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천국에서 크냐?
Re..마 18: 1- 7 (누가 천국에서 크냐)
이름 : 이근호(IP:)
누가 천국에서 크냐?
2004년 8월 22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18:1-7
18: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18: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18: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18: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18:7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예수님을 막연하게 대하게 되면 주로 놀라운 기적을 베푼 것에 대해서 인상깊이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포괄적으로 보게 되면 예수님은 기적보다도 말씀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자신이 마지막의 날의 심판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장래 심판을 받는 기준과 해답을 미리 앞당겨 다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십니다. 마치 수능 문제 출제 의원이 동네방네 다니면서 "수능 문제에 이런 문제가 나옵니다"하면서 정답과 문제를 알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기적보다는 말씀 위주로 나아갈까요? 그것은 인간이란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와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젊은 날 헤어져버린 친구 사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상관없이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 집합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이란 무엇일까요? 인간이란,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면 죽게 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든지, 인간의 고귀성이라든지, 인간의 품위를 가지고 인간을 논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그 옆에 선악과도 같이 심어놓으셨다는 그 취지를 놓치면 아니 됩니다. 즉 선악과의 취지를 놓치면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을 위하여 말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위하여 인간을 만들어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씀이 담겨있지 아니하는 인간은 인간도 아닙니다. 이 원칙은 예수님을 양보하거나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획기적으로 상황이 돌변하는 기적을 원합니다.
여러분, 기적이란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합니다. 병 나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인간은 늙어 죽으면 마찬가지가 됩니다. 이사야 40:7-8에 보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하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풀도 마르고, 꽃도 시들고, 인생도 다 없어져 버리는 겁니다. 영원히 남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겁니다. 그 살리는 말씀을 오늘도 예수님은 제자들과 저희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취지로 인도하는 예수님 앞에서 제자들은 엉뚱한 발언을 합니다. "천국에서 누가 크냐?"라고 하면서 자신의 속마음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천국과 '누가 크냐?'라는 사고 방식은 전혀 맞지 않는 사고방식입니다. '누가 크냐?'하는 사고방식은 도리어 악마의 나라에서는 환영받을 사고방식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두말 않고 단호하게 저지해 버립니다. 예수님은 난데없이 어린이를 하나 불러다가 자기 앞에 세우고서는 "누구든지 돌이켜 이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예수님의 이야기는 장차 올 천국 심판의 문제요 해답을 더불어 미리 주시는 말씀입니다. 왜 천국이 이처럼 "누가 크냐?"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단 말입니까?
요한복음 4:36-38에 보니,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추수'라는 표현을 사용하시고, 그 다음에 '노력하지 아니한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즉 천국 추수는 두 부류에 의해서 진행되는데 하나는, 심는 이와 다른 이들은 거두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거두는 자들은 결코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거두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오히려 반대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게 된다는 말입니다. 마치 제자들이 본인들의 애씀에 의해서 제자로 발탁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일방적인 예수님의 선택에 의해서 제자 된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제자들 자신들이 자신들의 노력 없이도 구원이 된 것처럼 다른 이들도 이와 같은 원리라는 겁니다. 사람이 구원되는 것은 거두는 이의 노고가 아니라 심는 이의 노고에 의해서 다 결정되고 거두어지게 되도록 되어 있는 것이 바로 천국의 원리입니다.
만약 이 원리에 위배하면서까지 천국에 들어온 자는 일체 없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제자들이 천국을 운운하면서 이 '노력하지 아니함'이라는 원리를 모르고 감히 예수님 앞에서 '누가 크냐?'를 따지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의 기준은 뭐든지 경쟁에서 승리해야 얻을 수 있고, 만약 경쟁 없는 것이라면 무가치한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기도 경쟁, 헌금 경쟁, 출석 경쟁, 봉사 경쟁, 전도 경쟁, 목사 섬기기 경쟁을 벌리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는 천국과는 전혀 상관없이 지옥의 대리점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즉 거기에 다니면 확실하게 지옥 보내주는 지부 노릇을 하는 곳입니다. 목사 본인들이 결코 주님으로부터 일방적으로 구원된 적도 없고, 복음으로 구원된 적도 없기에 그저 사람들을 상대로 해서 종교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수수료를 챙기는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 하나를 그들 앞에 내세웁니다. 왜냐하면 '크다'라는 말속에는 '낮춤을 당하면 안된다'라는 내용이 이미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 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특징은 처음부터 자신이 작다는 것을 안다는 겁니다. "나는 누구하고 경쟁한 필요도 없이 나는 집니다"라는 점을 마땅하게 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린 아이가 어른들하고 붙어서 지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여기서 '크다'나 '작다'나 하는 것은 키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누가 잘났느냐?"하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다 잘나기 위해, 즉 보다 남보다 자기를 큰 사람되기 위해 예수를 찾습니다. 교회 와서 목사를 향해 요구하는 것은 '지금보다 나를 더욱 더 큰 자'로 만들어 달라는 겁니다.
그렇게만 되면 교회에 하나님에게 보탬이 되는 쪽으로 보상해 줄 마음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어느 누구에 마지막 심판의 기준이 되는, 즉 말씀이 되는 '어린아이 같이 되게 달라'고 교회를 찾는 이는 거의 드뭅니다. 세상에 지기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천국은 바로 이런 어린아이가 같이 되지 아니하면 넣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원리에 대해서 얼마나 단호하게 확답을 짓는지 오늘 본문 6-7절에 보면,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누구든지 천국을 운운하면서 사람들이 요구하는 식으로 경쟁해서 '큰 자'가 된다는 식으로 가르치는 자는 지옥에 마땅히 가야한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알려주는 그 말씀의 취지와 정반대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인간이란 홀로 있는다고 인간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말씀에 그 속에 담기지 않고 거부해버리면 더 이상 인간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예수님의 정신을 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린아이같이 자신을 낮추지 아니하면 천국과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하면 마음을 낮출 수 있을까요? 흔히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마음 낮추기 경쟁을 또다시 벌리는 사태가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이런 것은 '누가 큰 자냐?'라는 정신과 같습니다. 사실 어린 아이보다 더 어린 아이는 갓난 아이일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되더라도 갓난 아이처럼 되어야 됩니다. 그렇다면 갓난 아이보다 더 어린 아이는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3:3-5에 나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인간의 원래의 자리는 죽음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죽고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 정도로 우리는 '마음 낮춤'에 자기 노력으로 성공할 수 없는 존재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정말로 구원받은 자라면 자기의 노력을 과시하는 자가 아니라 오로지 예수님의 공로만 자랑하는 자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모든 것이 주님의 뜻대로 인도함을 받는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은혜만 감사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