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강-YouTube강의(꿈)141204-이 근호 목사
96강-YouTube강의(꿈)141204-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80.231.84.30)
96강-YouTube강의(꿈)141204-이 근호 목사
오늘은 제 96강 제목은 “꿈”입니다. 꿈. 창세기 37장에 보면 요셉이 꿈을 꿉니다. 이 꿈이 요셉에게 개인적으로 어떤 이득을 가져왔는가. 그것은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꿈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평소에 잠자면서 꾸는 꿈하고, 아주 특이한 현상으로서 사용될 때 그 내용이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있습니다. 우리의 꿈은 보통 개꿈인데, 성경에 나와 있는 요셉이 꾼 꿈은 그 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그 약속이 담겨 있죠.
보통 우리가 꿈이라 할 때에, 그 꿈의 내용이 어떻게 구체화되는가. 그 구체화되면서 사람들은 꿈을 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상당히 좋게 생각하고 괜찮은 존재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요셉도 마찬가지죠. 요셉이 꿈을 꾸고 난 뒤에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그리고 형제들과 다른 특수한 존재라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요셉이 꿈을 꾸고 난 뒤에 자기를 대단한 존재로, 아주 멋있는 존재로 자기를 바꿔줄 줄 그렇게 알았죠. 요셉마저도 꿈 안에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결론부터 미리 말씀드리면 요셉이 꿈을 꾼다는 것은 꿈이 요셉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고, 꿈 안에 장차 오실 예수님이 담겨 있었던 겁니다. 요셉은 장차 오실 예수님의 언약의, 약속의 완성자인 예수님을 생각한 것이 아니고, 요셉이 어리기 때문에 자기가 형보다 아버지보다 낫다는 자기 사적인 어떤 기대감 같은 게 있었죠.
그런데 그런 꿈에 대해서 오해가 있었는데, 그 꿈이 이제는 요셉으로 하여금 요셉이 꿈을 사적인 용도로 쓰는 것을 방해하고 그걸 비켜나갑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리면 됩니다. 요셉이 꾼 꿈, 다른 말로 하면 요셉이 받았던 하나님의 약속은, 그 약속에 대해서 우리가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의 예상한 뜻을 빗나갑니다. 어긋나게 되어 있어요. 그 이유는 뭐냐 하면은 사람은 자기가 뭐든지 독립하려고 하고 독자적으로 살아가서 그 나름대로의 자기 가치를 유지하려고 애를 쓰거든요.
근데, 요셉이 꿈을 꾸고 난 뒤에 요셉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나의 존재가치가 올라갈까 생각했는데, 그 꿈이 요셉을 그냥두지 않습니다. 요셉의 모든 기대를 산산조각 냅니다. 그렇게 되면 꿈이라 하는 것은 독자적이고, 그리고 독립적인, 우리 존재를 그렇게 독자적인 존재로 만들지를 않습니다. 그냥 존재를 찢어버린다 할까요.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한테 주어지게 되면, 꿈에 담긴 약속이 주어지게 되면 그 꿈을 꾼 그 사람은 자신의 모든 희망이 다 찢어지게 돼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의 이러한 꿈의 성격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은 사람이 기본적으로 본성적으로, 사람은 자기중심으로 독자적인 삶을 꾸려나가려고 합니다. 그 결과로 나오는 것이 뭐냐 하면, 내간 소속되어 있는 단체, 내가 등록된 어떤 집단, 그리고 나와 뜻이 맞는 어떤 그러한 집합체, 공동체, 그런 것을 우린 하나님의 약속의 산물, 약속의 성취라고 그렇게 여깁니다. 빙빙 돌려서 이야기할 것 없고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면 교회가 그런 되죠.
내가 교회 등록하고, 등록한 교회가 크고, 흔히 말하면 부흥되고 확장이 될 때에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라고 그렇게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자격을 등록을 한다든지, 뭔가 내가 여기 집에 혼자 살다가 여럿이 같이 산다는 그것이 전혀 하나님의 약속 앞에서는 그게 의미가 없습니다. 교회 등록 하나, 안 하나 구원하고는 전혀 상관없다는 그런 말입니다. 세례 받으나 안 받으나 전혀 구원과는 상관없습니다. 괜히 교회가 있어가지고 교회 활동을 함으로써, 마치 손에 잡힐 듯한, 자신이 구원받았던 열매가, 결과가 눈에 단체라는 이름으로, 어떤 활동이라는 그러한 집단의 이름으로 온 몸에 그냥 다가왔다고 그렇게 생각하죠.
요셉이 바로 꿈을 꿀 때 자기 속성에 그러한 요소들이 있었다는 것을 요셉이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요셉도 그런 걸 은근히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요셉이 꿈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꿈이 요셉으로 하여금 꿈 안에 들어 있는 진짜 꿈의 완성되시는 주님을 위하여 요셉은 그때부터 자기의 원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가 기댔던, 자기가 의지했던 모든 것은 다 조각조각 깨져버리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것을 오늘날 우리 성도한테 적용을 시켜봅시다.
하나님의 꿈을 꿨다는 것은, 첫째 예상 밖의 어떤 소식이 믿어졌다는 이야기죠. 쉽게 말해서 뭔가 진리를 찾아서 진리를 알아서 구원되겠다든지, 아니면 구원을 받겠다는 욕심 때문에 구원을 받으려면 교회에서, 성경에서 어떤 구절이 나를 구원시키느냐, 이런 쪽으로 먼저 시도를 했다면 그 사람은 백발백중 악에 말려들고 악마에게 조롱거리가 될 뿐입니다. 악마의 이용대상이 되는 겁니다.
많은 종교단체들이, 사람들이 거기에 운집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은 다치지 않고, 자기 자신은 멀쩡하다고 생각하고, 자기 자신은 정상이라고 보고, 이 정상인을 새로운 부운의 정보를 더욱더 가지고 오게 되면 멀쩡한 내가 이제는 구원까지 확보가 된다는 그러한 기대 때문에 그러한 집단의 집단에 모이게 되는 겁니다. 만약에 진짜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만들어진 교회라면 바로 그 점을 지적을 할 것입니다. “너희들이 왜 나를 찾고자 하느냐? 너희들이 왜 성경을 보고자 하느냐?” 그 자체를 문제 삼아요.
자기는 멀쩡하고 자기는 정상인이고 자기는 기대가 있고 희망이 있는데 그 희망을 성경에 있는 정보나 하나님께서 채워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 기대한 그 약속은 요셉이 받았던 꿈하고 내용이 전혀 다릅니다. 요셉은 전혀 사전에 꿈을 꾸리라고 예상한 적이 없습니다. 일방적으로 꿈이 요셉에게 덮친 것은 요셉 본인도 놀란 일이에요. 근데 일방적으로 덮친 겁니다. 물론 꿈이 덮칠 때 요셉은 뭔가 자기가 잘 되리라는 기대가 잔뜩 있었겠지만, 하지만 그 모든 기대는 꿈에 의해서 다 무너지고 다 부서져버리고 맙니다.
기대했는데 기대마저 무너진다면, 애초부터 뭔가 구원받고자 기대해서 교회 나왔다면 진짜 복음 앞에서 그러한 기대와 희망은, 구원에 대한 욕구 이런 것이 다 무너져야 제대로 하나님의 약속을, 약속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이 꿈에 의해서 그렇게 산산조각이 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셉은 예상하지도 않았는데 꿈을 꿨습니다. 꿈꾸고 난 뒤에는 갑자기 욕심이 생겼습니다. 내가 형들보다 위대하게 되고 아버지, 어머니도 나한테 절한다. 이게 분명한 결말이라고 생각하고 은근히 거기에 대한 과정을 자기가 설정했겠죠.
하지만 꿈은 그 요셉의 기대에 부응하지 아니하고 요셉으로 하여금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듭니다. 결국에 요셉이 느낀 것은 절망과 절망의 연속이었습니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못했습니다. 꿈을 꾸기 전보다 더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방적으로 뜻이 임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임하고, 하나님의 십자가 능력이 임한 사람의 공통점이 바로 그겁니다. 자기도 원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의 십자가 복음이 들어왔을 때, 그때부터 그 사람은 자기가 예상치도 못한 절망과 어떤 자기의 모든 꿈이 좌절되는 그런 체험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 가운데서 이 세상의 주인공이, 말씀의 주인공이 바로 나 구원받는 것이 성경의 목적이 아님을 비로소 온 몸으로 체험하면서 깨닫게 됩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내 구원에 있는 것이 아니고 정말 하나님께서는 다른 분을 준비하셔서, 그 분이 이루시는 그 약속의 나라에 우리를 강제로 거기에다 집어넣는 주님의 작업에 우리가 말려들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꿈속의 약속을 제대로 만난 사람의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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