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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양20141114a-히8장13절(몸과 언약) - 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히브리서

안양20141114a-히8장13절(몸과 언약) - 이 근호 목사

이름 : 공은주(IP:175.116.147.179)

안양20141114a-히8장13절(몸과 언약) - 이 근호 목사

히브리서10장8절, 9절, 제가 읽어볼게요.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이리 되어있지요. 무엇을 첫 것이라 하는가 하면, 여기 8절에 보면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첫 째에서는 율법이라 되어있고, 그러면 율법이 아닌 게 뭐냐 하면 둘째 것인데, 둘째 것은 언약이라 되어있습니다. 둘째 것은 히브리서 13장 20절에 보면,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고 히브리서10장16절에 보면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이렇게 되어있거든요. 요것을 가지고 ‘언약’으로 되어있는데 이걸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새 언약’이라고 되어있습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하게 되면, 히브리서 10장9절에서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자, 여기서 이 이야기가 사도를 통해서 히브리서라는 편지를 통해서 이걸 알려줬잖아요. 그렇다면 정작 예수님 뜻하고 사도의 뜻하고 일치되어야 되잖아요. 예수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 되는 겁니다.

히브리서 10장 5절 봅시다.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시편40편에 있는 말씀인데, 여기 세상에 임하실 때에, 누가 임한다는 거죠? 하나님이 임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않는다 했잖아요.

그럼 제사와 예물을 하신 분이 누굽니까? 하나님 당사자지요. 하나님이 하셔놓고 내가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않는다 하면 장난친 겁니까? 뭐한 거예요? 시켜놓고 나 이거 안 원했다면, 음식점에 가서 음식 주문해 놓고 자장면 시켜놓고 나 자장면 안 먹는다고 한다면 이거 완전히 주방장을 희롱한 게 되지요.

이 뜻은 무슨 뜻이냐 하면, 구원을 얻고자 하는 인간들은 구원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에요. 율법을 주니까 율법을 딱 받으니까 인간들이 잠재되어 있는 자기 성향이 나온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 ‘법 지켜서 의롭게 되어서 하나님 나라에 가겠다.’ 라는 자기의 본색이 나온 겁니다. 어느 누구도 마찬가지거든요.

하나님의 지시가 지금 이야기할 게 굉장히 많은데 우선 쉬운 것부터 다져나갑시다. 나중에 하면 어려워서 안 되니까. 쉬운 거 다져나가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니까 그 율법을 받는 사람들이 인간이란 말이죠. 인간들이 하나님이 주셨으니까 이걸 지키게 되면 하나님과 합류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 신앙을 품게 돼있지요. 하나님께서는 그 쓸데없는 희망을 왜 품고 있느냐고 시비거시는 거예요.

마치 유부남이 자기 친구가 총각인데 자기는 결혼했고 친구가 총각인데 친구 결혼식에 갔다. 예식 마치고 신랑 신부 나와 가지고 오는데 그 사진 찍는 신부친구 가운데 자기 아내보다 100배나 이뻐요. 자기 아내보다 100배나 이쁜 그 신부 친구가 있으니까 이게 작업을 거는 거예요. 그럴 때 뭐라 합니까? “니는 결혼 해놓고 왜 작업 거냐? 이리 나올 때, 멀쩡해지겠지요. 하나님께서 율법을 줬을 때, 그 율법은 예수님 지키라고 준 율법이거든요. 이런 소리 처음 듣지요? 예수님 지키라는 율법을 본인 메시아도 아닌 유대인들이 자기 지키겠다고 나설 때 이것은 유부남이 집적대는 거와 똑같은 짓이에요. “니보고 지키라고 준 게 아니야.” 이 말이거든요.

그 이야기가 뭐냐 하면, 내가 한 몸을 예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10장 5절에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따로 제사와 번제를 지켜야 될 다른 한 몸을 예비하셨는데 결국은 율법은 다른 사람이 끼어들 여지가 있는 게 아니고 하나님과 하나님이 준비한 어떤 한 몸, 그 둘 사이에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서 번제와 제사를 드린 거예요. 십계명을 준 거고.

그런데 이 사실을 율법을 줄 때는 이야기 안하고 언제 알려주느냐 하면, 세상에 임하실 때에, 세상을 끝장낼 때 이 말씀을 주신 겁니다. 그러면 방금 한 거 정리해 봅시다.

세상에 임하실 때는 세상을 끝장낸다는 건데 세상은 마지막 때 오거든요. 마지막 때라는 말은 마지막 다음에 마지막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마지막 뒤에 마지막이 있으면 그건 마지막이 아니잖아요. 마지막이라는 그걸로 끝나는 겁니다. 이게 어렵기 때문에 제가 한 번 적어볼게요.

자, 마지막에 담긴 내용, 속성 이리 되는데, 마지막의 마지막다운 내용, 마지막을 마지막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 확정짓는 내용이 뭐냐, 내용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보내신 어떤 몸,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주신 율법을 다 이룬 요게 마지막이에요. 이게 성경에 나오는 마지막인데, 인간들이 생각하는 마지막은 뭐냐 하면, 지진과 태풍, 자연재해 또는 전염병 그리고 사람들이 처처에 기근이 있고 전쟁이 있는 것 그걸 마지막으로 봐요.

그러면 그 마지막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고 목격하면서 정립할 수 있는 내용들이 되겠지요. 흔히 이야기하잖아요. 세상 끝장이야. 끝장! 말세야, 말세! 하잖아요. 자기 집에 돈 잘 벌면 말세라고 합니까? 아, 이 좋은 세상 더 끌어야 되지요. 그러나 갑자기 사기를 당한다든지 자기에게 우환이 생기면 “세상 끝장이야. 끝장.” 이렇게 하지요. 그 인간들이 생각하는 끝은 뭐냐 하면, 본인의 것을 이야기합니다. 본인의 끝을 본인을 이렇게 낭패를 만들게 하는 이 세상은 니 죽고 내죽자는 이야기에요. 나만 죽을 수는 없다. 억울해서 못 죽겠다는 이야기죠. 죽으려면 망하려면 다 같이 망하자는 겁니다.

그래서 스트레스 받은 사람이 휘발유통 들고 지하철에 불 지른다던지 대구 지하철 화재사건 보면 왜 불 질렀는가, 자기 인생 끝장내니까 혼자 죽으려하니까 그동안 내 인생을 이렇게 힘들게 한 세상에 대해서 같이 죽자고 불 지른 거예요. 남대문 불 지른 사건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제가 어떤 강의에서 그런 이야기했지요. 울산강의인지 수요일 어제도 그런 이야기했어요. 인간의 죄가 뭐냐, 자기 가치를 고집할 때 그게 죄가 되는 겁니다. 자기 가치를 가장 강렬하게 고집하는 게 바로 자살이에요. 제가 십자가마을에 자살에 대해서 언급을 했는데 하도 김성수 목사 자살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자살에 대해서 우리 성도들이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했는데 제 아내는 이것을 보고 너무 어렵다는 거예요. 어렵지요. 자살을 함부로 다룰 수 없는 게 어렵지요.

그래서 이 시간에 자살에 대해서 한 번 알기 쉽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성경에서는 인간은 죽음이 없어요. 왜냐 하면 죽은 자도 무덤 속에서 다 호출하면 다 기어 나오기 때문에 죽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가장 큰 비극은 죽는 게 아니고 안 죽는다는데 있어요. 밟아도 안 죽어요. 쪽쪽 찢어도 안 죽어. 불에 태워도 안 죽어요. 그래서 미치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은 한 번 만들어졌으면 주님의 품속에서 손아귀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요.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저주를 받던 축복을 받던 둘 중에 하나지 “나는 하나님하고 안 놀아” 하고 하나님의 낯을 피할 곳이 없습니다.

그걸 미리 알게 된 사람은 구원받고 그걸 모르는 사람은 죽고 난 뒤에 아는 사람은, 목숨 끊어지고 알게 된 사람은 이미 때늦은 후회 되지요.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상당히 슬픈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부자가 지옥가고 난 뒤에, 그걸로 지옥 갔다 하면 슬픈 이야기가 아닌데 부자가 지옥가고 난 뒤에 주인공이 바뀌어요. 거지는 천국가고 부자는 지옥 갔다. 이렇게 해서 주인공이 천국인 것처럼 해서 드라마가 끝나야 되는데 그 다음에 나온 이야기가 주인공 부자가 불쌍한 부자로 바뀌어요. 부자가 하는 말이 “아직 죽지 않은 내 동생 다섯 명이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말을 해요. “동생들이 나 있는 곳에 안 오기를 바랍니다.” 평소에 동생들이 형을 얼마나 부러워했겠습니까? ‘나도 형처럼 복 받아 부자 되었으면 좋겠다.’ 평소에 형이 멘토요, 삶의 모델이 되었을 거예요. 형이 복 받은 대표적인 모델로서 형의 운명을 본받고 싶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 부자가 지옥가도 안 오기를 바라지요. 영화 같은데 보면 기차가 서부지역을 달리다가 누가 선로를 폭파시키니까 제일 앞에 있는 것이 기관차고 뒤에 있는 것은 열차잖아요. 기관차가 와서 열차를 끌고 가잖아요. 그런데 기차의 특징이 뭐냐 하면, 참 교훈적인 것이 앞의 기관차만 떨어진 게 아니고 뒤에 열차 줄줄이 다 떨어지지요. 마치 비엔나소시지 줄줄이 꼬인 것처럼. 부자가 모델이에요. 이 세상의 모델입니다. 누가복음16장에 보면 돈을 언급하면서 부자를 모델로 삼은 거예요.

부자가 세상의 최고 자리라고 보면 돼요. 부자가 지옥을 가니까 그 줄줄이 부자가 걱정하는 거예요. 이것은 동생들이 걱정을 하는 게 아니고 지옥 간 부자가 분명히 동생들이 나를 따라 온다는 거예요. 형이 가는 길이 정답이니까.

그럴 때 부자가 뭐라고 하느냐, “동생들이 여기 오지 않기를 원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나름대로의 제안이 뭐냐 하면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려내게 되면 동생들이 “형, 어디 갔다 왔어?” “천국 갔다 왔는데” “그래? 죽고 난 뒤에 천국, 지옥 있어?” “있어” “아이고, 그러면 나는 지옥 안가고 천국 갈 거야.” 분명히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들이 알아먹을 테니까 보내서 내 있는 곳에 오지 않게 해 달라, 아주 참 장렬한 얼마나 장렬합니까? 죽어도 동생 걱정하는 거 보세요. 세상에 하여튼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양심이 곱고 생각하는 게 깊어요.

가룟유다가 선생님 팔아먹었다고 자살하는 거 보세요. 얼마나 마음이 깊습니까? 생각하는 게 얼마나 대자대비해요. 대자대비한 사람 다 지옥 가는 거예요. 부자도 죽고 난 뒤에는 동생 걱정하는 거 보세요. 거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 한 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 같으면 다 믿는다는 이야기를 부자가 이야기를 하지요. 부자가. 과연 그럴 것 같습니까? 우리는 그럴 것 같아요.

그런데 아브라함이 거기에 대해서 반대 의견을 하지요. 무슨 말이냐 하면,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의 말을 믿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방식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게 무서운 이야기에요. 간증집회 있잖아요. 죽었다가 지옥 있고 그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구원받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 이유는 그것에 대한 해답은 지난 주 낮 설교에 이야기했습니다. 뭐냐 하면, 천국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런데다가 정보가 합치된 게 아니고 사람의 마음으로서 생각하지 못한 곳이 천국이에요. 사람은 자기가 살아있고 주변에 어른들이 돌아가시니까 그걸 결합을 시키는 겁니다. ‘사람은 죽고 그 죽은 다음에 다른 세계 있겠지.’ 라는 생각을 인간은 누구나 갖게 마련입니다. 그 생각에 맞춰주지 않는 것이 천국입니다. 그게 합치되지 않는 게 천국이에요. 그걸 비켜버려요. 그런 생각을 비켜서 다른 곳에 천국을 만들어요. 다른 곳에.

그럼 왜 다른 곳에 천국을 만드느냐 하면, 내가 여기 살다가 이 세상에서 고생을 많이 했지만, 죽어서는 편한 곳에 가겠다, 주인공이 누구에요? 주인공이? 나지요. 이걸 히브리서10장에서는 이걸 무엇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바로 내 몸이라 할 수 있어요. 이게 내 몸이라 할 수 있거든요. 결국 천국이라 하는 것을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면, 내가 잘 되는 곳이에요. 내가. 이 몸이 잘되는 것, 내가 잘되는 것. 내가 고생 덜하고 이제 편히 쉬는 곳 = 아주 착하고 살기 좋은 하나님 나라, 편한 나라, 안식의 나라 그걸 생각한 거예요. 우리 시작은 내 몸이잖아요.

히브리서10장 5절에 나오는 주께서 임하실 때, 하나님이 임하실 때에 천국은 누구 몸 중심입니까? 예수님 몸 중심이지요. 그러면 갈아타기를 해야 되는 거예요. 어떻게? 내 몸 중심에서 예수님 몸으로 갈아타기를 해야 되는데 이게 인간으로서는 능력 밖의 일이에요. 인간은 불가능해요. 아까 결혼 이야기했지만, 사람이 결혼한다고 상대방을 사랑합니까? 개가 웃을 일이지. 턱도 없는 소리에요. 인간은 자기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제 1순위가 나고, 그 다음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이 2순위이고, 그리고 나를 안 잘해줘도 내 몸에서 나온 새끼들이 다음 순위고 그렇게 되는 거예요. 아니면 2번 3번 바꿔도 돼요. 제일1순위가 나고 그 다음에 나의 몸에 확장, 연장이라 하거든요. 내 몸이 늘어난 것, 자식들이죠. 그 자식은 결혼하고 태어나도 내 몸둥아리 하고 붙어있는 거예요. 내 몸이 붙어있기 때문에 아무리 부모를 떠나서 한 몸을 이루라, 에베소서5장에 나와도 그건 성경이고. 우리는 그거 읽지도 않으니까. 우리는 그냥 육신의 본능만 믿으니까 내 자식은 내 자식이라. 어쩠던 간에. 그 자식을 위해서 내가 모든 걸 버릴 수 있다면 나는 보람을 느끼고 사는 희망도 내 자식 잘되고 나는 자식을 위해서 장렬하게 내어 죽는 거 그런 것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선이라고 여기는 겁니다.

그 다음에 나한테 잘해줄 때 이리 되거든요. 모든 출발은 동심원이에요. 동심원. 중심이 하나있고 그 동그라미 옆으로 퍼지듯이 연못에 돌 던지면 파도가 동심원 나오듯이 자기밖에 모르는 거예요. 언제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내가 다니는 교회에 간다하지만, 그 교회는 나를 무시하게 되면 “에이, 잘 먹고 잘살아라, 이단아!” 하고 지는 다른 교회로 가버리지요. 멀쩡하던 교회가 갑자기 졸지에 이단 되어버려요. 왜, 자기를 무시하기 때문에. 자기 무시하는 게 딴 게 아니고 지가 꽃꽂이 했는데 어느 장로가 지나가면서 “오늘 꽃꽂이 별로네.” 이 소리해가지고 삐져가지고 그 교회 안 나오는 거예요.

아무리 교회 다녀도 삐지는 것은 한 순간이거든요. 백날 잘해도 “아이고, 집사님 머리 파마가 잘 안 나왔습니다.” 하고 권사가 이야기하니까 “니가 나오는 교회 안 나온다.” “하여튼 나에 대해서 털 하나 건드리기만 해봐.” 해서 안 나오지요. 그래서 교회가 친목단체라는 겁니다. 동우회고. 각자 자기 잘되기 위해서 하기 때문에 천국은 어림도 없습니다. 천국하고 관계없어요. 수요일날 아이스크림 이야기 했지요. 복음을 빨아야 될 건데 막대기만 쭉쭉 빨고 있다고요. 복음도 없는 건데 자기 사랑을 자랑질하는 것만 빨고 있으면서 교회 다니는 거예요. 무슨 그런 천국이 다 있어요?

분명히 예수님께서 이 땅에 천국오지 못하면 죽어서도 가지 못한다는 것이 주님의 원리거든요. 왜 그러느냐 하면 천국은 내 몸이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몸의 안에 내장되어 있는 게 천국이다 이 말이에요. 이걸 아셔야 돼요. 바로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가 아니고 내 있는 곳에 천국 있는 거예요. 나 있는 곳이 천국이에요. 아무리 살기 좋아도 거기 예수님 참여 안하면 천국 아닙니다. 지옥입니다. 아무리 살기 좋아도.

그런데 인간 세상은 뭐냐 하면, 자기밖에 모르는 세상이거든요. 자기밖에 모르는 세상을 보여주는 대변해 주는 게 뭐냐 하면, 바로 부자가 자기 동생 걱정하고 있는 거예요. 부자가 자기 동생을. 그것부터가 얼마나 이기적입니까?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죽었다가 살아나온 그 나사로는 부자가 생각하기에는 부자와 관련된 나와 관련된 나사로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러나 정작 나사로는 부자와 관련된 사람이 아니고 모든 택한 백성과 구원 받기로 예정된 자와 관련된 자죠.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나사로가 천국 가는 것은 구원 받기로 작정된 예정된 자가 되는데 부자는 옛날에 앞집에 살았다고 해서 자기하고 관련된 인물인줄 알고 아직도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니 내 옆집에서 나한테 없이 주워 먹었잖아. 거지야! 내 개가 니한테 핥고 그랬잖아.’ 자기하고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거 완전히 뜯어고쳐야 돼요. 이거 안 뜯어고치면 구원받기 곤란합니다.

예수님이 우리하고 관련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은 구원받는 자와 관련되어 있습니까? 그걸 영어로 We라고 해요. 미국에서 강의할 때 그걸 We라고 했지요. 주님은 우리가 따로 있어요. 나를 포함한 우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일방적 오판이고 주님이 생각하는 우리는 이스라엘은 따로 있다 말이죠. 우리는 그곳에 갈 수가 없어요. 왜냐 하면, 모든 인간은 예수를 핍박하기 때문에 예수님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따로 만든 천국 백성에 우리가 줘도 안가요. 우리는 거기에. 우리는 우리의 본성상 우리는 밀쳐야 될 본성이기 때문에. 누가 그를 믿었으리요, 아무도 믿지를 못해요.

다만, 성령이 와서 주께서 따로 만든 그 우리에 우리가 합류되어 있다는 사실을 통보해 주지요. “니가 좋던 싫던 이미 예전부터 야곱과 한 통속이야.” 라고 통보해 줄 때, 예수님은 나와 관련된 분이 아니고 내가 소속되어 있는 우리와 관련된 분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교회 만들면 안돼요. 교회에 내가 소속되어야 되지 내가 따로 교회 만든다는 것은 이것은 있을 수 없는 겁니다. 그건 내 교회 돼요. 내 교회. 그야말로 우리교회가 되어야 돼요. 우리 교회. 우리교회 압니까? 우리교회가 되어야 되지 내 교회 되면 안돼요. 내 교회 되면 안 된다 말이죠. 자살과 관련되어서 중요한 팁입니다. 중요한 건데, 다시 한 번 말씀드릴게요.

어렵게 느껴져서 천천히 하겠는데, 부자 옆에 나사로 살았잖아요. 누가 봐도 서로 아는 사이입니다. 하지만 부자가 착각한 게 거지 나사로가 본인이 믿음 좋아서 구원 받은 게 아닌 거예요. 그게 아브라함이 이야기합니다.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모세와 선지자의 말을 믿지 아니하면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나도 믿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말은 달리 이야기해서 거지 나사로가 구원받는 것은 거지 나사로의 믿음 때문에 구원받는 게 아니고 모세와 선지자의 글 주의 말씀에 거지 나사로가 구원되기로 작정된 사항을 예수님이 와서 그를 건져내기 때문에 천사를 파견해서 건져냈기 때문에 구원받은 거예요.

성경이 모세와 선지자의 글 이 성경 말씀의 주인공이 거지 나사로가 아니고 거지 나사로를 구원하신 구원자가 그 말씀의 주인공이 되는 겁니다. 어느 인간도 구원될 때 본인이 주인공 돼서 구원받은 인간은요, 진짜 손에 장을 지을게요. 어떤 인간도 자기가 눈치 채서 구원받은 사람 아무도 없어요. 왜냐 하면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 하나님은 알아요. 다. 하나님을 아는데 그 하나님이 가짜니까 우리가 조작된 나의 투사거든요. 내가 상상해서 만든 하나님이고.

하나님을 안다고 구원받지 못하고 예수님의 아버지를 알아야 되는데 예수님의 아버지는 누구만 아는가 하면, 예수님 본인만 알고 나머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러니까 우리는 천국 몰라요. 모르니까 못 가지요. 모르니까 못 가는 거예요. 태어나가지고 서울과 대전과 부산만 아는 어떤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태어나서 그런 사람은 없지만. 그 경부선만 아는 사람에게 “어이! 내 목포 있는데 목포에 오라!” 하면 그 사람 목포에 가겠어요? 안 가겠어요? “목포 어디인데? 대전과 서울 중간에 있어? 어디 천안이야?” “아니야.” “그럼 대전하고 대구하고 김천에 있어?” “아니야” “그러면 없네.” “목포라는 게 없잖아.” 그 사람한테는 없는 거예요. 천국은 태어나면서 인간에게 천국은 있다? 없다? 없는 거예요.

천국이라는 게 없어요. 인간은 뭐가 있는가 하면, 죽게 되면 좋은데, 하나님 계시고 뭐 삼위일체 계셔가지고 좋은데, 받아주시는 그 동네를 생각하는 거예요. 그 동네는 주인공이 누구냐 하면, 자기가 행복해지는 주인공이 누굽니까? 본인이 행복해지는 거예요. 본인이.

그래서 이슬람 코란에 나오는 천국은 어떤 천국이냐 하면, 바로 그 동네 이슬람 동네가 워낙 가물기 때문에 사막이기 때문에 일단 천국이 뭐가 구비 되어있는가 하면, 오아시스가 구비되어 있어요. 그리고 거기는 물이 없기 때문에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골프장도 준비되어 있어요. 그리고 이슬람 문화가 뭐냐 하면, 일부다처제이기 때문에 거기에 보면 여자들이 또 많아요. 그래서 코란의 천국은 여자 많고 물 많고 골프 칠 수 있고 잔디밭 있고 마음껏 뛰어노는 그리고 먹을 것 많은 곳, 그 아이디어가 에덴동산에서 나왔잖아요.

에덴동산에서 한 번 쫓겨났으면 에덴동산 자체가 없어졌어요. 없는데 어디로 가요? 아예 없는데 뭘 회복해요? 깨졌는데. 없어요. 그래서 이번 강의에 여기까지 하면서 천국은 없습니다. 천국은 없다 말이죠.

자, 이야기 한 번 들어보세요. 천국은 없거든요. 천국은 인간에게 없는 곳이에요. 그 말은 인간은 갇혀있다 보면 돼요. 그 갇혀있는 것을 사도바울은 율법에 갇혀있다고 본 겁니다. 자, 요 말을 한 번 봅시다. 우리가 보통 갇혀있다는 말은 전기 울타리에 갇혀있다. 이렇게 말 되지요. 섬 같으면 바다에 갇혀있다. 빠삐용처럼. 빠삐용은 결국은 헤엄쳐서 탈출했습니다마는. 어떤 섬이라 하는 것은 바다에 갇혀있는 거죠. 그런데 바다에 갇혀있다, 전기 철조망에 갇혀있다, 또는 휴전선에 갇혀있다 이것은 납득이 되는데 율법에 갇혀있다는 말이 되느냐 말이죠. 이게 유대인한테는 납득이 안 되는 거예요. 왜냐 하면, 율법 법이 양심의 법하고 동일하기 때문에 갇혀 있는가 싶어 마음먹은 내가 지키면 마음먹기 나름이지요. 내가 지키면 지키는 거고 안 지키면 안 지키는 거고. 그걸 갇혀있다는 말을 할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율법에 갇혀있다는 말은 달리 말해서 니가 저주와 죄에 갇혀있다는 말을 설명하기 위해서 철조망 같은 역할을 하는 율법을 제시한 거예요. 니가 율법을 지키고자 해도 못 지키는 것을 봐서 너는 그 율법을 못 지킬 경우에 주어지는 벌칙이 뭐냐 하면 저주입니다. 신명기28장에 나오지요. 니가 만약에 율법을 못 지키면 들어가도 저주받고 나와도 저주받고 떡 반죽이 저주받고, 떡 반죽이 저주 받는 경우는 어떤 경우겠어요?

떡을 놓고 돌아서니까 곰팡이 핀 거죠. 떡 반죽이 저주 받고 먹지를 못하는 거예요. 보고도. 배고파도. 니가 꼬리가 될지언정 머리가 되지 못하고. 이게 신명기28장에 나오는 잘된다는 것은 1/3이고 못되는 것은 3/4그거에요. 결국 더 확장됩니다. 국가적으로 더 확장돼요. 민족적으로 더 확대해서. 니가 이제는 누구의 종이 되고 노예로 팔려갈 것이고 그렇게 되어있어요.

오다가 KTX에 나오는 뉴스를 보니까 혹시 가족 중에서 북에 잡혀 간사람 신고하세요, 라고 되어있어요. 지금 요 기간이. 북에 잡혀 간사람 신고하는 기간인데. 그 사람이 왜 북쪽에 갔지요. 개인이 가고 싶어 갔습니까? 아니면 왜 갔지요? 6.25때 왜 그 사람이 북으로 갔습니까? 끌려간 거죠. 철사 줄로 꽁꽁 묶여 미아리고개 넘어가면서 끌려갔잖아요.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그것도 신발도 안 신고 맨발로 절며, 절며, 울고 가신 님이시여, 그 고개가 무슨 고개? 점쟁이 많은 미아리고개.

왜 끌려갔지요? 개인이 원한 것도 아니고 개인이 도적질해서 끌려갔습니까? 그러면 그 사람이 나쁜 짓 한 것도 아니고 그러면 그 사람이 효도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동네방네 길 깨끗이 쓰니까 안 끌려간 거예요? 성경에서 군사라는 말은 개인을 초월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개인이 아무리 착하고 아무리 양심적이어도 이미 악한 권세가 와버리면 이건 끌려가게 돼있어요.

따라서 주님의 모든 복음은 뭐냐 전쟁입니다. 전쟁인데 이 전쟁은 사적인 전쟁이 아닙니다. 그리고 인간이 합쳐서 이길 전쟁도 아니에요. 이것은 그야말로 힘을 빼야 되고 이 전쟁은 사람에게 속한 전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이야기한 겁니다. 다윗이 형들보고 이야기한 거예요. “형님이여, 이 전쟁은 골리앗 전쟁은 사람에게 속한 전쟁이 아니고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하고 던지지요. 분명히 남들이 보기에는 단련된 기술로 던진 것 같은데 만군의 여호와 개입으로 본 겁니다.

우리가 다니는 이 현실에 대해서 부자는 뭔가 오해하고 있어요. 거지 나사로가 나하고 좋은 관계니까 거지 나사로 보내면 동생이 살 걸로 본 거예요. 아직도 지옥가도 그는 개인적인 생각에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 세상을 다스리는 그 어두움의 권세 악한 권세에 대해서 감히 오지를 않고 있어요. 지금도.

나사로가 남들이 보기에는 개인적인 믿음이 좋아서 갔겠지만,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나사로가 구원받은 것은 모세와 율법의 선지자의 말씀에 의하면 선택받아서 간 거예요. 선택 받았고 그 선택을 받았다는 말은 거지 나사로와의 관계가 아니고 주께서 율법을 주면서 이 율법을 완성하실 분을 따로 한 몸을 예비하신 거예요. 그 몸, 그 아들이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여파로 효과로 누가 구원받는가, 거지 나사로가 구원받았습니다.

그 이야기가 모세와 선지자의 속에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던 바리새인들은 모세와 선지자를 아무리 봐도 그 이야기가 모세와 선지자의 글에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그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달달 외운 사람인데 방금 그 이야기가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아니 솔직히 딱 깨놓고 말해서 예수가 성경에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그들이 아는 구약성경에. 안 나오지요. 안 나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시고 가신 취지가 뭐냐 하면, 그들이 아무리 봐도 출제 밖의 이야기에요. 수능 치는데 출제 밖에서 문제를 출제 시킨 거예요. 쉽게 말해서 모세와 선지자를 통해서 나 예수를 발견하라, 그 문제를 낸 겁니다. 그 문제를 냈는데 거지 나사로는 알아 맞혔고 부자는 못 알아맞힌 거예요.

그러니까 형과 똑같은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동생들에게 그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 나와서 백날 이야기해봤자 이미 인식의 틀 자체가 ‘그래, 내가 죽으면 어디 가겠지.’ 그런 사고방식 프레임을 인식의 틀을 갖고 있는 이상은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는 게 아니고 “어떻게 하면 내가 구원받습니까?” 구원파가 나온다니까요. 구원파가 유 병언이 나와요. “언제 구원받았습니까?” 거기에 한국교회가 나왔고 개혁주의 신학이 나옵니다.

개혁주의 신학의 특징은 사람은 어쨌든 간에 구원시키려하는 거죠. 그러니까 구원시키려하면 그 사람의 행함을 정립해줘야 되니까 설교와 모든 내용이 “요렇게 행하시면 됩니다.” 그 쪽으로 설교하고 교인들은 그게 좋다고 그 교회 돈 내고 이제는 재건축한다고 수십억내고. 그냥 위에 천장만 고치면 될 걸 재건출한다고 다 뜯지요. 이건 모든 교회가 다 그래요. 장사를 못 하던 간에 장사는 지 장사고 인테리어를 하든 관계없어요. 돈만 안내면 돼요. 자꾸 협박 공갈쳐도 돈 안내면 불난다고 백날 쳐도 그 공갈에 이제는 안속아 넘어가면 돼요.

자기 몸을 중심으로 해서 죽음을 거론했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그러니까 죽음이 없는데 일방적으로 자기 몸을 자기가 살해함으로서 이게 죽음이라고 반항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 “니 안 죽어도 죽은 거야.” 이것이 하나님 뜻인데 이미 죽은 자가 그 죽음을 거부하고 따로 죽음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주님이 주신 이 세상 보는 관점을 나는 못 받아들이고 ‘그동안 내 몸 중심으로 살았던 이 사고방식을 나는 고집해서 이것을 내가 알아서 내 인생 끝장내겠습니다.’ 하는 사고방식이 자살이에요.

그러니까 만약에 인간승리, 자살한 사람이 승리하려면 진짜 죽어 없어져야 되는데 인간은 죽어도 죽습니까? 안 죽습니까? 안 죽어요. 그래서 내가 죽음이 없다는 이야기했어요. 백날 죽은 사람 깨어 나가지고 전기다리미 툭! 툭! 해서 깨어나도 한달만에 또 죽어도 이게 안 죽어요. 아~ 참 팔자 더러운 팔자다.

죽어서 끝장이라 하면요, 저도 죽겠습니다. 덥고 춥고 뭐하려고 꼴 보기 싫은데 더 삽니까? 어떤 사람은 4대강 실패했다고 죽겠다는 사람 많겠고, 어떤 사람은 세월호 보고 난 뒤 죽은 사람도 있었는데 충격 받아가지고. 세상이 마음에 안 드니까 죽은 거 아닙니까? 마음에 들면 죽을 리가 있겠습니까? 마음에 안 드니까 죽은 거잖아요. 그럼 이 세상이 마음에 다 들어요? 이 세상이. 껌벅 껌벅 나갔다 들어왔다 마음에 듭니까? 형광등도 마음대로 안 되는데. 5분 직전에 고쳤는데.

세상이 내 맘대로 되는 게 어디 있어요? 그러면 제일 마지막에 가서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면 제일 속편한 쉬운 방법이 뭐냐, 자살하면 되는 거예요. 결국 자살하는 사람은 “나처럼 해봐라. 요렇게!” 그걸 가르친 거예요. 결국은. 얼마나 편리합니까? 해도 해도 안 되면 눈감고 죽으면 그만이니까. 참 세상 편리하네.

이게 바꿔지질 않습니다. 성령이 오지를 않으니까. 내 중심이 바꿔지지를 않는 거예요.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받습니까?” 이런 질문 자체가 우리는 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예요. 왜, 말씀을 위해서 진행한 것은 오직 한 몸이니까. 내 몸이 아니고 내 몸을 비켜서 다른 몸을 겨냥했는데, 우리는 모든 성경 말씀을 내가 복 받는 쪽으로 내 집안 잘되는 쪽으로 내 인생 풀리는 쪽으로, 안 풀리면 자살하면 되지요. 마지막 시위하는 것 같아요. 하나님 앞에. “주여, 이리 안 해주면 죽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죽는 게 좋습니까?” 이런 식으로 막 자기 엄마한테 대드는 그런 드라마도 있어요. 아침 드라마에 보면. 청담동 스캔들인가.

뭐든지 안 되면 약 먹으려하고 뭐든지 안 되면 죽으려하고 어린애들 차 안사주면 뛰어내리려하고 스마트폰 안 사주면 죽는 거고. 전부 다 세상 전체가 완전히 지 목숨을 담보로 땡깡 쓰는 세상이 되고 말았어요. 땡깡. 참 기가 찰 일입니다. 그러니 세상이 완전히 니 죽고 내 죽자, 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지요. 그 원인이 다 뭐냐 하면, 율법을 줘가지고 사람들로 하여금 개무시를 한 거예요. 하나님께서. 개무시를.

나는 니하고 상대를 안 한다. 이 율법을 지킬 분은 너희들 가운데 없고 내가 너희들 가운데 따로 보낸 그 아들만이 지키라고 내가 그 사전에 율법을 줬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손대지 마! 손대지 마! 그런데 너희들은 그 메시아에 따라 붙이려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잘 보이려고 율법을 스스로 마치 내가 지킬 수 있는 법인 줄 알고 그걸 받아들인 거예요.

“그렇다면 예수님도 지켜서 구원받았으니까 그러면 그걸 예수님과 같이 말씀 지킨 사람도 구원 받겠네요.” 어떻습니까? 아,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 꽤 많아요. 목사들 가운데 굉장히 많습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은 것처럼 의롭게 된 것처럼 여러분들도 율법 지킬 수 있으면 의롭게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율법을 못 지키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대신 지킨 것이지 사실은 여러분들이 율법을 지킬 수 있는데 여러분들이 죄가 많아서 못 지킵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많아요. 굉장히 많습니다.

왜 그런 말 하느냐 하면 그렇게 전제로 깔아줘야 성령 받은 사람 같으면 이제부터는 율법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 준비된 말을 하고 싶어서 멘트를 날리고 싶은 거예요.

다시 이야기합니다. 율법은 인간이 지키라고 준 게 아니고 인간을 애초부터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권세 속에 있는 거예요. 아까 6.25이야기했지요. 6.25할 때 김일성이가 누구하고 이야기했습니까? 이승만 대통령하고 이야기했지 대구에 사는 우리 아버지에게 한 게 아니지요. 자기들끼리 이야기해놓고 전쟁은 누가 일으켰습니까? 김일성이가 일으켰잖아요. 남침했잖아요. 그럼 개고생은 누가합니까? 국민들이 개고생 했잖아요. 이게 세상이에요. 이게 현실이에요.

내가 착하다고 내가 바르게 산다고 세상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에요. 성경은 분명히 합니다. 너는 권세 아래 놓여있기 때문에 권세가 니가 소속이 어디냐가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지 니 사적으로 몸부림치고 힘들게 뭘 한다고 해서 니 팔자가 나아지는 팔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 가운데 사람들이 착한일한다고 나중에 팔자 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착한일한다고 팔자 피는 게 아닙니다. 못돼 처먹은 인간 출세하고 재벌3세하고 결혼하고 많습니다. 드라마니까 복수가 되지 사실은 복수가 안돼요.

모든 것은 성공은 타이밍이고 백날 아무리 성실해도 타이밍이 안 맞으면 쪽박 차고 부도나는 겁니다. 하루아침에 훅 가요. IMF 터질 때 누가 누구 잘못 없어요. 그냥 산사태, 해일 퍼지듯이 다 퍼져가지고 성실하게 장사하는 사람들 망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 우리교회에 그런 사람 많아요. 그게 전도서입니다.

전도서는 분명히 헛되고 헛되다고 분명히 언급했거든요. 그게 헛된 걸 아는 게 지혜라고 했습니다. 그럼 헛됨 속에 누구도 포함됩니까? 본인이 포함되지요. 그럼 본인이 구원받겠다고 하는 이것도 헛된 거죠. 인간은 애초부터 구원 받겠다고 하는 자체가 탐욕이고 욕심이고 그게 마귀의 술책입니다.

구원 받아라! 구원 받아라! 우리가 구원 받을 것 같으면 주께서 우리를 생명나무에서 쫓아낸 취지가 날아가 버리잖아요. 마귀가 노리는 것은 그겁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들에 대한 조치는 잘못됐다. 그걸 자꾸 데모하자는 거예요. “하나님이 인간에 대한 조치가 너무 과했다. 그건 사랑의 하나님답지가 않다. 그러니까 니는 내 편에 설래? 하나님 편에 설래? 우리 같이 시위하자.” 이런 쪽으로 나서는 거예요.

제가 부산강의에서도 그런 이야기했지만, 목사들 99.99%가 예수를 안 믿어요. 목사들 마음속으로 다 그런 생각해요. 뭐냐 하면, 목회 한 3,40년하고 나이 60넘어가면 ‘어느 놈이 천국 가본 놈이 있나, 예수 본적이 있나, 예수 있다고 장사용으로 내가 이렇게 이야기는 하지만, 본인이 예수님 있다는 생각도 안 들고 하나님이 계시다는 생각도 안 들고 그것은 죽어봐야 알고 가봐야 아는 기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거예요.

다만, 믿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은 등록한지 6개월 이내의 사람들,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분명히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걸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속성입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십자가의 피가 나를 용서한다는 것은 그게 여전히 나는 믿는 게 아니야, 이것은 괜한 낭설이야, 사도바울이 하나의 개인적인 착각이었어, 라고 아무리 해도 믿어질 때는 이것은 인력이 아니고 성령이 임해서 그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제가 부탁하는 것은 수시로 믿지 마세요. 믿지 않아야 우리가 믿음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아는 겁니다. “내가 믿습니다.” 이리 돼버리면 진짜 믿음이 가려져요. “내가 미쳤나? 그걸 다 믿게.” “어, 믿어지네. 내가 왜 이러지?” 이리 되어야 된다니까요. 그렇게 되어야 믿어야 될 부담이 없어요. 스트레스를 안 받아요. 안 믿어도 믿어지는데 뭐하려고 믿을 필요가 있어요? 속 편하게 믿지 말지. 왜? 믿지 않아야 믿어지니까. 그래야 내가 피동형이 되니까. 내가 믿음의 주인공이 아니고 주님이 주인공이라고 믿게 하는 것이 날마다 느껴지는 그 즐거움 있잖아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내 구원에 대해서 어떤 짐을 내가 내 구원에 대해서 어떤 더 보태야 된다는 스트레스를 받아야 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그거 보탠다는 자체가 마귀의 시험인데. 그 말의 한 마디가 히브리서10장 5절에 나오는 말, 나를 위해서 한 몸을 예비했다. “니는 그냥 관람만 하고 구경만 해라. 내가 알아서 다 할게.” 차사고 났으면 하이카 부르면 돼요. 내 하이카가 알아서 다해준다는 거예요. 실제로는 알아서 다 안 해줘요. 하여튼 CF는 그래요. CF에 보면 깊은 산골이라 해도 와요. 자장면 배달해도 오고 싶은 마음으로 온다니까요. 그런데 실제 해보니까 안 와요. 그러나 주님은 와요. 그리고 온다는 게 믿어져요.

마르다 마리아 오빠가 죽고 난 뒤에 아플 때 오신 게 아니고 죽고 난 뒤에 오신 이유는 그것은 누이동생을 가르치기 위해서 오빠를 계속 이용한 겁니다. 죽고 난 뒤에 나흘 만에 다시 튀어나와서 마르다로 하여금 처음부터 보지 않고 믿는 게 믿음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주는 거예요. 내가 믿을만해서 믿어버리면 그건 나에서 나오는 믿음의 같은 노선이기 때문에 그건 가짜거든요.

내가 만약에 믿을만해서 믿어버리면 내가 그만 치매 걸리면 믿음은 어떻게 됩니까? 60년 믿다가 치매 걸리면 안 믿으면 어떻게 돼요? 그럼 지옥 갈 거예요? 치매 걸리던 뭘 하던 구원받게 되어있다는 믿음이 치매 걸리기 전에 이미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 전에. 그럴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 그런 믿음이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어떤 흔적을 남기는데 그게 뭐냐 하면, 니가 하는 모든 일은 너로 하여금 천국 갈 수 없게 만드는 일들만 니가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늘 확인시켜 주는 작업을 성령을 통해서 하게 되시는 겁니다.

그 성령을 통해서 하는 그 작업마저 그 하는 그렇게 해야 될 작업마저 하나님이 이미 예언되어 있다는 것이 히브리서10장16절,17절의 말씀입니다.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치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치 그 다음에 뭡니까? 아니하리라. 이미 인간들은 구원받은 자가 어떤 죄를 짓는가를 사전에 아시고 믿음을 준 거예요.

그래서 너의 구원은 너에게 달린 것이 아니고 10절에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거룩함을 얻은 자가 누구라고 했습니까? 나가 아니고 우리라고 했어요. 우리가 거룩함을 얻지요. 이것은 사전에 이미 다 알고 치는 고스톱이라니까요.

돈10원 잃었다고 너무 울고불고 하지 마세요.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에요. 아버지하고 주님하고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니까요. 그게. 욥이 환난 받았지요.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어요. 내기였어요. 그거. 욥만 당했지. 그게 남의 이야기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보고 하는 이야기에요. 10분 쉽시다.

첨부파일 : 안양20141114a-히8장13절(몸과 언약) - 이 근호 목사.hwp (33.5K), Down: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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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8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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