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강-YouTube강의(확장된 현실)140403-이 근호 목사
68강-YouTube강의(확장된 현실)140403-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2.222)
68강-YouTube강의(확장된 현실)140403-이 근호 목사
이번에는 제 68강 제목은 현실의 확장입니다. 보통 현실 속에 살면서 현실이란 말을 안 하죠. 현실이란 말을 언제 하느냐 하면 꿈일지? 꿈 이야기가 나왔을 때 꿈속에서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할 때 그때 현실이란 말을 씁니다.
현실에 어울릴 수 없는 내용, 현실에서 반복될 수 없는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되지 않을 때 그때 현실이란 개념 자체가 뚜렷하게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이 현실이라 하는 것은 현실이 아닌 요소, 꿈이 등장하면서 그것과 비교하면서 아! 이건 꿈이고 이건 현실이다. 그렇게 구분합니다. 사람이 현실에 분명히 규정을 하고 살아가고자 하는 것은 현실만이 진짜 현실이고 그 외는 없다. 라는 평소의 소신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성경을 막상 들춰보게 되면 우리가 사는 이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가 성경에 나올 때 이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현실 가지고 해석이 불가능하잖아요.
성경 내용이 진리라고 우리가 알고 있는데 그 성경 내용을 우리가 사는 현실 속에서만 통용되는 원칙가지고 설명을 할 때에 이게 만약에 설명이 안 된다면 그 성경 진리 대목은 옆으로 치워놓는 셈이 되고 진리에서 빠져있는 그런 경우가 돼 버립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예수님하고 그 당시 바리새인하고 대화 가운데 이런 게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56절에 보면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다시 한 번 읽어보면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예수님 자신의 때 보기를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라고 예수님이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발언을 듣고 그 당시의 유대인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그것에 동감할 수가 없겠죠. 같이 동감할 수가 없겠죠. 같은 체험이 안 되니까. 지금 꿈속에서 하는 것 이야기인지. 우리가 아는 상식에 의하면 예수님은 아브라함 때보다 2천 년 후의 분이고 아브라함은 예수님보다 2천 년 전의 사람이니까 우리네 알고 있는 상식에 의하면.
그런데 예수님께서 인간들이 그런 식으로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뻔히 아시고, 그런 환경에서 그런 배경을 깔고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아브라함과 예수님이 서로 만나서 봤다는 이야기를 툭 던져버립니다. 그러니까 57절에서 유대인이, 우리라도 이야기하겠는데 이렇게 합니다. “네가 아직 오십이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라고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처해 있는 현실성을 예수님의 질문에 부응해서 답변 형식으로 우리는 이런 현실 속에서 살아갑니다. 라는 것을 불쑥 내세우고 말았어요.
즉 유대인이 살고 있는 현실 속에는 2천 년 전의 인사와 지금의 인사가 같이 만나는 그런 법은 없는 그런 현실관을 그들은 고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58절에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다고 이야기했어요. 이것이 예수님의 현실관에 부합되는 말씀을 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화가 난 저들이 돌을 쳐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을 때 예수님은 숨어서 성전에서 나가신다고 돼 있어요.
흔히 교회 가는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했습니다. 믿는다는 말은 예수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이야기거든요. 알아들었으면 설명이 돼야 됩니다. 어떤 설명이 돼야 되느냐 하면 방금 봤던 요한복음 8장 56절, 57절, 58절, 59절에 있는 말씀이 그 당시 유대인들은 납득이 되지 못하고 설명 되지 못한 것을 오늘날 예수 믿는 우리는 설명이 돼야 되겠죠.
이 말은 뭐냐 하면 바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 현실관으로서는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가 포착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고 그 말은 더 나아가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한테는 세상 사람들이 포착되지 않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한테는 이게 포착이 된다는 이야기거든요.
그렇다면 결국 세상 사람들의 현실과 성도의 아는 현실과 이 두 개의 현실이 서로 다르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 현실에 부합되지 않는 것을 꿈이라고 이야기하고 꿈은 깨어나야 되고 빨리 벗어나야 되고 꿈에서 벗어나서 현실로 돌아와야 되고 현실에서는 꿈같은 이야기는 용납이 되지 않는다. 분명히 그러한 뚜렷한 경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고자 하는 그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발언들은 그 기초가 사람들이 구축하고 있는 현실관에서 파악이 안 되는 그런 말씀을 했을 때 과연 믿는다는 것이 제대로 믿는 것이 맞느냐,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됩니다.
단순히 이것이 아브라함의 개인의 생각, 아브라함과 예수님의 그 한 가지 예 같으면 이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가 있어요. 하지만 에베소서 1장 3절과 4절에 보면 아브라함 정도가 아닙니다. 더 나아갑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절에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라고 돼 있습니다.
여기 “창세전에”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성도의 안목이 어느 정도까지 돼야 되느냐 하면 자기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그 정도 보통 상식적인 현실을 벗어나서 창세전에 있었던 그 현실마저 수용이 되는 현실관을 갖고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의 수명이라는 것은 기껏 길어봐야 90이고 더 살면 100살까지 삽니다. 100년 밖에 못 사는 인간이 자기가 경험해봤자 기껏 100년 이예요. 자기가 출생해서 그동안 세상살이하면서 경험했던 그 경험이 전부다 이 말이죠. 그 경험한 전부고 그렇게 경험한 것이 제공한 모든 것은 자기가 지금 현실이라고 여기는 그 현실 속에서만 주어진 거예요. 다시 말해서 태어나기 전에, 본인이 출생하기 전에 이 순신장군 있던 그 시절을 본인들이, 인간들이 지금 우리가 경험을 하고 있습니까? 경험하지 못하죠.
그렇다면 어떻게 됩니까? 주의 말씀을 알고자 한다는 말은 지금 우리가 갖고 있던 현실을 확장시켜야 된다는 이야기죠. 오늘 강의 제목이 ‘현실의 확장’입니다. 현실이 확장되지 않고서는 창세기 3장이 담기지 아니하고 확장되지 않고서는 지금부터 3천 년 전의 아브라함이 우리와 함께 같은 현실을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체험하지를 못하게 되는 겁니다.
자, 문제는 이겁니다. 어떻게 지금 우리가 살면서 기껏 100년 밖에 못사는 현실을 벗어나서 그 현실을 창세전까지 아브라함 때까지 확장시킬 수 있는 그 방법이 뭐냐 하는 겁니다. 그 방법을 에따, 모르겠다. 해서는 곤란합니다. 그렇다면 모르겠다는 말은 예수님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뜻이고 이건 예수의 말씀에 대해서 과연 믿어야 될지 안 믿어야 될지 결정이 보류됐다고 이야기밖에 되지 않거든요.
어떻게 현실을 확장시킬까요? 성경은 십자가의 능력으로 확장시킵니다. 십자가의 능력이 오게 되면 우리의 장례식, 우리가 죽는 장례식을 우리의 출산보다 먼저 앞장 세우게 됩니다. 사람의 상식으로서 태어나고 난 뒤에 그 다음에 태어난 인간이 늙어 죽으면 그 사람 본인의 장례식을 치르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장례식이 먼저고 그 다음에 출산은 나중이 되는 겁니다. 이미 죽기로 확정된 자를 왜 죽어야 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이 땅에 탄생이란 출발을 시킨 거예요. 살아가면서 인간이 경험해야 되는 것은 내가 이토록 살고자 하는데도 불구하고 결국은 죽는 것이 확정돼야 되는가, 그 이유가 뭐냐, 그 의미가 뭐냐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 값으로 죽는다고 이렇게 로마서 6장에서 그렇게 언급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죽는 죽음이 그냥 숨이 다해서 죽는 죽음이 아니라 죽는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죄에서 찾아야 되고, 그 죄가 뭐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새 언약, 십자가란 새 언약을 통해서 죄의 개념이 다시 규정이 돼야 됩니다.
십자가에서 죄라는 개념은 뭐냐 하면 모든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고 다 죽었다는 거예요. 그러면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는다는 그것은 어디서 찾아야 되는가? 그건 주님의 세계, 주님의 현실, 주님의 언약, 주님의 시간 속에서 찾아야 되는데 그것이 창세전에 이미 확정된 거예요.
따라서 이렇게 현실을 확장해 보게 되면 정말 성도의 삶이 어떤 거냐 하면 내 사적으로 인생 살면서 이정도 기대했는데 이루어졌으니까 성공이고, 이정도 기대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실패라는 그런 눈에 보이는 현실 속에서 성공과 실패를 논하는 그러한 굴레와 짐으로부터 우리가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이미 죽는 것이 확정 났다면 죽을 때 죽을 값이라도 죽는 이유를 안다면 이미 그 사람은 의인이요, 언약 속의 사람이고 영생을 얻은 사람이요, 이미 그 사람은 그리스도와 살고 있고 그 산다는 것은 창세전에 확정된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일정 기간 동안 우리는 삶이란 것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주님 앞에 고백할 수가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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