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강-YouTube강의(특수성과 보편성)150409-이 근호 목사
108강-YouTube강의(특수성과 보편성)150409-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80.231.90.76)
108강-YouTube강의(특수성과 보편성)150409-이 근호 목사
오늘은 제 108강, 제목은 ‘특수성과 보편성’이라는 좀 어려운 제목을 정해봤습니다. 여기 특수성과 보편성이라는 제목을 정하게 된 것은, 우리가 흔히 천국가려면 고난을 받아야 된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선지자, 스데반집사, 그리고 예수님, 사도바울, 한결같이 그 분들은 구원받은 사람이지만 고난 없는 생애가 아니고 고난과 더불어서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8장에도 천국가려면 고난도 있었다고 이야기했고, 빌립보서 1장 끝에도 믿음과 더불어서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된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구원이 나오니까, 아, 구원받기 위해서는 고난이 같이 있어야 되겠구나! 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면 내가 구원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확정하는 증거로써 고난이라는 것이 내 인생에 있으면 나는 구원받은 사람이고, 너무 고난이 없으면 구원받은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그런 불안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자기가 사도냐 아니냐를 결정하면서 가짜사도, 마귀에 속한 가짜사도들은 고난이 없는 반면에, 자기는 사도이면서 고난이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우리 귀에 들릴 때는, ‘그래! 구원을 받은 사람은 필히, 반드시 고난이 있어야 돼.’ 그렇다면 고난을 의도적으로 유발하려는 성향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제가 제목을 ‘특수성과 보편성’이라고 이렇게 정한 이유는 사람들이 구원받기 위해서 고난이라는 것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경향이 굉장히 농후해요. 물론 우리뿐만 아니고 실제로 베드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3절에 보면 베드로가 한 이야기인데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 하였나이다” 베드로가 예수님한테 이야기합니다. “예수님, 제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또는 구원받기 위해서, 또는 영생의 날을 위해서 제가 옥에 갇히는 것도 각오했고 심지어 죽는 데도 저는 마음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자, 이만하면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됐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죠.” 라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베드로야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자, 베드로와 같은 자기 각오와 강한 결심, 왜 그것에 대해서 주님께서 호응하지 아니하시고 그걸 동조하지 아니하시는 걸까요? 왜 그것을 격려하지 않으시는가요? 그것은 바로 천국이라는 게, 영생이라는 것이, 구원이라는 것이, 인간들이 생각할 수 없는 그러한 상황으로 우리에게 찾아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흔히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천국가려면 주님도 고난 받고, 스데반 집사도 고난 받고, 선지자도 고난 받았으니까 우리가 천국가려면 마음 단단히 먹고 이제는 죽기 살기로, 어떠한 이 세상에서의 수모와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 “그래, 고난아 와라! 고생아 와라! 내가 그걸 이겨내서 기어이 천국 가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리라”는 마음의 결심을 하기 마련입니다. 근데 그렇게 결심하는 그것이 우리가 하기 전에 이미 베드로가 이야기했고, 그것이 가짜로 판명이 나게 되어있습니다.
“고난으로 구원받으세요.” 라는 말이 얼마나 어설픈 구원론이고, 그것은 자칫 잘못하게 되면 힘들어도 교회에 충성해야 되는 교회 영업용 멘트로 이용당할 수가 있습니다. “힘들수록, 경제가 어려울수록 헌금 더 해야 되고, 여러분이 바쁠수록 오히려 시간을 짬을 내서 교회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확장하는데 하나님의 일에 기여하는 바가 됩니다.” 라는 쪽이 되고. 그렇게 지시가 왔을 때 그걸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 심지어 자학적인 것, 자기를 때려가면서 어떤 쾌감 같은 것을 느껴가면서 충성 봉사하는 것, 그것이 과연 자신을 구원하는 고난이라고, 하나님이 자기를 구원할 때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고난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적인 결심과 단호함과 대단한 그러한 각오를 왜 물리치십니까? 상당히 순수해 보이고, 순진해 보이는 그 각오와 결심도 천국 가는 방법과 상관없는 것으로 주께서는 물리치십니다. 그러면 성경에 나오는 그 천국 가는 고난, 영생 얻는 고난, 구원받는 고난은 어떤 고난이냐 하면, 인간이 시작하는 고난, 또는 고생이라는 것은 구원을 위하여, 또는 복음을 위하여 고난 받기 때문에 이게 문제가 되는 겁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고난이라는 것은, ‘복음에 의해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고난이어야 되는데, 우리는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내가 천국가기 위해서, 내가 하나님 앞에 기여했다는 티를 내려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자학적인 것, 자기를 때려가면서 하는 고난은 가짜입니다. 그게 바로 인간들이 할 수 있는 "보편적인 고난"입니다.
제가 지금부터 "특수한 고난"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고, 우리가 끄집어낼 수 있는 그런 보편적인 고난은 고난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수한 고난입니다. 이 특수한 고난은 내가 구원받는 것하고 아무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일에 보탬이 되고자 설치면 설칠수록 특수한 고난과는 전혀 거리가 먼 보편적 고난이 되고 맙니다.
특히 보편적 고난,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받고자 시도하는 보편적 고난은 하나님께서 그걸 마귀한테 넘겨버려요. 마귀한테 넘겨버리면 인간은 제풀에 자기가 지쳐버립니다. ‘이 고난도 구원받는데 도움이 될 거야. 이 고난도 나중에는 하나의 보상으로 주어질 거야.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실 거야.’ 이렇게 힘들게 하다가 나중에 제풀에 자기가 지쳐가지고, ‘더 이상 못합니다. 나는 죽으면 죽었지 더 이상은 못합니다.’ 하고 제 풀에 나자빠지게 되어 있어요.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이 고난을 어떻게 하나님께서 특수한 고난으로 만들었느냐 하면, 고난이라고 하면서 먼저 그 전제가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복으로 나옵니다. 쉽게 말해서 "복을 받은 자만이", "복을 받게 된 자만이" 고난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0절을 제가 읽어보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핍박을 받으라가 아닙니다. 핍박이 주어지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고난이 주어지게 되어 있는 거예요. 왜? 바로 그것이 천국이기 때문에.
천국의 시작을 우리 쪽에서 시작해서 우리가 따내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의 시작은 하나님 쪽에서 천국을 시작하게 되고, 그 시작이 우리한테는 고난이라고 느껴지지만 시작은 복의 이름으로 옵니다. 복이 넘실거리면 우리한테 고난으로 닥치는데, 그 고난이 내가 생각하는 고난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고난에 참여하는 혜택을 입게 됩니다. 그러면 성도는 신바람이 나는 거죠.
우리가 생각하는 고난은 찡그려야 된다, 울어야 된다, 아파야 된다, 이렇게 서글픈 상황을 가지고 고난이라고 생각하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고난이라는 것은 내가 시작하지 않은 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신바람 불고 신나는 경우를 말합니다. 11절에 보면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 너희는 복이 있나니” 12절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다시 말해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 예수, 나를 위하여 너희들이 욕 얻어먹을 때 너희들은 신나지 않았느냐? 참 기쁘지? 즐거웠지?” 라고 언급을 하시는 거예요. 찡그려가면서, 억지를 쓰면서, 분수에 넘치는 헌금을 해가면서, 투자를 하고, 교회 충성봉사해가면서, “주여, 이렇게 주를 위해서 헌신봉사하고 있으니까 하나님 제가 구원받은 사람 맞지요? 영생 주는 것 맞지요? 저에게 구원 주는 것 맞지요?” 이런 식으로 악을, 악을 써가면서 하는 것은 그건 자학적인 거예요. 이거는 몸부림치는 겁니다.
성령께서 이야기하는 것은, “니가 니 스스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건데.....,” 그런 구원과 그런 영생을 하나님께서는 주신 적이 없어요. 하나님께서 주신 영생은 예수 이름으로 욕 얻어먹고 핍박받는 것과 더불어 오는데, 막상 성도 당사자는 그게 그렇게 신이 나고, 고맙고, 감사해지는 겁니다. 이게 예상도 못한 특수한 고난이에요.
고생을, 나를 위한 고난이라고 잘못 해석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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