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강의(2014. 2. 21) 2강
광주 강의(2014. 2. 21) 2강
이름 : 서경수(IP:118.35.138.213)
광주 강의(2014. 2. 21) 51-2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혹독하게 경험하는 것이 12지파입니다. 야곱의 12아들은 전부 울고불고 난리 났지요. 이것은 하나님이 그런 일을 유발시켰습니다. 요셉에게 두 개의 꿈을 주셨고, 요셉의 형들은 동생 요셉을 팔아넘겼습니다. 이 일로 인해 아버지 야곱은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잡고, 야곱은 요셉을 잃고, 사사기의 입다는 자기 딸을 죽이고 --
구원은 힘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애씀으로 인하여 누군가 희생되는 그분 덕분에 굴러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어먹는 식으로 구원이 됩니다. 내 스스로 구원에 대해서 악착같이 버티려고 하는 그 모습들이 곧 주님을 죽게 만드는 이유가 되는 겁니다.
야곱이 11아들을 얻고 많은 재산도 얻었지요. 그래서 재산도 아깝고 11아들이 아깝지요. 이것은 자기가 받은 축복이라고 여겼잖아요. 그러면 축복이 귀합니까, 축복 주신분이 귀합니까? 축복 주신분이 귀하잖아요. 설날에 아이들이 세뱃돈을 받기 위해 공손하게 절을 하지만 일단 돈을 받고나면 공손함을 잊게 됩니다.
야곱이 하는 짓이나 오늘날 우리가 하는 짓이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하는 짓이 12지파 안에 다 들어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1을 12로 만들 때, 이것이 축복이 아니고 이 안에 축복이 들어 있는데, 이 자체는 축복이 아니고 축복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축복처럼 보이지요. 하지만 이 가짜 축복으로 인하여 희생당한 그것이 진정한 축복이란 사실을 야곱을 통해서 이야기해 주고, 12지파에서 되풀이 됩니다.
야곱의 12아들이 했던 경험은 나중에 국가(이스라엘) 단위로 되풀이 되면서 그들은 멸망의 길로 갑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어떤 것도 지시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이 멸망의 길로 갔기 때문에 구원 받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인간이 멸망했다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니고 구원은 따로 챙겨져 있고, 그 구원을 설명하고 구체화하기 위해서 구원 받을 자는 이 땅에서 멸망당하고, 주의 이름으로 미움을 받는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애쓰고 노력해야 됩니다. 그러한 세상을 몸소 경험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29장을 보면, 여자의 시기와 질투가 먼저 나오는데, 이것은 야곱과 에서의 시기 질투로 반복됩니다. 야곱과 에서의 싸움이 야곱 가정 내의 싸움으로 번지지요.
질문 드립니다. 야곱이 애초에 아내 두 명을 원했습니까? 아니지요. 외삼촌이 사기를 쳐서 얼굴 못생긴 언니를 덤으로 시집가게 만들었잖아요. 그래서 아내가 둘이 되었습니다. 둘은 항상 불안정해요. 둘은 반드시 하나를 지향합니다. 둘 중에서 양보할 사람이 있습니까? 없어요.
희생과 양보는 주님의 영역이고, 인간의 영역은 죄의 영역이기 때문에 희생과 양보는 어림없는 이야기입니다. 오직 자신을 위한 쉬지 않는 투쟁만이 있을 뿐입니다. 심지어 자살을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마지막 남은 승리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패배자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그 전에 자기 생을 끝내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 형사가 추적하던 범인을 마지막으로 체포하려고 하니까 범인이 독약을 먹고 입에 거품을 흘리면서 “지독한 놈!” 하면서 죽잖아요.
둘은 하나를 지향합니다. 라헬과 레아 중 누가 야곱의 아내인가를 하나님의 개입으로 판정받자는 시합이 벌어집니다. 자식을 낳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무자식은 저주고 잉태케 하는 것은 축복이기 때문에. 생산은 축복이에요.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하기 힘든 것은 축복을 인간의 선택으로 간주하니까 힘들어요. 그냥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면 되는데, 내가 원하는 자를 내가 선택하겠다고 나서니까 힘듭니다.
창세기 29장 32절 이하에 보면, 레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데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라헬은 하나님이 임신을 못하게 하시니까 자기 종 빌하를 통해서 단, 납달리가 태어나요. 그 후에 레아의 여종 실바를 통해서 갓, 아셀이 태어납니다. 그 후에 레아가 또 아이를 낳는데 잇사갈, 스불론이 태어났고, 마지막으로 라헬이 2명의 자식을 낳습니다. 요셉과 베냐민입니다.
이 모두는 하나님이 주신 자식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자식들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여겼는데 막한 축복이라는 사탕을 까보니까 육신덩어리가 담겨 있어요. 원래 하나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몇 명입니까? 하나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12명의 자식을 낳았어요. 그러면 12명이 하나로 만들어져야 돼요. 하나 속에 들어가야 돼요. 들어가는데 죄인으로 들어가야 해요. 그냥 들어가면 천국의 아들이 두 명이 되니까 하나를 죽이고 들어가야 돼요. 그러면 한 몸에서 나온 144,000이 됩니다.
144,000은 12×12×1,000인데, 1,000은 언약의 완성을 말하고, 12는 언약의 숫자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니까 하나님이 약속한 대로 택한 백성들이 144,000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역사 속에서는 야곱에서 일어난 사태가 계속 반복되는데, 이런 자식들을 가지고 주께서는 뭘 설명하는가 하면, 우리 생각에는 12명이 있으면 12명 가운데 누가 훌륭한 자식인지 묻고 싶어요.
그런데 야곱은 누구를 사랑합니까? 요셉을 특별히 사랑합니다. 나머지 형제와 차별화가 일어납니다. 야곱은 12명의 아들을 보는 것이 아니고 요셉을 통해서 다른 11명의 자식을 보는 겁니다. 그러면 요셉과 다른 형제와의 사이에는 차별이 있겠지요? 야곱은 요셉을 사랑했고, 하나님은 요셉에게 두 가지의 꿈을 통해서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에게는 요셉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죽고 난 뒤에는 야곱이 어떤 다른 아들의 위로도 거부했어요. “아버지, 우리가 있잖아요.” 할 때, 그 이야기를 듣지 않았습니다. “나는 너희들이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요셉이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오늘날 이 시대로 표현하면 이렇게 됩니다. 하나님께 “제가 여기 있잖아요?” 하는데, 하나님 아버지에게는 예수님이 필요하지 우리는 필요치 않아요. 예수님의 곁가지(몸의 지체)로써만 의미가 있지 우리 자체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공부하는 것이 뭐냐 하면, 개마고원처럼 부풀어 올라온 여기에서 쓰레기처럼 구원 받습니다. 구원받는 그들이 12지파 이름으로 서랍장이 되어 있다고 했지요? 12지파가 서랍장에 들어가는 것처럼 된다는 의미가 뭐냐 하는 것을 지금 설명하려고 합니다.
신명기 27장 11절에 “모세가 당일에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 이런 말씀이 있어요.
이 지파를 구분할 때 구분하는 기준이 뭡니다. [교회를 넘어서]라는 책에 이 부분을 설명했는데 어떻게 되어 있는가 하면, “주인과 여종의 관계”라고 했습니다. ‘주인과 여종의 관계’라고 말한 이유가 있어요. 갈라디아서 4장에 보면, 아브라함에게는 두 종류의 자식이 있는데 하갈의 자식이 있고, 사라의 자식이 있습니다. 사라의 자식은 약속에 따라 난 자식이라 천국에 가고, 하갈의 자식은 종처럼 살아야 하는데, 율법의 종으로 살아야 될 자들이기에 이들은 지옥에 갑니다.
율법의 종을 표현하면서 종이 하갈이다. 그 아브라함의 약속 속에 하나님의 의가 담겨 있고, 그 아브라함의 자손이 누구냐 하면 바로 이삭이고, 그 다음에 나온 자손이 야곱입니다. 그러면 야곱에서 12 아들이 있을 때 둘로 나눈다면 대략 어떤 기준에서 나누는가 하는 겁니다.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이 있어요. 산이 12개라면 한 지파에 하나씩 주면 되는데, 산이 2개고, 이 산이 서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맞은편을 향하여 말씀을 낭독하게 되어 있는 그런 구조란 말이지요. 에발 산, 그리심 산의 높이기 약 900m 쯤 됩니다.
지금 우리가 관심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12지파를 두 부류로 나누는 것입니다. 12를 둘로 나누면 6이 되고, 이것을 만약 4로 나누면 3이 되고, 점점 더 어디에 가까이 가지요? 결국은 1에 가깝지요. 3에서 1로 갈 때 1은 중앙에 두드러지게 불쑥 융기되는 모습이 1이 됩니다. 중앙을 차지하는 거예요.
그러면 12를 2로 나눌 때 우리 같으면 어떻게 나누겠어요? 지금 인간의 질투와 욕심에 의해서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하고, ‘저 남편이 진정 누구의 남편인가’ 하는 식으로 둘에서 하나를 지향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 12지파가 결국 하나를 지향하는 그 원리에 있어서는 동일합니다.
그러면 이걸 나눌 때 어떻게 나누는가? 그들이 싸움을 벌여서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태어난 자식이 12명이었습니다. 레아 쪽에서 나은 자식이 8명(레아 6, 레아의 종 실바 2)이고, 라헬 쪽에서 나은 자식이 4명(라헬 2, 라헬의 종 빌하 2)입니다.
레아 쪽이 8명, 라헬 쪽이 4명이라 수가 안 맞지요? 그래서 이것은 레아냐 라헬이냐를 정확히 반으로 나눌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먼저 종의 자식을 봅시다. 종의 자식이 몇 명입니까? 4명입니다. 그럼 본처의 자식은 몇 명입니까? 8명. 이렇게 나눌 수도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어떻게 나누는가 하면, 이 전체가 인간이 축복을 가장한 죄악 된 육신의 다툼인데, 이들을 배치할 때 균형이 안 맞게 배치를 하는 겁니다. 어떻게 해도 6대 6이 안 되니까. 6대 6이 안 되는 것을 주님이 어떻게 배치하는지 보세요.
그리심 산에 있는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요셉, 베냐민은 전부 본처가 나은 자식들입니다. 그리고 에발 산에 있는 자는 르우벤, 스불론을 빼고 나머지 갓, 아셀, 단, 납달리는 종의 자식들입니다. 그러면 주께서 등급을 매겨요. 한쪽이 숫자가 모자라니까 일단 종의 자식은 다 들어가고, 진짜 야곱이 사랑하는 여인 라헬의 자식은 반대편에 세우고, 레아 자식 중 2명을 저쪽으로 보내면 6대 6이 됩니다.
여기에서 나눠지는 조건들이 아브라함 언약에 있어서의 종에 속한 사람과 정식 아내에게 속한 자식을 나누시는 하나님의 취지가 우선이고, 그 다음에는 레아 쪽이 아니고 라헬 쪽에 점수를 더 주는 식이 됩니다.
민수기 2장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이 그림에 보면 하나님의 언약궤를 이동시키거든요. 동서남북 방향이 나와 있고, 언약궤는 반드시 동쪽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는데, 동쪽에 유다지파가 제일 먼저 나와요. 이것은 창세기 49장에 보면, 야곱이 아들들에게 축복할 때 유다 지파에서 왕이 나온다고 했어요.
에스겔 48장에 나오는 마지막 성전이 완공되고 난 뒤에 12지파의 배치도와 민수기 2장에서 12지파가 광야에서 이동 중에 배치된 것에는 차이가 있는데 왜 차이가 나는지를 지금 설명하고 있습니다.
민수기의 12지파 배치를 보면 동쪽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고, 반드시 메시아가 동쪽에서 옵니다. 성막을 중심으로 동쪽에 배치된 지파가 유다, 잇사갈, 스불론입니다. 그리고 남쪽에는 르우벤, 시므온, 갓이고, 동쪽의 세 지파와 남쪽의 갓을 제외한 지파는 정실부인(레아) 자식입니다.
그리고 북쪽에는 단, 아셀, 납달리 지파인데, 이들은 종의 자식들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유다와 누가 대립 요소가 되는가 하면 여기에 요셉 지파가 등장해야 되는데 각 방향에 3지파이면 네 방향에 12지파가 되는데 그러면 언약궤 옮길 지파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언약궤를 옮길 레위 지파를 빼면 11지파가 되는데, 요셉 지파를 둘로 나눠 에브라임, 므낫세를 투입합니다. 그렇게 유다 지파와 대립되면서 요셉이 등장하는데 이것도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이 축복하는 대목에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나라가 둘로 나눠 질 때 아래쪽은 유다지파, 위쪽은 요셉지파를 중심으로 해서 남북이 갈라졌잖아요. 창세기 49장 10절에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지요, 그래서 유다 지파에서 왕이 등장하는데, 24절에 보니까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고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사람이 요셉 지파에서도 나오고 유다 지파에서도 나옵니다. 축구에서 투톱입니까? 어쨌든 유다 지파와 맞설 수 있는 지파가 요셉 지파입니다. 실제로 영토도 요셉 지파와 유다 지파가 비슷합니다. 여하간 중심이 두 개가 됩니다. 유다 지파의 건너편에 요셉 지파(에브라임, 므낫세)를 배치하고, 여기에 남아있는 정실 부인의 자식 베냐민을 배치합니다. 그리고 남은 종의 자식 갓을 남쪽에 배치합니다.
결국 이 구조는 유다 지파가 주도권을 쥐고, 뒤따라오는 것이 요셉 지파고, 나머지 정실부인의 자식은 유다를 따르고, 종의 자식들은 요셉을 따르는 이런 구조로 해서 영토 분할도 이와 유사하게 배치가 됩니다. 여하간 민수기에서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에스겔 48장에 보면 성읍의 출입구가 나옵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에도 나와요. 어쨌든 에스겔 48장 30절을 보면 “그 성읍의 출입구는” 이렇게 나오는데, 그 출입구가 제가 나눠드린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보겠습니다. 동서남북으로 되어 있고, 아까 유다 지파가 동쪽에 있었지요. 그것은 진행 방향입니다. 민수기 성막은 계속 움직이는데 에스겔 성전은 고정되어 있습니다.
유다가 어디 있느냐? 유다 문은 위쪽에 있어요. 이미 북쪽 이스라엘은 망했습니다. 유다 지파에 의한 유다 나라는 에스겔 48장에 의하면 완성이 되었어요. 완성 되었기에 유다 지파를 중심으로 해서 모든 뼈대가 마련됩니다. 유다 지파의 양쪽에 있는 르우벤과 레위, 건너편에 스불론, 잇사갈, 시므온. 이 모든 것은 전부 정실부인의 자식입니다.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습니다. 12지파를 분류할 때 첫 순위가 정실부인의 자식이냐, 종의 자식이냐? 두 번째는 라헬의 자식이냐, 레아의 자식이냐? 이렇게 나눠요.
그런데 완성이 되면 그 모든 것은 유다로 모아져요. 그러면 12라는 수가 유다 하나로 모아져요. 그러면 요셉 지파는 그동안 뭘 했는가? 하나인 것 같지만 하나가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 이유가, 솔로몬이 죽고 난 뒤에 나라가 나눠지지요.
솔로몬은 세상의 거대한 유혹에 이끌려 정략결혼을 했고, 부인들이 자기 나라의 종교를 가지고 솔로몬은 부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신당을 지어주고 했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망합니다.
솔로몬이 죽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집권할 때에 여로보암이 등장해서 나라가 둘로 나눠집니다. 르호보암은 남쪽을 차지하고, 여로보암은 북쪽을 차지했는데, 두 지파를 제외한 모든 지파가 북쪽으로 따라갔어요. 안 따라간 두 지파는 유다와 베냐민뿐입니다.
제가 나눠드린 그림, 에스겔 48장 이야기 있지요. 유다 지역과 베냐민 지역 사이에 성전이 있는데 이것을 저는 개마고원이라고 했지요. 높은 자리가 있고 나머지 모든 지파는 이것을 경유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와 접촉이 안 돼요. 유다와 베냐민 지파에 있는 성전을 통해서만 됩니다. 이 성전이 에스겔 48장에 나오는데 이것은 완성된 성전이기에 계속 생명의 물이 나옵니다. 천국을 그 당시의 지도로 설명하는 거예요.
성전이 완성 되었을 때 정실부인의 자식들을 이렇게 배치합니다. 그러면 요셉 지파가 남아요. 유다 지파가 완성된 입장에서 요셉 지파의 역할은 정실부인 자식과 종의 자식의 차별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마주보게 합니다. 이쪽에 있는 납달리, 아셀, 갓은 전부 종의 자식이고, 요셉과 베냐민은 정실부인 자식인데 한 자리가 남으니까 단을 집어넣은 겁니다.
전체적인 취지가 뭐냐 하면, 유다로 인하여 완성된 상태에서는 이동할 필요가 없으니까 유다 지파에 의해 모든 해택은 주어지고, 정실부인과 종의 차이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취지가 피어오른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민수기 2장에서는 성소가 이동하는 중이고 동쪽으로 이동한다고 했지요. 동쪽에는 유다 지파가 있으면서 유다 지파 쪽에는 정실부인의 자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요셉 지파인데, 요셉이 둘로 나눠져서 에브라임, 므낫세가 됩니다. 그 다음에 성전은 유다 쪽에서 갈라서는 겁니다. 그리고 위쪽에는 종의 자식들이 배치되지요.
이러했던 것이 에스겔 48장에서는 유다 지파로 인하여 아래위 전부 정실부인의 자식이고, 이쪽은 요셉 지파가 등장하면서 종의 자식이 배치되면서 전체적으로 정실부인 자식과 종의 자식을 구분시킵니다.
[교회를 넘어서] 263페이지를 봅시다. “여호와께서 함께하신 성읍에는 사방으로 총 12개의 문이 있는데 그 문마다 지파의 이름이 붙는다. 그런데 그 이름이 붙여진 구조를 사방으로 살펴보면, ‘라헬측과 레아측’이라는 큰 구조의 틀 아래서 세부적으로 각각 ‘여주인과 종’이라는 구조로 짜여져 있다. 즉 북쪽과 남쪽은 모두 레아 소생의 지파들만 구성되어 있는데 복쪽은 정실 소생으로 짜여져 있고 남쪽은 여종 소생이 주종을 이룬다. 반면에 동쪽과 서쪽은 라헬측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동쪽은 모두 라헬이라는 본부인의 소생이 주종을 이루며 서쪽은 여종의 소생과 그리고 레아의 여종인 실바 소생의 지파 이름이 붙여져 있는 것이다(겔48:30-34). 그리고 문 방향을 소개하면서도 일상적인 동쪽 문부터 소개하는 것이 아니다. 민수기 2장에서는 ‘동→남→서→북’ 형태가 되는데 이러한 바향 순서는 바로 정실측부터 먼저 거론하고(북과 동) 그 다음에 여종측(남과 서)을 제시하므로써 여전히 정실과 여종의 대립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여기 265페이지에 에스겔 마지막이 나오는데, 그 성읍 이름이 나오는데 그것은 ‘여호와 삼마’라고 해서,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는 뜻입니다.
자, 이제 결론을 맺을 때가 되었습니다. 제가 아까 에베소서 4장 8절에 의해서,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그 선물을 나눠 준다고 했지요. 이것은 전쟁을 통해서입니다. 여호수아에 보면, 12지파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전쟁에 나서지요. 제가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세상은 가만히 있다고 해서 좋아지는 것이 아니지요.
신자, 불신자 관계없이 설쳐야 됩니다. 열심히 움직여도 세상에서 밥 먹고 살기 힘든데 가만히 있으면 되겠습니까?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 가만히 있는데 그 땅을 차지했습니까? 전쟁을 치렀지요. 그런데 그들은 전쟁을 하는 중에 무엇을 느꼈습니까? 자신들의 무능함을 느끼고 패배의 불안감이 들고 했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승리를 했습니다. 승리를 했는데 그 전쟁은 무슨 전쟁이냐 하면, ‘붙이시는 전쟁’입니다. 전쟁이 이상하지요? 붙여주시는 전쟁입니다. 어떻게 붙여 주시는가? 힘도 없는 나에게 강자가 와서 패하는 모습을 보라가 붙여주는 전쟁입니다. 나중에 결과를 보면 신나는데 막상 강자가 올 때는 겁에 질리고 승리하기 위해서 죽도록 싸워야 합니다.
죽도록 싸우는데 그 싸움의 결과는 자신들의 노력과 실력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참 이상한 분입니다. 승리를 주시려면 그냥 주시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약을 올려가면서 주십니다. 그런 전쟁을 치르면서 땅을 차지했는데, 나중에는 그 땅을 다 빼앗깁니다.
그러면 빼앗기는 과정에서 뭐가 문제가 되는가 하면, 12지파 전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이스라엘과 이방 나라간의 전쟁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고 그들과 동행하시는 여호와 이름과 동행 받는 백성들과의 전쟁인 것을 선지자들의 투입으로 알려 주시지요.
선지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만 믿으면 무화과나무에 소출이 없어도 괜찮다는 겁니다. 하나님만 알게 되면 육신의 문제는 신경 쓸 것 없다. 왜? 우리가 살고자 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살려주시면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얻는가, 잃는가 이런 것이 문제가 아니고 ‘누가 주셨는가’가 문제입니다.
그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를 어떻게 합니까? 배척하고 죽이면서 선지자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지요. 그래서 희생이 발생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입니다. 선지자를 실컷 얻어맞도록 하기 위해 보낸 겁니다. 그런데 정작 구원 받아야 될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으면서도 자기가 납득이 되는 식으로 자기 땅을 확보하려고 애를 쓰다 보니까 누가 억울하게 죽었습니까?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이 죽지요. 그래서 성전과 제사마저도 사라집니다.
선지자 중에 끝이 에스겔입니다. 에스겔 본문에서. 이 에스겔 선지자가 와서 뭐라고 하는가 하면, ‘이스라엘이 망하고 유다가 망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망하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12지파가 땅을 나눠 가진 것은 분명히 하나님이 주셨지만 그 주신 것을 스스로 회수해 버린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회수해 버리면 언약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그 회수하는 과정 속에서 희생이 발생됩니다. 이스라엘이 망하는 과정에서 희생이 발생됩니다. 이 희생 속에서 하나님이 언약을 완성하는데, 12지파에 속한 모든 것들은 다 무엇을 품게 되어 있습니까? 두 가지인데 첫째는 우리는 죄 때문에 마땅히 멸망해야 된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우리 죄 때문에 누군가가 희생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자식들에게 축복할 때 ‘홀이 유다 지파를 떠나지 아니한다(창49:10)’고 했어요. 유다 지파에서 왕이 나오지요. 그런데 유다 지파도 망해야 되잖아요. 유다 지파가 망하기 직전에 망하는 의도 안에서 다윗 자손을 언급했고, 다윗 자손이 망하면서 희생자로써의 다윗이 새롭게 부각이 되면서, 죄와 희생이 등장하면서 드디어 약속대로 유다 자손에서 왕이 등장합니다.
그렇게 해서 아까 보신 그림대로 되는 것입니다. 온 땅은 왕의 소유이고, 어느 누구도 자기의 땅이라고 할 사람이 없어요. 왕은 유다 지파이고, 이 땅의 왕의 소유, 다윗 자손의 땅인데 너희들이 살게 될 때는 왕 되시는 분의 희생으로 공짜로 누리면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2지파의 배치도도 달라집니다. 옛날의 배치도를 보면 자기들의 땅이 좋다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고 않고(요단강을 건너지도 않고) 여기가 좋사오니 해서 머물러 있으려고 했어요. 그리고 다른 지파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그것이 전부 나중에는 예루살렘과 베냐민을 중심으로 해서 다시 재편성 되면서 전부 이 품안에서 같이 살게 됩니다. 에스겔에 나오는 지도를 보면 그렇습니다.
에스겔에 모든 지파의 유지가 나오는 것은, 어느 것도 베냐민과 유다 사이에 있는 성전의 혜택을 입지 않은 지파는 없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러면 이 지파는 어느 지파입니까? 그것은 기존의 유다 지파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망한 후에 새롭게 형성됩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자손이 누구냐가 에스겔 전체의 관건이 되는 거예요. 다윗의 자손으로 왕이 오면 그 왕이 에스겔에 예언된 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에스겔 37장 24절에 보면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에게 다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고 했어요.
목자마저도 이제 유다 지파에 소속돼요. 전에는 요셉 지파였지만.
다윗의 자손이 오게 되면 이 모든 약속은 다 이루어지는 겁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실제로 이것이 이루어지기를 원해요. 하지만 다윗의 자손이 이미 육신으로 있던 시절은 떠났잖아요. 이 세상을 떠나서 승천하셨어요. 그리고는 부활하신 몸으로 오셨잖아요. 부활체는 보통 우리의 육신이 아닙니다.
우리도 나중에는 하늘에 속한 형상을 입을 겁니다. 지금 이 모습이 아니고. 흙에 속한 것은 흙으로 끝이 납니다. 하늘에 속한 것을 흙에 속한 육체로 묘사하면 이렇게 되지요. 하지만 12지파에게 주신 언약은 이제 다윗 왕이 다 결정하기 때문에 아까 이야기한 에베소서 4장 8절 말씀처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시는데, 그 선물이 뭐냐 하면, 성령이란 선물입니다.
그래서 에스겔 성전에서 물이 나옵니다. 성전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아시고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찾아가서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4:14).”라고 이야기를 했죠. 이 말의 뜻은 에스겔 말씀을 염두에 두고 “내가 바로 다윗의 자손으로 온 자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있었던 그것을 우리는 반복해야 돼요. 우리는 이 땅에 무엇 때문에 사는가? 우리는 내가 사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니까 사세요. 그야말로 막 사세요. 그렇게 살다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돼요. 유다와 이스라엘이 전부 망했잖아요. 우리는 이 몸 때문에 망해야 됩니다. 망하고 난 뒤에 망하는 그것이 죄와 하나님의 희생(십자가)과 결합되면 우리는 천국에 가게 됩니다.
죽은 자가 어떻게 십자가를 골라잡을 수 있겠어요?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을 통해서 십자가를 주셔서 미리 죄로 죽은 자로 살아가게 만들어서 알게 하고, 나를 죄인 되게 하신 것은 십자가 사건 때문에 죄인이 된 거예요. 나쁜 짓을 해서 죄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나는 죄인일 수밖에 없는 것을 통감할 때 우리는 주와 결합된 자입니다.
성령이 임해서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때, 이런 사람이 바로 천국에 가는 자이고, 이것을 에스겔을 통해서 알려주는 거예요.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정실부인의 자식과 종의 자식을 구분하시고, 약속대로 유다 지파를 통해서 다윗의 자손이 태어나게 하시고, 모든 계획이 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알려진 것처럼 예수님은 이스라엘 12지파의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오셨다고 하셨고,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왔던 주님의 모든 계획이 십자가를 통해서 다 이루었다고 하실 때, 우리가 죄인 됨을 비로소 알게 되었고, 그것이 십자가의 승리인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14. 4. 10. 21:45 녹취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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