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강-YouTube강의(포도나무)140605-이 근호 목사
77강-YouTube강의(포도나무)140605-이 근호 목사
이름 : 공은주(IP:211.211.100.128)
77강-YouTube강의(포도나무)140605-이 근호 목사
제목은 포도나무입니다. 포도나무라면 교회 좀 다닌 사람은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요한복음15장 이야기를 하게 될 거예요. 요한복음15장이 교회에서 상당히 유명하게 된 내력이 이유가 있습니다. 요한복음15장에 보면,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면 잘린다는 내용입니다.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면 하나님이 친히 잘라버린다.
그러면 그 이야기 들었을 때에 자칭 스스로가 포도나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아, 나는 포도나무니까 이제는 편안하게 교회 다니면 하나님이 천국에 넣어주겠구나!’ 이렇게 안일하게 빠진 사람에게 어떤 자극 같은 내용이 되어버려요. ‘아, 포도나무라고 해서 구원이 다 이룬 게 아니구나! 요한복음15장에 보니까 열매 없는 포도나무일 수도 있구나! 그렇다면 포도나무는 됐으니까 이제 남은 내 일은 열매 맺기에 전념하고 전력하면 되겠구나!’라고 그런 메시지가 나올 수 있는 어떤 여지를 제공한 것처럼 생각이 되지요. 요한복음15장이.
예수님은 포도나무고 아버지는 농부인데, 너희들이 내게 과실을 맺지 아니하면 그것은 절대로 포도나무 아니고 잘린다. 따라서 과실을 맺으려면 어떻게 하느냐, 나한테 붙어있으면 과실을 맺는데 그런 경우에만 어쨌든 저쨌던 간에 과실 없는 가지는 천국에서 소용없다. 이렇게 정리가 되니까 ‘아, 신앙생활 정신 차리고 제대로 해야 되겠구나!’ 경각심을 유도할 수 있는 본문이 되어버렸어요.
그런데 과연 그 내용이 이 요한복음15장에서 나온 내용이 맞느냐를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됩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이 요한복음15장 포도나무 이야기는 비슷한 이야기가 구약에 나옵니다. 에스겔15장2절에 보면 나와요.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라고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먼저 질문을 던집니다.
이 질문은 사실은 에스겔을 대표로 한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을 이스라엘 전체에게 던지는 취지가 뭐냐 하면, 거기에 불에 던질 화목이 될 뿐이라, 요 대목에서 이스라엘이라는 것은 어떤 역할, 어떤 기능을 보여줘야 되는데 기능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진노하심, 하나님의 분노하심을 축복과 아울러 겸해서 같이 보여줘야 될 그런 역할을 이스라엘이 하도록 애초부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런 식으로 나라를 만든 겁니다.
이걸 오늘날 현대식으로 이야기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성도로 불러냈을 때는 “나는 복 받았다!” 그 이야기만 하라고 불러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저주가, 하나님의 진노가 이토록 무섭다는 것도 아울러 증거케 하기 위해서 그 사람에게 찾아드신 겁니다.
이것이 성도가 보여줘야 될 하나님의 속성이에요. 양면성입니다. 상반된 두 가지 면을 다 보여줘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그런 면을 사람들은 모르고 내가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느냐, 어떻게 하면 구원받느냐, 이런 쪽으로 주님이 주신 모든 말씀을 곡해를 하게 되는 겁니다. 자, 그렇게 곡해를 하게 된 결과가 뭐냐, 결국은 이스라엘처럼 멸망되고 마는 겁니다. 에스겔15장에 나오는 포도나무를 다시 한 번 취지를 말씀드린다면, 이미 에스겔 자체가 이스라엘의 멸망이 확정된 거예요.
선지자의 두 가지 역할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적을 베푸는 선지자가 있고 또 하나는 문서 선지자가 있는데 문서 선지자는 이미 멸망과 심판이 확정된 상태에서 차후에 기록된 말씀을 볼 때에 ‘아, 주님의 말씀은 빈틈이 없이 차질이 없이 이루어지는구나!’ 그것을 확인하라고 그 말씀대로 멸망하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보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어떻게 하면 그 말씀을 이용해서 내가 구원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애초부터 그러한 경우는 주님께서 용납될 수 없는 태도라는 것이 분명해지는 겁니다.
포도나무라면 열매 맺는 기능뿐만이 아니고 열매가 없을 때, 어떻게 망하느냐 하는 기능까지 합쳐서 그것이 포도나무입니다. 따라서 두 가지 기능을 다 같이 보여줄 경우에만 이것이 주님 앞에서 무용지물이 안 되는 거예요.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유지가 된다, 이렇게 보시면 되는 겁니다.
참, 어렵지요. 쉽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주님이 앞에 계시고 나는 여기 있고 주님을 이용해서 어떻게 구원받을까 할 경우에서는 그것은 관계가 끊어진 사람이고, 진짜 주님으로부터 이미 구원받아서 관계도가 형성된 사람은 “주님이여, 주님은 얼마나 사랑이 많으신 분입니까?” 하는 그 면과 또 하나, “주님이여, 주님은 얼마나 무서운 분이십니까?” 그 상반되는 두 가지의 양면성을 다 같이 보여줄 요량으로 주님 앞에 준비된 그릇으로 살아가는 사람. 그러한 인식이 성도에게만 받아지는 인식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평소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이러한 기능은요, “하나님, 우리가 이번에는 축복된 것을 보여드릴게요.” “이번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드릴게요.” 우리가 결정할 사항이 아닙니다. 이것이 이 설교에서 제일 중요한 겁니다. 절대로 ‘이번에는 하나님의 무서운 속성을 내가 보여드려야지’ ‘이번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드려야지’ 이걸 우리 쪽에서 결단내리거나 그걸 선택할 그러한 권리나 자격이나 우리한테는 없습니다.
그러면 없으면 어떻게 하는가,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이사야6장에서 이사야가 뭐라고 했느냐 하면, “화로다 망하게 되었구나! 나는 망하는 백성 중에 하나입니다.” 라고 고백했거든요. 또 다윗은 말하기를 주께서 원하는 것은 상한 심령이라고 했습니다.
자, 이 고백을 할 때에 그 이사야나 다윗이 그런 고백을 하게 된 것을 본인은 뭐로 여기느냐 하면, 그걸 축복으로 여긴다는 겁니다. 이게 놀라운 점입니다. 사람이 망했는데도 불구하고 분명히 망했어요. 나는 화로다, 망하게 되었구나! 분명히 자기 입으로 토했습니다. 분명히 모든 가진 것, 자기평생 쌓아놓은 것, 분명히 망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말하기를, 이것은 하나님만이 제대로 된 통으로 만나야 비로소 나타날 수 있는 축복된 고백으로 지금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인간승리입니까? 도대체 얼마를 도를 닦아야 이 정도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까? 이것은 도 닦는 경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자기 눈앞에 누구를 보고 있는 겁니다.
너무나 거룩하고 너무나 무섭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평범한 보통사람이 아니라 그야말로 천사보다도 더 월등한 영광과 거룩을 품고서 막상 자기 눈앞에 어떤 존재자가 등장했을 때, 우리는 악! 하는 소리이외에는 다른 소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악! 하는 그 소리와 더불어서 우리가 이야기할 것은 “주여, 주께서 나에게 어떤 조치를 가한다 할지라도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주여, 원대로 하옵시고 주의 뜻대로 하옵시고 주께서 어떻게 사용하시든 그렇게 사용하는 그 자체에 대해서 저는 주님 앞에 찬양을 올립니다.” 라는 그 고백.
그 순간 그 사람의 영혼의 무게는 제로(0)입니다. 아무것도 무게를 잴 수 없을 정도로 깃털보다 더 가벼운 영혼, 가벼운 심령이 되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입니다. “그동안 살아왔던 것이 주님의 결과물이었고 솜씨라면 지금 이 순간 앞으로도 이 세상 마감할 때까지 주께서 똑같은 차원에서 저를 그렇게 다루어주신다면 저로서는 영광입니다.” 라는 고백.
이것이 주님 앞에 화로다, 제가 망하게 된 이 자체를 주님의 속성이 온전히 나를 점령한 그 상태인 것을 이사야 입으로 고백하는 것, 이것이 바로 포도나무의 원래의 진짜 100% 주님의 속성만 보여줄 때, 그게 포도나무의 진면목이고 진짜 포도나무의 참된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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