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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음부로 가는 길 140409우리교회에스겔

음부로 가는 길 140409

이름 : 이근호(IP:119.18.90.53)

음부로 가는 일(에스겔 31:10-14)

이근호

14-04-09 21:45

음부로 가는 길

2014년 4월 9일 본문 말씀: 에스겔 31:10-14

(31:10)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의 키가 높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아서 높이 빼어났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은즉

(31:11) 내가 열국의 능한 자의 손에 붙일지라 그가 임의로 대접할 것은 내가 그의 악을 인하여 쫓아내었음이라

(31:12) 열국의 강포한 다른 민족이 그를 찍어버렸으므로 그 가는 가지가 산과 모든 골짜기에 떨어졌고 그 굵은 가지가 그 땅 모든 물 가에 꺾어졌으며 세상 모든 백성이 그를 버리고 그 그늘 아래서 떠나매

(31:13) 공중의 모든 새가 그 넘어진 나무에 거하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지에 있으리니

(31:14) 이는 물 가에 있는 모든 나무로 키가 높다고 교만치 못하게 하며 그 꼭대기로 구름에 닿지 못하게 하며 또 물 대임을 받는 능한 자로 스스로 높아 서지 못하게 함이니 그들을 다 죽는데 붙여서 인생 중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로 내려가게 하였음이니라

힘 있는 자를 사모하고 그의 곁으로 모여드는 것은 전 인류 사회에 있는 생리입니다. 거대한 파라솔 같은 제국의 그늘 밑에서 숱한 소국들이 자리잡고 있으면서 온갖 아양을 다 부리게 되어 있습니다. 전체 국제사회에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천사같이 아이들이 모여있는 학교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위 ‘짱’은 어디에서 있게 마련입니다. 본인이 짱을 되겠다는 경우도 있지만 주변 아이들이 자진해서 그 아이를 짱으로 모시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한 학급의 구조는 졸지에 피라밋형태가 됩니다. 다른 아이들은 그 최고의 아이 밑에 포진해있게 됩니다. 싸움을 잘하든지, 집안이 대단하다든지, 공부를 잘하든지, 언변이 좋은 아이들 주변에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게 마련입니다.

자기에게 없는 요소를 타인이 갖고 있으면 그 덕을 보겠다는 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이것을 누가 감히 나서서 탓하겠습니까. 인간 사회의 보편화된 현상이 됩니다. 가정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인간 세상의 질서는 이런 식으로 조성되게 됩니다. 직장이나 군대, 병원, 공직, 국가 대 국가, 스포츠 세계나 그 어느 곳이라도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자기보다 더 많은 힘을 가진 자 곁으로 다가와 그 덕을 보려고 하기 마련입니다.

강대국이 등장했다는 것은 약소국가가 처신할 경우는 뻔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당대의 최고 제국인 앗수르가 처참하게 망하게 된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의지했던 강자가 망하면 곧장 말을 갈아타기에 급급합니다. 오늘 본문을 두고서도 사람들은 자기 구원과 직접 상관없다고 여기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취지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속에서는 ‘나만이 구원받으면 됐지’라는 생각이 얼마나 하나님의 취지가 다른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개인 구원 챙기기’라는 시도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전반적인 하나님의 뜻에 포함되면서 구원됩니다. 그 뜻에 의해서 앗수르는 망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노골적으로 앗수르는 왜 망합니까? 더 나아가서, 왜 하나님께서는 망해야 할 나라를 이 땅에 구태여 등장되게 하시는 겁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앗수르는 교만해서 망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가 교만하지 아니하면 안될 조건은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것입니다. 그 모든 인간도 일단 자신이 만족해하는 상황이 되다가 그것이 졸지에 상실하면 불만을 갖게 마련입니다. 얼굴이 예쁜 처녀가 갑자기 화상을 입게 되면 인생을 끝내려고 할 것입니다. 화상입은 그 얼굴도 은혜라고 여기지 않는 한 그것은 교만이 됩니다.

사이좋던 부부사이가 불화로 갈라서게 되면 서로를 향하여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모습도 교만에 해당됩니다. 누구나 교만할 수 밖에 없는 요인을 품고 있기에 너나 할 것없이 그 당시 최고의 강대국인 앗수르를 부러워하면서 그 그늘 밑으로 들어오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망하게 하시는 겁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조건’을 만드신 분이 아니라 ‘세상의 조건’을 만드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앗수르 주변에 모여든 나라들과 더불어 앗수르가 지하 세계로 앞장 서서 이끌게 됩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음부’ 곧 지옥을 이 현실 세상에서부터 만들어 나가시려는 겁니다.

특정 인간이 누구냐가 아니라 아예 세상 전체를 하나의 방으로 만들어서 통째로 지옥으로 변모시키려는 겁니다. 방이란 폐쇄된 공간입니다. 밖으로 나갈 마음이 전혀 생겨나지 않는 영역입니다. 사나 죽으나 그 안에서 꼬물거리게 합니다. 앗수르가 경계선을 만들고 그 제국의 품 속에서 많은 나라들이 앗수르의 가진 힘을 부러워하고 선망하면 그들만의 세계를 형성합니다. 그곳이 곧 지옥이라고 불리워지는 겁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지옥이라는 방을 만드시고 또 다른 방을 만드십니다. 그것은 바로 천국입니다. 예레미야 50:18-19에 보면, “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앗수르 왕을 벌한 것 같이 바벨론 왕과 그 땅을 벌하고 이스라엘을 다시 그 목장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가 갈멜과 바산에서 먹을 것이며 그 마음이 에브라임과 길르앗 산에서 만족하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을 앗수르 제국이나 바벨론 제국과는 달리 다루시겠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이방민족과는 달리 음부, 곧 지옥이 어떤 조건 하에서 갈 수 밖에 없는가를 압니다. 시편 9:17에 보면,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 하리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악인은 지옥에 갑니다. 이 원칙이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이방민족에게 다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다음과 같은 언약적 원칙이 적용합니다. 시편 16:10에 보면,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원래 애굽 안에 숨겨져 있는 나라였습니다. 언약의 개입이 있어야만 그 숨은 나라가 구체화됩니다. 출애굽을 시도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는 전체 할례를 행하게 하셨습니다. 할례란 혈육을 끊는 의식입니다. 인간의 육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을 차단시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인간대 인간의 관계는 끊어지고 만다면 그 끊어진 자리에 무엇으로 조인트 될까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문설주를 ‘어린양의 피’를 바를 것을 지시하십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과의 관계는 끊어져도 하나님이 제시한 약속, 즉 어린양의 피로 인하여 새롭게 구성되게 됩니다.

그 어린양은 죽기 전에 이미 가족품에서 1년 간 더불어 살던 양입니다. 이 어린양의 죽음은 곧 하나님께서 유발하신 최종적 죽음에 이스라엘이 이미 가담된 형국을 만들어주시는 겁니다. 심판과 죽음의 사자를 어린양이 먼저 마중을 합니다. 자신의 죽음으로만 맞이하게 됩니다.

이로서 하나님께서는 천국이라는 방을 ‘어린양’ 중심으로 만들어 내십니다. 세상에서는 힘의 제국이 대표하지만 천국에서는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대표합니다. 이로서 하나님께서 개인의 조건을 제시하시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세상의 조건을 직접 만드십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개인 윤리가 소속으로 구원이 판정됨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근호

14-04-10 17:47

86강-에스겔 31장 10절-14절(음부로 가는 길)140409-이 근호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겔 31장 10절-14절입니다. 구약성경 1199페이지입니다.

에스겔 31:10-14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의 키가 높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아서 높이 빼어났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은즉 내가 열국의 능한 자의 손에 붙일찌라 그가 임의로 대접할 것은 내가 그의 악을 인하여 쫓아내었음이라 열국의 강포한 다른 민족이 그를 찍어 버렸으므로 그 가는 가지가 산과 모든 골짜기에 떨어졌고 그 굵은 가지가 그 땅 모든 물가에 꺾어졌으며 세상 모든 백성이 그를 버리고 그 그늘 아래서 떠나매 공중의 모든 새가 그 넘어진 나무에 거하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지에 있으리니 이는 물가에 있는 모든 나무로 키가 높다고 교만치 못하게 하며 그 꼭대기로 구름에 닿지 못하게 하며 또 물 대임을 받는 능한 자로 스스로 높아 서지 못하게 함이니 그들을 다 죽는데 붙여서 인생 중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로 내려가게 하였음이니라.”

방금 읽은 것은 나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식물원 이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보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에요. 이것은 앗수르라는 대 제국, 큰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나라가 하나 등장했을 때 모든 주변 작은 나라들은 큰 나라 쳐다보면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정신, 혼도 그 나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어요. 사람이라 하는 것은 큰 게 있고 자기보다 잘난 것이 있으면 정신을 거기에 다 빼앗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부러운 겁니다.

그런데 그 나라가 아주 번창했던 것이 사실인데 그 나라가 졸지에 말라비틀어지고 완전히 망해버린다는 거예요. 앗수르가 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본문 보면서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망해버릴 수밖에 없는 나라를 왜 이 땅에 등장하게 하셨는가 하는 그 문제입니다. 예수 안 믿으면 멸망한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흔히들 그렇게 이야기하잖아요. 그러면 생각을 좀 바닥으로 내려가서 해 봅시다. 예수 안 믿어서 망할 수밖에 없는 그 사람을 하나님이 왜 만드셨는가, 하는 그 문제를 생각해 봐야 돼요.

누가 망한다니까 우리는 갑자기 고소해 하면서 “망해라. 나만 안 망하면 되지.”라고 생각했을 때, 그쪽이야 어찌되든 나만 구원받으면 되지, 이렇게 되어버리면 그것은 성경에서 어느 나라가 망한다고 꼭 지적해서 기록한 그 취지가 살지를 않잖아요. 성경전체에서 앗수르가 망합니다. 예레미야 50장 18절 같은 경우에는 “내가 앗수르 왕을 벌한 것 같이 바벨론 왕과 그 땅을 벌하고 이스라엘을 다시 그 목장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렇게 되어 있어요. 예레미야 50장 18절에 앗수르 왕을 벌하고 바벨론 왕과 그 땅을 벌하고 이스라엘은 다시 목장으로 돌아오고, 라고 그렇게 기록한 그 취지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 취지가 있을 때, 첫 번째로 앗수르 왕 벌하지요, 두 번째로 바벨론 왕을 벌하지요, 세 번째 이스라엘은 다시 목장으로 돌아오게 하지요. 여기 등장하는 나라가 세 나라입니다. 앗수르, 바벨론, 이스라엘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분명히 순서대로 앗수르, 바벨론, 이스라엘, 했는데 사람들은 그 망했다는 것은 관심도 없고 제일 끄트머리에 있는 것, 이스라엘은 돌아온다는 그것만 달랑 빼가지고 “나는 이스라엘이니 구원받는다.” 해버리면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앗수르나 바벨론을 벌하고 멸망시켰다는 그 취지를 모르게 되잖아요.

하나님의 뜻도 모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 그것은 앞뒤가 안 맞고 말이 안 되지요. 다시 말씀드립니다. 앗수르가 망합니다. 망할 때 우리는 안 망하는 나라기에 우리한테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라고 하면 안 된다는 말이에요. 망할 때 그 망하는 이유를 알아야 돼요. 아까 읽은 예레미야 50장 18절에서는 앗수르 왕을 벌한다는데 이것은 때린다는 것이거든요. 벌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런 경우에는 내가 벌준다고 나왔다면 어떤 경우에 벌을 받았습니까, 라고 같이 관심을 가져 줘야 됩니다.

‘나는 이스라엘이니 관계가 없지.’ 이렇게 되면 안돼요. 그러면 오늘 본문에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 오늘 본문 에스겔 31장 10절에 보면 “그의 키가 높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아서 높이 빼어났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은즉 내가 열국의 능한 자의 손에 붙일찌라.” 이렇게 망하게 한다 그 말이지요. 앗수르가 잘 살아서 그 잘사는 모양새가 마치 너무 큰 나무가 하늘까지 닿을 정도로 잘 사는 나라라고 하나님께서 표현을 했다는 말이지요. 잘 살게 한 그 분이 누구시냐 그 말입니다. 잘 살게 한 분이 하나님이시잖아요. 앗수르를 못살게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본인이 잘 살게 해놓고 잘 살았다고 네가 교만했다고 해버리면, 그러면 어떻게 하라고?

도대체 하나님의 뜻이 뭡니까? 잘 사는 것도 죄에요? 잘 사는 것도 문제가 된다 그 말이지요. 잘 살아도 교만 안하면 되잖아, 라는 것은 인간에게 터무니없는 억지를 요구하는 겁니다. 사람이 한 번 잘 살게 되면……, 처음부터 사람이 못살게 되면 늘 못산다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사람이 잘 되고 난 뒤에 다시 꼴아 박게 되면 마음이 섭섭하다는 것은 인간인 이상 안 섭섭할 사람이 없습니다. ‘인생이란 원래 바닥이야. 원래 바닥으로 내려가야 당연하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미인이 있는데 주변에서 영화배우 하라고 하고 미스코리아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불이 나서 화상을 입고 얼굴이 선풍기 얼굴이 되었다고 한다면 거울 보면서 ‘원래 이 모습이야.’ 하면서 자기 모습 찾았다고 좋아할 아가씨는 없습니다. 자살 안하면 천만 다행이에요. “내 얼굴이 왜 이래?” 이것이 당연하거든요. 부부가 잘 살다가 이혼하게 되었을 때 ‘그래, 이혼하길 잘했어.’ 이러지 않습니다. “네가 뭔데 내 인생 망치느냐?” 이렇게 나오지. 지금 앗수르 나라를 하나님께서 높여줬거든요. 이거 모르면 우리가 하나님, 하나님,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게 뭐가 있어요? 에스겔 31장의 취지도 모르면서.

하나님을 알고 믿습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인데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를 보자는 겁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받지? 자꾸 구원받을 생각하지 말고 영원히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사실 분이 하나님이니까 하나님에 대해서 속속 다 알아야 돼요. 그래야 같이 살지요. 이 땅에서 자기만 챙기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구원받아서 천국 가서 또 자기만 챙기려고요? 그런 사람은 천국 못갑니다. 주님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돼요. 주님께서 앗수르를 높여줬다. 높여 줬는데 교만했다. 그래서 망하게 했다. 그 벌한 이유는 뭐냐, 교만했다는 것.

그러면 교만 안하도록 조치를 해 줬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쉽게 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하고 가는데 무화과나무가 있었어요. 마침 예수님이 시장하셔서 무화과 열매를 따 먹으려고 했는데 아직 제철이 아니라 무화과 열매가 익지를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요구에 무화과나무가 제대로 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해버렸어요. 제자들은 그것을 믿지 못하다가 나중에 돌아와서 보니 진짜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었습니다.

놀랜 것은 무화과나무가 아니고 제자들이 놀랬어요. 저 무화과나무가 만약에 나라면 무화과 나무는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런 저주의 벌을 받는가? 열매 딸 철이 되었는데 게을러서 열매를 못 맺었다면 벌을 받을 짓을 했다고 인정이 되겠는데 아직 열매를 맺을 철이 안 되었기 때문에 열매가 없는데 단지 열매가 없다는 그 이유 때문에 무화과나무를 원천적으로 저주해버리면, 그래서 두 번 다시 열매를 맺을 기회 자체를 박탈시킨다면, 도대체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억지도 그런 억지가 없잖아요.

우리가 성경에 대해서 알고, 주님에 대해서 알고, 하나님에 대해서 안다고 자부했지만 막상 성경 속에 들어가 보니까 도대체 우리가 안다는 것이 없다 할 정도로 전혀 하나님에 대해서는, 하나님이라는 분이 누군지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난해하고 이해 못할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나만 구원받으면 그만이지 뭐.’ 이렇게 해서 부닥친 현실을 외면한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에요. 힌트가 있습니다. 힌트가 뭐냐 하면, 14절 끝에 나옵니다. “이는 물가에 있는 모든 나무로 키가 높다고 교만치 못하게 하며 그 꼭대기로 구름에 닿지 못하게 하며 또 물 대임을 받는 능한 자로 스스로 높아 서지 못하게 함이니 그들을 다 죽는데 붙여서 인생 중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로 내려가게 하였음이니라.” 여기 보면 지하로 내려간다는 겁니다, 지하로.

이게 힌트가 되는데요. 앗수르로 하여금 지하로 내려가게 한다는 겁니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부강했던 그 나라가 한순간에 ‘어디 갔지?’ 할 정도로 다 날아가 버리고 결국 그들의 본색, 진짜 본 모습, 본질로 돌아가는데 그게 뭐냐, 성경에서는 음부라고 하는데 지옥, 부자가 간 그 지옥, 지옥에 가게 된 거예요. 그런데 그 지옥에 가는 대상을 앗수르로 잡은 이유가 있어요. 자 이제부터는 찬찬히 말씀 드릴게요. 지금 에스겔 31장에서 앗수르라 하는 것이 나무가 굉장히 크면서 주변에 있는 모든 약소국가들이 큰 나라 우산 밑으로 기어 들어오는 거예요.

본래 잘사는 친척 하나 있으면 주변의 사돈의 팔촌까지 그 품으로 다 기어들어오는 것처럼. 앗수르가 하나의 나라가 아니에요. 앗수르는 어떤 나라인가, 인간들이 그리워하고 소망하고 기대했던, 가장 함께 살되 최고로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세계상, 현실상을 앗수르가 잠시 잠간이나마 맛을 보여준 겁니다. 내가 잘될 필요는 없어요. 우리 친척 하나 잘되면 거기 다 기어 붙어서 살게 되는 겁니다. 인간이생각하는 것은 ‘내가 도대체 누구에게 기어 붙어서 살까, 그럴만한 사람이 누구일까?’를 찾는 작업이 어떤 의미에서 인생사는 하나의 요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친구나 친척 가운데서 내가 기어 붙을 수 있고 여분의 재산이 있는, 게다가 마음까지 인자하기 짝이 없는, 나의 도움을 매몰차게 거절하지 않는 부처 같은 성품, 그런 사람을 찾기 위해서 나부터 잘 보여야 된다는 것이 사람 살아가는 요령이라는 말이지요.

이것은 하나님까지 거론 안 해도 누구나 압니다. 사람이 열 사람 모이면 그 중 하나는 반드시 된 사람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남들 보기에는 고만고만하다고 해도 자기들끼리 보면 반드시 크게 된 사람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끝나고 중학교 가면 반드시 반에 주먹자랑하는 애들이 있어요. 그 반은 담임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그 애 중심으로 돌아가요. 반드시 피라미드 형식으로 된다고요. 반드시 주먹 세고 아니면 공부를 잘하든지 아니면 아버지가 돈이 많든지, 그리고 신기한 외제품이 많든지, 자진해서 친구가 되고 싶은 대상들이 있어요. 그걸 중심으로 피라미드처럼, 하나의 우선처럼 형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방(chamber)이라고 합니다. 아빠 방, 엄마 방, 노래방 할 때의 그 방.

이것은 하나의 방을 구성하는 거예요. 어렵기 때문에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조건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하면 구원받습니까, 라는 질문자체가 성립이 안돼요.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의 조건이 아니고 방, 세상의 조건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걸 몰라요. 교회 수십 년을 다녀도. 하나님은 세상을 만들려고 했어요. 어떤 세상, 지옥을 어떤 식으로 만들어 내는 가, 입니다. 풍선을 입으로 불면 풍선이 부풀면서 굉장히 아름다워요. 그렇게 아름다운데 거기에 바늘로 꼭 찍으면 빵, 하고 터지면서 풍선이 망하지요. 풍선이 찢어지면서 나중에는 고무껍데기뭉치로 꼴 보기 싫게 되지요.

하나님께서는 “네가 이런 조건이라면 구원해 줄게.”가 아니라 천국은 어떤 조건으로 이루어지며 지옥이라는 세상은 어떤 조건으로 이루어지는가를 보는 겁니다. 그걸 천국, 지옥으로 언급을 했는데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천국이라는 방, 지옥이라는 방을 생각해 보세요. 방이라는 것은 문이 있을 뿐이고 문만 닫으면 그 자체가 폐쇄적 공간입니다. 갇혀 있는 공간이고 사

람들은 문밖으로 나갈 생각을 안 해요. 방 안에서 다 조달되게 되어 있어요. 어떻게? 그 방안에 있는 사람가운데 가장 유력한 자가 누구며 가장 돈 많은 자가 누구며 가장 친절한 자가 누구며 어진 사람이 누구며 내가 기대고 의지하고 매달릴 수 있는 대상자가 누구인지를 그 방안에서 자체조달하면서 한평생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에요. 이게 세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달랑 두 개 만들었어요. 하나는 지옥이라는 세상, 또 하나는 천국이라는 세상. 오늘 본문 14절 끝에서 앗수르가 풍선처럼 부풀었을 때 사람들은 그 나무를 큰 나무라고 여기고 거기에 온갖 새들과 짐승들이 다 모여들었어요. 6절에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 거하였었느니라.” 이것이 에스겔 31장 6절의 예언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주님의 계시를 모르고 ‘나’라는 개인이 대한민국에 사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든지 대한민국에 나 개인이 산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대한민국과 나 사이에 있는 작은 방이고 이 세상을 지구가 전부라고 본다면 지구 안에서의 모든 세상은, 미국이나 혹은 러시아 같은 아주 큰 나라에 다른 나라들이 기어 붙어서 그 큰 나라 쳐다보면서 부러워하면서 존경하면서 살게 되어 있어요. 이 세상 전체가 최종적으로 잘 사는 나라, 제국에 기어 붙어있는 그 모양새는……, 옛날 조선시대의 경우에 과거급제를 한다든지 혹은 어떤 아가씨의 경우에 임금님의 총애를 받는다면 왕후가 될 수도 있어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학급에서도 한 30명이 있으면 그 중에서도 대장질을 하는 애가 있듯이 세상의 모든 살아가는 구조와 형태가 같은 양식이 부풀어지는 거예요. 공자도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세 사람이 가면 그 중에 하나는 대장이라고 했어요. 내가 못 가진 것을 상대방이 가지면 나는 상대방에 의지해서 상대방에게 기어 붙음으로 말미암아 내게는 없지만 마치 내 것인 양 공유하고 누릴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어린 시절부터 어린이 될 때까지 국가의 어디 혹은 세계 어디를 나가도 똑같은 법 원리와 법칙이 폐쇄적 공간 안에서는 반복해서 찾아지게 되는 겁니다. 그 전체를 뭐라고 하는가, 교만이라고 해요.

앗수르가 교만했으니 벌 받는다, 할 때 우리는 “그러면 우리는 교만 안하면 되지요.” 하는데 교만 안한다는 것이 인간에게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힘 있는 곳을 의지하게 되고 힘 있는 것을 의지함으로써 그 힘이 마치 나의 힘인 양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그것이 인간의 삶의 모습인데 교만이라는 것은 주님의 평가를 두고 이야기 하는 것이거든요. ‘나 교만해야지.’ 이런 인간은 없어요. 그저 우리 친척 가운데 누구한테 손 벌리면 되지, 이게 교만이라는 말이지요. 왜, 유력한 친척들에 붙어서 자기가 자연적으로 높은 자리에 있는데 그 높은 자리에 있다는 자체가 주님 보시기에 교만한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누가복음 12장에 어떤 농부가 곡식이 너무 잘 되었으니까 창고에 가득 넣어놓고 하는 말이 ‘내 영혼아 이제는 걱정하지 말자. 이렇게 농사가 잘 되었으니 평생 먹고 살 수 있다.’ 하고 있을 때 “오늘밤 네 영혼을 데려가면 그것이 다 뉘 것이 되겠느냐?” 한 거예요. “이 어리석은 자여.”라고 되어 있어요. 그걸 보면서 “우리는 부자 되어도 마음을 낮춥시다.”라고 하는데 지금 자꾸 자기 개인구원을 점검하려고 하고 추스르려고 하는데 정말 그러시면 안 됩니다. 우리의 이 육신, 이 몸, 이 모든 것은 이미 음부, 사망의 지하에 내려가기 위해서 주어진 몸입니다. 그래서 이 몸은 죽어줘야 돼요.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기대고 싶은 사람, 오늘 본문에 의하면 깔끔하게 하면 이렇습니다. “그동안 앗수르 부러워 한 사람들 손 들어봐라.” “저요! 저요!” 하나님께서 일부러 앗수르를 부러워하도록 해서 앗수르라는 큰 파라솔 밑에 다 모이게 해서 그걸 묶어서 “드디어 만들어졌다. 지옥이라는 방은!” 지옥이라는 방은 이렇게 만들어진 거예요. 오글오글, 전부 싸우고 뜯고 모함하고 시기하고, 공천하니 마니, 투표를 하니 마니, 그 모든 것을 노끈으로 묶어버리면 그것이 바로 권력을 부러워하고 힘이 부러워서, 그것이 좋아서 모여든 하나의 방이 되는데 그 방이 뭐냐? 그게 음부의 방, 지하로 내려가는 방, 지옥 만들기에 주님께서는 성공을 하신 게 되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목사님, 어떻게 하면 착하게 삽니까?” “착하게 살아서 뭐할 건데요.” “우리 삼촌이 큰 부자가 되었는데 나도 착하게 살면 부자 되지 않겠습니까?” 뭔가 부러워한다는 것은 이미 삼촌이 앗수르가 되어 있고 우리는 미처 앗수르 못되어서 그 앗수르가 되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그 파라솔 밑에 기어들어가 있는 거예요. 주님께서는 잘 기어들어갔다는 거예요. “그래, 그래. 모여라, 모여.” 모여야 지옥이 되거든요. 그게 뭐냐, 하나님이 만든 세상의 조건이에요. 개인의 조건을 말하는 것이고, “너는 이렇게 살면 구원받는다.”는 개인의 조건을 준 것이 아니고 “네가 속한 세상은 이런 세상인데 내가 그런 세상을 만들어내려고 이런 작업을 애초부터 벌여왔다.”는 하나님의 지옥 만드는 조건에 우리가 걸려든 거예요. 말려든 겁니다. 그것 때문에 지금 앗수르 예언을 에스겔 31장에서 하신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취지에 대해서 좀 제대로 압시다. 사적으로 어떻게 착하면 구원받는가, 그런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은 개인이 아닙니다. 개인은 항상 국가에 종속된, 국가를 구성하는 원자에 불과한 거거든요. 요소에 불과하고 하나의 재료에 불과하기에 그 재료하나 들고 어떻게 할까, 그러지 마세요. 네가 속해 있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네가 속해 있는 나라는 어떤 원리와 법칙에 의해서 움직이는 나라인 줄 알아, 그걸 언급하는 거예요. 우리는 거기에 복속되고 소속되어서 빼도 박도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바르게 산다고 해도 사회에 나가보세요. 다 어느새 그 사회의 일부로 이미 편입되어 있어요. 사람이 독야청청 못합니다. 홀로선 소나무 안 됩니다. 소나무도 스모그 때문에 다 말라죽어요.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것은 나 잘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주께서 이 땅에서 만드는 이 지하에 내려갈, 죽어 마땅한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거예요. 그걸 우리 탓으로, 개인 탓으로 돌리지 마세요. 세상 자체가 원래 그런 식으로 한데 어울리고 모이게 되어 있어요. 우리가 발을 뺄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 돌아가는 생리에서 교회 다닌다고 해서 발을 뺄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렇게 만드신 거예요. 개인구원, 그것은 애초부터 생각하는 자체가 잘못입니다. 우리 교회만 구원받는다, 그런 게 없어요. 우리교회도 세상의 일부로 똑같습니다. 주께서 “이 교회는 왜 피아노야? 내가 만돌린을 치라고 했는데 왜 피아노가 있지?” 이러면 우리가 할 말이 없어요. “다른 교회 다 피아노 치던데요?” “왜 다른 교회 이야기를 해? 내가 만돌린 치라고 했잖아.” 주께서는 만돌린 치라고 한 적도 없지만 피아노 치는 것이 옳다 그르다, 를 가리자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가 있어도 마이크가 있어야 그것이 어울려서 하나의 죽을 수밖에 없는 지옥이라는 모양새가 이 땅에서부터 갖춰지고 그렇게 갖춰지도록 주께서 조치를 하신 겁니다.

너나 나나 그 안에서 교만하지 않은 사람은 다 한명도 없다는 거예요. 당할 때야 억울하지요. 본인이 만약에 그 자리에 가 보세요. 누구도 교만할 수밖에 없고 누구도 잘난 체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똑같은 성질, 똑같은 마음가짐을 가졌기 때문에 너 나 할 것 없이 다 같아요. 다만 현재 위치가 너는 높은 자리, 나는 낮은 자리에 있을 뿐이지 내가 자리 바꾸면 나도 내가 욕하는 그 사람하고 똑같이 되어버려요. 그러면 여기서 설교 끝낼까요? 그러면 결론 끝나버렸네요. “다 같이 손잡고 지옥 갑시다.” 마치 실 뭉치처럼, 옛날어머니들이 붉은 실을 가지고 스웨터를 짤 때에 털실뭉치가 있잖아요.

털실뭉치처럼 하나님이 다 뭉쳐서 지옥 보내면 이야기 끝났네. 앗수르 망했으면 그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는 겁니까? 자, 여기서 봅시다. 이 성경을 누구한테 이야기했습니까? 에스겔이 이 예언을 누구한테 했습니까? 예레미야 50장 18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보라 내가 앗수르 왕을 벌한 것 같이 바벨론 왕과 그 땅을 벌하고.” 그 다음에 보면 “이스라엘을 다시 그 목장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이에요. 하나님은 두 개의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는 지옥을 만들었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 아들의 나라, 예수님의 나라, 천국을 만들었어요.

천국, 지옥을 만들기 전에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 뭘 만들었는가? 한쪽은 이스라엘을 만들었고 한쪽은 이스라엘 외의 모든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앗수르, 바벨론, 대한민국, 필리핀, 마찬가지에요. 하나님은 개인의 조건, 인간의 조건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세상의 조건이에요. 지옥은 이럴 때 지옥이고, 지옥이 되는 조건은 이것이고 천국이 되는 조건은 이것이다, 라고 하나님은 두 개의 털실, 두 개의 방을 만들었어요. 이 세상부터 만듭니다. 죽어가 가보면 안다? 죽어서 가보기 전에 만들어요.

죽어서 가 봐서 어느 쪽으로 갈래, 하고 나보고 골라잡으라는 것이 아니고 살아 있을 때부터 하나님께서 일부러 두 개의 방을 만들어요. 이것은 내가 개인적으로 구원받기 위해서 하나를 선택할 문제가 아니고 주님이 알아서 두 개의 방을 만들어요. 하나는, 앗수르는 아까 이야기했습니다. 다시 언급하면 그 안에서 어떤 인간도 교만할 수밖에 없어요. 왜 그런가, 우리는 세상의 힘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주위에서 잘난 사람 기대고 싶고 그 사람 힘을 이용하고 싶고 약간의 뭐라도 얻어먹고 싶은 생각, 그런 생각으로 가득차서 오늘도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그게 생리고 법칙이고 그런 식으로 결국 다 같이 지하로. 통째로 지옥으로 갑니다. 음부로 가지요. 이스라엘은 뭐냐 하면 이런 겁니다. 시편 16편 10절에 보면,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시편 16편 10절에 보면 음부 이야기가 나오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이스라엘한테는 이런 식으로 끝장내지 않겠지요?” 라고 다윗이 기도하고 있는 거예요. 시편 9편 17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 하리로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다 음부에 내려가고 죽은 자로 간다면 천국은 누가 가는가? 이스라엘만 가는 거예요.

그러면 다시 한 번 정리해 봅시다. 성경은 누구를 위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라고 할 때 왜 세상 나라 망하는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세상 나라 망하는 것은 망하도록 하기 위해서 일부러 만들었기에 망하는 거예요. 제 이야기를 들으면 굉장히 간단해요. 좀 이상할 정도로. 앗수르가 잘사는 것은 잘 살다가 없어지면서 교만했다는 벌을 뒤집어 씌워서 그들을 지옥 보내는 겁니다. 그들을 지옥 만드는 조건을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정했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반대로 봅시다. 이스라엘의 조건은 뭐냐, 이스라엘의 조건은 천국 가기 위해서 천국 가는데 필요한 조건들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따로 만들어 내는 거예요. 여기 개인적인 결심과 결단 같은 것은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 받습니까, 하는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개인적인 구원 조건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두 개의 풍선을 만드신 거예요.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말이지요. 출발을 내가 어떻게 해서 천당 가는가, 하지 마시고 출발을 내 쪽에서 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어떤 식으로 만드심을 알면 이미 그 사람은 이스라엘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피로 만들었다.” 어디 나오는가? 출애굽기에 나옵니다. 애굽에 있을 그 때까지는 애굽 나라밖에 없었습니다. 애굽나라에서 이스라엘을 마치 여자가 임신하듯이 해놓고 끄집어냅니다. 끄집어내는데 어떻게 만드는가 하면 이스라엘 집 문설주에는 반드시어린양의 피를 발라요. 피를 바른다는 것은 피를 바르기 전에 그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해야 할 조건이 뭐냐 하면, 할례를 해야 됩니다. 할례를 행함으로 말미암아 나라는 육신은 부모로부터 저주받은 것이 아니고 할례를 행하라는 하나님의 약속에 준해서, 약속에 입각한, 약속이 덮치는 나라로서, 이제는 할례를 행한 나라로서 그들은 만들어지는 겁니다.

할례를 행했다는 것, 다른 민족에는 할례가 없어요. 그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것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내려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할례를 행함으로 말미암아 조상으로부터의 관계가 끊어지고 끊어진 자리에서 어린양의 피가 그 안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을 연결시켜주는 겁니다. 그러면 사실 이스라엘 사람도 육체기 때문에 죽어야 돼요. 죽어야 되기에 그 하나님에 의해서 죽어 마땅함을 기정사실로 여기면서 거기에 죽은 자를 향하여, 음부에 안 갔지만 이미 음부에 갔다고 자부하고 거기에 어린양의 희생의 피가 묻히게 되면 음부에 있는 자라도 어린양의 피의 약속에 의해서 음부에서 살아나는 그들이 이스라엘이라는 겁니다.

그게 바로 아까 봤던 16편 10절에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한 거예요. 그러면 “목사님, 이스라엘이 뭘 잘났다고 그런 혜택을 받습니까?”라고 할 것인데 이스라엘이 뭐가 잘난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사람이 있어요. 앗수르가 망하는 것은 앗수르의 힘을 의지하기 위해서 기어 붙었던 수많은 사람의 대표자가 앗수르에요. 학급에서 오야붕, 제일 주먹 센 애는 그 학급을 대표하는 거예요. 이 세상의 대표자가 앗수르요 바벨론이요 이방나라입니다. 할례도 없고 하나님의 약속도 없어요.

그런데 이스라엘 대표자는 모세도 아니고 노아도 아니에요. 이스라엘의 대표자는 누구냐 하면, 장차오실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음부에, 십자가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진짜 천국의 구성은 이 예수님이 대표자가 되고 그 예수님 파라솔 밑에 기어들어오게 된 사람들만이 천국이 만들어진 조건이 되는 거예요. 여기서 다시 한 번 제가 걱정이 되어서 이야기하지만 개인적인 행위나 윤리 도덕을 내세우지 마세요. “목사님, 제가 이렇게 착하면 구원받습니까?” 제발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교회 와서 복음 속에서 그런 소리 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살아난 그 덕으로,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지옥가지 않고 천국가게 되었습니다, 를 증거 하는 사람, 이게 신약에 나타난 참 이스라엘, 진짜 이스라엘……, 참기름도 그냥 참기름이 아니고 참, 참, 참기름이 있잖아요. 진짜 이스라엘, 진짜 천국은 이 조건이에요. 우리에게 개인조건을 묻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피 조건만으로 우리가 용서를 받아서 흠 없는 천국에 가서 드디어 지옥에 머물러 있지 않고 구원받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만든 두 개의 털실뭉치, 두 개의 방입니다. 하나는 지옥이라는 방, 다른 하나는 천국이라는 방, 그 두 개의 방이 어떻게 다른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함으로써 부활에 참여된 자가 따로 있음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 에스겔의 앗수르가 망하는 이야기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개인조건으로 구원받고자 시도했지만 막상 말씀 속에 들어가 보니 출발이 나한테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해서 예수님 앞장 세워서, 예수님 믿고 증거 하게 될 때 이미 구원받은 천국 백성인 것을 깨닫게 되었사오니 우리가 세상을 다시 보고 세상에 증거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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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30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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