국가게 하기 위해서 복음 전해도 됩니까?” 하고 물어보고 해야 돼요. 물어보고 하지 않은 전도가 뭐냐, 지하철에 새벽에 예수 믿으라고 하면서 돌아다니는 그런 거예요.
커피를 나눠주고 화장지를 나눠줄 때 물어보고 해야 해요. “이 화장지 드릴 테니까 받겠습니까?” 또 받는 사람이 “무슨 의도로 줍니까? 전도하려고 준다면 그럼 안 받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이래 되어야죠. 근데, 모든 인간의 행동은 본인의 자기증명이거든요. 자기가 잘남을, 자기가 우수함을, 자기가 정당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웃사랑이라는 핑계로 자기 힘을 그쪽으로 쏟아서, 자기 힘을 받은 사람을 내 사람으로 끌어 땡기고자 하는 욕망이 작용합니다.
교회에서 한 사람을 전도하는 것은 그 사람을 내 편 만들기 위한 하나의 힘이, 정복력이 작용해요. 만약에 전도했는데 그 사람이 다른 교회에 가면 화가 나죠. 이런 모든 것이 주께서 이웃사랑이라는 것은 우리의 본성을 경유해서 이웃사랑을 외칩니다. 주께서는. 그렇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는 이웃사랑이라는 자격도 없고, 권한도 없고, 능력도 없고, 그런 입장도 안 된다는 것을 까발리면서 우리에게 이웃사랑이라는 것을 요구를 하신 겁니다.
그러면 로마서 13장에 보면 이웃사랑은 뭐냐, 사랑하면 그것이 이웃사랑을 완성했다고 되어 있어요. 여기 로마서 13장 9절에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이 이웃사랑은 신약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미 전달되었습니다.
근데 그 십자가 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우리는 주님을 사랑한 적 없습니다.”가 들어 있어요. 이 말은 뭐냐 “나는 이웃을 사랑한 적도 없습니다.”가 들어 있어요. 바로 그것을 이웃에게 전하는 거예요. “집사님! 나는 집사님을 사랑한 적 없고, 여보! 나는 당신을 사랑한 적 없고, 자식아! 나는 너를 사랑 한 적 없고, 이토록 나는 나 밖에 몰라.” 그게 이웃사랑이에요. 그게 바로 주님의 복음을 증거 하는 겁니다.
우리 교인들 다 옆에 교회 가도 “주여! 당연한 조치입니다.” 이게 이웃사랑이에요. 교인 다 빼앗기고 우리는 주님의 이웃사랑 보여주고. 주님께서 누굴 기뻐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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