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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대전140529-마16장14절(교회 만들기)52강 - 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마태복음

대전140529-마16장14절(교회 만들기)52강 - 이 근호 목사

이름 : 공은주(IP:211.211.100.128)

대전140529-마16장14절(교회 만들기)52강 - 이 근호 목사

첫째시간 사도행전에서는 십자가의 반복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마태복음16장에 보면, 열쇠가 나와요. 내가 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니, 천국 열쇠를 준다는 말은 천국이 어떻다는 겁니까? 닫혀있다는 말이 되겠지요. 닫혀있다. 닫혀있다는 말은 어느 누구도 천국에 대해서 안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이럴 거야. 저럴 거야. 제각기 상상력을 발휘해서 천국에 대해서 언급을 했을 겁니다. 서울 안 가본 사람이 서울 이야기하는 것처럼. 막상 서울에서 오신 분은 뭐라고 하는가 하면, 열쇠이야기를 하거든요. 너희들이 천국에 대해서 모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열쇠가 있다는 말은 첫 번째, 모른다는 말과 두 번째, 열린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거예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지요. 너희들은 모른다. 또는 못 간다. 못 간다와 그리고 열리면 갈 수 있다. 열쇠가 있다는 말은 잠겨는 있지 막혀있지는 않은 거예요. 문은 있는데 잠겨있는 것이지 아예 문조차도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말입니다.

천국 열쇠가 있다고 하니까 이걸 지금 누구한테 하느냐 하면,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한테 이야기를 한 거죠. 여기서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뭘 생각해야 되느냐 하면, 이때 베드로가 오해를 하죠. 천국 열쇠 있고 천국 들어갈 수 있다 하니까 사람들은 내가 들어간다. 내가 들어간다, 로 사람들은 항상 염두에 둡니다. “저요!” 이리되는 거예요. “저요!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이리 되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를 부인하라 하거든요. 나중에 나옵니다. 16장 24절, 자기를 부인하라, 이 말을 가위표치지 말고 이걸 동그라미로 쳐보겠습니다. 구멍을 만들어요. 뻥하고 뚫린 빈 구멍, 누구는 누가 천국에 천국열쇠 들고 들어갈 사람은 누군가 있다, 이리되는 거예요. 누군가 있다. 그런데 베드로는 뭐라고 했는가 하면, 베드로가 오해하기를 지가 신앙고백을 하니까 네 반석위에 교회를 세운다 했으니까 “제가 들어갈게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 드라마 누가 찍지?” “제가 찍을게요.” 하는 것처럼. 내가 들어갈게요. 이리 나온 거예요.

주께서 자기를 부인하라, 하고 이걸 차단시켜 놔버립시다. 못 들어가는 겁니다. 베드로가 못 들어가면서 베드로가 필요해요.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왜 못 들어가는가를 보여주는데 베드로가 적절하게 필요한 존재입니다. 뭐라고 되어있는가 하면, 내가 죽고 난 뒤에 사흘 만에 고난 받고 사흘 만에 살아난다고 하니까 베드로가 하는 말이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라고 한 거예요.

제가 첫째시간에 했는데 다시 하게 되면, 존재가 아니고 사건이 일어나야 돼요. 존재로서는 못 들어가고 존재가 찢어져야 돼요. 찢어지게 하는 사건이 일어나야 됩니다. 그 사건을 첫째시간에 무슨 사건이라고 했지요? 십자가사건이라 했지요. 십자가 사건의 반복에서 폭탄 터지듯이 일어나야지요. 그러니 우리는 사골인 동시에 아예 다이너마이트를 몸에 칭칭 감고 있다고 보면 돼요. 늘 십자가 폭탄이 펑펑 터져야 되지요. 그래야 자기가 부인해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그러면 베드로가 못 들어가는데 왜 못 들어가느냐 하면은 왜 사람들은 열쇠가 닫혀있다는 것을 왜 몰랐느냐 하면, 여기 사단이 나옵니다. 사단이 모든 인간을 그동안 통제하고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디위에 짓는가? 교회는 사탄위에 교회가 지어져요. 사탄의 머리 위에. 사탄의 머리를 깨고 그 사탄 머리 위에 교회를 세우게 되는 겁니다. 베드로는 오해하기를 내가 니 위에 세운다고 하니까 사탄을 의식하지 못한 베드로입장에서는 내 위에 교회가 세워진다고 그렇게 오해할 만합니다. 마치 천주교처럼. 베드로대성당이 있는데 1500년 지었는가 그런데 거기에 베드로무덤위에서 지었답니다. 그 짓는다고 면죄부 팔아먹은 거예요. 면죄부해가지고 그거 짓고 종교개혁일어나 가지고 신성로마제국이 두 진영으로 갈라졌잖아요. 루터 쪽과 천주교 쪽으로 갈라졌잖아요. 그 유럽 전체가.

베드로는 내가 있고 나의 고백이라 본 겁니다. 나의 고백이 아니고 이건 하나의 주께서 일으킨 사건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까지 결론 내려 보면, 베드로는 뭐냐, 두 대립세력이 만나는 장이 돼요. 사탄과 예수님, 아버지의 뜻 곧 하나님의 뜻이지요. 예수님이죠. 뜻이 어디서 만납니까? 베드로에서 만나는 요 지점에서 교회가 세워집니다. 따라서 교회는 늘 핍박의 대상이 되고 늘 이 땅에서 고난 받아야 되고 공격당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왜? 사탄을 늘 불러와야 되기 때문에. 숨어있는 사탄을 끄집어내는 구심체역할을 해줘야 돼요.

일종의 K1에 나오는 격투기할 때, 골목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공개석상에서 링 위에서 하잖아요. 링 위에서 가둬놓고 두 선수가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우는 그 링 자리가 바로 교회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를 세운다는 말은 곧 세상의 진짜 숨겨져 있는 세상의 본질을 공개시키는 장으로 만들겠다는 거예요. 교회에. 우리나라의 교회와는 다르죠. 교회는 거룩한 사람들의 집합체. 단체. 교회는 순결을 이렇게 하는데. 제가 말하는 교회는 링. 파이트 fight 싸우는 영역이 되는 거죠.

사탄도 바로 교회가 있는 곳에 사탄이 오게 되어있고 그래서 예수님은 그걸 우는 사자와 같이 택한 자라도 우는 사자와 같이 공격한다. 그럼 이런 이야기가 사실은 어렵지 않아요. 쉬운 이야기가 왜냐 하면, 다니엘 같은 경우에 보세요. 다니엘이 느브갓네살이 갖고 있던 본성이 언제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친구의 본질이 드러납니까? 느브갓네살이 미친 짓을 할 때, 나를 위한 금 신상을 만들어놓고 절하라든지 기도를 금한다든지 이런 짓 했을 때, 꼭 느브갓네살이 짐승다운 면모를 나타냈고 동시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여호와께서 여전히 살아 계시다는 것을 드러냈지요. 고 두 개 면면이 다 함께 모이는 자리가 뭐냐, 다니엘과 세 친구 그게 바로 교회잖아요.

교회는 예배당을 고딕식으로 짓고 어떻게 예수교장로회를 다느냐, 이게 교회가 아니고 주께서 사건을 유발시킨 십자가 사건을 또다시 유발시킨 현장이 교회가 되는 겁니다. 두 세 사람도 나와 함께 있으면 두 세 사람도 내 이름으로 있는 곳에서는 항상 그 전쟁이 일어난 장소라면 그 전쟁 장소가 바로, 교회가 되는 거예요.

요한계시록에 교회가 몇 군데 나오지요? 1장, 2장, 3장에 보면, 일곱 교회 나오지요. 왜 여덟 교회가 아니고 아홉 교회가 아닙니까? 백화점 쇼우 윈도우에 마네킹 일곱개를 해 놨다 하더라도 백화점에 오신 분이 일곱 분밖에 없습니까? 그 마네킹 일곱이 다입니까? 저는 옛날 어릴 때에 우리 집에서 옷가게 해서 아는데 우리 어머니께서 철따라 옷을 마네킹을 벗기고 갈아입히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그 마네킹은 그대로 있고 철따라 뭐만 바뀐다? 옷만 계속 바뀌는 거예요.

일곱 교회 그대로 있고 계속해서 그 시대에 따라서 일곱 교회의 양상이 계속 새로운 양상이 나오는 겁니다. 그 일곱 교회를 누가 쥐고 있습니까? 주님이 쥐고 있으니까 결국 주님께서는 교회를 일곱 교회만 구원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일곱 교회가 한결같이 어떤 교회입니까? 문제성이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문제가 있는 겁니다. 왜? 바로 이게 예수님이 예언한 것이 그런 교회기 때문에. 교회를 안 나와 버리면 이건 자기 문제성이 들통 나는 기회를 놓치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자기가 절대자가 되어버려요. 나는 예수 믿는다. 나는 완벽하다. 나는 완벽하다가 되어버립니다. 그건 뭐냐, 사건이 아니고 뭐가 돼요? 존재가 되는 거예요. 사실은 미국에서 우리교회 동영상을 보시는 분들이 계셔요. 있는데, 얼마 전에 전화 몇 통화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그 단체가 원래 김성수를 동영상으로 보던 단체였어요. 김성수 목사 때문에 모였던 단체인데. 어떤 분이 거기다가 김성수는 돌아가신 분이기 때문에 동영상 나오고, 저는 생중계가 되거든요. 그러니까 그 분이 하는 말이 자살해서 죽었다는 것이 수상하다는 거예요. 아무리 복음적하지만, 목사가 자살했다는 자체가 목사가 가짜일 확률이 높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살한 동영상 그만보고 아직은 살아있는 사람 것을 보자, 이리 나온 거죠. 교회가 갈라져 버렸어요. 보세요. 갈라져야 교회라니까요. 늘 갈라지고 또 갈라지고 해야 돼요. 갈라진 사람끼리 또 갈라지고.

그렇게 갈라지면서 만약에 안 갈라졌으면 아주 다정한 이웃이고 형제가 되는데 어떤 자살한 일이 벌어지고 나니까 거기서 균열이 일어나잖아요. 이것이 바로 사회적인 균열, 집단의 균열이 되지만,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뭐가 된다? 날마다 인간은 주체의 균열, 참 중요한 말인데요. 늘 주체의 균열이 일어나게 되어있어요. 왜냐 하면, 외부에서 새로운 사건들이 주어지기 때문에. 교회의 분열보다 더 작은 게 가정의 분열, 가정은 늘 부부사이지만, 늘 일어나고 가정에서 더 들어가면 개인적으로 내부적으로 늘 균열이 일어나게 되어있어요.

그 예가 바로 베드로가 “주여, 그러시면 안 됩니다. 내가 아는 예수님은 그런 식으로 하면 제가 아는 모시고 있는 그 예수님은 아닙니다.”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사탄아, 물러가라. 사탄이 준 예수관을 잠시 니가 그걸 유지하고 있었구나!” 하고 지적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사탄에 속했다면 앞에 있는 니 위에 니 이름은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운다하는 주님의 예언은 어떻게 됩니까? 베드로가 사탄이라면, 주님의 예언은 실패하는 걸까요?

지금부터 이야기할 것은 사실 제가 요번에 여름수련회 때 하려고 생각한 것을 이야기 해야겠어요. 출애굽 속의 그리스도 주제하면서 이스라엘이 무엇이냐, 에요. 이스라엘이 무엇이냐, 참 이게 굉장하게 너무 너무 어려운 거예요. 이스라엘이 무엇인가를 한 번 보기 위해서 마태복음을 잠시 떠나서 구약 한 번 봅시다.

미가서4장10절 보면,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애써 구로하여 낳을찌어다” 자식을 낳는다는 거예요. 이스라엘이 뭐냐, 딸 시온이어야 되거든요. 그럼 이스라엘은 어떤 용도냐 하면, 뭔가 자식을 낳는 용도에요. 그 자식이 누구 자식이겠어요? 뱀의 자식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을 낳는 기능을 이스라엘이 하는 거예요. 어떻게? 고통하면서. 고통은 누구의 몫이다? 이스라엘이 해야 될 몫이에요. 이스라엘이 고통하면서 뭔가 순풍하고 낳는데 보니까 예수님이 튀어나온 거예요. 그렇게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자기 딸처럼 하는 거예요.

딸을 시집보낸다. 애기 낳기 위한 용도로 시집보낸다. 이리 보면 돼요. 아버지가 “니가 빨리해서 자식 낳아야 된다. 여자는 애가 낳는데서 여자야.” 이런 식으로. 보통 여자의 신체기능이 남자와 다른 점이 뭡니까? 여자는 애기 낳는데 적합한 몸이고 남자는 그것이 누락되고 없지요. 여자의 목적은 자식을 낳는데 있다 말이죠.

그런데 그 예루살렘 자체를 뭐로 봅니까? 자기가 해산해야 될 뭔가 누구를 낳아줘야 될 그러한 하나의 하나님의 딸로 보는 겁니다. 하나님의 딸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식, 아들이 나온 거예요. 그럼 그 아들이 뭐하느냐, 그 아들이 바로 뱀을 이기는 거예요. 마귀를 이기는 거예요.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을 이기는 겁니다. 온 세상이 이미 묵시적인 요소가 아니면 이 세상에 모든 변화가 해답이 없지요. 답이 없지요.

보통 교회가 뭡니까? 기도해서 복 받는 것. 내가 복을 챙기는데 목적이 있잖아요. 내가 하나님께 열심히 하게 되면, 내가 은근히 노리고 있던 기대하는 행운이나 축복 같은 거 챙겨가지고 내가 이 세상 살면서 윤택하게 되는 것. 그걸 노리고 있다 말이죠. 문제가 어려움이 있을 때는 해결하기 위해서 교회 와서 기도하게 되면 니가 고통 하는 건강문제가 있는데 그게 아니고 그건 마귀가 준 우리 생각이고 사적인 노림수고, 욕망이고, 욕구고, 욕심이고 전체적으로 이스라엘이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하기 위한 그러한 도구로 사용하는 거예요. 얼마나 하나님이 냉혹하고 아주 차갑습니까? 아주 냉정하지요. 우리는 뭐야? 우리는 주님 앞에 당한 거죠. 믿습니다, 믿씁니다, 믿씁니다, 백날 해봐야 주님께서는 그 딴 거 듣지도 않고. 제가 주일 낮에 설교했잖아요. 사람들이 하나님을 어디서 발견하는가? 아픈 몸이 건강 한다든지, 돈이 생긴다든지, 가정화목, 이런 걸 했는데, 정작 로마서에 보니까 할례를 통해서 주님을 발견한다 했지요. 할례를 통해서.

사적인 거하고 너무나 거리가 멀잖아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알고 있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다루고 있는 하나님의 그 작전과 하나님이 찾아오지 않은 모든 이방나라에서 신과 인간의 모든 흥정이나 거래는 얼마나 큰 차이가 납니까? 그런데 그 이스라엘이 자기의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자기의 사명을 망각하고 누굴 모방했습니까? 주변에 있는 그 나라를 모방한 거예요. 주변에 있는 나라.

그러면 이 주변에 있다는 말은 이스라엘은 어디에 있다? 중심이죠. 그러면 창세기2장에서의 에덴동산 있잖아요. 에덴동산에 있는 중심에 다른 나무하고 다른 중심에 두 가지 나무가 있지요. 하나는 생명나무와 선악과나무가 있지요. 이 나무가 다른 모든 것을 다 지배해요. 통치를 하는 거예요. 이스라엘이 바로 다른 민족을 지배하는 그 날이 메시아 오시는 날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지배할 때 어떻게 지배하는가? 그냥 칼, 총을 만들어 지배할까요? 돈 많아서 지배할까요? 유대인이 세상의 금융 쥐는 것으로 지배할까요? 아니에요. 사탄을 예수 그리스도만이 지배할 수 있어요. 그 예수님은 어느 몸에서 태어납니까? 바로 구로하는 여인, 딸 이스라엘을 통해서 낳은 자식이 그동안 이 세상을 지배했던 사탄을 이기게 되는 그런 일이 되면 세상은 끝! 하나님의 계획은 끝나는 거예요. 주님의 계획 다 알아버렸는데요. 예수 그리스도가 만유의 주가 되고 모든 것을 자기 무릎 밑에 꿇어! 하는 거예요. 꿇어 하는 거예요. 천국에서 지옥을 통치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는 말이 “너희들이 천국에서 12고을을 얻으리니 너희가 장차 한 자리 차지해가지고 나와 함께 세상을 지배하리라.” 제자들이 그 소리 듣고 기분 업 돼가지고 좋다고 했지요. 조금만 지나면 나 예수 모른다, 이런 소리 하겠지만 하여튼 그 전까지는 업 돼가지고 온 상상을 다하는 거예요. 사건이 터지지 않고 오직 자기 존재만 계속 붙잡고 있기 때문에. 자기 잘되는 식으로 가는 거예요. 자기 부인이 아니고 자기 긍정, 내 긍정을 원하는 겁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끄집어냈다. 이게 끄집어낼 때, 끄집움을 당한 히브리인들도 상당히 많이 당황했어요. 왜냐 하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으신데. 이렇게 나온 겁니다. 다만 우리가 사는 땅에서 그냥 좋은 이웃관계 유지하기가 좋지 여기서 짐 싸들고 나오기까지는 자기들은 그것까지 생각 못했거든요. 마귀는 왜 나와요? 그냥 살지요. 하나님 잘 믿고 잘 살면 되잖아요. 이것이 우리의 소박한 우리의 희망이고 작은 행복이다 말이죠. 이게 찢어지니까 이게 아파요. 애굽하고 찢어지니까 이게 잘 안 찢겨지잖아요. 그러니까 이 출애굽이 할 이야기가 굉장히 많아요. 출애굽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게 많이 나오는 겁니다.

도대체 이 바로가 바로의 존재 의미가 뭐냐, 이런 걸 생각한다면 바로의 역할이 뭐냐, 그런 것은 뭐냐 하면, 일종의 본드 역할 하는 거죠. 떨어지는데 뭐가 본드가 붙어있으니까 안 떨어지는 거예요. 그 본드 같은 역할을 바로가 하는 거예요. 가지 마오, 가지 마오. 예! 하잖아요. 가지 말라는 거예요. 같이 살자는 겁니다. 세상이 자꾸 나를 붙잡는 것. 바지가랭이 붙드는 그 역할을 바로왕이 합니다.

그러니까 이 히브리 이스라엘 사람들도 끝까지 걸핏하면 하는 노래가 그거에요. 애굽으로 돌아가자.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만날 30세가 좋았다는 서른 즈음에. 점점 더 멀어져 가는데. 왜냐 지가 살았던 것은 애굽에서 살던 그 경험밖에 없기 때문에. 어려우면 다시 옛날로.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이런 거. 자꾸 점점 더 멀어져가는 거예요. 점점 불안하지요. 자기 가치가 애굽에서 있던 가치 외에는 다른 가치를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가치는 그냥 말뿐이다 말이죠. 보장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살아온 것은 애굽에서 살던 그것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신랑, 신부 주례 앞두고 벌써 주례사를 해놨는데 이게 뭐냐, 신랑 신부 부부간의 제일 큰 문제가 뭐냐 하면, 혼자 살았을 때의 가치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이 부부생활이 안돼요. 애굽에서 살던 것밖에 기억이 안 나니까 혼자 살 때의 그 버릇과 가치와 자기의 생활태도를 둘이 만나도 양쪽 다 똑같이 평행선을 달려버려요. 계속 미팅만 하고 있는 거예요. 계속 선만 보고 있는 거예요. 매일같이 선만 보고. 둘이. 둘이 간만 보고 있고. 누가 센가, 안세냐, 자기 힘으로 안 될 때는 친정에 전화하면 또 시가 쪽에 전화하고 양 쪽 후원을 동원해가지고 또 싸우는 거예요. 제3의 교회거든요. 자기를 부인하고 당황하지 말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비우고 거기에 주의 계획이 주님의 가치가 들어오면 되는데 자기를 부인하고 이게 교회거든요.

교회가 곧 뭐라고 했습니까? 이 가정의 부부다 말이죠. 부부이야기하면서 사도바울이 뭐라고 했습니까? 이게 부부 이야기 아니고 무슨 이야기다? 이게 교회라는 이야기라고 에베소서 5장에 분명히 이야기했잖아요. 가정과 교회가 그렇게 연결이 될 줄은 보통 부부는 생각도 못했지요. 나만 행복하면 된다 하는 거예요. 가정에서 나만 행복하면 안 되고 가정이 행복해야 돼요. 왜냐 하면, 그 가정은 내 것이 아니고 니 것도 아니고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 안에서 부부되게 했기 때문에. 주님이 개입한 것이 결혼사건이다, 말이죠.

사건을 존재로 보지 말고 결혼을 사건으로 봐야 돼요. 낯선 사건, 제 3의 사건이에요. 둘 다 생각 못한 일들이 벌어져요. 부부가 결혼하게 되면, 혼자 살 때는 상상도 못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말 안 만났으면 좋았을 뻔했다. 생각해봅시다. 내가 저 남자 안 만났으면 좋을 뻔 했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옛날 혼자 살 때는 그 가치가 유지했더라면, 지금보다 더 낫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겠지요.

그러면 그 사람은 어디서 못 빠져나왔어요? 여전히 자기 세계에서 자기 가치에서 빠져나왔어요? 못 빠져나왔어요? 못 빠져나온 거예요. 자기 부인이 안 된 거예요. 자기 부인을 도와주는 것은 뭐냐 하면, 친정도 아니고 시가도 아니고 ‘자식’입니다. “아! 성질 같으면 아~ 자식보고 자식 결혼할 때까지만 참는다.” 자식이 바로 제3의 존재입니다. 이것은 자식을 낳는 건 알지만, 요 따위 식으로 생긴 자식은 예상을 못해요. 누구도.

요렇게 성질머리 못되고 인물 못생기고 인물이 요렇게 나올 줄은 이것은 하나님의 몫이지, 우리의 몫이 아니거든요. 부부 몫이 아닙니다. 제 자식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 다음부터는 그 부부가 무슨 소리를 하는가 하면, 세상에 모든 것이 내 맘대로 되지만, 뭐는 내 맘대로 안 된다? 자식, 지식만큼은 내 맘대로 되지를 않아요. 부부는 헤어지면 돼요. 헤어지면 되는데, 자식은 헤어질 수 있습니까? 못 헤어집니까? 안되지요. 그래서 지금 예수님은 교회를 뭐로 만드는가 하면, 하나님의 자기 딸로 만드는 거예요. 자식으로 만드는 겁니다. 그런데 이 베드로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하면, 자기가 생각한 애굽에 살던 자기가 생각한 거기에다가 예수님을 집어넣어서 자기가 기대했던 그 교회를 고집하고 있는 거예요. 이건 자기 부인이 되는 게 아니고 “주님이여, 요렇게 하면 참 행복하겠지요? 주님이 협조정도 해주시고 구원해주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다 하겠으니까 주님은 우리 뜻대로 하게 해 달라.” 이리 되는 거예요.

신부가 결혼했다. 처음에는 오빠 하잖아요. 나는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오빠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면 돼! 그러면 또 남자가 되어가지고 처음에 맥주까지는 해줘요. 해주는데 하는 모든 심지어 화장실에 가는 횟수부터해서 신발 놓는 것부터 책장 책꽂이 하는 모든 인테리어까지 하니까 도저히 이건 결혼이 아니고 진짜 남자는 평생 세 번 우는 정도가 아니고 남자는 항상 잔소리를 받는데, 클 때는 엄마한테 잔소리 듣고, 결혼해서는 마누라 잔소리, 나중에는 자식한테 잔소리 듣고 이것은 남자가 돼가지고 완전히 수갑 채우는 것과 똑같거든요.

조금만 안하면 삐지고 하니까. 나중에는 남자가 화딱지 나가지고 나도 좀 숨 좀 쉬자, 이리해가지고 “나는 이렇게 살아왔거든.” 하고 자기는 또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다 해가지고 남자가 주도권 줘야 된다. 이리 하게 되면 요거 한 6개월 되면 시작합니다. 그러면 친정집에 또 불나요. 다 일러주고. 이쪽은 처가살이, 저쪽은 시집살이, “야, 야, 그러면 안 된다.” 그러다가 아까 뭐가 나오면? 자식 딱 낳게 되면, 둘 다 전부다 자식 앞에서 손 바짝 드는 거예요. 이뻐서가 아니라 힘들어서. 직장가가지고 잠 좀 자야 되는데 아가 새벽 1시부터 3시까지 울어 재껴버리면 아를 던지고 싶고. 아를 둘을 낳아? 미쳤나? 하나도 감당 안 되는데.

이제는 여자로서의 아름다운 미모, 미모 같은 소리하고 있네. 아 옆에 자다가 먹고 자고 같이 찌는데 밥은 아까워서 다 먹는데 살은 찌고 모든 건 괴사상태로 늘어지는데. 옷도 함부로 추리닝 입고 돌아다니는데. 이건 남편한테 인사도 안하고 이건 완전히 자식한테 하루 종일 치여 가지고 남편은 밥도 안 해주고 귀찮아하고.

결국은 뭐냐 하면, 평소에 살아가는 게 안 맞는 거예요. 얼마나 안 맞았으면 예수님께서 사도바울이 새로운 피조물이라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열쇠라는 말은 갖고 감에 열면 되는 문제가 아니고 인간자체가 바뀌어져야 한다니까요. 인간 자체가. 내가 이 땅에 살면서 내가 경험했던 것, 내가 예상했던 것, 내가 기억했던 것, 일치성이 하나도 없는 그 세계에 가려면 기존에 알았던 모든 것은 부정되어야 되는데 부정하는 방법이 뭐냐 하면, 율법이고 그것이 우리로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모든 것이 죄인임으로 드러나는 거예요.

어느 정도로 죄인인가 하면, 내가 태어난 것부터도 죄가 돼요. 내어 난 자체가 죄고 죄 중에서 태어났고 태어나자마자 우리는 주께 상한 심령이고 이미 벌써 냉장고 꺼져가지고 밥 다 쉬었어. 쉰밥이에요. 쉰밥. 그야말로 내가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왔다는 그 말씀을 교회에서 그걸 집어넣은 겁니다.

자, 교회가 믹서기입니다. 믹서기 알지요? 하여튼 집에서 믹서기 돌리면 그렇게도 시끄러워. 윙하고 돌아가는데. 여기에 토마토 넣고 그 다음에 사과 넣고 사과와 토마토 혼합주스 만든다면, 토마토는 십자가 용서라면, 사과는 그야말로 사탄이다. 이게 바로 뭐냐, 교회가 되는 겁니다. 이게 12제자가 되는 겁니다. 이게 이스라엘 되고, 윙하고 돌려버리지요. 가루가 돼버리지요. 가루가 돼가지고 나오면 이것은 자기가 부인된 자기가 물이 된 일치가 되어버리지요. 이게 뭐냐 하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것은 존재는 없어지고 그 자체가 사건덩어리입니다. 사건덩어리에 대해서 제가 수원에서 강의하면서 요렇게 믹서기로 하지 않고 식빵으로 했지요. 샌드위치를 칼을 가지고 썰어버리면 한 조각, 한 조각씩 드러나지요. 드러나면 여기에다가 관통했던 주님의 용서 같은 것이 관통하면 관통한 것이 잼 같은 것이 다 보인다, 이리 했습니다. 그래서 이게 뭐냐 하면, 요것이 25일, 26일, 27일 시간 따라 잘라지는 거예요. 내일 염려는 내일하고 오늘치의 잘릴 것은 오늘 잘리고 이게 바로 교회에요.

이렇게 잘린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제3의 나거든요. 아까 사건이라 했는데, 다른 말로 하면 같은 말인데요. 나의 존재는 늘 변한다. 내 존재는 주님에 의해서 늘 변합니다. 변하는데 방향은 천국의 사람으로 변합니다. 어떻게? 자기를 부인하면서. 어떻게?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여기서 나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하여 감사하는 겁니다. 이러한 식빵인 우리가 식빵만 달랑 있는 것이 아니고 주변에 뭐가 있느냐, 이 세상 속에서의 식빵으로 살아가는 것이 잘립니다. 이 세상이 항상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옛 모습을 늘 보게 하지요. 세월호 사건이라든지, 방화사건, 이게 남의 이야기지만, 이게 우리 가까운 삼촌이라면 식구가 그렇다면 무관심할 수가 없지요.

유 병언이가 우리 외삼촌이라면 조카보고 숨겨 달라하면 숨겨줄 수도 있는 문제고 삼촌이 숨겨달라고 하는데 신고해서 내가 5억 타내겠다고 하면 돈5억은 받겠지만, 우리 주변의 친척들이 가만히 두지를 않을 거예요. 세상의 배신자, 이리 해가지고.

그러니까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 의식하지 않지요. 첫 시간에 했지요. 남을 의식하고 항상 변명하고 핑계대고 그 모습이 다니엘 세 친구 모습은 아니거든요. 다니엘 세 친구는 굉장히 냉혹하고 냉정했습니다. 금 신상 섬겨라. 안돼요. 죽는다! 뭐 죽이던지. 이렇게. 굉장히 은행원이 사무 보듯이 돈 얼마 내드릴까요?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당당하게 마치 남의 일처럼 당황하지 않고 남의 일처럼. 전혀 내 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그렇게 살아가는 거예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다니엘 요소도 있지만, 또 뭡니까? “악착같이 살아야 돼! 내 자식 때문에 나는 죽어도 되지만, 악착같이 살아야 돼!” 악착같이 설치는 게 있지요. 이게 두 개로 믹서가 되는 거예요. 사과는 사과대로 토마토는 토마토대로. 이게 바로 아까 말했던 주체의 분열, 교회의 분열, 가정의 분열, 우리는 이런 식으로 늘 그러면서 우리는 찢어진 포신처럼 찢어지면서 망가지면서 늘 괴로워하면서 괴로운 가운데서 비로소 우리는 또다시 십자가 복음에 감사하는 생활이 반복됩니다.

참, 이 세상 살면서 괴로워야 돼요. 왜냐 하면,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 세상 자체가 이마에서 땀을 흘리고 고통 하라고 만든 어떤 환경이에요. 주께서 일부러 우리를 집어넣어 던진 거예요. 고통이 뭔지, 저주가 뭔지, 심판이 뭔지, 맛 좀 보고 오라고 했기 때문에 거기서 호강을 한다는 것은 너무 주제파악이 안되니까 그리하는 겁니다.

여기 19절 봅시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했는데 이 말은 굉장히 어렵지 않고 쉬워요. 이게 뭐냐 하면, 모세가 지팡이 들 때, 밑에 여호수아 보면서 “여호수아 니 한 번 엿 좀 먹어봐라.”하는 식으로 일부러 지팡이를 내린 겁니까? 힘이 빠져서 내린 거예요? 힘이 빠져서 내린 거죠. 그런데 지팡이 내리니까 산 밑에서 전쟁하던 여호수아가 어! 이상하다? 왜 이리 밀리지. 이리되고 옆에 장로 둘이 받쳐주니까 지팡이 올라가니까 밑에 사람들은 뭡니까? 전쟁에 승리하게 되는 거예요. 이상하게 칼이 잘 먹지? 이리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것은 관람자로 하여금 뭘 보라는 말입니까? 모세 짱! 여호수아 짱! 이걸 보라는 게 아니고 제3의 인물, 뭔가 어떤 분의 개입을 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자체가 열쇠가 되는데, 밀고 당기고 밀당하는 주님에 의해서 밀당하는 열쇠가 되도록 우리를 그렇게 사용하겠다는 겁니다. 니가 열쇠 가져서 누가 풀면 구원받는 게 아니고 이건 신부가 하는 짓이고 그게 또 구약에 보면 나와요. 룻기에 보면, 모압 여인이 나오잖아요. 분명히 모압 여인은 남자들 세 명 다 죽었어요. 약속의 땅을 떠나서 모압땅에 가서 다 죽었잖아요. 그러니까 나오미라는 시어머니도 양심이 있지, 그 시월드에서도 야박하게 안 나온 모양이라.

“미안하다. 니한테 줄 돈도 없고 아직 나이도 젊으니까 팔자 고치라.” 20대쯤 됐을 거예요. 팔자 고치라. 그러니까 우리 가정은 믿을 게 없다. 이렇게 하니까 모압 여인 룻이 하는 말이 “우리 시집을 망하게 하신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우리 시어머니를 이름이 웃음이거든요. 웃는 시어머니를 울게 만든 그 하나님을 그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다. 자기 본향을 약속의 땅을 버리고 모압 땅에 갔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다른 조치가 살아있는 조치가 있다는 것은 그 하나님이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사는 이유는 살아있는 분, 살아있는 하나님을 위해서 있어야지, 단독적으로 내가 팔자 고쳐 산다는 것은 그건 몇 십 년 지나면 그게 뭐가 돼요? 아무 의미 없잖아요.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이 절호의 찬스를 내가 왜 놓칩니까? 나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겠습니다. 따라온다 말이죠. 모압 여인이 이스라엘을 살려요. 지난주일 낮에 했는데, 모압 여인이 이스라엘을 살린다고요. 보세요. 모압 여인을 밀고 당기고 아닙니까?

망했는데 이상하게 그게 망한 게 아니고 그게 사는 길이라는 사실을 이스라엘로 하여금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거예요. 망했다! 망했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 보니까 이게 제대로 사는 코스가 되는 거예요. 그 코스가 망하는 게.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열쇠를 가졌다는 말은 내가 갖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너를 열쇠로 사용하겠다는 겁니다. 밀고 당기고, 밀고 당기고 할 때, 너는 너 자신을 증거 할 게 아니고 나한테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를 가지고 사용하신다는 그걸 증거 하라 말이죠.

그 원칙이 21절에 나오지요. 내가 고난 받고 죽임을 당하고 3일 만에 살아나야 된다, 이거하고 마치겠습니다. 교회의 머리가 누구라고 했지요?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죠. 그러면 교회의 기초가 누굽니까? 예수님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교회의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했다 말이죠. 그러면 베드로가 교회의 기초가 되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천국의 열쇠는 예수님이 갖고 있어요. 예수님 자신이 천국 열쇠에요. 요한계시록에 보면 나와요. 그분이 봉인하니까 봉인을 떼니까 천사가 우르르 쏟아지지요. 그 말은 떼시는 분의 지시를 받는 게 천사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라고 이름을 짓게 해서 교회를 시작한다면 밀고 당기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교회를 하시면서 보통 묻기를 “그럼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어떻게 생겼습니까? 교인 수는 몇 명입니까?” 이리 묻잖아요. 주님이 이야기하는 것은 그런 질문 자체가 안 되는 교회를 그런 질문을 해서는 안 되는 교회를 만들겠다는 거예요. 그건 뭐냐 하면, 죽고 난 뒤에 사흘 만에 살아나는 이것이 교회의 설립에 원칙이라면 이 사건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이것이 현재 교회 있다, 로 만들겠다는 거예요. 그게 교회 있음이 되게 하겠다.

건물이 몇 층입니까? 이런 거. 그러면 그런 예가 어디 나옵니까? 요한복음2장에 보면 나오지요. 46년 동안 지었던 이 건물을, 가락교회 때 이걸 했어요. 이 건물을 헐어버리라고 했다고요. 그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하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을 들어보면, 이 건물을 헐어버려라. 사흘 만에 짓겠다고 할 때, 주께서 하신 취지가 뭐냐, 이건 백이면 백, 천이면 천이 들어도 46년간 지은 이 건물을 요 터에다가 사흘 만에 짓겠다는 그 뜻으로만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왜? 예수님께서 그런 투로 이야기했기 때문에.

헐어버려라. 사흘 만에 짓겠다. 46년과 3일을 연결시킨 거예요. 46년간 지었느냐, 나는 사흘 만에 짓겠다. 이 말은 같은 건물을 사흘 만에 짓겠다는 뜻이지, 달리 생각할 여지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제자들은 그렇게 생각했어요? 나중에 그게 아니었다는 거예요. 그럼 뭐가 문제에요? 제자들 자신이 문제 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통해서 “니가 문제 있어. 니가 문제가 있으니까 내 말을 못 알아듣지.” 너 자신에게 문제 있음을 지적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입니까? 교회라 하는 것은 교회에 속한 우리가 늘 문제 있음이 들통 나야 될 그러한 사건이 교회에 지금 존재하는 방식입니다. 예수 믿는 내가 늘 문제가 있다. 우리는 뭔가 교회를 소유하려 하거든요. 소유하고 내가 교회의 주인공 되고 싶어 하고 교회의 일원으로서 나 때문에 교회가 잘됐다는 그런 것을 듣고 싶어 하는 게 있는데 그것은 자기 존재지, 그건 사건이 되지를 못합니다.

헐어버려라 다시 짓겠다, 할 때 제자들은 그게 예수님이 죽고 난 뒤에 사흘 만에 나타났을 때, 나오는 교회다 말이죠. 한 번 물어봅시다. 예수님이 죽고 부활했다는 것은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 사건에 해당됩니까? 아니면 지금까지 예수님이 하신 모든 단어와 모든 개념이 다 이런 식으로 완성시키겠다는 뜻입니까? 완성시키는 뜻이죠. 단순히 예수님 죽었다. 살아났다. 끝난 것이 아니고 이제부터 내가 이야기했던 율법, 천국, 모든 하나님의 의, 모든 거룩, 모든 개념에는 반드시 뭐가 있다?

내가 죽고 난 뒤에 다시 살아났다는 이것이 하나의 사건이 아니고 그 능력이 파급 효과가 그 효과로서 모든 게 완성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중에 하나가 새로운 피조물 또는 교회, 그럼 새로운 피조물을 되게 한 것은 뭐냐, 예수님이 죽고 난 뒤에 다시 살아난 거예요.

자, 그러면 끝으로 물어봅시다. 우리가 할 거 있습니까? 없습니까? 정답은 없습니다. 그게 정답이에요. 우리는 수동적입니다. 당하기만 하면 돼요. 우리는 매일같이 당합니다. 주님한테. 매일같이 당하는 거예요. 오늘 대구 날씨가 34도까지 예고하고 있는데. 대구 사람들 당했어요. 6월도 아닌데 지금 한 여름이 돼서 단박에 왔잖아요. 완전히 당한 거예요. 우리는 5월 달 좀 선선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주님한테 당했어요.

주님이 “싫어? 이렇게 날씨 덥게 한 것이 싫다는 말이야?” “그건 아니고요.” “사탄아, 물러가라.” 이리 되는 거예요. “다른 애들 수백 명 죽이니까 싫어?” “싫다는 것보다도” “왜 46년간 지은 거 사흘 만에 지으니까 니가 안 믿겨져?” “너무 빠르게 짓는 것 같아서. 석 달 같으면 되겠는데 사흘은 너무 심합니다.” “그걸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야. 니가 예상한 그 애굽적인 것은 사라지고 천국에 부합된 구경 못한 것을 우리로 먼저 느끼게 하는 작업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자꾸 애굽에서 봤던 것이 와르르 와르르 무너지고 또 다시 와르르 무너지고. 샤워하듯이 때물 내려가듯이 매일같이 샤워해봐야 먼지물이 또 내려가듯이 날마다 우리를 씻기시고 또 애굽을 씻기실 때에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은 주님에 의한 사랑의 감사, “그게 바로 천국이야!”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주 은혜 놀랍네. 찬송가 405장. 어메이징 그레이스. 그게 바로 천국생활이에요. 나 같은 죄인 또 살려주시니 이 은혜 주님의 공로입니다. 그게 바로 천국의 삶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더운데도 일했는데 우리는 날씨가 덥다고 내가 일을 못한다고 짜증 부렸습니다. 새로운 피조물, 정말 주께서 손을 대주셔야 모든 것이 주님에서 나온 사랑인 것을 용서인 것을 우리가 비로소 알게 됨을 우리가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첨부파일 : 대전140529-마16장14절(교회 만들기)52강 - 이 근호 목사.hwp (31.5K), Down: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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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30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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