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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부자의 간절한 전도묻고답하기누가복음

부자의 간절한 전도가치있는(가능성 있는) 자의 지옥과 무가치한(가능성 없는) 자의 천국지난 시간에 눅15장의 세가지 비유 곧 잃어버린 양 한 마리 비유,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 비유, 잃어버린 둘째 아들 비유를 통해서 99마리의 양, 9 드라크마, 함께 있던 첫째아들은 사람들이 믿음을 두는 것인 곧 가치있는 것이고, 반대로 한 마리양, 한 드라크마, 탕자 둘째는 무가치한 것이기에 믿음을 둘 수 없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 왜? 없기에, 무가치하기에, 그 속에는 믿음도, 소망도, 사랑도, 기쁨도, 찬양도, 생명도 없는 겁니다.인간의 믿음은 항상 가치있는 것에 믿음을 겁니다. 가치 없는 것에 믿음을 두는 인간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연히 가치가 없기에 거기에는 곧 죽음이요, 거기에는 곧 물없는 광야 사막이요, 거기에는 소망도 기쁨도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겨자씨 만한 가치도 가능성도 없기 때문입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곧 천국, 생명인데, 겨자씨 만한 믿음이 없다면 즉 겨자씨 만한 가치성도 없다면 그것은 없는(무 無) 겁니다.그래서 사람의 믿음은 항상 "있음"에서 출발합니다. 있기에 있는 겁니다. 없는 것은 없는 겁니다. 이 틀 안에 갇혀 있기에 그 틀 속에서만 한정되이 살아갑니다. 있는 것만 주물딱 거리며 살고 있고, 없는 것은 주물딱 거릴 수가 없습니다. 보여야 만지작 거리고, 안보이는 것은 만지작 거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에 모든 믿음이 있는 겁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수님은 이 무가치한 것에 자신의 믿음을 심었습니다. 탕자를 맞이하는 아버지의 오바하는 그 기쁨을 어느 누가 이해가 갑니까? 제가 이런 질문 많이 듣습니다. 기독교는 죄용서 했기에 더 이상 죄인이 아닌데 왜 자꾸 죄인이라고 하느냐? 그렇기에 죄인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오해한 것이기에 잘못된 해석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죄책감으로 평생 죄책감들게 만드는 교회라면 위험한 교회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우짭니까? 죄인을 찾는 분이 바로 다름아닌 예수님이거든요.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습니다. 죄책감을 가지는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용서하는, 죄를 고쳐주는, 병을 고쳐주는 의사는 환자만을 치료합니다. 이 말씀은 바로 유대인 속에서 하나님 백성 속에서 외친 말씀입니다. 그래서 정작 누가 듣기 싫은 소리냐? 세리와 창기?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 제일 듣기 싫은 소리가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맏아들이 아버지의 오바하는 그 기쁨과 용서하고 잃어버렸다가 다시 살아난 자식이 돌아왔다고 너무너무 감격해 지나친 환대와 이상스럽게 잔치하는 그 경사난 분위기를 누가 제일 싫어하던가요? 맏아들입니다. 우리 모습입니다. 새생명의 삶, 성화를 추구하는 삶 속에서 제일 짜증나는 것은 모조리 다 배설물로 여기고 다시 원점으로 돌리려 하는 예수님의 믿음(십자가의 첫사랑)이 찾아오는 것이 환상적인 성숙한 믿음, 성화된 믿음, 새생명 삶이 있는 믿음을 추구하는 우리에게는 유치하기 짝이 없고 부끄럽기 한량없는 십자가의 구원받은 강도의 고백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늘 처음상태로 원점으로 날마다 새롭게 출발 시킵니다. 그러니 첫사랑 속에 있는 자는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겁니다. 그저 유치한 사랑에만 푹 빠져 있기에 그저 죄인을 불러준 것만 감사할 뿐입니다.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주에 맏아들이 우리의 모습임을 봤듯이, 그런 이상한 잔치를 벌리는 주님을 이해 못하듯, 오늘 우리가 배울 부자의 전도를 통해서 거지 나사로를 우리가 얼마나 무시하는, 그런 사고방식으로 우리는 꽉 차 있는 것을 알고자 합니다. 그것은 곧 탕자를 용서하며 잔치하는 아버지에 대한 거부감과 같기에 우리는 성경을 볼때에 항상 원수의 입장에서 원수와 똑같은 사고방식으로 예수님을 핍박하고 있다는 것을 공부하고자 합니다.오늘 공부할 내용은 그 유명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입니다. 곧 천국 비유이지요. 제가 사업하시는 분들, 특히 사장님들을 만나보면 늘 이 본문을 놓고 제게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것은 곧 찝찝하다는 겁니다. 늘 까시처럼 따꼼따꼼 찔리게 하는 말씀이기에 늘 이 비유가 걸림돌처럼 작용되어 불안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이것 뿐이겠습니까? 거짓 목사들은 이 본문을 협박 공갈 사기 치기에 딱입니다. 사실 그것은 좀 수준 낮은 놈들이지요 왜냐하면 작은교회 거짓목사들이나 써먹지 대형교회 거짓 목사들은 고수 라서 안 써먹습니다. 오히려 장려하겠죠? 어떻게? 청부론을 외치겠죠. 눅 16:19부터 시작되는 거지 나사로 비유는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야말로 무가치한 이야기입니다. 신앙생활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누가 더 적극적인 삶, 긍정적인 사고방식, 할수 있다 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아이 캔 두 잇, 성화에 이르는 길, 새생명의 삶, 큰 비젼 큰 도전 큰 프론티어 큰 사명, 세계를 품에 안으라, 네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등등이 우리가 그렇게 하고싶어서 오죽하면 교회활동의 프로그램화 해서 해오던 제자 훈련, 큐티 등등 모든 것이 누구에게 해당될까요? 부자입니까? 거지 나사로입니까?거지 나사로처럼 될려고 애쓰고, 용쓰고, 애달아 하고, 소망하고, 40일 새벽기도, 작정 금식, 서원하고, 비젼화 하는 자들은 한 번도 만나 본적 없습니다.오히려 반대죠 부자처럼 되고파서 애쓰고, 용쓰고, 애달아 하고, 소망하고, 100일 새벽기도, 작정 40일 금식 산기도, 맹세하고, 비젼화 하고, 교육시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 모든 교회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더 황당한 이야기 할까요? 눅 16장에 초반부에 있는 불의한 청지기 비유가 하나님 나라 비유로써 기록 되어있습니다. 이 불의한 청지기처럼 되기, 소망하기, 닮아가기를 프로그램화 해서 교육하는 교회 봤나요? 했다가는 큰 일 납니다. 또 십자가에 달린 구원받은 강도처럼 따라하기 갈망하기 이것은 이미 판명 되었죠. 부끄러운 구원이라서 교회에서 추방된지 오래된, 절대 교회교육이 될 수 없는 무가치한 것으로 어떤 교회에서도 교육 시키지 않습니다. 물론 따라한다고 되는게 아닙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한다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픈 것은 교회 교육에서 오히려 무시당하는 입장에 놓여진 성경이야기라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딴 사람 다 안해도 난 할꺼야 라고 하는 자가 꼭 나타나겠죠. 그것 또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기에 흉내낼려고 달려든겁니다. 결국 무가치한 것에는 절대 믿음을 둘 수 없다는 것을 역으로 반전 시킨 주장이겠죠. 그러나 역시 제자리 뛰기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본성은 자기유익의 가치성에 둡니다. 자기 유익이 전제되지 않는 것은 무가치한 겁니다. 어느 것이 내게 더 유리한가에 믿음을 거는 겁니다. 선택도 믿음도 주님 소관이 아닌 내 소관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집착이라는 수렁에 점점 빠져들어가는 겁니다.인간은 한계적입니다. 이해력 밖의 것은 무가치하기에 이해할려고 하지도 않고, 또 이해 되질(막혀버림-안 뚫힘) 않습니다. 내 믿음의 울타리(창고) 밖의 믿음도 아무리 큰 믿음이라도 무가치 합니다. 믿고파도 안 믿겨짐(도마처럼). 어디까지나 내 영역(창고) 안의 믿음이어야 가치가 있습니다. 내 속에서만의 믿음일 뿐입니다.그 믿음으로 일관하는 자가 바로 여기 부자라고 불리우는 자입니다.부자의 믿음은 오늘날 모든 교회의 모범 답안입니다. 반대로 거지의 믿음은 따져볼 필요 없이 거지 믿음이 보이질 않으니 논할 필요 조차 없습니다.문제는 둘 다 죽었습니다. 땅에서의 판단 기준이(여기서 땅에 있는 교회의 판단도 포함됨을 잊지말고요) 부자 거지라는 판명이 하늘에서는 과연 어떻게 결정되었는지?자 어떻게 판결 나던가요? 거지는 천사들이 거지를 받들어 아브라함, 믿음의 원조 아닙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품에 안깁니다. 아니 땅에서는 거지였던 자가 오죽하면 개들도 무시하는 거지 곧 인간이라고 여길 가치도 없는 개들도 동기동창 먹는 무가치하게 여긴 그 거지였던 그가 하늘에서는 쨘 이렇게 변했습니다. 아브라함 품? 곧 믿음의 품에 있다는 거죠. 자비와 긍휼의 품 속에 있는 겁니다. 반대로 부자는 이 땅에서 호화로이 모든 위로를 누리며 살고 있었는데 죽어서 결정되기를 고통의 음부 속에있다는 겁니다. 그 부자는 음부 속에서 늘 목마름을 격고 있어서 밑바닥이 없는 갈증에 울부짖고 있습니다.아부지 아브라함이여? 제발 당신의 긍휼로 그 손가락 끝에 물 좀 묻혀서 내 혀바닥에 좀 발라주오. 캬 저는 이 장면이 얼마나 처참한지 땅에 있을 때에 개들이 거지의 종기투성이를 햩은 모습이랑 역전 되어 나타납니다.아브라함이 대답하기를 얘 !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라고 너무 매정하게 일방적으로 아브라함은 나사로의 고난을 증거합니다.아브라함 긍휼 받은자 맞나요? 안주면 그만이지 왜 절망으로 집어 넣나요? 더 황당하게 말합니다. 나 가고 싶지만 니랑 나 사이에 큰 구렁이가 있어서 못간단다. 그카이 니도 못 넘어 오는 것 아니가? 생각을 해봐라 못 넘어가지 ! 참 너무 너무 냉정하지요? 아픈데 더 찌르고 이거뭐 놀리는 것도 아니고, 천국 간자가 지옥 간자 인격 무시해도 되는 겁니까? 그런겁니까? 그래도 되는 겁니까? 이래도 되는거야? 그런거야?네 그래도 되는 겁니다. 마음껏 아브라함은 그러고 있습니다.이제 부자는 음부 속에서 포기하느냐? 절대 안그렇습니다. 그의 갈증이 더하면 더했지, 그의 간절함은 더하면 더 했지 채워지는 법이 없습니다. 오죽하면 음부 속이겠습니까? 채워지지 않는 믿음뿐입니다(오 이 표현 딱이네요 채워지지 않는 믿음). 소망을 잃지 않지요. 비젼을 놓을 리가 없습니다. 그 지옥 속에서도 간절히 새벽기도 다닙니다. 아브라함이여 아브라함이여 제발 당신 품에 있는 나사로를 전도사로 파견하셔서 우리 다섯 형제 구원하여 주소서. 이렇게 지옥 속에서 새벽기도 드립니다. 아멘. 이러고 있습니다. 지옥 가도 기도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아직까지도 죽어도 나사로를 이기고픈 겁니다. 절대 질 리가 없습니다. 인간의 믿음도 결국 절대로 지기 싫어하는 자존심에서 나오겠죠. 그래서 갈증으로 목마름으로 꽉 차있습니다. 그 갈증은 아브라함 품에 있는 나사로를 발견하고서는, 나사로를 눈에 포착함으로 더해 갑니다. 어디까지나 부자에게서의 나사로는 때려죽어도 거지입니다. 그래서 자기 가족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음부에 못오도록 해야 합니다. 얼마나 애절하고 간절합니까! 금쪽같은 내 형제들인데.그 기도 눈물 나지 않습니까? 연옥에서 기도하는게 아닙니다. 지옥 속에서 기도합니다. 저는 이 이웃사랑이 음부 속에서도 가능함을 부자를 통해 봅니다. 부자의 이 아프리카 난민을 생각하는 저 마음씨 천국의 마음씨 일까요? 지옥의 마음씨 일까요? 오히려 이웃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저 아브라함은 천국 신자 맞나요? 사랑이 전혀 없잖아요?부자는 여전히 지옥에서도 나사로를 무시합니다. 즉 여전히 자기 만이 가치있는 겁니다. 그 이용 도구로써 나사로를 언급합니다. 지가 뭔데 나사로 보고 오라가라 합니까? 얼마나 자기 주제를 파악 못했으면 말이죠. 나사로를 전도사로 보내소서? 여전히 모르지요. 자기의 가치성을 형제들에게 연장할려고 합니다.(이웃 사랑 실천하는 자들의 노림수가 이런 경우가 다반사입니다)아브라함은 이미 모세와 선지자들이 그 땅에 쫘악 포진해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알아채는 자가 없다는 거지요. 그런데 부자는 본 적 없다는 겁니다. 자기에게 없었으면 없는 겁니다. 그러나 있다고 아브라함은 말합니다. 귀가 있어도 눈이 있어도 듣지를 못하고 알지를 못하고 눈에 보이질 않더라 라는 겁니다.캬 저는 또 부자에게 감동 먹습니다. 절대 포기 안합니다. 얼마나 믿음이 좋은지, 저런 큰 믿음 또 볼 수가 있을 까요? 걱정마세요. 지옥 가면 넘쳐납니다.아브라함 아부지여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죽었다가 살아난 자가 저들에게 나타난다면 그들은 회개하고 돌아 옵니다.저는 여기서 뿅 갔습니다. 지옥 속에 있는 부자도 부활을 믿고 회개를 주장하는 구나 라고요,이거 이거 교회 목사들이 얼마나 써먹던가요? 회개하라, 부활을 믿습니까 여러분~~~귀 따갑도록 외치지 않았습니까? 지옥 속에서 부자도 주장하는 다 아는 이야기인데? 얼마나 희망적이요, 적극적 사고방식이요,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 큰 사랑으로 지금 부자가 이야기 합니다.그러나 반대로 아브라함은 더 매정합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이 포진해 있어도 안듣는데? 죽은자가 다시 살아나 증거한다고 믿겠느냐? 너무 비관적이요 부정적으로 몰아 붙입니다.저는 이 이야기 속에서 믿음을 발견했습니다. 누구 믿음, 부자 믿음. 그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서도 절대로 믿음을 잃지 않는 저 부자의 숭고하고도 아름다운 믿음 캬 대단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늘 들어오던 간증 아닌가요? 그 간증이 지옥 속에서 펼쳐지다니 캬~~성경은 왜 이 이야기를 할까요? 가만히 보니 부자는 우리 모습입니다. 나사로는 우리와 전혀 관련성이 조금도 없을 정도이고 우리와 너무너무 동떨어진 자입니다.우리의 믿음(데모)을 행하는(기도, 울부짖음, 산기도, 찬양, 일천번제, 회개, 비젼, 전도 사명, 간증) 모습이 지옥 에서도 아브라함에게 따집니다. 그런데 이미 선이 그어진 이상 회개든 기도든 다 소용없습니다.그 소용없음을 미리 앞당길 수가 없을까요? 그런데 우리 역시 지옥 속에서 부르짖는 부자랑 지금 우리가 교회에서 부르짖음이랑 너무 똑같지 않느냐 라는 겁니다. 망해도 상관 없음을 미리 앞당기기는커녕 죽어서도 절대 망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부자의 모습 아닌가요? 우리가 추구하는 믿음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의 믿음은 인간의 믿음에 포착될 리가 없다는 겁니다. 마치 오늘날 교회가 펼치는 믿음은 지옥 속의 부자의 믿음 모습을 미리 앞당겨 놓은 것 같습니다.회개도 믿지요 부활도 믿지요 울부짖음도 있지요 선지자를 파견함도 믿지요 도대체 안 믿는게 없을 정도로 다 믿는데, 우리는 이상스럽게 아브라함 품에 있는 나사로랑 닮은 구석은 하나도 없고 지옥 간 부자랑 어찌 그리 닮았는지 지옥 속에 부르짖음이 지금 우리가 부르짖는것과 일치 하지 않나요?어쨌든지 우리의 고생(열심-믿음)은 "있는데 더 있는 것으로" 채우기 위한 창고 확장에 있습니다. 우리의 중심사상은 자기 자신의 확장입니다. 부자처럼 심판 받아도 죽어도 자기는 신이다는 겁니다. 난 신이야 신. 오히려 피조물인 나사로는 찍 소리 안하고 그냥 아브라함 품 속에만 있을 뿐입니다.(눅 12:16)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눅 12:17)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눅 12:18)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눅 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눅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눅 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자 그러면 거지 되면 구원 즉 천국이겠네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거지 라는 것에 결국 가치를 둔 거니깐요. 그러면 주님은 또 부자에게 손을 내미시겠죠. 구원이란 인간의 조건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모습을 이런 거지 속에 담고 진행된다는 겁니다. 보석이 어떤 그릇을 사용하던 그 보석은 빛을 발합니다. 그런데 그릇이 지가 뭔데 자꾸 빛을 발할려고 끼어듭니까? 그 빛은 그 빛의 밝음을 부각 시키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무가치하게 취급 받은 것을 사용하신 겁니다. 도구는 도구일 뿐 구원의 조건은 될 수 없습니다. 도구는 도구 일 뿐 따라하지 말자 !거지 나사로 속에 예수님은 자신의 어떤 모습을 담았나요? 무엇을 담은 그릇으로 사용하셨나요? 고난입니다. 예수님의 자신의 고난 받는 모습을 지금 나사로 속에 담은 겁니다. 같은 거지 되면 가능할까요? 아뇨 ! 거지 나사로만 가능합니다. 거지라고 다 같은 거지 아닙니다. 이것은 토기장이의 권한입니다.오죽하면 아브라함 품 속에 있어도, 자신 변호 하나 하지 않아도, 아무 말이 없어도, 저 음부 속에 있는 부자에게 땅에 있을 때처럼 여전히 무시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일방적으로 다 카바하고, 아브라함 혼자 나사로를 품에 안고 있습니다. 어던 누구도 품에 안으려 하지 않는 저 거지 나사로를 말이죠. 오늘날 교회도 외면하고 무시하는 저 거지 나사로를 아브라함 혼자 품에 안고서 저렇게 좋아라고 꼬옥 품 속에 두고서 부자의 댓꾸가 빗빨치는 가운데서도 아브라함은 혼자 다 방패가 되어 나사로를 자기 품 속에 숨겨버립니다. 이 숨어진 거지 나사로를 오늘날 교회는 알 길이 없습니다.(롬 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7)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8)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9)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자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모든 것을 한번 한꺼플 두꺼플 껍질을 벗겨봅시다. 내 믿음의 껍질을 벗겨보니 내가 있나요? 주님이 있나요? 거지 나사로를 벗겨보니 누가 있던가요? 모든 것이 누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나요? 날 천국 보내기를 목적으로 하던가요?사도바울은 이것을 알기에 버림받을까 벌벌 떤다고 햇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자 라고 외칠 때에 바울은 떨고있고, 우리가 작심 3초로 다 망각했을 때에 바울은 확정된 십자가의 사랑을 강조합니다. 결국 뭡니까? 내 믿음으로 예수님을 선택해서 코 끼우고 끌고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에게 코 끼여서 질질 끌려다닌다는 겁니다. 부자는 여전히 외치고 있습니다. 회개도 할껍니다. 전도도 할겁니다. 절대 포기 못하고 계속 지금도 하고있습니다.자 이렇게 볼때에 교회들은 지옥 가고자 몸부림 치고 있고 지옥에서 부르짓는 부자의 메시지가 교회에서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그럼 나사로는 어떻게 천국을? 그냥 옮기운 것 뿐입니다.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부자의 마음 속에? 거지 나사로가 안긴 그 품에? 부자는 오늘도 외칩니다. 나사로가 안긴 그 품에 내 형제자매를 품어 달라고 !!예수님! 부자가 지옥 구석 구석 돌아다니면서 믿음으로 간증 집회를 열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개를 하고 지옥 백성들을 회개 시키고 있습니다. 선지자를 요청합니다. 전도자를 요구합니다. 보내주소서 라고 간절히 요구합니다. 생명수를 갈급해 합니다. 죽은 자도 살리는 부활도 믿고 증거합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르겟습니다. 그저 아브라함 품에 천사들에게 옮기움을 당한 것 뿐입니다. 이것이 부자가 여전히 모르는 믿음입니다. 우리도 부자와 같아서 도통 알 수 없는 믿음입니다. 주님 이 모름 속에서 우리는 마땅히망할수 밖에 없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 믿음뿐입니다.아브라함이 부자의 믿음을 거부하듯이, 우리의 믿음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거부하소서. 아멘.(막 14:36)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 27:46) 『제 구 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막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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