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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96강-에스겔 34장 10절-12절(양 찾으시는 목자)140618-이 근호목사자유게시판에스겔

96강-에스겔 34장 10절-12절(양 찾으시는 목자)140618-이 근호목사

이름 : 오용익(IP:211.223.103.85)

96강-에스겔 34장 10절-12절(양 찾으시는 목자)140618-이 근호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겔 34장 10절-12절입니다. 구약성경 1205페이지입니다.

에스겔 34:10-12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의 무리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를 먹이지 못할찌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식물이 되지 않게 하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목자가 양 가운데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찌라.”

우리가 방금 보았던 이 성경내용은, 이 부분 뿐만이 아니고 모든 성경이 그렇습니다만, 사람들의 호응을 그렇게 얻어내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성경을 볼 정도로 그렇게 한가롭지를 않습니다. 여기에 매일 정도로 그렇게 관심들이 없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몇가지 용어들, 단어들이 우리에게 뭔가 시급한 일이 있음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 12절에 보면 건져낸다는 말이 나옵니다. 10절 끝에도 건져낸다는 말이 있어요.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식물이 되지 않게 하리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우리가 아는 상식에 따르면 하나님은 그냥 하늘에서 뒷방차지 하고 있듯이 고요히 지상을 내려다보면서 유유자적하게 자기가 만든 창조에 대해서 무심히 지켜보기만 하는 하나님으로 알고 있는데 본문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구체적으로 이 지상에서 활동을 벌이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벌이시는 활동이 “너희들 가만있어. 내가 필요한 것을 채워줄게.” 이런 식으로 활동하시는 것이 아니고 “건져내겠다. 악한 목자에게서 너희를 건져내겠다. 특히 삼킴을 당하지 않도록 건져내겠다.”라고 심각하게 나오시는 거예요.

방금 제가 이야기한 것이 뭐냐, 하나님께서 그냥 하늘에서 지켜만 보시는 것이 아니고 이 땅에서 특정 활동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 특정 활동의 내용이 그냥 일상적인 내용이 아니고 심각한 내용을 가지고 활동을 하시는 거예요. 건져내겠다, 삼킴을 당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조로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하나님 보시기에 이 세상이 맘에 들지 않고 수상하다는 겁니다. 뭔가 범죄가 있고 뒤틀림이 있고 불의가 있고 악의가 설치가 있음에 대해서 하나님이 방관하거나 방치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성경에서 이러한 내용을 듣게 되면 우리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 세상이 어째서? 아무 문제없는데. 무슨 문제가 있었나?’ 우리가 하루하루 살면서 이 세상이 그렇게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문제가 있으면 사람들이 심각하게 거기에 대해서 생각할 텐데 각자 자기 일에 매진하다가 오후 되면 집으로 퇴근하고 아침 되면 자기 업무에 종사하고, 극히 정상적이잖아요. 어디서 전쟁 났습니까? 태풍이 불었습니까? 화산이 터졌습니까?

너무나 평범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때문에 오늘 읽었던 본문 같은 것은 하나님 쪽에서나 심각하지요. 우리 쪽에서는 전혀 심각하지 않아요. 결국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찾아낼 수가 없는 겁니다. 하나님은 열심히 이 계획에 근거해서 일을 하시는데 우리는 전혀 호응할 맘이 없어요. 우리는 너무나 이 세상이 평온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나의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노아 홍수 이전에 하나님께서 노아한테 홍수 난다고 알려주고 방주 만들었잖아요. 그런데 베드로후서 3장에 보면 노아홍수 이야기를 가지고 노아홍수의 그 일이 홍수로 끝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해요. 옛날에는 물로서 세상이 멸망당했는데 지금 너희들에게 평온해 보이고 정상적이고 일상적이고 아무 하자 없어 보이는 이 세상은 사실은 불쏘시개라는 겁니다. 옛날에는 물에 덮이기 위해서 세상이 있었다면 지금 너희들이 정상적으로 보고 있고, 하자 없어 보이고,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이 세상이 불로써 태워지기 위해서 지금 그 시기를 접근해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세상은 옛날 그대로 있었다.”그야말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성철스님의 말처럼 세상은 그대로 있는 거예요.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세상은 그대로 있었던 것이 아니고,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이 아니고 말씀으로 인하여 세상이 있었고 그 세상을 있게 한 그 말씀에 의하여 세상이 거두어지고 불태워진다는 겁니다. 성경이 그렇게 이야기해요.

그러면 우리가 궁금한 것이 있어요. 무슨 근거로, 어떻게, 왜 우리가 지금 어엿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불바다 되어야 하는가? 우리가 이 세상이 불바다 되어야 할 정도로 그렇게 나쁜 짓을 했습니까? 그렇게 나쁜 짓을 한 거예요? 사람을 불에 태운다는 것은 그야말로 극악무도한 자에게라도 너무 심하다 할 만한 형벌인데, 착한 사람도 많은데, 의인이 최소 열명은 넘게 있는 것 같은데 우리가 단체로 불 심판 받아야 할 정도로 우리가 그렇게 나쁘고 우리가 지금 하는 월드컵이 그렇게도 나쁜 겁니까?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지요. 삼척시의 어떤 주지스님이 절을 홀랑 불태웠어요. 아궁이에 불을 지펴놓고 월드컵 보다가 다 태웠습니다. 월드컵 보다가 불 태웠다고 하기 보다는 원래부터 그 절간은 불태워지게 되어 있었어요. 월드컵 안 해도 불타게 되어 있어요. 그 주지스님도 불타게 되어 있고. 지옥 불에. 우리가 성경에 대해서 호응이 안 되는 이유가 우리가 느긋하기에 그렇습니다. 성경이 전혀 현실이 아니에요. 이것은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야기하지요. “하나님이 말만 이렇게 해서 겁만 주지 말고 실제로 이 세상이 그렇게 되어간다는 증거를 보여주세요.” 우리는 그렇게 반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있습니다. 그걸 제가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악한 목자로부터 양들을 끄집어낸다는 다급한 일을 하시는데 우리는 전혀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다급하지 않고 전혀 거기에 호응이 안 됩니다.” 하나님이 혼자 작업해요. 우리는 전혀 안 다급한데. 하나님이 직접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증거를 대 달라는 겁니다.

증거를 대려면 악한 목자가 있어야 되고 그 악한 목자에게 양들이 양식이 되어서 잡혀 먹어야 되고, 어떤 목자가 나타나서 양들을 치고 양들을 끄집어내야 되고 그 다음에 그 양들을 배불리 먹여야 되고, 이런 일들이 눈앞에 펼쳐져야 ‘아, 에스겔 34장의 그 말씀이 맞기는 맞는 모양이다.’ 이렇게 믿을 수가 있는데 전혀 그것이 안 느껴지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어떤 해명이나 설명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양들이 악한 목자를 악한 목자로 의식할 수 있는 안목이 없어요. 지금 둘이 짝짝궁이 되어서 잘 돌아갑니다. 아줌마들이 저녁에 해지는 것도 모르고 콜라텍에서 춤추면서 잘 돌아가는 것처럼 지금 바깥의 상황은 모르고 이쪽은 아주 잘 돌아가거든요. 아주 정상적이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악한 목자에게서 양을 빼내야 한다는 것을 본인이 먼저 이 땅에 오셔서 양이 되시고 목자가 되셔서 예수님이 자신의 목숨이 악한 목자들에 의해서 빼앗기는 사건을 유발시켰습니다. 그 사건이 뭐냐, 십자가사건이에요.

성경이 실제 이야기면 증거를 대세요, 라고 닦달 내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항상 이게 증거라고 내미는 것이 뭐냐 하면, 십자가 사건입니다. 지난 주일에 이야기한 것처럼 모든 말씀은 십자가로 질주하고 달려가고 있어요. 십자가를 경유해야 이 모든 말씀은 해석이 되는 겁니다. 목자 자체가 잃어버린 양이 되고 또 목자가 또 선한 목자가 되셔서 이 세상에서 멀쩡한 목자도 악한 목자로 유발시켜 버린 거예요. 이 세상에 선한 목자는 없고 악한 목자밖에 없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들춰낸 겁니다. 예수님이 왔을 때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못 알아 봤잖아요.

지도자가 못 알아봤다는 말은 뭐냐, 그 밑의 백성들도 역시 목자를 못 알아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양을 지금 건져낸다고 백날 이야기해 봐야 본인이 양입니다, 라고 하고 싶은 사람이 없어요.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니까요? 생각해 보세요. 본인이 양으로 나선다면 그동안 좋게 지내던 그 목자는 악한 목자가 되잖아요. 이 말씀대로 되려면 짝이 맞아야 돼요. 양이 되려면 악한 목자가 있어야 되고 악한 목자가 나를 잡아먹어야 되고, 그래야 이 말씀의 연극무대의 역할이 담당이 되는 거예요.

그러나 이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에서 일부러 이 성경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뛰어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지요. 오늘 본문의 내용을 미리 당겨서 성급하게 이야기했지만 이 결론이 나오기까지 도달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은 것인가? 이런 말씀을 하고 싶은 겁니다. 지금 이 이야기를 이스라엘 보고 하거든요. 그러면 이스라엘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애굽에서 나왔던 민족이 이스라엘이에요. 탈출을 했던 이스라엘에요. 탈출 했으면 뭐합니까? 탈출한 그들이 악한 목자가 되어 있는데요. 그 지도자들이.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출애굽을 두 번 해야 된다는 겁니다. 애굽에서 한 번 탈출해야 되고 그렇게 탈출했다고 자부하는, 그 ‘자부하는’에 밑줄 쳐야 돼요, 우리는 구원받았다고 자부하는, 확신하는, 그 확신에서부터 “그것은 구원이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뛰쳐나오는 두 번째 출애굽이 또 요구되는 거예요.

이 에스겔 본문 말씀은 이방민족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민족보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왔던 민족이고 하나님이 친히 만든 민족이에요. 제가 부산강의에서 존 웨슬러 강의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존 웨슬러 신학이 감리교신학이에요. 감리교신학, 알미니안 주의, 이 웨슬러 신학의 초반부터의 문제점이 뭐냐? 예수 믿는 사람은 거룩해야 된다. 그런데 그 거룩함의 기준이 뭐냐? 세상 사람과 달라야 된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이라고 규정한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웨슬러가 젊을 때 열 두 명의 친구와 더불어 ‘성경 그대로 살기’를 시작합니다. 그 클럽이 홀리클럽, 거룩한 그룹을 조직해서 성경 고 토론하고 경건 서적을 읽고 토론하고, 토론만 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성경말씀대로 사회에 나가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자 어려운 사람들, 교도소 같은 곳 방문해 가면서 착한 일 목록 만들어서 착한일은 다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를 홀리클럽, 거룩한 단체라고 지칭했습니다.

저는 묻고 싶어요. 그 홀리클럽에서 탈출할 의향이 있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그 홀리 클럽에서. 탈출할 의향이 생길 리가 없지요. 세상에서 나왔으면 그것이 곧 거룩이고 이스라엘이라고 자부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은 두 번째 출애굽이 성사될 리가 없고 그런 것은 생각조차 안하고 있지요. 더 어렵게 이야기해서 나로부터의 구원, 나로부터의 구원이 안 되는 거예요.

어렵게 할 것 없이 쉽게 예를 들겠습니다. 욥하고 예수님하고 비교를 해 봅시다. 예수님부터 먼저 할게요. 예수님은 스스로 심판대에 섰습니다. 욥은 자기가 심판대에 섰다고 하는 순간 발악을 해요. “내가 이렇게 죄인의 자리에 설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의롭고 나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고 그동안 하나님과 나 사이가 좋았던 관계였잖아요. 그런데 죄인이 받는 고난을 저한테 주시다니요. 제 자리 자체, 하나님께서 뭔가 저를 잘못 착각하신 게 아닙니까?” 내 자리는 복 받을 자리지 저주받을 자리가 아니라는 거예요. 고난 받을 자리가 아니라는 겁니다.

거기에 비해서 예수님은 자신이 죄 받을 이유도 없으면서 자신의 자리를 저주받는 자리로 삼아버렸어요. 이게 바로 복음입니다. 수십 년 교회 다녀도 복음이 뭔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거든요. 이게 복음이에요. 이 세상에 자진해서 저주받을 인간 손들고 나와 보라고 해요.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도 없다는 게 중요해요. 두 번째 출애굽을 성사시킨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걸 짧게 이야기하면 아무도 구원받을 사람이 없어요. 아무도 없어요.

사람은 자기 앞가림도 지금 힘들어요. 희생, 그것은 일단 자기 배부터 불러놓고 하는 소리입니다. 팔자 좋은 사람이나 하는 이야기에요. 하루 종일 땡볕에서 일하고 집에 들어올 때는 진짜 울면서 파김치가 되어서 들어옵니다. 짜증 제대로지요. 집에 들어오면 식구들 보고 화풀이할 대상이 없는가, 그것만 생각하면서 기어들어오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살아야 될 것 아닙니까? 사는 게 본성인데. 피곤한 몸 가지고 하루 쉬는 날 교회 가면 기도하는 내용이란 게 뻔하잖아요. 힘들어 못살겠으니 좀 편하게 해 달라, 그 기도 말고 무슨 다른 기도가 필요합니까?

버스나 무궁화 타고 가다가 아줌마들 시끄럽게 이야기하는 것 들어보면, 들을 맘도 없는데 시끄럽게 하니까 다 들리는데, 이런 이야기를 해요. 18세에 시집와서 시아버지 모시다가 시아버지가 70대 되자 세상 떴다, 그 이야기입니다. 18세에 시집와서 시부모 섬겼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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