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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이스라엘 목자 140611우리교회에스겔

이스라엘 목자 140611

이름 : 이근호(IP:119.18.90.53)

이스라엘 목자(에스겔 34:1-6)

이근호

14-06-11 21:15

이스라엘 목자

2014년 6월 11일 본문 말씀: 에스겔 34:1-6

(34: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34:2)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의 무리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34:3)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34:4)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34:5)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34:6) 내 양의 무리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의 무리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목자와 양은 세트로 등장합니다. 목자가 반드시 양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양은 목자를 전제로 같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못된 목자가 등장합니다. 이 안목은 하나님의 안목이지 결코 목자 본인들의 견해가 아닙니다. 여기서 목자란 그 당시 이스라엘의 왕과 선지자, 제사장 등 지도급에 속한 모든 자를 지칭합니다.

보통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범죄를 지적할 때는, 이스라엘 전체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목자'에 국한하고 지목해서 범죄를 알립니다. 그 이유는 장차 오실 메시야께서 바로 그 자리에 오셔서 그 역할을 수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잃어버린 양'이라는 개념도 그때 비로소 발생하는 겁니다.

즉 오늘 본문의 말씀도 역시 오신 메시야 입장에서 설명이 되어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하느냐 하면, 어느 양도 자신을 '잃어버린 양'으로 인정하는 양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정말 '잃어버린 양'으로 인식하려면, 하나님께서 목자들을 공격하면서 어떤 기준에서 공격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그 기준 앞에서 양이 저촉되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에 목자가 자기 생존과 자기 소유에 우선하고 양도 자기 생존과 넉넉한 생황형편을 우선시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한다면 이 양은 결코 '잃어버린 양'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선지자가 와서 그당시 지도자를 '못된 목자'라고 지적하기 전에 왜 일반 대중들은 여전히 자신의 지도자를 지도자라고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까?

그것은 목자의 사고방식과 자신의 사고방식이 일치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목자들은 양을 대하면서 살진 고기와 털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목자의 기대치에 양들이 그 죄에 대해서 지적할 마음이 없는 것은 본인들도 같은 차원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지도자들이 자신들에게 잘 살게 해 준다는 기대를 갖고 있기에 우선적으로 목자들이 살진 고기와 털을 갖는 것에 대해서 하등 이상하게 여기지 않게 됩니다. 즉 이스라엘 전체가 총체적으로 생존에 열중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따라서 참으로 ‘잃어버린 양’ 답게 되려면 자신의 목자들이 어떤 기준에 의해서 선지자에게 평가받는지를 알고 그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가 되어야 합니다.

마치 담임 목사의 비리에 대해서 외부에서 비난하면 그 교회 교인들이 나서서 변호해지고 자기 목사를 사고도는 이유는, 목사가 엉터리라면 자동적으로 자신들도 엉터리 교인으로 낙인찍히기에 이게 자기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는 겁니다. 살진 고기를 지도자급이 가져가도 그것을 당연히 하는 사회 전부의 풍토로 인해 정작 '못된 양'들만 양산되지 진정 '잃어버린 양'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참된 '잃어버린 양'은 '참된 목자'가 등장할 때만 같이 등장합니다. 왜냐하면 목자와 양은 세트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아모스 8:11에 보면, “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많은 참된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심정을 담은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하지만 지도자급에 속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은 하나님의 참된 말씀의 취지를 들을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우선 관심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생존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들이 주변에 있는 이방나라의 잘 사는 것을 부러워했고 따라서 그들의 종교에 동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거짓된 목자들에 길들여진 양들도 목자들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어떤 목자 가운데서 참으로 말씀만 사모하는 목자가 있다고 한다면 비로소 그 목자의 눈에만 무엇이 ‘잃어버린 참된 양’인지 눈에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참된 양들은 물과 양식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원합니다.

하바국 선지자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지만 참되게 ‘잃어버린 양’이 하나님의 말씀만 사모한다는 사실을 어느 목자가 발견한다고 해서 그 목자가 ‘참된 목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을 목자가 채워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건전한 것을 희망한다고 해서 건전하게 현재 살고 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몸이란 주변 상황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비록 마음으로는 말씀만 사모하는 그런 상황을 상상은 할 수 있지만 막상 돈이 궁하든지 아니면 예상 외의 큰 돈이 들어오게 되면 말씀 사수보다는 돈 사수로 돌변할 가능성이 항상 담겨 있는 것이 인간의 생활 방식입니다.

즉 인간의 기쁨이나 생의 즐거움이 말씀으로 연속적으로 보장할 수 있느냐는 것을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 만으로 산다’는 대해서 낭만적인 상황을 미리 구상한다는 것이 신빙성이 없는 겁니다. 이 말은 곧 그 어느 누구도 참된 목자로 자처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실내용은 예수님이 오셔서 모든 계시가 다 드러났을 때, 비로소 윤곽이 드러납니다. 즉 예수님께서 친히 목자가 되셔서 자신이 원하는 자를 ‘잃어버린 양’으로 생산해내시는 작업을 하시는 겁니다. 자진해서 목자 노릇을 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그리워한다는 해서 그 자체로 ‘참된 목자’로 자처할 수는 없습니다.

참된 목자로 자처하지 못한다면 ‘죄 없는 자만 돌로 칠 수 있다’는 원칙에 의해서 그 어떤 목사를 자기 입장에서 ‘거짓된 목자’라고 공격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증거하지 않는 양이 되었던 목자가 되었던 구원될 자들은 아닌 것입니다. 그 이유는 모든 말씀이 각 개인의 가치를 정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에서의 완성을 증거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최종적으로 예수님 외에는 아무 것도 증거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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