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102강, 103강) ,천국의 모습, 복음의 영향 150115
유튜브(102강, 103강) ,천국의 모습, 복음의 영향 150115
이름 : 이근호(IP:119.18.93.36)
102강
103강
이미아(IP:180.♡.90.76)
15-01-17 20:33
102강-YouTube강의(천국의 모습)150115-이 근호 목사
102번째 강의 제목은 ‘천국의 모습’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천국을 생각할 때는 황홀하고, 멋있고, 찬란하고, 그게 제일 먼저 와닿죠. 우리 지상에서 인간들이 천국을 내다볼 때 그렇게 상상하는데, 정작 예수님께서 소개하시는 천국은 찬란하고, 멋있고 하는 그런 천국이 아닙니다.
그 출발점이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짜임새가 맞아져요. 예수님이 소개할 때는 천국은, 하늘의 것은 뒤에 숨어 있고, 세상 것에 의해서 조립이 되면서, 그 조립된 구조 안에서 원리가 나오고, 그 원리에 부합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그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건 이렇게 보면 겹쳐져 있다, 겹쳐져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천국은 겹쳐져 있지만 그 외적인 모습은 우리 일상생활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천국의 내용입니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품꾼, 포도원, 그리고 집주인, 아침, 이 모든 것은 조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늘 겪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포도원이 있었고 일꾼이 필요했고, 그래서 일꾼을 얻기 위해서 놀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 한 사람씩을 채용을 하는 겁니다. 한 데나리온씩, 한 데나리온이라는 것은 일당이죠. 일당을 계산에서 합의하에, 품꾼들을 약속하고 포도원에 들여보내는데, 아침 열시에 나오고, 열두시에 나오고, 오후 세시, 다섯시, 요새 시간으로 변경하면 그렇게 됩니다. 그렇게 나가서 네 명의 품꾼들을 불러 옵니다.
자, 그러면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포도원 경영에 대한 이야기인지, 천국이야기인지, 상당히 혼동스럽죠. 우리가 천국이야기 하면, 천국은 이렇게 멋있었어. 들어가기만 하면 땡잡았다. 뭐 그런 이야기가 주류가 되어야 우리에게 구미가 땡기면서 “그래 천국 가야지. 꼭 가야지. 지옥가서는 안 돼.” 그런 것이 마음에 와닿는데, 예수님께서 천국이야기 하면서 어디 간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너희들은 그냥 그 자리에 있어.” 그 자리에 있으면서 어떤 원리가 작용하면서, 평소에 하던 대로, 평소에 살던 대로 그렇게 하면서, 거기서 그 일상적인 생활 속에, 보통 우리가 느끼던 것과 다른 취지가 거기에 담기게 되면, 그것이 천국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참 기이하죠. 우리는 멋있으면 우리의 욕망이 욕구가 되면서 천국을 사모하게 되는데, 포도원이야기 해버리면 전혀 우리는 그 포도원 일꾼 되려고 애쓰거나 그걸 사모하지는 않잖아요. 그러니까 평소에 우리가 생각하는 천국은 이게 거짓이다 이 말이죠. 잘못된 것이라는 겁니다. 성경대로 이야기 하는 천국을 생각해야지 우리가 기대하는 멋있다. 죽어서 가면 황홀한 생활 한다. 그런 걸 염두에 둔다면 이거는 말씀 앞에서 우리는 철폐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한꺼번에 네 명을 아침 열시에 채용하는 것이 아니고 열시, 열두시, 세시, 다섯시, 이렇게 나누어서 할 때, 일꾼들 네 명이 포도원을 보는 인상이 다 다르겠죠. “나는 아침 열시부터 왔다. 그러니까, 아침 열시부터 왔으니까 정말 내가 일 제일 많이 했다.” 열두시에 온 사람은 “그래도 중간쯤은 하겠지. 세시에 온 사람은 좀 미안한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한 데나리온 약속했으니까 두 시간 일하고 준다니까 하여튼 기분 좋으네.” 근데, 한 시간 일하고, 제일 마지막에 다섯시에 온 사람 같은 경우에 오히려 미안한 정도를 넘어서서 “이거 뭐지? 한 시간 일하고 하루치 준다는 게 왜 그렇지?” 이렇게 생각할 거예요.
어쨌든 간에, 네 사람 인상이 다 다릅니다. 다 다르고 나중에 일과 끝나고 품삯을 주는데 제일 먼저 온 사람부터 준 것이 아니고, 제일 나중에 온 사람부터 주게 됩니다. 제일 나중에 온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으니까, 아침 열시에 온 사람이 갑자기 기분이 좋습니다. 한 시간 일하고 한 데나리온 받았으니까, 자기는 여섯시간 일하게 되면 육 데나리온을 받는다는 계산, 아니 칠 데니리온을 받는다는 계산이 훌떡 들지요.
그런데 처음 온 사람도 한 데나리온 주고, 두 번째 늦게 온 사람도 하나 주고, 그리고 열두시에 온 사람도 한 데나리온 주고, 그리고 제일 먼저 온 사람도 한 데나리온 줄 때에, 갑자기 여기 모든 포도원에 일했다는 상황은 날라가 버리고 인간들만 달랑 남죠. 기분 나쁜 사람, 기분 좋은 사람, 그리고 어중한 사람, 이런 인간들의 마음만 달랑 남으면서, 그 마음들이 모여서 뭘 이루는가, 천국의 원리를 토해냅니다.
천국의 원리를 보여줍니다. 제가 처음에 이야기 했죠. 천국이라는 것은 여기 있다가 그냥 좋은 나라 들어가면 된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천국은 없고, 천국은 어떤 마음씨, 어떤 염원, 어떤 마음가짐을 가진 자에게만 느껴지는 것이 천국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처음 온 사람들이 불평을 하는 거예요. “왜? 늦게 온 사람과 처음 온 사람과 동일하게 주느냐?” 라고 이야기할 때, 예수님께서는 어느 쪽에 서느냐, 제일 마지막에 오는 사람 편에 섭니다. 서고, 여기 마태복음 20장 16절에 보면, “이와 같이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이렇게 했어요.
그 앞에 보면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렇게 했습니다. 천국이 이루어지려면 예수님 서신 그 자리에 대해서 악하게 보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그리고 그것이 도태되면서, 그것은 탈락되면서, 주님 계신 곳이, 누가 봐도 주님 계신 곳이 어디냐 하면, 지금 제일 마지막에 한 시간밖에 일 안 했지만 하루 종일 일한 품삯을 주는 그 자리입니다. 그 예수님에 대해서 낯설게 보고, 악하게 보고, 비난하게 되고, 이거는 영 틀리다고 욕하게 되는 그 자리, 그 자리가 이 땅에서부터 출발하는 천국입니다.
이래도 천국 가시겠습니까? 천국이라 하는 것은 그냥 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어느 정도 악한 마음을 가지고 천국을 사모하느냐 하는 것을 들통 내는 그런 절차를 경유하면서 천국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신약에 오면 예수님의 천국이야기가 구약에 이미 그 원리가 나와 있습니다. 창세기 25장 23절에 보면, 이삭의 부인 리브가가 아기를 놓게 되는데, 아기를 놓으면서 하나님의 미래에 대한 예언이 그 아기와 함께 주어집니다. 그 예언은 이렇습니다.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기라.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처음부터 섬길 것 같으면 처음부터 큰 자 만들어 놓고 그 다음에 두 번째 사람이 큰 자를 섬기는 것이 정상인데, 주님께서는 섬기는 자를 나중에 배치를 하고, 섬겨야 할 자를 먼저 태어나게 해서, 이 땅에서 큰 자와 섬긴 자의 오해를 유발시키는 상황을 만드십니다. 그 말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는 원리에 따라서 먼저된 자가 나중 된다는 원리를 심어줘야, 이게 이 땅에서 그런 식으로 사람들로부터 오해받는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줘야, 비로소 사람들의 능력으로, 사람들의 실력으로, 사람들의 인식으로, 찾지 못하는 곳에 천국이 만들어지게 되는 겁니다.
천국 못 갑니다. 어떻게 가냐고요? 주께서 넣어줘야 가는 겁니다. 왜, 천국 못 갑니까? 없어서 못 가는 것이 아니라 있어요. 있는데 왜 못 갑니까? 본인들이 기대한 천국이 아닌 천국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따로 만들어 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사람들의 선입관과 인식과, 이성으로, 못 가게 하십니까? 천국은 오직 불쌍히 여긴 사람들만 들여보내기 위해서, 그들의 세계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끝으로 천국 가게 된 사람을 하나 거론하게 되면 누가복음에 나오는 거지나사로입니다. 거기 나사로를 보면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했을 거예요. 얼마나 하나님께 저주받았으면, 얼마나 하나님께 지지리도 복을 못 받았으면, 죽을 때까지 몸 아프고, 죽을 때까지 거지로 살겠느냐. 온갖 비난을 다 쏟아 붓습니다.
바로 그 비난의 자리에 주님이 거지나사로와 함께 계시다는 겁니다. 우리가, 내가 생각했던 세상 축복, 내가 기대한 세상 성공, 없다고 무시한, 그 무시의 자리에 천국 만드신 주님이 그 자리에 있습니다. 무슨 수로 우리가 천국 들어갑니까? 주님께서 불러주시게 되면, 바로 주님보시기에 이 거지같은 내 마음 속에 주님께서 직접 천국을 만들어 줄 때, 이 천국은 내가 만든 게 아니고, 주님의 은혜로 만들었습니다는 고백을 하게 될 때, 그 사람이 천국에 속한 사람입니다.
이미아(IP:180.♡.90.76)
15-01-17 20:37
103강-YouTube강의(복음의 영향)150115-이 근호 목사
103번째 강의, ‘복음의 영향’, 복음의 영향이라는, 복음이 어떤 영향을 하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보통 교회에 사람들이 오게 되면, 사람들이 어떤 노리는 게 있고 희망이라는 것이 있어요. 내가 하나님께 이런 저런 것을 기도해서 빨리 내 상태가 원상복귀 되든지, 아니면 지금보다 번창하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아니 둘 다가 될 수 있죠. 내 것을 지키고 사수하고, 내 것을 키우는 겁니다.
왜 그런 생각을 갖느냐 하면, 평소에 교회 나오기 전에, 평소에 일상 사람들 만나면서, 사람들이 언제 사회에 화를 내느냐 하면, 내 것 건드릴 때 누구나 싸우게 되어 있어요. 내 것 건드리면. 따라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내 것을 건드리지 마시고 잃어버린 것 채워주시든지, 더 키워주시면 섭섭지 않게 하나님 앞에 충성, 봉사하고 대우하겠다고 그렇게 나오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 선입관을 가지고 올 때에, 교회 설교자나 교회 당회에서는 그 사람들을 붙잡아 두어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 헌금이 나오고, 그 사람들 돈으로 계속 교회를 키우고, 그리고 그 사람들을 자기 집단화 시키려면 그 사람들의 소원성취를 들어줘야 이게 하나의 조직이라는 게 운영이 되고 돌아가게 돼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요구를 계속 채워주기 위한 방편이 뭐냐, 권위적이어야 되고, 뭔가 정당하고 진리처럼 보여줘야 되죠. 거기에 설교자와 교인들 만남에서 성경이 여기에 동원되는 겁니다. 성경이 동원되면서, 그러니까 고객들이, 손님들이 원하는 그것을 하나님도 원하는 것과 일치되는 것으로 그들에게 설득 있게 안심을 시켜놓고,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은 성경대로, 이 방법대로 사용하시면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은 너끈히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주십니다.” 라고 이야기하고.
첫 번째, 그들이 원하는 것을 포착하고 두 번째, 성경말씀을 통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이, 실제로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희망을 주고 세 번째가 뭐냐 하면, 실제로 이루어진 그 간증들과 사례들을 설교 시간에 내내 중간, 중간에 배치를 하게 되면 고객들은 대만족을 하게 되고, 돌아가면서 또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면서 막대한 돈도 주기적으로 내게 되고 기분 좋으면 가끔 목돈도 내게 돼요. 그러면 교회가 운영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교회가 운영이 되게 되면 교회가 대외적으로 어떠한 좋은 인상을 받느냐 하면,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진리가 있다는 집단으로 그 교회에 모이게 되고, 그 교회가 날로 번창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계셨다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는 이러한 좋은 호감을 주변에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일거이득, 일거삼득이 될 수 있죠. 그렇게 되면 오는 교인들로 하여금 갈수록 점점 더 성경 전체, 성경 핵심, 진짜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이, 성경을 모를 때는 모른다고 하는데, 성경을 통해서 자기의 소원이 성취되게 되면 그것이 성경적 참된 진리라고 점점 굳어져 버리죠.
점점 굳어지니까, 성경말씀대로 배나 지옥백성을 만드는 겁니다. 지옥에 천국 가고자 하는 자들도 많을뿐더러, 천국을 모르는 사람들까지 지옥으로, 넓은 길로 데려가는, 그 중심 역할, 선봉장에 바로 교회가 자리 잡고 열심히 그 활동을, 마귀적 활동을 하게 되는 겁니다. 거기다가 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렇게 이야기해버리죠. 천주교처럼 이렇게 되는 거거든요. 개신교도 천주교를 닮아 가는데 교회 등록 안 하면, 교회 성만찬, 세례 안 하면 지옥 갑니다. 이렇게 되니까 사람들이 더 교회에 달라붙어서 매이게 되는 거예요. 이게 바로 목회성공 방법입니다. 간증, 이게 핵심이에요. 여러분들이 소원하는 것, 우리 교회에 와서 체험하시면 여러분들이 소원이 이루어지는 많은 사례들이 있으니까 여러분들이 거기에 동참하고 참여하시려면 우리 지시에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그 지시 중에 하나가 뭐냐, 우리가 성경을 풀이하는 식대로 풀이하시기 바랍니다. 이래 되는 거예요.
그러나 이 방법으로 종교 단체하는 그런 것이 비단 교회 사회, 이천년 동안 계속되는 정도가 아니고 그 전에도 있었죠. 사도바울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사도바울의 경우에도 예수님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그리고 여호와를 거론하면서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성령을 전하는 많은 교회가 있었는데, 그 중의 고린도교회도 포함이 돼있습니다. 로마서도 마찬가지고. 사도바울이 가는 모든 곳이 바로 그런 현상들이 이미 깔려 있었습니다. 그러면 사도바울은 그것에 어떻게 대처했는가. 복음을 외쳤습니다.
사도바울이 제시한 것은 딱 한 개입니다. 복음에 비춰봐서, 복음적이냐, 그러면 구원이요. 복음이 아니면 그거는 지옥이라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지어낸 것이 아니니까, 사도바울, 본인도 추호도 거기에 대해서 다른 소리 할 수가 없습니다. 양보가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심각하게 전했죠. 복음을 모르면 지옥 간다. 교회든, 성경에 나오는 모든 개념이 복음부터 출발해서 이어져야 된다는 거죠. 그러면 그 복음이 뭐냐, 그게 바로 십자가 복음입니다. 십자가 복음과 관련되어 있을 때, 십자가 복음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분류가 나와요.
어떤 분류냐 하면, 여기 로마서에, 로마서 11장 28절에 보면,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 된 자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은 이 세상을, 진짜 지옥 갈 사람과, 천국 갈 사람의 최종적인 기준으로서 작용을 하게 되어 있어요. 우리 인간들 같으면, 우리 같은 교인들 같으면 좋은 게 좋다고, 뭐 은혜롭게 하는 것이, 뭐 좋은 게 좋다고 그저 기준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서로 인정하면 서로 한 마음이 되죠.
예를 들어서 어떤 교회가 있다면, 교회에 한 오 백 명이 우리교회, 이 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지 않다면, 목사나, 교회나, 당회에서는 전부다 한 식구로 보는 겁니다. 근데, 그 중에서 교회를 인정하는 것을, 그것을 기준으로 내세우지 말고, 십자가 복음을 그 자리에 집어넣어 버리면, 그때부터는 교회 다녀도 십자가 복음을 모르는 사람은 그거는 지옥 갈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이 그 교회를 찬양하고 있다면 그 교회는 지옥 보내는 교회가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복음에서 말하는 원수 된 자, 그러니까 하나님께 원수 된 자는, 인간들이 나한테 불리하게 이야기하고 나쁘다고 이야기해서 원수된 것이 아니고, 복음에 비춰봐서 원수 된 자라면, 그렇게 복음에 비춰 본 나 자신도, 나 자체가 복음에 원수 된 자일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서 성경을 보셔야 됩니다. 그렇게 보게 되면 누가 복음에 원수 된 자인가? 바로 성경 보는 우리 모든 인간이 복음에 매일같이 원수 된 자입니다.
복음에 원수 되지 않는 자, 누구밖에 없느냐. 예수님밖에 없어요. 제가 이 말씀 왜 드리느냐 하면, 처음에는 예수님밖에 없다고 시작을 해요. 그러다 보면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뭐냐, 복음 믿는 나는 예수님과 한 패가 된다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갑자기 예수님과 자기가 붙어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예수님한테 잘해주는 것처럼, 나도 예수님한테 붙어 있으니까, 나에게 잘해주리라는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이 됩니다. 카리스마를 거론하면서. 영적 권위를 거론하면서. 내가 복음 전하니까, 나는 주의 종이니까, 주님만 잘해주지 말고 나에게도 잘해줘야 주님도 인정한다고 이러한 논리가 성립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주님을 가로막는 주님의 원수가 돼버려요. 왜? 그 사람은 십자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고린도전서에 보면 사도바울이 하는 말이 나는 십자가지지 않았다고 이야기해요. 1장에서. 그 말은 뭐냐 하면, 나를 섬길 생각 하지 말고, 내가 전하는 십자가 지신 주님을 증거 해야지, 주님을 섬겨야지 나를 섬겨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사도바울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번만 이야기했을까요?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어요. 십자가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지 내가 아니라고.
그래서 사도의 복음은 오직 그리스도만 증거 되지, 그 외에는 증거 되지 않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모든 사람은 죄인이 되고, 사도바울은 자기를 죄인의 괴수라고 이야기했고.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사도바울을 거치더라도 그리스도에게만 관심이 가고 시선이 가도록 그렇게 조치하는 것, 이게 복음의 영향입니다.
◁ 이전글
다음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