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강-YouTube강의(정지된 세계)140403-이 근호 목사
69강-YouTube강의(정지된 세계)140403-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2.222)
69강-YouTube강의(정지된 세계)140403-이 근호 목사
69강 제목은 ‘정지된 세계’입니다. 세상이 아주 바빠요. 분주하고 정신없이 돌아가죠. 정지됐다고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처럼 그렇게 들릴 것입니다. 제가 말한 정지됐다는 것은 기준이 정지됐다, 입니다. 예를 들면 지리산에서 곰 한 마리 잡았는데 곰을 부대에 담았는데 곰은 발버둥 치죠. 곰이 발짓 손짓하게 되면 그 부대가 울퉁불퉁 튀어나오고 곰은 답답해하죠.
그럴 때 우리는 그 곰이 나중에 힘이 빠져서 곰이 아무 활동도 못하든지 아니면 몸이 부대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든지 관계없이 그 곰은 여전히 곰입니다. 곰이 사자가 되거나 코끼리가 되지는 않죠.
성경을 해석하고 의미하는데 있어서 인간이 아무리 몸부림치고 세상이 변해도 하나님께서 곰을 잡는 부대처럼 사용된 게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언약이라는 겁니다. 옛날 언약과 새로운 언약을 합해서 성경이라고 하는 거예요. 옛날 언약은 구약, 새로운 언약을 신약이라 하고, 이 두 개를 합해서 성경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계시가 나름대로의 본질을 보여준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계시가 중요 점을 보여주는데 어떤 점을 보여주느냐 하면 옛날에는 완성을 내다보는 그러한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약속 형식을 주셨어요. 그 자체가 완성이 아니라는 겁니다. 완성을 내다보면서 주었던 것을 구약, 옛 언약이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뭐냐 하면 그 제시된 언약이 완성 체를 보일 때 그걸 신약이라 합니다. 새 언약이라고 이렇게 합니다. 그 구약과 신약이 형식적으로서는 어떻게 출발하고 어떻게 완성을 보느냐, 그것은 인간의 아이디어에는 개입할 수 없습니다.
왜 개입할 수 없느냐 하면 인간이 언약을 볼 때 자기는 살아있는 채로 보거든요. 살아있는 채로 언약을 보고 약속을 보게 되면 자기가 지키려고 시도를 하게 돼요. 그러면 지킨다는 말은 내가 일단 살아있고 살아있는 내가 더 살기 위해서 언약을 지킨 셈이 되는데, 그 자체가 언약 세계에 끼어들지 못하는 이유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약 속에 어떻게 끼어드느냐 하면 그게 바로 새 언약인데요. “내 살과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살과 피로 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죽어야만 가능했던 일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구약과 만나면서 완성을 이룬 겁니다.
그렇다면 성경 전체는 모든 자연세계와 더불어서 모든 인간이 지리산 곰처럼 한 부대에 담겼다고 보게 되면 그 담아놓는 그 고정성, 확정성은 곧 우리들보고 ‘꼼짝 마라.’가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죽음이 그 부대가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모든 활동과 모든 움직임은 아무리 활동하고 움직이고 변한다 할지라도 해와 달이 뜨고 지고해도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 되고 장치가 되는 거예요. 예수님의 죽으심!
그럼 우리가 활동할 때 자기를 죽었다고 보지 않거든요. 활동하는 자체가 분명히 살아 있잖아요. 온 몸의 세포가 살아있고. 살아있다는 그 자체는 미완성이고 살아있는 이 삶의 가장 완성된 삶이 뭐냐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 안에서 함께 죽는 그것이 진정한 살아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이런 해석이 얼마나 어렵고 난해한 해석입니까?
살아있는 내가 이 산채로 어떻게 좋은 나라 천국 갈 수 있습니까? 이러면 굉장히 쉬운데 그게 아니고 ‘살아있습니까?’ ‘예, 살아있습니다.’ ‘그러면 천국 못 갑니다. 새 언약에 못 갑니다. 하늘나라 못 들어갑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죽어야 됩니다.’ ‘그럼 자살할까요?’ ‘자살한다고 못 들어갑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야 갑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신약의 새 언약입니다.
예를 들면 교회 처음 와서 ‘하나님, 애가 지금 고 3입니다. 지금 남편이 막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둘째 애는 몸이 아픕니다.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여, 제가 열심히 간절히 금식하며 기도할 테니까 어서 하나님 살아계심을 나타내 보이시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서 우리 애가 병이 낫고 사업도 잘 되고 애 공부도 잘 하게 하옵소서.’라고 그렇게 기도하려고 교회 등록하고 하는 그 사람에게 ‘죽으세요.’라고 언급한다면 ‘그 죽는 게 하나님의 언약의 완성이다.’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렇게 반발할 거예요. ‘나는 이 교회 올 때 하나님의 언약 완성하려고 온 것이 아니고 내가 갖고 있는 소박한 내 꿈을 하나님께 응답 받기 위해서 그걸 마무리 짓기 위해서 왔는데, 왜 제 모든 소망을 일괄에 다 제쳐버리고 주님의 자기 욕심만, 목적만 내세워버리면 우리가 어떤 식으로 주님을 믿을 수가 있어요? 못 믿죠.’라고 반발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는 게 우리의 마음이다 말이죠.
왜 하나님은 하나님의 생각만 하시고 우리 생각도 해주셔야죠. 이렇게 힘들게 살고 고생하는 게 주의 뜻입니까? 너무 힘듭니다. 우리의 한 맺힘을 풀어주셔야죠.‘라고 나올 때 주님께서는 ’나의 목적은 내 언약을 완성하는 것인데 그 언약 완성은 네가 나와 함께 죽는 것이다. 네가 죽게 되게 되면 네 자식에 대한 어떤 기대, 남편에 대한 기대, 몸 건강, 그것도 한꺼번에 죽는 순간 그것도 의미 없이 다 날라 가 버리는 거예요.
하나님의 언약과 성경 말씀은 이처럼 우리가 나름대로의 이건 정말 순수한 것이고 이건 얼마나 착한 것이고 이건 욕심 없는 마음이고 이건 깨끗한 마음이고 정갈한 신앙심이고 순수하고 경건한 마음이라고 내세우는 모든 것도 그 배경에는 내가 살아있고 더 살아야 되겠다는 그런 욕구가 출렁이고 작용하고 있는 거예요.
주께서 우리를 담아둔 부대는 생각하지 않고 그 부대 속에서 사는 게 이 세상사는 게 너무 답답하고 갑갑하고 힘들다는 거예요. 힘드니까 주님께서 숨통 좀 트이게 해달라고 교회 등록해서 기도하고 예배 참석하고 헌금하고 전도하고 시키는 대로 다 하면서 어떻게 사는데 숨이라고 쉬자는 마음으로, 내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조금이라도 해결되어서 사람 사는 맛이 나도록, 그리고 하나님께 예쁨 받아서 귀여움 받아서 죽어서도 천국에 합류할 수 있도록 그러한 소망, 굉장히 소박한 소망마저 주님께서는 일체 거부하십니다.
그것은 언약의 재료도 아니고 준비된 언약도 아니고 준비된 언약은 옛날 언약이고, 주께서 목적은 새 언약뿐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거북스러운 이야긴지를 알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이런 것에서 벗어나서 사람을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른 이야기해서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없는 겁니다.
그러면 성경에서는 왜 이런 것이 잘못 되었는가? 제가 성경 한 대목 읽어보면서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시편 17편 14절에 보면 “여호와여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 사람에게서 나를 주의 손으로 구하소서 그는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 아이들에게 유전하는 자니이다” 그 14절 뒤 대목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14절은 “주님이여 저를 이런, 이런 세상에서, 이 바닥에서 구출하여 주옵소서.”라고 하면서 그 바닥이 어떻게 더러운 바닥인지 더러운 예를 드는데 이렇게 합니다.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 아이들에게 유전하는 자니이다” 그 남은 사업을, 유산을 어린아이에게 상속하는 자니이다.
아니 자식으로 만족하는 것이 자식 낳은 보람 아닙니까? 가정주부가 애 낳고 난 뒤에 남편이든 심지어 본인마저도 아낌없이 희생할 대상이 있다면 그건 오직 자식을 위해서 다 내놓는 것이 이게 어미의 순결한 사랑 아니에요?
그런데 성경은 그것을, 그런 세계에서 어서 구출해달라는 거예요. 왜, 그것이 바로 죄가 된다는 겁니다. 이게 악한 것이 된다는 겁니다. 15절에 보면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14절은 이래서는 안 된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대표하는 건데 어린자녀에게 남은 재산을, 유산을 상속해 준다는 거예요.
이들은 결국은 14절에 나오는 말씀이 뭐가 문제냐 하면 자기가 자기로 인하여, 자기가 낳은 자식을 위하여, 그 가정, 나는 나로 인하여 만족하겠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를 위해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특징이고 유난히 하나님의 성신을 받아서 신앙을 선물로 받고 언약을 받아서 된 사람이라면 아! 이런 나밖에 모르는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주님의 구원의 취지구나. 라는 것을 비로소 아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냉혹해요. 우리가 흔히 태어났기 때문에 이대로 사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도 인정할 것이다. 편하게, 편하게 사는 것. 편하게 사는 것에서부터 우리는 그 자체가 문제가 있고 진실로 구원된 사람은 그 편하게 사는 것이 악하고 죄악 되다는 사실을 비로소 건짐 받고 난 뒤에 돌아보면서 깨닫게 되는 거예요.
이 세상의 재물과 자식과 유산, 그것을 만족하지 말고 주님의 형상으로 만족하라. 이것이 아주 냉혹하지만 진실된 주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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