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강-YouTube강의(일거리)150423-이 근호 목사
110강-YouTube강의(일거리)150423-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80.231.90.76)
110강-YouTube강의(일거리)150423-이 근호 목사
제 110강, 제목은 ‘일거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에게 일거리를 주십니다. 그 주신 일거리를 성경에서는 ‘은사를 주신다.’ 라고 되어 있죠. 은사라는 것은 은혜와 같은 말인데, 일을 하기 위한 용도로써 은혜를 주신 겁니다. 그래서 성도가 일하는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근데, 그 은혜는 소유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일을 하라고 주신 겁니다. 그리스도의 몸에서 머리가 일하게 되면 지체는, 노는 지체는 없습니다. 머리가 일하게 되면, 그 머리되신, 일하시는 머리를 증거 하기 위해서 지체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게 그렇게 되게 돼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렇게 일한다고 했는데, 막상 성도들의 일상생활을 보게 되면, 백퍼센트 자기 밥 먹고 살기 위한, 자기와 자기 가족의 생존을 위해서 스물 네 시간 거기다 매진한다는 느낌을 받을 겁니다.
그렇게 하다보니까 성경에서는 성도에게 성령으로 그 은사가 오고, 그 은사는 주님이 주신 일이고, 그 주의 일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게 돼있다고 되어 있지만, 성도 본인이 아침에 눈만 뜨면 나오는 것이 주를 위해서 일한다는 느낌보다도, ‘그래 살아야 돼!’ 라는 그런 아주 단순한 생각밖에 들지 않을 때, 내가 잘못됐는지 아니면 성경이 잘못됐는지 상당히 혼선이 올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강의에서는 주께서 맡겨 준 일이 실제적으로 주님을 위한 일이 되는지, 우리가 그 경로를 탐색을 해봐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일이라고 수용했던 일들이 성경에 여러 군데가 나옵니다. 분명히 주님 앞에 어떤 일을 했던 사람은 그 시작부터, 중간과정 마지막까지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가 계획했고 자기가 마음을 작심을 해서 주 앞에 드린 일인데, 주님께서는 의미를 어떻게 해석을 하느냐 하면, 그 모든 일이 나를 위한 일이라고 에둘러서 그렇게 해석을 해버려요.
참 감사한 일이죠. 고마운 일이고. 분명히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는 그 의미가 반드시 나에게로 환수하기 위해서 일을 하거든요. 어떤 일을 벌려 놓고는 그 일은 내가 생각했고 내가 추진했고 그래서 내가 했다는 그 자부심을 회수하는 식으로 일을 하기 마련인데, 주님께서는 우리의 그러한 자기의 이기주의적인 의식을 아시면서 그것을 “그래, 나를 위해서 그 일을 했구나.” 라고 그렇게 일방적으로 거기다가 의미를 덮치게 하시죠.
그러면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주의 일을 하겠다고 나섰던 그것이 머쓱해지고, 미안스럽고,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그 대목이 바로 마태복음 26장 6절에서 13절에 나와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이렇게 나와 있어요. 예수님이 시킨 게 아닙니다. 본인이 하고 싶어서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는 이거는 여자가 결정한 본인 일이지, 주님이 맡기신 일이 아니라고 누가 봐도 그거는 단정 지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식사하실 때 제자들도 함께 식사했는데, 식사하는 가운데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어요. 옛날에는 향수가 많이 비쌌던 모양이죠. “저 비싼 향수를 일거에, 무의미하게 허비해버리면 안 되잖아. 저 비싼 것은 팔아서 이렇게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이 우리 주님의 뜻일 텐데.” 라고 제자들이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 여자의 행동이 경솔하다는 겁니다. 그 비싼 그것을 어려운 사람에게 나누어주면 도움을 받은 사람이 예수님께 두고두고 영광을 돌리는, 예수님의 전도에 효과가 있을 건데, 그것을 직접 예수님 머리에 갖다 부었으니까 그거는 누가 봐도 무모한 짓이라고 단정 지을 수가 있겠죠.
이 점이 중요합니다. 여자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주님 앞에 향수를 다 부었고, 그 행위, 그 일한 것을, 같은 인간인 주변에 있는 제자들은 그것이 주의 일이 아니고 자기 빛내기 위한, 주의 일에 들어설 수 없는 잘못된 일이고 주님의 일로써는 가치가 없다고 판정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13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왜냐하면 12절에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 장례를 위함이라고’ 일방적으로 예수님께서 그 일에 대해서 해석을 내려버렸습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중요한 것을 알 수 있는데, 내가 하는 일이 주의 일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 손에서 그 일에 대한 새로운 의미가 발생되어야 돼요. “내가 주님을 위해서, 장례를 위해서 이걸 부었습니다.” 라고 해서 “그렇지. 니 생각이 내 생각이야.” 라고 수용을 하지를 않아요.
여자가 어떤 일을 했던 간에, 주님 입에서 그 일에 대해서 주님 나름대로의 새로운 의미가 새롭게 창출되어서, 도로 그 의미가 주어질 때 비로소 주의 일이 되는 겁니다. 내가 주를 위해서 헌신하고 충성하고 봉사한다고 해서 주의 일이 아니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충성을 빙자한 나의 일이 돼요. 주의 일이 안 됩니다. “결국은 내가 일을 했습니다.” 라는 자기 주인공 됨을, 인간은 포기할 줄 몰라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것을, 그런 이기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그 일을 주님께서는 손에 쥐시고, 주님만이 아시는 의미, 주님만 챙기고 있는 그 의미를 경우하면서, 주님께서는 새로운 의미로 공표가 됩니다. “저 여자가 나한테 향수를 부은 것은, 나의 장례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 여자는 나에게 향수 붓는 일이 일어나야만 했다.” 라고 이렇게 해석을 해버리죠.
이 이야기를 듣고 제자들이 어리둥절했을 뿐만 아니라, 놀라운 사실은 당사자도, 향수를 뿌린 여자 본인도 어리둥절하다는 사실이에요. “나는 그런 뜻으로 부은 게 아닌데.....,주님께서는 왜 그것을 좋게 해석을 해버릴까?” 왜 그렇게 우리가 무심코 한 일을, 어떤 의미에서 내 생존을 위해서, 나 밥 먹고 살기 위해서,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 이기적인 성향과 의도를 가지고, 이거는 뭐 어떻게 한 일 조차도, 주님께서 그것을 받아서 주님을 경유해보니까, 전부 다 그것은 나의 이기적인 일이 아니라 주님께 헌신한 일로, 의미를 전환시키는 권한은 예수님한테 있었습니다.
그 권한을 예수님한테 인정할 때, 그것이 주의 일이 되는 겁니다. 주의 일이 뭐냐, 요한복음 6장에 나온 말씀처럼 주의 일은 예수님이 하는 일을 믿는 것이 주의 일이에요. 따라서 평소에 우리가 너무나 이거는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고, 나는 욕망에 넘쳐가지고 일을 하는 거라고 일방적으로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고 미안스러워 해도, 그것이 주님 손에서 경유하게 되면 그 모든 게 주님의 영광을 위한 일로 우리에게 돌려받게 되는 겁니다.
시작할 때는 우리가 시작했지만, 그 의미가 우리한테 다시 도착이 될 때는 주를 위한 헌신의 일로, 참 낯 뜨겁게도 그렇게 의미가 바뀐 채로 우리한테 주어지니, 그 의미를 받은 당사자는 모든 공로와 영광을 오직 주님께만 돌릴 수밖에 없도록 주께서 그렇게 조치를 하시는 겁니다.
이것은 바로 성도가 하는 모든 일이 주님의 일을 위해서 새로운 무대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무대에 이게 다시 집합이 되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시 배당을 주시는 거예요. “니가 이런 식으로 나의 영광을 위해서 일했구나.” 라고 배당을 받고 “너는 또 이런 식으로 나의 영광을 위해서 했구나.” 이렇게 할 때, 로마서에서 하신 말씀처럼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은혜로, 그것을 우리에게 의미로 돌려받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가운데서 비로소 자신의 죄성을 다시 깨닫게 되고,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사요, 은혜의 능력입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겁니다. 이것이 성도에게 주신 주님의 일거리로, 우리가 한 일거리가 아니고, 주께서 우리에게 주의 일을 하라고 일어난 일거리의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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