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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3)01십자가마을여름수련회(야고보서)2자유게시판야고보서

(3)01십자가마을여름수련회(야고보서)2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 야고보서(2) ]

십자가마을 수련회 / 2001,8,13-16 경남 양산
강의(이근호) / 정리(구득영)

먼저 야고보서 1장 12절과 13절을 보자.

(약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약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 1장 -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

여기에 1장 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되어있는데, 제가 교회에 다니지 않을 때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성경에 보면 참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니, 참으세요" 라고 말이다. 그래서 저는 성경을 공부하면서 그 구절이 어디 있는지 참으로 궁금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혹시 여러분은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말이다.

그리고 동방박사가 3명이라는 것도 모르겠는데, 치킨과 햄버거와 피자를 먹으면 3명이 먹은 것인가?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드리면 3명이 드린 것이냐는 말이다. 서로 공동구매를 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이라는 것도 그렇고, 또한 십자가의 오른쪽에 달린 강도가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데, 성경 어디를 봐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왼쪽도 아닌데, 그냥 어느 한 쪽 강도이지 말이다.

◈ 모든 권력은 시간이 조작해 !!

'권력과 달력' 이라는 재미있는 책이 있는데, 즉 이 세상의 모든 시간은 권력이 조작해낸다는 것이다. 그 내용이 무지무지 복잡하고 어려운데 말이다. 기존의 모든 달력들이 국가권력과 종교단체에 의해서 어떻게 왜곡되었는지를 밝혀내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마저 권력이 조작한다는 말이다. 즉 달력이 민중들을 다스리는 하나의 지배체제로서 사용이 되었다는 것인데, 그 내막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 라고 되어있는데, 그리고 13절에는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이 구약의 여러 구절과 맞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무수히 많이 하셨는데, 욥이나 아브라함에게도 그렇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 그 시험의 원인이 자기에게 있음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착하고 깨끗한데, 그런데 왜 이런 시험이 나에게 오지?" 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즉 시험을 하나님 탓으로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 시험의 원인은 자기 자신에게 !!

그러니 어떤 시험이 오면, "이 악한 세상과 내가 한 덩어리가 되어서 그렇구나" 라고 하면서 자기 탓으로 돌려야지, 그것이 아니라 "시험이여 와라. 하나님이 이런 시험을 주셨으니 제가 견디겠습니다" 라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시험은 너 때문에 생겼어"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아닙니다. 저는 착한데 하나님이 시험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오리발입니까?" 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시험이 닥칠 것인데,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하나님에게 핑계를 대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선한 분이시니 말이다. 그러니 그 원인이 무엇인고 하니, 바로 자기와 자기가 속해있는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육(肉)' 이라는 말이다.

이제 조금은 뚫렸지 싶은데, 즉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도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던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죄가 잉태해서 욕심을 낳는 것 같은데 말이다. 그것은 바로 야고보서가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믿음으로 처리하는지, 그것을 설명해주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사람을 시험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내 모습은 왜 이런가? 믿으면 그만인데, 왜 또 행함이 있는가?" 라는 것은, 그것은 그러한 상황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제 지난 시간에 한 로마서의 이 야고보서의 취지에 대해서 좀 알았지 싶은데 말이다.

* 질문 - 마태복음에서 이야기하는 시험과는 어떻습니까?

마태복음에서 이야기하는 시험과 여기의 시험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힘들고 어려운 것인데, 그래서 참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참으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고 하니,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험을 주셔서 그렇습니다" 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욕심이 그것을 유발시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욕심이라는 것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미련이라는 것이다. 최백호가 그런 노래를 불렀는데, '낭만에 대하여' 라고 말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고, 젊은 사람은 나이가 많을 그때를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순간이든지 미련이 남지 않을 때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시련의 달콤함이야 잊겠냐마는, 왠지 한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 라고 하는데 말이다.

◈ 인간은, 욕심이 많아서 죽지도 못해 !!

그러니 사람은 나이가 50이 되면 죽어야 하는데, 남에게 봉사할 수 여력이 있을 때만 사람이지, 그렇지 않고 생존에만 힘을 다 쏟는다고 하면, 그리고 남에게 도움을 받고 살아간다고 하면, 그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교회에도 노인들이 있지만 "목사님, 죽고 싶은데 당장 죽지 않으니 어떻게 합니까?" 라고 하는데, 그것은 욕심이 많아서 죽지 않는다는 말이다.

남에게 내어놓을 것이 없고 또 봉사할 것이 없으면, 그 다음에는 자기 존재에게다가 어떻게 하는가? 자기만 하면 좋은데, 그게 아니라 자식뿐만이 아니라 사위도 자기에게 투자를 하게 하니, 그것이 남에게 얼마나 피해를 주느냐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자기 자식에게 투지를 해야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나이가 들어서 자식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국민연금을 들도록 하는데, 그런데 그 국민연금도 결국 자식들의 돈으로 충당해야하는 문제점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세금으로 말이다. 옛날에도 그런 제도가 있었는데, '두레' 라고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국민연금으로 장례식도 치르고 해야하는데, 물론 화장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보다도 화장터를 엄청 더 지어야 하는데, 그것도 국민연금에 든 사람만 이용하도록 말이다. 왜 그렇게 해야하는고 하니, 땅은 자기 것이 아니라 후손의 것인데, 자기가 다 차지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것이 욕심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11절에 보면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라고 하는데, 그렇게 우리 인간도 어떻게 되는가?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인간은 허무가 바탕인데, 그 허무가 자기 실체를 드러내면,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같이 시들어버리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을 전부라고 여기느냐는 것이다.

(약 1: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 망가지고 망가지는 것이 곧 인생 !!

다시 1장 15절로 돌아와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라고 되어있는데, 이게 무슨 의미인가? A가 B가 되고 B가 곧 C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욕심이 곧 사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사망은, 그냥 죽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고생을 다 하면서 망가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록 허드슨' 이란 미남 영화배우가 임질에 걸려 죽었는데, 얼마나 허무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 당시의 여성들이 얼마나 흠모했는지 모르는데 말이다.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그리고 여기 16절에 보면,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라고 하는데, 왜 그러한가?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인들은 자기를 속여달라고 난리인데,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축복을 외쳐달라는 것이다. 말씀만 가르치지 말고, 간증집회와 같은 것도 좀 열어서 축복을 해달라는 말이다.

(약 1: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약 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 다리를 벌려 심히 행음하고 !!

그것을 두고 구약에선 '음녀' 라고 하는데, 즉 다리를 벌리고 이방인들과 음란하게 행한다는 것이다. 그런 창기의 속성과 동일하다고 에스겔서와 호세아서에 보면 이야기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위로부터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이 세상의 것을 좋아하는 것을 두고 더럽다고 한다는 것이다. 수치를 드러낸다고 말이다.

(겔 16:25) 네가 높은 대를 모든 길 머리에 쌓고 네 아름다움을 가증하게 하여 모든 지나가는 자에게 다리를 벌려 심히 행음하고
(겔 16:26) 하체가 큰 네 이웃나라 애굽 사람과도 행음하되 심히 음란히 하여 내 노를 격동하였도다

주께서는 자기 피로서 자기 백성들의 수치를 가리워주었는데,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그것을 드러내고 이방인들과 같이 연락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창기' 라는 욕설 외에 달리 사용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이냐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그 당시 예레미야의 경우에는 이스라엘을 보고 뭐라고 했는가? 제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너무나 듣기가 거북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예레미야를 보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고 하셨고 말이다.

◈ 아버지는 항상 그 자리에 !!

아무튼 야고보서에서 말하기를,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17절에 보면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가 변함이 없다" 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 세상은 변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림자가 회전을 한다는 것은 실체도 회전을 한다는 것인데, 하지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퍼마시고 마셔도 영원토록 솟아오르는 생수처럼, 그렇게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인데, 즉 항상 그 자리에 계신다는 것이다.

마치 과거 우리들의 아버지처럼 항상 그 자리라는 말이다. 가정에서 중심이 흔들리면 모든 것이 다 흔들리는데, 남자가 왜 가정에서 군기를 잡으려고 하는가? 자기가 흔들리면 가정이 흔들리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목회학에 보면, "목사는 그 어떤 경우에라도 침착해야 된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말이다. 그리고 자기 성질도 내면 안 되고, 물론 설교를 하다가 고함도 지르면 안 되고 말이다.

그런데 교회에서 질서를 잡는다고 하면서, 왜 여전도회에서 놀러가기로 하면 꼭 늦게 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래서 목사가 일부러 버스를 정각에 출발을 시켜버린다는 말이다. 예배시간에도 늦게 오면 안 된다고 하면서 11시 정각에 문을 잠그고 하는데, 그렇게 군기를 잡는다는 말이다. 도대체 그것이 뭐냐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교회에서는 헌금봉투에 도장을 찍는다고 하는데, 무슨 일수도장을 찍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세리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합법적인 세리가 목사인데, 돈을 내라고 강당에서 외치는 말이다. 물론 수련회를 하면 회비는 내야하는데, 그런 것까지 입을 닦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ㅋㅋ).

◈ 변하지 않는 것을 믿으면서 왜 벌벌 떠는가?

방금 한 이런 이야기가, 여기 19절에 보면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라고 하는데 말이다. 우리가 변하지 않는 것을 믿는다고 하고, 움직이지 않는 그림자를 믿는다고 해놓고, 그런데 실제 생활에서는 왜 그렇게 정서적으로 불안하냐는 것이다. 기도를 해도 벌벌 떨면서 하는데, 마치 밀리는 파도처럼 말이다.

(약 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그렇게 남을 의심하고, 두 마음을 품고, 그러니 야고보서에서 하는 말이 무엇인가? "중심을 잡아라" 라는 것이다. 사라지는 것에 미련을 두지 말고, 영원하지 못한 변하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니 안심하고 굳게 잡고 믿으라는 것이다.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 그야말로 젤콤 하나로 다 잡힌다는 말이다. 그러니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 약을 따로 따로 달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 그렇게 흔들리느냐는 것이다.

욕심이 왜 생기는가? 변화에 따라서 욕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보는 것이 곧 욕심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그렇게 보는 것에서 새로운 욕심이 생긴다는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나는 욕심이 없다" 라고 하는데, 그런데 돌아서면 "아, 저것!"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 남자는 왜 바람을 피우는가?

남자가 바람을 피우는 이유가 무엇인가? 피우고 싶어서 피우는 것이 아닌데, 술집 여자와 놀아나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은 육체적 욕구를 배설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한다는 것은, 자기도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 당구를 배우면서, 어디 자기 마음대로 쿠션을 넣을 수가 있는가? 그리고 바둑을 두면서 자기 마음대로 아다리를 칠 수가 있느냐는 말이다.

그렇게 바람을 피우는 것도 어떻게 말릴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아내를 아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즉 조강지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새로운 경험이란 것이다. 여기에는 윤리와 도덕이 개입될 수가 없는 차원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이런 간통죄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가 오해를 하면 안 되는데, 간통죄가 없다는 것이지,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지면 거기에 따른 모든 책임은 다 지게 되어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서로 사랑하는 것은 국가에서 죄로 묻지를 않겠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의 취향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런 사람을 교도소에 넣어도, 교도소는 알다시피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곳인데, 그런데 그런 사람은 변화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습관성 여자 밝힘증은 간통죄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은 혼인간음빙자 죄로서 교도소에 들어가서 지내야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거기에 비해서 바람을 피운다는 것은, 자기가 고의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를 아내로 인정하면서도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학교에서 선생님이 바람개비를 만들어오라고 숙제를 내었는데, 그런데 그 학생이 그만 바람개비를 만들지 않고 배를 만들어왔다면, 물론 선생님이 숙제점수는 주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을 가지고 학교에서 퇴학을 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건 개인적인 취향이니 말이다.

◈ 간통을 하면 패가망신 !!

하지만 간통을 하게 되면, 그것을 가지고 죄를 묻지는 않지만, 재산분배나 자녀양육과 같은 것은 다 간통을 하지 않은 배우자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간통죄를 없앤다고 하니 만세를 부르는 바보들이 있는데, 오히려 더욱 더 가혹해진다는 말이다. 이혼을 해도 전 부인에게 생활비로 자기 월급이 다 날아가고, 자기는 완전히 빈 털털이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도 바람을 피우고 싶으면 피우라는 말이다.

야고보서를 이야기하다가 그만 이상한 곳으로 오고 말았는데(ㅋㅋ), 그러니 변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가혹한 형태로 오더라도, 그 예가 좀 이상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우리가 욕심 이야기를 하다가 이렇게 되었는데, 이 욕심이란 것은, "나는 욕심이 없다. 나이 70에 무슨 여자를?" 라고 하는데, 하지만 나이가 80이 되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새장가를 싫어할 인간은 없다는 말이다.

물론 자식들은 아버지가 주책이라고 난리인데, 사실은 돈이 자기들에게 돌아오지 않으니 그렇지만 말이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이나 군인의 경우에는, 정년이 퇴직을 했는데, 거기에 새 여자가 시집을 온다고 하면, 그것은 백 프로 꽃뱀이라는 것이다(ㅋㅋ). 그러니 그것은 자식들이 기를 쓰고 말려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 현대사회에서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곧 죄 !!

아무튼 현대사회에 있어서 죄는 단 하나밖에 없는데,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바로 죄라는 말이다. 그렇게 반드시 남에게 피해를 준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 감정의 문제는, 그것이 서로 합의하에서 되었다고 하면 죄로 묻지를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 것을 죄로 따지는 것은 절대적인 신의 영역이고, 윤리와 도덕에서는 반드시 피해를 준 것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남에게 피해를 주었을 때는 죄를 묻는 것이 아니라 먼저 보상을 요구하게 되는데, 만약 보상을 해주지 않으면 잡아넣는다는 것이다. 물론 보상을 해주어도 잡아넣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에게 다 일률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물론 그렇게 해야 맞는데 말이다. 왜냐하면, 교육수준이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행동에 대해서, 그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지 주지 않는지, 그런 것을 제대로 알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예배시간에 방귀를 뀌었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가? 물론 자기 혼자서 방귀를 뀌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를 않는데, 그런데 그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었다고 하면 문제는 달라진다는 말이다. 그것이 환경보호법에 저촉이 되는지 모르겠는데, 아니면 고성방가 죄로 걸리는가? (ㅋㅋ).

극장에서 껌을 씹는다든지, 여자들이 지나치게 짧은치마를 입는다든지, 그런 것이 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자기들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그것이 연약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면, 국가가 개입해서 조치를 취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는 균형이니 말이다. 선이 아니고 조화인데, 자기만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이니 말이다.

◈ 만약에, 이웃에 안식교 교인이 이사를 오면 !!

이제 21절을 보겠는데, 여기에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라고 하는데, 여기에 온유함이 나오는데 말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이스라엘이 아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종교다원주의 국가이니 말이다.

(약 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만약에 이웃에 불교 신자나 여호와의 증인이 이사를 왔다고 한다면, 실제로 제가 경북 봉화에 살 때 그런 경험이 있는데 말이다. 뒷집에 안식교 교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것도 간부급인데 말이다. 그런데 제 아내와 그 얼마나 친하게 지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제 아내는 특정 종교에는 별 관심이 없는데, 아무튼 이웃과는 서로 친하게 잘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전도도 하고 말이다.

아무튼 일단 종교는 무시하고,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가져다주기도 하고, 또한 가지고 오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니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그 사람에게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저는 그것이 온유함이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그렇게 해서 전도를 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지만 말이다. 제 아내는 중매를 서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것도 아직 한 건도 성사된 것은 없다는 말이다(ㅋㅋ).

◈ 종교가 무엇인가? 변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자기는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남들이 보기에 어떠하냐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까, 다른 환경에 있던 사람이, 즉 여호와 증인의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과 대화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우리만큼은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 그런 것은 변하는 것이고 아무 것도 아닌데, 기독교도 그렇고 말이다. 하나의 종교란 말이다.

그러니 환경문제 등을 이야기하려면, 굳이 종교인들끼리 모여서 하지 말고 그냥 사람들끼리 모여서 하라는 것이다. '종교인' 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말라는 것이다. 종교인들끼리 화합을 하자고 하는데, 하지만 종교자체를 인정할 수 없는데, 무슨 그러한 것이 있을 수 있느냐는 말이다. 종교를 인정해야 화합을 하든지 말든지 하는데 말이다.

그러니 앞으로 여러분의 이웃에 안식교 교인이 이사를 오면, 서로 인사를 하면서 사이좋게 지내라는 것이다. 휴가를 가면 집도 봐주고 말이다. 물론 그것이 전도는 아닌데, 전도는 "당신은 지옥에 간다" 라는 것인데 말이다. 그러면 약을 올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데, 그러니 서로 편리하도록 잘 지내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을 해도, 상대방의 종교가 문제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 왜 율법이 거울인고 하니?

여기 23절에 보면 "누구든지 도를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라고 하는데, 그러니 자기는 달라져도 무엇은 달라지면 안 되는가? 그것이 곧 거울인데, 그래서 야고보서에서는 거울을 율법으로 본다는 것이다. 상당히 재미있는 말인데, 왜 그러한가? 율법이 나쁜 것이 아니라, 율법의 완성이 곧 복음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거울처럼 늘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약 1:23) 누구든지 도를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그러니 율법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했기에 비로소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는 것이 야고보서라는 말이다. 그러니 이것은 구원문제가 아닌데, 즉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 율법을 지키자" 라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완성되었기에 그 의미를 새롭게 안다는 것이다.

이제 25절을 보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라고 하는데, 그러니 구원을 받기 위해서 율법을 보면 결코 자유하게 하는 율법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야, 내가 이래서 자유하구나" 라고 확인하게 된다는 것이다.

(약 1: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예를 들어서, 이미 군에서 제대를 했기 때문에, 다시 부대에 가서 살펴볼 수가 있다는 말이다. 제대도 하지 않고 그렇게 폼을 잡다가는 깨진다는 것이다. 간혹 군대생활이 그립고 쫄다구가 그리워서 가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대부분은 꿈에라도 나타날 까봐 겁을 내지만 말이다(ㅋㅋ).

그러니 율법으로 구원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 율법이 자유함을 더욱 더 확인케 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하, 이런 점이 내가 모자랐구나. 이제 이해가 되는구나" 라고 하게 되는데, 구원을 받고자 하는 게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그것을 흐뭇하고 평안하게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 제가 한 대를 더 맞겠습니다 !!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내주어라" 라고 하면, "예수님, 정말로 맞아야만 됩니까? 안 맞으면 구원을 못 받습니까?"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자유함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러면 제가 좀 아파도 한 대를 더 맞아드리겠습니다" 라고, 그렇게 나오게 된다는 말이다.

과연 우리가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가? 언제 그것을 다 지킨다는 말인가? 열 번을 잘하다가도 한 번이라도 잘못하면 모두 어기는 것인데 말이다. 그러니 율법을 지킨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또 2장에 나오는데,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라고 말이다.

(약 2: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 2장 - '외모로 취하지 말라' !!

이제 2장을 보겠는데, 여기 1절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라고 하는데, 그러니 예수님은 우리를 외모로 취했다는 말인가? 취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외모로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약 2: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그러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았다" 라는 것이 복음 안에 들어있다는 말이고, 우리도 복음 안에서 그러한 품성으로 나갈 수 있다는 말인데, 그것이 이미 율법 안에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복음과 율법의 내용이 어떠하다는 것인가? 동일하다는 말이다.

1장 마지막에도 나오지만,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서 돌아보는 것이 이미 율법에 있었는데,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것을 지켜서 구원을 받으려고 난리라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기에 능히 할 수 있는 문제인데, 물론 늘 하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전국에 있는 고아와 과부들을 다 모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혼을 해줄 수도 없고 말이다.

(약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성경이 과부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는가? 젊었을 때 과부가 되었거든,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서 돌아다니지 말고 교회에서 조용히 봉사를 하라는 것이다. 참 가혹한데, 위로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돌아다니면서 분란을 일으키지 말고 자식이나 잘 키우라고 한다는 말이다. 목사에게 순종하고 말이다. 그러니 결론은 무엇인고 하니, 혼자된 것이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니, 그냥 평범하게 살면 된다는 것이다.

이제 2장 2절에서 4절을 보자.

(약 2: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약 2: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약 2:4)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 목사는, 개척교회를 할 때 믿음이 가장 좋아 !!

이러한 것은 누가 지적한다는 말인가? 율법이 지적한다는 것인데, 그러니 율법이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니라 거울처럼 항상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목사도 들여다보고, 교인들도 들여다보고 말이다. 물론 개척교회에는 별로 해당사항이 없는데, 가난한 사람이고 부자이고 간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리만 채워주어도 고맙다는 것이다. 만약에 앉을 자리가 없다고 하면, 목사가 앉는 자리도 당장에 내놓을 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개척교회를 할 때 믿음이 가장 좋다는 말이다.

제가 박사교회에 오니까, 거기가 시골인데 교인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파리만 날리는데, 그런데 지나가는 거지들은 왜 그렇게 많이 들어오는지 말이다. 계획을 세워서 교회를 도는 자들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택까지 같이 사용하는 경우에는 골치가 아픈데, 거룩한 성전에 천사의 향기가 아니라 김치찌개 냄새가 진동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쉰 김치가 말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교회에 왔는데 김치 냄새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고 하면서, 그 다음부터는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젊은 부부가 아이를 데라고 왔는데, 예배당에서 마구 떠든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냥 두니 옆에서 장로가 하는 말이, "이 목사는 아이들 교육을 참 잘시킨다" 라고 하는데, 세 살도 되지 않은 아이에게 무슨 교육을 시킨다는 말인가? 괜히 말을 잘못했다가는 그 부부도 교회를 떠날 판인데 말이다. 그게 무슨 목사 책임이냐는 것이다. 그러니 아쉬울 때는 모든 것이 다 아쉬운데, 그래서 개척교회에 대해 소설을 쓸까 싶기도 하다는 것이다. 베스트셀러가 되면, 원고료로 개척교회도 돕고 말이다(ㅋㅋ).

우리교회에 이상철 집사님이라고, 지금은 춘천에 계시는데 말이다. 정신과 의사인데, 그런데 어느 날 환자가 왔는데, 개척교회를 목사의 사모라는 것이다. 이 사모는 어린이집을 하는데 말이다. 개척교회로는 돈이 안 되니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린이집도 24시간을 운영해야 돈이 되는데, 하도 경쟁이 치열해서 말이다.

그러던 중에 어린이집 차가 사고가 났는데, 그래서 사모도 너무 충격을 받아서 병원에 입원을 하고, 그리고 정신과 의사를 하는 이 집사님을 찾아와서 하는 말이 "하나님은 왜 나에게 이렇게 벌을 주십니까?"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벌이 아닙니다" 라고 하니, 그래도 끝까지 벌이라고 우긴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럴 때마다 생각해야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변화하는 것에 너무 신경을 쓰니 그렇게 된다는 점이란 말이다.

◈ 가난함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에 대해서 부요해야 !!

그리고 여기 5절에 보면, 가난한 자가 나오는데, 그렇게 가난한 자가 교회에 나오는 것은 돈을 보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미 가난한 것은 어쩔 수 없는데, 그것을 어떻게 고치려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대해서만은 부요하기 위해서 교회에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변화되는 믿음의 차원에서 사람을 보아야지, 어떻게 돈이 없다고 해서 무시를 하느냐는 말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6절에 보면, 부자는 가난한 자를 자기 돈을 축냈다고 법정으로 데리고 갔지만, 가난한 자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는 말이다.

(약 2: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약 2: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괄시하였도다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그리고 9절과 10절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자기가 자기 위치에서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런 자기의 고집 때문에, 믿음은 있는데 그런 자기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은 율법에 어긋난 것이고, 온 율법을 다 어긴 것이 된다는 말이다.

(약 2:9)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약 2: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예를 들어서, "니는 10개를 지켰지? 나는 20개를 지켰다" 라고 하면, 하지만 자기가 20개를 지킨 것으로 인해서 상대방을 범법자로 만드는데, 하지만 그것 때문에 오히려 자기가 범법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판을 하는 사람이, 재판을 하면서도 그 율법으로 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뒤에 나오는데 말이다.

◈ 너나 나나 복음이 없이는 살지 못한다 !!

그러니 율법의 기능이 무엇인가? "너나 나나 복음이 없이는 살지 못한다" 라는 것인데, 결국 로마서와 같은 이야기라는 말이다. 즉 "너나 나나 복음이 없이는 안 되는데, 니가 나에게 뭘 해줄 수 있는가? 그게 아니면 왜 나에게 간섭하는가? 쓸데없이 왜 나의 믿음에 대해서 시비를 거는가?" 라는 것이다.

이제 3장으로 넘어가겠는데, 2장은 전에도 했기 때문에 말이다. 야고보서 2장 끝에 보면, 행함이라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예수님이 이야기하는 믿음은 마귀의 믿음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마음에 합당에 믿음이 나오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는 말이다.

(약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 3장 - '선생이 되지 말라' !!

이제 3장을 보겠는데, 1절과 2절에서 뭐라고 하는가? "선생이 되지 말라" 라고 하는데, 선생은 말로 먹고사는 사람인데 말이다. 제가 야고보서와 산상설교에 대해서 쓴 글이 있는데, 즉 남에게 피해를 줄 때는 말로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그 어느 누구보다도 남에게 피해를 많이 주기 때문에, 거기에 합당한 심판이 더욱 더 크다는 말이다.

(약 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을 알고 선생이 되지 말라
(약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에 굴레 씌우리라

여기서 심판이 크다고 하는 것은, 똑같이 했는데 남들보다 심판이 더 크다는 것이 아니라, 기대치가 많으면 실망이 더 크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에게 심판이 모아서 오게 되면, 그러면 남들보다 심판이 더 많이 받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자기는 심판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겼는데, 그런데 한꺼번에 심판이 다 오게 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1층에서 뛰어내리면 그렇게 아프지 않은데, 그런데 하루에 한 번씩을 뛰어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5일치를 한꺼번에 모아서, 그만 5층에서 뛰어내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연히 병원에 가야하겠지만 말이다. 그 고통이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는 영원한 심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높으니 세상에서 받는 심판이 더 크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받는 징벌이 말이다. 하지만 영원한 심판은 어떠한가? 생명책이 이름이 없으면 동일하게 모두가 지옥으로 가야하는데, 거기에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말이다. 이 세상에서 받는 심판의 느낌은, 자기가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심한데, 남에게 피해를 받는다는 생각이 더 강렬하니 말이다. 결국 심판은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행위 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은 동일하게 유황불에 들어가는데, 즉 이를 갈며 통곡한다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행한 대로 갚는다" 라는 것은, 착한 일을 착한 일로 갚고, 악한 일은 악한 일로 갚는다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악한 일을 착한 일로 갚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 어떤 인간도 행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이 한 가지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각종 각양 변화를 모두 다 경험하면서 살아가는데, 온 우주를 다 말이다. 그러니 하나를 어기면 다 어긴 것이 되는데, 이쪽만 알고 저쪽은 모르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것을 저주 아래에 있다고 한다는 것이다.

◈ 회심곡을 아십니까?

개그맨 이상해 씨의 아내가 불렀던 '회심곡' 이라는 것이 있는데, 김영임 씨인지 모르겠는데 말이다. 그 가사를 살펴보면 어떠한고 하니,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염라대왕이 거기에 맞추어서, 효도를 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지만, 그렇지 않은 놈에게는 벌을 준다는 것이다. 그 노래가 다 들으려고 하면 무진장 긴데 말이다. 부르는 사람도 힘들지만, 듣는 사람도 보통 정성이 아니면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노래가사에 보면, 죄도 많지만 벌 종류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벌이 줄줄이 나오는데, 그러니 살아서 부모에게 효도하면 죽어서도 잘 된다고 하는, 그래서 "효도를 하라" 라고 하는 일종의 협박인데 말이다. 그러니 그 회심곡과 같은 관점에서 이 야고보서를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제 11절을 보면,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라고 하는데, 그러니 찬양을 외치다가도 어떤 때는 욕설이 나오는데 말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저주할 때, 거기에는 두 가지가 다 들어있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원래 나쁜 것이 있었는데 그냥 폼만 잡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정말로 구원을 받은 자라고 하면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약 3:10)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약 3: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약 3: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이제 조금만 더 하고 마치겠는데, 계속해서 읽어보자.

(약 3: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약 3: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약 3: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약 3: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약 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약 3:18)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 아하, 내가 그렇구나 !!

이게 아까 제가 이야기한 그대로인데, 즉 위에서 내려온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한결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황에 따라서 이리 저리 흔들린다고 하면,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믿느냐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믿기에 그렇게 달라지느냐는 말이다. 바로 그것을 지적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완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하, 내가 그렇구나" 라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라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자기 잘못은 알아야 하는데, 믿지 않는 자들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데?"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야고보서에서 이렇게 지적을 하는데도 말이다.

"부자가 교회에 와서 헌금을 많이 하는 게 무엇이 나쁜가?" 라고 하는데, 왜 믿음으로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제가 교인들에게 그런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즉 "목사님, 장로님들 중에서 돈도 많고 믿음도 좋은 분이 헌금을 많이 하면 좋지 않습니까?" 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말이냐는 것이다. 믿음 하나만 봐야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믿음이 좋다고 하는 상대적인 이야기가 아니냐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무슨 믿음이냐는 것이다.

◈ 마지막으로, 능력이 있는 어느 목사 이야기를 !!

제가 박사교회에 와서 심방을 하니, 장로님이 뭐라고 하는고 하니, "목사님, 돈이 많다고 심방을 가지 않고,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주 갑니까?" 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그들이 힘이 든다고 자주 호소하니, 자주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부자는 멀리하고, 가난한 사람은 가까이 한다" 라고, 그렇게 저를 훌륭한 목사로 여기더라는 말이다(ㅋㅋ). 물론 별로 부자도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목사는 부자 쪽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가난한 쪽도 아니고, 누구든지 요청하면 달려간다는 것이다. 택배기사처럼 말이다. 그래서 "불렀나이까? 여기 대령했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자는 배가 불러서 요청할 일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이상하게 꼬여서, 그만 훌륭한 목사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초반부터 박사교회에서 이미지가 좋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어떤 무당이 굿을 하다가 그만 "여기에 목사가 있어서 못하겠다" 라고 하는 바람에, 제가 또 능력이 있는 목사로 소문이 나고 말았는데 말이다(ㅋㅋ). 무속인은 하나의 직업인데, 즉 기능인이라는 것이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고 하니까, 아이가 있으면 설교를 하는데 힘이 들듯이, 뭔가 그렇게 반대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신경이 쓰여서 제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집중이 안 되니 말이다.

왜 바둑을 두는데도, 옆에서 껌을 씹는 사람이 있으면 집중이 잘 되지 않아서 힘이 들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무당이 기를 모으는데 방해를 받으면 굿이 잘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런 훈련을 받는 사람이 기를 집중하면 작두에도 올라가고, 그렇게 초능력이 생기는데 말이다. 물론 그런 것은 귀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모두 귀신인데, 달리 귀신을 어디서 찾느냐는 말이다.

그러니 여러분도 너무 세상적인 평가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이다. 저도 그 무당을 다시 만나면 사과를 하고 싶은데, 그 사람의 업무를 방해했으니 말이다. 그냥 무속에 관심이 있어서 구경을 갔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목사가 가서 "마귀야 물러가라" 라고 할 문제가 아닌데, 목사인 자기가 마귀이면서 말이다.

10분만 쉬고 마지막 시간을 하겠습니다.

2014,5,9 정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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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에 대하여] ♬
최백호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 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스폰 소리 들어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사이로
짙은 색스폰 소리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시련의 달콤함이야 잊겠냐마는
왠지 한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 가에서
돌아올 사랑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리 들어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진
슬픈 뱃고동 소리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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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30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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