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강-YouTube강의(소유)141218-이 근호 목사
98강-YouTube강의(소유)141218-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80.231.87.3)
98강-YouTube강의(소유)141218-이 근호 목사
오늘은 제 98강, ‘소유’입니다. 성도에게 소유를 언급한다는 것은 성도한테는 상관없는 일이라 그렇게 이해할 것입니다. 부자청년이 예수님에게 영생 얻기 위해서 왔을 때, 예수님께서 부자청년에게 당부한 것은 결국 하나였습니다. 네 모든 소유를 가난한 자에게 주고, 무소유죠. 소유가 없는 상태에서 나를 따라 오너라 그러면 니가 얻고자 하는 영생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했습니다. 물론 그 소리 듣고 부자 청년은 유턴했습니다. 본래 자기 자리로 되돌아갔습니다.
인간이 소유를 극복하면서 예수 믿는다는 것이 사실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라, 그런 것을 주님께서는 말씀하신 거죠. 꼭 소유라 해서 돈에 대한 소유뿐만 아니고 기존 권력에 대한 소유도 있을 것이고 또는 자기의 가족에 대한 사랑도 여전히 소유로서 붙잡아두려는 성향이 있을 것입니다. 소유냐, 존재냐, 하는 에리히 프롬에 그런 책도 있습니다만, 사람이 소유에 매달리게 되면 소유의 종이 되고, 소유보다는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느냐 거기에 주목하고 그것을 지향에서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에리히 프롬은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여기 성경 전체에서 예수님께서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했습니다. 그래서 성도에게는 소유라는 것이 영생의 길을 가려는 사람에게는 방해물로, 장애물로 그렇게 간주될 것입니다. 특히 그 유명한 대목,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거기 아브라함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반열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그렇게 돼있습니다. 여기에 아브라함에 대해서 소개하기를 이렇게 돼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히11:11).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가 자식 없음을 알고 살았는데 하나님의 약속이 임해서 갑자기 자기 아내한테 임신이 되니까, 그는 그 약속했던, 약속을 보내줬던 그 세계를 그때부터 쳐다보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13절에는 “이 사람들이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일반적인 죽음이 아니고. 다 죽어요. 다 죽지만 그들은 약속을 받지 못했지만 그걸 멀리 바라보며 이 땅에서 환영하면서 죽었다는 거죠.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믿음의 계열에 있는 사람의 특징이 뭐냐 하면, 죽기는 죽어요. 하지만 죽어도 괜찮다는 겁니다.
그것은 자기 임신 못한 아내를 임신하게 한 힘이 약속에서 나온 힘이기 때문에 그 힘을 소유했기에, 그 힘을 소유하고 있기에 그는 이 땅에서 죽는다 할지라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이 땅에 대해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은 어떻게 생각했느냐 하면은, 그것을 멀리 바라봐야 할 하나의 지점으로 바라봤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나그네요 스스로 자기를 이방인으로, 외부인으로 간주했습니다.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11:15). 이래 돼있습니다.
이 땅에서 땅으로 간다면 땅에 것에 대해서 기대했을 건데, 그들은 이 땅에 것은 일체 인정하지 않고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그것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하늘에 있는 것이라 했습니다. 자, 하늘에 있는 것을 아브라함이 사모했다면 땅에서는 일체의 소유에 대해서, 땅에 것에 대한 소유에 대해서 믿음 같은 건, 집착 같은 건, 없을 것이라고 우리가 그렇게 단정 지을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3장에 보면 바로 이러한 단정함, 아브라함이 일체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 낸 그 결론에 반전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나그네로 살았고 외국인으로 살았지만 유독 소유했던 어떤 부동산 하나가 나옵니다. 창세기 23장에 보면, 그것은 아내 사라가 죽고 난 뒤에 사라의 매장지에 대해서, 죽은 장소가 헤브론인데 그게 헷 족속의 소유의 땅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땅에 자기 땅이 없어요. 나그네니까. 그 땅에서 사라가 죽었으니까. 아직 주님의 때, 부활의 때가 안 왔으니까. 사라가 죽었으니까 장례 치러야 되지 않습니까? 장례 치를 장소에 대해서 막벨라 굴, 누구 소유냐 하면, 에브론이라는 사람의 소유 막벨라 굴을 자기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에 여기서 재미나는 이야기가 오고갑니다.
에브론에게 막벨라 굴을 달라고 할 때, 그 에브론이라는 사람이 하는 말이 거저 주겠다고 합니다. 거저 주겠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 같으면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해서 자기 아내가 죽고 나서 장례지로 그 에브론의 소유의 막벨라 굴을 그냥 받으면 될 텐데, 기어이 아브라함이 거기에 대해서 땅값을 주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물론 에브론도 그렇게 고집피울 것이 아니고 그냥 드리겠습니다, 하고 에브론도 고집을 피워버려요. 근데, 아브라함이 단호하게 땅값 드리면서 그 막벨라 굴을 구입하고 싶다고 자기 뜻을 분명하게 언질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브라함의 고집에 못 이겨서 에브론이 그 땅값 시세에 대해서 이야기해요. 그 땅값 시세가 은 사백 세겔입니다. 그런데 사백 세겔을 이야기 하면서 “제가 어떻게 돈을 받겠습니까?” 하고 끝까지, 에브론 이 사람은 마음이 착한지 모르겠습니다만은, 아브라함에게 거저 주려고 끝까지 거저 주려는 제안을 계속해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그 소리를 듣고 은 사백 세겔을 줍니다. 오늘, 은 시세가 3.75그램에 2,530원이에요. 그렇다면 여기에 은 사백 세겔을 오늘 시세로 계산을 해보니까 대략 삼백 사십 만 원 정도 나옵니다. 삼백 사십 만 원 주고 땅을 구입을 한 겁니다.
그러면 땅을 구입을 하게 되면 이게 어떻게 되느냐 하면, 거저 받은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 어떤 것도 아브라함의 소유가 없어요. 모든 것은 다 놓고 가야 되는데 유독 막벨라 굴, 그만큼은 영원히 아브라함 소유지가 되는 겁니다. 등기가 아브라함 등기가 되면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야곱, 요셉, 계속해서 거기에 대한 선조의 묘를 모시는, 시신을 모시는 땅이 되겠지요. 일종의 선산이 되겠죠. 그렇다면 왜, 죽은 자에게서 그렇게 아브라함이 집착을 보일까요? 딴 것은 자기 살아 있을 때 모든 것을 하는데 왜 죽은 자에게 집착을 보일까요?
그것은 아브라함이 자기가 이 땅에 미련두지 않고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그 약속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살았다는 것은, 아브라함 자신 자체가 개인 소유가 아니고 보이지 않는 어느 분의 소유된 것을 보여주는 사건 속에 자기가 놓여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 아내의 태가 죽었는데 임신했잖아요. 이거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고 없는데서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건의 증거물로써 이 아브라함의 자손의 계열이, 육적인 계열이 하나님에 의해서 약속에 포함돼서, 이 약속이 장차 자신의 주신 약속이 구체화 될 때, 그 시기까지, 자신의 육적인 계열은 약속의 계열이 됨을 보여주는 증거로써, 이 땅에 어떤 특정 지점이 있을 필요가 있다고 그는 믿음으로 그렇게 생각한 겁니다.
막벨라 굴이 아브라함의 소유가 된다면, 막벨라 굴만 소유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지역 전체가 장차 메시야께서 약속대로 실현하는 장소가 되고 영역이 되겠죠. 딴 건 다 세상 소유지만 막벨라 굴 만큼은 아브라함 소유가 된다는 말은, 이 땅에 하나님의 약속의 소유지로 따로 아브라함을 통해서 마련하겠다는 하나님의 뜻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자신의 죽음, 그리고 자신의 죽음과 결합되는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약속을 증거 하는 그것만이 우리의 오늘날 성령 받은 성도의 유일한 소유지가 되는 겁니다.
십자가 죽었다가 살아나신, 그 십자가 사건만이 이 땅에서 계속해서 반복해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영원한 우리들의 소유지가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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