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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광주 강의(2014. 2. 21) 1강자유게시판에스겔

광주 강의(2014. 2. 21) 1강

이름 : 서경수(IP:118.35.138.213)

광주 강의(2014. 2. 21) 51-1

에스겔 48장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다 받으셨지요? 에스겔 마지막장을 보면 이스라엘 지파의 지도가 나오는데, 여러분의 느낌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아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하면 잘 지켜서 복을 받고 구원을 받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지요. 그런데 에스겔 48장은 이스라엘 12지파의 경계(지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레위 제사장들을 위한 성소와 레위인들의 땅에 대해 이야기했고, 다시 지도를 한 번 더 거론하고, 마지막으로 성전에 12지파가 배치되는 이야기로 끝납니다. 언젠가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 세상이 고정되어 있다”고.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다양한 활동을 해도 주님은 그 모든 것을 고정된 것으로 보십니다.

막걸리를 만들 때 술독을 보면 누룩이 발효되어 기포가 올라오지요. 이 기포 하나하나를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이라고 봅시다. 기포가 올라와도 술 단지는 여전합니다. 기포 하나하나를 보면 부글부글 끓어서(사업이 망하고, 질병에 걸리고, 차 사고가 나고) 난리가 나는데 술독은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성경은 구더기 같은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든지 그것은 하나의 안개로 취급해 버리고 전체는 고정된 구조로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내가 선한 일을 했습니다. 오늘은 죄를 지었어요.” 이렇게 살까요, 아니면 어떤 구조를 알아야 할까요? 구조를 알면 됩니다. 왜냐? 우리는 구조 안에서 고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괜히 ‘내가 행동을 이렇게 했기 때문에 복을 받는다. 혹은 저주를 받는다.’는 여기에 휩쓸리면 그 사람은 바보입니다. 이것은 인생을 넓게 보지 못한 것이고 에스겔 48장을 이해 못한 것입니다.

전체 구조는 고정되어 있습니다. 이 고정된 것을 본문은 지도를 통해서 알려줍니다. 이 지도는 우리가 변경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에 의해 확정된 경계를 우리가 원한다고 변경할 수가 없어요. 에스겔 48장에 하나님이 그려놓은 지도가 에스겔의 결론입니다. 에스겔의 결론인 동시에 인류 역사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정작 노렸던 것, ‘내가 어떻게 구원 받는가?’ 이런 것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지난 대전 강의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스랍에 칸막이가 있는데, 거기에 빨랫감들을 분류해서 넣지요. 이처럼 이 지도에 보면 칸막이가 되어 있어요. 12개의 칸으로 나눠져 있는데 각 칸막이에 넣을 것들을 나눠서 넣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여기에 들어갈 자라면, 우리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지정된 칸에 들어갑니다. 그 지정된 경계(칸)는 바뀌지도 않고, 다른 칸에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오직 지정된 칸에만 들어가게 됩니다. 이 고정된 칸을 하나님은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이 칸 안에서 모든 인간들은 동일하게 취급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틀을 인간이 변경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이 서랍이 우리를 담아내지 우리에게 수정하고 변경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강의한 내용을 요약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시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시할 필요도 없이 완벽한 구조라면 그 구조는 어떻게 드러나는가? 지시하면서 드러나요. 지시한 적이 없는데, 지시하면서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 뭔가 하면 “네가 지시 받았다고 생각하는 너의 태도와 반응과 무관하게 하나님의 지시는 너에게 지키라고 주신 지시가 아니고 모든 지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버지께 받은 대로 완료했다.”라는 것입니다.

지시를 받을 때 우리는 나에게 하는 지시라고 여겼는데, 나중에 신약에 가서 보니까 에스겔에 나오는 모든 구조는 나를 비켜서 다른 분에 대한 지시였음이 밝혀집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수업을 할 때 학생들이 긴장하는 순간이 언제냐 하면, 칠판에 수학문제 기록해 놓고 “너 나와서 풀어!”라고 손가락으로 지시를 할 때입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선생님의 손가락 방향을 따라가지요. 그런데 어떤 학생은 자신에게 선생님의 손가락이 갔는데 아닌 것처럼 피합니다. 그럴 때 선생님도 처음 지정한 학생이 아닌 그 뒤쪽 학생에게 지적한 것으로 오해해서 그 뒤쪽 학생을 최종적으로 지정할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지시가 오니까(그 지시는 예수님께 향한 것인데) 우리는 나를 향한 지시인줄 착각하고 내가 어떻게 수용해서 성취할까 생각하고 덤벼들었지요.

처음부터 바로 예수님께 지시하면 되지 왜 우리한테 지시하는 것처럼 하시는가? 그것은 인간을 장악하고 있는 마귀가 죄의 왕노릇 하기 때문에 죄가 무엇인가를, 누가 죄를 유발시켜 인간을 지배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지시를 하는데 “그 지시 제가 순종하겠습니다.”하고 손들고 나오는 사람이 있을 거란 말이죠. 이게 마귀의 종노릇 하는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지시하신 적이 없습니다. 왜?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냥 담길 뿐이지 우리 자리를 내가 청소하고, 내가 다듬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교지요. 복음은 그런 것이 아니고 이미 주께서 다 만들어 놓은 곳에 우리가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들어가면서 주의 할 것은, 우리 육신이 뿜어내는 본성 “제가 할게요.”하고 손들고 나오는 그 손을 꺾는 작업을 주께서 하십니다.

“이번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다 나 때문이다.” 라는 것을 꺾어놓습니다. “이번 일이 잘 된 것은 내가 기도했기 때문이다.”라는 것도 부러뜨립니다.

그 다음에, 숨어있는 질서를 어떻게 표면화 시킬 것인가? 안에 숨어있는 것을 어떻게 바깥으로 끄집어 낼 것인가?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전쟁을 벌이십니다. 그래서 에스겔 48장에 나오는 12지파들이 땅을 차지할 때 그냥 주시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전쟁에 승리해서 전리품 형식으로 제공하시는 겁니다.

이게 신약성경 에베소서 4장 8절에 보면,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라고 되어 있어요. 전쟁 후에 전리품을 주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평소에 생활하면서 주님이 전쟁을 하신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삽니까? 나의 생존을 위한 전쟁은 온 몸으로 느끼지만 주님이 영적 전쟁을 벌여서 그 승리의 결과로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못 느끼잖아요. 그래서 오늘 강의에 풀어야 될 난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은 전쟁을 치르고 승리하신 후에 우리에게 전리품을 주시는데 그 전쟁이 일어나는 지점은 어디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늘 내 생존문제만 생각하지만 생존문제와 내가 사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 좋은 예가 이런 것입니다. 김연아 선수가 시합을 하기 전에 모든 사람이 금메달을 딸 것으로 예상했기에 은메달만 따도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어요. 그런데 김연아 선수가 은메달을 따고 난 뒤 신문을 보면 “고맙다. 김연아!” 이런 식으로 타이틀 기사를 섰어요.

그동안 김연아 선수로 말미암아 즐거웠고, 이번 올림픽에서도 최선을 다했고, 비록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을 받았지만 그의 수고와 땀에 대해 온 국민이 찬사를 보낸 것이지요. 만약 금메달을 받았으면 “역시 김연아는 금메달 감이야.” 이렇게 나왔을 텐데, 금메달을 못 받았기 때문에 그 미흡함에 대해 울컥하면서 온 국민이 메달 자체로부터 해탈한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갑자기 사람들의 마음이 너그러워졌어요.

우리는 늘 ‘어떻게 하면 밥 먹고 살까?’ 항상 나의 생존문제에만 관심을 가졌는데, 그 생존문제에 실패했을 때 저만치 멀어져 있던 진실이 내 앞에 다가옵니다. 이것은 나의 질서가 무너지면서 숨어있던 질서가 밀려오는데, 이것이 바로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엡4:8).”는 것입니다.

우리는 받은 적이 없는데 주님은 선물을 주셨답니다. 바로 “김연아가 금메달 못 따는 것을 줬다.” “아 그렇구나.” 우리의 마음이 격상해야 하는데 격상한 마음은 우리가 애초에 노려서 되는 것이 아니고 선물로 주셔야 받는 마음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아는 마음이지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울면서 용서하심에 감사했는데, 그 후 막달라 마리아가 여전도사로 봉사했습니까, 뭘 했습니까? 예수님과 한 편이 되면 욕먹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12제자도 알고 있었어요. 베드로가 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는가 하면, 예수님과 한 편이라고 하면 자기에게 불리한 상황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유리한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불리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불리하게 만들면서 질질 끌고 갈 때 비로소 유, 불리를 따진 것마저도 쓸데없는 공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보입니다. 정돈된 질서는 우리가 손 댈 필요도 없고, 우리가 지시를 따랐기 때문에 얻어진 것도 아니고, 이미 감춰져 있습니다.

감춰져 있다는 말은 우리가 그것을 부정해도 그것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딴 데 정신을 팔다보니까 그 감춰진 질서가 미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네가 온 천하를 얻고도 네 생명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하셨지요. 우리의 목숨은 이미 주께서 만들어 놓은 것인데 우리는 사는 일에 바빠서 거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그냥 방치하시면 안 되겠지요. 끝까지 버려두면 안 되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시는가 하면, 우리가 하는 일이 무너지게 만들고, 그 무너진 현장에 주님 혼자 싸워 얻어낸 전리품을 선물로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셨지요. 그런데 우리가 미처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전쟁을 통해서 우리의 것을 깨뜨리는 작업을 이미 시작하셨습니다. 우리가 죄 아래 있기 때문에 마귀를 깨뜨리고 우리를 깨뜨리는 거죠. 그러면 뭘 깨뜨리는가? 동질성을 깹니다. 우리는 자꾸 남을 따라가려고 남의 것을 모방하고 흉내 내는데 그것을 주님이 깨뜨리십니다.

사람들은 남들이 가는 길로 가고, 동질감을 유지하며 살려고 하는데 이것을 주님은 깹니다. 예수님의 12제자의 특징이 뭔가 하면, 그들은 기어이 동질성을 붙잡으려고 해요. “사람들 눈 밖에 나면 죽는다. 나는 가족들도 있는데 어떻게 하든지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해.” 이런 생각으로 사는데, 예수님은 “세상이 너희들을 미워한다.”고 했지요.

에베소서 4장 8절에 선물을 주신 분이 있잖아요. 주신 분이 있으면 반드시 받는 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은 내가 밉기 때문에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라고 하셨으면, ‘미움 받으면 어떻게 살지?’ 이런 생각하지 말고, 그 미움 받는 분이 누구신지 찾아볼 생각을 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미워한다는데, 그것도 예수님과 한 통속이란 이유 때문에 미워하게 되어 있는 것이 이 세상이고, 예수님이 가는 길은 미움 당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동질성이 아닌 이질성이 만들어지지요. 분리가 일어나는 겁니다.

12지파가 땅을 차지했습니다. 여호수아 시절에 땅 분배를 완료했지요. 그 분배에 대해서는 여호수아에 보면 잘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서 12자파가 분할되는 것과 에스겔 48장에 나오는 분할이 같습니까? 다릅니다. 다른데 같은 것이 있긴 있어요. 에스겔에서 나눠지는 땅의 그림과 여호수아 때 가나안 땅 정복을 마감하고 12지파가 정착한 지도는 달라요. 그런데 유다와 베냐민 땅은 같아요. 그 외의 다른 지파는 약간씩 달라요.

이렇게 변경된 사항 속에는 뭐 어떤 것이 있는가 하면, 그동안 이스라엘이 숱한 역경을 겪어 왔다는 것을 품고 있습니다.

“구원은 십자가의 반복으로 된다. 십자가는 죽었다가 사흘 만에 산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이고 다시 살려내는 것이다.” 제 말 맞지요? 그런데 우리 중 누구도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어요. 설사 영생을 얻고 구원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죽고 싶은 사람은 없어요.

만약 죽고 싶어서 사는 사람이라면 실패하고 넘어져도 “감사합니다.”라고 할 거예요.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넘어지면 “아, 재수 없어!” 이렇게 나오지 감사한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신안 염전에서 일군들을 노예처럼 대우한 염전 주인들이 경찰에 잡혀 갔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제일 먼저 염려한 것은 ‘염전 주인들은 앞으로 어떻게 염전을 운영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어떤 염전 주인이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염전에서 일하던 사람이 탈출해서 “내가 염전에서 노예처럼 당하면서 강제로 일했습니다.”라고 고발을 했는데, 그 사람이 다시 염전에 일하러 갔어요. ‘밥이나 먹여주면 고맙겠습니다.’라는 심정으로 또 일하러 간 거예요. 살고 싶은 거예요.

그 사람 모습이나 우리 모습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살고 싶은 거예요. 살고 싶다는 것은 내 의지가 아닙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구원 받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구원 받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질서에 합류가 되었어요. 아주 아이러니한 일이에요. 정작 구원 받고자 하는 사람은 구원하시지 않고, 구원에 별 관심도 없는 자를 구원하시려고 주님 혼자 용을 쓰시는 겁니다.

12제자들은 예수님 십자가 죽으신 후에 고기 잡으러 갔어요.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갔어요. 배반한 자를 왜 찾아갔습니까? 찾아가서 주님이 하신 말씀이 “나는 내 사랑하는 자를 끝까지 버리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제자들은 도망을 치는데 예수님이 끝까지 찾아가서 구원하시는 것은, 그들 구원이 목적이 아니고 예수님의 십자가가 품고 있는 그 구원의 의미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집 떠난 자식을 찾아가서 집으로 데려왔는데, 며칠 지나 또 가출했는데 다시 부모는 가출한 자식을 찾아가서 또 데려오고 그럴수록 부모님의 사랑의 깊이는 점점 더 넓어지고 풍성한 것이 드러납니다. 사도 바울의 기도가 바로 이런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깊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엡3:19).”

구약 아가서의 특징이 뭔가 하면, ‘사랑은 이 세상의 모든 얽히고설킨 것을 이겨낸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 세상이 나에게 죽음을 준다 할지라도 사랑은 죽음보다 세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네가 죽어도 내가 살려내고 말 것이다.’ 라는 의미입니다. 이 지독한 사랑을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다.”라고 했어요.

우리가 이런 사랑을 느끼는 때는 언제인가 하면, 우리가 도망을 쳤는데 또 찾아오실 경우입니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 고정된 질서입니다. 그래서 사랑 받는 사람은 이것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겨울왕국]이란 영화를 보면, 끝까지 찾아오는 사랑을 보여줍니다. 사랑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단 그것을 위해서는 반드시 희생이 필요하다.

사랑받기 위해서 희생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이미 희생했고, 값을 다 치렀다는 증표가 바로 사랑입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주의 사랑을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사랑 받았다’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저를 위해 희생하신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지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구 너희를 꾀더냐(갈3:1)?”

세상은 동질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동질성은 거대한 유혹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드는 거대한 유혹이 세상입니다. 내가 아무리 힘써 주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해도 거대한 유혹은 강력한 지남철이 되어서 우리를 끌어당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을 찾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완전히 세상 유혹에 빠져서 거기서 먹고 마시며 살 뿐입니다. 마치 더운 여름 아이들이 수영장에 가면 밥 먹는 때도 잊고 하루 종일 물에서 장난치며 노는 것과 같습니다. 물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합니다. 물장구치면서 노는 것이 너무 재미가 있어요.

주님의 희생은 죄인을 친히 찾아오십니다. 술 취해 비틀거리는 우리를 대리운전자가 와서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주는 것처럼 주님의 사랑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런 과정과 흔적들이 이 땅에 새겨져 있어요. 그래서 에스겔 48장의 천국은 지상에 있는 지도의 모습으로 그려주고 있습니다. 물론 천국에는 지도가 없어요. 에스겔은 역사적 상황이기 때문에 지도로 표현한 것입니다. ‘너희들은 세상의 거대한 유혹을 벗어나지 못했다.’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을 책망할 때 늘 하는 말이 “세상 풍속을 쫓지 말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 이런 것들은 이방인들이 하는 짓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자꾸 합니까? 이스라엘이 결국 그들과 한 통속이 될 수밖에 없는 신체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다고 해서 애굽과 결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애굽을 길게 엿가락처럼 늘였다가 어느 시점에는 용수철처럼 되돌아갑니다.

스가랴를 보면 제 2의 출애굽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때는 다시 출애굽 할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첫 번째 출애굽은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제 2의 출애굽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에스겔 48장을 보면서 공감할 부분이 뭔가 하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에서 추방되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준다는 천국도 땅에 있는 지도의 모습으로 줍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그 땅이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안 되고,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을 구원하시는 근거가 이 지도 어느 지점에 표기되어 있습니까?”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내가 과연 천국 가는 사람인가?’라는 것을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전쟁이 일어나는 시기와 지점이 어디입니까? 당시 에스겔 48장에서 지도로 말씀하실 때에 어느 지점에 강조점을 둠으로 다른 지파들이 공짜로 천국에 살게 되었습니까? 그 지점을 발굴하고 찾아내는 작업을 우리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줄거리와 흐름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첫 번째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지시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시한 적이 없는데도 구원 받았다면 그 장소는 어떻게 찾아갑니까? 지시를 통해서 찾아가요. 왜 지시하느냐? 지시하게 되면 마치 우리가 그 지시에 순종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구원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라고 여기는 이 신체 자체가 문제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래, 지켜야 해. 안 지켰으니까 벌 받겠다.”라는 인식 자체가 전쟁을 통해서 무너져야 할 아담의 타고난 본성입니다.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그 지점을 찾아가 봅시다. 제가 나눠드린 그림에 보면, 앞에 유다 지계(지역)가 있고, 밑에 베냐민 지역이 있지요. 거기에 레위인의 땅, 그리고 제사장의 땅, 그 안에는 성소가 있지요. 이곳은 지중해고, 이쪽은 요단강이고, 양쪽에 왕의 땅이 있지요.

하나님께서 전쟁에 승리해서 전리품인 땅을 백성으로 제공하시려면 그냥 나눠주면 되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지도를 그리고 복잡하게 해서 주시는가 하면, “내가 선물 받은 땅은 하나님께 받았다.”고 바로 말하지 말고, 옆에 있는 지역을 경유에서 올라오라는 것입니다. 옆에 있는 지역이 뭔가 하면, 바로 레위인의 땅, 곧 제사장을 위한 땅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성소가 있고.

성소에는 어린양의 보좌가 있겠지요. 그래서 이 땅을 에스겔 48장은 지도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것을 옆에서 들여다보면 개마고원처럼 불쑥 쏟아 있어요. 위에서 보면 유다 지역, 베냐민 지역이지만 옆에서 봐서 불쑥 쏟아 있다면 나머지 지역이 이 지역보다 낮게 있겠지요. 그러면 불쑥 올라온 만큼 하늘나라에 더 가까이 있는 하나의 매개가 된다는 사실이 옆에서 보면 이해하시겠지요?

옆에서 보면 불쑥 올라와 있다는 이야기는 성경에 없습니다. 제가 이해를 돕기 위해서 평면으로 되어 있는 것을 입체적으로 그려 본 거예요. 그러면 나머지는 위에서 흘러내려온 부스러기를 얻어먹고 구원 받는 셈이 되겠지요. 그러면 얻어먹는 입장에서 “나는 잘나서 구원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없지요.

십자가를 믿든, 성령을 받든, 뭘 하든 간에 전부 위에서 굴러 떨어진 거예요. 신약적으로 말하면 여기에 있는 유다 지파는 누구입니까? 한 분 뿐이지요. 한 명이 하신 음식이 부스러기로 굴러 떨어져서 밑에 있는 사람들이 받아 챙기게 되는데, 이것은 천국의 숨겨진 질서에서 이미 구원 받기로 확정된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오병이어가 있잖아요. 오병이어가 몇 광주리 남았습니까? 열두 광주리 남았지요. 이런 일은 없겠지만, 러시아 소치에서 동계올림픽을 다 마쳤는데 금메달이 몇 개 남았어요. 그래서 선수도 아닌 사람에게 금메달을 준다면 받는 사람은 값없이 받는 것이지요.

요한계시록 22장에서 받는 생명수가 어떤 생명수입니까? ‘값없는’ 생명수지요. 그러면 값을 치르고 생명수를 받는 분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죠. 예수님 외에 모든 사람은 값없이 받는 거예요. 그 내력에 대해서 성경에 나와 있고, 그래서 우리가 사는 지역(광주, 대구 등)의 현실은 이 말씀의 내력을 설명하기 위해서 들쑤시는 것입니다. 생존에 목을 매고 있는 우리들에게 “너는 값없이 구원 받았어.”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주는 사건과 사태를 유발시키는 겁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거든 에스겔 48장의 지도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12지파가 칸막이에 들어가는데, 그러면 값없는 은혜를 누가 받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취소되거나 변경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실 때는 아브라함 한 가정이지만 야곱에 와서는 한 국가가 돼요. 국가 되기 직전에 한 나무에서 12가지가 나오면서 12가지가 하나가 돼요.

아브라함이 하나였잖아요. 그런데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어서 몇 개의 가지가 나옵니까? 12개입니다. 12가 예수님에게 오면 다시 하나로 모아집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하나라고 하면 쉬울 텐데, 12로 벌여놓고 하나로 모으는 것은 왜 그런가? 12가 의미하는 것은 인간의 죄입니다.

그리니까 이 세상에 주어진 것이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요. 바뀌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삶의 편리를 위해서 부단히 이 세상을 나에게 편리하도록 바꿔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공중의 새를 먹인다고 하셨지만, 우리가 새처럼 일하지 않고 놀기만 한다면 쌀이 생깁니까, 밥이 생깁니까? 가만히 있으면 됩니까? 안 되지요.

부지런히 설쳐서 내 생존에 유리하도록 바꿔 나가야 되잖아요. 그게 바로 12지파가 한 일입니다. 야곱에서 12자녀가 생긴 것은 라헬과 레아가 서로 남편의 사랑을 차지하겠다는 여파로 12자식이 생겼잖아요. 그러니까 이 세상은 인간으로 하여금 부지런히 설치게 해서 죄의 먼지가 유발되게 조치를 하는 겁니다.

그냥 하나에서 하나로 가는 법이 없어요. 반드시 설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죄를 경유해서 하나님의 의에 이르게 하십니다. 깜짝깜짝 놀라고 절망하지 않고서는 기쁨이 없습니다. 김연아가 은메달을 땄다는 것이 뉴스에 나왔어요. 그러나 그 은메달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누구냐? 새벽 1시부터 3시 45분까지 경기를 다 지켜보고 결과까지 확인한 사람이라야 그 의미를 알아요. 뉴스를 통해서 결과만 들은 사람은 그 메달의 의미를 제대로 몰라요.

12지파는 우리 인생을 의미합니다. 이 땅에서 실컷 고생을 해야 돼요. 그냥 놀고, 먹으면서 천국 가는 법은 없습니다. 12의 죄악을 거쳐야 비로소 숨겨진 1이 나옵니다.

10분 쉽시다.

(2014. 4. 3. 08:36 녹취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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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