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강-YouTube강의(선물과, 뇌물)1405015-이 근호 목사
74강-YouTube강의(선물과, 뇌물)1405015-이 근호 목사
이름 : 유일자(IP:116.33.234.248)
74강-YouTube강의(선물과, 뇌물)1405015-이 근호 목사
제목은 ‘선물과, 뇌물’ 입니다. 선물하고 뇌물하고 어떤 차이가 있느냐 생각해 보면, 인간 쪽 에서 출발하게 되면 그것이 은근히 선물을 기대해도 그것은 뇌물의 성향이 강해요. 내가 이것을 받는 다든지, 내가 이것을 준다든지 예를 들면, 내가 이것을 상사한테 뭔가 선물을 줄때, ‘상사님 이건 뇌물입니다.’ 라고 이야기 하면서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상사님 아무 생각마시고 제 성의라 생각하시고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했는데, 그 선물 받은 상사가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에게 후한 점수를 줬을 때는 은근히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화가 나겠죠. 인간에게는 순수하게 선물이라고 여겨도, 결국 인간은 선물을 순수하게 유지하지 못하고, 그걸 항상 뇌물성 있는 입장으로 나중에 시간이 지나가면 그렇게 전환되는 겁니다.
이번엔 반대로 이야기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었다라고 할 때에, 처음에는 ‘아이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지요. 받고 난 뒤엔 하나님께 선물은 받았는데 하나님이 선물주신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내가 변화된 삶을 살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나를 닦달내시고, 뻔뻔스런 자라고 욕하겠는가. 라고 우리 쪽에서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역시 뇌물성 있는 해석이 돼버립니다.
평소에 우리가 인간 대 인간으로서 어떤 댓가 없이 물건을 주고받을 때에 자기 딴에는 순수하다고 하지만 결국은 선물 줬다는 그 기억 때문에 순수하게 오래가지를 못하고 반드시 반대극부가 되돌아와야 그 다음에 내가 선물 줄 수 있는 보람을 느끼겠다. 라는 식으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요.
이것은 인간성 자체가 이미 망가졌고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헌금을 할 때, 하나님이여, 이거는 은혜 받은 것에 감사해서 아무 댓가 없이 드립니다. 라고 하면서 그 헌금이 어떻게 쓰여지냐를 감시하게 돼있고, 그 헌금이 흘러가는 통로를 주시하게 돼있고, 그것이 자기가 기대한 거와 정반대로 간다면. 그 다음에 또다시 헌금 할 마음은 싹 가시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선물, 선물을 말하지만 인간 쪽에서는 그 선물을 뇌물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러한 문제성이 우리 인간 속에서 본성적으로 잠재되어 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주신 이 선물마저도 우리 쪽에선 뇌물성으로 왜곡돼서 해석할 수밖에 없다면 그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이 될 수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선물줄 때, 우리가 선물을 보답해서 어떤 추가적인 행동을 할 때만 영광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관점에서 보시는 선물을 순수하게 그 선물자체로 받아들일 때,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얘기 한 바에 의하면, 아무리 순수하게 하나님이 선물을 줘도 우리는 인간성 자체가 고장났기 때문에 우리 안에서 선물이 아니고, 뇌물로 변질되어서 수용하기 때문에 순수함이 우리에게 나올 수가 없죠. 그러면 선물 줘놓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못받는 결과가 나오면 어떻게 하겠느냐,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바로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실 때 그 성령께서 우리를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환경으로 데려 갑니다. 그 환경이 뭐냐? 전쟁입니다. 영적전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니가 영적전쟁 안에 놓여 있음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차원에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십니다. 우리 소유용으로 갖고 있어라가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성령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데요,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주체가 되서 우리를 데리고 우리를 어디로 안내하느냐하면, 영적전쟁이 벌어지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게 됩니다.
그럼 영적전쟁이 벌어지는 곳으로 데려가게 되면, 우리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가. 우리는 바로 선물을 뇌물차원에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그 정도로 자기 이득만 먼저 고려하고 자기가 편한 것만 먼저 챙기는, 그런 하나님의 원수적인 요소가 있음이 발각당하는 그 현장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영적전쟁에다가 데려 갑니다.
에베소서4장 7~8절에 보면, 이런 말씀 나옵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을 주신다는 것, 이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시는 것이 아니고, 전쟁에서 우리대신 영적전쟁을 치러 주시는, 그래서 마귀를 이겨주시는 제3의 인물이 선물 받게 되면, 우리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 분이 누구냐. 바로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영적전쟁터에 가게 되면, 우리는 무능한 자로 발각이 되고 우리는 어떤 능력을 행할 수 없어요. 마귀를 이길 수 있는 어떤 무기도 우리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등장하셔서 예수님께서 우리가 이기지 못한 마귀와 죄의 권세를 이기게 하셨다는 그 현장에서 믿음이 생기도록 조치를 해주십니다. 곧, 너 자신을 이제는 믿을 만한 게 못되지? 우리는 ‘예’ 라고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가 영적전쟁 속에 있느냐, 없느냐를 어떻게 아느냐 하면, 모든 일에 대해서 우리가 나서서 해결하지 못한 무능한 자라는 것을 제2, 제3 되풀이 하면서 그걸 깨닫게 하는 거예요. 우리는 어떤 뭔가 좋은 일 생기면 거기다가 자기 행함을 연결시켜 버려요. 행함의 노선과 연결해가지고 내가 착하게 살았기 때문에 복을 받았다고. 내가 신앙생활 잘했기 때문에 이런 복을 받는다는 자꾸 그런 식으로 연관을 시켜요. 믿음이란 이름으로, 은혜란 이름으로, 행함의 모습으로 자꾸 들이미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전쟁에서 자신이 무능한 자, 못난 자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고, 이제는 잘하면 내 힘으로도 될 수가 있는 자기가치, 자기가능성 이런 것을 의지하고 앞장세우는 그런 인간으로 노출되죠. 따라서 그 노출을 통해서 우리가 은연중에 마귀로부터 사로잡힐만한 그런 이유가 나타나 버립니다.
그건 뭐냐 하면, 항상 마귀는 우리 편입니다. 내가 내부터 챙기고, 내 자랑거리, 내 자존심을 유지하려고 최후로 붙잡고 있는 것은 뭐냐, 나의 가치밖에 없다는 것에 대해서 마귀가 호응을 해주고 힘을 보태줍니다. 그래 되면, 십자가 예수님 죽으심의 의의는 무가치하게 날라가 버리죠. 그래서 마귀는 복음의 광채를 그런 식으로 흐릿하게 만드는 그 작업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그 영적전쟁에서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마귀의 시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자기 자신을 찬미하고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황홀해하고, 감탄하면서 우리는 자기 스스로 자기를 섬기는 우상숭배자로 발각 당하게 되죠.
자, 그럴 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의 내용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 선물의 내용은 뭐냐. 에베소서8절 아까 읽은 말씀처럼, 그 분이 위에 올라가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실 때, 그것은 나의 행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은혜로 주신 것이 되죠. 은혜로 주신 것이 되게 되면, 이거는 뇌물이 아니고 선물이 되는 겁니다.
왜, 못난 사람에게, 탕자에게 그냥 무상으로 아버지가 옷을 준비하고 가락지를 준비한 것처럼 우리의 행함과 상관없이 그냥 주시는 그 선물. 그 선물이 유지되면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천국 생활을 우리는 하게 되는 겁니다.
다시한번 정리하게 되면, 우리는 항상 뭐든지 내 소유가 되면, 뇌물로 이해를 하게 되지만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면, 이거는 뇌물이 아니고, 우리 소유용이 아니고 주님만 높이라는 선물용, 주님자신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것을, 그 선물로 인하여 구원받은 것을, 사랑받은 것을 우리는 다시한번 증거 하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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