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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76강-YouTube강의(믿음 아닌 것)140605-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로마서

76강-YouTube강의(믿음 아닌 것)140605-이 근호 목사

이름 : 공은주(IP:211.211.100.128)

76강-YouTube강의(믿음 아닌 것)140605-이 근호 목사

제목은 믿음 아닌 것입니다. 보통 성경에서 “믿어라” 또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그렇게 할 때, “믿겠습니다.” 이렇게 돼요. 그것은 뭐냐 하면,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추가적으로 믿게 되면 그것이 믿는 게 된다. 그렇게 생각 드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해버리면 믿음을 추가적으로 가지게 될 때,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자기의 성량은 다치지 않고 현재 기존의 것은 그대로 보존하면서 추가적으로 믿음이 새롭게 새로 들어온 속성처럼 첨부가 가능한 것처럼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엄청난 오해입니다.

성경에서 성령님을 통해서 믿음이 들어왔을 때는 기존에 있던 자기가 그동안 갖고 있던 모든 성량들의 질서가 재편됩니다. 영향을 받아요. 그냥 믿음하나 더 추가되는 게 아닙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서 믿어라, 할 때는 그냥 곱게 순하게 믿음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믿음이 들어와 버리면 기존에 알던 모든 것이 다 파괴되고 무너지고 사실은 일시적으로 혼란 상태에 빠집니다.

이사야6장에서 이사야가 고백하기를 하나님을 만났을 때, 화로다 망하게 되었다, 라는 고백을 하거든요. 이것이 내가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믿음 하나 더 추가했다, 이게 아니고 기존에 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망해도 상관없는 것들을 내가 쥐고 있었다, 이리 되는 겁니다.

믿음이 들어오게 되면, 그동안 나한테는 중요하다 이것 없이는 못산다. 나는 이것 때문에 버텼다, 하는 모든 것들이 믿음이 들어오면서 부질없는 것, 쓸데없는 것을 붙잡고 있었다는 것이 그만 노출이 돼요. 이것이 발각을 당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믿음을 언급할 때, 그냥 믿어라, 하는 추가적인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 믿음이 아닌 것이냐, 하고 병행해서 말씀을 주시고 여러 가지 일들을 일으켰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에 갔을 때에 풍랑이 일었지 않습니까? 그 때 제자들이 자기는 믿음이 뭐고 간에 당장에 풍랑이 이니까 자기의 평소에 있던 자신의 모든 행동을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취했지요.

그런데 그 평소에 하던 모든 조치가 주님보시기에 어떻게 판정받았는가 하면, 믿음 없음으로 판정받은 겁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하면, 평소에 우리는 믿느냐, 안 믿느냐, 상관없이 그냥 평등한 일상생활을 했건만, 주께서 일으킨 사건 앞에서는 그 전체가 믿음 없는 일상이 되는 것으로 판정을 받게 되는 겁니다.

자, 여기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추가적으로 하나 더 발생시키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구원에 이르게 하는 그 믿음이라 하는 것은 그 전에 먼저 알아야 될 것은 우리의 모든 일상적인 삶이 사실은 믿음 없는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을 완전히 노출시키고 발각시키면서 이것이 믿음이라고 우리에게 제공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정리하면 되지요. 주님께서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무엇과 동행해서 동반되는가 하면, 무엇이 믿음이 아닌가와 동반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이 동영상 설교에서 우리가 지금 진행해야 될 일은 뭐냐 하면, 무엇이 믿음이 아닌가를 믿음 앞에서 우리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그러면 우리는 무엇이 믿음이 아니냐고 물으면 “예수를 안 믿는 게 믿음이 아닙니다.” 이렇게 쉽게 이야기하지요.

그런데 사실은 그것보다 더 깊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로마서1장17절에 보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대목을 깊은 의미로 보게 되면, 여기에 의인이라는 말이 나오고 믿음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아주 결론적으로 말씀드릴게요. 논리로 따지면 복잡하니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무엇이 믿음이 아니냐 하면은, 믿는 자가 되려는 것이 믿음이 아닌 것이 되는 겁니다. 보통 믿음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믿는 자 되기 위해서 믿음을 가지는데 그것이 믿음이 아닌 게 돼요. 왜냐 하면, 출발점, 시작점이 내가 어떻게 하면 안 믿는 자에서 믿는 자가 되는가를 이렇게 벌써 전제를 깔았거든요.

그러니까 그 전제에 누가 담겨 있느냐, 내가 거기에 주인공으로 이미 시작이 되어있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은 믿는 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을 원하는 거거든요. 믿음을 원하니까 우리는 그 믿음 원하는 사실을 모르고 내가 믿는 자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잘못에 들어가느냐 하면, 내가 믿는 행위를 해버려요.

주께서는 믿음을 원하는데 우리들은 이야기합니다. “하나님, 예수님을 믿는 행위를 발휘할 수 있는 사람으로 되겠습니다.”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이게 믿음이 아닌 거예요. 왜냐 하면, 믿음이 아닌 것에 뭐가 포함되어있는가 하면, 어떻게든 내가 살아보겠다는 그러한 의도가 강한 욕구가 거기에 담겨있으니까.

주님께서는 그걸 잘라버리기를 원하거든요. 주께서는 믿음을 원하는데 우리는 “짜잔, 내가 믿는 자입니다.” 라고 자기가 믿는 자의 주인공으로서 등장되기를 간곡히 고대하고 있는 겁니다. 그것은 바로 믿는 믿음을 행한, 사실은 행함 자가 되지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로마서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뭐냐 하면, 믿음이 뭐냐 할 때는 반드시 행함을 이야기합니다. 왜냐 하면, 행함은 그 행함의 주인공이 있어요. 행함을 행하는 그 주체 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구원받는 믿음은 세상에 어떤 주체 자가 없어요.

그럼 주체 자가 없는데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되느냐, 내가 뭐든지 내 중심으로 내 살리기 위한 중심으로 뭐든지 행함에서는 내가 행함의 주체로서 주인공으로서 등장하는 이 자체를 부정하는 그러한 능력이 임할 때, 그것은 바로 내가 아니고 다른 분에서 온 행함입니다. 그 다른 분에서 온 행함을 가지고 믿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을 로마서1장17절에서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우리와 협상하거나 타협해서 제공되는 게 아니고 그냥 일방적으로 덮치듯이 우리에게 나타난 겁니다. 하나님의 의의 주체 자는 누구냐,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천국은 하나님의 의가 없는 사람은 못 들어갑니다. 그러면 정리하게 되면 이렇게 되거든요. 천국은 있습니다. 천국은 있는데 천국에는 하나님의 의가 없이는 못 들어가는 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가 없이는 못 들어가는 이것을 가지고 로마서에서는 뭐냐 하면, “믿음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없이는 못 들어간다, 부정적 표현을 긍정적으로 같은 뜻인데 바꿔버리면 믿음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그 믿음의 제공자는 내가 아니다, 이 말이죠. 우리는 믿음의 수용자요, 믿음의 피동자입니다. 믿음의 시작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결과물이 믿음이 우리에게 발생되는 결과물을 낳을 때, 우리는 비로소 결과적으로 믿는 자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믿으라고 하니까 우리는 덥석 그 믿음을 잡기 위해서 평소에 우리가 우리의 행동에 주인공 노릇하던 그 습관과 버릇을 그대로 동일하게 작용시켜서 내가 믿는 자가 되겠다고 나서버리면 그것은 바로 믿음이 아니고 그 시작이 나의 행함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건 행함에 속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1장17절에 보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 에요. 이것은 바로 우리 인간세계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예수님의 작용이 우리에게 믿음이라는 작용으로 우리에게 유발시키고 발생시키게 되면 우리 속에 있는 주님의 주체로 이루어진 그 결과로 인하여 우리는 의인되어서 구원받는 겁니다.

첨부파일 : 76강-YouTube강의(믿음 아닌 것)140605-이 근호 목사.hwp (15.5K), Down: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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