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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67강-YouTube강의(절대기준)140320-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

67강-YouTube강의(절대기준)140320-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2.222)

67강-YouTube강의(절대기준)140320-이 근호 목사

제 67강 제목은 ‘절대기준’입니다. 절대기준이란 거, 상당히 학문의 세계에서는 아주 해서는 안 되는 도발적인 발언 이예요. 네가 뭔데 절대기준을 네가 주장하느냐? ‘혹시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하고 겸손하게 이야기해야지, 절대기준입니다. 그러면 절대기준이 내일되면 또 바뀌고 네가 알았던 그전 사람들은 네가 아니기 때문에 절대기준에 못 미쳐서 그들은 다 지옥 가고 너 혼자 구원받네? 이런 식으로 비난할 수 있는 그러한 위험한 발언처럼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봅시다. 사도 바울이 ‘절대기준은 없습니다. 여러분, 이런 것도 생각해 보시고 저런 것도 생각해 보세요.’라고 사도바울이 그렇게 이야기했던가요? 예수님이 그렇게 이야기하셨던가요?

성령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겸손하게 ‘저는 절대기준은 아니고 제 뜻은 이렇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그게 성령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게 서로서로 미덕이 될 수가 있어요.

하지만 성령을 받은 상태가 돼 버리면 자기가 남한테 독선이란 욕을 얻어먹더라도 절대기준을 제시해야 됩니다. 그것이 사도의 권위고 사도의 권위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지금 현장에 살아 계시다는 그런 증거가 되는 겁니다. 사도라고 해서 독선이 재밌어서가 아니라 사도도 얼마든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그런 겸손의 티를 얼마든지 해낼 수가 있어요.

하지만 그걸 넘어서서 이거는 역사를 초월한 절대기준이고 이거는 만고의 진리라는 것을 이미 제시를 했습니다. 그것이 뭐냐,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이야기하는데 주저하고 있다는 이 말은 본인 자신이 십자가에 목숨을 바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는 겁니다. 십자가라는 것에 몽땅 모든 걸 걸은 사람, ‘십자가가 절대기준 맞습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은 마지막에 십자가만을 증거 하게 돼 있고 자랑하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주저주저하면서 또는 머뭇머뭇하면서 십자가도 필요하고 다른 것도 필요하고, 이런 식으로 한다는 말은 그 사람은 한 번도 십자가 영을 받아본 적도 없고 십자가를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단지 그 사람들이 주장하고 싶은 것은 ‘나는 이 정도로 융통성이 있으며 이렇게 교만하지 않습니다.’라는 자기 겸손의 티를, 자기 의를 이루기 위해서 겸손을 가지고 긁어모은 그런 하나의 술책에 불과한 겁니다.

그러면 십자가가 절대기준이라는 것을 우리가 왜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할 수 있느냐? 어떤 사람에게 가능 하느냐 하면 바로 예수님이 가신 그 길에 이미 참여된 사람에게만 그것이 성립됩니다.

자, 무슨 이야기냐 하면 예수님 저기 가 계시고 자기는 따로 있으면서 예수님을 따라가든지, 예수님을 흉내 내려 하는 사람한테는 여전히 따라가 봤자 그건 자기 길을 그냥 견제하고 유지하는 것밖에 안 됩니다.

하지만 성령이 임해버리면 자기 자리가 없고 예수님에 의해서 예수님이 만들어 준 예수님의 자기 노선에다 이미 합류가 돼 버린 사람입니다. 합류가 됐다면 더 이상 자기주장을 할 수가 없어요. 오히려 자기의 모든 주장은 죄악 되고 거짓됐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논리적인 모순이 있죠. 내가 하는 말이 절대기준이라 해놓고 방금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하는 주장이라고 해도 이거는 절대기준에 평가를 받아야 되고 비판받아야 된다면 방금 제가 앞, 뒤가 안 맞는 모순되게 이야기를 한 셈이 되죠.

그런 이야기가 갈라디아서 1장 7절~8절에 보면 나옵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로다”라고 했습니다.

방금 읽었던 본문을 제가 잠시 한번 바꿔보겠습니다. 어떻게 바꾸느냐 하면 ‘그러나’는 그냥 두고요. 그 다음 말을 빼겠습니다. 진짜 성경에 나온 내용은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로다”라고 돼 있는데 제가 바꿔보겠습니다. “그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로다” 차이가 어디 있죠? 뭔가 하나 빼버렸죠? 빼고 가면 안 된다 이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나” 방금 “우리냐”를 빼고 안 빼고 차이점을 제가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라고 할지라도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로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지금 사도가 한 말 이예요. 지금 갈라디아서 1장 8절만 놓고 봐도 지금 단박에 모순된 말이 들어있죠? 앞에 “우리”하고 “그러나 우리나” 할 때 “우리”하고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우리”하고 이게 동일하다면 “우리”라는 말을 집어넣을 필요가 없어야 되고 차이가 난다면 뒤의 “우리”는 이거는 비판받을 “우리”가 돼 버리기 때문에 이것도 문제가 또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말씀은 이런 겁니다. 지금 복음을 전한 나라 할지라도. 이건 이런 뜻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절대기준을 제시한다. 그런 뭐냐, 십자가다. 이 십자가가 절대기준이기 때문에 이건 몇 천 년이 흐르든 그 전 사람이든 구약 사람이든 창세기 있는 사람이든 어떤 사람이든 십자가 복음 외에는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받는다.’라고 내가 너희에게 전했는데 그런 나라고 할지라도 이 십자가외 다른 소리 하면 나는 저주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인간의 말로는 설명이 안 되죠. 설명이 안 되지만 제가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그 자체로서는 말이 안 되는데 이렇게 하면 단번에 풀려요. 뭐냐 하면 우리가 우리 구원이 우선이 아니고, 십자가가 우선이란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십자가가 먼저고 그 다음에 십자가 증거 하라고 우리가 있는 것이지, 내가 먼저 있고 ‘참, 내가 구원받으려면, 내가 천국 가려면 내가 무슨 진리를 알아야 되고 무슨 절대기준을 알면 되지? 옳지, 십자가구나. 그래, 십자가 믿어야지.’ 이런 뜻으로 십자가가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깁니다.

우리 있기 전에 십자가가 먼저 있는 거예요. 구약 적으로 설명하게 되면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에 말씀이 먼저 존재하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간이 자기가 있다는 것을 먼저 해버리니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 ‘하나님이여, 제가 구원받고 싶습니다. 자, 구원받고 싶은데 뭘 봐야 됩니까? 성경을 보고 그걸 실천에 옮기면 구원받는 겁니까?’라고 성경을 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 구원이 우선이고 성경 존재는 나보다는 뒤처진 두 번째 사항이 돼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그건 종교가 돼 버리고 이건 하나의 정보 취득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해 먹는 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십자가라 하는 것은 예수님이 분명히 홀로 지신 십자가지만 그 십자가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설명을 가하기를 네가 이미 십자가 죽었던 그 죽게 만드는 그 십자가라는 겁니다. 그러면 십자가가 진짜 찾아오게 되면 구원받으려는 나 자신의 여망이나 욕망도 일단 십자가에 의해서 저주를 받아야 돼요. 쉽게 말해서 구원받고자 하는 이것 자체가 죄가 돼야 됩니다. ‘주여 구원받고 싶습니다. 죽고 난 뒤에 천국 가고 싶습니다.’ 이런 발상이 바로 내가 미처 그동안 몰랐던 죄가 되는 겁니다. ‘내가 절에 다녔는데 이제부터는 교회 가서 말씀 다 들어서 구원받아야지.’라고 할 때부터 이미 죄 지은 상태에서 교회 오신 것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집에 가면? 집에 가도 죄 진 게 돼요. 사람 살아있다는 자체가 그냥 있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 반대하라고, 방해하라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십자가에 대해서 좋게, 좋은 관계를 제시할 그런 자격과 권리가 없어요.

하지만 십자가가 먼저 있고 우리가 있으면 십자가는 그런 죄인인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걸 다 간파하고 계세요. 그래서 십자가는 뭐냐, 그런 못된 십자가를 믿지 않을, 십자가를 왜곡시키는 그런 죄마저 용서하는 용서의 능력이 십자가 안에 들어있습니다.

그 다음에 십자가 영, 성령이 찾아온 사람에게만 그것이 구원의 혜택이 주어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한테는 구원의 혜택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건 왜 그러느냐, 그건 십자가 지신 예수님 맘 대로입니다. 요한복음 5장에서 아버지가 자기를 구원해서 선택한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구원할 사람을 선택한다고 언급을 해놨거든요.

십자가 지신 분이기에, 그래서 우리보다 예수님이 먼저이기에, 십자가 사건이 먼저이기에, 그 다음에 십자가만을 증거 해야 될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천국보내기 위해서 찾아오게 되면 사도바울 같은 그런 고백이 나옵니다. “우리라 할지라도 절대기준인 이 십자가를 기준해서 다른 것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미 사도는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만만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성령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마찬가지로 나라 할지라도 십자가 복음에 눈 돌리면 그것이 바로 다른데 눈 돌리는 것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는 우리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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