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산에서 생긴 일 2004년 7월 18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17:1-8
Re..마 17: 1- 8 (변화산에서 생긴 일)
이름 : 이근호(IP:)
변화산에서 생긴 일
2004년 7월 18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17:1-8
17: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17:2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17:3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17:4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17:6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17:7 예수께서 나아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신대
17: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참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냥 세상 적인 현상만을 보고 왔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 세계에 대해서 감격하고 감탄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이 본문 대목을 보면서, "나는 이런 체험을 했으면 지금보다 더욱 더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을 텐데…"하는 마음을 먹을 것입니다. 여러분, 신비스러운 경험을 한다고 해서 우리의 처지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영광스러운 체험을 한 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추구하는 세상 영광이라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하찮고 초라한 것인 가를 단호하게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실제로 베드로는 이 세계가 너무 좋아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기가 좋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즉 세상이고 뭐고 주님과 함께 있는 이 상태가 너무 좋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은 매일, "주님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라는 생각을 몇 번씩이나 합니까? 아마 솔직한 심정으로 이런 고백이 잘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귐을 크게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비천하고 죄 덩어리 인 우리 자신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 도로 얻어내겠다는 마음으로 나오시면 안됩니다.
이미 하나님께 몽땅 바쳐진 그 상태가 너무 좋아서 "여기서 좋사오니"라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렇지 않고 반대로, "이만큼 하나님께 얻어 챙겼으니 주님이 좋습니다"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마저 인간들이 이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은 진정한 자아상을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재산이나 재물이 들어오는 그런 당첨은 행운이라고 대단히 좋아하면서 막상 남이 하지 않는 더럽고 희생적인 일을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 그것도 행운이라고 간주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복권에 당첨되어 돈이 들어오면 행운이지만 거기에서 남이 버린 쓰레기를 주어야 할 일이 자주 생기면 그것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아를 형성하는데 있어 재산이나 재물에 기초해서 자기 자아상을 형성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가 진정한 나 자신의 모습인가에 대해서 혼란스러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밖에 없는 '나'라는 이 몸을 가지고 처신하는 것을 보면 각양각색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 중에 어느 모습의 자아가 진짜 나 인지를 알 길이 없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자아상이 불안하고 고정되어 있지 못한 채 존재하니 여기서 무엇이 발생하느냐 하면 알 수 없는 수치심이 생겨납니다. 자기가 생각해도 자신이 참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겁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이 한심스러운 나를 꾸역꾸역 살리기 위해 끌고 나를 무조건적으로 잘한 짓이라고 스스로 위안해주려고 하니 이런 자아가 참으로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인생을 밤이라고 한다면 이 긴 긴 밤을 잠 못 이루는 겁니다. 뭔가 자꾸 쫓기듯이 살아가게 됩니다. 일종의 불면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인간상이 생겨나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 앞에 자신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입니다.
이 점을 오늘 본문은 말해줍니다. 즉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지금 누구를 만나고 있느냐 하면 모세와 엘리야와 만나고 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의 공통점은 모두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독대 했다는 겁니다. 단독으로 대한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이 이 더럽고 추잡한 이 세상을 지배하고 통치하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알게 된 사람입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복잡해도 우리는 피할 곳도 없고 숨을 곳도 없습니다. 모두다 예수님의 왕권 밑에서 지내고 있을 따름입니다.
모세는 과연 어떤 상황을 경험한 사람일까요? 출애굽기 19:16-20에 보면, "제 삼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섰더니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로 모세를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 가매"라고 되어 있습니다.
온 천지가 진동하는 것 가운데서 모세는 하나님을 뵈옵는 광경입니다. 더 이상 모세에는 인간들의 평가나 비난에 관심을 둘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의 영광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진정한 '나'인가 하는 점 때문에 더 이상 고민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바로 이러한 인간상이 옳은 인간상입니다. 엘리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왕기하 2:11에 보면,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엘리야는 하늘이 친히 그의 몸을 인수 인계해 갔습니다. 바로 이런 모세와 엘리야가 이 변화산에서 홀연히 나타났다는 것이 이 세상의 모든 상황이 하늘 나라의 개입으로 이루어진 상황임을 알리려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성도의 참된 자체는 바로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모세와 엘리야 처럼 자연스럽게 예수님과 대화하는 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즉 흔히들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세울려고 하려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소제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세를 옳지 않습니다. 마치 손님이라도 집에 들어 닥친다는 전갈이라도 오면, 먼저 집안 청소를 한다고 부산을 떨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정성껏 정화시킨다해서 그것이 하나님 앞에 부름 받고 인정받는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인의 삶은 단독적으로 자신을 거룩되게 유지한다는 성사되는 것이 아니라 늘 예수님과 사귀는데 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을 불러 의인이라고 불러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 처럼 예수님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사는 그런 생활이 요구되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모세와 엘리야는 무슨 주제를 중심으로 대화하시는 걸까요? 누가복음 9:30-31에 보면,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 쌔"라고 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 눈에 기이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존재하시는 분이 이 땅에서, 예루살렘에서 별세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점에 대해서 모세와 엘리야에게 통보해 주신다는 겁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위엄 그 자체로서 결코 인간이 구원되는 것도 아니고 인자의 심판권 행사 그 자체로서 인간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즉 인자로서 자기 백성을 뽑아내시는데 있는 반드시 성취하시고 거쳐야 될 코스가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바로 인자되시는 분, 즉 영광스럽기 한량없으신 분이 이 땅에서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몰골로 전락해야 한다는 겁니다. 빌립보서 2:5-8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와 및 제자들은 그냥 이대로의 영광으로 만족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람들이 영광스러운 체험을 많이 했다고 구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별세로 구원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별세는 곧 독생자의 영광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땅에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고 쟁취함으로서 구원을 확증 지어 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잘못입니다. 실제로 구원을 시키는 영광은 오직 독생자의 영광뿐입니다. 독생자의 영광이란 사람들 눈으로 보기에도 초라하고 비참하고 망가진 영광입니다.
이 세상에 그 어느 누구보다 더 보잘것없는 영광입니다. 영광이라고 할 것도 없는 영광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초라한 십자가 영광을 피해가 버립니다. 다른 길로 우회해서 천국에 도달하려는 모책을 찾고들 있습니다.
큰 교회영광이 곧 하나님의 뜻으로 끌어들이려고 합니다. 다 가짜입니다. 진짜 영광은 오직 별세의 영광입니다. 바로 이 일을 함께 가기 위해 제자들과 오늘날 성도들이 부름 받은 겁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그저 세상 영광만을 위해서 살지 말게 하시고 십자가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