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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50414a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22-셸링자유게시판[신학]

20150414a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22-셸링

이름 : 한윤범(IP:14.39.134.23)

20150414a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22-셸링

(강의:이근호 목사)

오늘은 셸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셸링은 1775~1854년 독일이라고 돼있지요. 이 사람은 피히테와 그 뒤에 있는 헤겔 사이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설명한 사람입니다. 철학적으로 설명했다는 말은 다른 말로 이성적으로 설명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여러 번 강의할 때 이야기했습니다. 이성적으로 설명할 때는 성경 자체에서 이야기한 전통적인 해석을 배제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성경 없으면 무슨 계시가 있느냐? 그 사람들은 성경을 계시로 인정해요. 그런데 그 성경은 좁은 성경이고 성경은 책이거든요.

그들이 말하는 성경은 이겁니다. 대자연입니다. 대자연 속에 일어나는 모든 변동사항, 변동, 변화. 이게 계시에요. 대자연 속에 인간도 포함되겠지요. 자기 자신도 포함되겠지요. 사람들이 가만있는 게 아니잖아요. 생각하고 움직이고 하지요. 이것이 하나님의 계시에 포함되는 겁니다. 온 천지가 하나님의 계시인데 왜 교회에서는 성경만을 계시라고 고집하느냐 말이죠. 이게 철학자들의 불만이죠. 사실은 철학자들의 불만이라고 할 수 있지만 더 나아가서는 교인들이 은근히 갖고 있는 불만일 수 있어요.

다시 할게요. 이 사람들이 성경을 무시하는 게 아니에요. 성경을 계시 아니라고 한 게 아니고 대자연 속에 포함돼있는 성경도 계시에 포함시키는 겁니다. 성경을 썼던 저자들이 있잖아요. 인간이죠. 그럼 인간은 대자연에 속하잖아요. 대자연에 속한 인간이 어떤 저자들이 모여서 책을 썼다면, 이것만이 계시라고 한다면 안 된다는 겁니다. 만약에 성경만을 계시라고 한다면 성경 외에 다른 모든 변화나 변동, 대자연의 있음, 존재, 활동, 모든 것을 놓치게 되잖아요. 놓치게 되면 성경만 고집하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더 잘 알겠습니까? 아니면 성경을 포함해서 다른 것까지 다 아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더 잘 알겠어요? 어느 쪽이겠어요.

이것이 셸링이라든지 피히테, 헤겔 이런 철학자들만 이야기한 게 아니고 일반 교인석에 앉아있는 교인들이 은연중에 갖고 있는 불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거기는 장로가 있지요. 성완종 장로도 거기에 있잖아요. 그 사람이 교회에서 성경공부하기 위해서 한 게 아니잖아요. 이 대자연 속에서 경남기업을 갖고 있으니까 자기는 대자연을 만드신 하나님을 믿는단 말이죠.

그러면 목사가 교회에서 성경을 펴놓은 그건 네 할 일하란 말이죠. 그것만 있는 게 아니란 거예요. 자기가 경남기업을 하면서 알았던 모든 변동사항, 활동, 이것도 계시인 거예요. 홍준표에서 1억 주고 하는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다는 겁니다. 이것 주지 않으면 기업 활동이 안 된다는 사실을 목사는 모르지요. 목사는 성경만 아니까 생각하는 게 좁아서 그게 신의 계시인 줄 알겠어요? 모르잖아요. 그런데 뇌물 주니까 모든 게 통하더라는 이것은 목사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자연계시 속에, 하나님의 계시 속에서 자기가 얼마든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장로로써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물론 자살로 끝났지만.

이러한 의견에 대해서 성경만 계시라고 고집하는(요새는 그런 목사도 별로 없지만) 목사로서 뭐라고 답변해야 됩니까? 성경보다 세상이 넓은 데 왜 좁은 것만 계시라 하고 나머지는 계시 아니라고 한다면 나머지 여기는 하나님이 안 계신단 말인가? 이렇게 반발 들어올 게 뻔하거든요.

더 나가서 뭐냐 하면, 두 가지에요. 하나는 모든 이가 목사 되어야 하는가? 목사가 되어야 옳은가? 두 번째는 성경만인가, 성경만 진리고 다른 데는 진리가 없는가? 두 번째 같은 경우에는 성경을 통해서 시계를 만들어내고, 컴퓨터를 만들고, 자동차를 만들어냈어요? 자동차, 컴퓨터, 증기기관, 기차 어디서 만들었어요? 목사가 만들었어요? 목사가 성경 보니까 자동차 설계도 나와 있어요? 없잖아요? 그럼 이건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대자연의 어떤 특정 질서가 있는 겁니다. 물론 질서가 있다는 이것을 오늘 공부할 셸링이 다 언급을 해요. 될 수 있는 대로 철학적 용어를 사용 안 하고 설명하려고 합니다.

지금 대자연의 질서가 있어요. 목사는 성경 속에 그 질서가 나와 있느냐? 성경 속에는 아무리 봐도 질서가 안 나와 있단 말이죠. 그러니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으로 국한 될 수 없는 거예요. 성경 속에는 인간을 천국 보내는 그 질서는 있을지언정 역시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의해서 날마다 생존을 보장받는데 필요한 질서, 계시. 질서란 말을 썼지만 사실은 질서를 하나님의 계시, 뜻.

하나님의 뜻은 대자연 속에 규칙적인 반복적인 어떤 법칙이 있고요. 그 법칙을 개발해서 자동차나 증기기관, 시계를 만들었잖아요. 만들어서 편리하게 써서 그걸로 인하여 65억 인구가 먹고 사니까 이것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고 신의 뜻이라면 신의 뜻이 어떻게 성경 안에만 국한돼있다고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우격다짐을 할 수 있느냐 말이죠. 그러니까 철학은 신학보다 더 넓게 포괄적으로 생각해줘야 된다는 겁니다. 셸링, 헤겔 다 마찬가지에요.

그러면 성경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거기에 대해서 그게 옳으냐고 해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차를 살 때 차 값 말고 다른 비용 하는 것이 옳으냐고 하는 거예요. 성경 외에 이쪽에서는 옳으냐고 묻는 것이 아니고 획득할 수 있느냐고 물어요. 예를 들어서 콩나물을 파는데 “콩나물 얼마입니까?” “삼천 원입니다.” 여기에 뭐가 빠졌어요? 당신이 콩나물 파는 게 옳으냐? 그리고 내가 콩나물 사서 오늘 저녁에 콩나물국 먹는 것이 옳으냐는 그 문제가 빠졌지요. 왜 빠졌을까요? 콩나물국 먹는 게 죄입니까?

부산공부하면서 늘 느끼는 게 그거에요. 사회생활 많이 하는 목사가 돼서 그냥 성경 자체만 아니라 두루두루 많이 알고 계신 거예요. 많이 알고 계시기 때문에 자칫하면 그것이 긍정될 수 있고 정당화 될 수 있어요. 하나님이 그렇게 했잖아요. 내가 원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내 책임 아니라는 쪽으로 정당화 될 수 있습니다.

저녁에 콩나물국 끓이는 것이 옳습니까? 이걸 성경적으로 판단해야 돼요. 이게 옳지 않거든요. 그러면 콩나물국 말고 쑥국 끊이면 옳습니까? 이건 제가 여러 번 강의했어요. 인간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인간이 옳다, 그르다는 판정기준에서 인간은 이미 배제된 상태입니다.

한 가지 성경으로 이야기하게 되면, 욥기에 욥과 욥의 친구가 있는데 참 재미있는 것은 욥의 친구가 하나님과 욥의 관계에서 배제돼있지요. 빠져 있잖아요. 욥기에 보면 욥의 친구들은 계속 하나님이 어떻고, 하나님이 어떻고 하면서 하나님 이야기하고 있지요. 그런데 실제로 하나님 보기에 같잖지도 않지요. “너, 뭐야? 난 지금 욥과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개뿔도 하나님을 모르지만 욥의 친구들은 입만 열면 하나님이라. 하나님은 정당하다, 하나님은 거룩하다, 하나님은 온전하다, 하나님은 죄를 모른다, 욥아, 네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 받는 것이다. 하나님은 절대로 그런 분이 아니다. 이미 욥 보기에도 같잖지도 않고 하나님 보시에도 더더구나 마찬가지인데 욥의 친구들은 그걸 모르지요.

욥의 친구들은 옳다, 그르다는 기준에서 이미 배제당한 거예요. 배제 당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래. 우리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뭘 알아. 우리는 입만 다물고 있겠지.” 이렇게 이야기 안 하잖아요. 뭔 뜻인지 아시겠지요. 그러면 그들이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정하시고, 하나님은 어떻고, 하는 그것은 어디서 나온 거예요? 하나님에게서 배제된 인간이 입만 떼면 하나님 이야기라. 그러면 그 출처가 어디에요?

아까 오스트리아 신학자 이름이 뭐라고 했어요? 이반 일리치. 바로 그 사람이 주장한 게 그겁니다. 모든 신은 어디서 나왔느냐? 바로 여기서 나왔습니다. 공동체에서 나왔어요. 무슨 공동체? 인간 공동체. 인간의 사회에서 나왔거든요. 인간의 사회는 무엇의 일부냐? 잘 들으세요. 대자연의 일부입니다. 그럼 뭐가 계시입니까? 대자연이 계시에요. 그리고 그 사람에게 성경은 뭐냐?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대자연에 있는 모든 활동을 과연 제대로 활동했다고 정당화시키는 빌미로 제공된 것이 성경이라고 보는 겁니다.

첫 번째 계시는 대자연이고, 두 번째 계시가 성경인데 성경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닌 이유는, 현재 우리가 대자연 속에 살아가는 이것을 신의 계시라고 알고 있는 우리에게 성경적으로도 당연하고 정당하다는 것을 보장해 주기 위해서 성경이 활용되는 겁니다.

하나의 예를 들면, 목사가 목회하는 것, 성경에 있습니까, 대자연 속에 있습니까? 빨리 이야기하세요. 대자연 속에 있지요. 대자연 속에 있으면서 목사는 성경으로 뭘 자꾸 거론하느냐 하면, 내가 목회하는 것이 정당한 일이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계속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욥 당사자는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욥의 친구들에게 너희는 나를 모른다는 거예요.

그런데 욥의 친구들은 그 소리 듣고 화가 더 나는 겁니다. 너도 밥 먹고 살고 나도 밥 먹고 살고, 너도 신을 알고 있고 나도 신을 알고 있고, 너도 신의 덕분으로 살고 나도 신의 덕분인데 너와 내가 뭐가 다른데? 다를 게 뭐가 있는데? 왜 우리는 모르고 너만 알아야 되는가? 결국 정답은 그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택함과 동시에 안과 밖을 욥을 통해서 경계선을 설정해놓은 거예요.

이번 강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지젝이란 사람이 셸링을 굉장히 유념하게 본 것은 바로 그 점이었어요. 일반적으론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셸링은 하나님 자체 내에서 둘로 구분했다는 겁니다. 이런 아이디어는 철학자로서는 생전 처음이에요. 그런 적이 없었어요. 하나님은 통일돼있지 하나님이 둘로 나눠져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 겁니다. 이 생각을 그대로 이어서 나온 게 헤겔의 인간이 되신 하나님 사상이에요. 헤겔의 주제는 성육신이라 했지요.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신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신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은 인간 속에 함축이 돼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나타난 하나님만이 하나님이지 그 외에 하나님은 인간이 된 하나님에 비해서 하나님이 아닌 거예요.

헤겔 다음에 포이에르 바하란 사람은 신을 인간의 투영이라 했지요. 투사, 투영하는 겁니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던져진 존재다. 기투란 존재라고 했는데 포이에르 바하는 투영했다고 보는 겁니다.

모든 것은 신이 만들었고 하나님의 계시는 대자연에게 있으며 성경은 그 중에 일부고 성경이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현재 이 대자연의 계시가 왜 정당한지 보존하기 위해서 이런 게 있다고 보는 겁니다. 여기에서 적합하다고 언급한 것의 욥의 친구들의 사상을 예를 들었지요. 이제 그 연결고리를 아시겠습니까?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을 거론하고 하여튼 그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는 못 사는 사람들이에요. 하나님 없이 못 사는 그들이 하나님한테 배제됐다는 생각을 감히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입만 떼면 하나님인데. 하나님 덕분으로 살고 하나님 은혜로 살았다고 그런 이야기하는 그쪽이 하나님에 의해서 배제됐다는 생각을 상상이나 하겠느냔 말이죠. 못하지요.

셸링은 바로 이런 점에 대해서 일단 성경에 대해서는 몰라요. 성경의 독특함은 모릅니다. 성경을 빼놔도 이 대자연이 하나님이 뜻이라는 가운데서도 충분히 신이라는 개념을 자체를 변경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그걸 파악하고 분석해나가는 겁니다. 어떻게 분석하느냐? 지금부터 저를 따라오시면 되겠습니다.

신이 대자연에 있다. 대자연 속에 인간이 있다. 인간은 대자연 속의 흔들림, 움직임, 그리고 나의 흔들림. 이런 움직임 속에서도 신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셸링은 증명해내려고 해요. 인간 속에 아무리 환경이 바뀌고 움직여도 움직이지 않는 인간 속에 절대적인 요소가 있다고 본 겁니다. 첫 번째 논리로 그걸 셸링은 자유라고 했어요.

셸링은 자유를 어떻게 끄집어내는가? 만약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차를 얻었다고 칩시다. 내가 자유롭게 일해서 자유롭게 행동해서 또는 길 가다가 우연히 주웠다고 칩시다. 그리고 이것이 굉장히 마음에 드는 거예요. 차가 참 맛있네, 향기 좋네. 이때 이 사람은 뭘 놓친 겁니까?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그것에 의해서 좋아하는 내가 종속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 차가 좋잖아요. 이것보다 못한 차가 오게 되면 뭘 그리워하게 됩니까? 그걸 원하게 되었어요. 그게 맛있었는데. 천팔백 원짜리 명인 단팥빵이 좋았는데. 명인이 국산 밀가루로 만든 비싼 단팥빵을 살 수 없다면 그만큼 결핍이 생기잖아요. 그 결핍은 그놈의 천팔백 원짜리 빵 때문에 생긴 거예요. 그것 때문에 기존에 오백 원짜리, 이백오십 원짜리 단팥빵 먹을 때마다 그리워지는 거예요. 그게 종속이니까 일종에 매인 거예요. 그게 자유를 놓친 게 되는 겁니다.

이걸 정리하게 되면, 내가 생각하는 것이 내가 생각되어진 것에 도달하게 되면 생각하는 나를 생각되어진 것에 얽매이기 때문에 나는 순수한 내 자유를 상실해버린다. 이 짧은 문장 하나가 인간의 복잡한 삶은 한 마디로 끝내버렸어요. 불교의 복잡한 교리가 한 방으로 끝난다니까. 내가 원했다는 것은 기존에 생각하는 나 자신으로 되돌아오기 위해서 그렇게 했는데 그게 구입하기 여의치 않음으로 말미암아 해외직구할 수도 없고, 그때부터 초조한 거예요. 그러니까 도대체 나의 완벽한 자유로움을 누가 빼앗아 간 거야? 한 평생 인간이 살면서 인간이 평소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는가를 이 짧은 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다 해버렸어요.

이것은 목사도 마찬가지고 일반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오십 명 나오던 교인이 열 명 나오면 오십 명 때가 그리운 겁니다. 오십 명 때는 그리워할 줄 몰랐지요. 오십 명 때는 백 명 된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경제가 나빠져서 백 명은커녕 오십 명에서 열 명 됐을 때 갑자기 자기가 오십 명이냐, 열 명이냐 하는 숫자에 놀아나는 자기 자신이 불쌍해지는 겁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화가 나는 거예요.

강의 처음부터 다시 해봅시다. 하나님이 내가 만들었지요. 하나님은 절대자고 자유롭지요. 셸링은 하나님의 자유가 우리 속에 들어온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자유로우면 우리가 완전한 자유인이어야 되겠지요. 지난 피히테 할 때 했잖아요.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잖아요. 성육신이 뭔데요? 하나님이 뭐 됐다? 하나님이 개 됐습니까, 거미 됐어요, 코끼리 됐습니까? 하나님이 사람 됐잖아요. 왜 그래야 돼야 되는가요? 철학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자유라는 말이에요. 신학에서도 그게 하나님의 자유라는 겁니다.

그러나 뉘앙스가 달라요.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주권에 의해서 인간을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은 왜 만들었느냐? 왜라는 질문을 할 수 없다는 그것이 신학 쪽에서 교회 쪽에서 목사들이 주장하는 거예요. 맞지요?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고 모든 것은 주의 뜻이기 때문에 하나님한테 불평하지 마라. 이쪽은 신학 쪽이라니까요.

그러나 철학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만들었잖아요. 왜 코끼리 안 되고, 왜 우리를 거미로 안 만들고, 사자로 안 만들고, 왜 인간으로 만들었습니까? 이게 하나님의 자유지요. 그럼 철학에서 잘 됐다고 보는 겁니다. 왜? 그 자유가 우릴 떠나서 갈 데 없지요. 그러면 나의 자유가 곧 신의 자유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앞으로 뭘 할 것인지 교회 가서 목사한테 신학자한테 물을 필요가 없어요. 신의 자유가 있다면, 내가 계획하는 것, 앞으로 뭘 하고 어떤 직업을 갖고 돈벌이한다. 이것도 신의 뜻이기 때문에 이걸 긍정할 수 있는 겁니다. 신이 자유를 줬기 때문에 신으로부터 자유로워라는 것이 철학이고, 신이 자유를 줬기 때문에 신에게 매이자는 것이 신학이라니까요. 같은 말인데 반대잖아요.

복음을 아는 사람은 어느 쪽입니까? 복음을 아는 사람은 둘 다 틀렸어요. 그 신이 우상이기 때문에. 둘 다 나 자신을 부정하지 않아요. 나는 하나님 믿기 잘했다. 하나님 뜻을 따르면 구원시켜 주겠지요. 둘 다 노림수가 있어요. 더 알기 쉽게 말해서 신학은 뭐냐 하면, 하나님에 대해서 알면 하나님이 구원시켜줄 거지요. 죽어서 천국 보내줄 거지요. 이건 신학이나 교회에서 하는 것이고.

철학은 우리 속에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대로 하기를 사명으로 부여받은 거예요. 철학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하나님, 이해하시지요. 신학은, 제가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고 주의 뜻대로 똑바로 하게 되면 천국 보내줄 거지요. 둘 다 선악과 따먹은 티를 내요. 둘 다 자아절대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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