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강-YouTube강의(결과와 복음)150409-이 근호 목사
109강-YouTube강의(결과와 복음)150409-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80.231.90.76)
109강-YouTube강의(결과와 복음)150409-이 근호 목사
109강, 제목은 ‘결과와 복음’입니다. 이 복음이라고 말을 할 때에는 예수님이 홀로 행하셔가지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남겼는데 그 결과가 복음이고, 그 주님의 행하심의 연장선에서, 그 능력이 덮침으로써, 우리는 영생과 구원을 얻게 되어 있습니다.
근데, 복음으로 시작해서 복음으로 모든 구원이 마감이 되는데, 결과를 이렇게 언급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하는 일에 대해서 인간이 만났을 때, 인간이 곱게 이해하면서 받아들이지 않게 되어 있어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이미 인간 내부에, 복음에 저항하고 반발하는 요소가 인간 내부에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복음이 왔어도 순하게 받아주는 것이 아니고 복음과는 다른 요소들이 들추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게 들추어졌기 때문에 그 사람이 구원에서 탈락한다는 뜻은 아니고요. 오히려 들추어지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이 도리어 구원받은 사람 맞다고 확정할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됩니다. 이게 앞뒤가 잘 안 맞는 것 같지요? 복음에 대해서 순하게 받아들이면 그게 성도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성도는 그것이 아니고 복음이 왔을 때 강력하게 저항하는 요소가 그게 도출될 때, 그리고 그렇게 해서 성도 본인이 ‘야, 내가 복음오기 전에는 이토록 죄인인 줄 몰랐는데 복음이 오고 난 뒤에는 이만큼 죄인이구나! 그런데 이 죄인마저 주께서는 이미 처리했다는 것이 오직 주 앞에 감사할 것 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주님만 영광 돌리는 그런 성도가 되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복음을 순하게 받아들이면 복음이 하나의 자기 구원받는 용도로 활용될 뿐이죠. 그건 복음을 이용하는 것이 되니까 그런 식으로는 하나님이 구원하지를 않습니다. 열왕기하 20장에 보면 히스기야 왕이 나옵니다. 히스기야 왕이 구약에서 유명하게 된 이유는 그가 죽을 때가 되었음에도 울면서 기도해서 사흘 만에 15년 동안 더 수명이 연장되었다는 기적을 입은 사람이어서 그렇게 유명합니다. 이 말은, 히스기야가 기도해서 15년 더 수명이 연장되었다는 그 말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어떤 뉘앙스를 안겨주느냐 하면 하나님이 결정한, 운명적인 모든 것이 결정 났다 할지라도 이게 유도리-ゆとり(여유)가 있다는 거죠.
우리가 기도하면 어떤 나름대로의 결정된 것도 뒤엎을 수 있는 융통성, 여유를 하나님께서 여유의 자리를 허용했다는 희망 같은 것이 있다 이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히스기야가 15년 살았다는 그 내용을 통해서 사람들은 뭘 끄집어내느냐 하면 말씀으로 모든 것이 정해진 것이 아니고 거기다가 어떤 요소를 집어넣을 수 있다는, 나의 기도가 결정된 사항도 뒤엎을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을, 내 선택에 의해서 성사가 될 수 있다는 나의 가치 희망성.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겁니다.
‘아! 말씀 세계가 다가 아니구나! 내가 기도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서 내 운명도 바뀔 수가 있구나! 내 기도에 따라서 내 운명도 결정될 여지를 하나님께서 허용했구나! 히스기야를 봐라. 분명히 죽어야 되는데 15년 연장했으니까. 따라서 내 구원과 내 복 받는 거, 내가 잘 되는 거, 내가 건강하고 수명 연장하는 거, 그거 내 손에 달렸다.’ 라는 여지를 남기게 되죠. 근데 그것은 엄청난 오해입니다.
왜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히스기야가 죽기 싫어서 더 살고 싶다는 욕심, 히스기야의 탐욕, 그게 욕심이거든요. 신약에 오게 되면 사도바울은 빨리 죽고 싶다고 했어요. 근데 히스기야는 더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거는 분명히 사도바울의 입장에서 볼 때 분명히 욕심에 불과합니다. 근데 그 욕심을 일으킬 줄 아시고 하나님께서는 그 욕심을, 히스기야가 15년 연장되면서 더 추가된 인생 가운데서 히스기야가 한 짓을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15년 살았다는 것이 그냥 맨탕(부질없이)으로 15년 세월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15년 살았기 때문에 저질러야 할 죄가 나옵니다. 그 죄는 그냥 사적인 죄가 아니에요. 이스라엘 나라의 멸망과 관련된, 유다 나라의 멸망과 관련된 죄를 짓게 됩니다. 왜? 히스기야는 왕이기 때문에. 왕 개인의 사적인 죄는 유다 나라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그것도 모르고 자기기 15년 더 살면 굉장히 신나는 줄로 알고 있었어요. 내가 15년 더 산 것이 내가 속해 있는 유다 나라에 어떤 해악을 끼친다는 것을 생각할 그러한 능력도 없었을 뿐더러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죠. 살고 싶으니까. 죽음 앞에서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거든요.
따라서 히스기야를 15년 살게 했다는 것은, 이거는 모든 보편적인 인간들의 그 속성을 히스기야가 그냥 솔직하게 대변해주는 겁니다. 울면서 기도했죠. 얼마나 탐욕이 강했으면 울면서 기도하겠습니까? 반드시 이거는 이루어주십사 하고 강력하게 요청하거든요. 그 강력하게 요청하는 그 마음을 가진 히스기야 본인은 무슨 마음으로 했는지를 본인은 몰랐죠. 이제 히스기야가 15년 더 살겠다고 버틴 그 마음이 남긴 결과가, 오늘 제목이 결과와 복음이니까, 그 결과가 복음에 위반하는, 복음의 내용에 정면으로 배치가 되고, 복음에 대해서 반 복음적인 요소를, 15년 동안 완전히 그것을 토해내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히스기야가 기도해서 15년 더 연장했는데, 연장전에 들어갔던 그 내용으로 인하여 유다 나라가 멸망의 징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래도 더 살고 싶습니까? 흔히 심방 가서 어떤 연세 많은 장로님이나 집사님에게 뭐라고 합니까? “장로님, 집사님 더 살아야 됩니다. 의인은 간구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응답받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제가 간절히 기도해서 반드시 집사님은 나을 거라는 그 희망이 집사님, 장로님을 더 살게 해주실 겁니다. 믿읍시다.” 이렇게 심방할 때 그런 이야기를 하죠. 기존 목회자들이 그런 기도를 하죠.
저는 세상을 잊으라고 합니다. 그 가고 싶은 천국에 남보다 먼저 가게 되니 정말 하나님께 고맙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저는 이야기를 하는데,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정답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도 죄의 일종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히스기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뭘 보여주려고 했는가. 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러나 그 본능이 남긴 그 더러운 모습이 뭐냐, 열왕기하 20장 12절부터 나옵니다. 바벨론 왕이, 바벨론은 유다 나라 히스기야를 멸망시킬 그 왕입니다. 바벨론 왕 부로닥 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보내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 왕의 사자가 왔을 때 히스기야 왕이 자기가 그동안 얼마나 하나님께 사랑을 받았고, 하나님께 혜택을 입었으며,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았는지, 그 증거를 보여주겠다고 창고 문을 열었습니다. 그 보물고에 각양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 군기고와 내탕고의 모든 것을 바벨론 사자한테 다 보여준 거예요.
히스기야가 이걸 보여준 의도는 그렇게 간사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지금 유다 나라와 함께 있으니까 건드리지 마라는 그러한 모양새를, 자기 과시를 바벨론 대국한테 감히 하고 싶었던 거죠. “하나님께서 나를 15년 동안 살게 했으니까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잖아? 우리보고 초라하다고 얕보지 말고 우리와 함께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생각해서라도 함부로 우리나라를 넘봐서는 안 된다.”는 이런 정치적인 전략이 있었겠죠.
그런데 그게 바로 비 복음적이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겁니다. 자기 딴에 하나님을 높인다고 높이는 그 방법이 욕되게 하는 거예요. 왜냐 하면은, 유다 나라가 착해서 지켜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도가 착해서 지켜주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성도를 구원해주는 것은 성도가 못났기 때문에 구원하는 겁니다. 못났기 때문에, 죄인이기 때문에 구원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우리를 보고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대신하신 예수님을 보고 구원하는 겁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요새 말로 하면 자기가 잘났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 더 살아봐야 나올 수밖에 없는 자기 자랑거리, 자기 자랑질, 그게 자기도 모르는 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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