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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97강-YouTube강의(중보자)141204-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출애굽기

97강-YouTube강의(중보자)141204-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80.231.84.30)

97강-YouTube강의(중보자)141204-이 근호 목사

이번에는 97강 제목은 “중보자”입니다. 중보자. 세상의 모든 종교는 중보자가 별로 없습니다. 구원받는, 해탈되는 본인이 신과 좋은 관계 맺으면,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좋은 평가를 받으면 죽어서 천국 갈 수 있기 때문에 구태여 중보자라는 것이 필요가 없죠. 아마 중보자 대신에 사람들이 안내자, 인도자가 필요할 거예요. 천국 가는 어떤 정보나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필요하죠. 사람들은 예수님도 그런 분인 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못 가는데 그 분이 천국에서 왔기 때문에 천국은 이렇게 이렇게 하면 간다고 우리에게 언질을 주시고 좋게 인도해 주시고 정보를 알려 주시면 우리는 그 정보를 받아서 구원 받겠다는 시도를 하는 거죠. 이러한 생각은 구약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닙니다. 구약 이스라엘 사람들도 모세라든지 이런 선지자과 함께 할 때 그 선지자의 기능, 선지자의 역할을 자기가 모르는 것을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천국에 대한 그 정보나 내용에 대해서 우리가 참조를 하게 되면 우리가 그 말씀을 순종하고 지키면 하늘나라 백성이 된다. 그런 쪽으로 생각을 한 겁니다.

그런 쪽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의 연결 고리가 바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으로 서기관들로 이어졌고 오늘날 한국교회까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말씀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데, 하나님께 뭘 지킬지 몰랐는데, 주께서 어떤 목회자를 통해서 설교자를 통해서 이것 이것 하기만 하면 된다고, 언질만 주면 우리가 그대로 지켜서 나중에 천국에서 만납시다.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런데 실제로 중보자 되신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오히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그 당시의 민중들에 의해서 살해당하신 분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람은 진정 자기 자신부터 돌아볼 줄 알아야 하는데 예수님 오시지 않고 어떤 위대한 선지자나 이렇게 오게 되면 자기들은 마중 나오고 대환영하고, 그 분 앞에 그야말로 자기를 드리면 서로서로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그 오시는 분을 영접하면 또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영접할 것이라는 그 원만한 관계를 생각했던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라는 중보자가 우리를 죄인으로 몰아세우고 죄를 지적할 줄은 상상도 못했죠. 예수님 입장에서 보게 되면 우리는 구원받거나 영생 얻거나 천국 갈 그러한 입장이 되지 못해요. 애초에 그런 자격이나 권한도, 그럴 입장도 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보자나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차이점은 뭐냐 하면 우리 죄를 지적하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거죠.

“진리를 알겠습니다. 또 구원을 받겠습니다. 또는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진리를 알 수 있습니까?” 라는 그렇게 우리에 대한 아주 간절한 그 희망과 요구마저도 그게 바로 죄라고 지적하시는 분이 진짜 살아계신 우리 주님이요, 중보자이십니다. 그걸 니가 알고자 하는 의도가 뭐냐? 하나님만이 알고 있어야 될 것을 니가 왜, 죄인인 니가 왜 알아야 하냐는 겁니다.

정말 하나님을 만났을 때, 우리가 가짜로 상상한 하나님을 생각할 경우에는 모든 게 원만한 관계이지만 실제로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난 분들이 있어요. 그 만난 분들에 의하면 거기서 뭔가 삐걱거리고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출애굽기 33장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 장면인데요. 거기서 모세가 이걸 요구합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의 얼굴을 내게 보여 달라는 거예요. “주의 영광을 내게 보여주시옵소서.” 18절에 보면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그럴 때 하나님께서 모든 형상을 지나가게 하시면서 하는 말이 너는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세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하는 말 취지를 하나님은 제대로 알아들으시고 그게 모세가 뭐냐, 얼굴을 한 번 보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모습을 직접 보게 해달라는 그런 부탁으로 주님께서는 제대로 이해를 하신 거예요. 그런데 여기 20절에서 하신 말씀이 너는 내 얼굴을 보지 못한다 했습니다. 요한일서 4장에도 그런 말씀이 나와요.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인간 자체가 고장 났고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인간 자체가 뭘 보게 되면 그 사람이 본 형상을 반드시 우상화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보이는 족족 모든 것을 우상화해요. 가짜 신이 되어 버립니다. 실제로 그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되어 그 형상을 만들어내고 기억하고 한다면 그 자체가 진짜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우리 죄인된 죄 속에 품어있는 인간들이 고이 간직할 수 있는, 그런 방식의 형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형상은 우리에게 영원한 우상이 되는 겁니다.

보고 믿는다는 것 자체가 우리한테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근데 사람은 자꾸 보고 믿고자 하는 거예요. 모세도 예외가 아니에요. 한 번만 보여주시면 딱 기억에 새겨놨다가 그 모습 그대로 만나면 아이구, 하나님 맞죠? 라고 반갑듯이 영접하고 싶다는 거예요. 마치 우리 인간세계에서 오랜만에 동창생을 만나고 헤어졌다면 다시 그 모습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그 동창생이라고 딱 알아보는 것처럼. 정답을 알아보는 것처럼. 하나님도 그런 식으로 우리 쪽에서 알아볼 수 있겠다. 이래 생각하는 거예요.

근데, 이렇게 되어 버리면 우리가 죄인이라는 자체가, 근본적으로 죄인이라는 자체가 감추어져버립니다. 이게 드러나지 않아요. 죄인이라는 것은, 죄인의 특징이 뭐냐, 자기가 본 것을 섬겨서 그것이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활용하겠다는 그 의도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다 철거해버립니다. 자, 그렇다면 그 다음 문제입니다. 우리가 보지 않고 어떻게 구원받는가. 보는 것이 가장 확실한데. 보지 않으면 마음속으로 자꾸 상상이 되는데. 상상은 항상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보는 것은 확실하니까. 애매모호한 그런 식의 믿음보다도 봐서, 확실하게 봐서 이거다! 하고 길게 오래 새기는 그것이 믿음 같은데. 그건 우리 생각이고요.

하나님을 그런 생각 자체가 죄에서 나온 것이라고 여기고 거절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 진짜 중보자를 만났다고 확정지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기능적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의 죄와 관련되어 있는 문제입니다. 로마서 9장 21절에서 2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어리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받기로 예비 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영광을 보여주기 위해서, 담기 위해서 그릇을 일방적으로 만들었다는 거고, 그 만들어진 그릇을 성도라고 하는 겁니다. 흔히 우리가 우리 죄인의 입장에서 성도라고 할 때, 내가 나한테 어떤 선한 것들을 꽉꽉 채워서, 그래서 내 마음이 개과천선해서 나는 전에는 나쁜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착한사람이 되었다는 내가 착한사람 되는 어떤 존재를 그냥 가져오는, 그냥 붙드는 거, 그걸 성도의 본 모습이라고 여기는데 성경에서는 그렇지 않고 우리가 우리한테 어떤 어떤 조치를 할 게 전혀 없습니다.

그냥 만들어진 그릇 자체가 하나님의 자비를 담고 사랑을 더 담는 그릇으로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고, 우리가 말고 주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만들어진 기능적인 그릇이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우리한테 내리는 어떤 조치는 일체 없다는 이야기죠. 이것에 대해서 섭섭하게 여긴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예수님을 중보자로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보자의 십자가의 능력을 받은 사람이라면 오리려 이러한 기능을 굉장히 용납을 하게 되고 반기게 되고 감사하게 되고 너무너무 기뻐할 겁니다.

앞으로 우리 인생이 어떻게 꼬이고 어떻게 진짜 쳐 박힌다 할지라도 전혀 개의치 않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용서의 그릇을 담는 그릇으로 만들어주셨다는 이 자체에 대해서 우리는 이 세상에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악한 경우라 할지라도 우리는 기쁨으로 용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불신자들은 자기 자신에 구원에 대해서, 영생에 대해서 아무런 조치가 필요치 않다는 이것에 대해서 격분합니다. 격분하고 화내고 짜증내고 분노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의 그릇에 특징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중보자란 우리가 봐서 믿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되면 어떤 예수든 간에 우상숭배로 자리 잡기 때문에 그렇지 않고 우리가 봐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지금도 우리가 손댈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늘 용서와 자비를 담는 그릇이라고 우리한테 깨우쳐주시는, 성령의 깨우침이 중보자의 능력이고 중보자의 만남입니다.

첨부파일 : 97강-YouTube강의(중보자)141204-이 근호 목사.hwp (18.0K), Down: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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