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강-YouTube강의(변함없는 행운)141023-이 근호 목사
91강-YouTube강의(변함없는 행운)141023-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80.231.97.94)
91강-YouTube강의(변함없는 행운)141023-이 근호 목사
이번에는 제 91강, 제목은 ‘행운은 변경되지 않는다.’ ‘변경되지 않는 행운’ 그렇게 하면 좋겠습니다. 로또에 당첨되었을 때에 그것을 행운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로또에 당첨됐다는 것은 이미 그 전에 로또 복권을 샀을 때부터 은근히 당첨을 노렸기 때문에 그걸 행운이라고, 순수 행운이라고 할 수가 없고, 은근히 몇 퍼센트는 기대했던 것이 그 안에 스며들겠죠.
우리가 천국을 생각할 때, 또는 구원을 생각하고 영생을 생각할 때, 그 기대했던 천국이 왔으면 이거는 순순한 하나님의 일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도저히 믿기지 않았는데 믿어졌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졌을 때, 그게 바로 행운입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 다니면서 구원문제에 대해서 이와 같은 조바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어요.
“목사님! 구원받고 난 뒤에 혹시 탈락하거나 취소된 부류 있으면, 그런 일이 생깁니까?” 라는 질문. 불안감에서 오는 질문이죠. 구원을 했다는데, 내 쪽에서 만약에 구원을 간수를 제대로 못 했을 때에, 구원을 잃어버릴 수가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런 질문에는 마치 뭐와 같으냐 하면 로토 복권 1등 당첨됐다는 소식을 tv로 확인하고 당첨금 받으러 은행에 가다가 교통사고 일어나가지고 만약에 죽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과 초조와 유사하다고 보면 되지요.
미리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만 천국에, 정말 주어진 천국의 능력은 변경되지 않습니다. 만약에 어떤 변경되리라고 기대한다는 것은, 아직도 내가 생각한 구원, 내가 생각한 천국을 따로 염두에 두기 때문에 그것이 나의 실수와 나의 범죄로 인하여 혹시나 취소되지 않을까 하는 두근두근하는 마음이 생기겠죠. 우리가 구원이라는 말이 어디서 생겼는지 먼저 생각해 봅시다. 구원이라는 것은 있는 자리에서 훌훌 털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우리가 있는 자리가 홀로 자유롭게 방치되어 있는 자리가 아니고 누가 누르는 자리에요. 누가 누르느냐 하면, 마귀가 눌렀던 자리에요. 마귀가 어떤 식으로 누르느냐 하면, 바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죠. 또 마태복음 4장식으로 이야기하면 돌이 떡 되게 하는, 경제적인 문제. 그리고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때 비로소 사람으로서 살 수 있다는 것. 인기가 높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이유요 목적이라는 것. 세 번째 유혹이 뭐냐 하면, 세상 부귀영화는 우리가 욕망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목표라는 사실.
우리의 욕망은 어디를 향하게 되어 있는데, 어디를 향하느냐, 세상 부귀영화를 향하게 되어 있고. 전부를 갖기를 원하는 것이고. 근데 그걸 누가 이미 갖고 있느냐. 세상 신이, 마귀가 그걸 이미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속에 세상의 번영과 부귀영화를 노리고 있다는 말은 그 자체가 마귀가 쳐 놓은 그물망에서 우리가 허우적대고 있다. 이렇게 보시면 정확합니다. 따라서 그 안에서 우리가 구원을 받겠다는 것은, 구원을 받아야 하는 이유부터 먼저 따지게 되면 간단해요. 제가 성경 한 구절 읽어드리겠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11절,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 11절에 다시 읽어보면,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이 대목을 이야기 하면 만일 누가 말하려면, “내가 여기 있는 너에게 말한다.” 라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라”는 이 말씀은 만약에 누가 봉사할 때에, “내가 그동안 노하우와, 내가 가진 지혜와 축적된 힘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 라는 이야기를 해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안 된다는 겁니다. 이 둘을 합쳐보면,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입장이 안 된다는 이야기에요. 그럴 처지가 못 됩니다.
그것은 인간이 홀로 있는 것이 아니고 제가 아까 이야기 한, 인간이 마귀의 굴레의 지배를 받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귀가 인간에게 계속해서 주입시킨 그 사상과 정신이 뭐냐? 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마귀가 하나님께 버티는 사상과 정신이 뭐냐? 라는 것과 같은 답변이 돼요. 마귀는 도대체 뭘 믿고 하나님께 버티고 하나님의 원수로 살아가는 겁니까? 그것은 바로 “나도 신이다.”는 겁니다. “나는 나다!”는 거예요. 불교식으로 이야기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 세상에 나에게는 내 가치가 전부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계속 버티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 쪽에서 마귀에게 뭐라고 이야기 합니까? “하나님 내가 전부다!” 이렇게 해서 마귀에게 달려듭니까? 아닙니다. 야고보서 2장에 보면 마귀도 알아요. 하나님이 한 분 인걸 압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런 마귀를 영원한 지옥불로 보내는 가장 근거가 뭐냐, 이겁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나는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입니다. 한번 정리해봅시다. 마귀가 하나님께 버티면서 큰소리치는 이유가 뭐냐 하면, “나는 나다! 나는 내가 독자적으로 나는 나다! 따라서 신이라 할지라도 나의 독자성을 인정해 달라. 나는 나에게 유일한 가치는 나밖에 없다.”
이것이 마귀의 정신이라면, 그리고 인간은 그 정신 속에 함몰되어서 같은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면, 거기에 대항해서 하나님이 제시하는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이다!” 이게 아니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진정한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다!” 이걸 가지고 마귀와 마주칩니다. 자, 오늘날 교회를 예를 들겠습니다. 교회 올 때, 사람들은 이미 마귀를 끌고 와요. 마귀의 정신상태를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신에게 기도합니다. “신이시여, 내가 여기 왔습니다. 내가 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건 뭐냐 하면 내가 신이 되고 싶고, 신이 되려면 신처럼 행세할 수 있는 모든 경제적인 사회적인 요건이 조성되면 좋겠습니다. 내가 스스로 비참해지는 건 내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신이시여, 능력 주셔서 나로 하여금 사람답게 살게 해달라!” 라고 하면서 새벽기도, 새벽제단에다가 늘 기도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제대로 복음을 전하는 교회라면 이렇게 이야기해야 돼요. “나는 너에게 관심 없다. 내가 관심 있는 건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그겁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이 말 대신에 설교자가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교회는 여러분들의 영광을 위해서 자존심을 건 교회니까 이 교회를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겁니다. 여러분 자발적으로 봉사하시고 친히 헌금하시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구원하십니다.” 이 이야기 속에는 뭐가 빠져 있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빠져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냥 빠져 있는 게 아니고 십자가 지셔서 인간은 죄인이다, 인간은 의인은 없다를 고발하는 그 사건이 빠져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베드로 전서 4장 11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할 때, 여기에 뭐가 빠져 있어요. 뭐가 빠져 있느냐, 그 뒷부분의 말씀,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려 함이라” 따라서 저는 이렇게 뒤에 것을 앞에다가 집어넣어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거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예수님의 능력이 나를 장악해서 내 속에 있는 주님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봉사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로 말미암아 영광 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 받는다.”는 이 말이 합당하게 이렇게 구조가 짜여 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뭡니까? 우리는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봉사를 하더라도 그 현장에서 우리가, 이러니까 내가 마귀에 속하고 이러니까 죄인 맞지. 어떤 봉사를 하고 말을 해도 항상 내 자랑 하고 싶고, 내 가치를 뒤늦게 수습하고 싶고, 챙기고 싶은, 이러한 죄성이 같이 따라 나올 때 우리는 그 죄와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피와 다시 한 번 만나는 계기로 삼을 때,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영광 돌리는 하나님의 성도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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