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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서울 의존교회150410a,b (마귀의 기능)―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디모데전서

서울 의존교회150410a,b (마귀의 기능)―이 근호 목사

이름 : 김창길(IP:180.150.194.146)

서울 의존교회150410a (마귀의 기능)―이 근호 목사

디모데전서 6장 13절부터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살았던 곳은 예수님이 살았던 세계와 똑같은 세계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그냥 낚싯대로 사람을 건져 올리신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직접 이 땅에 방문했죠.

여기서부터 우리는 하나님이 그냥 하늘에 계시지 않고 땅에 왔다는 것부터 우리는 거기에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어떤 위기이냐 하면 하나님이 다녀가신 이유를 알아야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다녀가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 하는 문제가 생겨요.

하나님이 다녀갔다, 왜 다녀갔을까? 다녀가신 뒤에도 악은 그대로 있고 하나님이 다녀가시고 난 뒤에도 세상은 살기 빡빡하고 예수님이 다녀가신 뒤에 뭐 주가가 오르고 전쟁이 거치고 평화가 있습니까?

다녀가도 효과가 없네요? 다녀가셨다 해 놓고 뭐 얻은 게 없잖아요. 저는 어릴 때 우리 할아버지 집에 살았는데 할아버지 친구 분들이 다녀가게 되면 뭔가 얻은 게 있어요. 사과를 얻던지 귤을 얻던지 손님들이 할아버지가 동네 유지라고 선물을 들고 오게 되면 부스러기는 우리 가족이나 손자들이 나눠 먹거든요.

그러면 예수님이 다녀가고 난 뒤에 우리는 얼마나 맛있는 사과를 먹고 귤을 먹었습니까? 뭐 얻는 게 없잖아요. 예수님이 다녀가시면서 나는 하나님이 다녀간다. 너희들과 평화의 악수를 하고 우리 서로 서로 좋게 지내자! 이렇게 다녀가기를 사람들은 고대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심심하거든 가끔 땅에 내려와서 방문하셔서 우리가 산다고 애쓴다고 경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원하는데 정작 하나님께서는 뭐라 하느냐,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는 거예요.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어느 교회를 방문했는데 교회의 교인들이 그 예수님의 방문을 기념해서 예수님께서 종종 방문해서 우리를 축복도 해 주시고 그리고 우리가 부흥되도록 협조해 주시면 우리도 성의를 표하겠습니다.

이러고 싶은데 주께서 그 교회를 다녀가고 난 뒤에 너희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이런 조로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그 교회도 가만있지 않죠. 당신은 메시야가 아닙니다.

당신이 정말 메시야라면 우리가 기대한 대로 맞춰서 오셔야 되지요. 우리의 환영을 받으시고 우리의 찬송을 받으셔야 되는데 우리가 하는 이 모든 것을 정죄하고 질타하니까 그러니까 당신은 아무리 당신이 메시야라고 우겨도 당신은 메시야가 아닙니다. 라고 이제 둘이 헤어지게 된 거예요.

헤어지고 난 뒤에 그 다음에 뭐가 있었느냐 하면 죽었다고 했던 그분이 되살아났어요? 몇 몇 사람들이 되살아난 주님을 만났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러면 이 말의 뭐냐 하면 예수님이 오실 때도 위기이지만 이제는 더 큰 위기가 들어 닥친 거예요.

도대체 우리가 그분에 무슨 짓을 했습니까? 당신은 메시야가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구원에 대해서 당신은 아무런 보탬이나 도움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은 메시야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는 겁니다.

오늘날 가정에 주님이 다녀갔다, 다녀간 뒤에 갑자기 집안에 금덩어리가 생긴다던지 졸지에 허름한 집이 깔끔한 멋진 호화 아파트로 바뀌어야 되는데 다녀가고 난 뒤에 아무런 변화가 없잖아요.

이게 오늘 강의에 제일 중요한 부분에 들어섰습니다. 한번 적어볼게요. 예수님이 오시고 변화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의 변화는 무슨 변화를 원했느냐 하면 우리는 삶의 환경이 달라질 것을 원했죠.

이 지지리 궁상을 언제 모면하나?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특별한 배려를 해 주시리라 우리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니, 교인이 수천 명이 되고 수만 명이 되는 교회 말이죠. 수십 명 되고 마찬가지고 열 명 되도 마찬가지인데 그 교회에 오면서 하나님이여, 내 인간 바꿔달라, 지금 환경 바꿔 주지 마시고 나라는 인간 자체를 딴 인간으로 바꿔주세요! 라고 교회 오는 사람이 몇 명되겠습니까?

거의 없어요. 이 지지리 궁상 같은 정말 처절한 이 삶에서 언제 벗어나게 해 주실래요? 라고 오잖아요. 못 살고 못 살고 너무나 힘들고 힘든 이 가족 관계, 지금 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부간의 갈등, 자식이 말 안 듣고 가출하고 이 모든 것, 심지어 거기다 돈 많으면 뭐합니까? 몸 아프면 그만이죠. 몸 아픈 거, 쉽게 갑시다. 나는 문제가 없는데 외부환경이 좋지가 않아서 내가 죽을 지경이니까 숨이 막힐 지경이니까 메시야라는 그분을 내가 믿어줄 테니까 오셔서 믿는 값으로 놀라운 변화를 일으켜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라는 조로 교회에 찾아 드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오는 거예요. 그 전제가 뭐냐, 나는 문제가 없는데 나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상황이 빡빡해서 내가 자주 교회에 못 나오고 자주 하나님께 감사 못합니다. 이것은 환경의 문제이지 저는 문제가 없다. 이렇게 하는 겁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과연 우리가 문제없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임금이죠. 분명히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은 그리스도 임금이죠. 임금인데 몸으로 오셨잖아요. 예수님께서 몸으로 오실 때 양손에 세일한다고 마트 가서 선물 보따리 양손에 들고 오십니까?

주님의 양손에는 못 자국밖에 없어요. 거기에 선물 보따리 없어요. 어느 교회 교인이 그래, 내가 원했던 것은 저 못 자국이야! 이렇게 이것을 반기는 교인이 이 교회 빼놓고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요. 이 교회에 빼는 것도 뭐 아무것도 사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래, 내가 원했던 것은 저 못 자국이야! 저 창 자국이야! 라고 반기고 싶어요? 아니면 양쪽에 돈과 재물을 주시는 그런 메시야를 원해요? 어느 쪽입니까? 선물보따리 들고 오는 메시야를 원하잖아요. 그런데 주님의 복과 주님의 선물은 손에 들고 온 재물이 아니라 온 몸으로 보여줬어요.

온 몸에 싸인이 있고 그 표정이 있고 그 징표가 예수님 몸 안에 있어요. 어떤 몸입니까?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나처럼 살리라! 죽어도 살리라! 쉽게 말해서 야야, 죽자! 살면 되잖아! 네가 나를 안 믿고 죽게 되면 네가 지옥에서 살아나지만 나를 믿고 죽으면 천국에서 살아나는데 너, 어느 쪽 원하냐?

이렇게 되는 겁니다. 지금 강의처음부터 다시 하면 이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은 나는 문제없는데 문제가 뭐냐 하면 못된 인간도 있고 나는 문제없는데 식구들이 여러 명이고 나는 문제가 없는데 이 세상 자체가 악하기 때문에 내가 힘들어 죽겠습니다.

숨통이나 좀 트여지게 주께서 어떤 숨이나 쉬게 어떤 조치를 해 주십사 제가 교회에 나왔습니다. 기도 할 테니까 헌금 할 테니까 예배드릴 테니까 예쁘게 보셔서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을 뭔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라도 보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라고 나는 문제없는데 라고 하는데 주님이 오셔서 주님께서는 못 자국 창 자국으로 네가 바로 문제야! 네 몸이 문제라는 거예요.

몸이 문제이고 그런 발상을 한다는 자체가 문제꺼리 말썽꺼리기 때문에 그런 나는 문제가 없다고 그런 식으로 잘못된 생각이 나오는 겁니다. 우리가 디모데를 하고 있는데요. 이 디모데에게 사도 바울이 제시한 것은 뭐였습니까?

여기 16절을 봅시다. 딤전 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

환경 바뀌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이 말을 해 버리면 주님 좋겠네! 주님 혼자 빛에 거하시고 영광 중에 거하시고 혼자 좋으시네! 그러면 우리는 뭐에요? 혼자 좋으시고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안 주시고 약 올리나요?

‘주님은 빛에 거하시고’ 좋겠다! 혼자 빛에 거하시니? 그럼 나는 뭐고? 나는 어디에 속하는데? 나는 쓰레기더미에 거하시고 이런 꼴보고 아주 즐겁습니까? 뭔가 살 단도리 정도를 해 주셔야 주님이 존경과 찬양을 받으시지 혼자 즐기시고 우리는 죽든 말든 남겨두면 거기서 무슨 찬양과 감사가 나오겠습니까?

찬양과 감사드릴 꺼리를 일단 주시고 받고 난 뒤에는 찬양 감사를 아낌없이 드릴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우리 원하는 것을 주시옵소서! 라고 나올 것이 뻔 하거든요.

그러면 디모데전서 봐도 소용이 없죠. 다시 이야기합니다. 성경은 100독을 해도 소용되는 게 아니에요. 나는 문제없고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은 전능하시는 하나님이 쳐줄 수 있다는 사고방식으로 교회 온다던지 디모데전서를 100독을 해도 그것은 100독한 것이지 전혀 말씀 근처에도 가지 않은 겁니다.

여기 디모데하고 바울하고 짝짜꿍해서 사업했습니까? 그래서 뭐 재벌 됐어요? 도대체 그들이 무엇을 그렇게 증거한다고 열심이었고 그들이 뭘 증거한다고 자기의 목숨도 아끼지 않았습니까?

16절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그거잖아요.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다, 나머지는 뭐가 있다? 저주와 죽음이 있다. 이 말입니다.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다 그러니까 성도들아, 주 믿고 그냥 죽는 게 속 편하다 그 말이에요.

그것을 위로랍시고 하는 거예요? 그것을 우리한테 위로라고 내 놓은 겁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 말을 하면서 이렇게 해도 이것은 주께서 너희에게 과분한 은혜라는 겁니다. 인간 자체가 이미 망하게 되어 버렸는데 그 망가진 인간을 주께서 살려주신다는 것이 그게 어디냐 이 말입니다.

세상에 망가진 인간, 받을 자격도 안 되는 자에게 자신의 목숨을 나누어 준다는 것이 그게 얼마나 큰 행운이며 고마운 일이냐 이 말이에요.

그 고마움에는 우리의 목숨도 아까울 것이 없다는 것이 사도 바울의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울이 단순히 우리를 질책하고 또 우리를 위로하려고 이 말씀 주신 게 아니에요.

어떤 원리가 있어요. 어떤 원리이냐 하면 왜 너희들은 문제가 있어도 그것을 문제인지 알지를 못하느냐! 그런 내용까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냥 예수 믿고 죽어라가 이렇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왜 우리는 문제가 있으면서도 자꾸 달라고만 이야기를 하고 나는 문제없다고 여기는 그러한 인식을 갖는 이유가 뭐고 그 원인이 어디 있느냐? 그런 것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 다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그 소개가 13절에 봅시다. 딤전 6: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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