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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서울 의존교회140509a,b (교회구성)―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디모데전서

서울 의존교회140509a,b (교회구성)―이 근호 목사

이름 : 김창길(IP:180.150.197.209)

서울 의존교회140509a (교회구성)―이 근호 목사

디모데전서 3장 1절을 보면‘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이렇게 되어 있죠. 지난 시간에 여자가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대목을 제가 설명하면서 그때는 성경 말씀과 그리고 여자 라는게 실제로 있잖아요. 남자있고 여자가 있는데 그 여자와 남자는 내가 되고 싶다고 골라잡을 입장이 안 되죠. 아들로 태어났으면 남자이고 딸로 태어났으면 여자가 되는 거잖아요. 이미 태어난 것, 장기 알 같은 이미 태어난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은 이런 의미이고 남자로 태어났다는 것은 이런 의미이다.

이미 남자, 여자가 확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거기 하나님의 말씀이 추가적으로 입혀지는 거예요. 그러면 여자라 하는 것은 창세기 사건과 연관이 있구나, 남자라고 하는 것이 창세기 3장과 관련이 있구나, 그래서 우리가 여기 존재한다는 것 내가 여기 산다는 것, 내가 여기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말씀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가 금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여기 있고 내가 말씀 지킬 거야 하는 말이 성립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제 취지를 이해하셔야 되는데 내가 여기 있고 내가 죽어서 좋은 가려면, 천국가려면 말씀을 한번 지켜볼까 하는 이런 입장이 인간은 아니란 말입니다. 왜냐 하면 내가 남자인데 내가 여자로 다시 태어나면 어떨까? 라고 마음은 먹을 수 있어도 우리가 여자로 태어나고 남자로 태어나는 것이 내 마음대로 결정되는 문제에요? 아니잖아요. 내 마음대로 결정되지 않았다는 말은 그러면 내 마음대로 결정하지 않았는데 누가 그렇게 한 거야? 할 때 성경은 하나님, 내가 했어 라고 나온다 이 말이죠.

그러면 우리가 새삼스럽게 하나님을 요청할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새삼스럽게 하나님을 요청할 필요가 없지요. 제 취지를 이해 못 하시는 것 같은데 하나의 예를 들면 집이 외로워서 강아지 두 마리 키우겠다면 시장에서 강아지 두 마리 사면되잖아요. 그러면 우리 둘이 살다가 새로 강아지 두 마리 오게 되면 식구가 네 식구 되는 것 맞지요? 그런데 이런 경우가 있거든요. 강아지 두 마리하고 남편하고 이렇게 사는데 임신이 되어 버렸어요. 임신이 되어 버리면 그 뒤에 애 하나 생겼잖아요. 그러면 그 집에는 강아지 두 마리하고 부모하고 애 까지 다섯 명 됐잖아요.

그러면 태어난 애가 하는 말이 ‘엄마, 저 내가 사지도 않은 강아지가 왜 저기 두 마리 있지?’라고 물으면 엄마가 뭐라 합니까? 너 태어나기 전부터 이 강아지 있었다고 이야기하잖아요.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거에요. 내가 인간이 될까, 말까? 내가 남자가 될까, 말까? 여자로 태어나면 어떨까? 이렇게 우리는 스스로 생각할 수는 있는데 그런 결정 이전에 누가 계시다는 말입니까? 결정이전에 하나님이 먼저 계시잖아요. 새삼스럽게 내가 하나님을 믿을까 말까? 하는 자체가 성립이 됩니까? 안됩니까? 성립이 안 되는 거예요. 내가 이집에 아기로 태어났으니까 이제부터 강아지를 키워볼까 말까? 라고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이미 태어나기 전에 강아지 두 마리 놀고 있는데 온 천지를 다 난장판으로 다 만들고 있는데 자기 까지 태어나서 같이 난장판 되고 있다 말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우리가 나는 하나님 믿어야지 하는 말 자체가 하나님 믿겠다, 섬기겠다, 하는 것이 내가 선택 이전의 문제다 이 말입니다. 나는 우리 집에 어르신네가 있는데 어르신네가 아무리 봐도 우리 아버지 같으니까 이제부터 아버지라고 불러줘 라고 우리가 선택할 문제가 아니잖아요. 라고 우리가 선택할 문제가 아니잖아요. 늙은 아줌마 있는데 엄마라고 불러줘? 이렇게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 말이죠. 그 분들이 내가 있기 전에 먼저 있었잖아요.

그래서 교회가고 하나님 믿고 하는 것을 자랑질 하지 마라 이 말입니다. 그것은 자랑할 문제가 아니고 선택할 문제가 아니고 도대체 내가 여기 왜 있지 라고 따지고 들자면 필히 등장해야 될 인물이 누구입니까? 나를 있게 만든 하나님이다 이 말이죠. 하나님이 있다 없다는 문제를 떠나서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고 도대체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 제대로 된 하나님일까? 그런 문제가 더 중요한 문제이죠.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진짜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일까, 아니면 가짜일까? 이 문제이지 하나님 한번 믿어봐? 그러면 안 믿으면 어떻게 할 건데요? 안 믿으면 자기가 왜 있는지 이유를 알고 자기가 왜 죽는지 이유를 압니까? 사람이 태어난 것도 모르지만 왜 죽는지도 모르잖아요. 죽는 이유도 모르고 태어난 이유도 모르면서 그 안에 산다는 것은 그것은 의미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집에서 형광등 켰다가 한 순간에 탁 나가는 수가 있잖아요. 갑자기 깜깜해 졌죠. 밤에 형광등 나갈 때 어떻습니까? 밤은 원래 어두웠어요. 형광등 켜 놓고 밤이 안 어둡다고 우기시면 곤란합니다. 형광등이 밤이 어두운 것처럼 우리가 60평생 70평생 80평생 살다가 형광등 꺼지듯이 한꺼번에 딱 나가버리게 되면 원래 이 세상은 죽이도록 되어 있는 세상이에요. 이 세상은 죽는 사람들만이 잠시 등장 했던 연극 무대에 지나지 않습니다. 연극이 끝난 후에 각설이 혼자 남아 있을 때 모든 것 사라지는 겁니다.

연극이 끝난 후에 모든 것이 사라질 때 그러면 사라지면 우리는 같이 그냥 사라지는 거예요. 관객만 남아서 옛날에 저 사람이 그렇게 살아 있었지 그것만 있을 뿐인데 마치 내가 당연이 있어야 된다는 것은 어떤 억지이냐 하면 밤은 훤해야 된다는 억지 하고 똑같은 거예요. 이 세상은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는 게 있잖아요. 이거 우리가 정한 거예요? 전도서에 보세요. 태어날 때가 있으면 무슨 때가 있다? 죽을 때가 있다. 우리가 이것을 의논해서 우리가 만들어 낸 세상이 아닙니다.

한번 적어 볼게요. ‘우리가 만들어 낸 세상이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 낸 세상이 아니라면 이 세상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거예요? 몰라도 돼! 라는 말은 죽을 때도 그런 질문을 할 수가 없어요. 도대체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이기에 내가 왜 죽느냐? 그 문제가 왔을 때 이것은 평소에 살아 있을 때 여러 번 자기한테 했어야 될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여! 세상이 왜 있습니까? 이것을 모르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도 죽은 거 하고 똑같은 거예요. 자기가 죽었다고 치고 관속에 들어가서 흙으로 묻고 있어 보세요. 세상에 배가 뒤집어지던 빠지던 자기 하고 관계있습니까? 없습니까? 관계없잖아요. 왜냐 하면 자기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죽은 자한테 뒤에 욕설을 해도 ‘이씨 누가 욕설을 해?’ 하고 나간다는 자체가 이미 아직 덜 죽었네? 이렇게 된다 말입니다. 죽었다 쳐 보세요. 욕을 하던 내 자산을 다 가져가던 도둑질 하던 세상이 뒤집어지던 화산이 터지던 이미 죽은 자한테는 그게 의미가 없잖아요. 그런 쪽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된다 이 말입니다.

이미 내가 죽었고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이미 죽은 자로 있을 때 나의 관심사가 어디 있느냐 말입니다. 진도 배가 빠진 게 나의 관심사입니까? 북한의 핵문제가 나의 관심사가 되겠어요? 나의 관심사는 하나뿐이어야 됩니다. 하나님이여! 죽어야 될 우리를 왜 만들었습니까? 주님이여! 세상은 이렇게 이런 식으로 만들어 주셨습니까? 저를 만드신 분은 왜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고 왜 저를 이 땅에 태어나게 했습니까? 우리가 죽었다고 치고 질문은 바로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인간을 이렇게 만드셨습니까? 하는 그 질문이라 말이죠.

일단 죽었다 치고 그 질문을 하면서 성경을 보게 되면 비로소 성경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성경으로 다가오는 겁니다. 제가 강의를 길게 이야기를 했는데 방금 이야기한 것을 요약을 하면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은 내가 여기 있어서 내가 새삼스럽게 성경 지키고 하나님 믿고 주제를 떨고 뭔가 하는 모습을 보여도 그것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살아있는 나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그 짓하고 있다는 것을 본인도 알고 남들도 다 아는 이야기에요.

그렇게 성경은 내가 여기 있고 나 유리하고 이익대로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고 내가 죽었다고 쳤을 때 왜 나는 죽어야 되는 인간이 왜 여기 존재가 하고 있느냐? 그렇게 되면 내 위주가 아니고 누구위주입니까? 나를 여기 있게 하신 그분 입장이고 그분 안목이고 그분 생각에서 성경을, 세상을 다시 보게 된다 이 말입니다. 내가 여기 있다고 하니까 내 입장에서 어떻게 궁지렁 궁지렁 하는데 내가 우선이 아니고 먼저 계신분이 우선이기 때문에 그분 입장에서 보게 되면 우리는 왜 있는가? 그것은 말씀이 말씀되게 하기 위해서 있는 거예요.

여러분, 축구장에 공 하나가 있어요. 그 놓인 이유가 뭡니까? 뭘 하기 위해서 있는 겁니까? 축구 게임을 하기 위해서 있는 거죠. 그러면 축구 선수가 축구공 가지고 글러브 가지고 던지고 주고받고 하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아, 이거 재미있네 하고 던지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게 되면 그것은 축구가 아니라 야구가 되겠지요? 하나님은 말씀 게임이 있어요.

하나님이 말씀을 주신 것은 말씀 자체적으로 목적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주 되심이거든요. 그런데 주 되심을 위해서 말씀이 있는데 우리는 그 말씀 가지고 다른 게임을 하면 돼요? 안 돼요? 안 되잖아요. 성경 말씀은 우리 위주가 아니고 우리 보다 먼저 계신 분, 우리를 창조하신 분, 말씀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주 됨을 위해서 말씀이 있다 이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여기 있다는 이유 때문에 내가 여기 살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나한테 이익되고 나의 육망을 이루기 위해서 죽고 난뒤에 좋은데 가려고 이 말씀 한번 지켜볼까? 이렇게 하면 주님과 같은 게임이 아니고 다른 게임이 된다 이 말입니다.

주님은 축구를 원하는데 우리는 게임을 모르니까 말씀가지고 야구를 하고 있는 샘이다 이 말이죠. 그러면 야구하면 됐지 뭐 있냐? 야구 하세요. 야구하면 좋은데 문제는 축구하는 그 나라에 못 간다는 거예요. 축구하는 나라는 무슨 나라입니까? 천국이거든요. 실컷 말씀가지고 장난질하고 하세요. 하는데 문제는 뭐냐 하면 하나님이 원하고 게임, 그게 원칙 언약인데 하나님의 약속의 완성체가 천국이거든요. 약속을 알아서 천국 가는데 이 땅에서는 약속이 아니고 자기 욕망과 야심을 위해서 성경을 인용하고 자기 마음대로 생각해 버린다면 이것은 주님 우선이 아니고 누구 우선입니까? 나 재미있는 대로 살았다! 왜? 내 인생 나 재미나게 살 거야! 내 마음대로 살 거야! 내 인생 내건데 내 몸 내건데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데 니가 왜?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하는 분, 당신은 누가 만드셨죠? 그건 몰라! 그건 모르지!

그것을 모른다는 말은 그러면 당신이 지금 그런 식으로 산다는 것은 나중에 심판 날에 옳을지 그를지 본인도 모르겠다 말이에요. 모르지요. 그러면 당신이 왜 태어 난지도 모르고 왜 죽는지도 모르고 결국은 당신이 하는 모든 것은 매일 매일이 ‘아이 몰라!’ ‘아이, 몰라’를 계속 연속해서 이어져 가는 것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면 그 집의 가훈은 몰라! 알 수가 없어! 이거예요. 몰라요. 아무 것도 몰라요.

천국의 계획과 법칙을 성경에 담아서 미리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 천국의 법칙과 성경 내용은 오늘날 kbs 9시 뉴스나 mbc 뉴스에서 이 성경이야기가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안 나오죠. 안 나온다는 말은 이 세상 사람들은 다른 게임을 원하고 다른 소식을 듣고자 한다 이 말이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출애굽, 바로 다른 게임을 하는 그 현실에서 진짜 하나님이 원하는 약속을 원하는 그 현실로 탈출하는 것이 출애굽이잖아요. 애굽에서 나오는 것, 그게 구원입니다.

세상이 너무나 대조되니까 예수님이 그것을 가지고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했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서 너희가 정말 발견해야 될 표적이 있다면 그것은 요나의 표적이다. 죽어야 산다. 배를 버리고 바다에 뛰어 들어가야 산다는 겁니다. 왜? 예수님이 먼저 그렇게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먼저 배를 버리고 바다에 뛰어들었잖아요. 그리고 나 있는 곳에 와야만 너희가 생명이 있고 너 있는 곳에는 생명이 없다는 겁니다. 나 있는 곳에 생명이 있다 왜냐 하면 내가 곧 생명이니, 그러니까 제자들이 하는 말이 ‘예수님,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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