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 9강(재정리) - 민수기(불편한여정)
2015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 9강(재정리) - 민수기(불편한여정)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2015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제9강 - 민수기(불편한 여정)
강의, 이근호 목사 정리, 서경수 목사
민수기 16장에 보면, 율법에서 지시하지 않은 죽음이 나오는데, 무슨 말인고 하니, "율법을 어길 경우에는 죽여라" 라는 말씀이 민수기에 나오는데, 예를 들어서 15장에 보면, "안식일에 나무를 하는 자를 진 밖에서 돌로 쳐죽여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민 15:3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율법이 아닌, 다른 이유로 인한 죽음 !!
이처럼 율법에서 지시하신 죽음이 있는 반면에, 그런데 그런 이유 말고 다른 원인으로 인한 죽음이 발생한다는 겁니다. 그게 여기 16장에 나오는데, 여기에 나오는 고라 자손의 죽음은 원천적 죽음인데, 왜냐하면 율법을 제시하는 중앙의 집단내부에서 죽음이 일어나요.
(민 16:1)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민 16:2)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이백오십 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니라
(민 16:3)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
왜 중앙 핵심에서 반란이 일어났는가?
이것을 일종의 권력다툼이나 반란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말이죠. 거룩한 제사장 나라의 중심지에서 이런 반란이 일어났을 때, 그 죽음은 일반적 죽음과는 전혀 달라요. 그것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하면, 가장 궁극적인 죽음에 가까이 있는, 즉 성전(聖殿)을 보여주는 특별한 죽음이 된다는 말이죠.
보통 죽는 일이나 실패의 사건이 일어나면, 우리는 보통 "드디어 망했구나. 이제 이스라엘은 끝났다" 라는 반응을 보이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일을 통해서 오히려 점점 더 하나님 자신의 속마음과 본뜻을 보여주시는 계기로 사용하신다는 겁니다. 가장 중앙지점, 즉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지점에서 반란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본뜻이 더욱 심화되면서, 들춰지는 좋은 기회로 삼는다는 말이죠.
콘크리트의 강도를 검사할 때, '파괴 검사' 라는 것이 있어요. 겉에서 보면 모르는데 쪼개서 보면 정확하게 원인이 밝혀지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원인이 무엇이냐는 말이죠. 특별히 근본적인 문제는 "동물이 죽는다고 해서 우리의 죄가 어떻게 용서함을 받는가?" 라는 겁니다.
이것은 '믿어라' 라고 우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어린양을 잡으니까 장자가 살았다" 라고 하는데, 어떤 과정으로 인해서 그런 일이 발생하는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게 무슨 주술인가요? 아니면 미신인가요? 요즘도 아프리카에서는 어린양을 죽여서 병을 고친다고 난리를 친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 것입니까?
그런 자연종교의 형태가 나중에 유신론적 종교로 발전해서, 그것이 이스라엘의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그리고 이것이 유럽에 전해져서 유럽의 사고방식을 장악하는, 그런 종교적인 사상체계의 진화적 산물이라고 나올 수도 있는데, 과연 그러하냐는 말이죠.
자기가 지은 죄를 자기가 착한 일을 해서 씻는 것이 아니고, 외부인이 죽고, 그렇게 짐승이 죽음으로 자기의 죄가 사해지는 원리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겁니다. '믿어라' 라는 말은 감사한데, 그냥 믿기에는 뭔가 빠진 것 같다는 말이죠. 그 누락된 점을 마지막 시간에 생각해보려고 하는데, 중요한 것은 항상 마지막 시간에 몰려있음을 염두에 두시기를 바랍니다.
'0'인가? '1'인가?
이삭이 태어나기 전에 이스마엘이 있었는데, 이스마엘은 있음이니까 1이죠. 그런데 이삭은 없는데서 나왔으니까 0이죠. 그렇게 0인데, 태어나니까 1로 치는 겁니다. 0은 없는 것이고, 1은 있는 것이니까 말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있는 것을 거부해버렸는데, 생긴 것은 모두 안 된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이것은 에덴동산 바깥의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생명나무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러니 1이 있다는 것은, 저주가 있고 죽어 마땅하다는 뜻인데,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서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을 새롭게 만들어내기 위해서, 그래서 이삭을 주셨다는 말이죠. 이삭은 없는데서 생겼는데, 그렇게 없는데서 생긴 것은 다시 0으로 돌아가야 해요. 이것이 아브라함 언약의 원리라는 말이죠.
그런데 다시 돌아갈 때는 그냥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이삭을 잡도록 해서 제물화가 되면서 0으로 다시 돌아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본인이 스스로 제물화가 되면서, 본인이 스스로 다시 원천지를 찾아간다는 말입니다.
0이 1이 되고, 1이 0이는 '제물화'를 !!
그런데 인간들은, 즉 이스마엘은 원천지가 0이 아니고, 원천지가 지상의 저주를 받은 곳이기 때문에, 그래서 0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고 하니까, 0에서 1이 되고, 그 1을 다시 0으로 만드는, 그러한 제물화를 후대에 양산하신다는 겁니다. 이 원리를 후대에 그대로 전달하신다는 말이죠. 그런 전달을 할 때, 이것이 1로 보이지만, 사실은 0이라는 말이죠.
그렇게 전달할 때 택한 백성을, 즉 육에서 나온 아브라함의 자손, 혹은 이삭의 자손들, 즉 1이 있으면, 이러한 제물이 전부 투입되어서 1을 0으로 만들고, 1을 0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시는 겁니다. 그러한 작업을 하시면서, 한 마리의 양이 죽음을 통해서 0이 되는 겁니다. 물론 일반적인 1이 죽는 것은 0이 안 되는데, 왜냐하면 죽어도 그냥 그 인간이니까 말이죠.
반드시 약속에 의한 제물을 드려야 !!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0의 세계, 즉 이 땅에 없는 세계, 에덴동산 속의 세계, 생명나무가 있는 곳의 세계에서 준 약속이기 때문에, 이 1은 약속이 개입되는 순간 1은 0이 될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약속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다" 라는 것은 맞는 말이죠. 그러니 그냥 제물이 아니고 약속에 의한 제물을 드려야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이해를 한다고 치고 계속해서 진도를 내겠습니다(ㅋㅋ).
무슨 말인고 하니까, 양을 잡는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정해진 양, 정해진 염소, 정해진 소를 잡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것도 그냥 잡으면 안 되고, 약속된 날에 잡아야 하는데, 약속된 절기나 안식일에 말이죠. 그리고 제사장이 지정된 장소에서 잡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 대상에 따라서 일일이 말이죠. 그러니 모든 것이 약속 안에서 펼쳐지게 된다는 말이죠.
여기서 교재 3페이지를 봅시다.
** 얼룩이란 무인가? 한마디로 얼룩이란 우리 시야 속에서 시야의 자명함을 저해하는 요소다. 우리가 흔히 쓰는 안경을 예로 들어보자. 말끔하게 잘 닦인 안경을 쓸 경우, 우리의 시야가 맑고 투명하다. 하지만 작은 벌레 한 마리라도 렌즈 위에 달라붙게 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렌즈는 곧장 투명성을 상실해버리고 두께를 얻게 된다.
아하, 내가 안경을 끼고 있구나 !!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시야가 또렷하고 잘 보이는데,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얼룩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말끔하게 잘 닦인 안경을 쓸 경우에는, 지금 안경알이 있는지 없는지 몰라요. 이것은 0이고, 부재라는 겁니다. 말끔하게 안경이 닦여 있으면 밖의 현실이 있는 그대로 보인다는 말이죠.
아무런 방해요소가 없으니, 바깥의 세상과 눈으로 보는 세상은 동일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작은 벌레라도 한 마리라도 렌즈 위에 달라붙게 된다면 어떻게 됩니까? 렌즈는 투명성을 상실해버리고 두께를 얻게 된다는 겁니다. 즉 "아하, 내가 안경을 끼고 있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고, 안경을 중간에 놓고서 이 세상을 보니까, 이 세상은 안경에 의해서 새롭게 정립된 세상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안경에 벌레가 앉으니까 어떻게 됩니까? 비로소 주체가 무엇을 느끼는고 하니, 순수한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고, 안경을 통해서 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말이죠.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새롭게 발생되는 죄 !!
1이 0을 보지 못하는데,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께서 죄를 짓도록 만들어버리죠. 그러면 이 죄는 우리가 짓는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새롭게 발생되는 죄가 되죠. 약속이 없었으면 죄도 아닌데, 그렇게 약속 때문에 발생된 죄를 보고 이 세상을 볼 때, 자기가 세상을 잘못 보았다는 것이 비로소 깨달아지게 된다는 겁니다.
자기는 정당하고, 의롭고, 거룩하고, 성실하다고, 그렇게 자기를 착하게 봤던 이 세상이 전부인줄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주어진 그 안경을 끼고 보니, 자기가 곧 죄를 유발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겁니다. 그 안경에 벌레가 앉았다고 했지만, 사실은 십자가가 개입하는 것이죠. 즉 십자가를 통해서 이 세상을 다시 보는 겁니다.
33세가 된 청년 예수를 죽였을 때, 우리는 그것이 정당한 조치를 취했다고 여겼는데, 그런데 나중에 성령의 안경을 끼고서 보니까, 죽여서는 안 될, 우리를 구원할 구세주를, 우리를 창조한 그 창조주를 우리의 손으로 죽였으니까, 그래서 그 세계 앞에서 우리는, "나는 죽어도 마땅한, 0이 되어도 마땅한 죄인 중의 괴수구나!" 라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형상을 지닌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양의 모습으로 죽는 것도, 소의 모습으로 죽는 것도 아니고, 사람의 모습으로 와서, 사람의 모습으로 죽었단 말이죠.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이 예수님을 인간이 되게 하셔서, 인간으로 하여금 오직 주만 섬기는 그 본래의 목적을 위하여,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을 보고 신이 되라고 하나님의 형상을 주신 게 아니고, 다 쓸모가 있어서 하나님의 형상을 집어넣은 겁니다. 그런데 그 형상과 마주치면서 인간은 실패했는데, 하지만 주님께서 오셔서 그 형상을 성공시킴으로 말미암아서, 그래서 진짜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 자신이 아니고, 예수님만이 참 형상인 것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죠.
하나님이 그렇게 하심으로서 그 다음에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인고 하면, 이러한 주님과 인간들의 말싸움이, "우주가 계속해서 유지되는가?" 라는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고 하면, 1을 0으로 만들어서 0의 세계가 되게 하는데, 물론 0의 세계는 이 땅에서는 없는 세계지만, 이삭을 보낸 그 세계, 즉 약속의 세계이고, 숨겨진 하나님의 세계라는 말이죠.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 !!
하나님은 감춰진 분이라고 이사야 45장에 나오는데, 숨겨진 그 세계를 이 땅에서 제사 제도를 통해서 그 흔적을 드러내시는 겁니다. 이 제사 제도의 완성이 곧 십자가인데, 1에서 0으로 옮기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죄를 사하시는 방법인데, 이것을 일종의 장치로 보여주는 것이 곧 '성소' 라는 겁니다.
(사 45:15)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아, 태피스트리 !!
처음 바깥에 나와있을 때는 봄여름가을겨울, 그렇게 세상의 현실인데, 그런 현실로 가다가 보면 커튼이 쳐진 마지막 방이 있는데, 그 방에는 태피스트리가 걸려있어요. 두꺼운 천으로 짜서 무늬를 넣어서 벽에 장식을 해놓은 걸게가 있는데, 이 '걸게' 라는 말도 우리가 잘 쓰지 않는데 말이죠.
이 '태피스트리' 라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왜 광주에 가면 민주화 운동을 표현하는 그림이 있는데, 그것을 '민중화' 라고 하는데, 색깔도 단순하게 하고, 선도 우직스럽게 해서 말이죠. 한 쪽은 망치를 들고, 다른 쪽은 총을 들고 있는데, 아무튼 그런 것이 있다는 말이죠.
그게 아니면 왜 기독교 가정에 가면, 두꺼운 천으로 만든 것인데, 마치 양탄자와 같은 것인데, 그것을 바닥에 까는 것이 아니라 벽에 걸어놓은 것이 있는데, '최후의 만찬'과 같은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하는데 말이죠. 그런 것을 '태피스트리' 라고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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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피스트리(TAPESTRY) - 여러 가지 색깔의 위사(緯絲, 씨실, 피륙이나 그물을 짤 때, 가로 방향으로 놓인 실)를 사용하여 손으로 짠 회화적인 무늬를 나타낸 미술적 가치가 높은 직물공예를 두고 하는 말이다. - '패션전문자료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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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는 천사의 세계입니다.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
아무튼 그런 태피스트리를 마지막 방에 걸어놓았는데, 그 태피스트리의 그림이 무엇인고 하면 천사의 그림이란 말이죠. 현실인 1의 세계에서 보이지 않은 약속의 세계인 0의 세계로 들어가는 방식을 성소 안에서 처리했다는 말이죠. 즉 전환을 시켰다는 겁니다.
바로 이 태피스트리가 막장인데, 즉 끝이라는 말이죠.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종말이라는 것은 시간의 한계를 두고 이야기하는데, 종말 뒤에 시간이 있는 게 아닌데, 시간이 멈춰서야만 되는 곳, 그것이 곧 종말이라는 말이죠.
시간이 있다는 것은 1이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1을 0으로 만들면 시간도 그만 사라지지요. 즉 "여기까지가 끝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종말은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고 막장, 즉 태피스트리의 반복이라는 말이죠. "지금부터는 천사의 세계입니다.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라는 것으로 끝인데, 그것이 곧 종말의 세계라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는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에서 양이 죽은 것으로서 어떻게 내 죄가 용서됩니까?" 라고, 그 메카니즘에 대해서 묻는다면, 그것은 없는 것이 오셔서 희생물이 됨으로 말미암아서, 우리를 용서하는 게 아니고, 아예 지워버리는 겁니다. 즉 1의 세계에서 0의 세계로 바꾸어버린다는 말이죠.
0과 1의 마찰 !!
그런데 민수기 16장에서, 고라 자손은 모세를 1로 보았죠. 모세를 1로 보았다는 것은 자기들이 평소에 독자적인 1, 즉 "내가 여기 있고, 너는 거기 있다" 라는 식으로, 그렇게 자기들이 자기들을 본 것처럼 모세도 역시 1로 보았다는 겁니다. 그렇게 고라 자손이 모세에게 대드니까, 누가 나서는고 하면, 모세 배후에 있던 0의 세계, 즉 하나님께서 직접 모세를 대변하고 나서는 겁니다. 그래서 1과 0의 마찰이 일어났다는 말이죠.
(민 16:20)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민 16:21)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화제, 요제, 거제, 전제 !!
지난 시간에도 이야기를 했지만, 제사제도의 방식에는 "화제, 요제, 거제, 전제", 이렇게 4가지 종류가 있다는 겁니다. 제가 지난 7강에서 이것을 언급하면서 그만 착각을 해서, 전제가 아닌 소제를 이야기했는데, 전제가 맞다는 겁니다. 전제(顚祭), 혹은 관제(灌祭)라고도 하는데, 이것이 디모데후서 4장에도 나온다는 말이죠.
(딤후 4: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개역한글판)
(딤후 4:6) 나는 이미 부어드리는 제물과 같이 제물로 드려졌고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다. (우리말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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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제(顚祭) - 전제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방법 중의 한가지입니다. 거제와 요제는 흔들어 드리는 것인데, 전제는 액체를 부어드리는 제사법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제물의 희생과 헌신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제물 위에 포도주나 기름이나 피를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부어서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사무엘하 23장에는 다윗이 블레셋과 전쟁을 치루고 있는 중에, 적군의 진지 안에 있는 베들렘 우물을 먹고 싶다고 했더니, 다윗의 심복 3명이 적진에 들어가 적들과 싸우며 피투성이가 된 채로 우물물을 길러 왔습니다. 다윗은 부하들이 피를 흘려 구한 이 물을 자신이 마실 수 없다며 하나님 제단에 부어드렸습니다. 바울도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면서 자신의 몸을 전제와 같이 드렸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 네이브 블로그, 'after6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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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顚祭)로 드리는 제사 !!
이것은 부어서 드리는 제사의 방식인데, 그러면 제물에다가 무엇을 붓는고 하니, 포도주를 붓는다는 겁니다. 포도주는 알다시피 약속의 땅에 가야만 얻을 수 있는 산물인데, 즉 나실인이 완성될 때 본격적으로 포도주를 먹을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하늘나라가 오게 되면 포도의 산물을, 즉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결실물을 마음껏 먹을 수가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새 언약을 세울 때 뭐라고 하셨습니까?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지상에서 포도열매를 먹지 않겠다고 하셨다는 겁니다.
(마 26: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포도주를 붓는다" 라고 하는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나오는 결실물을 이제는 완료된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러니 관제를 드림으로서, 즉 포도주를 부음으로 말미암아서, 모든 죄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덮어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이죠. 그게 '관제(灌祭)' 라는 겁니다.
이것은 제사를 드리는 방법이고, 제사를 드리는 형식에는, 다 태우는 '번제', 식물성으로 가루로 만들어서 드리는 '소제', 하나님께 지은 죄로 인해 드리는 속죄제, 이웃에게 지은 죄로 인해 드리는 속건제,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함께 즐겁게 제물을 나눠먹는 화목제가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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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위기의 5대 제사 (blog.naver.com/idream2030)
* 번제 - 번제는 드리는 자의 형편에 따라 흠 없는 소나 숫양, 숫염소, 비둘기를 드렸고, 피는 제단 사면에 뿌렸으며 가죽을 제외한 전체를 번제단에서 화제로 드린 후 재를 진 밖에 버렸다.
* 소제 - 소제는 고운 곡식 가루에 기름과 유향과 소금을 넣어 화덕이나 솥에 굽거나 그 첫 이삭을 드렸다. 소제는 소제 하나만으로 드려지지 않고 번제, 화목제 등과 함께 드렸던 제사이다.
* 화목제 - 화목제는 형편에 따라 암수를 구별하지 않고 소나 양, 염소를 드렸던 제사로,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리고 내장과 기름 등은 제단에서 화제로 드리며 그 이외의 가슴은 요제로, 우편 뒷다리는 거제로 드린 뒤 제사장의 몫이 되었고 그 외의 부분은 봉헌자가 성막뜰에서 먹었다.
* 속죄제 : 속죄제는 의무적으로 드리는 제사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죄를 위해 드렸던 제사이다. 제물을 제사장과 회중은 수송아지, 족장과 평민은 숫염소, 암염소 또는 어린 양, 가난한 자들은 비둘기와 곡물을 드렸다.
* 속건제 : 속건제는 하나님의 성물이나 사람의 물건에 손해를 입힌 것을 위한 제사로, 흠 없는 숫양을 제물로 드리고 여기에 범한 물건의 5분의 1일 더 배상했다. 속건제의 피는 단 사면에 뿌리고 기름과 내장은 단에서 화제로 드리며 그 외의 부분은 제사장의 소유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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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것이 죄를 사하는 방식인가?
제사의 형태가 이렇게 되어 있으면, 율법이라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제사라는 것이 죄를 사하는 방식이거든요. 그렇다면 율법은 "왜 이것이 죄를 사하는 방식인가?" 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래서 여기에 맞춰서 율법에서 죄를 규정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 인생을 몽땅 다 바치지 않는 것이 죄가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되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이 죄가 되고, 자기의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죄가 되고, 이웃을 괴롭히고 해롭게 하는 것이 죄가 되고, 그리고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는 것이 죄가 된다는 말이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스마엘은 존재하지만, 영의 세계에서는 저주를 받을 대상이거든요. 삼성의 이재용이 엄청난 재산을 가졌고, 전두환이나 이명박이는 대통령을 지냈다고 해도, 하지만 영의 세계에서 내려온 약속에 의해서, 물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로 봐서는 저주를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물론 죽을 때가 되어서 회개하고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이면 몰라도 말이죠.
그런데 왜 우리는 돈과 권력을 부러워합니까? 투명한 안경으로 보이는 것, 그것이 현실 그대로인줄 알기 때문이죠. 안경에 벌레, 즉 십자가가 앉지 않아서 부러워하는 겁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통해서 이 세상을 보면 "세상에 재미있는 것이 하나도 없네. 너무나 의미가 없어!" 라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사도바울의 소원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나는 어서 이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기 원합니다" 라고 했다는 말이죠.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어서 죽여달라는 겁니다. 이것을 그대로 결혼식 설교 때 사용해야하는데 말이죠. "신랑, 신부, 그대들의 소원이 뭡니까? 헛된 꿈은 꾸지 말고, 그냥 빨리 죽는 것이 좋습니다" 라고 말이죠. 결혼식 분위기는 설교자의 책임이 아니라는 겁니다(ㅋㅋ).
(고후 5: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니라
타인이 없으면 욕망이 생기지 않아 !!
고라 자손은 모세를 자신들과 동질인 1로 봤다는 겁니다. 이것을 정신분석학에서는, "사람은 타인을 볼 때 자기 방식으로 본다" 라고 하죠. 즉 타인이 가지고 있는 욕망 가운데서 자기가 원하는 욕망을 그대로 욕망하게 되어있는데, 그래서 "타인이 없으면 욕망이 생기지 않는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저 사람은 무엇을 가지고 있나? 아, 기타를 잘 치네. 나도 기타를 잘 치고 싶다. 저 사람은 피아노를 잘 치네. 나도 피아노를 멋있게 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그렇게 인간은 태어나면서 남의 것을 보는 겁니다. 남의 것을 보는데, 그런데 자신의 엉터리 안경으로 본다는 말이죠.
상상계와 상징계 !!
라캉은 그것을 '상징계' 라고 했는데, 상징계로 봐서 어디로 가져오는가 하면, '나'에게로 돌아오거든요. 그러면 그 '나'는 뭐냐하면, "나는 거울을 보고 나를 알았다" 라는 겁니다. 이것을 '상상계' 라고 하는데, 상상계는 동질성이고 상징계는 타인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언어의 세계라는 말이죠.
그러면 이 세상에는 두 가지 뿐이죠. 어릴 때 '백설공주' 라는 동화를 보면서, 그 백설공주가 자기라고 착각하는 상상계가 있고, 자기도 백설공주처럼 되고 싶어서 스펙(specification)을 쌓으면서 백마를 탄 왕자를 기다리는 것이 바로 상징계가 되는 겁니다. 현재의 모습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얼굴을 뜯어고치고 외국어를 더 공부하고, 그렇게 해서 왕자를 만나기를 고대하지요.
왜냐하면, 그게 '나' 라고 어릴 때부터 이미 확정했기 때문에, 그러니 동화를 본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동화를 보면 착한 신데렐라는 반드시 승리를 하죠. 그리고 '마법의 성' 이라는 노래가사를 보면, 어떤 고난과 역경을 겪더라도 영웅은 반드시 공주를 구출해내고야 만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뒤엎은 분이 예수님이라는 말이죠.
어릴 때는 자기가 더욱 잘 되기 위해서 항상 아버지에게 질문을 하는데, 그러면 아버지는 아이에게 "이런 식으로 공부하고 착하게 살면, 니가 원하는 동화 속의 사람처럼 될 수 있다" 라고 하는데, 이렇게 아버지가 알려준 것을 두고 '상징계' 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평생을 아버지에게 묻는데, 즉 자기 이름으로 살지 않고 아버지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겁니다. 심지어 아버지가 죽어도 무덤에 찾아가서도 뭐라고 합니까? "아버지, 제가 잘했지요?" 라고 묻는데, 바로 이것이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현실의 전부라는 말이죠.
독자적 현실을 구축한 것이 곧 '죄' !!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의 약속이 개입하죠. 그러면 그게 바로 죄라는 사실, 즉 독자적 현실을 구축한 것이 바로 죄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왜 그것이 죄입니까? 율법의 최고 권력단체에서 반란을 일으켜 그 실상이 드러났다는 말이죠.
고라 자손이 말하기를, "우리가 요단강을 건너올 때, 당신이나 우리나 똑같은 입장에서 건너왔기 때문에 다를 것이 없다" 라는 겁니다. 즉 "너나 나나 같다. 모세도 1이고 우리도 1이다. 그러한 1+1+1+1이 바로 현재의 이스라엘이 되었다" 라는 겁니다. 이것은 다수성인데, 이런 다수성에 어떤 이념이 나오면, 그것이 신이 된다는 말이죠.
고라 자손은, 1의 연장을 고수했기에 !!
이렇게 고라 자손이 신이 되려고 하는 것은, "다수의 인간이 다수의 인간을 지배한다" 라고 상상한, 그러한 초월적 개념을 산정한 것이 신이 되는 겁니다. 그 신은 어디에서 나왔는고 하니, 1에서 나왔다는 겁니다. 즉 1의 연장에서 나온 것이죠.
그래서 그 신은 굉장히 착해요. 왜냐하면, 자신이 착하고 싶으니 말이죠. 그리고 그 신은 모든 어려운 사람에게 선으로 보상해줘요. 왜냐하면, 자기가 그렇게 보상을 받고 싶으니 말이죠. 또한 모든 아름다움은 거기에 다 있어요. 왜냐하면, 자기가 한계가 있어 못하는 것을 그쪽에서는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니 말이죠. 그게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본다는 겁니다.
너희가 죽음을 놓쳤구나 !!
그런데 실제로 하나님이 등장할 때는 "너희가 너희 죽음을 놓쳤구나" 라고 하시면서, 그렇게 하나님이 모세를 대변해서 나옵니다. 민수기 16장에서 하나님께서 고라 자손을 어떻게 작살을 내시는고 하니, 17절에 보면 "너희는 각기 향로를 잡고 그 위에 향을 두고 각 사람이 그 향로를 여호와 앞으로 가져오라. 향로는 모두 이백 오십이라. 너와 아론도 각각 향로를 가지고 올지니라" 라고 하는 겁니다.
(민 16:15) 모세가 심히 노하여 여호와께 여짜오되 주는 그들의 예물을 돌아보지 마옵소서 나는 그들의 한 나귀도 취하지 아니하였고 그들의 한 사람도 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고
(민 16:16) 이에 고라에게 이르되 너와 너의 온 무리는 아론과 함께 내일 여호와 앞으로 나아오되
(민 16:17) 너희는 각기 향로를 잡고 그 위에 향을 두고 각 사람이 그 향로를 여호와 앞으로 가져오라 향로는 모두 이백오십 이라 너와 아론도 각각 향로를 가지고 올지니라
(민 16:18) 그들이 각기 향로를 취하여 불을 담고 향을 그 위에 두고 모세와 아론으로 더불어 회막문에 서니라
이 향로의 향에서는 죽음의 증거물이 피어나는데, 성소는 동쪽에는 문이 있어요. 에덴동산을 향하여, 그렇게 동쪽으로 문이 나있다는 겁니다. 그 안쪽으로 들어가면 제단이 있는데, 여기에서 나오는 불은 제물을 다 태우는 불이라는 겁니다. 그냥 성냥불이 아니고 말이죠.
몸과 마음을 다 태워라 !!
다시 반복을 하면, 제물을 모두 태우는 제사는 무슨 제사라고 했습니까? 그것이 번제인데, 이 번제는 무엇을 염두에 둔 겁니까? "여호와를 섬기되, 몸과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섬기지 아니하면 죄가 된다" 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그 율법을 위반했을 때 번제를 드려서 모두 다 태우는 것이 정답인데, 그러한 정답에 미치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 번제를 정답이라고 유도하기 위해서 만든 조항이 "몸과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섬겨라" 라는 것인데, 그래서 번제가 정답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자기 몸 전체를 모두 드렸는데, 조금 전에 이야기한 5대 제사를, 즉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그것을 주님께서는 자기 몸을 드려서 완성을 했다는 말이죠.
그것이 로마서에 나오는데,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우리 인간이 지킬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1로 여기는데, 이렇게 되면 상대를 0으로 보지 않고, 인간은 자기가 보는 식으로 보기 때문에, 여기에서 뭔가 율법이 등장하게 되면,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보아서, 그것을 역시 1로 본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나옵니까? "1과 1의 관계에서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1이 아니라 0이 되면, 그 0이 얼룩을 남기게 되겠죠. 그렇게 되면 1이 그만 깨어지는데, 그렇게 깨어지면서 죄인이 된다는 겁니다. 그 1이 깨어지면서 말이죠.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
그러니 율법을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죄인 되게 하고, 저주받게 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겁니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을 수 없는데, '율법 외에 한 의'로 구원을 받지요. 이것이 로마서 3장의 이야기인데, 예수님이 화목제물로 드려져서 의롭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왜 다른 제사가 아닌 화목제인고 하니, 화목제는 다른 모든 제사를 순서대로 다 지내고 제일 마지막에 드리는 것이기에, 이 화목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태피스트리, 즉 모든 것이 끝났다는 말이죠. 죄가 무엇이고, 구원의 방법이 무엇인지, 이런 질문에 답이 나왔기에 종말에 들어간 겁니다.
(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롬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롬 3: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종말은 그야말로 막장 !!
종말은 그야말로 막장인데, 더 나갈 곳이 없어요. 종말에다 선을 잇는 것은 0의 세계가 아닌 1의 세계인데, 그 대표적인 것이 '신천지' 라는 집단이죠. 신천지에서는 아직도 종말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하지만 종말은 남아있는 것이 아닌데, 1의 세계와 0의 세계가 나란히 병행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자체가 1의 세계와 0의 세계가 나란히 병행하고 있지요? 이스마엘이 태어난 이후에 이삭이 태어났는데, 이삭과 이스마엘은 둘 다 우리가 보기에는 1이죠. 그냥 안경으로 보면 다 1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같이 취급하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은 저주를 받고, 이삭은 천국에 간다고 하죠. 왜냐하면, "어디 감히 육에 속한 자가 약속의 자녀를 구박하는가? 내어쫓아라"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주님은, 참으로 이상한 양반 !!
우리가 쓰고 있는 안경으로는 주님의 이러한 잔인한 조치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데, 자기가 직접 만든 인간을 또 자기가 그만 쫓아내어 버리면, 그러면 주님은 도무지 어떤 분이냐는 겁니다. 참으로 이상한 분이 아니냐는 말이죠. 그렇지요?
이것은 에서와 야곱도 마찬가지인데, 리브가가 아기를 낳하는데 하나님께서 쌍둥이를 주셨어요. 그런데 에서는 처음부터 저주를 받게 되어 있고, 야곱은 처음부터 사랑을 받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심지어 그들이 태어나기도 이전에, 야곱은 복을 받고 에서는 저주를 받도록 결정되어 있었다는 것이죠.
물론 야곱은 처음에 몰랐는데, 나중에 하나님을 만나고 자기가 0의 차원에 속한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자기가 이것을 보여주기 위한 제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던 겁니다. 이스라엘은 0의 차원이고, 다른 모든 민족은 1의 차원인데, 그 1과 0이 전쟁을 하니까 미래 전쟁이 되고 완료 전쟁이 되는 겁니다.
1에 속한 사람은 그 1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하면 구원을 받습니까?" 라는 질문을 하는데 말이죠. 그런데 0의 차원은 십자가로 말미암아서 이미 종말 속에서 이미 구원이 되었고, 그렇게 예수님 때문에 구원이 되었다는 것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살뿐이라는 겁니다.
향로를 들고 나오너라 !!
다시 민수기 16장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이 향로를 들고 나오라고 했는데, 들고 나온 향로에 불을 담았어요. 그 불은 성냥으로 불을 붙이는, 그런 종류의 불이 아니고 제단을 다 태우는 불이죠. 즉 심판의 불이라는 겁니다. 제물을 심판하니까 말이죠. 즉 "이 심판의 불로 인해서 1의 세계와 0의 세계가 공존한다는 것을 너희 고라 자손들은 모른다" 라는 겁니다.
그들이 해야할 일은, 1의 세계를 죽이고 0의 세계로 바꾸는 일을 해야되는데, 그 일을 하려면 면적, 폭, 그러한 권력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냥 해안선인데, 그래서 바울은 죽기를 소원했다는 겁니다. 자기 소유가 필요치 않는데, 그런데 소유를 생각하는 순간부터 0이 1이 되면서, 그 1이 폭을 넓히게 된다는 말이죠.
자기 세계를 얼마나 확장하는가?
그러면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의 행동과 사고방식은 무엇인고 하니, "내 세계를 얼마나 확장하는가?" 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그것을 얻는 것을 곧 '복' 이라고 하는 겁니다. 자기만의 세계가 넓어지는 것, 물론 저도 똥배가 확장되어서 문제인데(ㅋㅋ), 운동해서 뱃살을 빼야하는데 말이죠. 그렇게 자기만의 세계가 확장되면, 그것을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온갖 짓을 다한다는 겁니다.
거룩과 비거룩이 어떻게 다른가?
교회는 하나의 막이고 해안선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니 "거룩과 비거룩이 어떻게 다른가?" 라는 것을 보여주는 기능만 하면 되는데, 그런데 교회 자체에 돈이 모이고 권력이 형성되면, 그 동네에서 유지가 된다는 겁니다. 시골 운동회에 가보면 천막 앞자리에 교장, 경찰서장, 면장, 그리고 큰 교회의 목사가 앉는데, 그렇게 권력은 한 편이라는 겁니다. 경찰서장은 왜 앉아있는지 모르겠는데 말이죠(ㅋㅋ).
레위 지파는, 0을 보여주는 자들이기에 !!
그러니 레위 지파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들은 1과 1의 다수성이 만나는 것이 아니고, 죽음의 0을 받들고 보여주는 자들이기에 말이죠. 그들의 죽음은 개인의 목숨이 끊어지는, 그런 개인적인 죽음이 아니고, 자연을 가동시키는 원천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죽음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연현상을 위반하는 일이 벌어지죠. 지팡이를 가져왔을 때, 다른 지팡이는 그냥 지팡이인데 아론의 지팡이에는 싹이 났다는 말이죠.
(민 17: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 안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그러니 우리가 바라보는 자연세계는, 물리학자나 생물학자가 말하는 세계가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와 관련된 자연세계라는 겁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골로새서 1장 16절의 말씀이, 그게 민수기에 이미 실시가 되고 있다는 겁니다.
(골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여기 16장 31절에 보면 "이 모든 말을 마치는 동시에 그들의 밑의 땅이 갈라지니라" 라고 하는데, 그야말로 땅이 그 입을 벌려서 고라 자손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들을 다 삼켜버렸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완전히 생매장을 해버렸다는 말이죠.
(민 16:31) 이 모든 말을 마치는 동시에 그들의 밑의 땅이 갈라지니라
(민 16:32)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속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매
(민 16:33)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채로 음부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니라
조폭도 이런 조폭이 없는데, "돈을 갚지 않으면 10년째 따라다닐 거야" 라고 나오는 겁니다. 처음에는 조폭 세계의 중간급 간부가 돈을 받기 위해서 빚진 아줌마 가계를 찾아왔는데, 그런데 나중에는 서로 정이 들어서 하나의 막이 되고 말았다는 겁니다. 이제는 누가 아줌마를 괴롭히면 그 조폭이 나서서 막아준다는 말이죠(ㅋㅋ).
진짜 기적은, 죄 용서함을 받는 것 !!
이렇게 땅이 갈라진다는 것은, 우리의 죄 용서와도 관련이 있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바다가 갈라지고 요단강이 멈추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우리의 죄가 용서함을 받는 것이 기적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왜 이러한 죄 용서는 기적으로 보지 않고, 병이 낫고 큰돈을 벌고 하는, 그런 것만을 기적으로 보느냐는 말이죠.
1이 0이 되는 것이 그야말로 기적 중의 기적인데, 그런데 왜 1이 커지는 것을 자꾸만 기적이라고 우기느냐는 겁니다. 오늘날의 기독교가 말이죠. 왜 교인 수가 늘어나고 헌금 액수가 많아지는 것을 두고 기적으로 보느냐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목사님, 혹시 복음을 잘못 전하신 게 아닙니까?
십자가 마을 수련회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도 큰 시험인데, 우리교회의 이 집사님이 하신 유명한 말씀이 있어요. 우리교회에 새 신자가 들어오니까, 저에게 하는 이야기가 "목사님, 혹시 복음을 잘못 전하신 게 아닙니까?" 라고 하시는데, "이러다가 우리 코너 끝나는 것이 아닙니까?" 라는 식으로 말이죠(ㅋㅋ).
어떻게 있을 수 없는 일이 있느냐는 것이죠. 바다가 갈라지는 일은 있더라도, 복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는 것이 당연한데,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있느냐는 말이죠. 왜 그렇습니까? 종말에는 주님의 일이 급하게 진행되는데, 그래서 주께서 빨리빨리 1의 차원에서 0의 차원으로 만드시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고라 자손이 죽고 난 뒤에 이런 말씀이 41절에 나오는데, 민수기에서 요절 구절을 하나 뽑으라고 하면, 저는 16장 41절을 추천하고 싶어요.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가로되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 라고 하면서,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치려고 한다는 겁니다.
(민 16:41)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하여 가로되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 하고
(민 16:42) 회중이 모여 모세와 아론을 칠 때에 회막을 바라본즉 구름이 회막을 덮었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더라
죽어야만 살 수 있는데, 그런데 그것을 백성들이 몰라요. "살아있는 우리를 어떻게 괜찮은 사람으로 바꾸는가?" 라는 것은 주님의 약속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 그냥 죽으면 안 되고, 주님의 약속에 준해서 죽는 죽음이 축복인데, 즉 날마다 반복해서 죽이는 게 종말의 그림, 즉 태피스트리라는 말이죠.
하나님, 제발 참으세요 !!
그런데 백성들은 왜 죽이느냐고 달려드는데, 왜 자기들의 숫자를 줄이느냐는 겁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0의 차원으로 직접 등장하셔서 뭐라고 하십니까? 살려주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소매를 걷어붙이면서 다 죽이겠다고 하신다는 말이죠. 그때 오히려 모세와 아론이 말리는데, "하나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백성들이 다 죽으면 이방인들이 무능한 하나님이라고 놀립니다. 제발 참으세요"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렇게 해서 도대체 몇 명이나 죽었는고 하니까, 땅이 갈라져서 고라 자손이 죽은 것 외에도, 49절에 보면 염병으로 14,700명이나 죽었다고 하는 겁니다. 작년에 세월호 참사로 죽은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말이죠.
(민 16:47) 아론이 모세의 명을 좇아 향로를 가지고 회중에게로 달려간즉 백성 중에 염병이 시작되었는지라 이에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민 16:48)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치니라
(민 16:49) 고라의 일로 죽은 자 외에 염병에 죽은 자가 일만 사천칠백 명이었더라
그리고 여기 38절에 보면, "그들이 향로를 여호와 앞에 드렸으므로 그 향로가 거룩하게 되었나니, 그 향로를 쳐서 제단을 싸는 편철을 만들라" 라고 했다는 겁니다. 편철은 철판이라고 여기시면 되는데, 즉 향로를 두드려서 펴서 철판으로 만들어서, 그것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는 그 제단을 덮도록 하라고 하신다는 말이죠.
(민 16:38) 사람들은 범죄하여 그 생명을 스스로 해하였거니와 그들이 향로를 여호와 앞에 드렸으므로 그 향기가 거룩하게 되었나니 그 향로를 쳐서 제단을 싸는 편철을 만들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표가 되리라 하신지라
이 편철이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아느냐?
그러니 고라 자손이 범죄한 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죽이심으로서 끝내버리는 게 아니고, 그들이 직접 들었던 그 향로를 그대로 가져와서, 그 다음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필요한 편철로 그만 만들어 버린다는 겁니다. 다른 것을 가지고 만들면 되는데, 굳이 그 향로를 가지고 만들어버린다는 말이죠.
이것이 무슨 의미인고 하면, 1에서 0의 차원으로 가면서 이 지상에 죄의 흔적을 남김으로서, 양이나 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장차 직접 이 만들어진 죄를 겨냥해서 뛰어들기 위해서, 그래서 자기 자리를 이 땅에 만드시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죄를 지은 것을 가지고 다닌다는 말이죠.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원망의 증거물인 만나, 언약이 깨어진 돌판, 이것이 재료로서 간직되어야, 그래야 확실하게 "인간은 주님의 속죄가 아니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말이죠. 그러니 그야말로 하나님의 멋진 아이디어인데, "죄를 지어라. 그리고 버리지 말자" 라는 것인데, 이것을 모두 다 거두신다는 말이죠.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백성들 !!
레위 족속은 나중에 사무엘이 등장할 때, 그 당시의 엘리 제사장으로 끝이 나는 겁니다. 그리고 레위 족속이 왜 계속해서 유지될 수 없었는고 하면, 당시 백성들이 십일조를 제대로 내지 않았어요. 민수기 18장에 보면 십일조에 관한 것이 나오는데 말이죠. 이렇게 십일조를 내라는 것은 있지만, 제대로 냈다는 것은 없다는 겁니다.
(민 18:21)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민 18:22) 이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말 것이라 죄를 당하여 죽을까 하노라
(민 18:23) 오직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의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물론 사기를 당하고 나서, "혹시 십일조를 내면 원상회복이 될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으로, 그야말로 돈 놓고 돈 먹는 식으로 낼 수는 있을 있겠지만, "나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닙니다" 라고 하는 마음가짐으로 낸다는 것은 드물었다는 말이죠.
아무튼 백성들이 십일조를 내지 않으니까, 레위 자손은 하나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어요. "하나님, 저 인간들이 십일조를 내지 않습니다" 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들은 분배받은 땅도 없고, 재산도 없다는 겁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고 십일조를 내야만 레위인들이 생존할 수가 있는데, 그런데 백성들이 여호와를 믿지 않는다는 말이죠.
왜 그들이 믿지 않는고 하니,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있는데 왜 하나님을 의지하느냐는 겁니다. 어디 그들이 바보입니까? 공부가 제일 쉽다고 하는 학생에게 과외 선생님을 붙일 필요가 있습니까? 자기가 과외 선생님보다 더 공부를 잘 하는데 말이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자기 힘으로도 잘 살 수 있는데, 굳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찾겠어요? 자기들의 힘으로 1이 1값을 하는데, 왜 굳이 하나님을 찾느냐는 겁니다. "저는 욕심이 너무 많아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라고 하는 십자가 마을의 분위기와 비슷한데(ㅋㅋ), 아쉬워야 기도가 나오는데 말이죠.
걱정과 근심을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하는데 무슨 기도가 나오겠느냐는 겁니다. 범사에 감사가 넘치니 말이죠. 사사기의 백성들이 그러했는데, 자기들이 아는 교리를 써먹다가 아무리 감사를 해도 감사가 되지 않는 상황이 닥쳤을 때는, "주여, 살려주세요" 라고 하면서 주님을 찾았다는 겁니다.
레위 지파에서 유다 지파로 !!
그것은 그렇고, 유다 지파에서 다윗이 왕이 되면서 레위 지파의 모든 것이 유다 지파로 넘어가는데, 원래 목자가 요셉에게서 난다고 창세기 49장에 나와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진 이후에 요셉 지파의 임무가 유다 지파로 인계가 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에스겔서 37장에 보면 유다 지파에서 목자가 나온다고 하는 겁니다.
(창 49:24)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겔 37:24) 내 조상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에게 다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행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
빨리 근원적인 죄에 접근하라 !!
그러니 뒤에 있는 지파가 앞에 있는 지파의 모든 역할을 혼자서 다 담당한다는 말이죠. 그렇게 담당하게 되면 그들이 구원을 해주는 겁니까? 그것은 아닌데, 오히려 죄를 짓죠. 유다 지파에서 나온 뿌리가 유대교가 되고, 그 유대교가 메시야를 죽이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일을 맡겼다는 것은, 그것은 빨리 근원적인 죄에 접근하라고 맡겼다는 말이죠.
그래서 "1에서 너부터 0이 되어야 한다" 라는 겁니다. 사도바울의 경우에도, "내가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사도가 되게 하셨다는 말이죠. 사도가 되기 이전에는 "나보다 더 뛰어난 바리새인은 없다" 라고 하면서 자랑스러워했는데, 거기에다가 하나님께 더 충성한답시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잡아죽였다는 겁니다. 사울 때 그러했다는 말이죠.
주님을 만난 이후에, 1이 0이 되었습니다 !!
그랬던 사울이 사도가 된 이후로는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고 하는 놀라운 고백을 하는데, 즉 "내가 1인줄 알았는데 주님을 만난 이후에는 0이 되었습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1에서 0이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십자가에 있었는데, 사도바울은 그 십자가를 증거하면서 "여러분들도 나처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라고 증거했다는 겁니다. 즉 "1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라고 말이죠.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향로로 편철을 만들게 해서, "너희들이 옛날에 이러이러한 죄를 지었단다. 그런데 아직도 이스라엘이 유지되잖아" 라고 하시는데, 그러니 그 죄마저도 하나님이 용서하는 것이 0의 차원이란 말이죠. "원망해라. 하지만 그 원망을 지울 생각은 하지 마라" 라는 것이죠.
죄의 극단이 이스라엘 왕 !!
이것이 다윗에게 맞추어져서, 다윗이 밧세바와 간통하고 난 뒤에 그녀의 남편을 미필적 고의로 죽여서 완전범죄를 꿈꾸었죠. 치밀하게 날짜까지 계산해서 말이죠. 그 이후에 밧세바를 자기 본 부인으로 삼은 겁니다. 그런데 다윗은 여기서 무엇을 깨달았는고 하면, "내가 이 여자를 만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1의 차원에서 0의 차원으로 바꾸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짜놓은 상황이다" 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자랑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밧세바와 간음을 했었는데, 이 일이 아니었으면 내 안경에 있는 얼룩을 보지 못할 뻔했습니다. 이제 나는 살았어요" 라고 하면서,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증거할 때, 그게 바로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말이죠. 즉 죄의 극단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은, 최고의 죄를 보여주심으로서 !!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왕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이죠. 예수님은 최고의 죄를 보여주는데,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음으로 말이죠. 그러니 십자가는 "여러분, 다 저주를 받아요" 라는 뜻이라는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 그것을 듣고 "이것을 왜 내가 몰랐을까?" 라고 나오면, 그가 바로 구원을 받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그 왕을 섬기니까 말이죠.
그렇게 자기에게 저주를 가르치는 분을 자기의 임금으로 섬기고, 그분에게 복종을 함으로서, "당신이 아니면 나는 내가 의인인줄 착각할 뻔했습니다" 라고 나올 때, 그것이 교회이고,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것이 새로운 이스라엘이 된다는 겁니다. 물론 그 안에는 은혜만 나타나고 말이죠.
다윗이 그렇게 함으로서 유다 지파가 그만 날아가 버리는데, 다윗은 죄인이니까 말이죠. 그런데 유다 지파는 그림자였고, 진짜 다윗의 자손은 0의 차원이라는 겁니다. 그 유다, 즉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인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다윗의 전철을 밟음으로 말미암아서, 죄인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죠.
내가, 똥차를 새 차로 바꿔주었다 !!
그러면 어떻게 구원을 받는고 하니, 그 메카니즘이 무엇이냐는 겁니다. 예수님이 죽는 것은 자기 택한 백성을 위해서 죽는 것인데, 그러니 무엇을 통과해야 합니까? 결국은 하나님이 스스로 죽으시고 스스로 살아남으로 말미암아서, 용서가 아니고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어 버렸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수리를 하는 것이 아니고, 아예 새 차로 바꾸는 겁니다. 고장이 나면 고치고 해야하는데, 그게 아니고 새 차로 바꾸었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헌 차는 버려야 됩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게 중요한데, 즉 하나님께서 "이런 똥차를 내가 새 차로 바꿔주었다" 라고 알려주시면서, 죄인이 된 우리를, 그 모습 그대로 천국으로 데려고 가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의인이 되었다" 라는 말은, "예수가 없었으면 나는 영원히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라는 것이고, 그렇게 되어서, 자기가 구원을 받은 것이 목적이 아니라, "모든 것이 주님의 덕분입니다" 라고 해서, 자기가 받은 면류관을 어린양의 보좌 앞에다가 반납을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 4장에 나오는데, 이게 팩트이고 현실이라는 말이죠.
(계 4: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계 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그러니 주님은 우리를 보고 죽으라고 하셨는데, 즉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냥 자기가 알아서 죽으면 안 되고, 예수님에 의해서 죽어줘야 된다는 말이죠. 그렇게 죽는 방법은, 그것은 바로 자기를 죄인이 되게 만드는 상황을 두고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여러분도 풍부한 고난에 처하시기를 바랍니다 !!
그것을 '고난' 이라고 하는데, 고난에는 두 종류가 있어요. 사도바울이 이야기했듯이, 풍부한 고난이 있다는 겁니다. 갑자기 150억의 돈을 유산으로 받았다든지, 혹은 길에 떨어진 로또복권을 휴지를 줍는 기분으로 주워서 버리기도 귀찮고 해서 그냥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데 1등에 당첨되어서 60억이 생긴다든지 말이죠(ㅋㅋ).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아니, 갑자기 웬 복?" 이라고 하는데, 그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입을 치는 겁니다. "주여, 시험에 빠졌나이다. 저의 죄를 알려주기 위해서 로또복권에 당첨되게 하셨군요. 제가 돈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성경에 돈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을 남의 이야기로만 여겼는데, 이게 바로 나를 향해서 하신 말씀이군요" 라고 깨닫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공부에는 관심도 없고 빌빌거리던 자식놈이 갑자기 정신을 차려서 전교에서 1등을 한다든지 말이죠. 바로 그렇게 풍부에 처할 줄 아는 상황, 여러분들에도 그런 고난이 닥쳐서 마구 받으시기를 바랍니다(ㅋㅋ). 저의 처조카가 실제로 그랬는데 말이죠.
그 아이가 예원 중학교를 다녔는데, 제 딸의 결혼식 때에 축가도 불렀는데 말이죠. 그래도 평소에는 노래를 좀 하는데 남들 앞에만 서면 떨어서 제대로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포기를 했는데, 입학시험을 치는 당일에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런지 몰라도, 풍부에 처하는 상황이 왔다는 겁니다. 그만 노래를 너무 잘 불러서 명문인 서울예고에 합격을 했다는 말이죠.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
그 다음은 환난과 핍박과 위험과 적신과 빈곤에 처하는 고난이 있는데, 그런데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4장에서 말하기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라고 했다는 겁니다. 새로운 교인이 좀 왔다고 해서, 어장관리를 한다고 하면서 심방을 가고 난리를 치는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복음만 외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복음이 좋고, 그 복음이 너무나 고마우니 말이죠.
그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갑자기 의인이 된 것 같고, 이미 아는 것을 이야기하게 되면, 자기는 알기 때문에 갑질을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서, 이것은 그야말로 주님이 하신 것이지, 자기에게는 전혀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즉 "나는 죽어도 좋습니다" 라는 것을 일깨워준다는 겁니다. 모든 상황이 말이죠.
(빌 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 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야기를 하다가보니 그만 시간이 초과되었는데, 아무튼 민수기 18장의 이야기는 무엇인고 하니, 백성들이 십일조를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풍부하게 잘 사니까 말이죠. 1의 차원에서 여러분이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 마을 사람들이 다 풍부하고 자녀들이 다 성공하기 바랍니다. 그러나 0의 차원에서는, 그런 가운데서도 주께서 불쌍히 여겨주시길 소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약속의 땅,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하는 땅, 그런데 백성들은 오해해서 그냥 있는 이 몸 그대로 들어가면 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제사를 통해서 죄를 씻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그 천국, 그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15,2,27 오후 8시에 재정리 - 녹취 '구'
목사님, 민수기 시즌2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역강의시간이라도 틈을 내서 좀 해주세요.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은 마지막에 몰려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첨부파일 : [이근호] 15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불편한여정(민수기)(1,11~13)(1~9강)(재정리).zip (613.8K), Down: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