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의존교회150109a,b (천사)―이 근호 목사
서울 의존교회150109a,b (천사)―이 근호 목사
이름 : 김창길(IP:180.150.194.146)
서울 의존교회150109a (천사)―이 근호 목사
시작하겠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21절부터 하겠습니다. 거기 보면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라고 되어 있어요. 여기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에 대해서 명하노니 이렇게 하게 되면 우리가 상당히 익히 아는 상황이거든요 그런데 거기다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해서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니고 천사가 개입하죠.
천사가 개입한다는 말은 천사에 대해서, 천사의 개입에 대해서 우리가 몰라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천사, 그거 뭐 필요해? 이렇게 해서는 우리가 주의 일을 온전히 우리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천사가 들어간 일과 천사가 빠진 일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고 있어야 됩니다. 천사가 빠져 버리면 우리는 주의 일을 하면서 누구의 일을 한 샘이 되느냐 하면 내 일을 한 샘이 돼요. 사람이 자기 일을 하게 되면 감정의 변화가 많아요.
하기 싫으면 때려 쳐 버리고 하기 좋으면 신나게 하다가 아이고 몸이 피곤하다 싶으면 아이고 나 안 할란다! 이래도 주께서 아시겠지! 이렇게 되는 거예요. 뭐 주님도 이해하시겠지! 주님이 우리끼리만 있으면 주님도 이해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우리가 논다고 해서 천사도 같이 놀겠어요? 안 놀겠어요? 천사가 안 놀지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우리가 논다고 해서 마귀도 나도 좀 쉴래! 이럽니까? 그렇지 않죠. 천사의 세계는 항상 마귀와 엮여져있어요.
마귀의 활동이 있다는 말은 달리 말해서 악한 타락한 천사의 활동이 있다는 말은 곧 선한 천사의 활동도 같이 활발하다는 뜻이 됩니다. 자, 그렇다면 제가 주의 일을 천사가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을 하게 되면 듣는 사람이 뭐 천사가 일하는데 우리가 할 게 뭐 있나? 이렇게 나오죠. 우리가 그런 댓구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천사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겁니다. 모르는게 너무 많아요. 성경에서 천사가 안 나오고 또 천사가 하늘에서 그냥 지켜 보기만하면 우리가 무시해도 괜찮을 겁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보면 천사가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을 합니다.
천사가 활동을 한다? 그러면 우리가 구태여 나설 필요가 없지 않느냐? 거기에 대해서 답변이 있어야 되겠죠. 바울과 실라, 베드로하고 요한이 옥에 갇혔을 때에 누가 도와줍니까? 성문, 옥문이 열렸습니다. 천사가 와서 도와주죠. 여러분, 그 대목을 보면서 이런 생각 안 들던가요? 천사가 그렇게 옥문까지 열 그러한 능력이 된다면 애초부터 안 잡혀 가도록 그렇게 조치를 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는 그런 생각이 들지요. 빼 내어줄 능력이 있다는 말은 곧 안 잡힐 수 있는 능력도 있는 것인데 왜 잡히게 하셔서 사람의 간담을 쓰담게 하느냐? 사람의 간담을 쓰담게 하고 천사가 와서 빼내 주느냐? 그 이유는 우리 성도로 하여금 늘 절망적인 상황에 절망을 느끼게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절망이 없을 때 하나님을 믿겠습니까? 안 믿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상투적으로 그렇게 정기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되지만 사사기 같은 경우를 보세요. 사사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약속의 땅에서 편안히 있을 때에 그들이 하나님을 찾았습니까? 택도 없는 소리죠. 그들이 언제 하나님을 찾았습니까? 자기가 할 수 있는 역량을 다 동원해도 그 사태가 호전되지 않을 때 그 때 하나님을 찾지요.
그러면 여러분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이 그들을 도와줬습니까? 아니면 그들이 하나님의 일에 협조한 샘이 되는 겁니까? 질문이 어려운 질문인데 그들이 기대하는 대로 하나님이 도와준 거예요? 아니면 하나님께서 그들이 기대하지 않은 다른 상황을 새롭게 조성하신 겁니까? 사사기에서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냥 도와주기만 한 겁니까? 상황자체를 바꾸어 놓은 겁니까? 상황을 바꾸어 놓은 거죠. 그것을 놓치면 안돼요. 그게 중요한 문제이거든요. 자, 우리가 생각할 때에 어렵다! 어려울 때 매이면 안 되니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자! 왜? 하나님은 기도 하는 자에게 응답하시니까 기도했다, 어 응답 왔네! 그러면 우리는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하나님, 다음에 또 어려울 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이렇게 되지요.
그렇게 되면 그 인간은 궁지에 몰린 그 상황이 그 사람을 새롭게 달라지게 한 요소가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똑같아요. 전에 어려울 때 그 인간이나 새롭게 된 그 인간이나 새롭게 된 그 인간이나 똑같은 인간이에요. 사람 자체가 달라지지 않았죠. 하나님의 일은 그런 건 없어요. 어려움이 왔잖아요? 그러면 사사기에 나온 내용대로 합시다. 자, 그들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려움이 왔습니다. 자, 여러분 아시는 거예요. 그 어려움이 적들 때문에 생긴 겁니까? 본인들 때문에 생긴 겁니까? 본인들 때문에 생겼죠.
그렇다면 그 어려움이 해소되고 난 뒤에 무엇을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까? 야, 내가 그 어려움이 안 왔으면 나한테 이런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을 뻔 했잖아! 이게 변화에요. 이런 것이 있어야 돼요. 암에 걸렸다, 암의 걸려서 온갖 것을 해도 낫지 않는다, 그래서 기도 했다, 기도하니까 암에서 나았다, 자, 어떤 변화가 일어나겠습니까? 인간이 안 되려면 지옥가려면 아, 하나님께서는 능력이 많아서 암 고쳐주는 분이구나! 라고 이해할 거예요. 그런데 제대로 천국 가는 사람은 내가 암을 위해서 기도 할 때에 그 사고방식 자체가 성도답지 않는 사고방식인 것을 암에 걸리게 해서 깨우치게 하셨구나! 하고 라는 쪽으로 변화가 일어납니다.
암에 걸렸는데 병을 낫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 하는 것이 그 사고방식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죠. 잘못됐다는 거죠. 자, 뭐가 잘못 됐습니까? 암에 걸려서 낫게 해 달라고 기도 하는데 그게 뭐가 잘못된 거예요? 자, 바로 지금부터 제가 이야기하는 거예요. 천사는 우리말을 듣지 않습니다. 천사는 구원 받는 성도의 말을 듣지 않아요. 천사의 특징은 사람의 말을 듣는다, 안 듣다? 안 듣습니다.
천사는 누구의 말을 듣느냐하면 중보자의 말을 들어요. 아이 천사는 하나님 말 듣잖아요? 아니에요. 중보자의 말을 듣습니다. 그게 어디에 나옵니까? 히브리서 1장에 나와요.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누구의 말을 듣는다? 하나님의 말을 들었어요. 그러나 신약성경에 와서는 마지막 시대에 중보자가 옴으로서 천사는 누구의 말을 듣느냐 하면 천사는 중보자의 말을 듣습니다.
그것을 히브리서 1장에서 뭐라 했느냐 하면 천사는 아들을 섬긴다고 되어 있어요. 자, 여러분에게 물어봅시다. 여러분들이 누구를 섬긴다고 할 때에 예를 들면 아까 칼국수를 먹었는데 거기도 심방한 모양이에요. 심방해서 굴 국수 해 줄까 해서 그것을 먹고 체했다고 아주머니가 이야기를 하는데 자, 심방을 올 때 흔히 교회에서 목사님을 섬기자 하잖아요. 목사님을 섬기는데 그 목사님이 잡채 알레르기가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 섬기려고 하는 집사의 주 특기가 잡채라고 합시다. 식당에서 아주머니 둘이 이야기를 하는데 몇 명이 오겠나? 두 명이 오겠지! 제가 속으로 심방을 오는데 뭐 2명이 와 더 오지 이랬는데
자, 잡채가 주 특기라서 맛있는 잡채를 목사님과 심방 온 사람들에게 줬다고 합시다. 그러면 백발백중 목사님은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겠죠. 결국은 그 집사님은 알레르기를 선물로 준 샘이 되죠. 목사님이 고생하라고, 아마 목사가 미국 같으면 내손에 혼나 보라고 일부로 해서 섬길 겁니다. 예를 들어 ‘사모님, 목사님이 어디에 알레르기가 있습니까?’ ‘우리 목사님은 땅콩만 먹으면 온 몸이 부풀어져요.’ ‘그래요?’ 그 다음에 심방할 때 땅콩 이만큼 준비해요. 그것도 봉지 채 준비해요. 까서 주는 게 아니고요. 그래서 목사님이 만날 화장실로 향하도록 한 것이 그게 섬기는 겁니까? 아니죠. 약 올리는 거죠. 이게 뭡니까?
집사님이 잡채 잘하는 자기 솜씨 발휘하는 거잖아요. 하나님을 섬길 때 어떻게 섬겨야 돼요? 누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돼요?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해야 돼요? 주님이 좋아하는 것을 해야 돼요? 너무 쉬운 문제인데 주님이 좋아하는 거죠. 왜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 안 됩니까? 그게 자기의가 되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가 중보자를 섬긴다는 것이 중보자가 이 세상에 멀쩡하게 살다 가면 우리가 멀쩡하게 주님을 대하면 돼요. 그런데 중보자가 이 땅에 와서 멀쩡하게 사시는 분이 아니고 힘들게 사셨잖아요.
사적인 죄 때문이 아닙니다. 이 집단, 이 세대,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 전체가 예수님에게 죽여라! 죽여라! 신의를 받았던 사람이에요. 그런 예수를 오늘날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이것은 신기한 일인지 아니면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지 둘 중에 하나에요. 죽여라! 죽여라! 하는 분을 우리가 가로막아 나서서 아니야, 저 분은 우리의 구세주야! 하고 가로 막고 나설 때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를 섬길 때는 무슨 요소를 언급을 해야 되느냐 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핍박할 때는 분명히 예수님과 그들이 안 맞는 구석이 있어 핍박할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섬긴다 할 때는 우리가 맞아는 구석이 있어 섬기잖아요. 그러면 결국 그 말은 안 믿는 사람과 우리 사이에 천성적으로 다른 게 있다는 겁니다. 주여! 이런 것이 다릅니다. 하는 것을 내 세우면 되겠죠. 그것을 가지고 내세우면 성립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 당시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했느냐 하면 헌금할 때 하나님이여! 받으소서!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