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98강, 99강), 소유, 악마 141218
유튜브(98강, 99강), 소유, 악마 141218
이름 : 이근호(IP:119.18.98.57)
98강
99강
이미아(IP:180.♡.87.3)
14-12-21 08:44
98강-YouTube강의(소유)141218-이 근호 목사
오늘은 제 98강, ‘소유’입니다. 성도에게 소유를 언급한다는 것은 성도한테는 상관없는 일이라 그렇게 이해할 것입니다. 부자청년이 예수님에게 영생 얻기 위해서 왔을 때, 예수님께서 부자청년에게 당부한 것은 결국 하나였습니다. 네 모든 소유를 가난한 자에게 주고, 무소유죠. 소유가 없는 상태에서 나를 따라 오너라 그러면 니가 얻고자 하는 영생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했습니다. 물론 그 소리 듣고 부자 청년은 유턴했습니다. 본래 자기 자리로 되돌아갔습니다.
인간이 소유를 극복하면서 예수 믿는다는 것이 사실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라, 그런 것을 주님께서는 말씀하신 거죠. 꼭 소유라 해서 돈에 대한 소유뿐만 아니고 기존 권력에 대한 소유도 있을 것이고 또는 자기의 가족에 대한 사랑도 여전히 소유로서 붙잡아두려는 성향이 있을 것입니다. 소유냐, 존재냐, 하는 에리히 프롬에 그런 책도 있습니다만, 사람이 소유에 매달리게 되면 소유의 종이 되고, 소유보다는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느냐 거기에 주목하고 그것을 지향에서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에리히 프롬은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여기 성경 전체에서 예수님께서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했습니다. 그래서 성도에게는 소유라는 것이 영생의 길을 가려는 사람에게는 방해물로, 장애물로 그렇게 간주될 것입니다. 특히 그 유명한 대목,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거기 아브라함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반열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그렇게 돼있습니다. 여기에 아브라함에 대해서 소개하기를 이렇게 돼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히11:11).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가 자식 없음을 알고 살았는데 하나님의 약속이 임해서 갑자기 자기 아내한테 임신이 되니까, 그는 그 약속했던, 약속을 보내줬던 그 세계를 그때부터 쳐다보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13절에는 “이 사람들이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일반적인 죽음이 아니고. 다 죽어요. 다 죽지만 그들은 약속을 받지 못했지만 그걸 멀리 바라보며 이 땅에서 환영하면서 죽었다는 거죠.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믿음의 계열에 있는 사람의 특징이 뭐냐 하면, 죽기는 죽어요. 하지만 죽어도 괜찮다는 겁니다.
그것은 자기 임신 못한 아내를 임신하게 한 힘이 약속에서 나온 힘이기 때문에 그 힘을 소유했기에, 그 힘을 소유하고 있기에 그는 이 땅에서 죽는다 할지라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이 땅에 대해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은 어떻게 생각했느냐 하면은, 그것을 멀리 바라봐야 할 하나의 지점으로 바라봤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나그네요 스스로 자기를 이방인으로, 외부인으로 간주했습니다.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11:15). 이래 돼있습니다.
이 땅에서 땅으로 간다면 땅에 것에 대해서 기대했을 건데, 그들은 이 땅에 것은 일체 인정하지 않고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그것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하늘에 있는 것이라 했습니다. 자, 하늘에 있는 것을 아브라함이 사모했다면 땅에서는 일체의 소유에 대해서, 땅에 것에 대한 소유에 대해서 믿음 같은 건, 집착 같은 건, 없을 것이라고 우리가 그렇게 단정 지을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3장에 보면 바로 이러한 단정함, 아브라함이 일체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 낸 그 결론에 반전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나그네로 살았고 외국인으로 살았지만 유독 소유했던 어떤 부동산 하나가 나옵니다. 창세기 23장에 보면, 그것은 아내 사라가 죽고 난 뒤에 사라의 매장지에 대해서, 죽은 장소가 헤브론인데 그게 헷 족속의 소유의 땅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땅에 자기 땅이 없어요. 나그네니까. 그 땅에서 사라가 죽었으니까. 아직 주님의 때, 부활의 때가 안 왔으니까. 사라가 죽었으니까 장례 치러야 되지 않습니까? 장례 치를 장소에 대해서 막벨라 굴, 누구 소유냐 하면, 에브론이라는 사람의 소유 막벨라 굴을 자기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에 여기서 재미나는 이야기가 오고갑니다.
에브론에게 막벨라 굴을 달라고 할 때, 그 에브론이라는 사람이 하는 말이 거저 주겠다고 합니다. 거저 주겠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 같으면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해서 자기 아내가 죽고 나서 장례지로 그 에브론의 소유의 막벨라 굴을 그냥 받으면 될 텐데, 기어이 아브라함이 거기에 대해서 땅값을 주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물론 에브론도 그렇게 고집피울 것이 아니고 그냥 드리겠습니다, 하고 에브론도 고집을 피워버려요. 근데, 아브라함이 단호하게 땅값 드리면서 그 막벨라 굴을 구입하고 싶다고 자기 뜻을 분명하게 언질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브라함의 고집에 못 이겨서 에브론이 그 땅값 시세에 대해서 이야기해요. 그 땅값 시세가 은 사백 세겔입니다. 그런데 사백 세겔을 이야기 하면서 “제가 어떻게 돈을 받겠습니까?” 하고 끝까지, 에브론 이 사람은 마음이 착한지 모르겠습니다만은, 아브라함에게 거저 주려고 끝까지 거저 주려는 제안을 계속해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그 소리를 듣고 은 사백 세겔을 줍니다. 오늘, 은 시세가 3.75그램에 2,530원이에요. 그렇다면 여기에 은 사백 세겔을 오늘 시세로 계산을 해보니까 대략 삼백 사십 만 원 정도 나옵니다. 삼백 사십 만 원 주고 땅을 구입을 한 겁니다.
그러면 땅을 구입을 하게 되면 이게 어떻게 되느냐 하면, 거저 받은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 어떤 것도 아브라함의 소유가 없어요. 모든 것은 다 놓고 가야 되는데 유독 막벨라 굴, 그만큼은 영원히 아브라함 소유지가 되는 겁니다. 등기가 아브라함 등기가 되면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야곱, 요셉, 계속해서 거기에 대한 선조의 묘를 모시는, 시신을 모시는 땅이 되겠지요. 일종의 선산이 되겠죠. 그렇다면 왜, 죽은 자에게서 그렇게 아브라함이 집착을 보일까요? 딴 것은 자기 살아 있을 때 모든 것을 하는데 왜 죽은 자에게 집착을 보일까요?
그것은 아브라함이 자기가 이 땅에 미련두지 않고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그 약속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살았다는 것은, 아브라함 자신 자체가 개인 소유가 아니고 보이지 않는 어느 분의 소유된 것을 보여주는 사건 속에 자기가 놓여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 아내의 태가 죽었는데 임신했잖아요. 이거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고 없는데서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건의 증거물로써 이 아브라함의 자손의 계열이, 육적인 계열이 하나님에 의해서 약속에 포함돼서, 이 약속이 장차 자신의 주신 약속이 구체화 될 때, 그 시기까지, 자신의 육적인 계열은 약속의 계열이 됨을 보여주는 증거로써, 이 땅에 어떤 특정 지점이 있을 필요가 있다고 그는 믿음으로 그렇게 생각한 겁니다.
막벨라 굴이 아브라함의 소유가 된다면, 막벨라 굴만 소유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지역 전체가 장차 메시야께서 약속대로 실현하는 장소가 되고 영역이 되겠죠. 딴 건 다 세상 소유지만 막벨라 굴 만큼은 아브라함 소유가 된다는 말은, 이 땅에 하나님의 약속의 소유지로 따로 아브라함을 통해서 마련하겠다는 하나님의 뜻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자신의 죽음, 그리고 자신의 죽음과 결합되는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약속을 증거 하는 그것만이 우리의 오늘날 성령 받은 성도의 유일한 소유지가 되는 겁니다.
십자가 죽었다가 살아나신, 그 십자가 사건만이 이 땅에서 계속해서 반복해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영원한 우리들의 소유지가 되는 겁니다.
이미아(IP:180.♡.87.3)
14-12-21 08:46
99강-YouTube강의(악마)141218-이 근호 목사
이번 시간에는 제 99강, 제목은 ‘악마’입니다. 악마, 상당히 부정적 용어죠. 사람들이 곁에 두기 싫어할 겁니다. 악마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제일 궁금한 것은 실제로 있느냐? 하는 문제고, 있다면 어떻게 생겼느냐? 어디 있느냐?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느냐? 그게 궁금하죠. 만약에 그것이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활동을 하는지, 몸소 체험하지 못하고 그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면, 악마는 일단 없는 것으로 간주해서 개의치 아니하고 악마에 신경 쓰지 않고 평소에 살면 된다. 그렇게 생각들 것입니다. 물론 요한계시록과 창세기에서 연결시켜 보면 이미 에덴동산부터 뱀, 악마가 인간을 유혹했다. 이렇게 나와 있죠.
그런데 그 이후에 악마에 대해서는 결코 빈번하게 등장하지 않습니다. 인간들이, 인간들과 직접 하나님과 상대하는 그런 내용의 이야기들이 성경에 쭉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상 18장 10절에 보면, “그 이튿날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 악신이라고 돼있습니다. 물론 구체적인 악마의 전부를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악마의 전부는 하나님의 약속, 언약이죠. 하나님 약속의 전부가, 내용이, 본질이 공개될 때 악마의 본질도 다 궁극적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부분적으로만 악신으로서의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을 반대하는 쪽으로 나타나죠.
욥기도 보면 거기에 사탄이 나오고 그리고 좀 더, 이거 스가랴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 앞에 사탄이 와 있다는 것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빈번하게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빈번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악마가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고 그 다음에 우리가 궁금한 것은 존재한다면 도대체 무슨 활동을 하는가? 우리가 간파하고 싶어 해요. 왜냐하면 악마의 활동에 우리가 무지하게 되면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악마의 일이 아닌가? 이래서 이걸 확정 지을 수 있는 기준 같은 것이 빨리 수립되기를 우리가 원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서 실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고 마귀가 좋아하는 일은 하고 있지 않은지를, 이걸 점검을 하려면 악마가 일관성 있게 어떤 일을 하는지를 파악이 돼야 우리가 판정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 사울이라는 사람이 악신 들렸다는데, 사울이라는 사람이 평소에 늘 악신 들린 것은 아니고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 계기가 뭐냐 하면, 소년 다윗을 만났을 때 사울에게 악신이 임했습니다. 근데, 사울이라는 사람이 이스라엘 초대 왕이라 할 수 있는데요. 왕이 되기 이전에 그 사람은 악신이 아니고 성신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울 왕도 왕 되기 전에 선지자 중에 한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알려진 인물입니다. 구약에서, 초반기에 하나님의 성신이 임했다는 것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악신, 또는 악마를 언급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어떤 일을 하시는가, 그것부터 일단 정리가 되어야 되겠죠.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무슨 일을 하시려고 하는데, 악마나 악신은 그 일을 못하도록 방해하는 쪽으로 가해지면 그것이 바로 악마의 일이고 악신의 일이라고 정리해도 무방합니다.
그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시는 일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약속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실현코자 하는 겁니다. 그럼 하나님의 그 약속과 언약의 실내용이 뭐냐 하면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준비된 중보자를 보내십니다. 그게 이스라엘에서는 이스라엘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렇게 지칭되는데요. 그 중보자께서 이스라엘을 데리고, 그 중보자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맡기신 특별한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을 마무리 지으면 세상은 끝이 납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사용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중보자를 동행시키시는 거죠.
그렇다면 마귀의 일은 그 반대니까 분명해졌습니다. 그 중보자의 일을 삭제하는 일을 마귀가 하는 겁니다. 요즘 식으로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해야 할 설교자가 교회 부흥을 증거 한다면 그게 바로 악마에 속한 목회자입니다. 아주 간단하죠. 그리고 어떤 학교에 교목이 있다면, 예수님을 증거 해야 할 교목이 학교의 번영과 서울대학교에 얼마나 많은 학생이 들어가기를 기도한다든지 이렇게 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마귀에 속한 목사입니다. 그리고 군목인데,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 해야 될 군목이 나라의 안녕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그것이 바로 마귀에 속한 군목이 되는 겁니다. 이런 예를 드니까 실감나시죠?
마귀는 중보자의 존재를 제거하는 겁니다. 그것을 제거하든지 아니면 그것이 목적이 아니고 우리의 소망을 이루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잠깐 들어 왔다가 빠지는 그런 용도로 사용케 하시는 것이 그게 가짜로 만드는 예수, 가짜로 만든 삼위일체, 가짜로 만든 그 중보자의 인상이 그런 인상입니다. 그렇다면 중보자를 마귀가 꾈 때, 그냥 중보자 빼고 이야기합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이야기 하느냐 하면 인간이 직접 하나님과 맞닿을 수 있다고 선전하는 겁니다. 요게 마귀가 하는 설교에요.
인간은 착하고, 선하고, 구원을 원하고, 천국을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소원대로 이루어 준다는 겁니다. 기도하게 되면 이루어 주고, 헌신하고 금식하게 되면 이루어 주고, 열심히 하면 열심 낸 만큼, 그 양 만큼 주께서 들어 준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바로 마귀에 속한 전형적인 목소리입니다. 악마의 목소리라고 생각하시면 정확합니다. 왜냐하면 중간에 중보자가 빠져버린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 생각은 그 중보자를 집어넣으면 되지 않겠나, 이래 생각하죠.
근데, 그 중보자 되신 중보자가 우리가 요구한다고 들어오시는 분이 아니고, 우리의 요구와 반대돼서, 오히려 우리의 요구의 사항, 그러한 기대 사항 때문에 우리로부터 핍박받은 상태로 우리 가운데 하나님 사이에 들어오게 되어 있어요. 그게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쉽게 말해서 걸림돌입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반영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요구하는 것이 잘못되었음을 도중에 나서서 그걸 분명히 일러주는 신분이 바로 중보자입니다. 그 중보자는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가 되는 겁니다.
이 말은 우리는 진리가 아닌 거예요. 우리 요구 사항은 진리가 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마귀의 일이 뭐냐 궁금하시다면, 한 마디로 말해서 “나도 인간입니다.” 라고 하나님 앞에서 큰소리치게 만드는 그 모든 분위기가 마귀가 만든 분위기입니다. 하나님이여, 저를 사람 취급해달라는 것. 하나님, 저를 죄인 취급하지 말고 사람 취급해달라는 것. 하나님 믿고 참 개과천선해서 새 인간 되게 해달라고, 계속 기존의 인간의 가치를 붙잡고, 예수님의 도움으로 기존의 인간이 달라져서 새 인간 되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 이게 마귀가 요청하는 겁니다.
그거는 종교에서 주로 하는 일이에요. 중보자라 하는 것은 우리가 요청한다고 중보자가 들어 주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예수님이 우선이고 예수님의 뜻을 위하여 일방적으로 우리의 뜻과 상관없이, 우리의 원대로, 우리의 뜻대로, 우리가 기대한대로 가게 하지 않고, 예수님 자신의 뜻대로 우리를 일방적으로 몰아세우는 그런 관계로서 중보자와 우리는 만납니다. 이것이 바로 성신의 관계입니다.
사울이 전에 성신 받았다고 이야기했죠. 누굴 만나기 전에? 다윗을 만나기 전에 성신 받았습니다. 다윗을 만나고 난 뒤에 갑자기 사울은 자신의 가치를 놓치기 싫은 거예요. 나는 누가 뭐래도 왕이다. 근데, 왕 자리를 누가 노리는가. 소년 다윗이, 자기 왕 자리를 내치고 소년 다윗이 그 자리에 앉을 것 같은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악신이 들려서 사울이 손에 창을 들고 다윗을 향하여 던졌습니다. 창을 던졌으나 마침 창이 다윗을 피해갔습니다. 사울이 평소에 사람한테 창던지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든지 아무나 보고 창던지는 사람이 아니에요.
사울이 악신이 들렸기 때문에 진짜 하나님의 약속대로 나타난 사람이 누군지를 사울은 몰라도 사울과 함께 있는 악마는 그걸 알죠. 그래서 다윗과 함께 있는 중보자를 향하여 사울은 창을 던진 겁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 보기에는 자신의 고유의 가치, 인간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아주 솔직한, 숨길 수 없는, 근원적인 본심을 다윗 앞에서 노출 시킨 겁니다.
오늘 우리가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것을 알 때, 우리는 창을 들고 십자가를 부술 겁니까? 아니면 죄인 됨을 아는 기쁨에 잠길 것입니까? 그것은 성령 받은 여부에 따라 달린 이야기입니다.
◁ 이전글
다음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