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강-YouTube강의(악마)141218-이 근호 목사
99강-YouTube강의(악마)141218-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80.231.87.3)
99강-YouTube강의(악마)141218-이 근호 목사
이번 시간에는 제 99강, 제목은 ‘악마’입니다. 악마, 상당히 부정적 용어죠. 사람들이 곁에 두기 싫어할 겁니다. 악마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제일 궁금한 것은 실제로 있느냐? 하는 문제고, 있다면 어떻게 생겼느냐? 어디 있느냐?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느냐? 그게 궁금하죠. 만약에 그것이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활동을 하는지, 몸소 체험하지 못하고 그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면, 악마는 일단 없는 것으로 간주해서 개의치 아니하고 악마에 신경 쓰지 않고 평소에 살면 된다. 그렇게 생각들 것입니다. 물론 요한계시록과 창세기에서 연결시켜 보면 이미 에덴동산부터 뱀, 악마가 인간을 유혹했다. 이렇게 나와 있죠.
그런데 그 이후에 악마에 대해서는 결코 빈번하게 등장하지 않습니다. 인간들이, 인간들과 직접 하나님과 상대하는 그런 내용의 이야기들이 성경에 쭉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상 18장 10절에 보면, “그 이튿날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 악신이라고 돼있습니다. 물론 구체적인 악마의 전부를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악마의 전부는 하나님의 약속, 언약이죠. 하나님 약속의 전부가, 내용이, 본질이 공개될 때 악마의 본질도 다 궁극적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부분적으로만 악신으로서의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을 반대하는 쪽으로 나타나죠.
욥기도 보면 거기에 사탄이 나오고 그리고 좀 더, 이거 스가랴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 앞에 사탄이 와 있다는 것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빈번하게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빈번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악마가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고 그 다음에 우리가 궁금한 것은 존재한다면 도대체 무슨 활동을 하는가? 우리가 간파하고 싶어 해요. 왜냐하면 악마의 활동에 우리가 무지하게 되면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악마의 일이 아닌가? 이래서 이걸 확정 지을 수 있는 기준 같은 것이 빨리 수립되기를 우리가 원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서 실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고 마귀가 좋아하는 일은 하고 있지 않은지를, 이걸 점검을 하려면 악마가 일관성 있게 어떤 일을 하는지를 파악이 돼야 우리가 판정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 사울이라는 사람이 악신 들렸다는데, 사울이라는 사람이 평소에 늘 악신 들린 것은 아니고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 계기가 뭐냐 하면, 소년 다윗을 만났을 때 사울에게 악신이 임했습니다. 근데, 사울이라는 사람이 이스라엘 초대 왕이라 할 수 있는데요. 왕이 되기 이전에 그 사람은 악신이 아니고 성신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울 왕도 왕 되기 전에 선지자 중에 한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알려진 인물입니다. 구약에서, 초반기에 하나님의 성신이 임했다는 것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악신, 또는 악마를 언급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어떤 일을 하시는가, 그것부터 일단 정리가 되어야 되겠죠.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무슨 일을 하시려고 하는데, 악마나 악신은 그 일을 못하도록 방해하는 쪽으로 가해지면 그것이 바로 악마의 일이고 악신의 일이라고 정리해도 무방합니다.
그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시는 일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약속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실현코자 하는 겁니다. 그럼 하나님의 그 약속과 언약의 실내용이 뭐냐 하면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준비된 중보자를 보내십니다. 그게 이스라엘에서는 이스라엘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렇게 지칭되는데요. 그 중보자께서 이스라엘을 데리고, 그 중보자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맡기신 특별한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을 마무리 지으면 세상은 끝이 납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사용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중보자를 동행시키시는 거죠.
그렇다면 마귀의 일은 그 반대니까 분명해졌습니다. 그 중보자의 일을 삭제하는 일을 마귀가 하는 겁니다. 요즘 식으로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해야 할 설교자가 교회 부흥을 증거 한다면 그게 바로 악마에 속한 목회자입니다. 아주 간단하죠. 그리고 어떤 학교에 교목이 있다면, 예수님을 증거 해야 할 교목이 학교의 번영과 서울대학교에 얼마나 많은 학생이 들어가기를 기도한다든지 이렇게 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마귀에 속한 목사입니다. 그리고 군목인데,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 해야 될 군목이 나라의 안녕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그것이 바로 마귀에 속한 군목이 되는 겁니다. 이런 예를 드니까 실감나시죠?
마귀는 중보자의 존재를 제거하는 겁니다. 그것을 제거하든지 아니면 그것이 목적이 아니고 우리의 소망을 이루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잠깐 들어 왔다가 빠지는 그런 용도로 사용케 하시는 것이 그게 가짜로 만드는 예수, 가짜로 만든 삼위일체, 가짜로 만든 그 중보자의 인상이 그런 인상입니다. 그렇다면 중보자를 마귀가 꾈 때, 그냥 중보자 빼고 이야기합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이야기 하느냐 하면 인간이 직접 하나님과 맞닿을 수 있다고 선전하는 겁니다. 요게 마귀가 하는 설교에요.
인간은 착하고, 선하고, 구원을 원하고, 천국을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소원대로 이루어 준다는 겁니다. 기도하게 되면 이루어 주고, 헌신하고 금식하게 되면 이루어 주고, 열심히 하면 열심 낸 만큼, 그 양 만큼 주께서 들어 준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바로 마귀에 속한 전형적인 목소리입니다. 악마의 목소리라고 생각하시면 정확합니다. 왜냐하면 중간에 중보자가 빠져버린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 생각은 그 중보자를 집어넣으면 되지 않겠나, 이래 생각하죠.
근데, 그 중보자 되신 중보자가 우리가 요구한다고 들어오시는 분이 아니고, 우리의 요구와 반대돼서, 오히려 우리의 요구의 사항, 그러한 기대 사항 때문에 우리로부터 핍박받은 상태로 우리 가운데 하나님 사이에 들어오게 되어 있어요. 그게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쉽게 말해서 걸림돌입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반영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요구하는 것이 잘못되었음을 도중에 나서서 그걸 분명히 일러주는 신분이 바로 중보자입니다. 그 중보자는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가 되는 겁니다.
이 말은 우리는 진리가 아닌 거예요. 우리 요구 사항은 진리가 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마귀의 일이 뭐냐 궁금하시다면, 한 마디로 말해서 “나도 인간입니다.” 라고 하나님 앞에서 큰소리치게 만드는 그 모든 분위기가 마귀가 만든 분위기입니다. 하나님이여, 저를 사람 취급해달라는 것. 하나님, 저를 죄인 취급하지 말고 사람 취급해달라는 것. 하나님 믿고 참 개과천선해서 새 인간 되게 해달라고, 계속 기존의 인간의 가치를 붙잡고, 예수님의 도움으로 기존의 인간이 달라져서 새 인간 되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 이게 마귀가 요청하는 겁니다.
그거는 종교에서 주로 하는 일이에요. 중보자라 하는 것은 우리가 요청한다고 중보자가 들어 주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예수님이 우선이고 예수님의 뜻을 위하여 일방적으로 우리의 뜻과 상관없이, 우리의 원대로, 우리의 뜻대로, 우리가 기대한대로 가게 하지 않고, 예수님 자신의 뜻대로 우리를 일방적으로 몰아세우는 그런 관계로서 중보자와 우리는 만납니다. 이것이 바로 성신의 관계입니다.
사울이 전에 성신 받았다고 이야기했죠. 누굴 만나기 전에? 다윗을 만나기 전에 성신 받았습니다. 다윗을 만나고 난 뒤에 갑자기 사울은 자신의 가치를 놓치기 싫은 거예요. 나는 누가 뭐래도 왕이다. 근데, 왕 자리를 누가 노리는가. 소년 다윗이, 자기 왕 자리를 내치고 소년 다윗이 그 자리에 앉을 것 같은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악신이 들려서 사울이 손에 창을 들고 다윗을 향하여 던졌습니다. 창을 던졌으나 마침 창이 다윗을 피해갔습니다. 사울이 평소에 사람한테 창던지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든지 아무나 보고 창던지는 사람이 아니에요.
사울이 악신이 들렸기 때문에 진짜 하나님의 약속대로 나타난 사람이 누군지를 사울은 몰라도 사울과 함께 있는 악마는 그걸 알죠. 그래서 다윗과 함께 있는 중보자를 향하여 사울은 창을 던진 겁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 보기에는 자신의 고유의 가치, 인간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아주 솔직한, 숨길 수 없는, 근원적인 본심을 다윗 앞에서 노출 시킨 겁니다.
오늘 우리가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것을 알 때, 우리는 창을 들고 십자가를 부술 겁니까? 아니면 죄인 됨을 아는 기쁨에 잠길 것입니까? 그것은 성령 받은 여부에 따라 달린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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