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에덴과 함께 140416우리교회에스겔

에덴과 함께 140416

이름 : 이근호(IP:119.18.90.53)

에덴과 함께(에스겔 31:15-18)

이근호

14-04-16 21:30

에덴과 함께

2014년 4월 16일 본문 말씀: 에스겔 31:15-18

(31:15)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가 음부에 내려가던 날에 내가 그를 위하여 애곡하게 하며 깊은 바다를 덮으며 모든 강을 쉬게 하며 큰 물을 그치게 하고 레바논으로 그를 위하여 애곡하게 하며 들의 모든 나무로 그로 인하여 쇠잔하게 하였느니라

(31:16) 내가 그로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음부에 떨어뜨리던 때에 열국으로 그 떨어지는 소리를 인하여 진동하게 하였고 물 대임을 받은 에덴의 모든 나무 곧 레바논의 뛰어나고 아름다운 나무들로 지하에서 위로를 받게 하였느니라

(31:17) 그러나 그들도 그와 함께 음부에 내려 칼에 살륙을 당한 자에게 이르렀나니 그들은 옛적에 그의 팔이 된 자요 열국 중에서 그 그늘 아래 거하던 자니라

(31:18) 너의 영화와 광대함이 에덴 모든 나무 중에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 나무와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이요 거기서 할례 받지 못하고 칼에 살륙 당한 자 중에 누우리라 이들은 바로와 그 모든 군대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라

오늘날 자기를 살리기 위해 구성해놓은 현실관으로 인해 정작 성경 말씀은 그다지 중요한 사실로 다가오고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를 위한 현실 다듬기에서 자기만큼 더 정확한 진단자는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조차 그껏 참고로 할 뿐입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은 그런게 아닙니다.

과거 지나간 일로 여겨진 그 말씀이 지금 우리의 현실을 몰아내고 확장되고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이러한 확장성은 그동안 우리가 자기 자신만을 위한 현실성을 집요하게 붙들고 살기 때문에 실감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앗수르가 망하고 애굽 나라도 앗수르와 같이 망한다는 이야기는, 현대인들에게 이미 한물간 옛날 에피소드처럼 여겨질 것입니다.

지금은 앗수르도 없고 지금은 옛 애굽나라나 바로왕은 더이상 없으니 성경의 나와있는 이야기는 늘 비-현실적인 사실로 잊고싶은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밀치고 이 시대의 모든 영역은 자기를 위한 현실로 가득채우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나를 위한 나의 현실에 앗수르 나라나 애굽 나라만이 안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에덴이나 음부도 나오지 않는 것이 문제점입니다. 사람들이 오늘 본문을 보면, 앗수르는 나라와 오늘날 우리가 속해 있는 나라로 서로 대비하면서 정작 중요한 음부와 에덴과의 연관성을 맺을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은 앗수르나 애굽나라는 레바논은 그저 음부의 세계, 곧 죽음의 세계의 실체를 드러내는 재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나라들은 번성하고 강대하지만 그들 나라의 지하에는 음부가 제대로 음부로서 작용하게 될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상의 모든 나라들은 실은 음부가 제 본 모습을 드러내기 위한 과정에 해당됩니다. 쉽게 말해서, "왜 음부는 단순히 공동묘지 정도가 아니라 저주받을 자들의 총집합 장소가 되느냐"를 보이기 위한 원칙들이 무르익을 숙성의 얇은 공간으로서 땅위의 나라들은 번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음부의 끝은 지옥입니다. 누가복음 16:22-23에 보면,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라 되어 있습니다. 음부가 단순히 죽은 자들을 모으는 곳이 아니라 신약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지옥에 영원히 기거할 자’들의 집합장소가 됩니다.

이러한 음부, 곧 지옥 만들기는 역사적으로 그 절차가 진행되어 왔는데 이는 음부가 제 모습을 찾을 때까지는 음부이 구성될 체제가 지상의 제국들에 의해서 미리 펼쳐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마치 지상에는 대단한 마천루가 하늘을 찌르고 인간들의 문화와 문명이 위용을 자랑해도 지진이 일어나서 땅이 갈라지게 되면 그 모든 것들을 일식간이 땅의 갈라진 틈 속으로 다 파묻히게 됩니다.

따라서 지상의 영화는 일시적입니다. 이러한 음의 본질로 향하는 과정은, 진정한 에덴의 본질을 나타내기 위한 절차로서 진행됩니다. 그 취지가 바로 에덴동산의 존재에서부터 출발을 한 것입니다.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계속 밀게 되면 늘찍하게 펴지면서도 처음 요소도 함께 퍼지는 원리와 같습니다. 에덴동산을 우리는 요건은 세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생명이요 다른 하나는 죽음, 곧 저주요, 다른 하나는 죄 짓기 전의 인간입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죄 짓기 전의 인간은 이미 ‘죄 지은 후의 인간’으로 달라져버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에덴의 취지를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확장시켜나가십니다. 지상 땅에 국한되던 에덴의 현주소는 지상에서의 일어나는 인간들의 죄와 더불어 섞이면서 같이 음부로 떨어집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땅이 있음으로 자신들이 산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에 의해서 망해버렸습니다.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땅으로만 사는 것만으로 천국 백성이 될 수가 없습니다. 천국의 핵심, 곧 에덴동산의 핵심은 언약, 하나님이 주신 약속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언약을 버리므로서 이미 망했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앗수르나 애굽 나라도 우상 숭배로 인하여 망하게 됩니다. 단순히 한 제국이 사라지는 의미가 아니라 그 우상숭배 자들이 음부로 집결되므로서 지옥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즉 이 세상에서 등장하는 나라는 지옥을 이루기 위한 체제로서 등장된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 곧 하늘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겁니까? 그동안 지상에서는 하늘, 곧 궁창으로부터 햇빛과 공기와 단비를 공급 받고 있었습니다. 그 은혜들은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제공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가 들어간 곳은 ‘아브라함 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곧 ‘아브라함 언약 속’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런 언약에 대해서 앗수르나 애굽이나 이스라엘은 인정하지 않고 외면했습니다. 그것은 이미 본인들은 처음 에덴에 살던 그 인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인간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새롭게 조성해냅니다. 이는 천국이 예수님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겁니다.

이 천국의 위상과 가치를 위하여 예수님의 언약에 대들고 공격하는 자들만 따로 모이는 장소에 있어야 하는데 그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곧 음부의 최종상태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자기 중심의 현실을 고수합니다. 이러다보니 성경에서 말씀하신 진짜 현실은 항상 외면당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가 바로 이러합니다. 하나님 약속 중심의 나라로서 생각지 못하고 자신들이 얼마나 여유롭고 편하게 사는 세상에 천국인양, 에덴동산인양 간주한 겁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앗수르의 위세가 너무 당당하니 그러한 복들이 자기를 위해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음부 위에 얇게 펼쳐진 막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운명은 자신들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음부의 진척과정과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언약에 비추어서 알지 못한 겁니다. 오늘날의 모든 은혜은 오직 십자가 피 희생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이 약속 중심으로 현실을 생각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 하나님 아버지,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 품과 연관지우면서 지내고 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근호

14-04-17 18:07

87강-에스겔 31장 15절-18절(에덴과 함께)140416-이 근호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겔 31장 15절-18절입니다. 구약성경 1199페이지입니다.

에스겔 31:15-18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가 음부에 내려가던 날에 내가 그를 위하여 애곡하게 하며 깊은 바다를 덮으며 모든 강을 쉬게 하며 큰 물을 그치게 하고 레바논으로 그를 위하여 애곡하게 하며 들의 모든 나무로 그로 인하여 쇠잔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그로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음부에 떨어뜨리던 때에 열국으로 그 떨어지는 소리를 인하여 진동하게 하였고 물 대임을 받은 에덴의 모든 나무 곧 레바논의 뛰어나고 아름다운 나무들로 지하에서 위로를 받게 하였느니라 그러나 그들도 그와 함께 음부에 내려 칼에 살륙을 당한 자에게 이르렀나니 그들은 옛적에 그의 팔이 된 자요 열국 중에서 그 그늘 아래 거하던 자니라 너의 영화와 광대함이 에덴 모든 나무 중에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 나무와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이요 거기서 할례 받지 못하고 칼에 살륙 당한 자 중에 누우리라 이들은 바로와 그 모든 군대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라.”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현실에다 성경을 집어넣으려 한다면 성경은 거부합니다. 성경 자체만, 성경만이 현실이고 우리가 현실이라고 여겼던 그 현실은 사실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성경말씀에 나오는 현실과 우리 현실을 같이 보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 말씀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게 되어 있지요. 한쪽을 포기합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 자체를 포기하고 성경에 나와 있는 이 현실이 진짜 현실인 것을 느낄 때에 우리는 참된 현실을 접하는 즐거움이 우리한테 있을 겁니다.

내가 인생을 그동안 헛살았구나, 하는 겁니다. 성경에 분명히 참된 현실이 있는데 이것은 생각지 않고 내가 다듬어 나가고 내가 만들어 나가는 현실 속에서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느냐, 자꾸 그것만 생각하다 보니까 다람쥐가 체 바퀴 아무리 굴려봐야 그 집 밖으로 못나가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욕망이 만든 그 꿈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늘 꿈속같이 살다가 마는 겁니다. 그런데 이 성경의 현실 속에서는 하나님의 손길과 더불어서 어떤 원리와 원칙을 가지고 하나님께서는 일을 진행시키는가, 그 원리도 같이 여기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 본문의 용어들을 보게 되면 그 용어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14절 끝에 보면 “그들을 다 죽는데 붙여서 인생 중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로 내려가게 하였음이니라.” 여기 지하라는 말이 나오고 그 다음 15절에 보면 “그가 음부에 내려가던 날에.” 여기서 ‘그’란 앗수르 제국을 의미합니다. 또 15절에 나오는 레바논이라는 나라는 앗수르 밑에서 놀던 나라고 그 다음 18절 끝에는 “바로와 그 모든 군대니라.” 라고해서 바로와 그 군대가 나오지요. 이런 앗수르 레바논 바로, 지명들이 나오게 되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오해하느냐 하면, 이것은 우리가 사는 현실 속에서 있었던 일인데 그것은 과거, 옛날에 앗수르가 있었고 옛날에 바로왕이 있었고 옛날에 애굽이 있었고 레바논이 있었다는 그 옛날 이야기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그런 것은 지금은 다 사라졌다과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기에 제가 설교 처음에 언급을 해 드렸어요. 우리의 현실에다가 성경 현실을 같이 엮을 수가 없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현재 우리의 현실을 현실로 간주하다 보니까 성경에 나와 있는 이야기가 옛날의 이야기, 옛날의 에피소드가 되고 말았어요. 옛날에 앗수르가 있었지, 옛날에 바로왕이 있었고 애굽이 있었지, 그리고 지금은 우리와 상관없지, 그렇게 되어버리는 겁니다. 현재 내가 있는 이 현실 이전에 어떤 현실이 있었는데, 성경에 어떤 역사가 있었는데 그 역사가 흘러서 지금은 지나가서 날라가 버렸고 지금은 우리의 이 현실만 남았다,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거예요.

현재 우리의 현실 자체가 성경에 나오는 현실에 비춰볼 때 이것은 제대로 된 현실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런가, 우리의 현실을 아무리 과학적으로, 학문적으로 연구를 해 봐야 이 현실에서는 에덴동산이 나오지를 않아요. 그리고 우리의 현실 속에서는 음부가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세요. 15절에 보면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가 음부에 내려가던 날에.”라고 음부가 나오거든요. 그리고 18절에 보면 “너의 영화와 광대함이 에덴 모든 나무 중에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 나무와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이요.” 여기에 에덴이 나온다는 말이지요.

인간들이 아는 현실 속에서 에덴은 레바논이 아닙니다. 어디냐 하면 이라크 지방이에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이 있는 곳인데 레바논에는 그런 강이 없어요. 그런데 여기 에덴이 나온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하기 전에 먼저 현재 이 성경말씀이 우리가 생각하는 지금의 현실과 이어지지 못한다면 내가 생각했던 그 현실 자체를 버려야 됩니다. 인정하지 말아야 돼요.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현실만 수용이 되어야 됩니다. 제가 이렇게 하면 “이 에스겔 이야기는 옛날이야기인데 이 옛날이야기를 어떻게 오늘날까지 끌어올 수 있습니까?”라고 물으신다면, 여기 본문에 나오는 용어들이 과거 한때만 있던 용어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 용어들을 가지고 펼치시는데 그 펼치시는 그 평지에 이 에스겔의 이 내용들이 그대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거예요. 말씀이 살아 있는 거예요.

칼국수 반죽할 때 밀가루 반죽을 두툼하게 만들잖아요. 그걸 홍두깨를 가지고 밀지요. 밀면 그 밀가루 반죽한 두툼한 덩어리가 민다고 해서 사라집니까? 그냥 곱게 퍼지면서 옆으로 늘어나겠지요. 칼국수 해 보셨지요? 죽 밀면 밀리잖아요. 그러면 분명히 높이가 있던 것이 죽 옆으로 밀리면서 깔리는 것처럼 에스겔 31장의 이 말씀을 밀가루 덩어리라고 치고 하나님께서 홍두깨를 가지고 민다는 말이지요. 그렇게 밀면 어디까지 밀리나, 세상 끝날 까지 밀리는 거예요. 밀리면 밀가루 안에 있던 여러 가지 요소들이 세상 끝날까지 계속해서 그대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거예요. 그게 현실이라는 말이지요.

우리 인간의 현실은 에스겔 31장의 이야기는 옛날에 지나간 이야기에요. “그래, 앗수르가 옛날에 있었지. 애굽도 있었지. 에덴동산도 들은 기억이 나는데 그런 게 있었지.”이렇게 지나간 것인데 주님께서는 에스겔을 가지고 편편하게 새로운 현실로 밀어버리면 우리는 이 현실 속에 놓여 있게 되고 우리는 그 현실이 에덴동산, 음부, 앗수르, 레바논, 여기 나오는 용어들에 지금도 우리가 저촉을 받고 있는 거예요. 이 용어들의 사용법에 의해서 우리가 저촉받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과 바로, 앗수르, 레바논, 이런 모든 용어를 사용하실 때 그 사용하는 원칙에 따라서 우리가 이미 적용을 받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보다 여전히 성경 안에 있는 현실만이 생생한 참된 현실인 것을 수용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것이 뭔가? 여러 가지 말이 나옵니다만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 두 가지 용어만 떼 내겠습니다. 하나는 뭐냐 하면, 음부라는 것입니다. 17절 끝에 보면, “그러나 그들도 그와 함께 음부에 내려 칼에 살륙을 당한 자에게 이르렀나니.” 음부라는 말이 나오고 그 다음에 18절에 에덴동산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음부라는 것은 히브리말로 스올(Sheol)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죽은 자들이 가는 곳이에요.

죽은 자들이 가는 곳이니까 우리는 뭘 생각하는냐 하면, 공동묘지를 생각하는 겁니다. 공동묘지 아니면 개인의 묘지 같은 것이죠. 평소에 지상에서 살다가 죽으면 음부에 내려간다,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현재 우리의 현실을 현실이라고 간주하고 성경말씀이 같이 연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생기는 겁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로 왕, 레바논, 그리고 앗수르, 이런 나라들은 그 나라자체를 위해서 음부나 에덴동산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음부가 있고 에덴동산이라는 그 말, 하나님이 그 말을 사용하는 그 취지에 부합되도록 일시적으로 등장했던 나라들이에요. 애굽이라는 나라, 앗수르라는 나라가.

오늘 본문에서 앗수르가 망하거든요. 앗수르가 까불다가 망합니다. 잘난 체하다가 망하지요. 망하게 해 놓고 애굽나라 바로한테 “바로야, 봤지? 너도 같이 망해서 음부에 간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네가 보기에 앗수르가 망하기 전에는 네 눈에 뭐로 간주되느냐 하면, 에덴동산처럼 보일거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처벌해버리면, (처벌 또는 진노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저주하고 처벌해 버리면 그것은 졸지에 음부가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앗수르 그 망해버린 나라에 너도 합류가 된다는 거지요.

<2012>라는 영화에서 LA에 지진이 일어났거든요. 그 도시에 얼마나 고층건물이 많고 화려한 건물들이 많은지 몰라요. 그런데 진도 8인가의 대지진이 일어나서 땅이 쫙 갈라져 버렸어요. 땅이 갈라지니 80층이나 100층의 고층건물이 아무리 그 화려함을 자랑해도, 에덴의 나무처럼 자랑해도 땅이 갈라진 그 틈, 지진이 일어나면 땅이 갈라져서 틈이 생기잖아요, 그 틈의 깊이에 비하면 그 높이는 높이도 아니에요. 인간이 지어낸 모든 문명과 문화가 지진으로 온 땅이 갈라지니 그 안에 다 파묻히니 인간이 소위 예술적이니 아름다우니 한 모든 자랑 질들이 갈라진 틈 안에로 파묻히고 바닷물이 들어오니까 나중에는 다 황폐해지거든요.

앗수르와 바로도 그리고 애굽도 레바논도 다 마찬가지에요. 진짜 오늘 설교를 이해할라 치면 이것 하나만 하면 됩니다. 모든 세상은 음부를 위해서 존재한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오늘 설교는 깔끔하게 정리된 겁니다. 하늘을 궁창이라고 하는데 하늘이 있고 그 다음에 땅이 있고 그 밑에 공동묘지, 음부가 있고 땅은 음부와 땅 사이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었다는 말이지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망하기 전에. 그걸 히브리인들의 세계관이라고 해요. 3층은 궁창이고 2층은 중간에 있는 땅이고 그 땅에는 자기들이 일구면서 사는 것이고 거기에 인간의 문명이 있고 그 밑에 음부라고 해서 죽은 자들만 모아놓는 곳이 있다고 했는데 에스겔 31장에 와서 중간에 있는 땅은 임시적이라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땅이 그냥 땅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뭐가 받치고 있는 형국이지요. 뭐가 받치고 있는가, 음부가 받치고 있는 거예요. 죽음의 세계가 받치고 있거든요. 그러면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습니까? 아무리 지상에서 잘났다, 못났다, 해도 음부가 드디어 자기 입을 벌리면 폭삭 다 음부로 내려가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이야기가 뭐냐 하면, 앗수르의 화려함, 애굽의 화려함, 레바논의 화려함이 결국은 음부가 어떤 체계를 갖고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임시적인 모양새였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음부라는 것이 자기 정체, 자기 본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몇가지 더 이야기할 내용이 있어요.

그게 뭐냐, 땅 밑은 그냥 땅 밑이거든요. 그래서 옛날 히브리인들은 죽은 자들을 땅 밑에 묻으니까 땅에 죽은 자들이 모인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그들은 어떤 결론을 내렸느냐 하면, 죽었을 때는 땅 밑으로 가고 산 사람은 땅 밑에 갈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지상을 복되게 하셔서 여기서 살만한 안식처와 생존의 터전을 제공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 이스라엘이 뭘 몰랐냐 하면, 그들은 땅이 있으면 산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오산이었습니다.

땅이 있으면 사는 것이 아니고 땅위에 하나님의 약속이 허락해야 사는 거예요. 그런 하나님의 약속을 그들은 외면해 버렸어요. 그들이 우상을 섬겼거든요. 땅 있고 약속 있고, 그 약속이 축복 때문에 그 땅에서 살았는데 그들은 그 땅에서 살면서 배부를 만하니까 뭘 포기했느냐 하면, 뭘 거부했느냐 하면,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언약을 외면해 버린 거예요. 땅이 있으니 살지 않겠느냐 한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음부라는 것을 발생시키는데요, 그들이 죄짓기 전까지는 음부의 실체가 아직까지 다 드러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음부위에서 살고 있는 그 인간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을 위반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우습게보고 무관심하게 볼 때에 어떤 자들이, 이방인이나 이스라엘도 다 마찬가지인데, 어떤 자들이 땅 밑에 가느냐가 아니라 저주받는 세계인 그 영역으로 가느냐를 보이기 위한 죄악 된 체계를 땅위에서 오래도록 유지해 왔고 지속해 왔던 거예요.

설교 다시 해 봅시다. 하늘이 있고 밑에는 죽은 자들을 묻는 땅이 있고 지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었을 때만 시체가 되어서 땅에 묻히면 되고 그 동안은 하늘로부터 오는 혜택을 입으면서 그 동안은 농사 잘 짓고 살다가 늙어 죽으면 땅 밑으로 가면 된다. 이게 하나님의 축복이고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에스겔 31장에서는 그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뭐냐? 마지막에 등장할 음부라는 것이 어떤 자들이 거기에 오글오글 모여들 수밖에 없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임시적으로 땅 위에서 음부에 내려가 저주받을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살았기에 꼭 저주를 받아야 하는가의 그 체제를 미리 그들이 만들고 그 죄악 된 체제를 유지하도록 임시적으로 땅 위에서 살게 한 거예요.

성경은 우리 인간중심, 생존중심으로는 해석이 안 됩니다. 에스겔 31장 가지고 이렇게 하니까 굉장히 좀 난해해 보이지만 창세기 6장으로 보면 너무 쉬워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리고 나온 것이 노아홍수입니다. ‘태어나게 했으니 살게도 해주겠지요?’ 아니에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죽이려고 하는구나. 단순히 인간을 죽이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고 음부란 어떤 자들이 음부에 내려갈 수밖에 없고 영원히 저주받을 수밖에 없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이 땅에 인간을 만들어서 생존케 한 겁니다. 음부가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떤 분은 말하기를 “그 동안 땅 위에 살면서 궁창, 곧 하늘로부터 복을 받았잖아요. 받은 그 복은 뭡니까?”라고 물으신다면 지상이 무너지게 되면 그들이 알고 있던 하늘, 햇빛과 공기를 주시는 그 하늘도 수명이 다한 거예요. 제가 설교중에 계속 이야기한 것이 뭐냐 하면, 음부 이야기를 했어요. 지금부터 무슨 이야기를 하냐, 에덴이야기입니다. 에덴동산에 저주의 요소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에덴동산 자체가 인간위주로 생각하게 되면 그야말로 희락의 동산, 인간이 살기에 적합하도록 되어 있는 거예요.

사람들은 에덴동산을 생각할 때 ‘에덴동산, 제과점도 에덴제과, 아파트도 에덴아파트, 빌라도 에덴빌라…….’ 에덴, 하면 나쁜 뉘앙스가 있는 것이 아니고 하여튼 살기 멋진 곳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이야기한다면 제가 묻고 싶어요. 누가 살기에 멋지지요? 그러면 그 사람이 그거야 사람 살기에 멋지지요. 맞습니다. 사람 살기 멋진 곳인데 문제는 그 에덴동산에 살만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니까 자기를 사람으로 보는 겁니다. “하나님이여, 이 땅에 살기 너무 힘드니까 다시 에덴동산으로 보내주세요. 에덴동산으로 회복하게 해주세요. 왜, 그래야 우리 인간이 사니까.”

만약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애초부터 에덴동산에는 일체의 인간이 망가진다든지 죽는 요소가 애당초 들어 있으면 안 됩니다. 에덴은 인간을 살기 좋게 만들어놓은 동산이 아닙니다. 거기에 저주의 요소가 있었습니다. 에덴이라 할 때 이제부터 이렇게 생각하세요. 그 에덴을 붕괴시키는 뇌관 같은 요소가 있음을 감안해서 에덴동산을 이야기합시다. 따라서 우리가 다시 에덴으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또다시 망해버려요. 우리는 에덴을 떠나야 됩니다. 에덴은 영원히 살 곳이 못돼요. 거기는 저주의 요소가 이미 삽입되어 있기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에덴을 포기 안했어요. 하나님이 에덴을 포기 않는 이유가 뭐냐, 저주의 요소와 축복의 요소, 양요소가 다 맞아 떨어질 때 그게 에덴이 되는 겁니다. 쉽게 하겠습니다. 생명나무, 영원히 사는 나무 있지요? 그 다음에 먹으면 죽는 선악과나무 있지요? 그 다음에 선악과 따먹지 말라는 말씀대로 지키는 한 즐거웠던 인간이 있는 거예요. 이 세가 지 요소 중에서 지금 인간은 없습니다. 인간은 이미 죄를 지었기에 에덴을 운운할 입장도 안 되고 자격이나 권리도 없어요. 성경에서 에덴동산이 나와 있는 것은 현재 우리가 인간이 아니라고 지적하기 위해서 있는 겁니다.

에덴에 살만한 인간, 최초의 그 아담은 지금 없어요. 거기 살 사람도 없으면서 자꾸 에덴동산, 에덴동산, 자꾸 그걸 노래하느냐는 말이지요. 거기 살 입장이나 위치에 있지 않는 존재들인데. 하나님께서는 에덴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에덴의 요건을 다 충족시키면서 하나님의 창조를 새롭게 완성시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에덴에 속해 있는 그 저주의 요소, 그 저주의 요소를 확대시켜요. 그리고 생명나무 있잖아요. 그것도 확대시킵니다. 그리고 그걸 확대시켜버리면, 그 죽은 자들이 가는 음부가 이미 에덴동산의 한 요소로 들어가 있어요. “선악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죽은 자가 어디 갑니까? 음부로 내려가거든요. 그 음부의 요소가 이미 에덴동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 뭐가 있느냐, 생명나무가 있어요. 하나님이 만드셨기에 하나님이 그걸 무효시키지 않습니다. 에덴의 확장이에요. 에덴을 확장시켜버리면 기존이 에덴, 아담이 살았던 에덴은 음부와 흡수 통합되어서 와르르 다 무너져 내려야 됩니다. 전체가 음부여야 돼요. 인간이 있는 자리 전체가 음부여야 되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에 영원히 살 수 있는 분은 누구냐, 영원히 죄를 짓지 않는 예수님만이 새로운 에덴, 천국의 주인공으로 등장해야 됩니다.

그 절차와 과정 속에 에스겔 31장이 놓여 있습니다. 정리해 봅시다. 에덴이 있었다. 화려했다. 그것은 사람에게 주제넘은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너무너무 잘 살게 했어요. 레바논도 너무 잘살게 했습니다. 그들은 이 지상에 살면서 그런 혜택을 누릴 수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하게 이 세상은 신이 있기에 그런 혜택을 부여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하면, 에덴에서 누렸던 그 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에서 복을 줬건만 그들은 애굽이든 앗수르든 레바논이든, 하나님이 에덴의 주인공이고 하나님께서 언약과 약속을 줬음을 배제하고 오직 자기들이 살만한 입장에 있다고 여기면서 그냥 누리기만 했어요. 한껏 교만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강조한 것은 우상을 섬긴 거예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을 섬긴 겁니다. 그렇다면 에덴의 축복을 받을 자격과 맞지를 않아요. 따라서 에덴자체가 와장창 무너져야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로마서 9장 22절에 보면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찌라도.” 이렇게 되어 있어요. 두 개가 그릇이 있고 하나는 진노의 그릇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그릇을 어디서 찾느냐가 지금 우리의 문제점이에요. 우리가 그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점에서 진노하시는가, 그걸 이야기하는 겁니다. 나쁜 사람 따로 있어서 진노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지만 그렇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31장에서 모든 땅에 있는 인간들은 다 진노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모든 인간은 죽어서 음부에 가기에. 우리가 너무나 익히 아는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22절부터 보면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아브라함언약에 속한 거지는 어디에 가느냐 하면, 음부가 아닌 곳에 가요. 그것은 기존의 궁창, 기존의 하늘이라고 보이지만 사실은 그 하늘은 진짜 하늘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계신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하늘이 주어졌고 그 하늘에서 햇빛과 공기와 단비를 주셔서 이 땅에서 농사지으면서 윤택하게 잘 먹고 잘 살았거든요. 그런데 거지 나사로는 어디에 갔느냐 하면, 이 땅에서 지질이도 못난 거지가 그냥 하늘에 가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아브라함 품에 갔어요. 아브라함 품이란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진 곳,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진 그 천국에 간 겁니다.

부자는 어디에 갔는가? 음부에 갔습니다. 이 말은 뭐냐, 이 마지막때에 이 지상에 있던 모든 인간의 하늘, 땅, 음부, 이것은 깨어져버리고 결국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천국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궁창과 지옥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음부로 모든 것이 재편성되어서 정립되고 제 자리를 찾아요. 그리고 그 천국에는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과 누립니다. 에덴동산에는 저주의 요소가 있었어요. 그리고 생명의 요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이 역사의 끝이 아니고 시작이거든요. 에덴동산을 계속해서 반복시키고 그것을 칼국수 하듯이 홍두깨로 밀어서 쫙쫙 펼쳐보니 결국 나누어지는 것이 뭐냐 하면, 에덴동산에 있었던 생명과 죽음의 요소가 진짜 새로운 세상으로 따로 분리되어서 영생은 영생 얻을 사람끼리 따로 모이고 거기에는 선악과가 없고 생명나무만 있습니다. 그리고 이쪽에는 마귀와 더불어서 유황불, 지옥가게 되고.

결국 천국과 지옥을 완전히 확립시키기 위해서 중간 과정에 에스겔 31장이 지금 지나가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다시 이야기합니다만, “그렇다면 목사님, 그 음부, 지옥에는 누가 갑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이 지상에서 음부에 갈 사람들이 갈 만한 짓들을 해줘야 돼요. 그 대표적인 것이 뭐냐, 앗수르고 바로 왕이고 이스라엘이다, 그 말입니다. 중간과정에서. 그러면 그들이 무슨 짓을 했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 언약을 버리고,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겼거든요. 그들이 왜 그렇게 우상을 섬기고 자기들에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까?

하늘의 복을 받았기 때문에, 에덴동산이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이 당연히 받을 만 해서 받는다고 다들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고등학교 2학년인데 학교 마치고 집에 잘 왔다. 그러면 내 애는 아무 탈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안 갔으니까, 배 안탔으니까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 당연한 것이 결국 부자가 음부에 내려가는 사고방식인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깜짝 놀라야 돼요. ‘아, 내가 지금 다른 현실을 생각하는구나. 고등학교 2학년인 내 아들이 아무 탈 없이 잘 자라고 아무 사고도 없는 내 아내(남편)와 아이, 이렇게 사는 것이 나의 현실이다.’ 그게 현실이 아니에요.

그것은 뭔가를 빠트렸어요. 하나님의 십자가를 빠트리고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 믿음을 빠트린 내 중심의 나만을 위한 현실이라는 말이지요. 그것을 지금 지적하는 거예요. 지금 에스겔 31장에서 이스라엘은 망한 상태입니다. 이스라엘이 망했으니 앗수르도 좋다고 하고 바로왕도 좋다고 하거든요. 이스라엘 망했다고 그들은 안 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왜, 너무너무 잘 사니까. 모든 것이 축복이니까. 에덴동산 못지않아요. 너무나 잘 살아요. 하지만 그 잘산다는 그것이 지진이 일어나면서 모든 문명이 한꺼번에 땅 속으로 파묻히는 것처럼 사실은 그동안 땅 속이라고 여겼던, 땅 안이라고 여겼던 음부의 그 본질이 이제는 우상숭배 하는 자들과 합세해서 뭐로 돌변하는가 하면, 이제는 지옥으로 전환됩니다.

세례요한 왔을 때 도끼 이야기했고 그 뒤에 이런 이야기합니다. “마지막에 하늘나라가 올 것이다. 오게 되면 둘로 나눈다. 알곡은 모아서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모아서 불에 태워진다.”고 했습니다. 그게 현실입니까? 우리는 이 현실을 내가 일상의 현실속에 얼마나 집어넣고 그것을 포함시켜서 생각해 왔었습니까? 그저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현실로 치고 거기다가 억지로 성경말씀을 가져다 엉겨대니까 그저 축복 주는 말씀, 기도하면 응답받는 말씀, 이것만 하니 이런 억지가 어디 있어요? 그 자체가 지옥생활인데.

하나님의 은혜도 잊어버리고 교만에 빠져서 그저 자기 잘난 체만 하고 살아가는 이 자체가 앗수르의 반복이고 망하는 애굽나라의 반복인데. 그것은 현실 아닙니다. 홍해바다 갈라지고 건너가서 음부에 빠졌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15절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가 음부에 내려가던 날에 내가 그를 위하여 애곡하게 하며 깊은 바다를 덮으며 모든 강을 쉬게 하며 큰물을 그치게 하고.” 모든 것, 그동안 땅 위에 있었던 바다와 강과 하수, 이 모든 것도 스톱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왜, 이제는 그 앗수르 망할 때 얇은 표면, 피부같이 표면에 지나지 않는 것을 현실의 전부라고 인간들은 본 거예요. 진도바다에 빠진 그것이 현실의 전부라고 본 겁니다.

죽어서 부자가 갔던 그 지옥은 생각 안하고 그저 하루하루 버티기만 하면 잘 사는 것이라고 그냥 얇은 막 같은 여기가 세상 전부라고 여기는 거예요. 이스라엘도 그랬고 앗수르도 그랬습니다. 아닙니다. 사람은 잠간이고 마지막은 다 음부로 내려갑니다. 전도서 9장 3절에 보면 잘난 자나 못난 자나 죽으면 다 음부로 내려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오직 언약 속에 있는 사람, 살아오면서 약속 때문에 약속의 혜택을 입으면서 사니까, “내가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오늘도 주님 주신 십자가의 능력에서 나오는 그 희생을 증거 하는 용도로서 오늘도 내가 또 숨 쉬고 사네요. 사실은 죽은 자지만 매일 같이 살려내네요.”라고 고백할 때 그 사람 속에서 하나님의 언약이 나오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 다시 보게 하옵소서. 다른 현실을 꿈꾸었습니다. 깜짝깜짝 놀라고 우울하고 좋을 때는 천하에 자기가 최고인줄 알고 까불다가 실망하기도 하고 눈에 보이는 세상에 놀아나는 저희들의 한심한 모습을 돌아보시고 세상 모든 것이 예수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용도인 것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307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3,492 자유게시판 35강 슥14장 1-5(감람산)140420-이 근호 목사 스가랴 최고관리자 14-04-22
13,491 자유게시판 가락-요한복음 1장(빛과 그림자)140403b-이 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4-04-22
13,490 자유게시판 81강-롬 14장 10-12(형제판단)140420-이 근호 목사 로마서 최고관리자 14-04-21
13,489 우리교회 [일반] 일상과 죽음 로마서 최고관리자 14-04-21
13,488 묻고답하기 일상과 죽음 로마서 최고관리자 14-04-21
13,487 우리교회 감람산 140420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4-04-20
13,486 묻고답하기 하나님 나라 로마서 최고관리자 14-04-20
13,485 우리교회 삭개오 140420 - 최고관리자 14-04-20
13,484 설교 형제판단(로마서 14:10-12) 로마서 최고관리자 14-04-20
13,483 우리교회 형제 판단 140420 에스겔 최고관리자 14-04-20
13,482 자유게시판 안양20140411b-히7장21절(죄의 발견) - 이 근호 목사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14-04-18
13,481 자유게시판 안양20140411a-히7장21절(죄의 발견) - 이 근호 목사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14-04-18
13,480 자유게시판 20140415b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12-츠빙글리 예정론 로마서 최고관리자 14-04-18
13,479 자유게시판 20140415a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12-츠빙글리 예정론 [신학] 최고관리자 14-04-18
13,478 자유게시판 광주 강의(2014. 3. 21) 1강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14-04-18
13,477 강의 우리 140417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4-04-18
13,476 강의 유튜브(70강, 71강) 장래일, 발생 140417 [신학] 최고관리자 14-04-18
13,475 자유게시판 87강-에스겔 31장 15절-18절(에덴과 함께)140416-이 근호목사 에스겔 최고관리자 14-04-17
열람 ➜ 우리교회 에덴과 함께 140416 에스겔 최고관리자 14-04-16
13,473 우리교회 [일반] 영화 [시선 ]평 [일반] 최고관리자 14-04-16
13,472 묻고답하기 영화 [시선 ]평 - 최고관리자 14-04-16
13,471 강의 츠빙글리의 예정론 140415 [신학] 최고관리자 14-04-15
13,470 자유게시판 34강 슥13장 7-9(삼분지 일)140413-이 근호 목사 스가랴 최고관리자 14-04-15
13,469 강의 [14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5 - 인간의 지혜 잠언 최고관리자 14-04-14
13,468 자유게시판 80강-롬 14장 7-9(주님과의 관계)140413-이 근호 목사 로마서 최고관리자 14-04-14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